고토 히로오키
1. 프로필
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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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의 유망주에서 시작해 1인자들을 위협하는 강력한 2인자, 전형적인 퇴물 단계를 거친 끝에 2018년 시점에는 이시이 토모히로와 함께 신일본을 대표하는 하이-미드카더이자 수문장으로 정착한 선수다. '혼돈의 난폭무사'라는 별명답게 돌진력과 파워를 살린 시합을 특기로 하는 선수로, 거기에 각종 오리지널 기술들을 만드는 재주가 제법 좋은 편이라는게 특징이다.'''" G1のGは
後藤 のGだ!! "'''[21]
(G1의 G는 고토의 G다!!)
스타일이 비슷해보이는 이시이 토모히로와의 차이점은 기술 폭과 운영 능력. 우선 이시이가 래리어트/수플렉스 같은 기본적인 기술들을 기반으로 한다면, 고토는 우시고로시/승천 改 등 독창적이고 임팩트가 강한 오리지널 기술들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고토의 기술 모음
또한 이시이는 경기 운영 능력이 매우 좋아 어떤 선수를 만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 퀄리티가 보장되는 최고의 워커인 반면, 고토는 그쪽 재주는 별로라서 상대가 누구건간 거의 같은 경기 운영을 보여주기 때문에 상성만 잘 맞으면 못해도 평균 정도의 경기 퀄리티가 보장되고 시너지까지 터지면 4성급 경기를 뽑아내지만 대신 배드 럭 파레급의 슈퍼 헤비급 선수/나이토 테츠야/EVIL/야노 토루/잭 세이버 주니어 등 상성이 영 맞지 않는 선수를 만나는 순간 경기 질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3. 경력
4. 데뷔 ~ 암흑기의 유망주 시절
미에현 쿠와나 시 출신으로, 쿠와나 공고와 고쿠시칸 대학을 졸업한 후 2002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22] 했다. 그해 타구치 류스케와의 연습 도중 어깨 탈골 부상을 당하자 스카우트 부장에게 바로 짤리는 바람에 데뷔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으나, 절친 시바타 카츠요리가 기숙사에서 쫓겨난 고토를 자신의 맨션에서 살게 하면서 재활을 도와주고, 심지어 재입단 테스트를 받을 수 있도록 회사를 설득하면서 무사히 재활 완료 후 재입단에 성공, 2003년 7월 6일, vs 타구치 류스케전으로 데뷔했다.
초창기에는 주니어 헤비급으로 활동하며 IWGP 주니어 헤비급 태그 챔피언을 차지했고, 2006년에는 TNA의 '월드 X 컵'에 일본 대표 중 한 명으로 출전했다. 2006년 8월부터는 무기한 멕시코 원정에 들어가 2007년에 헤비급으로 전향하고 돌아온 이후로 G1 클라이맥스 우승 1번, NEW JAPAN CUP 우승 3번, WORLD TAG LEAGUE 우승 2번,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 2번, IWGP 태그 챔피언 1번 등의 성과를 남겼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암흑기 때 주니어 헤비급에서 급격하게 몸을 불려 헤비급 전선에 뛰어들었다. 2007년 11월 11일에 개최된 디스트럭션 메인이벤트에서 타나하시 히로시와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7년 올해의 경기 9위에 이름을 올린 경기를 만들었으며, 후에 타나하시 히로시는 이 경기 이후부터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흥행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회고하였다. 2008년에는 본인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G1 클라이맥스에 출전하여 결승에 진출해 마카베 토우기와의 결승전에서 승리하면서 G1 첫 출전 첫 우승의 기염을 토하는 등 망조에 든 단체를 지키며 활약하였다.
5. 기나긴 침체기
하지만 2012년 부시로드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하며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나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링 단체로 발돋움하는 동안 고토 히로오키는 주류에서 밀려났다. 당시 에이스 타나하시 히로시는 절정을 달리고 있었고, 나카무라 신스케와 오카다 카즈치카가 호시탐탐 왕위를 계승할 틈만 엿보고 있었다. 또 이들보다 한발짝 뒤진 위치에 있던 나이토 테츠야와 시바타 카츠요리도 언제 경쟁대열로 치고올라올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강력한 경쟁자들 사이에 낀 것도 부족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토 히로오키 자신도 정체기에 빠져들었다. 쇼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끼'''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간간이 활약을 할 때도 있긴 있었지만[23] 큰 이벤트에선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24] 게다가 주니어 해비급에서 헤비급으로 전향한 일본인 선수들이 고생하는 대표적인 이유인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것도 발목을 잡았다.[25] 그리고 이 부상 문제는 꾸준히 고토의 발목을 잡아서 서양의 슈퍼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좋지 못한 경기만 만들거나, 승천 改를 반쯤 포기하고 GTR을 장착해야만 하는 등의 악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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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면서, 일정 수준의 경기는 보장되지만 경기력은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원래 나빴던 프로모 능력은 답보상태다. WWE로 이적하게 된 나카무라 신스케의 고별 태그 매치에서 오카다 카즈치카와의 싸움을 우선시하면서 눈치없이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는 눈새 기믹에,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서 한겨울에 폭포수행을 하는 촌스러운 기믹을 더해 팬들의 반응은 싸늘히 식었다.[26] 일본에서 별명은 나쁜 의미로 고토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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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치부심했고, '고토 혁명'을 선언하더니 일본 프로레슬링 매니아의 도시인 오사카에서 열린 뉴 비기닝에서는 전신 페인팅을 하고 등장했는데, 팬들로부터 무리수였다는 싸늘한 반응을 받는다. 폭포수행도 의미없이 뉴 재팬 컵 2016 결승에서 나이토 테츠야에게 졌다. 나이토 테츠야도 고토 히로오키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턴힐하면서 기믹을 변경한 게 대박을 쳐서 격차가 엄청 벌어졌다.
6. CHAOS 가입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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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이긴 나이토 테츠야에게 조롱당한 고토 히로오키는 결국 이전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던 오카다 카즈치카의 권유를 승락하며 CHAOS에 가입했다.
2016년 8월 G1 클라이막스에서, 타나하시 히로시와 오카다 카즈치카가 비긴 덕에 어부지리로 A조 우승자가 되면서 결승에 올랐다. 8월 14일 G1 클라이막스 결승전에서 케니 오메가와 맞붙어 패배했지만 데이브 멜처가 4.75점을 준 명경기였다. 10월에 킹 오브 프로레슬링 2016에서 G1 클라이막스 우승 특권인 권리증을 가진 케니 오메가에게 도전했지만 데이브 멜처에게서 4.75성을 받는 경기 끝에 또 패했다. 레슬킹덤 11에서 시바타 카츠요리를 이기고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지만 챔피언으로서 별다른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고 스즈키 미노루에게 타이틀을 뺏겼다.
다시금 반등하고자 세컨드의 난입 없는 상태에서 삭발 매치로 NEVER 오픈웨이트 타이틀전을 가지자고 스즈키 미노루에게 제안해서, 레슬킹덤 12에서 스즈키를 이기며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을 탈환한다. 이후 EVIL, 비어 시티 브루저, 쥬스 로빈슨을 상대로 차례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을 하지만 도미니언 6.9 in 오사카-조 홀에서 타이치와 마이클 엘긴의 도전을 동시에 받아 트리플 쓰렛 매치를 가졌다가 마이클 엘긴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이후 8일 뒤에 열린 키즈나 로드 2018에서 마이클 엘긴에게 다시 도전해 한동안 봉인하고 있던 회천과 승천 개까지 총동원한 끝에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을 재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G1 클라이맥스 28에선 B블록에 참가한다. 그리고 케니 오메가와의 싱글 매치에서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데이브 멜처에게 5성 만점을 받았으며, 이후 이시이 토모히로와의 경기도 데이브 멜처에게 5성 만점을 받는다.
G1 클라이맥스 28이 끝난 이후 이번에는 타이치와의 대립이 성사되어 디스트럭션 in 벳푸 2018에서 방어전을 가졌으나, 스즈키군의 난입 및 반칙 행위 등으로 타이틀 방어에 실패한다. 이후 타이치의 다음 도전자였던 윌 오스프레이가 부상으로 타이틀 매치 자체가 취소되자 타이틀 매치가 취소될 이유는 없다며 자신이 다시 한번 도전 의사를 피력했고 타이치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신일본 측에 의하여 둘간의 타이틀 매치가 성사된다. 그리고 파워 스트러글 2018에서 열린 타이틀 매치에서 타이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통산 4번째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 등극에 성공한다.
이후 자신의 도전자로 이부시 코타를 지목하지만...'''이부시가 도전하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챔피언이 도전자를 지목했는데 오히려 그 도전자가 챔피언쉽 경기를 거부하는 황당한 상황에 타이치와 함께 트위터로 만담을 하고 있다.
결국 2018년 11월 18일에 월드 태그 리그 2018 기간 열린 사전 경기에서 이부시와 고토가 포함된 다인 태그 경기가 끝난 뒤 고토가 "정 너의 의견이 그렇다면 그만두겠다."라고 폭탄 선언을 하자 그제서야 "타이틀에 도전하겠다."며 둘간의 타이틀 매치가 월드 태그 리그 2018 결승전 당일 열리는 것이 확정된다.[27] 이렇게 결승전 당일에 둘간의 챔피언십이 열리게 되는데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결국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며 타이틀을 이부시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이후 본인의 SNS를 통해 "THANK YOU NEVER"라는 짤막한 코멘트를 남긴다.
타이틀을 잃은 고토는 제프 콥을 상대로 ROH TV 챔피언십에 도전해 패배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뉴 재팬 컵 2019 우승을 노렸지만 1회전만에 SANADA에게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하기 위한 발판으로써 전 챔피언이었던 제이 화이트와의 대립에서도 패배하며 2019년 상반기를 2016년 상반기와 맞먹는 최악의 시기로 보내야 했다. 5월 초부터는 신일본과 ROH 합동 이벤트로 미국에서 보냈다.
G1 클라이맥스 29를 앞두고 심기일전하기 위해 시바타 카츠요리가 코치로 있는 로스앤젤레스 신일본 도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키즈나 로드 2019 마지막 날에 도발을 시전하는 제이 화이트의 앞에 나타나 링 밖으로 쫓아내며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했던 G1 첫 상대인 제이 화이트를 상대로 우시고로시에서 GTR식으로 떨어뜨리는 새 기술과 빠른 움직임으로 승리를 따내는데 성공하며 "G1의 G는 고토의 G!"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이후 3연패를 거친 뒤,[28] . 이시이 토모히로와의 대전 이후 다시 연승을 쌓았는데, 최종적으로 타카기 신고에게 패배하면서 5승 4패로 G1 시즌을 마감햇다. 이로써 고토는 존 목슬리, 나이토 테츠야, 제이 화이트와 더불어 혼전의 연속이었던 B블록 최후의 4인으로 남으며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디스트럭션 2019 고베에서 G1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타카기 신고와의 싱글 매치에서 승리한 고토는 같은 날 메인 매치에서 나이토를 꺾고 IWGP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 된 제이 화이트 앞에 나타나 도전 표명을 한다. 파워 스트러글 2019에서 챔피언십을 가졌지만 KENTA의 방해로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게 됐고, 그대로 KENTA와의 대립구도가 생겼다. 월드 태그 리그 2019 기간에도 개인적인 난투를 거듭하던 이들의 경기가 레슬킹덤 14 2일차에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으로 결정됐다. 이 매치에서 고토가 승리하면서 통산 5번째 NEVER 챔피언이 됐다.
레슬킹덤 14 다음 날에 열린 뉴 이어 대시에서 이시이 토모히로와 함께 EVIL & 타카기 신고 태그팀과 맞붙었는데, 타카기에게 직접 핀을 당하며 패배했다. 그 후 마이크를 잡은 타카기가 NEVER 벨트에 도전 표명을 했고 고토가 이를 수락하며 더 뉴 비기닝 in 삿포로 2020에서 타이틀전이 열리게 됐다. 좀처럼 꺼내지 않는 회천과 승천 개까지 꺼내들었지만 타카기에게 피니셔를 허용하며 약 30일만에 타이틀을 뺏겼다.
7. 여담
- 아버지가 중견 전기 기업 사장으로 유복한 집안 출신이지만, 부모님께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지원 없이 스스로 아마추어 레슬링 성적을 내면서 학업을 끝마쳤다고 한다.
- 2011년 인기 점심 방송 '라이온의 고키겐요'에 게스트도 아니고 방송국에 직접 엽서를 응모해서 당첨되어 일반 방청객으로 갔다가 프로레슬링 팬이였던 게스트 하카타 다이키치(게닌)가 방청객석에서 고토를 발견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시바타 카츠요리와는 절친. 동향에 고교 동창으로, 쿠와나 공고 레슬링부에서 함께 운동하며 쿠와나 공고 레슬링부를 부흥시켰다. 시바타는 고졸 후 즉시 입단, 고토는 코쿠시칸 대학교 졸업 후 입단으로 시바타가 4년 선배가 되었다. 4년이나 선배인지라 사석에서는 반말을 써도 공석에서는 경어를 써야 했지만, 둘 다 중고참 반열에 들어간 후에는 공석에서 반말을 써도 문제 없게 되었다.
- 취미는 팝픈뮤직이라고 주간 프로레스에서 밝힌 바 있다.
- 프로모 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별개로 의외로 연기력은 뛰어나서 드라마, 영화, 예능 섭외를 꽤 많이 받고 몇개는 출연했는데 평가도 좋았다.
8. 전설의 반열에 들어가는 천연#s-2 기질
사람이 정말 좋은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천연으로 유명했던 스승 텐잔 히로요시를 닮았는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대표하는 천연으로 유명하며, 그에 얽힌 일화가 굉장히 많다.
- 고등학교 시험에서 3점을 맞은 적이 있다. 그마저도 사실 답은 다 틀렸는데 이름 제대로 썼다고 선생의 온정이 담긴 3점. 이걸 옆에서 본 시바타는 벙쪘고 고토는 그 즉시 답안지를 꽉꽉 구겨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
- 연차가 낮았던 시절 세탁 당번이었을 때 나고야에서 시합이 있었던 까마득한 대선배(데뷔년도만 25년 차이) 슈퍼 스트롱 머신의 경기복을 도장에 두고 오는 대실수를 저지르고 세탁 당번에서 짤렸다.
- 지금의 아내와 사귀게 되는 데는 이 성격이 오히려 한 몫을 했다. 첫 만남에서 뜬금없이 연락처랑 메일을 얻어놓곤 정작 2주 넘게 연락을 안 해서 '뭐하는 사람인가' 했는데 이후 부끄러워서 연락하지 못 했다고 대놓고 쑥맥임을 인증하는 천연스러운 모습에 넘어가 사귀게 되었다고. 이후 너무 좋았는지 타이치에게 하도 자랑질을 해서 타이치가 질렸다고 한다. 부인과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잘 사는 중.
- 결혼 발표도 비범했는데, 계약 갱신할 때, 심지어 그 자리에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결혼 사실을 발표했다.
- 2012년 당시 영 라이온이었던 EVIL과 타카하시 히로무가 정성스럽게 선물해 준 생일 케이크를 도장에 두고 왔다. 이후 EVIL이 개선 귀국 한 후 무심코 "와타나베(본명)"라고 불러버린 적도 있다.
- 상금 수백만엔을 죄다 택시비로 사용. 이유는 전차를 이용하면 훨씬 싸지만 택시가 좋아서 일부러 택시로만 이동해서.
- 절친인 시바타 카츠요리와 같이 아리마 온천에 가서 입수해있는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렸는데 수분후 팬들의 메세지가 폭발. 알고보니 물에 잠겨있는 그곳(일명 아라무샤 주니어)의 실루엣이 사진에 그대로 나온 것(...) "물에 가려 있었고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너무나 (메시지가) 많이 와서..."라는 천연미 짙은 답변을 남기고 삭제하고 사죄하였다.
- 고양이 덕후로, 절친 시바타 카츠요리가 2017년 초 한 여성과 스캔들이 났을 때 상대 여성의 트위터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다 그 여성이 리트윗한 고양이 사진이 너무 귀여워 좋아요를 누른 것이 팬들에게 발견되어 팬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 이시이 토모히로가 헬스장 방문. 헬스장엔 신일본 동료들이 있었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서 런닝머신 뛰던 고토는 자신에게 아는 척조차 안하고 계속 런닝만 뛰고 있었다. '설마 무시하는 건가?'하는 마음으로 고토를 불렀는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시이씨 언제 오신거죠? 반갑습니다" 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시이는 자신이 온걸 진짜로 몰랐다는 것과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모를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고...
- 2020년 2월 6일 이시이 토모히로가 마사지를 받으러 신일본 트레이너실에 갔다가, 조금 있다가 들어온 고토와 트레이너의 대화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고토의 천연 기질이 건재함을 보여준다.
트레이너 : "아는 사람의 '''아버지'''가 올림픽의 유도 금메달리스트야."
고토 : "우와~ 쩌네요! 어느 올림픽때였죠?"
트레이너 : "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고토 : "헤에~ '''여성분인가요?'''"
이시이 & 트레이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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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혹 '고토 히로키'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신오오쿠보역(X) 신오쿠보역(O)의 케이스마냥 '오'부분이 장음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洋'자 바로 뒤의 '央'자의 독음이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것이며, 한글 표기 시 '오'자를 유지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이름 부분의 로마자 표기도 Hirooki, 즉 hiro-o-ki의 구성으로 분명히 '오' 부분을 명시하고 있다.[2] 같은 군단의 YOH와 생일이 같다.[3] 선배로 야마모토 나오후미(요시타츠)가 있었지만 신일본 입단은 똑같이 2002년에 해서 신일본 내에선 동기가 되었다.[4] 디스커스 래리어트. 다른 디스커스 래리어트 사용자들과는 달리 한 바퀴 도는건 장식에 불과하고 진짜는 그냥 래리어트보다 더욱 세게 휘두르는 팔인 것이 특징.[5] 코너 스피닝 힐 킥.[6] 개량형 후지와라 암바. 오른 다리로 상대의 한 팔을 엮고 쓰는 후지와라 암바로, 2019년 초에 오랜만에 봉인이 풀렸다.[7] 고토가 왼발잡이이기 때문에 다른 사용자들과 달리 왼발로 차는 것이 특징.[8] 파이어맨즈 캐리 넥브레이커. 상대를 파이어맨즈 캐리로 든 다음 다리 쪽을 내던지며 떨어트리면서 목 뒤를 무릎에 찍는 기술. 2007년에 경기 도중 이 기술로 스승 텐잔 히로요시에게 커리어에 치명적인 경추 부상을 입힌 적이 있는데, 텐잔의 맹우(猛牛)란 별칭에서 따와 이 기술에 소 죽이기, 즉 우시고로시(牛殺し)란 이름이 붙었다. 마카베 토우기가 가장 아팠던 기술 탑 3중에 2번째로 뽑은 적이 있을 정도로 보이는 것에 비해 아픈 기술로 꼽힌다.[9] 스피닝 헤드락 래리어트 인투 페이스 브레이커. GTR 개발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준 피니시 기술이며, GTR과 달리 뒷목을 래리어트로 때리면서 안면에 페이스 브레이커가 들어가는 형태가 됐다. 굳이 상대를 GTR과 비슷한 자세로 만들어놓고 피니셔인 GTR이 아닌 우라 GTR을 쓸 이유가 없어서인지 2019년즈음부턴 자신의 허벅지가 아니라 로프에 상대 두 다리를 걸어놓고 쓰는 일이 잦아졌다.[10] 파이어맨즈 캐리 드랍 인투 헤드락 엘보드랍. 간단히 말하자면 우시고로시 시전 도중 무릎으로 상대 목 뒤를 찍는 동작을 GTR로 바꾼 우시고로시 + GTR. G1 클라이맥스 29 제이 화이트전에서 처음 선보여 제이에게 승리를 거두는 일등공신이 되었고, 이후 제법 위상 높은 기술로 사용 중. 무엇의 약자인지는 GTR과 같이 역시 불명으로, 대립중이었던 타카기 신고는 "고토, 엄청나게, 제멋대로(後('''G''')藤、と('''T''')てつもなく、ワ('''W''')ガママ)"의 준말이 아니냐고 한 적이 있다.[11] 아발란체 레그 트랩 선셋 플립 파워 밤. 탑 로프 파워밤 준비자세에서 그대로 아래로 구르듯이 떨어지며 전방으로 한바퀴를 돌며 찍는 기술. 원래 고토가 주니어 헤비급이었던 시절에는 링 위에서 날렵하게 쓰던 피니쉬 무브였으나, 헤비급으로 몸을 불린 후 불가능하게 되자 아발란체(설붕)식으로 변경하였다. 기술 시전 자체는 다른 사용자들에 비해 느려도 자신과 상대의 하중이 모두 실린 채로 상대가 한바퀴 돌자마자 후두부를 찍히는 흉악한 묵직함이 장점이지만, 자신과 비슷한 몸무게의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시전해야 한다는 어려움 + 점점 들어가는 나이로 인하여 쓰는 것을 보기가 힘들어졌다.[12] 크로스 레그 크레이들. 상대 다리를 만(卍)자로 얽어매고 그대로 상대를 돌린 후 허리를 접어 몸무게로 누르는 핀 기술. 시전 시간이 길지만 고토의 핀 기술중 최고의 성공률을 자랑하며 그에 걸맞는 설득력을 보여준다.[13] 개량형 암 렌치 크레이들. 양 팔과 양 다리로 상대의 양 팔을 얽어매고 돌려 그대로 핀을 따내는 기술. 시간은 걸리지만 빠져나갈 방도가 없어보이는 강력한 핀 기술 고토 식과 달리 빠르게 쓸 수 있게 개량한 것이라지만 전혀 원조같은 위력을 찾아볼 수 없는 기술.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상당히 안 좋다.[14] 리스트 클러치 앵글 슬램. 왼손으로 상대의 왼 손목을 잡고 시전하는 앵글 슬램. 원래는 Go to Heaven이란 이름으로 주니어 헤비급 시절 회천과 병행하던 피니셔였다가 오랫동안 봉인해왔으나 2020년 G1 클라이맥스 30 KENTA 전에서 봉인을 풀었다.[15] 버티컬 수플렉스 싯아웃 사이드슬램. 상대를 버티컬 수플렉스 자세로 든 후 전방으로 회전시키면서 그대로 사이드슬램으로 찍는 기술. 그냥 승천과의 차이점은 무릎을 꿇으며 찍느냐 사이드슬램으로 찍느냐의 차이. 그냥 승천은 2006년부터 단 1년 사용 후 개량하였다. 난폭 무사의 별명에 걸맞는 호쾌한 기술로 고토의 대표적인 피니쉬 무브지만 헤비급으로써 그리 빅맨이 아닌 고토가 자신보다 키가 크거나 무거운 선수를 '''버티컬 수플렉스''' 자세로 들어올려야 하고, 특히 자신보다 키가 큰 선수가 회전 시 타이밍에 맞춰 다리를 접어줘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난점과 온갖 부상이 가득한 본인의 몸상태로 인해 GTR 개발 후로부터는 큰 경기에서만 나오는 진 피니셔가 되었다가 아예 기술 자체의 위상을 내려서 이제는 큰 경기에서 나오는 시그니쳐 무브로 쓰고 있다.[16] 스피닝 헤드락 래리어트 인투 백 브레이커. 인버티드 페이스록 자세에서 상대 목에 래리어트를 꽂으면서 한쪽 무릎에 상대를 박는 백 브레이커까지 가미하는 기술. 카오스 가입 후 개발한 기술로, 이전에 사용해 오던 다른 피니쉬 무브들보다 몸에 부담이 덜 가고 난이도도 비교적 쉽기 때문에 고토의 주력 피니쉬 무브가 되었다. 한때 이름의 유래가 'GoTo Revolution'이라고 알려졌으나 고토 본인이 딱히 정해진 의미는 없다고 부정하였다.[17] CHAOS에 가입하고 나서 앞에 '혼돈'을 붙였다.[18] 한동안 계속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던 고토를 까는 일본 현지에서 시작된 멸칭으로, 국내에서도 이 별명이 정착되었다.[19] 개선 귀국 이후 사용하던 테마곡[20] 패도. 2011년 CMLL 원정 도중부터 모든것을 리셋한다는 마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테마곡으로 고토 히로오키를 상징하는 테마곡이다.[21] 2008년 G1 클라이맥스 첫 출전 첫 우승이라는 대업을 거두고서부터 G1시즌만 되면 항상 써먹는 말. 정작 고토는 그 이후로 10년간 G1 클라이막스 우승을 못 하고 있으며, 첫 출전 첫 우승 외에는 2016년 준우승 한번을 빼면 아무런 기록도 없다. 오히려 뉴 재팬 컵 우승이 3번으로 '''단독 1위'''.[22] 나카무라 신스케, 타구치 류스케, 요시 타츠, 나가오 히로시와 입단 동기. 요시 타츠는 대학교 선배였지만 같이 입단하여 동기가 되었다.[23] 시바타 카츠요리와 멋진 라이벌리를 만든 한편 2013년 6월 22일 치른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13년 올해의 경기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2014년 11월 8일에 이시이 토모히로와 치른 경기는 2014년 올해의 경기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4년 2월 11일엔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오카다 카즈치카에게 도전해 4.75성을 받는 경기를 만들었다.[24] 2015년 5월 3일엔 나카무라 신스케를 이기고 IWGP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다시금 거머쥐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만세 삼창을 관객들에게 외치도록 유도하면서 단순하고 촌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등 챔피언 재임 기간 동안 색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해 결국 Destruction in Kobe 2015에서 데이브 멜처에게 4.5성을 받는 경기 끝에 나카무라 신스케에게 다시 타이틀을 뺏겼다.[25] 대표적으로 이노우에 와타루가 헤비급으로 전향했다가 부상 때문에 선수 경력을 완전히 망치고 은퇴해야 했다. 나이토 테츠야는 데뷔 전부터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있었는데 헤비급 전향 후 당한 무릎 부상 때문에 피지컬이 전성기보다 급감했다. 타카하시 유지로 또한 헤비급 전향 후 몸이 망가진 선수 중 한 명이다.[26] 폭포 수행 에피소드는 타이거 마스크 W 11화에서도 언급된다.[27] 사실 고토는 타이틀 매치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이부시의 의중을 떠보기 위하여 일부러 저렇게 말한 것이다. 타이틀 매치가 진짜 열리지 않을까봐 계속 말하고 있는 고토의 마이크를 이부시가 당황하여 바로 뺏는 장면이 묘미..(...) 이후 백스테이지 코멘트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부시도 타이틀 매치를 하고 싶었다더라.(...)[28] 그 와중에 어느 영어 못하는 레슬러에게 라 도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티셔츠 로고인 LA DOJO를 스페인어로 읽은 것. 타이치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