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노 마사히로
1. 프로필
2. 소개
'''"I'm Chono!"'''[11]
일본의 프로레슬러.'''"
俺 がG1男 の蝶野 だ!よく覚 えておけよ、オラ!"
(내가 G1의 사나이, 쵸노다! 잘 기억해둬라, 어!)'''[12]
1984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정식 데뷔하여, 2010년에 프리 선언을 한 뒤 은퇴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2014년 4월 13일 이후론 경기를 뛰지 않는다. 투혼삼총사의 일원으로 무토 케이지가 화려한 천재, 하시모토 신야가 강력한 파괴력을 어필한다면 쵸노 마사히로는 가장 강렬한 악역의 이미지를 가진 선수이다. 야쿠자를 방불케 하는 외모에다가 상대의 안면을 차는 '켄카 킥'이 주 기술이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거친 경기방식, 그리고 최고 수준의 접수 능력을 가졌다.
3. 커리어
무토 케이지와 함께 데뷔하였으며, 데뷔전 또한 이 두 사람의 싱글매치였다. 이 경기에서 무토 케이지에게 패배한 이후, 때론 반목하면서도 때론 협력하는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투혼 삼총사 내부에서도 손꼽히는 흥행 카드로 자리잡는다. 1988년에 정식으로 투혼삼총사를 결성한 이후 미국과 일본을 활발히 오가며 커리어를 쌓게 된다. 그러나 1990년에 당시 "스터닝"이라는 별칭을 사용하던 스티브 오스틴의 파일 드라이버를 잘못 맞아 목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게 되며, 이후 고질적인 목 부상으로 고생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스티브 오스틴 역시 오웬 하트의 파일 드라이버를 잘못 맞고 목이 부러져 커리어 내내 목 부상으로 고생한다.
1991년에 개최된 최초의 G1 클라이맥스에서 무토 케이지를 이기고 우승했다. 1992년 8월 12일엔 릭 루드를 이기고 G1 클라이맥스에서 우승한 동시에 특전으로 공석이던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데뷔 후 파이트 스타일은 오소독스한 편이었으나, 1994년에 G1 클라이맥스에서 우승한 후 테마곡과 경기복을 바꾸고 턴 힐을 하면서 파이트 스타일을 바꾼다. 1995년에는 텐잔 히로요시, 히로 사이토와 악역군단 '''늑대 군단(狼群団)'''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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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는 WCW에서 nWo에 가입하고, 이후 그 컨셉을 그대로 들고와 신일본 프로레슬링 내에서 '''nWo Japan'''이라는 스테이블을 만든다. 이때가 쵸노 마사히로의 리즈시절로,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에 검은 스프레이로 nWo를 그리고 나오는 등 똘끼 넘치는 행동으로 카리스마를 어필했다.
nWo JAPAN은 일본에서 사회적인 현상이 되는데 1997년에 nWo JAPAN T셔츠의 매상만 '''6억엔'''이었고, 신일본 프로레슬링도 이 해에 '''일본 오락부분 법인 소득 순위 85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이에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위상은 일본 내 어떠한 단체도 넘볼 수 없을 만큼의 위치로 오르게 된다. 무토 케이지와 쵸노 마사히로가 한 팀에 속하고 든든한 2진급 멤버로 텐잔 히로요시가 버텨준 덕이다. 텐잔 히로요시는 쵸노 마사히로와 함께 IWGP 태그 타이틀 판도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무토 케이지는 싱글매치에서 맹활약했다. 이후 쵸노 마사히로의 부상으로 리더가 된 무토 케이지와 부상 이후 돌아온 쵸노의 알력 다툼이라는 컨셉으로 쵸노의 TEAM 2000 대 무토의 nWo JAPAN의 구도가 형성되어 항쟁을 벌인다. nWo JAPAN은 2000년대 초반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스테이블 구성에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역사다.
1997년에는 일본 연간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98년에는 후지나미 타츠미를 꺾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하지만 목 부상의 재발로인해 방어전조차 갖지 못하고 타이틀을 반납한다. 무토 케이지와 하시모토 신야가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노키즘에 반발해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탈퇴했을 때 신일본의 현장 감독을 맡는데, 팬들은 쵸노 마사히로가 신일본의 암흑기에 있어주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신일본은 망했을 것이라고 평한다.
이노키즘 때문에 격투가들이 지배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링에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13] 를 초빙해 상대하며 프로레슬링으로 명승부를 만들었다. 또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대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선수들의 경기를 신일본의 링 위에 올렸다. 한편 안토니오 이노키가 사위인 사이먼 이노키의 요청대로 쟈니 로라를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링 위에 올려 게도와 엘 사무라이가 쟈니 로라와의 싱글매치에서 급소차기를 맞고 KO 당하는 굴욕을 겪게 되자 후배들의 격을 지켜주고, 일정 수준의 경기를 링 위에 올리고자 본인이 직접 쟈니 로라를 상대하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마카베 토우기 같이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힘을 낼 수 있게 격려를 해주는 등 링 위의 기믹과 달리 인망이 높다.
초대 G1 클라이맥스 우승, 1회와 2회 대회 우승으로 2연속 G1 클라이맥스 우승, 다섯번으로 G1 클라이맥스 최다 우승의 기록을 가진 사나이답게 기량이 무뎌진 2000년대에도 G1 클라이맥스 시즌에 좋은 수준의 경기를 만들곤 했다. 선수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후엔 G1 클라이맥스 결승전 등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중요한 경기 때 스페셜 게스트로 중계석에 참가한다.
4. 기술
특징적인 기술로는 켄카 킥이 있다. 한 발을 높게 들어올려 발바닥으로 상대의 얼굴을 차는 기술로, 빅 붓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몸을 살짝 틀면서 박력있게 차는 모션이기 때문에 별개의 기술로 친다. 원래는 야쿠자 킥이라고 칭했으나, TV 중계에서 부르기에는 불편한 이름이라고 해서 바뀌었다고 한다. 북미에서는 처음 명칭대로 야쿠자 킥으로 부른다. 쵸노 마사히로의 영향으로 MVP 등의 프로레슬러들이 켄카 킥을 응용해 사용한다.
필살기로는 샤이닝 켄카 킥이라는, '''다분히 무토 케이지를 의식한''' 켄카 킥의 변종도 있다. 무토 케이지의 샤이닝 위저드에서 무릎으로 차는 대신 켄카 킥으로 차는 버전으로, 무토와의 결전을 앞두고 신무기를 공개하겠다고 한 이후 경기에서 공개했다. 또 루 테즈의 도장에서 원형을 배운 STF를 자신만의 어레인지 모션으로 개량해 사용했고, 그 모션은 현대 프로레슬링의 기본적인 STF 모션이 된다.
STF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칭호가 붙었는데, STF를 누구나 쓰면서 기본기가 될 조짐이 보이자 다리를 교차시켜 고정시키는 크로스식 STF, 페이스락을 슬리퍼 홀드로 바꾼 '''STS''', STF를 건 후 몸을 뒤집는 FTS 등 갖가지 변종을 만들었다. 그리고 루 테즈가 사용하던 방식은 원조 STF라는 이름으로 가끔 사용한다.
5. 경기 스타일
경기 스타일 자체는 매우 수수한 편이며, 켄카 킥 말고는 멋진 기술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래식한 스타일로 얼마든지 명경기를 만들어내며, 커리어 전반적으론 힐(악역)이기 때문에 화려한 기술을 배제하여 선역을 돋보이게 하면서 확실한 낙법 등으로 깔끔하게 기술을 받아주는 데 특화된 선수다. 쌓인 연륜과 탁월한 카리스마로도 링 위에서 관중들을 휘어잡는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유연성 및 순발력에다가 잘생긴 외모까지 가졌던 무토 케이지에 비해서 쵸노 마사히로는 유연성도 없었고, 그렇다고 체격이 엄청 큰 것도 아니었으며, 타고난 건 거의 없는 평범한 프로레슬러였다. 미친 존재감을 가진 전성기의 외모와는 달리 초기엔 그냥 덩치 좀 있는 젊은이같은 인상인지라 무토 케이지보다 푸쉬가 늦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과 자기개발로 정상급 프로레슬러가 된 케이스다. 주어진 여건 내에서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기술 쪽으로 집중연마한 끝에 힐 계열 기술과 STF 계열의 서브미션을 극한까지 발전시켜 자기만의 필살기로 만들어냈다.
6. 프로레슬링 외적인 활동
전국시대에서 갑옷을 입고 프로레슬링으로 싸우는 만화인 백병무자의 원안을 쓴 적이 있는데 주인공의 모델이 자기 자신이다.
가키노츠카이에 가끔씩 출연하여 츠키테이 호세이를 포함한 사람들의 뺨을 때리는 역할을 하는데 쵸노 마사히로의 희생자인 다운타운의 마츠모토 히토시, 하마다 마사토시와 동갑이다.[14] 가장 유명한 건 절대 웃으면 안 되는 시리즈로 병원 편이 방영된 '''2007년'''부터 2017년 과학박사 편 그리고 2021년 카지노편까지 계속 출연하면서 거침없이 싸대기를 때린다. 츠키테이 호세 본인도 언젠가부터 단념했는데 현재가 2021년이니까 무려 14년간을 매년마다 꾸준히 맞고있다(...).[15] 쵸노 본인 자체도 한번은 웃긴지 츠키테이 호세이의 재판편 마지막에 나와 츠키테이를 때렸을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종종 그 외에도 인지도가 높은지라 간간히 일본 예능의 패널로 나온다. 2017년 1월부터는 도쿄 MX의 밤 9시대 와이드쇼 프로그램 MC를 맡고 있다.
2017년 8월에 '日野皓正 presents "Jazz for Kids'의 히노 테루마사라는 연주자가 중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성과를 발표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드럼을 담당하는 남학생이 드럼을 멋대로 쳐서 이벤트 진행을 방해하자 그 남학생의 따귀를 때린 것이 이슈가 되었다. 이에 다시는 따귀를 안 때린다는 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츠키테이 호세이가 이곳저곳에 올해는 따귀를 안 맞는다고 자랑하고 다녔고, 실제로 따귀 머신으로 대체가 되는가 싶더니 쵸노 마사히로가 난입해서 립 서비스라고 일축하고 호세이의 따귀를 때렸다.
NMB48의 가위바위보 대회 예선에서 후견인으로 참여하며 놀랍게도 아빠 미소를 선보였다. 대괴수배틀 울트라 은하전설 THE MOVIE에서는 레이블러드 성인 역(목소리 출연)을 맡았다.
구급 구명 운동법을 알리는 활동도 병행하는데 갑작스럽게 사망한 동기인 하시모토 신야, 프로레슬링 NOAH의 흥행 중 단 한 번의 접수 실수로 사망한 미사와 미츠하루의 죽음을 보고, 응급 구조의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용과 같이: 극 2에서는 무토 케이지, 텐류 겐이치로, 초슈 리키, 후지나미 타츠미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한다. 설정상 무토 부동산의 대표이사인 무토 케이지와 협력 관계인 갱단 컬러즈의 수장으로서 마지마 고로의 마지마 건설과 격돌한다. 게임 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투기장에서 대결도 가능하다.
7. 여담
- 보통 선글라스로 감추고 있지만 눈이 작고 상당히 초롱초롱한 편에 속한다.
- 전 세계를 호령한 프로레슬링 레전드 중의 레전드, '철인' 루 테즈의 마지막 시합 상대이며, 1990년 12월 26일 하마마츠 아레나에서 73세의 루 테즈와 싱글매치를 치뤘다. 5분여만에 쵸노가 STF로 승리를 거뒀는데 노장 루 테즈는 이 경기 도중에 둔부를 부상당했고, 이 5분 동안의 경기에 '납득이 가지 않아'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 링 위의 거친 악의 총수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면모가 있는데, 40세가 넘어서까지 부모님을 파파, 마마[16] 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그만뒀다고...
- 아내가 독일인으로, 영 라이온 프로젝트 우승 이후 해외무사수련을 떠났다가 마지막으로 독일 단체들에 참전하던 도중 서독(당시 분단 중) 브레멘에서 만났다. 금슬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며, 아내가 쵸노의 지금의 기믹의 본바탕이 된 악역으로서의 첫 링기어를 선보이던 매치에 쓰인 검은 롱 코트를 직접 만들어주는 등 '검은 카리스마' 캐릭터에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 1999년 12월에는 아내와 함께 스트리트 포멀 패션 브랜드 "ARISTRIST"(아리스토 리스트)를 설립하여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매장은 도쿄도 주오구 긴자에 있으며, 주소는 東京都中央区銀座四丁目1-2로 도쿄메트로 긴자역과 히가시긴자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 금슬이 정말 좋은 것과는 별개로 결혼 15년차까지 자식이 안 생겨 2세 계획을 반쯤 포기하고 있다가 결혼 15년만인 2006년 42세에 금쪽같은 늦둥이 첫아들을 얻었고, 3년 후인 45세에 첫딸까지 얻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게 되었다.
- 그동안 아내가 외국인이라는것만 알려졌었는데 2021년 가키노츠카이 웃으면 안되는 스페셜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이 싸대기 때리려는 개그맨을 두고 확실하게 때리라며(...) 큰소리를 치는데 영락없이 그 남편의 그 집사람...
-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처음으로 오니타 아츠시와 노 로프 가시철선 전류 폭파 매치[17] 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노 로프 가시철선 전류 폭파 매치에는 부정적이여서 2000년에 초슈 리키가 후쿠다 마사카즈의 죽음을 계기로 노 로프 가시철선 전류 폭파 매치로 현역 복귀했을 때 "저런 것은 레슬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초슈가) 현역에 복귀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라고 해설석에서 말한 적이 있다.
7.1. 걸즈 앤 판처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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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왼쪽에 서 있는 남자가 쵸노 마사히로. 제일 오른쪽은 애니메이션 오프닝과 극장판 엔딩을 불렀던 가수 Choucho. 사진 출처
걸즈 앤 판처의 홍보대사로 유명하다. 2015년 7월, 오아라이에서 열린 월간 행사에 게스트로 참가해 사인회를 열었을 당시 현지에 있던 애니메이션 관계자와 접촉해 자신의 성과 똑같은 성을 가진 캐릭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18] 마침 금쪽같은 딸이 걸즈 앤 판처의 팬이었던지라 애니메이션 전편을 같이 본 뒤 팬이 되었으며, 그 해 11월에 열린 오아라이 아귀 축제에 게스트로 참가하며 홍보대사가 되었다.
이 때문에 2015년에 본인이 직접 '초중전차 마우스'라는 곡을 불렀다. 본 곡은 2015년 12월 2일에 발매된 싱글 앨범인 TANSON에 수록되었으며 본 싱글에는 카게야마 히로노부, 엔도 마사아키, 미야우치 타카유키, 야마가타 유키오도 참가했다. 쵸노 마사히로를 빼면 전부 이름 있는 애니송 가수들인데다 슈퍼전대 시리즈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들이다.[19] 이전에도 1999년에 쵸노 마사히로가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가하면서 쵸노 본인의 명의가 들어간 음반이 나온 적 있다.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동안 후지테레비에서 마츠코 디럭스가 진행하는 토크쇼인 アウト×デラックス에서는 전차보다 캐릭터들이 더 좋다는 게 들키거나, 배구부의 사사키 아케비를 좋아한다고 말한다거나,[20]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날아라 호빵맨으로 화제를 바꿔서 식빵맨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등 링 위에서 알려져 있던 극악한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갭 모에를 발산한다.
8. 둘러보기
[1] 큰 제지회사의 직원이었던 아버지의 부임지가 시애틀이었고, 그 곳에서 태어나 2년 반을 지낸 후 귀국했다.[2] 미국에서 귀국한 다음 처음엔 시부야구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미타카시로 이사갔다. 쵸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출신지를 미타카시로 표기. 현 거주지는 요코하마시.[3] 일본의 영화감독. 쵸노의 작은아버지의 아들. 영화 未来予想図 〜ア・イ・シ・テ・ルのサイン〜(한국 개봉명 미래예상도#s-3)의 감독을 맡았다.[4] G1을 세 번 제패하며 하얀 바지의 선역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을 때의 별명. 악역 전환 후에는 이 별명도 극'''악'''(極悪) 버터플라이로 바뀌었다.[5] G1 클라이맥스 초대 대회를 시작으로 총 5회의 G1 우승을 이뤄낸 G1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으며, 쵸노의 G1 5회 우승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6] 정규군의 에이스급 선수였던 정통파 선역 레슬러, '극상 버터플라이' 시절의 쵸노를 대표하는 테마곡. '시로쵸노'(하얀 쵸노)의 테마곡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하다.[7] 원본보다 템포가 느려진게 가장 큰 특징. 1994년 G1까지 사용했다.[8] CRASH~전율~. 쵸노 마사히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테마곡. 덴마크의 메탈 밴드 로얄 헌트의 곡인 Martial Arts를 약간 편곡한 곡으로, 1994년 9월 19일 악역 쵸노 마사히로의 첫 선을 보인 '북두의 유성' 하세 히로시와의 경기부터 쓰기 시작했다. 전주 부분의 가사는 "Damn, I would have never thought it ever would have been like this. '''Fuck you all niggaz wanna do!'''"[9] 25주년 기념 료고쿠대회때 첫 선을 보인 테마곡으로, 쵸노 본인이 작사와 보컬을 담당했다.[10] 무토 케이지도 이 경기가 데뷔전이었다.[11] 마이크워크로 어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12] 1994년 8월 G1 클라이맥스 3번째 제패를 이룩하고 외친 말. 이후 쵸노는 팬을 향해 중지를 두 번이나 날리고 우승 상금 판넬을 집어던지는 충격적인 행동을 보여주며 턴힐의 초석을 보였고, 이후 이 행동은 단순한 힐 전향이 아니고 신일본을 상대로 혼자서 싸움을 걸었다는 의미에서 '무투파 선언(武闘派宣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13] 2000년대 초반의 프로레슬링 NOAH는 성황리에 흥행을 열던 상황이었고, 안토니오 이노키를 불신했기 때문에 미사와 미츠하루와 코바시 켄타는 원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쵸노 마사히로라면 믿을 수 있다면서 쵸노와의 싱글 매치로 신일본에 출전한다. 그래서 쵸노 마사히로는 미사와 미츠하루와의 경기에서 30분 시간 초과 무승부를 기록한 후 프로레슬링 NOAH에 출전했으며,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코바시 켄타에게 도전한 경기에서는 패배하며 믿음에 보답했다. 프로레슬링 NOAH도 신일본의 암흑기 때 호의를 베푼 덕에, 200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에 들어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망까지 겹치게 되었을 때, 2016년 말까지 지속적인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교류로 도움을 받게 된다.[14] 근데 둘은 딱히 쵸노 마사히로에게 뺨을 맞진 않았다. 희생자는 다나카와 야마사키 둘뿐 그중 야마사키는 정말 매년마다 맞는다...[15] 매 회마다 궁지에 몰린 호세이가 겁에 질려 발악에 가까운 리액션을 해대는데 이걸 매년마다 봐도 웃기니 아예 제작진은 그냥 전통으로 자리잡고 그것도 가장 사람들이 많이 볼 시간대인 후반에 항상 맞게한다(...) 츠키테이 호세이도 이왕 맞는거 제대로 해보잔 생각인지 매년마다 그 리액션과 맞고나서의 포즈도 어레인지를 하는편... 이게 얼마나 시청자들한테 인기가 많냐면 우주방위군 편에선 초반에 한번 후반부에 한번 맞게했고(...) 하이스쿨편에선 타임슬립을 했다는 설정까지 구겨넣으며 에도시대 복장을 한채로 뺨을 때렸다.[16] 일본에선 보통 미취학생, 넓게 봐줘도 초등학생이 쓰는 말이다(...)[17] 1999년 4월 10일의 도쿄 돔 대회.[18] 쵸노란 성 자체가 일본 전국 9000위대 약 900명정도만 가지고 있는 드문 성씨이다.[19] 미야우치 타카유키는 바이오맨을,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체인지맨, 마스크맨, 제트맨의 주제가에다 허리케인저의 엔딩곡을 불렀다. 야마가타 유키오가 가오레인저의 주제가를, 엔도 마사아키는 아바레인저의 주제가를 맡았다.[20] 배구부인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했지만 사실은 금발인 아내의 젊은 시절과 닮았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설이 가장 우세하다.[★] A B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21] DQ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