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후지 나오미치
1. 프로필
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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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ノアのジュニアは、
最強 です。"'''[20](NOAH의 주니어는, 최강입니다.)
일본의 현역 주니어 헤비급 프로레슬러. 소속은 프로레슬링 NOAH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프로레슬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세계적 수준의 천재 프로레슬러이자, 미사와 미츠하루의 수제자로 스승의 사망 후 침몰해가는 방주를 외로이 지키는 방주의 에이스이자 최후의 수호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질적으로 프로레슬링 NOAH의 중년가장.(마루후지를 보고 싶다면 NOAH로 와라!)
3. 경력
3.1. 데뷔 전 ~ 전일본 프로레슬링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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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형이 사온 주간 프로레스의 표지에 실렸던 로드 워리어즈를 보고 프로레슬링 팬이 되었고, 중학생 때부터 프로레슬러를 지망하게 되었다.[22] 중학교 2학년 때 진로 상담에서는 프로레슬러가 된다라며 고교 진학을 거부했지만, 부모로부터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하라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고교 시절에는[23] 아마추어 레슬링과 농구를 했으며, 인터하이 출전 경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사야마 사토루의 슈퍼 타이거 짐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던 도중 고2때 킹덤[24] 의 입문 시험에 합격했지만 단체가 1년만에 붕괴되어 입단이 좌절되었으나, 고 3때 지인이 당시 전일본 사장이였던 미사와 미츠하루와 아는 사이여서 소개를 해 준 것을 계기로 1주일 동안 도장에서 체험 훈련을 받은 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이 내정되어 졸업하자마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다.
입단 떄 부터 기대를 받아 입단 5개월 만인 1998년 8월 28일,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체육관에서 카네마루 요시노부와 데뷔전을 치르며 커리어를 시작했으며,[25] 그 후 우상인 미사와 미츠하루의 제자가 되어 심부름꾼을 맡으며 미사와의 스테이블인 언터쳐블 소속이 되어 활동하는 한편, 1999년엔 미치노쿠 프로레슬링[26] 에서 열린 식스 맨 태그 팀 매치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두러내기 시작했고,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2000년 3월에는 1년 후배이자 이후 숙명의 라이벌이 될 KENTA의 데뷔전 상대가 되기도 한다.
3.2. 프로레슬링 NOAH로의 이적과 WAVE시절 (2000~2002)
그렇게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KENTA와 함께 차세대 유망주로 키우던 전도유망한 선수였지만 2000년 7월, 1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벌어지자 스승 미사와 미츠하루를 따라 프로레슬링 NOAH로 이적하게 되었고, 미사와가 리더를 맡는 유닛 "WAVE"의 일원이 되었다. 2001년 12월 19일 아리아케 콜로세움 대회에서는 22세의 나이로 당시 ZERO-ONE 소속의 '초룡(超竜)' 타카이와 타츠히토(高岩竜一)[27] 에게 데이브 멜처에게 '''4.5성'''을 부여받는 명경기 끝에 승리를 거두며 제로원에 유출된 GHC 주니어 헤비급 왕좌를 탈환하고, 초신성의 탄생을 알리며 커리어 첫 타이틀을 획득한다.
2002년 1월 20일,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수신 선더 라이거#s-2와 다나카 미노루(田中稔)가 시찰차 프로레슬링 NOAH의 흥행을 보러 왔을 때,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경기 후에 '''"NOAH의 주니어는 최강입니다"''' 라고 NOAH 역사상 최고의 명언으로 이 둘을 도발하며 신일본과 대항전의 불씨를 당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3월에 왼쪽 무릎 인대를 다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4월 7일 하시 마코토과의 2차 방어전에 나섰다가 무릎 상태가 악화되어 레퍼리 스톱으로 패하고 그 해 말까지 장기결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3.3. 홀로서기의 시작과 KENTA와의 마루KEN 태그팀 (2002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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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직후인 2003년 1월, 미사와 미츠하루와 싱글매치를 치뤘지만 패배로 끝났다. 이후 WAVE를 탈퇴했고 미사와의 심부름꾼도 졸업한다. 그 직후부터 "하극상"를 기치로 역시 신진급인 '와일드 II'(모리시마 타케시 & 리키오우 타케시), 그리고 KENTA와 공동 투쟁을 시작하여 주니어의 몸 그대로 헤비급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정한다. 이 일환으로 2003년 4월 5일에는 아키야마 준(秋山準)[28] & 사이토 아키토시(齋藤彰俊)가 가지고 있던 GHC 태그 챔피언에도 모리시마 타케시와 함께 도전했지만 패배했다
그 해 7월에는 KENTA와 '마루KEN' 태그팀을 맺고 초대 GHC 주니어 헤비급 태그 챔피언 결승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이 둘은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현란한 공중기를 선보이고, KENTA가 특유의 살벌한 하드 히팅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조합으로 연전연승을 거듭한 끝에 7월 16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수신 선더 라이거 & 무라하마 타케히로 팀을 꺾고 '''초대 GHC 주니어 헤비급 태그 왕좌'''에 군림했다. 이후 '이케멘 태그'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여성팬들을 끌어오는 외모뿐만 아니라 경기력 또한 훌륭한 둘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이 둘을 주축으로 프로레슬링 NOAH에서 주니어 헤비급이 점차 두각을 보인다. 그래서 당시 프로레슬링 NOAH의 주니어 헤비급은 일본 최강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도쿄 스포츠 선정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최우수 태그상을 수상한다.
한편 2004년 9월 10일에는 판크라스 소속이던 스즈키 미노루와 맞붙어 비록 졌지만 스즈키 미노루에게 큰 호평을 받으며 또다른 태그팀을 결성했고, 2004년 10월 16일에는 아키야마 쥰이 창설해 보유 중이던 GHC 글로벌 하드코어 크라운 타이틀에 도전하여 링 아웃 승을 거두면서 제2대 챔피언에 오르며 개인 커리어도 충실히 쌓아나간다.
이후 마루KEN은 2년 가까이의 기간 동안 총 9번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주니어판 절대왕자"라는 극찬까지 받았으나, 2005년 6월 5일에 카네마루 요시노부 & 스기우라 타카시에게 패하며 왕좌에서 내려왔으며 팀은 분열, 둘은 라이벌이 되었다. 이후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스즈키 미노루와 팀으로 영국 모어캠에서 열린 'FWA 라이브 인 모어캠 - NOAH Limit'에서 스콜피오 & 덕 윌리엄스 팀에 승리하며 GHC 태그팀 챔피언을 차지한다. 그리고 KENTA는 카네마루 요시노부에게 승리하며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차지하며 마루후지와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3.4. KENTA와의 라이벌리와 NOAH 최초의 그랜드슬램 달성 (2005 ~ 2006)
2006년 1월 22일에 KENTA가 여전히 보유 중이던 GHC 주니어 헤비급 왕좌에 도전해 4.25성을 받는 명경기를 펼쳤으나 패했으며, 이후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본격적으로 헤비급을 뛰어넘기 위하여 헤비급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첫 시작으로 3월 5일 일본 무도관 대회에서는 전 전일본 사천왕 중 한 명이자 전 GHC 헤비급 챔피언인 타우에 아키라(田上明)와 싱글 매치를 치뤄 롤업기인 완벽 목 굳히기로 승리를 거두며 전일본 사천왕에게 첫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이 기세를 타고 4월 23일 무도관에서 코바시 켄타와 싱글 매치를 치뤘지만 코바시에게는 패배하였다.
이후 9월 9일에 아키야마 준에게 도전하여 완벽 목 굳히기로 승리를 거두며, 제10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되는 것과 동시에 '''프로레슬링 NOAH 창립 이후 사상 첫 그랜드슬램'''(GHC 헤비급 챔피언, GHC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GHC 태그 챔피언, GHC 주니어 태그 챔피언, 글로벌 하드코어 챔피언)을 달성했다.
이후 1월에 GHC 주니어 선수권에서 패한 후 타이틀이 없던 KENTA를 도전자로 지명하여 주니어 헤비급 선수 두 명이 프로레슬링 NOAH의 메인급이자 헤비급 타이틀을 걸고 대결하는 최초의 경기가 대진으로 잡힌다. 그리고 2006년 10월 29일의 경기를 치뤄, 두 번은 못 나올 인간도축기 나락식 팔콘 애로우 등 살벌한 기술들을 주고받으며 맨몸으로 하는 하드코어 경기가 어떤 것인가를 직접 보여주는 명경기를 펼친 끝에 최초로 공개한 폴 시프트로 1차 방어에 성공했다. 이 경기는 2006년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베스트 바웃에 선정되었으며, 데이브 멜처에게 4.75성을 부여받았다. GHC 헤비급 타이틀은 12월 10일까지 보유하다 3차 방어전에서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눈사태식 에메랄드 플로젼을 얻어맞고 패하여 빼앗기고 만다. 비록 해 마지막에 타이틀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2006년의 대약진을 바탕으로 닛칸 스포츠의 닛칸 배틀 대상에서 MVP, 연간최고시합상, 수훈상을 압도적인 지지로 수상하며 2006년이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해였음을 증명한다.
3.5. 스승의 죽음을 이겨내고 달성한 첫 일본 3대 단체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2007 ~ 2010)
2007년 전반기에는 프로레슬링 NOAH 선수로는 처음으로 DDT 프로레슬링에 참전한다. 그리고 TAKA 미치노쿠의 카이엔타이 도장 대회에도 참전하는 등 타 단체 원정을 다녔고 돌아온 이후엔 GHC 헤비급 챔피언 차기 도전자 결정 리그전에 참가하다 사이토 아키토시에게 한 번 패하긴 했지만 무사히 우승 결정전애에 진출하여 모리시마 타케시와 맞붙어 승리해 전년도 말부터 챔피언을 지켜오던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도전하게 되었다. 이윽고 2007년 9월 29일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 흥행에서 미사와와 타이틀 매치를 치뤘으나 변형 에메랄드 플로젼을 얻어맞고 또 다시 패배하고 만다.
GHC 헤비급 챔피언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0월 27일 무도관 대회에서 당시 NOAH에 참전한 TAKA 미치노쿠가 이끌고 있던 스테이블 RO&D의 딜로 브라운, 불 뷰캐넌이 가지고 있던 GHC 태그 챔피언에 스기우라 타카시와 도전하여 승리하며 제16대 GHC 태그 챔피언에 등극하며 해를 마무리한다. 이 타이틀은 해를 넘겨 2008년 5월 23일 니가타시 체육관에서 사이토 아키토시 & 바이슨 스미스에게 패배하며 넘겨주었다.
이윽고 9월 28일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히지카타 류지를 폴 쉬프트로 누르고 '''세계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을 획득했다. 한 달 뒤인 10월 27일에는 무도관 흥행에서 당시 GHC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이였던 KENTA와 서로의 타이틀을 걸고 더블 타이틀전을 벌였으나 60분 시간초과 무승부로 끝났고, 타이틀 변동은 없었다. 이 타이틀은 해를 넘겨 2009년 2월 6일 고라쿠엔 홀 흥행에서 카즈 하야시[29] 에게 패하며 넘겨주었다.
3월 11일 아리아케 대회에서 합체 파일 드라이버를 시전 도중 오른 무릎을 다쳤으며, 검사 결과 전방 십자 인대 파열로 판명되어 4월에 수술을 받으며 장기 결장에 들어가고 만다. 부상 결장 도중이던 6월 13일에 스승 미사와 미츠하루가 링 위에서 비극적인 사망을 맞이하자 곧바로 프로레슬링 NOAH의 부사장을 맡으며 단체를 다독이려 노력하였고, 본디 해 안에 복귀가 불가능한 수준이였음에도 탑 선수 부재에 시달리던 NOAH를 위해 12월 6일 '아오키 아츠시"섬광 열판 승부" 제9전'에서 아오키 아츠시를 상대하여 타이거 플로젼으로 승리하며 기어이 연말에 복귀한다.
이후 12월 23일, 자신이 프로듀스한 경기의 메인 이벤트에 출전한 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슈퍼 J 컵 5th에 출전한다. 노아의 경기와 J컵 결승전까지 3연전 총 4경기를 모두 승리하고, 대회 첫 2연패를 달성하며 1월 4일 도쿄 돔에서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십 도전권을 획득한다.
이윽고 2010년 1월 4일 신일본 레슬킹덤 IV에서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타이거 마스크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두며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탈취해서, '''사상 첫 일본 메이저 3단체(신일본, 전일본, NOAH)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을 모두 휩쓰는 쾌거를 이뤘다. 이 벨트는 6월 19일까지 5번의 방어전을 치루며 5달을 지켜오다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 흥행에서 프린스 데빗에게 눈사태식 블러디 선데이라는 극악기를 얻어맞고 핀폴패를 당하며 빼앗겼다.
3.6. 방주의 에이스이자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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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5일 DDT 프로레슬링의 료고쿠 국기관 대회에서 당시 DDT 소속이던 케니 오메가에게 턴버클 파워 밤을 잘못 맞고 경추 부상을 당해 G1 출장이 무산된다. 12월에 KENTA를 상대로 복귀하며 건재를 알리려 했으나 몸은 건재하지 않아서 이후 오른팔이 감각이 없어졌으며,[30] 설상가상으로 2011년 4월 17일 재발하여 7개월간 재결장, 총 1년여를 날려먹고 말았다. 11월 27일 스기우라 타카시를 상대로 다시 복귀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전해 디스트럭션 2012에선 타나하시 히로시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하거나, 킹 오브 프로레슬링 2013에서 나카무라 신스케의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에 도전해서 모두 패했지만 명경기를 만들었다. 또 2015년 2월 22일엔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CHAOS에 가입하는 등 프로레슬링 NOAH를 알리기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프로레슬링 NOAH에 침공한 스즈키군과의 투쟁에서 본인이 스즈키 미노루에게 패하며 GHC 헤비급 타이틀을 내주지만 같은 해인 2015년 NOAH의 마지막 흥행에서 NOAH의 존속을 걸고 스즈키를 이기며 다시금 타이틀을 탈환한다. 그리고 2016년 1월부터 선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프로레슬링 NOAH 부사장 자리에서 사임한다.
야노 토루와의 태그로 GHC 태그 타이틀을 차지하는 한편 G1 클라이맥스 26 개막전에서 CHAOS의 리더인 오카다 카즈치카를 이긴다. 이에 오카다 카즈치카의 지명을 받아 킹 오브 프로레슬링 2016에서 오카다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에메랄드 플로전에 이은 레인메이커를 맞고 패한다. 2017년엔 DDT 프로레슬링에서 DDT의 에이스인 HARASHIMA와 함께 KO-D 태그 타이틀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린다.
2018년엔 데뷔 20주년을 맞아 외부 활동을 더 활발히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할 것을 공표한다. 그래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리그전인 챔피언 카니발 2018에 참가해 미야하라 켄토를 이기고 우승한다.
이를 계기로 미야하라 켄토에게 도전해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경기를 가지지만 패한다. 그리고 2018년 9월 1일에 본인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흥행인 '비상'에 이타미 히데오를 초빙해 메인이벤트에서 명승부를 만들고 승리한다.마지막으로 우승했으니 이 정도는 말하게 해주십시오. 모두들 NOAH도 보러와줘. 고맙다. #
부상 때문에 잠시 공백을 갖다가 2019년 2월 1일에 복귀해 GHC 헤비급 챔피언인 키요미야 카이토에게 도전한다. 전초전에선 퍼펙트 키 록으로 키요미야 카이토에게 직접 탭아웃을 받아냈지만 3월 10일의 GHC 헤비급 타이틀전에선 패한다.
4. 여담
- 4형제 중 막내이며, 둘째 형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SATELIGHT(사테라이트)에서 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마루후지 히로타카(丸藤 広貴)로 마크로스 프론티어, 마크로스 프론티어 거짓의 가희의 작화감독, 작화 부문에서 대 호평을 받으며 2011년 애니메이션 고베 작품상 극장 부문을 수상한 마크로스 프론티어 작별의 날개의 총작화감독을 맡으며 마크로스 신화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포켓몬스터 극장판 모두의 이야기 총작화감독을 담당하였고 또한 아쿠에리온 EVOL 등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업계의 베테랑. 마루후지 나오미치 특유의 화려한 경기복들의 디자인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2012년 9월 마크로스 원화가 싸인회 당시 작품 모음.
- 프로레슬러인 자신과 애니메이터인 둘째 형을 포함하여 4형제 중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 어릴 때부터 취미는 그림 그리기이며, 형을 닮아서인지 실력도 상당하다. 은퇴 후에는 산 속에서 그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힌 바가 있다.
- 2005년 25세에 22세의 아내와 일찌감치 결혼한 유부남이다.
- 한편 2014년 8월에는 은퇴 후의 삶을 위해 본인이 사장인 회사 '큐리오 시프트'를 설립하여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에 '시라누이 카레 City's Bar'를 오픈하였다. 처음에는 후원자가 경영하는 바를 낮에만 빌려썼지만 이후 경영진에 참여하며 가게를 얻어 '시라누이 카레 그리돌즈 바 Tokyo 아카쿠라'라는 상호로 영업 중. 위치는 도쿄메트로 치요다선 아카사카역 부근으로, 구글 지도에 赤坂6丁目11−13赤坂鏡ビルB1F로 검색하면 나온다. 하라주쿠역에서 치요다선으로 환승하면 금방 접근 가능. 자신이 제 1오너인 '머슬 그릴 도쿄'도 2018년 10월 고탄다에 오픈. 위치는 야마노테선 고탄다역 부근인 東五反田3-17-14.
- 상당한 애주가로 유명하다.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소문난 주당인 그 야노 토루와 페이스를 맞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주당으로 야노 토루에게 인정받았으며, 둘이 같이 하루 걸러 경기 하나 있는 것으로 유명한 G1 예선전 기간 동안에도 매일같이 퍼마시고 다음 날 멀쩡히 출장했다고 한다. 주 종목은 레드와인과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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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에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새롭게 꺼내든 기믹으로, 얼굴에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그레이트 무타처럼 독무 공격을 사용한다. 그레이트 무타와 함께 태그 파트너로 활동.[2] 출생 당시에는 사이타마 현 키타아다치군(北足立郡) 후키아게마치(吹上町)였다. 2005년에 코노스 시로 편입.[3] 일본의 애니메이터. 마루후지 4형제중 둘째로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테라이트 소속의 총작화감독급 베테랑 애니메이터이며, 마크로스 시리즈의 원화가 중 한명으로도 유명하다.[4]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2014년부터로 경추 부상 때문에 오른쪽 팔에 감각이 없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 팔에 힘을 빼고 마치 채찍처럼 후려치는데, 진짜 쇠 채찍을 맞은 것 마냥 엄청난 소리가 나고 그 위력 또한 엄청나서 웬만한 상대들은 한 대 맞고 절로 움츠러들 정도이며, 스기우라 타카시의 가슴을 '''진짜로 찢어버린''' 적이 있을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자랑한다.[5] 사실 팔을 ㄴ자로 만든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목을 타점으로 삼는 래리어트에 가깝지만, 이를 엑스 봄버라 우기는 대표 주자 중 한 명(...)이다. 래리어트를 주력으로 삼을만한 체구가 아니라는 근본적인 단점이 있지만 이를 상대와 로프반동 공방을 펼치다가 로프 반동하는 상대의 직각 방향에서 로프 반동 후 엑스 봄버를 휘갈기는, 전세계 프로레슬링에 큰 영향을 끼친 특유의 로프 워크로 자신의 상징기 중 하나로 만들었다.[6] 코너에 있는 상대에게 점프하여 꽂는 점핑 백 핸드 엘보로, 전성기 때에는 거의 링 중앙에서 날아가 코너의 상대에게 시전하는 놀라운 신체능력을 보여주었다. 전일본의 신예시절 자이언트 바바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기술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7] 임팩트 순간에 다리를 접어 차는 슈퍼킥. 토라스 킥을 가장 잘 차는 선수 중 하나로 꼽히며, 176cm의 작은 키에도 한 손을 땅에 짚으면서 자신보다 20cm 가까이 큰 선수의 안면에 깔끔하게 꽂아넣는 유연성을 자랑한다. 상대를 수플렉스 들듯이 살짝 들었다 놓고 바로 기습적으로 들어가는 방식, 이름(토라스=쓰러스트)답게 상대의 뒤에서 상대의 앞목을 노리고 차는 방식 등 온갖 상황에서 셀 수 없는 방법으로 우겨넣는 천재성을 보여준다.[8] 주로 한 손을 땅에 짚으며 뒤돌며 차는 방식으로 사용한다.[9] 코스트 투 코스트. 상대를 밖으로 내보내놓고 자신이 먼저 들어와있는 상황에서 상대가 들어오려 하는 순간 탑로프로 올라가 미사일 드롭킥을 사용하는 기술로, 거의 링 반대편에 있는 상대의 머리까지 닿는 어마어마한 점프력을 자랑한다.[10] 바이시클 니. 2012년부터 쓰기 시작한 기술로, 주 타점이 턱인데다 경량급임에도 차는 순간의 임팩트가 좋아 다른 중량급 바이시클 니 사용자들이랑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위력을 보여준다. 준피니셔 급의 기술로 폴 시프트식 에메랄드 플로젼의 셋업기로도 쓴다. 이름의 유래는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좋아하는 만화 아랑전에서 나온 타케미야류의 오의 기술 호왕.[11] Pole Shift. 변형 피셔맨즈 싯아웃 드라이버. 상대를 피셔맨 수플렉스 자세로 들어올린 후 양 다리를 벌린 채로 주저앉으며 상대를 가랑이 사이의 매트로 쳐박는 싯아웃 드라이버, 즉 미치노쿠 드라이버II의 형태로 떨구는 기술이다. 2006년에 KENTA와 펼쳤던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 때 처음 선보여 승리를 따낸 기술이지만 타이거 플로젼과 폴 시프트식 에메랄드 플로젼 개발 이후론 잘 사용하지 않는다. 뜻은 '지축 이동'.[12] 상대를 앉혀놓고 상대의 정면에서 한 팔과 목을 엮어 조이는 페이스록.[13] 더블 언더훅 싯아웃 사이드 파워슬램. 타이거 드라이버의 시작자세인 더블 언더훅 자세에서 그대로 들어올려 에메랄드 플로젼 식으로 찍는 기술이다. 스승 미사와 미츠하루의 대표 피니쉬 무브 두 가지를 조합해서 만든 기술로,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승리하기 위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14] 2000년 프로레슬링 NOAH 창단시부터 사용하던 유서깊은 피니쉬 무브. 이 기술의 가장 유명한 사용자이기도 하며, 천재의 명성에 걸맞게 설붕식, 에이프런식, 철책을 이용한 장외식, 리스트 클러치식, 코리엔더식 등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피니셔보다는 시그니쳐 무브로 쓰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봤던 만화책(이름은 불명)에서 나온 요도 시라누이.[15] 탑 로프 스패니시 플라이. 접수자의 역량을 많이 타는 기술이라 헤비급으로 간 이후 받아줄 사람이 잘 없는데다가 근본적으로 시라누이보다 더한 무릎 자폭기이기 때문에 큰 경기 이외엔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2008년 2월 3일에 ROH의 터줏대감 브리스코 형제와의 대결에서 브리스코 브라더스의 피니시 무브인 스프링보드 둠스데이 디바이스를 당하는 순간에 뒤집으며 마크 브리스코에게 이 기술을 시전하여 승리를 따낸 장면은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16] 롤링 인버티드 키 락[17] 피셔맨 수플렉스 인투 싯아웃 사이드 파워슬램. 피셔맨 수플렉스 시전 자세에서 상대를 오른쪽으로 옮겨잡은 후 에메랄드 플로젼을 먹이는 기술이다. 2014년 6월 13일, 미사와 미츠하루 메모리얼 나이트 대회에서 사이토 아키토시를 상대로 처음 공개하였으며, TV 출연 당시 '사실은 폴 시프트를 쓰려고 했지만 사이토 씨를 들어올릴 수 없었기에(프로필상 체중 123Kg) 그런 형태가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이름은 딱히 정하지 않았지만 큰 경기를 마무리짓는 주 피니쉬 무브가 되어 2014년 7월 5일에 나가타 유지에게 이 기술로 승리하여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유출된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왔다. 또 2016년 신일본의 G1 클라이맥스 26 개막전 메인 이벤트였던 vs 오카다 카즈치카전에서도 이 기술로 경기를 마무리한 바 있다.[18] 2020년 7월에 개발한 새로운 피니셔로, 상대를 수그리게 한 상태에서 팔을 잡아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한 다음 측두부에 호왕을 먹이는 기술. 마루후지는 이 기술이라면 2m, 3m, 4m인 외국인 선수에게도 일본인 선수에게도 이길 수 있을거라고 말하면서 개발 이후로 주 피니셔로 쓰고 있다.[19] 제목과 곡의 흐름은 동일하지만 디테일적으로 차이가 있는 구버전으로, 2000년에 잠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20] 2002년 1월 20일 새파란 신진급이었던 마루후지가 타나카 미노루와 신일본 주니어의 상징 수신 선더 라이거에게 당차게 내뱉은 말로, 프로레슬링 노아 사상 최고의 명언으로 꼽히는 말. 실제로 당시 노아에는 본인을 포함하여 카네마루 요시노부, 오가와 요시나리, KENTA 등 주니어 헤비웨이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주니어 헤비웨이트급 레슬러들이 즐비했고, 이후에도 스즈키 코타로, 이시모리 타이지 등의 걸출한 레슬러들이 나왔으며, 훗날 헤비급으로 전향해 노아의 핵심 선수가 되는 스기우라 타카시와 나카지마 카즈히코 또한 NOAH에서 주니어 헤비급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등 노아의 주니어 헤비급은 최강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미사와 미츠하루의 뒤를 이을 헤비급 에이스 발굴의 연이은 실패로 인해 역설적으로 주니어급'''만''' 뛰어난 상태가 상태가 되어버린 노아의 상태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고 말았다.[21] 마루후지의 노아에 대한 사랑과 노아를 되살리려는 열의가 느껴지는 마루후지의 트위터와 인스타의 고정 해시태그이다.[22]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나중에 "달리 되고 싶은 직업도 없었고, 머릿속엔 프로레슬링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는 전일본 사천왕(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과 투혼삼총사(무토 케이지, 하시모토 신야, 쵸노 마사히로) 시대.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습니다. 신일본도 저녁에 방영되고 있었고, 전일본도 텔레비 사이타마에서는 오후 6시에 재방송이 있었고요. 그 중에서도 미사와 씨와 무토 씨는 스타일적으로 제가 목표로 삼은 사람으로, 저런 프로레슬러가 되었으면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23] 1년 선배로는 유도부 소속이던 사이타마현 사야마시의 현역 시의원인 '1인 신센구미' 히지카타 류지(土方隆司)가 있고, 레슬링부 동기로는 부상으로 프로레슬러 데뷔를 포기한 신일본 메디컬 트레이너 니이지마 에이이치로가 있다.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데뷔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니이지마 에이이치로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밝힌 적도 있다.[24] UFC식 실전 룰을 지향하던 단체. 당시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종합격투기에도 관심이 있어 입단 시험을 보았다.[25] 일본 프로레슬링 계에서 신인들은 기본기 밖에 쓸 수 없으나, 당시 단체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스승 미사와 미츠하루의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봐라"라는 조언 겸 강력한 허락에 힘입어 데뷔전 때부터 공중기를 사용하는,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경기를 보여준다.[26] TAKA 미치노쿠의 스승이기도 한 일본 주니어 헤비급의 전설 '더 그레이트 사스케'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세운 단체.[27] 주니어 헤비급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어마무지한 파워를 자랑하는 재일교포 프로레슬러.[28] 익스플로이더의 창시자로 유명한 전일본 5강 중 한 명. 2013년부터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29]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주니어 헤비급의 상징인 선수. WCW에서 뛴 적도 있었다. 카즈 하야시는 이때 얻은 타이틀을 2011년 1월까지 '''17번'''을 방어하며 후치 마사노부의 14번을 뛰어넘어 역대 전일본 세계 주니어 타이틀 최다 방어기록을 세운다.[30] 이후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오른팔에 항상 서포터를 달고 출전한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