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
1. 개요
동튀르키스탄(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과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단체들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2. 상세
[image]
위구르인들이 만든 동튀르키스탄의 깃발. 터키 국기를 파란색으로 바꾼 디자인을 하고 있다.
위구르의 국장:동튀르키스탄 제1 공화국 때도 쓰였으며,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위구르의 파란 월성기와 함께 위구르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쓰기도 한다.
[image]
2014년 중국 공안 당국이 테러모의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한 위구르인들.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는 약 50개가 있다. 한동안 위구르의 대모(代母) 레비야 카디르(رابىيه قادىر)가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 정부에서 반동분자로 찍혔으며 국외로 추방당한 상태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 14세만큼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이후 레비야 카디르 한 명으로는 위구르인들의 의견을 전반적으로 반영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생기자 티베트 망명 정부를 벤치마킹하여 2014년 독일 뮌헨에서 세계 위구르 회의를 설립한다. 물론 중국에서는 해당 단체도 테러 단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터키에서는 범튀르크주의의 영향으로 위구르 독립운동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많으며, 반중시위를 벌이기도 한다.[1] # 1940~70년대 상당한 위구르인들이 터키로 이주했으며 그 중에는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인 메흐메트 에민 부으라(Mehmet Emin Buğra, محمد أمين بۇغرا),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İsa Yusuf Alptekin, ئەيسا يۈسۈپ ئالپتېكىن) 같은 신장성 고위인사들도 있다. 이외에도 터키는 최근까지 동남아 방면으로 탈출하는 위구르인들에게 몇차례 손을 내밀어준 바 있으며, # 2012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우루무치에 방중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터키와 중국은 종종 위구르 문제를 두고 갈등이 빚기도 한다. #1, 2# 터키가 범튀르크주의를 표방하고 에르도안 정부가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맹주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쓰는 사람이 많다. 다만 최근 에르도안 정부가 중국과의 우호를 도모하는 탓에 일부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들은 해외로 이동하였으며, 어차피 터키는 중국, 위구르와 거리가 너무 멀고 중국에 비하면 국력이 한참 약소국이라 만약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한다고 해도 실제로 큰 도움을 주기는 힘들다.'''이제 95세에 이른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께서는 동튀르키스탄(Doğu Türkistan) 뿐만 아니라 튀르크 세계 전체를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투쟁으로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튀르크 세계의 독립과 정의,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그의 공로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위대한 지도자의 이름을 딴 이 초라한 공원은 우리에게 언제나 그의 위대한 과제를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동튀르키스탄은 튀르크 민족들의 본거지일 뿐만 아니라 튀르크의 역사, 문명, 문화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잊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 문명, 문화의 무지로 이어질 것입니다. 동튀르키스탄의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의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의 기억을 영원토록 하고 그들의 혼에게 희열을 주기 위해 우리는 동투르키스탄 순교자들에게 이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들의 투쟁이 항상 기억되기를. 오늘날 동튀르키스탄인들의 문화가 체계적으로 한화(漢化)되고 있습니다.'''
1995년 7월 28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이스탄불 시장
카자흐스탄 등 옆동네 튀르크계 공화국들은 국민 개개인들은 반중감정이 대단히 심하고 사실상 위구르인들과 같은 차가타이어를 사용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인들은 위구르인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2] 각국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과 적당히 친하게 지내려는 정책을 펴고 있어서[3] 역시 위구르의 독립운동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티베트 독립운동에 비해서는 덜 알려져 있고 지원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4] 북한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인권유린이 심각한데 위구르인을 수용소에 가둬서 탄압하며 감시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중국 당국에는 위구르 전통 문화재까지 파괴시킨다. 쿠르드족 독립 문제나 카슈미르 문제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의 이권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위구르 독립운동은 지지하고 지원하기가 껄끄럽다. 시진핑 정권 시절 탄압이 본격화되기 이전 세계는 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주로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2.1. 무장투쟁
[image]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수장인 에미르 압둘 하크 알 투르키스타니(Emir Abdul Haq Al Turkistani). '''중국 정부의 제거 1호 대상이다.''' 2010년 2월 15일에 중국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 줄 알았지만 부상만 당했지 생존하였고 2014년 6월에 치료를 끝내고 등장해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위구르 무장단체들 중 가장 큰 조직인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 ETIM)은 중국에 대해 폭력적인 무장투쟁독립을 전개하고 있어 중국 정부의 골칫거리라고 한다. 위구르 관련해서 사건 터졌다 하면 이 단체가 항상 관련되어 있다 특히 ETIM은 군세에서 열세라는 것을 알고 게릴라전, 폭탄 테러, 독극물 투여, 암살로 중국을 괴롭힌다. 그러다보니 중국 정부는 ETIM을 테러단체이자 국가의 주적으로 정하고 군대와 경찰,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ETIM을 멸망시키려고 애를 쓴다고 한다. 게다가 이 ETIM은 문제가 있는 것이 동투르키스탄이 정교일치의 신정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주장하는 명백한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이다. 또한 알 카에다와도 친분이 있고,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해 지하디스트 세력과 함께 전투력을 키우고 활동했다고 한다. 그들과 거래도 하고 무기, 자금지원을 받고 있어 국제 사회에서 독립운동으로 인정받기 보단 테러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다에시하고는 사이가 나쁜데 이는 다에시가 전세계 무슬림들의 동의도 없이 칼리프 국가를 선포한 것이 샤리아에 위반되는 일이라며 다에시의 칼리프 국가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을 테러단체 지정 해제했다.#
3. 가능성
한족과 동화되긴 했어도 아직은 티베트족이 대부분인 티베트 자치구와는 다르게 위구르 자치구는 위구르족 외에도 한족과 나머지 민족들이 많이 존재하며, 지역에 따라 민족 비중이 크게 다르다.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한족의 비율은 40% 내외이며, 한족의 이주로 인해 증가하다가 2000년 이후 위구르인의 비율은 늘고 한족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게 되었다. 2020년대 현재는 신장 재교육 캠프 등의 통제정책도 있지만, 회의를 느낀 한족의 이탈도 있어 비율 변화를 알기 힘들다.
신장 위구르 지역은 유전이 존재하는 데다,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교류하고 중동이나 남아시아 서북부 지역까지 자신들의 영향을 손쉽게 펼쳐나갈 수 있는 지역이고, 한족이 40%에 육박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중국은 신장 전체의 독립을 허용할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중국과 국경 분쟁중인 인도에서 일정 수준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같은 신장 지역으로 묶여도 남부와 북부는 차이가 난다. 신장 지역 북부(중가리아)는 준가르 학살 이전까지 원래 티베트 불교가 주류인 몽골계 민족들[5] 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한족이 많아졌기 때문에 갈등이 더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독립하려면 분할 독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며, 애매한 지역을 어떻게 할지의 갈등, 국가가 분할되는 가정에서 인도의 분할이나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수준의 우여곡절이 예상될 것이다. 다만 그리스인과 터키인은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언어(그리스어/터키어)와 종교(정교회/이슬람)으로만 서로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혈통, 문화적으로 엄청나게 섞여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서로 거의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족과 위구르족의 관계와는 동일선상에 놓기 힘든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터키 인구 교환 당시에는 그리스인과 터키인은 칼처럼 정확하게 가르고 구분하기가 애매하지만, 위구르인과 중국인의 문화, 정체성 차이는 오늘날에도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 지역은 한족과 위구르족만 사는 게 아니라 회족,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사리콜리인와 와키인[6] , 토르인[7] 등과 같은 이슬람 혹은 중앙아시아계 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멀리 갈 것도 없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의 중앙아시아 5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도 이러한 민족간 갈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따라서 독립한 위구르 국가든 잔여지의 중국이든 민족정책 수립시 고려할 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는 홍콩이나 티베트 등의 분리주의를 자극할 가능성이나 중국 내부에서 공산당의 위상 하락 가능성도 분리 독립을 막는 요인이다.
2020년 이후 중국의 인권 탄압은 심해지는 반면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난 여론도 늘고 있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티베트 독립운동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았던 것과 다르게 오늘날에는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이 매일 해외토픽에 오르내리고 위구르 문제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 Clubhouse 앱에서 사람들이 위구르 문제에 대해 일반 중국인들이나 중국내 위구르인들이 토론을 했다고 한다.
[1] 일례로 터키 극우파의 위구르 문제와 관련한 반중시위에 애먼 한국인들이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린치를 받기도 했다. # [2] 민족주의의 안착 이전 동서 차가타이인들은 자신들을 코칸드인(qo'qonliq), 엔잔인(enjanliq: 안디잔인), 타쉬켄트인(tashkentlik), 케쉬케르인(qeshqerliq), 투르판인(turpanliq) 등으로 불렀을 뿐, 위구르와 우즈벡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다만 청에 의해 일종의 국경지대가 형성되면서 서부와 동부인들은 종종 서로를 외지인으로 여기기는 했다.[3] 중앙아시아 각국은 대부분 친러에 비교적 가까운 나라들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따지고 보면 사이가 좋지만은 않지만 더 강력한 공통의 적이 있어 국제정세상으로는 적당히 협력하는 편이다.[4] 비폭력 저항인 분신자살의 인상과 종교에 따른 세계 및 중국의 사회적 인식에 따른 목소리가 크기 때문인지, 오히려 공산당과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가는 티베트보다 이쪽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5] 대표적으로 오이라트인.[6] 두 민족은 중국 내에서 타지크인으로 분류되며, 파미르인의 일부.[7] 카슈가르와 호탄, 야르칸드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저지대 인도유럽계 민족으로 인구는 약 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투르키스탄 지역에서 이주해온 타지크인의 후손들이란 추측이 있다. 고유 언어는 사멸했으며, 현재는 주로 위구르어와 우즈베크어를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