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가수)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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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은 왼쪽부터
천성일: 프로듀서, 메인래퍼, 서브보컬
한상일: 메인댄서, 서브래퍼, 코러스
홍종구: 리더, 메인보컬
김학규: 리드댄서, 서브래퍼, 코러스
대한민국의 댄스 그룹(가수). 1992년 데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룰라 등과 함께 9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X세대 아이돌(=0세대 아이돌)'''이며, 지금은 희귀해진 '''단일음반 밀리언셀러'''[1] 를 달성한 가수이기도 하다.
보컬을 강조한 가볍고 달달한 듣기 편한 댄스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인기의 척도였던 가요톱10 순위에서 '''두번이나 골든컵'''을 차지했으며[2] , ''''너에게 원한 건', '변명', '상상속의 너', '어제와 다른 오늘', '홀로서기', '성형미인'''' 등의 히트곡이 있다.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클론 등과 함께 라인음향 소속으로 프로듀서 김창환 사단의 일원이었다. 멤버들 중에 가창력과 음색이 가장 좋았던 홍종구가 메인보컬로서 후렴구를 중심으로 파트들을 맡았으며, 서브보컬 천성일은 수준 높은 작/편곡 실력으로 노이즈의 음악을 책임지며 그룹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다[3] . 하지만 이 두 멤버들은 댄스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춤 실력이 부실했기에, 이들을 서포트하며 댄스 그룹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개념으로 댄스를 전담하는 멤버들을 붙여 4인조 그룹으로 구성했다. 다만 4인조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노래 구성은 사실상 홍종구와 천성일의 2인조 형식을 취해, 사람은 많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노래 구성을 뜯어보면 뭔가 심심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었는데[4] , 어떻게 보면 기획사였던 라인음향이 처음부터 홍종구와 천성일만 가지고서 음반을 내려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박으로 이들과 차별화된 구성의 댄스 그룹이 필요했던 상황이었기에, 음악적 재설계 없이 댄스 멤버들을 추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덕분에 한 그룹 내에 프로듀서(래퍼)-보컬-댄서가 다 있는 어엿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으며, 1, 2집에서 댄서로 활약한 김학규는 비주얼도 담당하여 데뷔 초반 노이즈가 인기를 끄는 데에 한몫을 했다. 강렬한 퍼포먼스의 비중은 낮았다고 전술되어 있었으나, 이는 현재의 댄스가수 대비 그렇다는 것이지 '변명', '홀로서기' 등의 안무는 당시 매우 격렬한 편에 속했다. 곡의 비트 또한 1, 2집은 천성일 작곡의 미디엄템포 곡들이 주를 이뤘으나, 김창환의 입김이 커진 3~5집에서는 빠른 비트의 테크노 곡을 메인으로 변화하였다.
군입대 등을 이유로 주축멤버 둘을 제외한 댄스 멤버 교체도 아래과 같이 겪게 된다. 다만 이는 6집까지만 해당하는 사항으로, 7집부터는 한상일이 그룹의 이름만 빌려와 활동한, 노이즈라는 그룹의 정체성에서 완전히 분리된 앨범이다. 6집 활동 이후 홍종구와 천성일이 굳이 노이즈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자 그룹은 자연스럽게 와해 수순으로 들어갔고, 그룹의 인기로 조금 더 연예 활동을 하길 원했던 한상일의 독자 행동을 천성일, 홍종구 그리고 라인음향이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서 이런 모양세가 된 것.[5]
1, 2집 - 홍종구, 천성일, 한상일, 김학규
3, 4집 - 홍종구, 천성일, 한상일, 홍종호
5집 - 홍종구, 천성일, 한상일
6집 - 홍종구, 천성일
7집 - 한상일, 권재범
Single(2009) - 한상일, 권재범, 홍종호
특이하게도 2,4집 짝수 앨범이 상대적으로 잘 안 된데 비해 홀수 앨범 1, 3, 5집이 잘 되었다. 음반 판매 순위도 거의 1위였는데 당시에는 하필 음반업계가 최고 불황이었을 때라는 얘기도 나왔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2. 경력
2.1. 1집 - Sound Shock
노이즈는 1집 데뷔곡 '너에게 원한 건'(천성일 작곡, 홍종구 작사)이 1993년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단번에 인기 그룹으로 떠올랐고, 후속곡인 '변명'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와 같이 1위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르는 등[6] 매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앨범 구성은 천성일과 김창환이 작곡을 양분했으며, 홍종구가 타이틀 곡을 포함한 2곡을 작사했다. 편곡과 코러스는 무려 김건모가 담당했다.
1집 활동 시기인 92~93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한 댄스음악이 태동한 시기로, 노이즈는 미성이면서도 독특한 발성을 가진 홍종구의 보컬을 중심으로 듣기 편한 음악을 추구하며 다른 댄스가수들과의 차별성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2.2. 2집 - Noise 2
다음 해인 94년 그룹의 작곡자이자 래퍼인 천성일이 야심차게 전곡을 작곡한 2집을 발매했지만[8] , 전작과 다른 미디엄 템포 중심의 음악 때문인지 1집보다는 인기가 다소 주춤했다.
타이틀곡은 '내가 널 닮아갈 때'로, 노이즈 전 앨범을 통틀어 댄스멤버의 랩파트가 있는 유일한 노래다. 1집에 비해 실패한 앨범이지만[9] 곡의 완성도로 본다면 1집보다 높은 평가를 받아 재평가된 앨범이며 실제로 앨범 판매량도 1집에 비해 적을 뿐, 30만장 가량 판매한 것으로 집계되며 가요 순위에서도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SBS 생방송 TV가요20 2위).
한겨레 웹진 100BEAT 90년대 명반순위 57위, 음악취향Y 대한민국 명반순위 95위를 차지한 숨겨진 명반이다. 2집 활동이 끝나고 그룹의 비주얼 담당인 김학규가 군복무를 사유로 그룹에서 탈퇴했다.
타이틀곡 '내가 널 닮아갈 때'는 2018년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영준에 의해 R&B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었다.
2.3. 3집 - 3rd Revolution
홍종호를 새 멤버로 영입하고 다시 김창환의 프로듀스하에 경쾌한 방향으로 3집을 발매하면서 '''역대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의 음반 시장에서는 희귀해진 '''밀리언 셀러'''의 주인공이 되면서 95년 여름을 완전히 장악했다. 특히 김창환이 작곡한 '상상속의 너'는 가요톱10에서 '''2번째 골든컵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고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도 4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상승세를 달렸다.
거기에 후속곡으로 거의 동시에 활동한 '어제와 다른 오늘' 역시 큰 인기를 얻었고 김창환 표 특유의 멜로디에 노이즈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잘 대변하던 레이브 스타일로 완성도 높게 편곡하여 타이틀곡 '상상속의 너' 못지 않게 큰 인기를 얻었다. 팬들 중에서는 타이틀곡인 '상상속의 너' 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더 좋다고 꼽는 사람도 많은 편. 쌍끌이 효과를 한 덕분에 3집 앨범 활동은 그야말로 노이즈의 최전성기를 대변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참고로 '상상속의 너'는 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Todo por dos pesos'의 오프닝 송으로 쓰였다. 아직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면 "아!"하고 떠오를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라고...유튜브 당시 동영상[12] 어찌보면 노이즈가 남미 한류열풍의 원조인 셈.
댄스곡인 '체념', 소유할 수 없는 너'는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면서 듣기 좋은 노래라며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여담으로 3집의 앨범 자켓은 1집과 마찬가지로 천성일이 직접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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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집 - Breakin' The Noise
3집의 대성공으로 이와 동일한 컨셉으로 발표한 4집은 처음 타이틀곡이었던 '이젠'과 후속곡 '홀로서기'를 가요 차트 10위 권 안에 올려 놓으면서 순항했으며 이 중에서 '착각'은 MBC의 예능 프로그램 목표달성 토요일에서 방영된 아이돌 그룹 프로젝트 악동클럽이 리메이크한 것으로 유명하다.
4집의 앨범 자켓은 그림실력이 있었던 구준엽이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14]
2.5. 5집 - Unchangable
홍종호가 탈퇴하고 3인조로 개편되어 활동했던 5집에서는 '성형미인'이라는 곡으로 성형 문제를 공론화했으며 가요톱텐 기준으로 6위까지 오르면서 선전했다.[15]
3집으로 한창 인기몰이를 할 때 노이즈는 김학규의 전역 후 5인조로 활동을 이어갈 것임을 모 매체를 통해 밝혔지만 5집 발매를 앞두고 홍종호가 탈퇴하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997년 김학규가 전역했음에도 노이즈 컴백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2.6. 6집 - Anti Noise
1998년 한상일이 빠지고 그룹의 축이던 홍종구와 천성일만 남아 '안티 노이즈[16] '라는 앨범으로 기존의 노이즈의 이미지에서 탈피를 선언했으며, 이전의 발랄한 분위기 곡에서 강렬한 비트 형식으로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담은 '피그맨'[17] 이라는 곡으로 6집 활동을 했으나 별다른 반향 없이 대중의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 당시 알려진 바로는 이러한 음악적 변화가 천성일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앨범은 결국 대중적으로 실패하면서 이들의 전성기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다. 후속곡으로 '바다를 닮은 너에게'로 활동했지만 H.O.T.를 필두로 한 10대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가요 시장이 재편되면서 다시 인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집은 지난 3~5집에서 짙었던 김창환의 색깔을 벗고 노이즈 본인들의 음악으로 채운 앨범으로, 2집에 이어 다시 천성일이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고, 홍종구도 작곡에 참여했다. 앨범 구성이나 가사의 내용도 훨씬 성숙해졌으며 장르적으로도 다양성을 보여준,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이 집중된 마지막 앨범이다. 아쉽게도 소리소문 없이 묻혀버린 앨범이지만 천성일의 음악이 그리운 위키러들은 한번씩 들어 보도록 하자.
2.7. 7집, 싱글
6집 이후 노이즈는 사실상 해체했지만, 1998년 말 한상일이 권재범이라는 멤버를 영입해서 '페이스(Face)'라는 듀오를 결성하여 잠시 활동하였으며, 2000년 이 듀오가 이름만 바꿔서 노이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타이틀곡은 '야상무곡'으로 이 곡에 박미경이 피쳐링으로 참여했다. 야상무곡 뮤직비디오
한상일은 2006년 '헬프미'라는 2인조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이후 이들은 패러디로 유명한 이재수와 함께 '재수 앤 노이즈(Jaesoo & Noise)'라는 이름으로 2008년에 싱글을 냈고 2009년에 3, 4집 때의 멤버였던 홍종호와 '사랑만사'라는 디지털 싱글을 출시. 사랑만사 뮤직비디오
3. 음반 목록
4. 수상 경력
4.1. 시상식
4.2. 가요 프로그램
'''총 20회 1위 수상.'''
5. 근황
리더, 메인보컬인 홍종구는 1998년 안티노이즈 활동을 끝으로 가수에서 은퇴하고서 연예인 매니지먼트 및 음반제작에 뛰어들어 영화배우 고수를 발굴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현재 시점까지 '티앤알글로벌네트웍스'의 대표이사 그리고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의 부회장, 국제대학교 엔터테인먼트과 초빙교수로 활동하는 등 가수 은퇴 후에도 잘 나가고 있는 중이다. 2011년 8월 6일에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는 허각과 공동무대, 2011년 9월 22일 방송된 비틀즈코드에서는 유키스와 함께 나와 여전한 음색과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2014년에 10세 연하의 배우 송서연과 결혼해 2남을 두고 있다. 2016년 8월 14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88올림픽 꿈나무 호돌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예선에서 테이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를 리우올림픽 마스코트 비니시우스와 같이 부른 결과 5표 차로 이겼으며, 판정단으로 출연한 더원이 홍종구를 정확히 예측하며 젊었을 때 열렬한 팬 이었음을 밝혔다.
창작의 주축이던 천성일은 안티 노이즈 이후부터는 가수에서 은퇴했고 이후 1999년 홍경인의 데뷔앨범, 2000년 김태영 2집, 신승훈 7집, 2001년 루이 1집, 2002년 신예원 1집, 2003년 조정현 4집 등에 작곡자로서 이름을 올렸고 2004년 스페이스 에이 출신 루루의 솔로 앨범이 마지막 작곡이다.
안무의 주축이던 한상일은 2019년 9월 26일 동갑 연인 이재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2015년 FUNKYFEELS USA 대표이사로 의류사업에 진출하였다. 당시 로버트다우니주니어가 어벤져스에서 입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명 연예인티셔츠로 알려진 이소룡티셔츠는 그의 대표작이다. 2017년에는 연예계 다양한 인맥들과 함께 초록우산어린이 재단에 기부하는 골프대회를 개최하여 아마추어 골퍼와 연예인포함 140여 명이 참가했고 그중 연예인 골프군단이 32명 정도 함께해 뜻깊은 자선행사를 진행하였다.
2020년 2월에는 국내 최초로 연예인 골프단 20여명을 이끌고 LA를 방문하여 한인가정상담소 후원을 위한 자선 골프대회 “2020기부천사 1ST US TOUR 연예인 자선 골프대회”를 개최하였고, 이어 “2020 하와이 한인 문화회관 건립기금마련”을 위한 연예인 자선 골프대회와 자선공연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현재는 무역업에 종사하며 화장품 관련 사업과 다방면으로 사업 영역 확장을 앞두고 있다.
1집 멤버이던 김학규는 배우를 했으나 큰 활동은 없었고 2007년 배우 신하균과 함께 난데없는 엑스터시 투약 루머에 휩싸였으나 검사 결과 모두 무혐의로 판정났다. 관련기사
3,4집 멤버 홍종호는 KBS 공채 15기 개그맨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22]
마지막에 합류한 권재범은 활동 당시에 낸 앨범이 히트를 친게 아니라 그런지, 대중들 사이에서 노이즈 멤버였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가 않다.
현재는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한동안 요식업을 운영했다. 초반에는 쿨 김성수와 쭈꾸미 식당을 동업했으나#, 김성수가 게장리필 식당을 운영을 하면서 손을 떼게 되었고 그뒤는 혼자 운영해왔다. 관련내용 15년부턴 후기가 올라오지 않은걸로 봐서 가게를 내놓은게 확인. 그 이후 가게 인테리어는 그대로지만, 주인이 바뀌면서 가게 이름도 변경이 되었다. # 16년부터는 업종을 변경하여 감자탕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마저도 17년 이후로는 방문후기가 아예 없는거로 봐서는 감자탕 가게도 접은거로 추측이 된다.. #
그 외에도 '상상 속의 너'는 대만 여가수 쉬화이위(徐懷鈺)가 '페이치라이(飛起來)'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다.
2016년 1월 12일 자 슈가맨 13화에서 최초로 단독 슈가맨으로 출연했었다. 슈가송은 너에게 원한 건(재석팀), 상상 속의 너(희열팀)이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천성일은 불참[23] 했고 한상일, 김학규, 홍종구가 출연했다.
슈가맨에서 희열팀 슈가송으로 부른 '상상속의 너'는 가요톱텐 골든컵까지 수상한[24] 밀리언셀러인데, 10대들의 호응은 의외로 적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댄스 가수들이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솔리드의 천생연분, R.ef의 이별공식 등 소위 노래방 인기곡을 남기고 다음 세대로의 구전(?)에 성공하여 사람들의 기억에 지속적으로 회자된 반면, 노이즈는 전술된 가수들보다 90년대에 훨씬 많은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10대들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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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방송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방송 후 원년멤버끼리 회식을 가진 사진을 볼 수 있다.
6. 기타
- KBS에 출연정지 당한 적 있는데, 이는 홍종구가 카메라감독에게 맞았다는 것이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한상일에 따르면 홍종구가 카메라를 보고 거울처럼 하던 중에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 만진 것으로 오해하고 반말로 싸우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결투가 있었는데 멤버들은 싸움에서 졌다. 이게 일파만파 커져서 출연 정지까지 간 것이다.
[1] 3집 ‘3rd Revolution’ 100만장[2] 가요톱10의 17년 역사 동안 골든컵을 2회 이상 받은 가수는 조용필, 이선희,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노이즈, 임창정 등 10여 팀에 불과하다.[3] 당시 라인음향 소속 가수들의 음악은 대체로 발라드는 작곡가 김형석이, 댄스는 천성일이 주도한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타 가수들의 인기곡들도 다수 작곡한 재원이었다. 대표곡으로는 신승훈의 '처음 그 느낌처럼', '어긋난 오해', 김건모의 '혼자만의 사랑', '너에게', '멋있는 이별을 위해',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 '넌 그렇게 살지 마', 클론의 '도시 탈출', '빙빙빙', 콜라의 '모기야'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천성일 문서 참조[4] 댄스 전담 멤버들은 전담 파트도 없이 일부 백보컬이나 코러스 정도로만 활약했다.[5] 사실 라인음향이 내버려 두었다기보다는, 98년 라인음향 대표가 탈세에 연루되면서 회사 전체가 와해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일부 멤버의 독자행동을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멤버들끼리는 현재까지 잘 지낸다고.[6] 한상일이 훗날 김창열의 올드스쿨에 출연해서 들려준 이야기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2집 하여가를 들고 나왔던 시기와 겹쳐서 6주 연속 1위 대결에서 패했다고 한다.[7] Youtube 영상 제목이 '너에게 원한건'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 영상 내 노래 제목도 내가 '너를' 닮아갈 때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 ~[8] 이 앨범 수록곡인 '그때 그곳에'는 1991년 발매된 이연경(1989 대학가요제 은상) 1집에 '그때 그곳'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바 있었다. 같은 곡이지만 곡의 느낌과 가사는 약간 다르다.[9] 1집이 워낙 성공하기도 했고, KBS 출연정지의 여파로 TV 활동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10] X세대의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더 자유분방한 자막을 볼 수 있다.[11] 리믹스 버전.[12] 해당 영상에서 립싱크를 하는 사람은 한국계로 노이즈 멤버와 아무 관련이 없다.[13] 나를 떠나려는 상대를 잊어버리겠다는 의지의 발차기 댄스가 인상적이다.[14] 실제로 구준엽은 산업디자인과 출신이다. 신승훈 5집의 자켓 디자인도 그가 했다.[15] 참고로 여성의 성형 열풍을 노랫말로 다룬 것은 1995년 발표된 김종서의 4집 타이틀 '플라스틱 신드롬'이 먼저였다. 다만 직설적인 노랫말의 '성형미인'에 비해 '플라스틱 신드롬'은 보다 완곡하게 성형 열풍, 더 나아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이야기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얘기지만 90년대 당시만 해도 여배우 노현희가 성형 사실을 밝혔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거의 반쯤 매장을 당했고, 아이돌 그룹인 노이즈가 성형을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을 만큼 성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컸다.[16] 참고로 널리 쓰이지 않던 안티(Anti)라는 영어 단어를 TV에 나와서 처음 설명한 게 바로 이 시기의 노이즈-홍종구와 천성일이었다. 갑작스레 멤버도 빠졌고 컨셉도 바꾼 상황이다 보니 TV에 출연하면 일일이 'Anti Noise'을 설명하기 위해 Anti의 뜻과 의미를 설명해야 했던 것. 당연하지만 당시 홍종구의 발음은 '앤티 노이즈'였다.[17]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남자가 홍종구가 발굴한 고수다.[18] 노이즈 전 앨범을 통틀어 유일하게 댄스멤버인 한상일과 김학규의 파트가 있다.[19] 홍종구의 미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곡이다.[20] 원래 타이틀곡은 '이젠'이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짧게 활동한 다음 후속곡 활동을 했다. 데뷔곡 '너에게 원한 건' 이후 무려 3년만에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소속사측에서 너무 바쁜 나머지' 스케줄 조절에 실패해서 2, 3집때는 아예 뮤직비디오도 생략해버린 후였다고 멤버들이 잡지 인터뷰에서 회고.[21] 악동클럽이 리메이크해서 다시 유명세를 탔다. 해당 앨범에는 콜라의 '친구였던 너'도 리메이크되어 수록.[22] 정종철, 윤석주(낙지)가 동기다.[23] 멤버들과 연락은 되는 듯 하지만 멤버들의 출연 권유에 "너희끼리 나가서 잘 해봐라"라고 거절한 거로 보아 방송활동은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인다.[24] 당시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했다는 것은 거의 전국민이 아는 노래였다는 뜻이다. 현재와 비교하면 음악시장의 공급 자체도 많지 않았으며, 앨범 한번 내면 몇 달씩 한 곡으로 활동하는 일이 보통이라 TV와 길거리에는 줄창 이 노래들만 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