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국내 활동
1. 개요
한국의 남성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국내활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문서
2. 2003년
2003년 12월 17일. 롯데월드에서 비공식 데뷔무대를 선보였다.#
2003년 12월 26일. 2003년 SBS 송년특집 BoA & 브리트니 스페셜로 데뷔했다. SM은 H.O.T., S.E.S.의 해체와 신화의 소속사 이전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열악했기 때문에 BoA는 솔로 가수로 SM의 소녀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데뷔 무대로 가요 프로그램이 아닌 특집 방송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동방신기를 향한 SM의 적극적인 푸쉬가 이루어진 셈이다.
여담으로 동방신기의 공식 데뷔일은 앞서 설명한 SBS 'BoA & 브리트니 스페셜'이 방영된 2003년 12월 26일이 맞다.
3. 2004년
SBS에서 방영된 무대 모습이다.#
무대 영상
2004년 2월 7일. MBC 음악캠프를 통해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1] 'Hug'를 들으면 딱 알 수 있겠지만 데뷔곡부터가 아카펠라 화음이 들어간 달달한 느낌의 곡이어서 기존 아이돌 그룹들의 댄스 음악을 통한 역동적이고 현란한 인상과는 사뭇 다른 첫인상을 남겼다. 이는 활동 당시 아이돌 그룹의 침체로 인한 댄스 음악의 퇴조와 발라드, R&B 장르의 강세로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아이돌 시장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틈새시장을 공략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곡 'Hug'를 통해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앨범도 아닌 싱글 한 장으로 엄청난 판매 수량을 달성하게 된다. SM 남자 아이돌 가수로서는 신화의 "너의 결혼식" 이후 1년만에 남자 아이돌 1위곡이라는 기록을 쓰게 되었으며 신인그룹이었던 점이 무색할 만큼 성공적이었던 반응에 힘입어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수록곡인 'My Little Princess'를 통해 후속곡 활동을 이어갔다.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언플에 대한 책임감이 컸는지 라이브 무대에서 원곡보다 키를 높여 불렀던 초강수까지 두었다.
장장 4개월이라는 유례없는 싱글앨범 활동 종료 후 숨돌릴 틈 없이 두번째 싱글 'The Way U Are'와 2004 SMTOWN 앨범 수록곡 'Drive'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는데 이 곡은 동방신기에게 있어 팬덤 고착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큰 전환점이 된 곡임과 동시에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앨범 활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The Way U Are'는 라틴 유로 팝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이후 발표되는 SMP 장르로의 음악적 전환을 예견하는 듯 하는 현란한 헤어스타일과 절제된 섹시미를 강조하는 망사 의상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활동 기간 중 믹키유천의 급성맹장염·장염과 공교롭게도 같은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해 멤버 한 명을 잃는 불운을 겪었던 그룹 원티드와 같은 날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유달리 사건사고가 많았던 앨범 활동 기간이었던 데다 일부 카시오페아들의 원티드의 멤버였던 서재호에 대한 고인드립이 언론을 통해 기사화될 정도로 문제시되어 기성세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실력파 그룹으로 인정받아가던 동방신기의 이미지에도 억울하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싱글 2장을 통한 장장 7개월 간의 앨범 활동을 마친 뒤 불과 1개월 만에 정규 1집 'Tri-Angle'을 발표하여 사실상 동방신기는 2004년을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빡빡한 국내 활동으로 채우게 된다. 이 앨범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더블 타이틀곡 체제였던 만큼 앨범 자켓 사진에도 'Tri-Angle'의 강렬한 모습과 '믿어요'에서의 발라드 귀공자 컨셉이 같이 공존하는 양면성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H.O.T.의 '아이야'를 연상케하는 하드코어한 의상과 컨셉이 일반 대중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것을 의식한 것인지 활동 기간 가운데 2개월 간은 발라드곡인 '믿어요'로 활동하며 본래의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기획의도를 유지해 나갔으며 덩달아 크리스마스 시즌과 2004년의 끝자락에 단독 겨울 시즌 앨범까지 발표하여 동방신기는 1년동안 무려 4장의 앨범을 발표하게 되고 타이틀곡이었던 '마법의 성'을 통해 'Tri-Angle'과 더블 후속곡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고[2] 동방신기는 그 해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동시에 본상을 수상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두 번째 가수로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활동 막바지에 동방신기와 카시오페아는 또다른 악재와 마주하게 되는 데 이는 동방신기의 싱글 2집 'The Way U Are'의 한정판 스토리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멤버교체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팬들을 카오스에 몰아놓은 바 있었지만 SM 본사 앞에서 가졌던 간담회를 통해 동방신기가 중국 활동에 한해서만 중국인 멤버를 포함한 6인조로 활동할 것이라고 공표하며 멤버교체설은 일단락된다.[3][4][5] 하지만 이는 이후 일본 현지화 활동 계획으로 인해 무산된 전략인 듯 하다.
4. 2005년
동방신기는 2005년 1월 2일과 15일. 각각 SBS 인기가요와 MBC 음악캠프를 끝으로 장장 10개월 간의 국내 앨범활동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일본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일본 첫 싱글 'Stay with Me Tonight'을 발표하고 일본 메이져 시장 진출의 기반을 다지던 중 6월, 여름 싱글 'Hi Ya Ya 여름날'을 발표했다. SM 가수 최초의 단독 여름 시즌 앨범으로 활동 기간은 2~3주 남짓으로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점차 일본 활동의 비중이 많아지게 되면서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는 굉장히 의미깊은 앨범인 셈.
그 후 싱글 2집 'Somebody to Love'를 발표하여 국내에서의 정상급 아이돌이 아닌 일본 메이져시장에서의 초짜급 신인으로 활동하게 되고, 9월 11일 정규 2집 'Rising Sun'이 발표되었다. 'Rising Sun'은 순수함을 잃고 점점 타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노을에 빗대어 표현한 곡으로 전작인 'Tri-Angle'과 마찬가지로 SMP 장르의 곡이지만 락사운드가 아닌 브레이크 비트가 사용되어 강렬하지만 너저분하지 않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멤버 영웅재중이 안무 연습 중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여 안무 대열에 함께하지 못하거나 아예 방송에 불참하는 불상사가 허다한 편이었으며 이로 인한 안무 대열 보충을 위해 가면 백댄서를 기용한 퍼포먼스 방식은 이후 타 아이돌 팀에게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동방신기의 본격 리즈시절을 알린 앨범이었던 만큼 2004년 신인 시절 3연타 앨범 활동으로 인한 애정피로현상에서 비롯된 가요프로그램에서 10~20위권을 간당간당했던 피지컬 순위 기록과 달리 SBS 인기가요에서 활동 1개월 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는 등 이 앨범을 통해 신인 꼬리표를 떼어낸 최정상급 아이돌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후 11월부터 후속곡인 'Tonight'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자세히 읽어보면 상당히 야한 가사를 통해 정열적인 사랑을 표현한 R&B 곡으로 이 곡을 통해 그간 언플만 주구장창 해왔던 실력파 아이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프로모션으로 인해 가요프로그램 출연은 상당히 뜸한 편이었으며[6] 믹키유천의 후반부 애드립 파트의 음역대가 너무 높았던 탓에 스스로 낮춰불렀던 적이 많아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하기도 하였다.
막바지 활동 시기와 동시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그 해 12월에는 당시 신인이자 프로젝트 등용문 그룹이었던 슈퍼주니어와 함께 'Show Me Your Love'라는 컴필레이션 겨울 앨범을 발표하고 일시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당시 동방신기 인원과 슈퍼주니어 인원을 합치면 무려 17명에 달하는 데 이 때문에 무대가 꽉차서 일부 멤버들이 무대에서 넘어지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의 시선도 컸다.[7]
동방신기는 2집 활동을 통해 그 해 Mnet.영상음악대상[8] 에서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최고인기상을 수상하며[9] 2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5. 2006년
2005년 12월 30일, KBS 가요대상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2집 활동을 마무리한 후 첫번째 단독 콘서트와 각종 CF, 그리고 극장드라마 'Vacation' 촬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갔고, 2006년 6월에는 유영진이 작곡을 맡은 2006 독일 월드컵을 겨냥한 응원가 '동방의 투혼'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여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의 감흥마저 박살난 데다 한국을 응원하는 취지로 발표된 곡이지만 정작 월드컵이 한창일 당시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첫번째 투어를 벌이던 아이러니까지 겹쳐 팬들에게도 자주 회자되는 곡은 아니다. 망했어요...
그리고 오랜 일본 활동을 잠시 접은 채(...) 9월 29일 정규 3집 "O"-正.反.合.이 발표되었다. 사실 2005년 연말을 기하여 마무리되었던 2집 활동 이후 9개월 간 가졌던 공백기 동안 싱글 4장에 정규앨범 1장, 그리고 첫번째 일본 투어까지 병행하면서 과연 한국 앨범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빡빡한 일본 활동을 벌였던 지라 팬들의 걱정과 의구심도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동방신기는 당시 80만명이라는 ㅎㄷㄷ한 공식 회원수를 자랑했던 카시오페아의 규모를 고려하여 2집과 마찬가지로 앨범 발표 다음 날 잠실 주경기장에서 쇼케이스를 염으로서 본격적인 음반활동에 들어갔다.
타이틀곡 "O"-正.反.合.은 “정”이 있으면 항상 “반”이 있어 “정”을 견제하는 동시에 “합”을 도출하게 되는 계속되는 사회의 흐름이 결국 큰 '원(O)'을 만들어 낸다는 다소 충공깽스런 의미를 가사로 녹여낸 곡으로 정.반.합의 의미에 관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랜스사운드가 기반으로 깔린 반주가 BoA의 'Girls On Top'과 기조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인터넷 상에서 이 두 곡을 자연스럽게 섞어낸 이른바 '걸스반합' 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앞서 발표된 SMP 곡들이 현세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거나 부정하려는 다소 반항적인 모습이었다면 이 곡은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논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타협하려는 듯한 좀 더 성숙해진 인상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작인 'Rising Sun'에서 라이브 논란에 휩싸여 아카펠라 댄스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던 뼈아픈 과거를 의식한 것인지 일본 투어를 통해 다듬어진 라이브 실력이 팬덤 외 일반 리스너들에게도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방신기는 활동 중 또 다른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데...자세한 내용은 유노윤호 문서 참조.
"O"-正.反.合.의 SBS 인기가요 트리플 크라운 달성 이후 곧바로 후속곡 '풍선(Balloons)'을 통해 활동을 이어갔다. 컨셉이 당시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유행했던 H.O.T.의 '캔디'를 연상케하는 데 동방신기가 기획 당시 '제 2의 H.O.T.'라는 슬로건을 자주 내세웠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어찌 보면 H.O.T.의 후계 그룹이 되기 위한 전작 'Tri-Angle'에서의 하드코어한 컨셉에 이은 두번째 관문이었던 셈. SMP 장르의 곡과 상반되는 발랄한 컨셉이 먹힌 탓인지 음원차트 역시 타이틀곡 "O"-正.反.合.보다 선전하는 등 대중들에게도 상당히 어필이 된 곡이지만 리메이크곡이다 보니 일본 앨범에 비해 정성을 안 들이는 것 같다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리메이크곡인 점이 기성세대들에게도 꽤나 어필이 되었는 지 이 곡을 통해 SBS 가요대전에서는 원곡 가수인 다섯손가락과, KBS 가요대축제에서는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콜라보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동방신기는 2006년 MKMF 올해의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음반부문 대상, SBS 가요대전 대상[10] 등 연말 가요 시상식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됨으로서[11] 2005년보다 더욱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게 되고 특히 정규 3집은 2010년 기준으로 40만장을 돌파하여 2006년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하였다.
6. 2007년
3집 활동 마무리 후 9번째 싱글 'Step by Step'을 발표하고 다시 일본활동에 매진하던 동방신기는 2007년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두번째 콘서트 THE 2ND ASIA TOUR CONCERT "O"를 개최하였다. 단독 콘서트로서는 이례적으로 약 10억원을 웃돌았던 투자비와 동방신기가 각종 연말시상식 그랜드슬럼을 달성하게 되어 그만큼 언론의 관심 또한 뜨거웠던 만큼 tvN을 통해 콘서트 실황을 중계하여 팬들에게 DVD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연 후 일부 관객들이 공연 전 맡긴 소지품을 찾지 못해 밤늦도록 귀가하지 못한 이른바 소지품 대란과 같은 안전사고로 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콘서트 후 동방신기는 당초 4집 컴백을 2008년 초로 예정을 잡은 채 일본에서도 점차 상승세를 보이는 현지 반응에 힘입어 2007년 한 해를 거의 일본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디지털 싱글 '여행기' 발매, 드라마 OST 참여와, 아시아송 페스티벌, Mnet 20's Choice 참석, 그리고 시아준수의 '애니밴드' 프로젝트 참여, 앙코르 콘서트 등을 통한 소소한 활동을 통해 국내 팬들의 갈증을 달랬지만 본래 매년 9월에 동방신기가 컴백해야할 시기에 슈퍼주니어가 앨범활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배가시켰다.
7. 2008년
그러던 중 2008년 2월 중하순, 동방신기의 일본 16번째 싱글 'Purple Line'이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위에 등극했다는 희소식과 동시에 SBS 인기가요와 KBS2 뮤직뱅크를 통한 스페셜 활동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래 이 곡은 작곡가가 유영진인 점과, 뮤직비디오도 한국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점, 그리고 본래 2008년 초를 4집 컴백시기로 예정하였던 점을 들어 이 곡을 통한 일시적 국내 활동을 어느 정도 예견하는 팬들도 있었는 데 공교롭게도 오리콘 위클리 1위까지 달성하게 되면서 자축의 의미까지 더해진 스페셜 활동을 벌이게 된 셈. 이 곡을 통해 가요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일시적 활동을 벌인 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도 3연속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 행진을 이어가며 한일 양국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1년 7개월만에 전설의 정규 4집 '주문-MIROTIC'의 발표가 확정된다.''' 본래 2008년 초로 잡혀있던 컴백 시기가 일본에서의 상승세로 인해 하반기로 연기되어 장장 2년여만에 국내 컴백이 성사된 셈. 타이틀곡 '주문-MIROTIC'은 리버스 비트 장르의 곡으로 한번 들으면 헤어날 수 없다는 가사의 내용과 영웅재중이 작명한 부제목 MIROTIC을 통해 기존의 SMP 장르의 곡과 차별화를 두었다. 전작들에 비해서 절제된 느낌이고 잠든 리듬감을 불러 일으키는 엄청난 중독성의 비트와 넘사벽 난이도의 안무로도 유명하지만, 여심을 저격해 몸매의 윤곽을 한껏 드러내는 파인 의상을 통한 섹시한 남성미를 강조한 전략이 통하여 음반 뿐 아니라 음원차트에서도 전작인 'Tri-Angle', 'Rising Sun', '"O"-正.反.合.'보다도 상당기간 상위권을 유지했다! 게다가 그간 매 앨범마다 지향해왔던 SMP 퍼포먼스에 가려진 가창력 또한 오랜 일본활동을 통해 숙달되면서 데뷔 초기 이후 가려져왔던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슬로건이 빛을 발하게 되며 비로소 완전체 그룹이라는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대중들의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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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규 4집 앨범이 2008년 음반판매량 집계 결과 50만장을 돌파하게 되어 서태지 7집 이후로 하프 밀리언셀러를 달성하여 골든디스크 음반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0년 기준으로 60만장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
이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져왔던 사생팬들의 만행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드러나게 되고 반년 뒤 한국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버리게 되는 일련의 사건의 여파로 드러나게 된 2008년 하반기 한일을 넘나드는 엄청나게 빡빡한 스케줄이 만천하에 공개되기도 하는 등 다소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슈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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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타이틀곡 '주문-MIROTIC' 가사 중 'Under My Skin', 'Crystal' 그리고 'Red Ocean'이라는 구절이 각각 스킨십과 정자, 그리고 여성의 처녀막을 빗댄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수정조치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 판결이 너무 오버라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다시 해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08 SBS 가요대전에서만큼은 원 가사로 불렀는 데 이는 방송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단독 콘서트에서 수정된 클린버전을 부정하는 듯한 팬들의 원곡 가사 떼창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5인조 동방신기의 마지막 한국 앨범이 되었다.'''
8. 2009년 ~ 2010년
일본 도쿄 돔 단독 콘서트 개최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아시아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동방신기는 2009년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큰 위기도 맞이하는데, '''바로 2009년 7월 31일, 멤버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 하지만 언론 보도 이후 3개월간은 SM과 에이벡스 측에서 빠른 진화에 나서면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고, 팬들 또한 평소 멤버들이 대외적으로 보여준 끈끈한 정을 생각했을 때 그럴 일은 없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연말에 들어서면서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고, 예상외로 법정 싸움이 장기화됨에 따라 그룹 활동 역시 중단 위기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세 멤버들과 나머지 두 멤버들끼리 서로 다른 방을 쓰고, 스케줄 사이에 이동을 할 때 다른 차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에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서 앉는 등, 이미 멤버들 간의 사이도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2010년 초에 계획되었던 한국 5집 컴백은 백지화되었고, 그룹은 대외적으로는 2009년 열렸던 NHK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그리고 2010년 3월에 발매된 30번째 일본 싱글 시간을 멈춰서 이후로 공식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소송을 제기한 세 멤버는 2010년 6월부터 JYJ를 결성하여 활동 중이고, 일련의 사태로 인해 그룹 자체의 비전이 불투명해져 향후 활동 방향마저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각각 뮤지컬 활동과 연기자 활동을 통해 향후 활동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과반수 멤버들의 이탈로 인해 향후 활동 진행에 타격을 받은 동방신기는 그룹 존속 위기를 맞게 되고 탈퇴 멤버들의 소송 장기화와 팬덤 분열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SM 측은 결국 5인을 함께 끌고 나가고자 했던 기존의 방침을 철회하고 회사에 남기로 한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두 멤버들만으로 동방신기 활동을 적극적으로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후 2인조 동방신기는 2010년 8월 SMTOWN 라이브 투어를 통해 당초 5인조 동방신기의 5집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곡인 'Maximum'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게다가 오프닝 멘트에서 자신들을 동방신기라고 소개하면서 2인 체제 동방신기로의 컴백을 예견하기도 했다. 동방신기는 이를 기점으로 정규 5집 컴백 준비와 동시에 그룹 활동 재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여담으로 이 사태의 여파에 따른 팬덤 분열로 인한 각 팬덤간의 수정 전쟁을 의식한 탓인지 문서의 내용 또한 같은 소속사 후배 그룹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실했었고 급기야 비회원 수정 차단 조치까지 내려진 바 있었다.
'''그렇게 5인조 동방신기는 사라졌다.'''
9.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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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공식 홈페이지의 공지를 통해 동방신기의 2인조 컴백이 확정되었다. 사실 이는 2인조 동방신기의 실험 개념의 첫 공식 무대였던 SM타운 2010 합동 공연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로서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추억으로 돌린 채 새로운 이름으로의 듀엣 결성, 혹은 유노윤호, 최강창민 멤버 각자의 같은 소속사 안에서의 독립적인 활동을 통해 과거 H.O.T.의 전례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을까하는 모두의 예상은 단박에 빗겨갔다.
이러한 결정은 물론 멤버들의 의지도 많이 반영이 되었겠지만 SM 입장에서도 동방신기가 6년간 활동해오면서 쌓아온 커리어와 팀 자체의 네임벨류가 SM의 브랜드벨류에 상당한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에 동방신기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SM과 멤버들의 결정을 통해 '동방신기를 지켜줘서 고마워요'라며 안도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동방신기 팬덤은 현재의 동방신기 2인 체제만을 응원하는 부류, JYJ와 동방신기 양쪽을 전부 응원하는 부류(5인 지지) 등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어 팬덤들간의 싸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0년 12월을 전후하여 동방신기의 컴백에 대한 윤곽이 잡히더니 SM 소속 아티스트로서는 이례적으로 연말 시상식 시즌에 TV 광고를 통해 동방신기의 컴백을 알리는 등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2011년 1월 3일, 그들은 2년 3개월만에 5집 타이틀곡 '왜 (Keep Your Head Down)'로 컴백했다. 이 곡은 당초 2010년 초에 동방신기의 5집에 수록될 유노윤호의 솔로곡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곡이었으나 3인의 이탈 이후 그에 맞춰 음악적 노선 변화가 불가피해졌고 최강창민을 가세시킨 채 상당 부분의 편곡과 수정을 거친 뒤 타이틀곡으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 곡을 통해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상당횟수 1위를 석권하고 그해 35만장의 앨범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전작 '주문-MIROTIC'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게 되고 이를 통해 리패키지 발표 전까지 서브 타이틀곡인 'Maximum'과 '왜 (Keep Your Head Down)'의 리믹스 버전을 통해 타이틀곡 활동의 연장선상의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 후 3월 하순에 접어들 쯤 리패키지 타이틀곡인 '이것만은 알고 가(Before U Go)'를 통해 후속곡 활동에 들어갔다. 이 곡은 발라드 버전과 이후 Catch Me 콘서트의 라이브앨범이 발매되고 나서야 정식 음원으로 들을 수 있었던 퍼포먼스 버전 등 2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데 팬들은 대체적으로는 후자를 선호하고 있다. 또한 후렴 가운데 '바보등신'이라는 구절이 이목을 끌었는 데 작사가인 유영진 입장에서는 사랑했던 여자를 지키지 못한 자책감을 강조하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욕설같은 뉘앙스가 풍겨나오는 탓에 MBC의 심의에 걸려서 음중에선 '바보같은 나'로 수정해서 불러야 했고 이 때문에 MBC는 팬들에게 그야말로 바보등신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동방신기는 4월 넷째주까지 활동을 이어간 뒤 5월부터 일본 활동 재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10.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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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4일, 정규 6집 'Catch Me'가 발표되었다. 5집에서보다 더욱 왕성한 활동이 행해져야 했을 상황이었으나, 5번째 일본 투어가 뒤늦게 치러지고 당시 SM이 신인 그룹 EXO의 프로모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상황이 맞물려 2011년 4월, 5집 활동 마무리 후 장장 1년 5개월 만에 국내 컴백이 성사된 셈. 타이틀곡 'Catch Me'는 덥스텝 사운드와 오케스트라 반주가 어우러진 SMP 곡으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진심은 제발 떠나지 못하게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자존심 강한 남자의 이중성을 가사에 담았다. 또한 멤버들과 백댄서들의 팔을 이어서 각각 용의 모습과 헐크의 팔을 형상화한 안무를 통해 동방신기 특유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멤버 이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클래스를 입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음원 공개 당일에 예상보다 낮은 10위권 안팎을 기록하고, 당시 일부 가요프로그램이 순위제도를 잠시 중단했던 상황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맞물려 '동방신기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1위 기록을 못 한 앨범'이 되었다. 하지만 5집에서보다 진보된 퀄리티와 멤버들의 보컬 능력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비록 음반 1위를 기록하지는 못 했으나 유일하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서 1위 후보에 가장 많이 등극한 곡이 되었다. 또한 덥스텝 사운드부터 오케스트라 반주까지 여러 부분이 국내 팬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장르였다는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노래의 웅장한 멜로디와 넘사벽 난이도의 안무 역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강남스타일 때문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 한 노래'라고도 불린다. 또 여담이지만 장장 4년이라는 긴 시간만의 Catch Me 국내 컴백 콘서트에서 '''3분만에 공연 티켓팅 매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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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활동에 돌입한지 1개월하고 반이 지난 시점인 1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앨범 발표에 앞서 일정이 공지된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동방신기의 이름으로 열린 콘서트인만큼 5인 시절의 곡들도 다수 불러 팬들로 하여금 추억을 선사함과 동시에 동방신기에게는 마치 부상을 당한 환자의 재활치료와 같은 개념의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 시점이 앨범 활동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데다 앞서 활동했던 BoA의 7집 'Only One'이 리패키지 앨범 발표 및 후속곡 활동없이 1개월만에 마무리되었던 전례를 들어 6집 활동이 후속곡 없이 금방 마무리되나하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으나 콘서트에서 후속곡인 'Humanoids'의 안무와 티저가 공개되면서 의혹은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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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대로 1주일 뒤, 사실상의 후속곡 쇼케이스를 겸한 콘서트를 통해 티저와 안무가 공개된 'Humanoids'가 수록된 리패키지 앨범 발표와 동시에 후속곡 활동에 들어갔다. 'Humanoids'는 샤이니의 '셜록'의 작곡에도 참여했던 토마스 토를슨이 여럿 작곡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하이브리드 일렉트로닉 장르의 댄스곡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미래지향적 가사가 담겼다. 이러한 점을 들어 유영진의 곡일 것이라는 추측이 상당수였으나 유영진이 일체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네오 SMP로 분류되고 있다. 이로서 동방신기의 6집은 후속곡마저도 일렉트릭 댄스곡으로 활동한 최초의 앨범이 되었다.[12]
그리고 2012년 11월 28일 SM은 3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JYJ와 조정에 합의, "향후 서로 간 관련될 일이 없어 상호 간섭하지 않기로 해 금일 조정을 통해 재판을 마무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팬들 중 아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이것으로 동방신기는 JYJ와 완전히 결별하여 2인조 그룹으로 확정되었고 각종 포털사이트의 프로필 상에서도 명목으로나마 살아있던 세 멤버들의 이름이 삭제되었다.
동방신기는 2012년 12월 31일 열렸던 MBC 가요대제전을 끝으로 공식적인 6집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비록 뼈아픈 멤버 탈퇴를 겪기는 했지만 어느덧 중견 아이돌이라는 호칭이 어울릴 만한 연차가 되었고 한국 음악계에서도 영향력이 큰 네임벨류를 지닌 만큼 연말 가요 축제 및 시상식에서 가장 마지막에 무대를 장식하였지만 Catch Me의 발표 1개월만에 차트아웃, 그리고 가요프로그램 1위 기록 전무라는 영 좋지 않은 성과를 남겨 팬들 사이에선 여태까지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앨범이라고.
11. 2013년
6집 활동 마무리 후 동방신기는 일본 위주의 활동을 벌이면서도 각각 최강창민의 '우리동네 예체능' MC와 유노윤호의 드라마 '야왕'을 통한 연기 활동을 통해 국내 팬들을 심심하지 않게 했었고 일본에서 7만명 규모의 닛산 스타디움 해외가수 최초 입성이라는 희소식과 함께 동방신기는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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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주년을 목전에 두었던 2013년 10월에는 2008년 가졌던 5주년 팬미팅 이후 약 5년만에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카시오페아 3기 팬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일본 위주의 활동을 벌이는 것이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던 탓인지 다음 정규앨범 소식이 한동안 통 들리지 않았다가 2013년 11월, 정규 7집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과 동시에 SMTOWN WEEK를 통한 10주년 기념 콘서트 일정이 발표되어 국내 팬들의 기대에 충족했다.
데뷔 만 10주년을 맞이했던 2013년 1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열렸던 SMTOWN WEEK의 일환으로 개최된 'Time Slip' 공연을 통해 동방신기는 그간 자주 부르지 않았던 'Hug'를 비롯한 초창기 시절의 곡들을 다수 불렀으며 당일 정규 7집의 티저 또한 공개됨으로서 팬들에게 기대감과 안도감(...)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5집에 이어 연말 시상식 시즌에 컴백을 알리는 TV 광고가 나가기도 했다.
콘서트를 전후하여 7집 컴백의 윤곽이 점차 잡히더니 이듬해인 2014년 1월 첫째주 컴백이 확정되면서 동방신기는 2013년의 끝자락과 2014년의 시작선상에서 맞이하게 된 데뷔 1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12.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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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1월 4일, KBS2 뮤직뱅크를 통해 컴백했다. SM이 후배 그룹 EXO의 '늑대와 미녀 (Wolf)'부터 시행해왔던 선음방 후음원이라는 다소 팬덤 화력 발휘에 있어 난감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통해 팬들을 충공깽에 몰아놓기도 했다. 그 후 1월 7일에 정규 7집 'TENSE'의 음원이 공개되었다. 동방신기 역대 정규앨범 사상 최초로 앨범 고유의 타이틀이 명명된 앨범으로 데뷔 10주년을 뜻하는 '10th'와 '긴장된'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TENSE'의 중의적 표현. 수록곡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곡들로 데뷔 10주년을 헌정하는 느낌의 인트로곡인 'TEN (10 YEARS)'[13] 와 SMTOWN WEEK 콘서트에서 앞서 공개된 '항상 곁에 있을게 (Always With You)'가 꼽히고 있다. 타이틀곡인 'Something'은 기존의 강렬한 SMP 장르 및 컨셉과 많이 상반되는 도전적인 스윙 재즈 장르와 정장 차림을 통해 10년차 가수로서의 부드럽고 중후한 이미지를 한껏 살렸다. 과격하지 않은 중후하고 고급진 컨셉이 먹혀 음원차트에서도 줄 1위를 차지하며 상당히 선전하였고 때마침 걸스데이도 동명의 곡을 발표하여 한동안 음원차트에 두 'Something'이 나란히 1,2위로 공존하는 진귀한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가요프로그램에서도 상당횟수 1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활동 기간 동안에도 일본 앨범 프로모션 및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이었는지 방송 출연이 6집에 비해 많이 뜸한 편이어서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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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정도의 텀을 가진 뒤 후속곡인 '수리수리(Spellbound)'를 발표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수리수리(Spellbound)'는 'Someth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고급진 비트에 셔플 사운드가 어우러진 댄스곡으로 소녀시대와 2NE1의 음원 강세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Something'과 마찬가지로 과격하지 않고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곡. 하지만 이 역시 유노윤호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활동 기간이 한달도 채 되지 않았던 점이 악재였다. 유노윤호의 부상 회복 이후 동방신기는 이후 2개월에 걸친 7번째 일본 투어에 돌입하게 된다.
투어 종료 후 유노윤호는 MBC 드라마 '야경꾼 일지'를 통한 연기 활동을, 최강창민은 한동안 휴식기에 들어갔다. 7집 콘서트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팬들의 목이 빠져가고 있을 즈음 2014년 10월, 동방신기의 5번째 콘서트 SPECIAL LIVE TOUR "T1ST0RY"의 일정이 공개되었다. 콘서트 제목은 동방신기의 영어권 앞글자 이니셜인 'T'와 'HISTORY', 그리고 숫자 1과 0을 조합한 단어로 동방신기의 10년사를 다루는 취지의 공연임을 공표한 셈. 콘서트 개최가 앨범 발표에 비해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불만도 있었는 데 이에 대한 불만은 공연 2일 차였던 2014년 12월 7일이 동방신기 데뷔 4000일이 되는 날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종식되었다. 콘서트의 내용은 'Time Slip' 콘서트에 비해 초창기 히트곡들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 제목과는 취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신선했다는 평도 상당수였는데 다른 거 다 떠나서 팬들에게 가장 각인된 건 아무래도 최강창민의 상의 탈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본인들도 자신감이 불타올랐는 지 'Somebody to Love'의 한국어 버전을 부르던 중 팬들에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
13. 2015년
2015년을 기하여 30살을 맞은 유노윤호가 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이때문에 한동안은 동방신기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SM 측에서 유노윤호의 입대 전 마지막 공연을 꾸미려는 계획인지 T1ST0RY 앙코르 콘서트가 확정 단계에 있다는 팬들 사이에 썰이 나돌더니 4월 30일, 예상대로 앞서 열렸던 "T1ST0RY"의 앵콜 개념의 콘서트인 "T1ST0RY...&!"의 공연 일정이 발표되었다.
사실상 입대 전 마지막 공식활동인 2015년 6월 13일, 14일 양일 진행된 T1ST0RY 앙코르 콘서트에서 유노윤호의 입대 소식뿐 아니라, 최강창민 역시 유노윤호 입대 후 빠른 시일 내 입대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강창민은 "저희들은 새로운 여행을 하고 올 테니 기다려주세요. 원피스에서 루피가 이년뒤에 만나자니까 저는 저희와 카시오페아 여러분들과 상황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면 몇년 뒤에 우리 스토리들을 여기 이자리에서 얘기해요."라고 말하며,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015년 7월 20일 낮 12시, 각종 음악 사이트를 통해 스페셜 앨범 'RISE AS GOD'을 발표했다. 멤버별 더블 타이틀곡으로 유노윤호의 솔로곡은 '샴페인', 최강창민의 솔로곡은 'Rise As One'이다.
2015년 7월 17일 RISE AS GOD의 첫번째 티저가 공개되었다.#
2015년 7월 18일 RISE AS GOD의 두번째 티저가 공개되었다.#
2015년 7월 17일 Rise As One의 티저가 공개되었다.#
2015년 7월 19일 샴페인의 티저가 공개되었다.#
유노윤호는 스페셜 앨범의 발매 다음날이었던 2015년 7월 21일에 26사단 신병교육대를 통해 현역으로 입대했고, 최강창민 역시 의경에 합격하여 2015년 내로 입대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2015년 11월 19일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의경으로 복무하게 됨으로서 동방신기는 다시 2년간의 휴식기를 맞이하였다.
14. 2017년
멤버 유노윤호가 21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2017년 4월 20일자로 예비역 병장 계급으로 만기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으로 되돌아왔다. 전역 이후 행보로는 7월에 있었던 SMTOWN 콘서트에서 솔로곡인 'Drop' 무대를 음원 공개에 앞서 최초로 공개하였고, 뒤이어 최강창민 역시 21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2017년 8월 18일자로 예비역 병장 계급으로 만기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으로 되돌아왔다.[14] 이로써 동방신기는 멤버 전원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8월 2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도쿄, 홍콩의 3개 도시를 순회하는 프레스 투어를 열어 '동방신기 WEEK'를 비롯한 국내외 컴백 계획을 공개하였다.
뒤이어 9월 25일, 각 멤버들의 솔로 음원 공개 및 미니 콘서트를 통한 활동 플랜 '동방신기 WEEK'를 공개하였으며 같은 날 SM STATION을 통해 유노윤호의 솔로곡 'Drop'과 28일 최강창민의 솔로곡인 '여정 (In A Different Life)'을 순차적으로 발표하였고 30일과 10월 1일 양일간 스페셜 미니 콘서트 'YouR PresenT'를 개최하였다.
15. 2018년
동방신기는 앞서 개최된 돔 투어를 비롯한 3개월 여간의 일본 활동 이후 정규 8집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3월 18일, 정규 8집 앨범의 첫번째 티저가 공개되었다. 그 후 매일 자정에 수록곡 티저 4개를 공개했으며 그 다음날 자정 이례적으로 수록곡 '평행선'의 뮤직비디오 티저도 공개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타이틀 곡인 '운명(The Chance of Love)' 의 TV 광고와 유튜브 광고를 게재하면서 팬들을 더 기대하게 했다.
또한 2018년 2월 6일자로 SM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하였으며 3월 28일 정규 앨범 New Chapter \#1: The Chance of Love로 국내 컴백을 했다. 그리고 2018년 5월 5일~6일 잠실보조경기장에서 'TVXQ! CONCERT - CIRCLE - #welcome'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리고 2018년 도쿄돔보다도 규모가 큰 일본의 닛산에서 일본은 물론 전 세계 가수 최초(!)로 3일 연속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단일 투어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빌보드 기사 TVXQ Sets New Record in Japan For K-Pop With 1 Million Tickets Sold For 'Begin Again' Tour
또한, 닛산 스타디움에서 일반 좌석이 모두 매진되어 `시야제한석`을 풀었는데, 이 또한 모두 매진되었다(...). 이 콘서트에서 벌어들인 굿즈 수입만 300억이라고. 일본에서의 여전한 인기를 알 수 있는 부분.
최종적으로 닛산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개최한 3일 동안 총 5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오는 12월 26일에 데뷔 15주년을 기념하여 스페셜 앨범 ‘뉴 챕터 #2: 더 트루스 오브 러브(New Chapter #2: The Truth of Love)’를 발표하고 같은 날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팬미팅을 개최할 예정이다.# 8집 활동이 끝난 후 리패키지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15] 팬들은 새 앨범이 나오면 리패키지의 형태를 띄지 않을까 했지만, 이번 스페셜 앨범은 신곡이 무려 7곡이나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1]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동방신기도 텀이 조금 짧았을 뿐이지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라고 하는데 이는 굉장한 오해다. BoA & 브리트니 스페셜 무대는 정식 데뷔무대가 아니었고 데뷔 싱글 음반도 한 달 뒤에 발매가 되었으며 음악캠프에서 정식 데뷔무대를 갖기 전까지 SM에서 소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야 동방신기가 데뷔하자마자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2] 당시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와 MBC에 한해서만 '마법의 성'으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활동하는 곡마다 헤어스타일과 분장을 따로 해야돼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후문도 있다.[3] 실제로 동방신기는 데뷔 초부터 본격 일본진출 이전까지 중국의 큰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고 기존의 히트곡들을 중국어로 번안한 앨범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슈퍼주니어-M과 같은 방식의 중화권 위주의 활동 방향을 모색했던 듯 하나 BoA의 일본 진출에 맛이 들렀는지 향후 일본 위주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4] 교체 멤버가 누구인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의 추측으로는 당시 동방신기의 멤버들중 sm에 입사한 연도가 제일 늦은 최강창민 아니면 믹키유천이라고 추측했다.[5] 우선 제일 먼저 입사한 시아준수는 1998년에 입사하고 5년동안 연습생 생활을 한 엘리트 연습생이었다. 리더인 유노윤호는 데뷔 전 다나의 백댄서랑 객원 랩퍼를 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고 게다가 한국과 중국에 팬클럽이 있었다. 또한 데뷔 2년 전인 2002년 중국의 유명 엔터매거진 COOL에서 독자들의 문의 쇄도 때문에 SM 해외사업부에 특별히 요청하여 연습생 신분으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습생이 이런 커리어가 있는게 쉽지 않다. 영웅재중도 2001년에 입사하고 2년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다. 게다가 동방신기 초반에 시아준수랑 함께 가창력이 가장 뛰어났다. 따라서 교체 멤버였을 가능성이 떨어진다.[6] MBC 쇼! 음악중심은 활동기간 내내 출연이 아예 전무했고, SBS 인기가요에서는 딱 '''한 번''' 출연했었다.[7] 이 곡은 현재까지도 각 팀의 팬들에게 겨울 시즌마다 자주 회자되는 명곡으로 SM 소속 그룹의 캐롤송 계보는 이후 소녀시대의 '첫눈에 (Snowy Wish)'와 EXO의 '첫 눈'으로 이어진다.[8] 후에 MKMF,MAMA[9] 아는 이들은 다 알겠지만 당시 대상 수상자는 '사랑스러워'의 대히트와 각종 예능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공로를 인정받아 방송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 가수 김종국이었다.[10] 심지어 이 해 SBS 가요대전 대상은 '''SBS와 지상파의 마지막 가요대상 수상 기록이다.''' KBS와 MBC의 마지막 대상 수상기록은 지난해인 2005년에 수상한 김종국이 가지고 있다.[11] 그리고 2006년 연말 가요 시상식의 다른 부문 대상들인 MKMF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지털음원 부문 대상은 모두 SG워너비가 수상하면서 이해 연말 가요 시상식의 대상들은 이 두 팀이 서로 양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2015년에 EXO와 빅뱅에 의해 다시 재연된다.[12] 7집 후속곡이었던 '수리수리(Spellbound)'는 유영진의 곡이긴 하지만 전자음은 거의 쓰이지 않았으므로 제외.[13] 가사 곳곳에 역대 발표곡들의 제목이 숨어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14] 엄연히 의무경찰 출신이지만 대한민국 현행법상 의경 출신 전역자도 예비군에서는 육군 예비역 병장으로 편입된다.[15] 동방신기는 한국 정규 3집 때부터 쭉 정규 앨범 활동 이후에 리패키지 앨범을 발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