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궈위

 


'''3대 중화민국 가오슝시장
韓國瑜
한궈위 | Daniel Han Kuo-yu
'''
<colbgcolor=#fda600> '''이름'''
한자: 韓國瑜
한어병음: Hán Guóyú
한국한자음: 한국유
'''영문'''
Daniel Han Kuo-yu
'''출생일'''
1957년 6월 17일 (66세)
'''출생지'''
중화민국 타이완성 타이베이현 중허향[1]
'''본적지'''
중화민국 허난성 상추시
'''국적'''
중화민국 [image]
'''학력'''
중화민국 육군사관학교 (40기 / 졸업)
동오대학교 (영문학 / B.A.[2])
국립정치대학 (법학 / M.L.)
'''소속정당'''

'''종교'''
불교
'''경력'''
타이베이현 지방의회 의원(1990~1993)
중화민국 입법위원[3](1993~2002)
타이베이농산물도매공사 총경리(2012~2017)
중화민국 가오슝시장(2018. 12. 25 ~ 2020. 06. 12)
'''SNS'''
페이스북
1. 개요
2. 생애
2.2. 가오슝시장(2018~2020)
2.4. 총통 선거 이후
2.5. 가오슝 시장 파면
2.6. 파면 이후 행보에 대한 예측
3. 지지층
4. 구설
5. 기타
6.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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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韓國瑜(한궈위)[4] / Daniel Han Kuo-yu
중화민국정치인. 전직 입법위원이자 가오슝 시장을 역임했다.
한때 대만 정계에 선풍을 일으키며 일약 대권 후보로도 도약했지만, 결국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소환 투표에 의해 물러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2. 생애


한궈위의 어린시절 부터 가오슝 시장 당선 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2019년의 다큐멘터리[5]
군인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한지화(韓濟華, hán jìhuá 1920-2003)는 황포군관학교 17기생으로 오랫동안 국민혁명군에서 복무했고, 2차대전에는 인도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이후 중국 공산당과 싸우다가 대륙이 공산당에 넘어가자 대만으로 왔다고 한다. 이런 군인 아버지로부터 6남으로 태어났다.
18세에 중화민국 육군사관학교에 40기로 입학했다. 상위(한국 계급으로는 대위)까지 이르렀으나 장기복무를 신청하지 않고, 전역 1년 전에 동오대학 영문학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1986년 전역한 후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6]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지도교수는 마잉주 총통 시절 국가안전회의 비서장을 역임하는 등 중국과의 양안대화, 협력을 강조하는 대표적 인사인 쑤치였다. 당시 그가 쓴 학위논문은 대륙의 일국양제중화민국 헌법에 위배되며, 대륙의 통일전선 공세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대학 강사, 중국시보 기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1990년 타이베이현 지방의회 의원(도의회 의원격)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3년에 타이베이현, 지금의 신베이시에서 입법의원(즉,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같은 지역구에서 3선으로 활동했다.
1993년 5월 5일, 입법회 국방위원회에서 퇴직 연금 예산에 관해 심의하던 중 민진당 천수이볜 의원과 시비가 붙어서 천수이볜에게 싸대기를 날리고 테이블을 뒤엎고 머리를 가격하는 폭행을 가했다. 천수이볜은 이로 인해 3일을 입원했고, 민진당 측에서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스밍더의 중재로 사과했다.#
1994년 입법의원 재임 당시 국민소환제에 따라 파면될 위기에 놓였으나, 과반수 투표, 과반수 찬성[7]에 도달하지 못하고 21%의 투표율로 개표하지도 못하고 각하되었다.#
2002년 낙선하여 입법의원 생활을 마쳤으니, 무려 10년이 넘도록 정계를 떠나있었던 셈. 이후 이런저런 임명직을 거치다가, 2012년부터 5년 동안은 타이베이시 산하의 농산물 도매공사(臺北農產運銷股份有限公司)에서 총경리(대표이사격)로 재직했다. 그 전 대표이사가 대만 독립파 우인닝(吳音寧)이었는데 농산물 유통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이사장 직에서 파면되었다. 이후 한궈위는 중국으로의 농산물 유통을 활발히 하여 賣菜郎[8]이라는 이미지를 쌓게 되고 2018년 지방선거의 발판이 된다.

2.1.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2017년 중국 국민당 주석 경선에 출마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낙선했다.[9] 이후 국민당 지도부에서는 한궈위를 '''연고도 없는 가오슝의 지역위원장'''에 임명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가오슝 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가오슝은 메이리다오 사건이 있어서 중국 국민당외성인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고, 또한 본성인이 많은 지역이다. 1994년 지방선거 당시에 우둔이가 가오슝시장에 당선된 적은 있지만 그 우둔이도 '''본성인 출신'''이었고, 또한 이때는 리덩후이가 집권하면서 민진당이 주장한 정책 상당수를 받아들였고 민진당의 스탠스가 좀 온건해졌기 국민당과 민진당의 스탠스 차이가 생각보다 큰 시절도 아니었다. 한궈위는 '''아예 외성인'''이라 한궈위의 가오슝시장 선거 출마는 국민당에서조차 그를 단순히 '버리는 카드', 있으나 마나한 '허수 후보' 정도로나 취급했다는 의미.
당연히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전임 가오슝시장이자 민진당의 중진인 천쥐 총통부 비서장의 측근이며 민주진보당의 차세대 주자로 육성된 천치마이 후보한테 '''25%p'''차이로 밀렸다. 그러나 한궈위는 절망하지 않고 선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애썼다. 대만의 전통적인 정치 이슈양안관계 대신 가오슝 시내 경제정책, 네거티브 없는 포지티브 선거, 그리고 한궈위 본인이 대머리인 만큼 '''대머리도 당당하다!''' 캠페인을 벌인다. 사회에서 차별받는 대머리들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고 자랑하자!와 같은 캠페인으로 선거 분위기를 쇄신한다.
민진당 천치마이 후보는 선거 초반에 양안관계 이슈에 함몰되며 가오슝 이슈를 선점하는데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한궈위 후보의 유세에는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머리 이슈를 선점한 한궈위는 그 다음으로 '''교통문제를 건드렸다'''. 가오슝 첩운 계획이 계속해서 티스푼 공사에 휩싸이자 빠른 시간 내에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10] 타이베이에서 농산물 도매공사 대표로 활동했던 'CEO 이미지'를 앞세워 가오슝의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슈로 내건 것도 효과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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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2018년 11월천치마이-한궈위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까지 좁혀진다! 25%가 차이났던 선거가 백중세로 돌변한 것. 선거 양상이 급변하자 대만 언론들에서는 한궈위 후보의 선전을 한류와 한궈위의 성을 따와 한류(韓流)라고 불렀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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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속해서 한궈위가 이슈를 선점해나가자 2018년 11월 24일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본선에서 '''한궈위가 10%가 넘는 격차로 대승을 거둔다'''. 개표 초반에는 한궈위와 천치마이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했으나, 개표 50%쯤 될 때부터 구산구, 다랴오구 등 외곽지역 교통소외 지역이 개표되자 이들 지역에서 한궈위 후보로 몰표가 쏠려 격차가 확 벌어졌다. 1994년 우둔이 이후 24년만에 당선된 중국 국민당 소속 가오슝 시장이자,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로 '''사상 첫 외성인 가오슝시장'''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동안 가오슝에서 지속되어 온 외성인 금기의 벽까지 무너뜨린 셈.
그의 당선에 관한 중앙일보 기사

2.2. 가오슝시장(2018~2020)


우선 가오슝시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중국의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12월 3일 샤먼 시에서 열리는 양안 기업가 고위급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며, 이 회의를 계기로 중국 투자자들에게 가오슝의 매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그들의 투자를 이끌어 낼 예정이라고 했다.
선거 기간 동안에 양안관계 관련 논쟁과 최대한 거리를 두었지만, 당선 직후 92공식이 자신의 대중국관이라고 밝혔다. 이거야 국민당 소속, 그것도 외성인 출신이니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사실 지지자들의 반응도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그러러니 하는 정도.
11월 28일, 시장 당선인 자격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였고, 여기저기에서 "한궈위 화이팅!(韓國瑜 加油!)” 을 외치는 응원 소리가 들리는 등,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시민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커원저 시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기자들에게 "대만의 발전을 위해 커원저 시장과 협력하기로 했다. 우리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당선 직후 2004년에 신호 위반으로 사고를 일으켜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궈위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고, 네티즌들은 오래전 일을 왜 꺼내냐면서 오히려 언론사를 비판했다.
시장 취임을 앞두고 가오슝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민들과의 소통에 나서는 등 소탈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그에 대한 대만인들의 호감도는 62%로, 차이잉원, 마잉주, 우둔이, 주리룬, 라이칭더를 뛰어넘는 인기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2위인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과는 불과 1% 차이이며, 조사 대상 중 호감도 60%대를 기록한 것은 이들 2명 뿐이다.
35% 정도의 지지율로 2020년 제15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후보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는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 3위는 차이잉원 현 총통으로, 타이베이, 신베이 등 국민당 지지지역 뿐만 아니라 가오슝 등 민진당 지지지역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궈위의 공약으로는 사랑의 대관람차, 타이핑다오 석유 발굴, 디즈니랜드 유치, F1 그랑프리 유치, 와세다대학 유치, 임달화 가오슝 홍보대사 위촉 등이 있었으나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관련 업체와 협의하지도 않고 공약을 남발한 것이다.#
거기다 시정도 개판으로 했다. 출근을 오후 느즈막히 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많았고 가오슝시의회에서 국민당 의원들을 제외한 의원들의 견제를 받지 않고 선거 구호 "가오슝이여 부자가 되어라."라고 일관하곤 했다. 이에 답답해서 시대역량의 황제(黃捷) 의원이 고개를 젖혔는데 눈이 뒤집어져서 백안여신(白眼女神)으로 화제가 되었다. #
2020 총통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몇년 전만 해도 나는 과일 장수에 불과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12] "아직 그런것은 생각을 해 본적 없으며, 일단은 가오슝시장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 라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중국 국민당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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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초, 지난 총통 선거의 국민당 후보였던 주리룬 전 신베이시장과 회동했다.
일단 시장 직무에 전념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지만, 국민당 지도부는 그가 당내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참가하기를 바라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다. 결과는 둘째치고, 최소한 경선 참가를 해서 당내 경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이고, 총통선거 과정의 정국 주도권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이 와중에 폭스콘이 가오슝과 투자확대 위한 MOU협정을 맺었다.# 폭스콘이 중국에 다수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사장도 친중 인사임을 감안하면, 한 시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3월말 류제이(劉結一)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과 만나 92공식의 지지 의사를 다시금 밝혔다.# 홍콩, 마카오, 선전, 샤먼을 방문하여 경제경협을 추진하고 있다.
4월에는 미국 보스턴을 방문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는 등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앞서 3월의 홍콩 방문에 이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금 대내외에 과시하는 기회가 될듯. 하버드 대학교 강연에서 차이잉원의 대중정책에 비판했다.# 같은 기간에 열린 현지 화교 모임에서는 "2020년 1월 11일(대만 차기 총통선거 날짜)에 만나자"고 말해 향후 행보에 관한 여운을 남겼다.
역시 방미 기간 중에 3명의 전현직 총통들(천수이볜, 마잉주, 차이잉원)에 대해 '국립대만대 법대 출신'이 대만 경제를 망쳤다며 모두까기식 행보[13] 를 보였다.[14] 공식 출마 선언만 안했을 뿐, 이미 대선 주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행보를 보이는 중.
국민당 지도부는 한궈위를 '초청' 형식으로 당내 총통후보 선출 경선에 참가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 시장의 본심이 어떠하든, 그의 대선 참가는 점차 기정사실로 나타나는 중이다. 얼마 후 국민당의 현행 경선 방식으로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신의 여론조사 우위를 앞세워, 자신에게 유리한 선출 방식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총통 당선될 경우 가오슝에서 집무하겠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선거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3개월이나 휴가를 내었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시정은 뒷전이고 총통 선거에 전념하겠다니 가오슝 시민들은 분통이 터졌다 #.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이 확정되면서, 가오슝 시장직에 복귀해서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되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면서 앞으로 가오슝 시장 업무에 전념하면서 가오슝을 더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3. 제15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6월 1일 타이베이의 총통부 청사 앞에서 열린 집회를 통해 국민당의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참가할 것임을 공개 선언했다. 이날 집회에는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참가하였다.
차이잉원 현 총통, 커원저 현 타이베이 시장과 지지율 경합을 보이고 있는 현재, 만약 그가 총통 선거에 나올 경우 가오슝 등 대만 남부의 지지를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가 선거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다.
6월 16일, 일국양제 수용을 공개 거부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친중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3월 홍콩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비밀 회담한 사실이 재조명되며 '사상 검증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궈타이밍 전 폭스콘 회장과의 지지율 차이에서 점점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시장이 되자마자 총통 선거에 나간다는 비판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심지어 가오슝에서는 한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하는 서명 운동까지 진행 중이다. 한궈위는 본인이 대선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이 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대선에 강제로 떠밀려 나온거라, 가오슝시내의 민진당 지지자를 제외하면 주민소환같은 극단적인 움직임은 가오슝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당장 한궈위 본인도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 편.
그런데 한궈워에게 악재가 터졌다. 미국 정치매체 포린 폴리시가 한궈워의 당선에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여론조작이 역할을 했다는 기사가 나온것. 포린 폴리시에 의하면 지방선거 당시 한궈워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인터넷상의 열성 지지자들이 실은 대륙 출신들이란 것이다. 실제 한궈워의 페이스북 팬카페는 대륙 출신임을 의심케하는 간체자를 사용했고 팬카페의 계정도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라 한궈워가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팬카페상의 네티즌 지지자들은 집권당인 민진당 후보를 공격하고 사실과 다른 일을 유포했으며 한궈워를 비판하는 사람에겐 엄청난숫자의 댓글을 다는 공격도 벌였다는 것이다. 포린 폴리시가 한궈워의 페이스북 팬카페의 관리자 6명중 3명의 신상을 구인구직 포털 링크드인에서 찾아냈는데 이들은 자신을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텐센트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한걸 발견해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선거가 끝난후 페이스북 팬카페 관리활동을 중단하고 전혀 상관없는 다른 한궈워의 팬들에게 계정을 양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페이스북상의 한궈워 지지그룹들이 대부분 간체자를 쓰고 그들이 게시한 경력이 모두 비슷비슷해서 중국공산당의 사이버부대가 만든 가짜 계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포린 폴리시는 보도했다.
물론 한궈워 본인이 이 인터넷 여론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렇지 않아도 친중적인 이미지가 강한 한궈워에게 홍콩 시위와 중국 공산당 선거개입 논란은 앞으로의 정치행보에 가시밭길을 예고하는것으로 보인다.
7월 15일, 당내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에서 4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로 국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같이 경선에 참여했던 궈타이밍이 경선 결과에 불복해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과 함께 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궈타이밍과 커원저가 연합하여 대선에 출마할 경우 1위를 탈환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홍콩 시위가 장기화됨에 따라 차이잉원 현 총통의 지지율도 상승세를 유지하는 반면 본인의 지지율은 계속 내려가고 있어 대선 가도가 상당히 위험해졌다.
8월 말 시점에서 지지율의 부진, 궈타이밍의 독자 출마(혹은 커원저와의 연대) 가능성이 계속 거론되면서, 국민당 내 일각에서는 후보 교체설이 제기되고 있다.
9월 중순에 궈타이밍, 커원저가 대선 불출마하면서 차이잉원과의 양자 대결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지지율은 차이잉원이 35~40%, 한궈위가 30~35% 정도로 약 5~10%정도 차이가 나는 편.
선거를 약 100일 정도 남겨둔 현재까지도 한궈위는 차이잉원에게 약 10%정도 뒤쳐져 있지만, 1년 전 20% 이상 뒤지던 가오슝시장 선거에서 막판 대역전승을 거둔 전력이 있기에 본인은 지지율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15] 중국 국민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원래 가오슝 시장으로 일하고 대선 출마 의사가 없던 본인을 대선으로 불러냈으면, 당에서 지원을 똑바로 하라고 역공을 가했다. 이는 냉정하게 말해서 당내 단합이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2년 마잉주 재선 직후부터 국민당 내부는 롄잔 파와 反롄잔 파로 갈려서 싸우고 있다. 한궈위는 당연히 반 롄잔파이고 주리룬신베이 시장은 롄잔파이다. 한궈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우둔이 대표와 주리룬 신베이시장 측이 공공연히 후보 교체론을 흘리면서 당 내에서 한궈위를 흔들고 있다.
아무튼 10월 16일부터 가오슝시장직을 휴직하고 대선 선거운동에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다.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는 것들도 반응이 신통치 못하다. 대만 전국의 높은 산봉우리에 청천백일기 국기를 세우겠다고 했다가 취소하고, 수십만점이나 되는 국립고궁박물원의 유물들을 한곳에 동시 전시하겠다고 한다든지...[16] 총통 후보로서 어울리는 진지함을 보여주지 못한채, 기행과 실언의 주인공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11월 11일 장산정 전 행정원장을 부총통 후보로 영입하여 러닝메이트로 결정했다. 기사
첫 외신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 한, 중국과의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친중 이미지를 떨치려는 노력이라는 평가.
각 당의 부총통 후보가 모두 정해진 11월 말의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과의 여론조사 격차가 15%~20%로 크게 벌어졌다. 이는 홍콩 사태의 장기화와 대만 경제 지표의 호조[17]가 차이잉원 총통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1월 말 호주로 망명한 중국인이 자신을 전직 정보공작원이라고 밝히면서, 중국이 지난해 국민당이 승리한 대만 지방선거에서 한궈위 시장측에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개입을 했다고 주장해 더욱 곤경에 처했다.[18] ## 당연히 한 시장과 국민당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특히 한 시장 본인은 "중국으로부터 돈을 한푼이라도 받은 게 드러나면 당장 후보에서 사퇴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선거를 불과 한달 앞둔 12월 4일의 여론조사에서는 차이잉원과의 격차가 무려 34.1%로 벌어졌다. # 차이잉원의 지지율은 50%가 넘는데, 한궈위의 지지율은 17.9% (...) 다만 중도좌파 성향의 녹색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이므로, 신뢰성은 각자 판단해야될 문제. 게다가 한궈위가 해당 발표 직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에 거짓으로 응답해라"라고 공개 주문한 일이 있어서 민진당과 지지자들은 이번의 지지율 격차 증가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12월 21일 취임 1주년을 앞두로 친한궈위 행진과 반한궈위 행진이 동시에 가오슝에서 열렸고 메이리다오역에서 두 진영이 충돌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행히 충돌은 없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 한궈위는 친한궈위 행진은 버스를 대절해서라도 가오슝 시민 이외의 국민들이 참여하도록 했으나, 반한궈위 행진은 가오슝 시민 이외의 국민들의 참여를 제한하여 지자체장이라는 사람이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둔 1월 9일 저녁, 100만 지지자 동원령을 내려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마잉주 전 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전현직 지도부도 참석해 당의 단합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리고 1월 10일에는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가오슝에서 선거 유세를 끝마쳤다.
선거 당일. 딸과 함께 나와 투표를 했으며, 취재진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선거 개표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재, 40% 미만을 득표하며 차이잉원 후보에게 약 20% 정도 밀리고 있다. 그래도 4년 전 주리룬보다는 득표율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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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 앞에서 패배를 공식 인정하는 한궈위 시장.
결국 개표 85% 시점에서 차이잉원의 재선이 확정되면서 차이잉원 후보의 3분의 2 정도의 표를 얻으며 2위에 그쳤다. 불과 1년여 전 민진당의 아성에서 승리하며 대만 정계의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제 자신의 현직인 가오슝 시장직조차 시민들의 주민 소환 투표 진행으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19] 대선에서 떨어지고 가오슝 시 내에서마저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에서,[20][21] 한 시장이 이 난국을 앞으로 어떻게 타개 하느냐가 본인의 정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4. 총통 선거 이후


냉정하게 얘기해, 20%p에 가까운 표차로 크게 패했고, 국민당 내에서도 친중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라서, 정치 인생은 몰락까진 아니더라도 다소 힘들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원래 이번 대선 출마 계획이 없었다고는 해도[22], 그의 총통선거 출마에 대해 가오슝 시민들의 반대가 심했던 만큼 등을 돌린 가오슝 민심을 다시 자신 쪽으로 되돌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은 잃은 것으로 여겨진다.[23]
선거 패배를 인정한 직후 예정되어 있었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24] 가족들, 측근들과 함께 평소에도 종종 방문하던 가오슝의 한 식당에서 훠궈를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던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식당에 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낙선 이후 첫 식사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25]
낙선 직후의 첫 월요일인 1월 13일부터 가오슝 시장의 업무에 복귀한다. 한궈위의 복귀에 대한 가오슝 시민들의 반응은 시장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과 앞으로 열심히 해 주기를 바란다는 의견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가오슝 주민들은 한궈위가 대권주자로 나서길 바랬던 게 아니라 민진당에 대한 심판으로 지역을 잘 이끌어달라고 당선됐는데 무시하고 출마했으니, 여론이 너무 좋지않다. 앞으로 가오슝을 국민당 텃밭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할듯 보인다.
한궈위는 가오슝 시정에 복귀하고 나서, 가오슝 시장 선거 공약이었던 가오슝 첩운 연장 계획과 가오슝 국제공항 이전 이슈에 집중하겠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대만 언론들은 한궈위가 국민당 주석직에도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선거에서 패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대선에서 가오슝 시민들의 심판을 받은 한궈위 본인도 앞으로 가오슝 시장 업무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 출마할 가능성은 낮다.[26] 당장 본인부터도 총통 선거 치르느라 시정 업무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였는데 주석직에 도전한다면 여론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1월 13일 가오슝 시장직에 복귀하기에 앞서 시청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20분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동안 시장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은 가오슝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며,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가오슝을 위해 열심히 일 하겠다고 말했고, 또한 이틀 전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고 식당에 간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한 기자가 선거 이후의 양안관계 전망에 대한 견해를 묻자, 더 이상 자신이 나설 사안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1월 14일 가오슝 시 행사에서 인사를 하며 국민당 주석직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시정 업무와 관련이 없는 질문들(국민당의 미래, 양안관계, 차이총통의 전망 등)에 대해서는 계속 말을 아끼고 있다.
가오슝 의회의 민진당 의원들과 일부 시민들이 5월에 한궈위 시장을 파면 시키자고 하고 있지만, 국민당이 가오슝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파면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고, 무턱대고 파면 시켰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우려 때문에 2022년 까지 시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27] 다만 현재로서는 2022년 지방 선거에서 가오슝 시장에 다시 당선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만 뉴스들의 보도에 따르면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가오슝 시장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가오슝 시 공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주 현장시찰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다시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 1월 현재, 앞으로 남은 2년여의 임기동안 가오슝 시장직을 어떻게 수행하느냐가 한궈위의 정치인생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가오슝 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시장직 재선 후 2024년 총통선거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민진당의 텃밭인 가오슝의 특성상 재선은 하지 못하더라도 원래의 지역구인 타이베이로 옮겨 정치활동을 다시 하다가 총통선거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북부 지역으로 갈수록 그 지역 국민당 시장이나 현장후보자가 아닌 한궈위와 함께 찍은 사진을 현수막에 쓴 후보자들이 많았고, 2020년 입법원 선거에서도 가오슝에서는 한궈위 사진을 쓴 국민당 후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였는데 북부에서는 한궈위 사진을 함께 배치한 후보자들이 상당수였다.
참고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당시 국민당 텃밭이었던 타이베이에서 국민당 후보들의 표 분산으로 어부지리격으로 시장에 당선되어 시장직을 수행한 민진당 천수이볜의 경우, 시장 재직 시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덕에 국민당의 텃밭인 타이베이 특성상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2년 뒤 곧바로 총통에 당선된 사례가 존재하기에 한궈위 역시 시장 일을 잘만 해낸다면 재선 여부에 관계없이 총통선거에 도전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일단 이번에 본인이 현직시장으로 있는 가오슝에서 득표율이 저조했던 것 역시 시장직 수행에 대한 평가가 안 좋았던 영향이 상당히 크다. 고로 어디까지나 한궈위가 남은 임기동안 가오슝 시장직을 잘 수행한다는 전제 하에 반전이 가능한 이야기다.

2.5. 가오슝 시장 파면


2020년 1월부터 진행된 주민소환 서명에서 1%를 초과하였고 4월 7일. 시 선거 관리위원회는 주민소환 청원의 두 번째 단계에서 수집된 약 406,000개의 서명 중 377,662건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여 선거인의 10%의 기준을 넘어섬에 따라 2020년 6월 6일 주민소환 투표 실시가 확정되었다.# 이는 중화민국 주민 소환 중 지방자치에서는 최초이다.
한궈위 시장은 이에 주민소환에 대한 행정적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원에 이를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나, 이의 신청이 거부되어 그대로 진행된다.#
배경에는 시정에 대한 의문점, 국민당에 대한 반감 등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그 중 시대역량 소속 시의원은 한궈위 시장에 대한 시정 의문을 제기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주민소환을 놓고 국민당은 국가가 통제한다는 비판을 하는 반면 민진당은 공정한 선거를 가질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투표 조건은 4개월 이상 가오슝 거주, 20세 이상이다.#
투표 당일 가오슝 전체 유권자의 1/4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고, 불신임 득표수가 기준선인 57만 4996표를 넘을 경우 한궈위는 가오슝 시장직을 상실한다. 또한, 대만 중앙 선거위원회[28] 또는 법원[29]에 의해 파면이 확정된 시점 부터 4년 동안 가오슝 시장 피선거권을 상실한다.[30] 여론조사에서 한궈위 소환이 20% 높게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투표 참여는 40%대이고, 30%대에 소환 투표 할 것이 나타났다.# 한 때는 50%까지 투표 참여율이 올라가다가 다시 30%대에 머물고 있다.#
한편 한궈위 시장은 5월 15일 자신의 SNS를 통해 6월 6일 선거에 대해 아예 투표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던져 줄것을 요청하면서 시장 업무에 소홀히 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
그러나 한궈위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4월 29일 가오슝 시내에 설치된 주민소환 플래카드 광고를 철거하였다. # 4월 30일에도 # 그리고 5월 3일에도 # 새벽 불시에 철거하여 가오슝 시민들의 분통을 터뜨렸고 소환각을 좁혔다.
가오슝 선거 관리 위원회도 투표소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 그러다가 1823개소의 투표소를 겨우 마련하여 주민소환을 실시한 것이다. #
한궈위는 가오슝 지방 법원과 고등 법원 그리고 최고 법원에 주민소환 집행 정지를 신청했으나 모두 차례로 각하되었다.
그리고 선거 전날인 6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것이 어쩌면 가오슝 시장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의 시장직을 돌아보며 자신을 지지해준 가오슝 시민들과 시청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
선거 당일 가오슝 시는 오후가 되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고, 호우 특보까지 발령 되어서 투표율에 중대한 변수가 되었다.[31]
결국 현지시간 17시 12분, 파면 동의표가 60만 표를 돌파하면서 소환 하는데 주어진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한 시장은 17시 25분에 시청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공식 입장을 발표했는데 2018년 시장선거 당시 자신을 지지해준 89만명의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선거 결과를 수용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한궈위는 "나는 가오슝 시정을 잘했는데 민진당이 반한궈위 국가 팀을 만들어 대중 매체를 매수하고 루머를 퍼뜨려서 파면으로 몰고 갔다. 나를 파면할 힘으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힘써라."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투표하러 나오지 않은 130만 가오슝 시민들에게 감사하고 그래서 선거는 정의롭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궈위 가오슝 시장에 대한 주민 소환 투표'''

선거인수
%
% 퍼센트
'''선거인수'''
'''2,299,981'''
'''100.00'''
기준
574,996
25.00
주민소환 찬성
939,090
97.40%
40.83%
주민소환 반대
25,051
2.60%
1.09%
유효표
964,141
99.47%
41.92%
무효표
5,118
0.53%
0.23%
'''투표수'''
'''969,259'''
'''100%'''
42.14%
한궈위가 당선될 때에는 89만여 표로 당선됐는데, 주민소환으로 파면당할 때는 약 94만 표가 한궈위 소환에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 투표율이 90%를 넘겼는데, 중국 국민당 지지층들은 투표에 아예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32] 투표율은 42.14%였다.
지역별로도 국민당 지지세가 강한 동북부를 제외하고 투표율은 25% 이상이며 찬성이 압도적이다. 한궈위에 대한 비호감이나 민진당의 아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압도적인 결과인데, 본 문서에도 수 차례 등장하고 본인조차도 시정을 소홀히 하였음을 몇 차례 인정하였을 정도로 쉽게 말해 기본적으로 근태상황조차 좋지 않았던 것이 파면까지 이르게 된 주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시대역량, 대만기진, 민진당은 주민소환으로 인한 심판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고 가오슝 시민들에게 감사함을 발표하였다.# 국민당과 대만민중당은 다음 재보궐선거 후보를 모색한다고 발표했다.#, #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은 중국 공산당에 호의적인 국민당에 대한 심판으로 보고 있다.#
한편, 그날 저녁 한궈위의 측근인 국민당의 쉬쿤위안(許崑源) 가오슝 시의회 의장은[33] 주민소환 결과에 충격을 받아 17층 아파트의 자택에서 투신자살했다. 기사 향년 63세. 투신하기 불과 5분 전인 현지시간 20시 40분에 한궈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누가 승자인가. 민진당이 파면에는 이겼지만 가오슝은 이겼는가."라고 승복하지 않는 내용의 게시물을 공유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자살 직전에 올린 게시물 그가 투신한 현장에는 지지자들의 꽃다발이 놓였으며, 한궈위 역시 그날 밤 현장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로써 가오슝은 불과 하루 만에 시장과 의장 자리가 모두 공석이 되었다.
파면 후의 후폭풍으로는 시의회 질의 때 맞붙었던 시대역량의 '백안 여신' 황제(黃捷) 시의원[34]에게도 옮겨붙었는데, 쉬쿤위안의 장례식에 갔다가 한궈위 지지자들에게 욕을 들었는지 눈물을 보이고 나왔고, 지역구 펑산구(鳳山區)에서의 황제 시의원 주민소환 연대 서명도 1단계 통과되고 2단계에 접어들었다. #
펑산구는 인구도 많아서 한궈위 파면 투표 때 동의 표가 많이 나온 지역구에 속하는데, 이번에는 한궈위 지지자들에게 휘둘렸는지 한궈위 파면 투표를 정의롭지 않다고 복수의 정치라고 하며 주민소환에 서명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한궈위 지지자들이 이런 식으로 한궈위를 파면하도록 선동한 시의원들이나 입법위원들을 하나씩 소환할 계획이라고 하는 것이다.[35]
그러나 최초 주민소환 타겟이었던 황제의원의 파면 투표에서 비동의가 동의보다 높게 나오면서 범녹 계열 시의원들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2021년 2월 6일 투표에서 전체 유권자 29만여명 중 약 7만2천여표 동의를 얻으면 파면이 된다. 투표자 12만여명이 참여하여 투표는 유효하였으나 비동의가 약6만5천으로 1만표 정도 높게 나와 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서 친 한궈위 진영의 동력이 상당 부분 상실되었다.
또 반대편에서는 주민소환을 이끈 일명 파한 4인방도 주목받고 있다. 본업이 전부 다른 사람들이지만, 한궈위 파면이라는 목적으로 모였다. 그러나 이들은 정계 진출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불과 파면되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국민당의 대선후보이기도 했고, 사상 초유의 국민소환을 통한 지방자치단체장의 파면이었던 만큼 후폭풍도 상당히 거센 편이다. 대만의 유명 시사평론가인 자오샤오캉(趙少康)[36]보복성 파면 등 초강수를 두어서라도 민진당을 선출직 공무원 파면 관련 법안 수정을 위한 협상 테이블로 불러 내야한다는 등의 다소 거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투표 유효 기준이 투표율 25% 이상은 너무 낮다거나 주민소환이 정치적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등 여러 비판들이 나왔다. 그러나 선거인 기준 40%가 넘게 참여해서, 이래나 저래나 할말이 없긴하다.
한편, 6월 24일 가오슝 시 3선 여성의원인 리메이전(李眉蓁, 1979~ )이 8월 15일에 치루어 질 가오슝 시장 보궐선거에 국민당 후보로 공식 출마했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가오슝에 연고를 둔 젊은 시의원을 시장 후보로 내세워 반전을 이끌어 내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오슝 지역이 민진당의 전통적인 우세 지역이기도 하고 상대가 2년 전 한궈위와 경쟁했던 민진당 유력 대권 주자들 중 한 명이라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는 제 3지대 정당인 대만민중당에서도 후보를 냈는데, 이 후보가 민주진보당의 표를 얼마나 잠식시키느냐[37]와 리메이전이 중도층의 지지를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한궈위 전 시장이 직접 리메이전의 선거유세 현장에 나와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하지만 민진당의 천치마이 후보가 67만표, 70%가 조금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획득하여 시장으로 당선이 되면서 의외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38]

2.6. 파면 이후 행보에 대한 예측


한궈위의 이후 행보에 대한 대만 언론의 분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오슝에서 계속 살다가 마지막 도전으로 2026년 지방선거 가오슝 시장 선거에 재출마 하느냐, 국민당 주석직에 도전하느냐, 타이베이 시장직에 도전하느냐[39], 아니면 정계 은퇴를 하고 타이베이나 윈린에서 여생을 보내느냐로 보고 있다.
하지만 2020 대선에서 한궈위의 정치적 능력이 드러났고, 자신을 뽑아준 가오슝 시민들에 의해서 주민소환을 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정치인생이 끝났다'''[40]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총통선거와 이번 주민 소환투표를 통해 자신에게 등을 돌린 대만 남부의 민심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일단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있는 대만 북부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나 '''대만 역사상 시민에게 공식적으로 소환 또는 탄핵당한 유일한 정치가'''라는 타이틀이 계속 붙을 수 밖에 없다. 선출 투표도 전체 유권자의 40%가 넘는 득표를 받았다면 상당한 득표수인데 웬만하면 선거보다 투표율이 낮기 마련인 파면 및 소환 투표에서 전체 유권자의 40% 이상이 파면에 동의했기에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것은 불능에 가깝다.
한궈위 본인은 시장직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주민소환 투표 이후에도 가오슝에서 계속 지내겠다고 말했다. 한궈위는 중국 국민당의 비주류 인사인 만큼, 어차피 타이베이 일대로 돌아가도 '''당장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가인 윈린으로 간다는 설이 나왔을 정도로, 한궈위는 갈 곳이 없다. 한궈위는 국민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가오슝으로 내려올 때 타이베이시에 있던 '''본인 집을 팔아 버렸다'''고 한다. 한궈위 본인은 가오슝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며, 시장직 사퇴 이후에도 가오슝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만 북부로 간다 한들 타이베이 시장인 커원저대만민중당 소속[41]이고[42], 신베이 시장인 허우여우이주리룬을 따라 국민당 주류 계파롄잔파이다. 제15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서 롄잔파는 한궈위보고 대선 출마하라며 등을 떠밀어 놓고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국민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작 한궈위를 내다 버렸다'''[43]. 한궈위는 비주류라서 이런다며 국민당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도 대놓고 표출한 바 있다.
때문에 아예 '''국민당 탈당설'''도 돌고 있다. 한궈위가 국민당을 탈당할 경우 대만민중당에 '개별적'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탄핵당한 정치가를 받아들였을 때 벌어질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만민중당이 한궈위를 받아줄것인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두 번째 정계은퇴 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6월 9일 한궈위는 투표 무효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그리고 6월 11일 종무식을 하고,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는 6월 12일 오후 3시 한궈위의 직위를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20년 8월 15일 열린 가오슝 시장 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지원한 국민당 리메이전 후보가 민진당 천치마이에게 대패하면서 한궈위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약해졌다.

2.7. 2021년


2021년 들어서 한궈위는 가오슝시에 계속 거주하고 있으며, 정치적 재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른데로 이사가는 거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죽어도 가오슝에서 죽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번갈아 하는 중이다. 페이스북 링크

3. 지지층


[image]
총통선거를 3개월 앞둔 2019년 10월의 쌍십절 행사 당시 모여든 한궈위 지지자들의 모습.
2018년 지방선거 전후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지지층이 형성되었다. 중국어로는 韓粉이라고 한다.[44]
대한민국에서 박사모문빠, 혹은 손가혁이 형성된 것과 비슷하게 민폐를 많이 일으켰다. 일례로 한궈위 국민 소환 서명을 받았을 때 서명을 하면 무료로 바나나 크레페를 주겠다는 가게에 쳐들어가서 나가 죽으라고 욕설을 퍼부은 한궈위 지지자가 있었다.#
극성 한궈위 지지층은 같은 국민당 정치인들 SNS에 가서 악플을 남기곤 한다. 일례로 우둔이 전 대표 페이스북에 "더 이상 우 대표라고 부르지 마라. 민의를 모르는 당을 어떻게 구하냐. 국민당은 쓸모 없는[45] 당"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궈위는 가짜 지지층이라고 선을 그었다. #
지지층 중에는 주로 북부지역 출신과 노년층이 많은 편이긴 하나 젊은층과 가오슝에서도 격렬 지지자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46] 나이나 출신지역만으로 이 사람의 지지여부를 판단할 수가 없다. 일단 지지층의 성향 자체가 강성이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다른 정치인은 몰라도 이 사람 얘기는 호기심에라도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한궈위 재임 시절 가오슝 사람에게 發大財(부자가 되어라, 한궈위 시장 선거 시절 구호) 또한 욕설에 가까울 정도로 금기어였다.
한궈위가 대선에 낙선할 때나, 국민소환에서 파면되었을 때 당연히 멘붕하였고, 차이잉원을 파면하자[47], 심지어는 딸 한빙을 시장 선거에 출마시키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들은 국민당 당 대표 출마 등의 정계 복귀를 바라고 있다.
6월 8일 시대역량의 황제(黃捷) 시의원을 비롯하여 한궈위를 파면하는데 동조한 시의원이나 입법위원을 하나씩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황제의 경우는 펑산구(鳳山區) 지역구 주민 1단계 연대 서명이 끝나고 2단계 연대 서명에 들어갔다. 언론 보도나 인터넷에서의 기세와 달리 파면 동의가 20프로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그 동력이 많이 꺾였다.
6월 13일 한궈위의 지지자들은 총통부 청사 앞에서 쉬쿤위안을 추앙하고 차이잉원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한궈위가 총통 후보 시절 대규모 유세를 하던 시절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물론 2020년 총통선거에서 한궈위를 지지한 552만 명 중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한궈위 팬클럽 내에서도 상식적인 사람들이 꽤 많이 있지만, 강성 지지층들이 민폐를 많이 일으키는 바람에 오히려 그들이 지지하는 한궈위의 인기를 떨어트린 여러가지 원인(홍콩 사태, 친중 행보, 여러가지 구설, 시장직을 소홀히 하고 총통 선거에 나간 것 등) 중 하나가 되었다.

4. 구설


2019년 2월 28일 2.28 사건 기념식에서 2.28을 "오늘은 제73주년 '''8.23'''[48] 기념일"이라고 말실수를 했다.# 나중에 이에 대해 "나는 끝까지 2.28이라고 했다"라고 잡아뗐다.
2019년 3월 22일 홍콩 방문 시 "제가 알기로 행복지수 1위인 나라는 '''알프스 산맥 옆에 있는 부탄'''인데, 그 나라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하고 멍청하다"라는 망언을 했다.#
2019년 3월 26일 국무원 대만 판공실에서 일국양제를 인정하고 왔다는 논란에 한궈위는 중국 관료들을 다 내보내고 기자들 앞에서 "자신은 쑨원 선생님의 신도이고 국부께서 1912년 만주 청나라를 뒤엎고 중화민국을 세웠다"라고 허세를 부리다가 삼민주의를 민족, 민권, '''민주'''(민생이 맞다)라고 말실수를 했다.#
2019년 6월 12일 어느 인터뷰에서 "홍콩과 마카오는 일국양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현재 '''중화민국 지구'''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실수를 했다. # 친중파 성향에 대한 의심을 받자 이에 대해 순전히 말실수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2019년 7월 9일 "내가 22살 때인 '''1979년'''에 민진당 의원에게 투표했다."라고 민진당 지지층을 끌어안는 듯한 발언을 했으나 민진당 설립 연도는 '''1986년'''이고, 1979년에는 장제스 사후이지만 서슬 퍼런 메이리다오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독재가 활개치던 시대였다.
2019년 9월 6일 일본인 학자 마쓰다 야스히로(松田康博)와 쓰웨이 청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장소를 바꿔놓고, 평소 늑장 출근으로 비판을 받던 한궈위가 "오늘은 안 늦었다. 내가 일본 사람을 25분 기다렸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
2019년 9월 16일 선거운동 중 다과회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집에서 밥 먹는데 난초가 필요하냐"라는 망언을 했다.#
2019년 10월 28일 장화시의 유세 현장에서 "차이잉원 총통을 비롯해서 민진당 사람들은 '''하얗고 뚱뚱한 사람들'''만 있다. 나 같은 국민당 사람들은 '''구릿빛에 마른 사람들'''만 있다"라고 망언을 했다. # 그 전 지방선거에서도 가오슝은 '''늙고 병들고 가난한 도시'''라는 망언을 해서 어그로를 끌었다.
총통 선거 기간에도 "고궁박물원의 모든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겠다."# "3000m 이상의 산에는 국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라는 지방선거 시절 공약 남발을 또 시전하였다. 그리고 나서 어제 안 된다고 했다고 발뺌했다. #
2019년 10월 29일 계속 떨어지는 지지율에 "차에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있다."라는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연상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아서 그냥 어그로인 것으로 보인다. 가오슝시의회의 이에 대한 질의에 가오슝시청 막료들은 "있음과 없음 사이"라는 애매한 답을 하여 한궈위 편을 들었다. #
2019년 11월 1일 타이베이 대공습을 모르는 한궈위가 2차 대전 때 타이베이는 미국에 폭격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
2019년 11월 11일 민진당에 차이잉원라이칭더 러닝메이트가 정해지자 "금병매반금련무대가 한 이불을 덮은 것 같다"라고 망언을 했다. # 이에 대해 한궈위는 그 말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
2019년 12월 29일 열린 TV 토론회에서 뜬금없이 같은 당의 마잉주 전 총통을 나약하다며 디스했다. 이에 열받은 마 전 총통 측은 즉각 반박문을 배포하며 # 자신은 나약하지 않다고 했다.
총통 선거를 6일 앞둔 2020년 1월 5일 신베이시 연설에서 뜬금없이 "중학교 때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 다리가 하얗고 예뻐서 매일 다리를 보느라 성적이 떨어졌다"라고 성적 발언을 했다. #

5. 기타


  • '다니엘 한'(Daniel Han)이라는 영어식 이름도 쓴다. 그가 시장 취임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집무실 사진의 명패에도 쓰인 것이 확인되었다.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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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대머리를 부각시킨 캐릭터를 제작해서 선거에 활용했다. 이를 활용한 고량주 광고도 제작되었다.
  •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도중에 자기 이름에 한국(韓國)이 들어가는 것을 두고 질문이 나오자 "한국에서 가오슝으로 관광객을 늘릴 방법을 찾을 것.[50] 한국은 매우 중요한 대만의 파트너 국가이다."라 말했다. 시장 취임 이후 염태영 수원시장과 만나 우호협력을 체결하였다.#
  • 아내 리자펀 (李佳芬)도 정치인인데, 윈린현 지방의원으로 2004년부터 3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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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궈위의 1남 2녀중 장녀인 한빙(韓冰, 사진 가운데)은 올해 25세로, 캐나다에서 유학하고 있다가 아버지의 선거유세를 적극적으로 도운 덕분에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딸이 현지에서 청순한 외모로 인기가 상당히 많다. 아버지의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휴학까지 하고 한궈위가 "(네가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도) 내가 낙선하면 나 싫어하게 되겠네?"고 물었는데 "그래도 아빠를 계속 응원하겠다"고 답변하는 등 이런 가정적인 면모 역시 시너지 효과를 내서 아버지의 인기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아버지의 당선 이후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총통 선거 전날 마지막 가오슝 유세에서 꽃다발을 들고 나와서 아버지께 드리고 지지자들 앞에서 한궈위 지지 연설을 했다.
  • 이름인 한궈위는 단어 '한국어'의 중문 발음이기도 하다.[51] 그리고 마지막 글자인 유(瑜)는 쯔위의 이름 '위'에 쓰이는 바로 그 글자다. 2년전 대선에서 쯔위 사건이 선거를 민진당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었다는 걸 생각하면 미묘한 우연의 일치. 게다가 한궈위는 이름에 '한국'이 들어가고, 쯔위는 한국에서 아이돌 활동을 한다.[52] 한궈위는 정치인이고 쯔위는 본의와 무관하게 정치에 말려들었다는 점이 다르지만.
  •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정치인이다. 특히 중국 국민당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던 가오슝에 스스로 내려가서 중앙당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개인기로 가오슝 시장에 당선되고 차기 대선주자 1위까지 등극하니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던 국민당[53]에서는 한궈위를 초청 형식으로 경선에 참여시켜 끌고와 대선후보로 차출했다. 그런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각종 실언 등의 여파로 한궈위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정작 한궈위를 데려온 국민당 주류는 한궈위를 모른척 해버렸고, 나중에 주민소환투표 때도 별다른 지원사격을 하지 않아 한궈위가 파면되도록 내버려뒀다. 한궈위가 이렇게까지 몰락한 데에는 본인의 망언 등 자업자득도 있지만 어찌보면 국민당 주류의 감탄고토토사구팽당한 셈.
  • 범록연맹 지지자들로부터는 친중(친중공)의 대부 격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친한 보수 세력에 의하면 이건 색깔론적인 측면도 있는 게 범람연맹 전체적으로 보면 친중 색채가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 부정론 : 한궈위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터지자마자 일국양제 거부 선언을 강하게 했으며, 중국 공산당 측이 대만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양안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TV 토론회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가오슝 시장 재직시절 중국의 대만판공실[54]을 찾은 걸 문제삼자 민진당셰창팅도 가오슝 시장 재직 시절 대만판공실을 찾지 않았냐고 차이 총통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 긍정론 : 중공의 첩자였다고 주장하는 왕리창은 중공 정부가 한궈위에게 34억원의 선거자금을 댔다고 주장했다. 범록 측에서는 한궈위가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하고 일국양제 거부 선언을 한 것은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반론한다. 실제로 중국 관영언론들과 CTi[55]는 다른 국민당 정치인과 비교해도 한궈위를 아주 찬양하듯이 띄워주기도 했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0
제12대 지방의회 선거 (타이베이현의회 의원, 제2선거구)
중국국민당
'''10,173 (8.02 %)'''
'''당선 (7위)'''
'''초선'''
1992
제2대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현 선거구)
중국국민당
'''81,885 (5.89 %)'''
'''당선 (3위)'''
'''초선'''
1995
제3대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현 선거구)
중국국민당
'''59,109 (4.18 %)'''
'''당선 (5위)'''
'''재선'''
1998
제4대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현 제3선거구)
중국국민당
'''46,650 (9.93 %)'''
'''당선 (3위)'''
'''3선'''
2018
제2대 지방공직인원 선거 (가오슝시장)
중국국민당
'''892,545 (53.86 %)'''
'''당선 (1위)'''
'''초선'''[56]
2020
제15대 정부총통 선거
중국국민당
5,522,119 (38.61 %)
낙선 (2위)


[1]신베이시 중허구[2] 군에서 예편하기 전 편입하여 졸업하였다.[3] 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現 신베이시에서 3선을 하였다.[4] 일단 韓이 성씨고, 國가 형제들의 돌림자라 본명이 이렇다(...) 그래서 대만 방송에서 한궈위 때문에 한국을 뜻하는 중국어 발음 ‘한궈’가 이전보다 자주 들리다 보니, 이를 알아듣는 한국인들은 꽤 묘한 기분이라고 한다. 한국 한자음으로는 한국유.[5] 한궈위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던 5월에 나온 방송인데, 공교롭게도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이후로 인기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6] ‘동아시아 대학원’. 대만의 대학교들은 한국의 대학원에 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에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고(그래서 대학원생을 연구생研究生이라 부른다), 진짜 연구기관에는 '연구중심'(한국식으로 연구'센터')이라는 명칭을 붙인다.[7] 본래 1/3 투표였으나, 당시 리덩후이 총통의 지휘하에 국민당이 날치기로 선거파면법을 개정해서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지금의 1/4 투표가 되었다. 대만은 국민소환과 주민소환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그 기준도 같다.[8] 대만어로 '베차랑', 야채 장수라는 뜻이다.[9] 6명의 후보중 4위. 여기서 당선된 인물이 바로 우둔이이다.[10] 사실 가오슝 첩운 계획이 삼천포로 빠진 제일 큰 이유는 가오슝 첩운 순환선 2차구간 이후가 노면전차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해당항목 참조.[11] 정치에서 Flow라는 단어의 번역에 대해 일본 쪽 용어를 받아들인 한국과 독자적인 번역한 중화권의 용어 차이로 일본과 한국은 Flow를 정치권 이슈에서 風(바람)으로 표현했고, 중화권에서는 Flow를 派(파도)로 번역했다. 파도의 흐름이라는 뜻에서 대만에서 ‘한류’가 된 것.[12] 가오슝시장 출마 이전에 타이베이 농산물 도매공사의 총경리로 일했던 것을 빗댄 표현이다.[13] 그런데 이 발언의 여파 때문인지 마잉주 전 총통은 한궈위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홍콩 민주화 운동 여파로 인기가 떨어지는 등 각종 악재가 겹쳤음에도 나몰라라 했고, 총통선거 이틀 뒤에야 유세장에 얼굴을 비쳤다.[14] 1996년 직접선거 도입 후 대만의 역대 총통들은 모두 최고 명문대학인 국립대만대 출신이고, 특히 2000년 이래 당선된 3명은 국립대만대 법대 동문들이다. 한 시장의 발언은 이들을 기득권층으로 몰면서 자신이 일반 대중들과 더 친숙한 인물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15] 하지만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1년 전 가오슝시장선거에서는 한궈위 본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이 참신함으로 여겨져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은 1년 가까이 대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면들(주로 부정적인)이 드러났고, 홍콩 시위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친중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해 역풍을 맞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초반에 차이 현 총통보다 지지율이 앞서다가 도리어 역전당하고, 그 격차가 10% 이상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도 지방선거 승리때와는 큰 차이다.[16] 해당 공약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유물들을 촬영 및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변경했다. 하지만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고, 디지털화 작업도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어서 급조된 공약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17] 2019년 3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측치 2.4%(전년동기대비)보다 높은 2.9%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반사이익을 대만이 일부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 있던 금융회사들은 싱가포르로 투자했지만 홍콩에 있던 IT 기업들이 대만에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18] 해당 인물은 당시 대만에서 공작을 펼치기 위한 신분 위장 목적으로 한국 여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19] 주리룬도 2016년에 주민 소환 투표의 피선거자가 될 뻔 했다가 간신히 파면 되는것은 면해서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20] 가오슝에서 61만여 표(35%)를 얻으면서 2년 전 시장 선거 때 얻었던 89만여 표(53%)의 3분의 2 정도밖에 얻지 못했다. 입법위원 선거에서 가오슝 지역을 민진당이 석권한 것도 앞으로의 시장 업무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21] 그동안 가오슝이 타이난과 함께 민진당의 아성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만큼 1년여 전 국민당 후보인 한궈위가 당선된 것이 더 이례적이었던 것.[22] 민진당의 텃밭에서 승리한데다 한 때 대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정치인 이였으니, 국민당의 입장에서도 한궈위를 총통 후보에 내세워서 정권을 탈환하는 게 더 수월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고, 한궈위 본인 입장에서도 자신의 인기를 등에 업어 더 높은 자리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대선 4개월 전까지 한궈위가 여론 조사에서 1위였다. 홍콩사태의 격화로 친중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서 낙선한 것이지.[23] 한 때 마잉주 총통의 후임으로 국민당 주석까지 맡고 훙슈쥬의 대타로 대선까지 출마했던 주리룬의 경우에도 2016년 총통 선거에서 패하고 신베이 시장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국민당의 주요 인물이기는 하지만 2020년 국민당 총통후보 경선에서 3위에 그치는 등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앞으로 한궈위의 위상 역시 예전만 못할 것으로 보인다.[24] 선거 후의 기자회견은 보통 당선된 측에서 하지, 낙선된 측에서는 패배 인정 발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차이잉원은 2012년 낙선 당시 대선 패배 인정 연설에 앞서 민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25] 그동안의 여론조사도 그렇고, 패배는 그 전부터 직감했을 것이다.[26] 현 시점에서 국민당의 새 주석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마잉주 전 총통, 장제스의 증손자로 최근 입법위원으로 재선되고 미남으로 인기가 있는 장완안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딩서우중 전 의원이나 뤼슈옌 타이중 시장, 허우여우이 신베이 시장 등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새롭게 떠오른 거물급 정치인들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27] 2018년에 한궈위와 시장직을 놓고 경쟁했던 천치마이도 한궈위 시장의 파면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28] 한궈위가 결과에 승복할 경우[29] 한궈위가 결과에 불복할 경우[30] 다만, 한궈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 할 경우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데, 이는 최대 6개월이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은 가오슝 시장직을 유지한다.[31] 원래 선거 당일 날씨가 좋지 않으면 투표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일례로 18대 총선 당시에도 비로 인해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32] 투표율 봉쇄조항이 있다면 이게 합리적인 투표참여이긴 하다. 굳이 참여해서 투표함을 열게하느니 정치적 무관심 층과 암묵적 동맹을 맺어 투표함 개봉을 막는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도 투표거부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봉쇄조항을 넘지 못했으며 시장이던 오세훈이 사퇴하는 건으로 마무리되었다.[33] 대만 북부 출신인 한궈위와 달리 이 사람은 가오슝 출신이며, 2010년부터 시의원을 하면서 천쥐 시장을 맹렬히 공격하고, 한궈위 시장 때에는 국민당 이외의 시의원들의 질의 시간을 줄여버리는 등, 한궈위의 호위 무사로 활약했다.[34] 1993년생으로 초선 시의원이다.[35] 가오슝 이외의 한궈위 지지자들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한궈위 파면을 이끈 입법위원들을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타이중의 한궈위 지지자들은 대만기진의 천보웨이(陳柏惟) 입법위원을 소환환다는 식이다.[36] 과거 국민당에서 나와 '신당' 소속으로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범람연맹의 표를 분산시켜 천수이볜을 타이베이 시장으로 당선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사람이기도 하다. 현재도 TVBS에서 정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진당이 당선되면 중화민국이 망한다."라는 진영 논리는 이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2002년 신당을 나온 이후 최근까지 당적이 없었다가 2021년 2월 중국 국민당에 당적회복신청을 한 후 다시 국민당원이 되었고, 이로 인해 유력 차기 당주석과 더 나아가 유력 차기 국민당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면서, 대만 정치계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후 다소 거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최근 대만 보건당국의 백신구입과정을 두고 '좀도둑' 같다고 하거나 심지어 천스중 보건부장을 향해서는 '''사람들이 하도 당신한테 침을 뱉어 익사할 지경이'''라고 맹비난하였다. #[37] 실제로 2020년 총선 당시 대만민중당은 약 11%를 득표하여 민주진보당의 표를 4분의 1 가량 잠식시켰다.[38] 불과 2년 전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천치마이 후보는 이번 재보궐 선거보다 많은 74만여 표를 얻고도 44%에 그치며 한궈위에 졌는데, 이번에는 67만여 표를 얻었는데도 7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39] 타이베이와 신베이 지역은 한궈위의 고향이자 입법위원으로 정치적 생활을 했던 곳으로, 한궈위가 외성인 출신이고 농산물 시장 근무 경력도 있어서 한궈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2018년 이전까지 거의 모든 공식적인 활동을 대만 북부에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베이의 경우 현직인 국민당 소속 허우여우이 시장이 초선이기 때문에 커원저 시장이 2022년을 마지막으로 떠나는(중화민국의 지방단체장은 3선이 금지되어 있다.) 타이베이 시장 선거 출마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40] 선출직 공무원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서 권력을 위임받고 집행하기 때문이다. 주민소환은 선출직 공무원의 권력을 직접 회수한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당신은 정치가로서 소질이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증한 것이다. 주민소환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없는 한, 다른 곳에서 정치인생을 이어가고자 하더라도 '주민소환 당한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어디서도 정치인생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국민들이 공식적으로 파면에 찬성한 정치가를 당의 대표로 선임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41] 한궈위는 커원저 시장 밑에서 타이베이시농수산유통공사의 사장을 지냈다.(2015년 ~ 2017년)[42] 중화민국의 지방단체장은 3선이 금지되어 있어서 2022년에는 커원저 시장도 퇴임하게 된다.[43] 대선 후보 등록을 3주 정도 앞둔 2019년 10월 갑자기 국민당 주류 인사인 루슈옌 타이중 시장이 한궈위 시장 대신 주리룬 전 신베이 시장이 대선 출마해야 한다며 한궈위를 흔들었다. 한궈위가 "이럴 거면 나를 왜 대선 후보로 만들었나?"며 거세게 반발하자 주리룬 신베이 시장이 자기는 대선 출마할 생각 없다며 간신히 수습했다. 당연히 국민당 주류는 한궈위 선거 유세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2020년 들어서도 국민당 지도부는 한궈위 유세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총통 선거 이틀 전이 되어서야 타이베이 유세에서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한궈위 지지를 호소했다.[44] 파생되어서 차이잉원의 지지층을 英粉, 커원저의 지지층을 柯粉이라고 한다.[45] 원문을 살리면 "잡고 일어나지 못하는 유선(扶不起的阿斗)"이라는 뜻이다.[46] 한궈위의 폭발적인 인기는 가오슝 시장 선거 당시 대머리를 내세워 인기를 끈 것이 시초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오슝에도 한궈위 지지자들이 꽤 있는 편이다.[47] 국민소환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만에서는 입법의원과 총통까지 소환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모든 선출직의 파면이 가능한 셈. 실제로도 천수이볜마잉주 전 총통 모두 야당에 의해 소환될 뻔 한 적이 있었다.[48] 1958년 중국과의 진먼 포격전을 기념하는 날이다.[49] 대만 정치인들 가운데 영어 예명을 함께 쓰는 사례로는 쑹추위 친민당 주석의 '제임스 쑹', 주리룬 전 신베이시장의 '에릭 주'가 있다. 사실 정치인들 뿐만 정규 학교교육을 받은 국민들 거의 대부분은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국(Kim, Lee 등)이나 일본 이름(Tanaka, Sato 등)에 비해, 중화권 이름은 서양인들에게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예 영어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들이 많다. 미국 및 서구권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생긴 현상. 특이한 경우로는 로마자로 쓰긴 하지만 영어가 아닌 일본어식 이름을 쓰는 사람도 있다. 자기 이름의 일본어 음독인 Kiku를 쓰는 천쥐가 좋은 예.[50] 가오슝에도 나름 매력적인 관광 명소가 많기는 하지만, 타이베이와 근교 지역과의 거리 차이 때문인지(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로 떨어져 있으니까) 한국인 관광 실적은 저조한 편이었다가 여행예능 촬영 및 일본 불매운동 및 홍콩 민주화 운동이 겹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가오슝 방문 한국인 숫자가 상당히 늘었다. 가장 쉬운 것은 가오슝 국제공항한국으로 이어지는 직항편을 늘리는 일인데 이걸 하려면 가오슝 공항 확장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가오슝 공항 확장은 천수이볜 때 추진됐으나 타이완 고속철도 개통 이후 대만 국내선 항공이 멸종하면서 취소되었는데, 한궈위는 가오슝 공항 확장도 가오슝시의 예산이 확보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공약했다.[51] 韓國語도 중문으로 한궈위라고 읽는다. 다만, 한국어의 語는 3성으로, 한궈위 당선자의 瑜는 2성으로 읽는다. 그런데 앞의 궈(국)의 성조가 2성이여서 실제 발음은 거의 차이가 없다.[52] 때문에 중국 사이트에서 둘의 이름을 동시에 검색해보면 그쪽 사정을 모르는 중국인들은 한궈위가 쯔위의 별명(한국+쯔위)인줄로 착각하기도 한다.[53] 당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인기가 없었긴 했지만 국민당의 주리룬이나 우둔이같은 기성 정치인들은 그 인기가 없던 차이 총통보다도 호감도가 떨어져서 한궈위를 차출하지 않았더라면 승산이 없었다.[54] 중국어로 사무실을 판공실이라고 한다.[55] 대만의 보수성향 주요 종합편성채널이였다. 친중공, 친범람 편향 보도로 악명 높았지만 2020년 말에 면허를 연장해주지 않아 폐지되었다. (#)[56] 2020년 6월 6일 주민소환투표 결과에 의해 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