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1. 개요
대만의 정치인. 민주진보당을 창립한 메이리다오 사건 이후의 세대이다[3] .
2. 생애
2.1. 정치인이 되기 전
타이베이 현 완리 향(현 신베이 시 완리 구)의 광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국립대만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국립성공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교 의학부 대학원 과정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재활 및 공공보건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2.2. 초기 정치 경력
1994년 타이완성 성장 선거에서 민주진보당 후보인 천딩난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을 계기로 정치에 뜻을 가지게 되었다.
1994년 타이난시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려고 민주진보당에 입당하였으나, 타이난 시장 후보로 지명받지 못했다. 1996년 국민대회 선거에서 타이난 지역구 후보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8년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에 타이난시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고, 2001년, 2004년, 2008년까지 모두 당선되어 4선을 하였다.
2.3. 타이난 시장 경력
2010년 대만 지방선거인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에 타이난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60%의 득표율로 중국 국민당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2014년에는 홍콩 우산 시위의 여파로 반중국 성향을 지닌 시민들의 표가 몰리면서 72%까지 득표율이 더 높아졌다.
타이난 시장 재직 초기인 2011년 마잉주 당시 총통의 한어병음 사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에 따라 타이난시에서는 모든 지명 표기법이 통용병음이나 우정식 병음,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조례로 정했다. 이 때문에 타이난은 타이완 철로관리국 소속 역을 제외한 모든 역이나 버스정류소, 도로 이름이 전부 통용병음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자매결연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이름을 딴 광주로(光州路)의 영문 명칭이 통용병음을 따라 "Guangjhou Road"로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 "Gwangju Road"로 영문명칭이 또 바뀐 상태.
재선된 이후인 2016년 타이난 시 공용어에 영어를 추가하였다.
2.4. 행정원장 시절
2017년에 린취안 행정원장(국무총리 격)이 경제지표 부진과 대만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2017년 9월 8일에 라이칭더를 중화민국 행정원의 행정원장으로 임명되어 시장직을 사퇴하고 타이베이로 갔다. 2018년 7월에 라이칭더 주도로 2019년 1월 2일부터 대만의 공용어로 영어를 추가하는 영어공용화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 10월에는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 대신 2020년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 민주진보당 총통 후보로 지명될 수 있는 잠재 대권주자로 평가받은 바 있다.
2018년 11월 24일의 대만 지방공직인원(지방정부) 선거에서 민진당이 6개 주요 단체장 가운데 2곳만 당선되며 패배하자 사의를 표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이를 즉각 반려했지만, 약 2주가 지난 12월 초에 "적당한 시기에 사퇴할 것"임을 밝혀 행정원장을 그만둘 것임을 재확인했다. 새해 예산안의 처리를 전후로, 타 부처 부장(장관)들과 함께 내각을 떠날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예상대로 2019년 새해 예산안의 통과 직후인 1월 11일 행정원장 사퇴를 발표했다.
2.5. 행정원장 이후
행정원장직을 떠난 후에는 개헌과 타이완 독립운동을 주장하며 민진당과 독립 진영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민주진보당은 공식 논평으로 개헌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3월 18일 민진당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로써 재선에 도전하는 차이잉원 현 총통과 치열한 당내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민주화 정착 이래 총통이 연임 의사가 있다면 대체로 당에서도 그 의사를 존중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바로 후보로 올리므로, 라이칭더의 경선 출마는 2018년 지방선거 패배를 계기로 차이잉원이 당 내부에서도 강한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차이잉원의 소위 화독, 두 개의 중국에 가까운 성향과 온건한 양안관계 현상유지 정책에 타이완 독립운동 성향의 꽤 많은 당 중진들이 불만을 가지고 차이잉원보다 강경한 독립 성향으로 평가되는 라이칭더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5월에 들어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 현 총통을 앞서는 것은 물론,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비롯한 국민당 측 후보들과도 격차를 좁히며 민진당 내 후보 경선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총통이 되더라도 대만 독립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며 급진 이미지를 누그러 뜨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대만이 '이미' 주권을 가진 국가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동안 본인이 견지해 온 타이완 독립운동의 지지를 철회하고 화독으로 돌아섰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막상 당내 경선을 앞둔 6월 초에 들어서는 차이잉원 총통에 지지율이 도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6월 13일 여론조사 방식의 당내 경선에서 차이잉원 총통에 큰 차이로 패했다.
경선 패배 이후에는 민진당 내부의 단결을 호소하는 활동을 전개했으며, 11월에 차이잉원은 그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 그리고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이 재선되면서,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2.6. 부총통으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대만 정부의 2인자이자 차이잉원의 뒤를 잇는 민진당의 차기 대권주자로서 확고히 떠올랐다. 2024년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후보로 확정, 출마한다면, 리덩후이와 롄잔 이후 부총통 출신으로 대만 총통 선거에 도전하는 3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부총통 당선 약 3주일만인 2월 초, 미국을 방문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측을 만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차이잉원의 재선 취임 선서가 거행된 5월 20일부터 정식으로 부총통 직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