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독립운동

 




'''중화민국이라는 허구의 국명을 탈피하고 새 헌법에서는 중국과 혼동될 수 있는 국명, 국장 등의 요소를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

리덩후이, 2006년

'''대만과 중국 각각에 하나의 나라가 있다.(台灣中國、一邊一國)'''[1]

[2]

타이완 독립운동 진영의 구호.

'''중국은 대만이 필요하지만, 대만은 중국이 필요없다.(中國需要台灣、台灣不需要中國)'''

영화 <배반당한 포모사>(Formosa Betrayed: 被出賣的臺灣) 중에서.

타이완 독립운동
臺灣獨立運動 (臺獨)
台灣獨立運動 (台獨)

[image]
<colbgcolor=#018002> 타이완 독립운동의 상징인 대만기(台灣旗)
영어
Taiwanese Independence Movement
중국어
台灣獨立運動
Táiwān dúlì yùndòng (표준중국어)
Tâi-uân to̍k-li̍p ūn-tōng (대만어)
일본어
台湾独立運動
1. 개요
2. 역사
3. 전개 양상
3.1. 민주화 이전
3.3. 대만 정명(正名)운동
3.4. 여권 스티커 논란
3.5. 외성인, 본토인에 대한 시각 차이
3.6. 유엔 가입 문제
3.7. 절충안
4.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
4.1. 타이완은 중국의 식민지이다
4.2. 타이완은 중국과는 별개의 완전한 독립 국가이다
4.3. 타이완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극우에 호의적이다
4.4. 타이완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친중파이다
4.5. 대만은 소수의 중국계가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4.6. 대만 독립주의자들은 중화민국의 잔재를 청산하기를 원한다
5. 대만 독립 시 국기 도안
6. 대내외 반응
7. 만약 대만공화국 또는 대만국이 새로 건국될 경우
7.1. 국가 상징물
7.2. 외교
7.3. 정치
7.4. 행정구역
7.5. 사회
7.6. 교통
7.7. 국제정세
7.8. 군사
8. 관련 문서


1. 개요


대만중화민국에서 독립시키자는 운동이다.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그냥 중국이라고 하고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과 별개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개념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홍콩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립시키려는 홍콩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립시키는 운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 서술되는 대만의 현대사를 알아야 이 운동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두 개의 중국과는 다르다.
좀 더 기술적으로 정의하면 독립주권국가인 '''대만공화국'''(臺灣共和國) 또는 '''대만국'''(臺灣國)의 건설을 주장하는 일련의 운동을 말한다. 약칭으로 '''대독'''(臺獨 또는 台獨)이라고 한다.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분리된 주권 국가임을 주장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대만 독립운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온건한 대만 독립론자 중에는 이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대만 독립운동은 실제 전개 양상도 대단히 복잡하다. 본래 대만 독립운동을 추구했던 민주진보당[3]이 '''대만'''의 '''지배자'''인 중화민국의 집권당이 되었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집권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옆에 거대한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 때문이다. 중화민국(중국)과 대만이 완전히 단절하지 않으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측의 하나의 중국 논리를 극복할 수 없기에 대만 독립운동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만 독립운동 찬성론자들은 대만이 중국에 속해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국제적인 미승인국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이러한 관점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 독립운동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문서는 대만독립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강경론)에서 서술된 내용이 다수임을 감안하고 실제 대만 사람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읽어야 한다.[4]

2. 역사


사실 대만 본성인들도 대만일치시기에는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상당히 강했으며 1911년 신해혁명에 호응하는 봉기가 일어날 정도였다. 많은 대만 본성인들이 17~18세기에 푸젠성 지역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이고, 복건 성과 긴밀한 연결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에 비해서 일본이 대만에서는 상당히 유화적인 통치를 한 이유로[5],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종전 직후 대만에서의 일본 철수를 아쉬워하던 대만인도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복잡한 사정은 제쳐두고서라도, 대만 사람들이 일본인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 하고 2등 국민 취급당하는 것은 역시 다른 식민지 지역과 다를 바 없었으며 전쟁 수행으로 인해 타이완 민중의 삶은 고달파졌다. 타이완 총독부가 해체 직전에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를 후원하기도 했지만 세가 매우 미약했다. 그렇기에 대만이 중국에 반환되고 국민혁명군(이후 중화민국 국군)이 대만에 상륙했을 때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환호했다. 자신들과 같은 한족이 다수인 중화민국이 자신들을 2등 국민이 아닌 대륙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2.28 사건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6] 최소 1만 8천명, 최대 4만명에 달하는 본성인[7] 이때 학살당했으며 그 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도망쳐 온 뒤에도 외성인이 사회 주도세력으로 활동하여[8] 민주화 이전까지 본성인의 힘이 위축되었다. 국부천대를 전후해서 국민당을 따라 들어온 한줌도 안되는 외성인들이 정치권과 군부,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주도권을 쥐고 인구의 절대 다수를 자치하는 본성인들은 쩌리 신세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이에 '대만인은 대만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대만 고유의 민족의식이 싹트게 되어 대만 독립운동이 급성장하게 된다.
그러니까, 대만은 중화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반환 후에는 2.28 사건을 겪고 국민당 정권과 외성인에게 차별받는 등 중화민국과 친할래야 친할 수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져서 도망쳐온 섬이 자기네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대만이었더라는 것이다.''' 즉 현재의 중화민국은 자기가 탄압한 영토의 일부 지역으로 도망쳐 와 사실상 본토로 쓰게 된, 전세계적으로 통틀어 봐도 정말 독특한 정권인 셈이다.
대만 독립운동 역시 홍콩 독립운동[9]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대만에서 일본으로 복귀하자는 주장도 점점 득세하고 있다. 대만의 중화민국 반환을 선언한 카이로 선언에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만의 중화민국 귀속을 부정하고 대만의 지위가 국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긴 한데, 이들 중에서도 공식적으로 일본으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크지는 않다. 카이로 선언과 달리 국제법적 구속력이 확실하게 있는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이 대만을 포기할 것이 확실히 규정되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재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성향의 학생운동인 NL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2.28과 비슷하게 중앙정부에 의한 대민학살(5.18 민주화운동)을 겪었기에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컸고. 또한,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대만을 중국(정확하게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구 중화민국 정부의 잔당)의 식민지로 규정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NL은 북한을 한민족사의 정통 국가로 바라보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지향하였다면, 대만의 독립세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사의 정통으로 인정하기는 하나(국공내전에서 이겼으니까), 대만이 중국에 속함은 거부하고 또한 중국과의 통일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독립을 지향하는데 중국과 통일을 주장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21세기에 대만 학생운동권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 사례를 참고하기도 한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하여 세계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꺼졌던 대만 독립론의 불꽃이 서서히 다시 타오르고 있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이 중국이 아니라고 하면서 반중국 분위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전개 양상



3.1. 민주화 이전


국공내전 말기 미국이 타이완을 별개의 국가로 독립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검토 단계에서 중단되었고 국민당이 1955년 쑨리런 쿠데타 모의 사건을 구실로 쑨리런[10]을 연금시키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1950년 즈음에 일본, 홍콩, 미국, 캐나다의 본성인 화교들이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1971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중화민국이 쫓겨나기 직전 실제로 대만 공화국이 건국될 뻔하기도 했다. 당시 공산권과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의 지지속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CHINA) 대표 권한을 인정하는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중화민국을 대신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게 되자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 장제스의 측근들은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탈퇴하는 대신 '''중화대만공화국(Chinese Republic of Taiwan)'''이라는 새로운 국호로 재가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11][12][13]그러나 쑹메이링의 강경한 반대와 장제스 본인에게 아직 남아 있던 본토에 대한 미련으로 이 제안은 거부되었고, 결국 대만은 이 때 축출된 이후 아직까지도 UN에 재가입하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 국가이지만,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대만의 민주화운동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국민당 독재시기에 민주화나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反국가적인 것으로 가차없이 탄압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몰리기도 했다. 민남어를 비롯, 본성인 문화도 강력히 탄압되었다. 당시 대만에서 얼마나 본성인 문화를 탄압했냐면, 각급학교에서 민남어를 쓰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벌을 받을 정도였다.

3.2. 리덩후이양국론


민주화 이후 최초의 민선 총통이 된 리덩후이는 예전의 정책에서 변화를 가하여, 중국 대륙 + 홍콩 + 마카오를 대표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 펑후 + 진먼 + 마쭈 등으로 구성된 중화민국 양 국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로서는 중공을 부정하던 과거에서 일정부분 양보한 정책이나, 정작 중공측에서는 심하게 반발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었기 때문. 허나 정작 대만 내 범람 연맹에서는 조용했는데 애초 리덩후이가 국민당 소속 총통이었던데다 이 때까지는 양국론이 중화민국이라는 주권 국가를 강조하는 차원으로 해석되어서.

3.3. 대만 정명(正名)운동


대만화(台灣化)라고도 한다. 대만본토화운동(Taiwanization)의 일환이다.
'중국-, 중화-'라는 접두어를 정부기관, 공기업 등에서 전부 삭제하고 '대만-'이라는 접두어로 바꾸는 정책을 말하며, 본래 독립을 지지하는 민간 단체에서 주도하던 운동이었지만, 천수이볜 정권 때 공식적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일련의 변화를 보자면.
  •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에 기재된 '中華民國'을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으로, 'Republic of China'를 'Republic of China (Taiwan)'이라고 고쳤다.
  • 국영기업인 중국석유는 대만중유(台灣中油; CPC Corporation, Taiwan)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중화우정(中華郵政, China Post)은 대놓고 대만우정(臺灣郵政, Taiwan Post)으로 고쳤다. 중화민국 정부가 출자하는 중국강철(中國鋼鐵, China Steel)도 비슷하게 개명을 하려 하였으나 이미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기가 힘들어 결국 개명하지 못했다.
국민당의 마잉주가 집권한 뒤에는 이 조치들의 일부를 취소했으며 다시 원래대로 중국-중화란 이름으로 복귀했다.
  •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 등의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은 '中華民國'으로 되돌리되 영어판에서는 'Taiwan'을 삭제하지 않았다. 중국어권에서는 중화민국만 기재해도 중국 대륙과 혼동하지 않으므로 굳이 대만이라고 병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했지만, 중국어권 밖에서는 혼동하기 때문에 Taiwan의 병기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여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다.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여 이 조치에 반발하는 일부 대만 사람들은 '대만'을 한자와 영어로 표기한 스티커를 여권 앞표지에 붙여 '중화민국'을 가려버리기도 하는데, 싱가포르에서 이 여권을 여권 변조로 보고 입국 금지를 먹여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 대만중유는 중국석유로 되돌리고 있으나 이미 교체 작업이 상당히 진척돼서 지체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만우정은 중화우정으로 원상 복구했다.[14]
다시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집권하자 변화가 나타났다.
  • 대내적으로 '중화민국 대만'이라는 합칭을 사용하여 중화민국의 실체가 중국이 아닌 대만임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 대외적으로 Republic of China (Taiwan) 병기 표기를 다시 적극적으로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 기관의 영문 명칭이 '명칭 of the Republic of China' 식의 표기에서 '명칭, Republic of China (Taiwan)' 식으로 바뀌었다.
  • 2020년 공개된 새 여권 표지에서 REPUBLIC OF CHINA를 작은 글씨로 국장 테두리에 옮겨 적어 잘 안 보이게 하고 대신 TAIWAN을 크게 쓰도록 바꾸었다.[15] 외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지만 대만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 한편 범록연맹 일각에서는 중화민국의 영문 국호를 음역으로 고쳐 Republic of Chunghwa[16]로 바꾸어 China를 지우자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3.4. 여권 스티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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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진영에서 현행 대만 여권의 '中華民國' 및 'REPUBLIC OF CHINA' 문구 위에 '台灣國' 'REPUBLIC OF TAIWAN' 스티커를 붙이고 중화민국 국장 대신 대만 고유의 문화를 상징하는 원형 스티커를 붙이는 운동을 벌였다.# 이는 대만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정부에서는 여권을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한 상태. 중화민국 외교부는 이러한 행위가 '공문서' 변조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며 이를 금지하는 여권조례시행세칙 수정안을 마련, 2016년부터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운동 초기에 스티커를 붙인 여권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으며, 해당 운동가는 미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대륙(!)''' 등에서 입국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국경 검문이 강화되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싱가포르 이민국에서 해당 스티커 여권으로 입국심사를 받던 대만인 3명을 입국거절도 모자라 '''추방'''명령을 내렸다. 대만의 미국 대사관 격인 미국재대협회(AIT)는 대만 외교부의 스티커 부착 관련 질의에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여권을 변경하는 행위는 여권 훼손에 해당하며 입국 거절의 위험성을 높인다."라고 밝혔으며,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도 스티커 부착 여권을 제시할 경우 2차 검색대에서 '강도높은 심문'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심지어 일본 공항에서도 대만인 여행객 일부가 스티커를 뗄 것을 요청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 추방시키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홍콩, 마카오 등도 마찬가지. 관련 기사 결국 2016년 2월 스티커를 만드는 단체에서 이 스티커 여권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 여권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는 국가공신력을 떨어뜨리는 위험한 행위로 국적에 대한 임의변경으로 밀입국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타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여권과 색이 비슷한 베트남 여권에 '대한민국' 스티커와 무궁화 국장을 붙일 경우 내지를 보지 않으면 한국 여권인지 베트남 여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또한 대만의 국가공신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미국 사증 면제 프로그램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image]
이런 물건도 있다. 대만 여권 커버인데 그냥 기존 중화민국 여권 위에다가 씌우기만 하면 된다. 이쪽은 스티커와 달리 외국 공항·항구의 출입국 심사 때 문제가 생길 경우 즉각 대처할 수 있다. 그냥 벗기기만 하면 원래의 중화민국 여권 표지가 보이기 때문. 아무래도 위의 스티커 파동 때문에 앞으로는 독립론자들 사이에 이런 대만 여권 커버가 더 애용될 것으로 보인다.[17] 참고로 대만 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이나 국호 변경 운동이 벌어지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물건들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18] 한편 2020년대 들어서 기존 중화민국 국호를 유지하되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Chunghwa로 고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한 네티즌이 여기에 맞춰 또 다른 가상의 대만 여권 표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해당 이미지는 이 문서의 절충안 단락에 제시돼 있다.


3.5. 외성인, 본토인에 대한 시각 차이


현재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중국본토인들을 이웃나라 사람으로 여기며, 극단적인 대만 독립파는 외성인을 포함한 본토 출신을 같은 민족으로조차 보지 않는다. 당, 송, 명, 청 이런 나라들도 자국사가 아니라 외국사로 본다. 이들에 의하면 대만은 중국이 아니기에, 1949년 이전에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들은 같은 국가 내 타 지방으로 이주해 온 외지인이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이민온 이민자 내지는 침입자, 정복자라고 본다. 이는 국공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으로서 현재 대만에 거주 혹은 체류중인 본토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국부천대에 대한 시각도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는 '천도', '피난', '망명', (지금은 의미가 거의 없어졌지만, 대륙 수복을 전제한)'임시정부'이고, 독립운동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침략' 혹은 '이주'이다. 다만 국공내전 직후 들어온 외성인에 한해서는 이웃나라 중국의 공산정권을 피해 대만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이민자나 대만을 정복한 새로운 정복자로서 바라보며[19],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단어를 내포하는 '외성인'보다 새로운 이주자라는 뜻에서 신주민(新住民, Newcomers)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이는 독립운동의 상징가인 대만취청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3.6. 유엔 가입 문제


1971年中華人民共和國進入聯合國,取代中華民國,台灣成為國際孤兒。為強烈表達台灣人民的意志,提升台灣的國際地位及參與,您是否同意政府以「台灣」名義'''加入'''聯合國?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유엔에 가입했으며, 이에 대만의 대표권이 상실되었습니다. 이제 대만의 적극적인 국제사회 참여를 위해, 여러분은 정부의 대만 명의 유엔 '''가입''' 신청에 동의하십니까?

-대만의 유엔 '''신규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 질문 (천수이볜 발의)

您是否同意我國申請'''重返'''聯合國及加入其它組織,名稱採務實、有彈性的策略,亦即贊成以中華民國名義、或以台灣名義、或以其他有助於成功並兼顧尊嚴的名稱,申請重返聯合國及加入其他國際組織?

여러분은 '중화민국' 혹은 '대만' 명의로 유엔 및 산하 기관에 되돌아가는(重返) 것에 동의하십니까?

-대만의 유엔 '''재가입'''을 묻는 국민투표 질문 (샤오완창 발의)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 유엔 가입은 1971년 이후 상실한 회원국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게는 '대만' 국호로 유엔에 '''새로이''' 가입하는 것이다. 용어 사용을 봐도 전자는 "Taiwan should RETURN to the UN"이고 후자는 "Taiwan should ENTER the UN"이다. 다만 일반인들은 이런 용어를 엄밀히 따지지 않기 때문에 별 구별없이 쓰기도 한다.

3.7. 절충안


대만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독립국가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 관점은 대만 독립이 가져올 혼란이나 양안 통일이 대만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거부감 사이에서 타협점으로 나온 방안으로 많은 대만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역시 반대한다. 그러나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하는 강경한 대만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현상유지로 묵인하고 있다. 2015년부터 이런 노선에 대해 '중화민국 독립'[20]을 줄인 '''화독'''(華獨) 또는 '''국독'''(國獨)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대독(대만 독립)과 비슷하지만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한다는 점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21] 단 화독이라는 이름은 최근에 붙었어도 그 논법은 더 오래 전부터 쓰여 왔다.
[image]
화독과 대독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한 이미지.
또, 이와 별개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더 부여한 표현은 '대륙 독립'을 줄인 '''육독'''(陸獨)이라는 논법도 있다. 독립은 대만이 아니라 대륙이 했다는 말로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중(화민)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했다는 말. 화독과 육독의 차이점은, 전자는 어쨌든 대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면 육독은 중화민국이 정통 중국임을 강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대만인 다수가 중화민국이라는 국가 체제를 수용한 데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까지 겹쳐[22] 사실상 현 상태를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해 범록연맹이 기존 입장인 대독(대만은 독립국이며 중화민국이든 뭐든 '중국'이 아니다)을 수정한 게 화독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존한다는 현실을 반영해 범람연맹이 기존의 입장(하나의 중국=중화민국)을 수정한 것이 육독이다. 즉 화독과 육독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얼핏 비슷해 보여도 각각 범록과 범람이라는 정반대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2016년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는 '중화민국 대만(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이라는 대내 명칭과 'Republic of China (Taiwan)'라는 대외 명칭을 채택해 독립운동 세력이 주장해 온 '대만국', '대만공화국'보다 온건적인 자립 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 대부분의 대만인이 통일도, 독립 시도도 하지 않는 양안 간 현상 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대만인들로부터의 일정한 지지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 대만의 독립추진단체 포모사(Formosa, 喜樂島)연맹은 이날 타이베이 민진당 청사 앞에서 대만 독립을 국민투표로 가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는 민주화된 이후로 처음이라고 한다.#
두 개의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콩고 공화국콩고민주공화국의 사례[23]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베이징(China-Beijing), 중화민국을 중국-타이완(China-Taiwan) 혹은 중국-타이베이(China-Taipei)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현재 주요 국제기구와 올림픽 같은 국제스포츠대회에서는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복잡한 외교적 공방전을 통해 애매하게 묵시적으로 합의된 어정쩡한 명칭이지만, 마땅히 대안이 없어서 계속 쓰이고 있다.
중화민국 내부에서 국호를 '''중화대만공화국''', '''중화대만민주국''', '''중화대만민국''' 등 '중화'와 '대만'을 모두 넣은 명칭으로 변경하자는 논의도 있어 왔다. 자세한 내용은 하나의 중국 문서 참고.
한편 범록연맹 내에서는 중국 정체성을 지우고자 하지만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폐기하긴 어려우므로 영문 표기에서 China 대신 음역(音譯)으로 고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기존 국호를 유지하면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임을 강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2011년 민진당 소속 지방 정치인인 양창전(楊長鎮)은 《자유시보(自由時報)》에 중화민국을 Republic of China에서 Republic of Chunghwa[24]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이후 2020년 민진당 소속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인 린이진(林宜瑾)은 쑤전창 행정원 원장(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에게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Chunghwa로 바꾸자는 제안을 다시 꺼내기도 했다. 한편 2016년 역시 민진당 소속 입법위원인 왕딩위(王定宇)는 당시 외교부 부장(장관에 해당)이었던 리다웨이(李大維)에게 중화 타이베이니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영역이니 하는 대체 표기들을 일률적으로 중화민국을 음역한 Chung Hwa Min Kuo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25] 이미 일상 속 길거리에서 중화우정이나 중화전신의 간판 영문 표기로 Chungwha를 자주 보기에 생소하지도 않고 크게 거부감이 없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현실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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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 이미지는 한 네티즌이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Chunghwa나 Chunghwa Republic으로 변경한다는 가정 하에 가상의 대만 여권 표지 이미지를 디자인해 본 것이다.
한편 2020년 9월 민진당이 집권한 중화민국 정부에서 2021년부터 발행할 새 여권 표지를 공개해서 찬반 진영간 격론이 오가고 있다. 새 여권 표지는 기존과 달리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가 잘 안 보이게 국장 둘레의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옮겨지게 되고, TAIWAN(대만)이 매우 큰 글씨로 적히게 된다. 해외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한다는 게 변경 이유인데, 당연히 중화민국을 중국이 아닌 대만이 실체인 국가로 만들려는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역시 중국 국민당 등 범람진영에서는 국가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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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기존 여권 표지(2008년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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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새 여권 표지(2020년 제정)

4.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



4.1. 타이완은 중국의 식민지이다


'독립운동'의 어감 때문에 타이완이 중국(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식민지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은 단 한 번도 타이완을 실효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사실상 중국본토와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식민지라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중국 정부 또한 타이완을 자국의 한 개의 행정구역으로 인식할 뿐이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말처럼 중국 공산당중국 국민당(대만)은 대만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중국 국민당은 중국(중화민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의 집권 세력으로 중국 국민당을 선호하며[26], 중화민국의 실체를 부인하면서도 당 대 당의 자격으로 국민당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한다. 반면에 대만 독립운동 세력이 뿌리인 민주진보당 집권 시기에는 양안관계가 악화되며 양안 집권 세력간에 모든 공식/비공식 채널이 단절된다.

4.2. 타이완은 중국과는 별개의 완전한 독립 국가이다


이부분은 '''참 애매하다.''' 일단 타이완은 사실상 실질적으론 독립한 주권 국가지만 국제적으론 UN에서도 사실상 쫓겨난[27] 미승인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한다면 모르겠지만 타이완에도 중국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중국은 중화민국이다.

4.3. 타이완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극우에 호의적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아래에 후술하겠지만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일본 우익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또 그 중 일부는 우익사관에 동조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되고는 있지만 모든 타이완 독립 지지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28]

4.4. 타이완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친중파이다


역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허나 중화인민공화국 위주의 통일 지지자들도 있지만[29] 범람연맹이 연대감을 갖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며 타이완 독립운동자들과는 달리 중국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중화민국의 현상유지를 하자는 것이 원칙이다. 화독친중화민국 참고.[30] 그렇기에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친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 생각에는 자신들이 중국 그 자체니까.

4.5. 대만은 소수의 중국계가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대표적 오해. 98%의 중국계가 2%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현 대만의 주류 민족인 본성인들도 중국본토(정확하게는 푸젠성 일대)에서 유래한 한족이고 대만 원주민들은 따로 있다. 대만 원주민은 대만 국민들 중에서도 극히 소수에 불과한데, 이미 불법이주[31]가 판쳐서 대만섬에 한족이 원주민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4.6. 대만 독립주의자들은 중화민국의 잔재를 청산하기를 원한다


중화민국의 잔재를 청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독립주의자들도 있지만 대만 본토화 운동(台灣本土化運動)이라고 한족 문화를 대만 문화의 일부로 유지하자는 온건 독립 세력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따지면 대만을 지배했었고 지금도 잘만 유지하고 있는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의 잔재도 청산해야하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고[32]그 전에 정씨 왕국에서 보듯 과거 중국 정권인 명나라와 청나라의 영향도 크게 받아 대만 문화의 일부로 정착한지가 수세기가 넘었는데 이제와서 중국의 잔재를 없앤다는게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5. 대만 독립 시 국기 도안


알다시피 대만의 정식명칭인 중화민국의 국기는 대륙 시기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청천백일만지홍기다. 즉 현 대만의 국기도 중국(중화민국)을 상징하는 깃발이기 때문에 독립주의자들은 새로운 국기들을 고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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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공화국 임시 정부의 깃발. 명칭은 일월기(日月旗) 로 1956년에 가장 먼저 도안된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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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제안된 대만 공화국의 국기. 명칭은 대만동심기(台灣同心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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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깃발에서 대만 섬으로 바꿔 넣은걸로 현재 세계 각지의 대만인들을 위한 협회인 세계 대만인 대회의 깃발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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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취청기(台字翠青旗). 그러나 대만일치시기의 台[33] 자의 형태를 바탕으로 만든 문장이 그려져 있어 약간의 논란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일제강점기 휘장을 바탕으로 만든 깃발을 대한민국 국기 도안이랍시고 내놓은 수준. 위에서 설명한 여권 스티커 운동을 벌였던 천즈하오(陳致豪)가 고안했다.
이것들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제안들이 있다.

6. 대내외 반응



6.1. [image] 중화민국(대만)



6.1.1. 정치권


민주진보당대만단결연맹범록연맹에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한때 국기, 국가(國歌), 국호, 헌법까지 전부 바꾸자는 대만독립강령을 제창한 바 있으나 범람연맹 등 등 보수파의 반발로 일단은 유보한 상태이다. 강경 독립파가 아닌 이상 범록연맹이라 하더라도 중화민국의 현행 정치 체제는 존중하는 편이다. 최근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도 다소 온건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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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중화민국이 아니다''' (범록연맹의 주장)
왜냐하면 사실은...'''대만은 중화민국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범람연맹의 주장)[34]
한편 중국 통일과 대만 독립 진영 간 논쟁을 "통독논쟁(統獨論爭)"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건 양안관계, 하나의 중국 항목을 참조할 것.

6.1.2. 대만 원주민


16~17세기 본성인들이 이주해오기 이전부터 대만 섬에 거주하고 있었던 대만 원주민들은 중국 국민당범람연맹 소속 정당들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한족계 본성인들과 오랜 세월에 걸쳐 갈등을 겪었던 데다가 본성인들이 대만의 주인 행세를 하며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을 영 좋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 상세한 내용은 '대만 원주민' 항목의 '정치 성향' 단락을 참고할 것.

6.2. [image] 중화인민공화국



6.2.1. [image] 본토


'''중국 공산당이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1949년 양안분단 이래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수복하지 못한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만에 피난한 중화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국가나 정치체제와의 수교를 철저히 거부한다. 또한 '대만의 독립' 그 자체를 국가분열행위로 간주하며, 대만이 독립 시도를 보일 경우 전쟁도 일으킬 수 있도록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해두었으며, 2008년에 중화민국의 국가체제를 대만으로 전환하는 헌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할지언정 타이완 독립을 묵과하지는 않는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보내 국민투표에서 백지화(2008년 대만 총통 선거 전날 국민투표가 시행됐는데, 투표율이 50%에 미달해서 무산됐다.[35])시킨 적도 있다. 그나마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일단 '중국'의 일부라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고 92공식으로 서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기로 합의했으므로 무력행위를 쓰지 않고 대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놔두는 것이다.
2016년 대만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이 정권을 잡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우리의 대만정책은 명확하고 일관적이다. 대만 정국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이른바 대만독립 분열 행동도 결단코 굴복시키겠다'''"라고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기사
뿐만 아니라 대놓고 오성홍기를 앞세운 본토인들이 대만에 들어가 '''독립 시위대 앞에서''' 맞불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타이베이의 명동인 시먼딩에서도!). 대만 경찰은 그저 양측이 진짜로 충돌하지 않도록 막을 뿐. 그리고 그만큼 중화민국이 민주화되었다는 것도 의미한다. 오성홍기 흔든다고, 의용군 행진곡 부른다고 잡아가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시대는 끝났다.
대만 침공시 전범으로 처리하겠다는 발언까지 할 정도이다.#
2020년 5월 29일 리잔수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은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의 의미를 설명하는 인터뷰에서, 반분열국가법과 홍콩 국가보안법 등의 영향으로 타이완 독립운동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등의 반분열국가법 위반 행위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에 대해 "대만 독립을 주장하며, 정세를 오판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발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사
2021년. 중국 공산당이 대만 독립운동 세력의 진압을 위해 해외 동포의 역량을 결집해야한다는 지침을 새로 마련했다.#

6.2.1.1. 중국 민주화 세력

'''이들 역시 타이완 독립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중국 공산당 1당 체제를 완화, 해소, 혹은 타도하고 민주화를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위해 노력하는 쪽이지, 대만의 독립에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나 민주화 세력이나 국가분열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이므로 만일 이들이 집권한 상태에서 대만이 독립을 강행한다면 중국 전체 국민투표를 거쳐 대만 병합을 결정한 뒤 이를 기반으로 군사력을 동원해 독립을 저지하려고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아니면 전체 총선거를 통해 대륙을 민주화한 김에 대만과도 민주적 절차를 통한 통일을 제안할 수도 있다.
사실 반공/반체제 인사들 중, 민족주의에서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워낙 많다. 이에 따라 대만에 홍콩, 마카오와 같은 특별행정구 지위를 부여하는 일국양제 정책에는 현 중국 공산당과 동일하게 긍정적이다.
범람연맹 입장에서는 중공의 1당독재체제가 사라지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될 경우, 통일을 거부하는 실질적인 명분이 사라진 셈으로(중국 대륙의 민주화) 점진적으로 대륙과의 통일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범록연맹 측에서는 독재정권이 사라진 이상 우리는 이제 남남이라는 식으로 분리독립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자유중국대륙-자유대만으로 체제만 바뀐 채 양안관계가 이어지는 셈이이다.

6.2.2. [image] 홍콩



6.2.2.1. 홍콩 독립운동

'''타이완 독립운동의 든든한 우군 1.'''
최근들어 홍콩과 대만 양 측의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동포로서 중국 공산당의 압제에 같이 맞서는 게 아니라, '이웃나라'를 도와 공동의 적에 맞서는 것이다. 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겐 홍콩인 역시 중국본토인과 똑같이 외국인이다. 다만 본토인보다 홍콩인에 좀 더 호의적인 것 뿐.

6.3. 제3국



6.3.1. [image] 대한민국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과 실질협력 지속 증진"
북한과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양안관계의 악화로 동북아 정세가 긴장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지만 실질적 교류는 확대하는 식으로 사실상 현상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양안 문제에 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기에 대만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도 미미한 편이다. 다만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부르던 시절에 살던 어르신들은 가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36]. 그들이 배워온 바로는 중화민국이 중국의 합법 정부이고 언젠간 중화민국 주도의 양안통일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중화민국이 망명한 대만이 갑자기 독립한다고 하면... 일베저장소같은 한국의 극렬 반공 극우파도 마찬가지. 사실 대만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중국과 대만을 다른 나라로 분리해서 보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사실 현 타이완 상황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구태여 현 중국 국민당을 외세라고 볼 경우) 외세의 지배에 대한 반감도 있고, 이후 점차 높아지는 추세에 있는 반중 감정이나 쯔위 사건 등이 겹치면서, 혹은 (한족계) 본성인과 대만 원주민을 혼동해서 타이완 독립에 대해 동정적인 반응을 표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6.3.2. [image] 미국


'''미국은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대만과의 경제, 문화교류 등의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는 건 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미국은 믿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대만 관련 문서 #

본 문건에서 “국가” 또는 “국가들”에 대한 모든 언급과 관련하여 1979년판 타이완 관계법, Pub. L. No. 96-8, 4(b)(1) 조항에서 “미국법이 외국의 국가, 나라, 주, 정부 또는 그와 유사한 단체를 언급하거나 이와 관련되어 있을 때는 항상 이러한 용어가 대만을 포함하고 대만과 관련하여 적용한다”고 적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22 U.S.C. § 3303(b)(1) 조항. 따라서 이민-국적법 217조, 8 U.S.C. 1187의 법률 조항에 근거한 Visa Waiver Program에서 “국가” 또는 “국가들”에 대한 모든 언급은 대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1979년 이래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왔던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일치합니다.

-미국 국무부국토안보부사증 면제 프로그램 및 ESTA 발급 관련 설명

'''영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미중관계에 있어 중화인민공화국을 합법정부로 승인하고 있다. CIA 팩트북의 세계 국가정보를 보면 대만은 국가도 속령도 아닌 Others에 속해 있다. 그러나 대만관계법을 통해 중화민국 정부와 비공식적인 관계는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방어용 한정이지만 무기도 판매한다.
미국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 대륙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을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여 중국과 정면충돌하는 것도 되도록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대륙과는 분리된 중화민국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이다. 2015년 미국 전승절 기념 행사에서 타이완 대표를 '중화민국'으로 호칭하여 주미 중국 대사가 항의의 뜻으로 퇴장했는데, 이때도 '''중화민국'''이라고 언급했지 '대만'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대만을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 적용 대상국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중국 대륙 주민은 물론 홍콩 주민들도 미국에 갈 때 비자가 필요한 것을 보면 미국 정부가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간주한다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민주진보당의 인사가 방미할 때보다 중국 국민당의 인사가 방미할 때 더 환대를 받는 걸 보면 미국의 입장을 대충 실감할 수 있다. 다만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에 당선된 직후 국무부가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37]
부시 행정부 시절 공화당에서 대만과 재수교 떡밥을 던진 바 있으나 외교에 무지하다는 욕만 먹고 닥버로우했다.
최근, 민진당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부는 다시 대만 독립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입장은 그렇다 치고 민간에서는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단체가 몇 있다. 대만공화국의 건국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주도로, 미국에 체재하는 소수의 대만 본성인들과 소수의 일본인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38]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는 중국의 견제를 위해 대만을 유엔에 재가입(reintroduce)시키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라는 연구결과를 내기도 했다. '''재가입'''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봐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지는 불분명.
미국에는 중화민국 국적자가 두 부류로 나뉘는데 1945년 이전에 본토에서 건너간 중국(본토)인 + 1949년 이후 건너간 외성인 출신 대만인이 한 부류고, 또 다른 부류는 대만 본성인이다. 전자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며 대만독립에는 원론적으로 반대하고, 후자는 독립국가로서의 대만의 주권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가 집권하며 하나의 중국 존중 정책을 폐기할 수 있겠다는 입장을 밝혀 향후 일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미국 대사관 역할하고 있는 미국재대만협회(AIT)가 대만독립 국민투표 실시 방안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6.3.3. [image] 일본


1972년 중일공동성명 이래로 일본 정부는 대만과의 비정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 #

일본 역시 공식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하나의 중국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있어 중국과 수교하고 있고, 중화민국과는 비공식적 교류 관계만 있을 뿐 중화민국을 국가로서 승인하지는 않는다. 대만 독립 운동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 국민당의 집권을 선호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 정계에서는 대체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진보당의 집권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국력 및 중국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는 않는다.
민간 일본인의 경우 같은 섬나라로서, 혹은 예전 일본 제국시절 첫 식민지였던 점으로 인해, 대만 독립운동 지지유무에 상관없이 경제문화적인 이유로 대만에 친근감을 느끼며, 일본인 특유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중국문화 체험을 위해 대륙 대신 대만을 찾는 일본인들도 많다. 대만의 외국계 문화에서 한류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일본 문화(전직 총통일본인 코스프레를 하는 수준이니). 정치적 의견과 별개로 "중국이 대만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만의 국제사회 참여 문제에 어느정도 공감하며 필요하다면 유엔에도 (재)가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한국을 싫어한다, 혹은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대만을 싫어한다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사실 둘 다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둘 다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일본인의 경우, 좌익 일본인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제국주의국가, 중화민국을 구 독재세력의 잔재로 바라보며 반제전선으로서의 대만독립을 지지하기도 한다. 우익 일본인의 경우 그 이유가 상당히 골때리는 편인데, 아래 문단에 후술한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대만=중화민국 이렇게 두개의 중국론으로 양안관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도 있다.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郎)의 두개의 중국론에 대한 논평(일본어).

6.3.3.1. 일본의 우익 세력

'''타이완 독립운동의 든든한 우군 2.'''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나 우익 민간 인사들 몇몇은 대만 독립진영의 정치인과 개인 자격으로서 교류하고 있으며, 일본 정치인들은 대놓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거나 지원하지는 않지만 민간 우익 인사들 중에서는 중국 견제에 대한 일환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있다.
대만에서도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대만을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옹호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강대국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39] 일본 우익진영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독립진영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리덩후이친일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일부 대만 독립진영의 인사가 일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거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여 논란을 빚기도 한다. 일단 그들의 명목은 대개 '전쟁에서 희생된 대만 사람들에 대한 추도'이며, 대표적으로 쑤진창(蘇進强) 전 대만단결연맹 주석이 있다. 리덩후이는 자기 형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 리덩후이가 야스쿠니를 가는 표면상 목적이 "내 형이 합사되어있는 사당에 참배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 물론 이 신사에 합사된 대만인 전몰자들을 빼달라는 대만인들의 항의에 대해서는 이들도 침묵으로 일관한다.[40]

6.4. 해외 화교


해외의 화교들 중 외성인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이나 파룬궁 신도 등은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보기 때문에 대만 독립에 반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너질 시 중화민국이 본토를 차지하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조하는 중화권 해외 언론으로 보쉰이나 대기원시보 등이 있다. 오 사다하루의 경우 아버지가 저장성 출신으로 본인은 중화민국 국적이지만 자신을 대만인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여긴다. 그는 기자들이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지칭할 때마다 정색을 하고 강력히 부정하며 본인은 중국인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본성인 출신 화교들은 독자적인 대만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만 독립에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미국 등에서 대만의 UN 가입 시위를 벌이는 쪽은 대부분 이 사람들이다. 특히 대만계 미국인이나 일본인의 경우, 대륙 출신 구 화교나 중국 본토인, 홍콩/마카오 출신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구별하는 경향이 강하다.

7. 만약 대만공화국 또는 대만국이 새로 건국될 경우


현실적으론 반분열국가법을 내세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것이므로, 대만과 중국과의 전면전쟁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남중국해동중국해 분쟁 등으로 인해 미국, 일본 등과의 군사적 충돌이 끝내 이루어지고, '''제3차 세계 대전'''의 위험이 폭발할 수 있다. 중국이 그 충돌에서 밀릴 경우, 아편 전쟁이나 시모노세키 조약 때 처럼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중화민국을 강력히 엄호하는 미국, 일본의 주도로 하나의 중국 정책 포기 및 대만의 독립국 지위 보장을 압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적성국가와의 정면 충돌을 의도적으로 피해왔고, 일본 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쪽을 선호하며 또 일반 일본인들도 전쟁에 대해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타이완의 독립 보장이 성공할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는 예측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도널드 트럼프 정권 하에서 미국대만을 승인했으므로[41], 더 이상 중국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게 되고 있다.
이 말은 곧 대만이 중국(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둘 다)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는 의미이다.
이 문단에서는, 중화민국 정부가, 혹은 분리주의 세력의 혁명, 쿠데타 등으로 중화민국 정부가 전복된 뒤, 대만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할 경우를 가정한다. 대만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할 경우를 가정한다. 타이완 섬펑후 제도가 독립국이 된다고 가정할 때, 가장 유력한 국명은 타이완 공화국(台灣共和國, Republic of Taiwan)이므로, 본 항목에서는 독립국 국명을 타이완 공화국(혹은 대만 공화국)으로 설정하고 서술한다.

7.1. 국가 상징물


  • 대만섬에서는 새로운 국기를 제정하거나, 혹은 이라크[42]나 이집트, 스페인[43], 에티오피아[44], 냉전시대 때 공산주의 국가들[45]과 같이 종래의 국기를 수정하여 채택할 수 있다.
  • 국가(國歌)의 경우 유력한 국가 후보가 대만취청이 될 가능성이 높다.

7.2. 외교


  • 전세계에서 대만을 의미할 때 중화민국(中華民國)나 Republic of China에서 대만(台灣), (Republic of) Taiwan으로 교체될 것이다.
  • 일부 국가가 대만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대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대륙)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승인국 취급할 수도 있다.
  • 대한민국의 경우 수교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남북통일을 방해하지 않거나 북한 붕괴를 방기하는 조건으로 대만에 대한 불승인을 요구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과의 외교적 공조의 결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해체와 같은 중대사항이 발생한 경우라면, 대만과의 수교가 재개될 수도 있다.
  • 당연하게도 중화인민공화국에 수교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46] 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
  • 유엔에 '대만'(Republic of Taiwan)으로 가입을 시도할 것이다.[47][48]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이 아닌 신규 가입국 대만 공화국으로 불리울 것이다. 다만 중국이 상임이사국으로써 전국력을 총동원해서 막을 가능성이 크고, 홍콩과 관련하여 중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영국[49]과 미국등 서방권은 물론이고 같은 반서방 진영 국가인 중국과도 영 좋지 못한 관계에 놓여있는 러시아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독일, 세르비아[50], 불가리아[51] 같은 다른 서방.유럽권 나라들 역시 중국과 대만의 대립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19세기 말 처럼 중국이 아예 힘을 잃어 다른 나라에 휘둘리는 상황이 아닌 이상 대만 혼자서 지지를 얻기는 무리일 것이 있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조어도), 대만명 댜오위타이(조어대))의 영유권 분쟁이 치열해지게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댜오위타이는 독립국가 대만의 부속도서이므로 대만과 관계가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대만 정부의 영유권 주장이 약화될 수 있다. 이 경우 무주지라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도 대만이 아니라 푸젠성 부속도서라고 주장하면 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없음" 논리가 무너지게 된다. 1860년대에 대만은 푸젠성의 일부였으므로 어느 정도 근거는 있다. 1885년에 타이완 성이 독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입장에서 영유권 주장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만 국내에서도 "댜오위타이는 대만 영토"라는 인식이 강하며 일본에 조금 더 호의적인 범록연맹일지라도 주권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
  • 중국측이 남중국해에 설정해놓은 이른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은 사실 중화민국 정부가 설정한 11단선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재 남중국해 분쟁 판결에 양안이 모두 비판성명을 내놓는 등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하여 양안은 연대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대만정부 또한 명목상으로는 이를 이어받을 것이지만, 신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현 실효지배지역을 제외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대신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7.3. 정치


  • 헌법이 새로 제정되거나 개정된다. 정부기관이나 정책, 제도 등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의 모든 것을 해소하고 새로운 제도,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고 정부기관도 해체 후 재설립 수순을 밟을 수 있다.
    • 혹은 중화민국이 사용하던 예전의 제도들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도 있다. 다만 중화민국, 중국, 중화 등의 명칭은 바뀔 것이다. 중화민국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은 대만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aiwan)으로 바뀐다던지. 조직이 대체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행정원 대륙위원회, 몽장위원회 등은 사라지고, 대 중국 관련 업무는 외교부로 이관된다. 그리고 타이완 고등법원은 타이베이 고등법원으로 바뀌고 그 분원도 독립할 것이다.[52]
  •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중국 국민당정부는 대만공화국정부에서 당명에서 '중국'이라는 명칭을 삭제하거나 , 최악의 경우 해체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또한 중국과의 통일을 추구하는 범람연맹은 수년간 지지율을 올리기 힘들겠지만, 대만 본연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보수정당 연맹으로 전환할 경우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7.4. 행정구역


  • 현재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하는 성(省) 행정단위 자체는 완전히 폐지될 것이다. 즉, 타이완 성과 푸젠 성은 폐지된다.
    •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의 대륙부 미수복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을것이다.
  • 직할시와 현(縣)이 최상위 행정구역 역할을 할 것이다. 성할시는 직할시로 승격되거나 인근 현에 통합될 수 있다. 현재 성할시인 지룽, 신주, 자의 모두 인구 50만명이 채 되지 않고 면적도 작다. 기존 직할시와 같은 위상으로 취급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기에 인근 현에 통합될 수도 있다.
  • 반대로 일부 직할시가 폐지 또는 해체되고 직할시와 성할시를 하나의 행정단위로 일원화한 뒤 현과 함께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현재 대만의 직할시들은 타이완 성을 완전히 폐지할 수 없어서 기존의 현을 승격시킨 일종의 임시조치에 가깝다. 특히 하나의 도시라고 보기 어려운 신베이나 타오위안같은 직할시들은 폐지되고 다시 현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 타이난같은 중심도시가 있는 직할시조차도 성할시였던 시역의 인구가 80만명이 채 되지 않고 면적이 지나치게 과대하기 때문에, 현으로 격하되거나 원래 성할시였던 시역과 그에 연담된 지역만 따로 직할시로 남기고, 남은 지역은 다시 현으로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
  • 푸젠 성의 도서부, 즉 진먼과 마쭈가 계속 대만 공화국에 남아있을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대만과 상관없는 중국 땅이었는데 중국에 돌려주자!"라는 주장과 "대만의 국가안보를 위해 계속 대만이 영유하고 있는 것이 옳다"라는 주장이 대립할 수 있다. 하지만 멀쩡히 실효지배중인 땅을 중국에 넘기면 해당 지역 거주민의 인권도 문제이고 진먼, 마쭈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이므로 자발적으로 이를 버릴 가능성은 낮다. 다만 중국이 해당 지역에 영유권 주장을 매우 강력하게 제기할 것이다. 즉, 새로운 영토 분쟁 지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7.5. 사회


  • 대만어가 국어, 공용어로 지정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법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945년 중화민국의 대만 수복 이래 70년 이상 쓰인 언어인 만큼 표준중국어객가어의 지위도 역시 공용어로 지정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그냥 표준중국어를 계속 국어로 사용할 수도 있다. 원주민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계속되거나, 중화민국(진먼과 마쭈만 남은 상태) 정부의 정책보다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 한족계 대만 본성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한답시고 원주민어가 더 무시당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 원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 외성인들은 대만 공화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주하게 되고 중립파들은 대만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반백년이 넘게 외성인들이 거주하여 동화랑 혼혈이 진행된 상황에서 외성인 강제 이주는 엄청난 대혼란과 중국의 개입을 낳기만 할뿐 불가능하다. 외성인의 경우 이미 국부천대 이래 반세기 동안 대만인으로 살아온만큼 극렬 중국통합주의자 이외에는 계속 대만인으로 살게될 것이다. 다만 대만 공화국 국적으로 남을 것인지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것인지 선택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완전한 대만 공화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만일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53] 화교처럼 대만공화국의 영주권자로서 영주할 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구 중화민국과 대만공화국 내의 외성인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법적으로 외성인에 대한 차별은 엄격히 금지할 수 있다. 다만 외성인의 인구가 대만 인구 전체의 1/10에 불과한 만큼 예전 만큼의 기득권을 누리기에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 장제스의 묘를 중국으로 이장하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이장 요청을 중국 국민당이 받아들일 경우 중국으로 이장될 가능성이 높다. 장제스는 자신의 유해를 타이완에 묻지말고 중화민국이 본토로 돌아갈떄 자신의 고향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이후 천수이볜 집권 당시 장제스의 묘를 고향인 저장성 닝보로 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때 현지 관료들도 내심 바라는 분위기였으나 마잉주 집권 이후 무산되었다. 하지만 한때 폴란드에 속해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로 넘어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묘가 있는 폴란드의 국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사례로 볼때 대만 땅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대만을 장기간 철권독재로 통치한 만큼 장제스의 기념물들은 대부분 철거, 중국으로 이전 될 가능성이 높지만, 쑨원까지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만 민족이 중국과의 연결성을 완전히 부정할지, 아니면 연결되었다가 나중에 분리되어 지금 독립을 추진하기로 한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싱가포르에서도 쑨원 기념관이 있는 걸 참고하면 된다.[54] 다만 쑨원에 대한 취급이 국부(國父)가 아닌 '중국(중화권) 혹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지도자' 정도로 격하(?)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국'인이 '대만'공화국의 국부가 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 우창 봉기신해혁명의 기념일이자 중화민국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이 건국기념일이 아닌 외국의 사건 기념일 정도로 격하될 것이다. 신해혁명은 더 이상 대만 공화국과 관계없는 중화민국과 현행 중국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인 사건이 될것이다. 당연히 평일이 된다. 대신 대만공화국의 건국기념일이 새로이 제정되어 정부에 의해 기념되어질 것이다.
  • 평화기념일(2.28)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것이며 현재 대만에서 민주열사로 추앙받는 사건 당시 관련자들은 오늘날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 역사 교육에서도 중국 역사가 아닌 대만이 중국 청나라에게 흡수되기 이전의 대만 원주민 역사와 명청 교체기 당시 청나라에 대항했던 정성공의 동녕왕국을 중점으로 역사 교육을 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대만 원주민 역사의 경우 기록이 거의 남아있는게 없는데다가 중국 시기의 역사도 엄연한 역사이므로 그대로 교육할 것이다. 대신 중국사는 싱가포르처럼 동아시아역사 과목의 일부로서 중화권으로 완전히 외국의 역사로 교육하게 된다.
  • 대만 지리 교과서에는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큰 섬이 하이난(海南)으로 서술될 것이다. 천수이볜 정권 시절에는 대만에서도 중국 지리 교과에 저렇게 기술했다. 마잉주 정권 시절에는 다시 대만이 가장 큰 섬으로 기술되었다가, 차이잉원 정권 출범 이후 천수이볜 정권기의 교육과정으로 복귀했다.
  • 중화인민공화국을 대놓고 '중국'이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지금도 대만 사람들 중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고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도 사석에서는 그렇게 하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해도 안 된다. 반드시 뒤에 '대륙'을 붙여야 한다.

7.6. 교통


  • 타이베이 시내의 수많은 길 이름이 바뀔 수 있는데 왜냐 하면 대만에는 중국대륙과 몽골 지명에서 따온 길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유명 지명이야 많이 알겠지만 중국 대륙 지리에 밝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곳도 많다. 편의를 감안해 랜드마크를 제외한 상당수는 남을 수도 있다.
  • 모든 현과 직할시에 있는 중산로(中山路), 중정로(中正路), 삼민주의에서 온 민주로(民族路), 민취안로(民權路) 민성로(民生路), 중화민국에서 온 중화로(中華路)까지 바뀔 가능성이 높다.
  • 열차 등급 중 하나인 쥐광하오(莒光號)의 이름이 바뀐다. 본토 수복의 의지를 담은 이름인데 자세한 설명은 타이완 철로관리국 문서 참고. 쯔창하오(自強號)라는 이름도 1970년부터 사용한 "莊敬自強 處變不驚"(스스로 노력하는 자는 환경의 변함에 놀라지 않는다.)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

7.7. 국제정세


  • 동아시아의 서방 진영은 새로운 동맹국이 될 수 있는 국가가 생기므로,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견제하기가 더 용이해진다. 반면, 현재는 동쪽의 한국이나 남서쪽의 베트남 정도로만 신경쓰면 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양안 최전선에 잠재적인 위협이 하나 더 생기며, 특히 미국일본이 엄호하는 경우에는 그 위력이 더 커진다.
  • 중국이 이에 대한 견제책으로 북한을 더욱 엄호할 수도 있으며, 한국을 최대한 끌어들이려 할 수도 있다.[55]
  • 명목상 '자국 영토'인 대만을 지키지 못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지지율이 낮아질 수 있으며, 특히 "외세랑 분리주의에 굴복해 땅을 팔아먹은 집단"이라는 선전이라도 나올 수 있다.

7.8. 군사



8. 관련 문서



[1] 대만중국, 일변일국[2] 이 구호를 주제로 하는 동명의 노래도 있다. 들어가서 보면 원주민 입장에서 한족계 본성인을 까는 댓글도 있다.[3] 항목에서 언급되듯이 1995년 이후로 대만독립과 관련된 당의 노선에 변화를 주었다.[4] 물론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중국인과 동일시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강경한 대만독립에 대해 동의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수의 대만인들의 생각은 중국과 대만이 어떻게든 분리만 되어 있다면 (미승인국 상황을 제외한) 현재의 형태에 대해서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고 있다. 즉 Taiwan(China) 같은 형태만 아니라면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니 이와 같은 문제로 대만인과 대화할 일이 있다면 강경 독립론에 대해 우호적일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5] 대만이 독립 국가를 거의 세워본 적이 없이 계속해서 외래 세력의 통치를 받아 왔기 때문에 결국 같은 외래 세력인 일본의 통치에 쉽게 적응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저항이 덜 했고 대만이 일본이 얻은 첫 식민지(대만이 1895년, 관동주남사할린이 1905년, 조선이 1910년, 가 1921년)인 관계로 다른 유럽 열강에게 '우리 일본도 식민지 지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였기 때문에 식민지 치고는 상당히 대우를 잘 해줬다. 일본의 대만 통치는 가장 성공적인 제국주의 식민지배 중 하나로 평가된다.[6] 사실은 이보단 국부천대가 바꿔놓은 것이다. 인민해방군이 대만 점령에 성공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인민해방군이 타이베이에 들어오고 국민당을 싹 쓸어버렸다면 나중은 몰라도 당시라면 본성인의 큰 환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적어도 한족이라면 지금처럼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중화민국이 대륙을 그대로 차지하고 있다면 역시 대만 사람들도 중국인 정체성을 가졌을 것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 점령에 성공했어도 역시 중국인 정체성을 가졌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2.28의 진상을 깊게 다루었을 수도 있다(국민당 욕하기 딱 좋으므로). 4.3을 겪은 제주도 사람이나 5.18을 겪은 광주 사람이 당시의 정권을 욕하기는 해도 그 때문에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7] 외성인도 6~700명 사망했다.[8] 관리, 교사 임용 할당을 국부천대 이전의 비율인 전 지역의 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해놓았는데(가령 정부가 어느 해 교사를 1천 명 뽑는다고 가정했을 때 국부천대 이전 타이완 성의 인구 비율은 전국의 1.6%에 불과, 이전 할당제도를 적용한다면 교사를 1천 명 중 16명만 본성인으로 뽑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본성인이 인구의 85% 정도롤 차지하니 본성인은 16명만 뽑는 경쟁 속에서 박터지게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10%를 차지하는 외성인은 984명을 임용하므로 임용 경쟁에서 본성인에 훨씬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외성인 중에서도 상당히 적게 온 지역은 더 유리했다. 외성인도 출신지역 따지면 푸젠이 많아서. 즉 본성인에 대한 차별이다.) 1992년 이전까지 국민당에게 타이완은 본토로 돌아가기 위한 전진기지에 불과했기에 임시조치로 사용한 것이었겠지만 본성인에게는 또 하나의 차별대우라는 각인을 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기능했다. 이 탓에 1970년대 이전까지는 외성인, 본성인 갈등이 굉장히 심각했었다. 지금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과거에는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외국 기독교 선교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외성인은 85%, 본성인은 97%가 가장 친한 존재가 외, 본성인이라고 답할 정도였다.[9] 홍콩 반환 때도 대만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베이징의 중앙정부가 최소 50년간 홍콩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일국양제 원칙을 내걸었기 때문에 홍콩인들은 대체로 환호했다. 당시 한국 문화방송이 홍콩인을 인터뷰한 뉴스를 보면, 홍콩이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고 답한 바 있다. 반면 천안문 6.4 항쟁 등을 이유로 중국을 믿지 못해 다른 영연방 국가로 도피성 이민을 가거나 반환에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하기도 했고, 지금은 약속과 다르게 중공 중앙정부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또한 본토와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홍콩인이 본토인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생겼고, 비슷하게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소수 세력이 존재한다. 심지어 영국으로 복귀하자거나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 휘하에 들어갈 것을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10] 친미주의자로 본토 수복을 포기하고 타이완의 방어를 견고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11] 당시 중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으로 볼때 이 제안이 실현되었다면 중국공산당 정권도 사실상 묵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대만도 UN회원국으로 지금처럼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의 처지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중국 공산당 정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긴 했을 것이다. 대만의 독립선언, 대만 국호를 사용하면 바로 무력침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현재 중국에 비하면 정말 다른 시나리오.[12] 냉정하게 보면 자신들의 국력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한 장제스 정권의 명백한 실책이다. 1971년이면 1949년 국공내전 패배로부터 벌써 20년이 흐른 시점으로 중국공산당의 대륙본토 통치는 이미 강력하게 뿌리내렸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상태에서 영토, 인구, 군사력 그 무엇으로도 뒤쳐저 있으면서 그저 적개심에 휩싸여서 본토수복만을 외치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13] 일부 대만 독립파들은 유엔의 중화민국의 축출 결정을 오히려 환영했다. 이것은 자신들의 '점령자'인 장제스 정권의 타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놓고 환영했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갈 수 있으니 속으로만. 어찌 보면 일제 때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이 2차 대전 때 일본의 패배를 바랐던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14] 원래 중화우정에서 발행하는 우표에는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라고 찍혀 있었다. 대만우정이 되면서 臺灣 TAIWAN이라 바뀌게 되었다. 중화우정으로 되돌아가면서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 (TAIWAN)이 되었다. [15] 여권 표지 이미지는 이 문서의 절충안 단락 참고.[16]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수정 표기.[17] 그런데 가게에서 이런 유형의 여권 커버를 발견한 한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제조연월일'에는 민국기년에 따라 ''''105년''' 모월 모일'이라고 찍혀 있다고 한다.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준'으로 2016년이 105번째 해라는 뜻이기 때문. 근데 이것을 제조한 측에서는 대만 독립을 전제로 한 물건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모순적이지만 이 연도로 기재했는데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민국기년은 이미 깊이 뿌리잡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공문서가 아니고서는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민국기년이 워낙 널리 쓰이고 있다.[18]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 여권에 씌울 수 있는 스코틀랜드 여권 커버가 생산·판매되고 있다(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Scottish passport cover 등으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또 과거 홍콩에서도 1997년 중국 반환을 전후로 하여 여권에 비슷한 표시를 하는 캠페인이 벌어진 바 있었다. 참고 문서.[19] 다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얘기는 100% 옳지 않은 게 외성인에 의한 본성인 탄압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20] 물론 중화민국이 명목상 중국 대륙과 대만을 모두 지배하는 하나의 중국이자 정통 중국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들도 중화민국이 독립국이라는 전제를 당연히 깔고는 있다. 하지만 중화권에서 '독립' 운운하는 건 기존에 하나의 중국으로 간주되던 지역에서 일부 영역을 떼어내어 여기에 독자적인 국체를 세우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미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측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이런 맥락 때문에 '중화민국 독립'이라는 용어는 '중국 대륙과 대만을 모두 지배하는 하나의 중국인 중화민국은 독립국'이라는 관점을 주장하는 표현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쓰는 대만 지역이 중국이라고 부르던 영역에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21] 화독이라는 용어는 군소정당인 자유독립당을 창당한 차이딩구이(蔡丁貴) 국립타이완대학 교수가 만들었다. 민진당 등 범록연맹 주류가 사실상 중화민국을 대만의 국호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자 이를 대독 대신 화독이라고 지칭한 것. 이에 반해 그가 창당한 자유독립당은 확실한 대독의 입장이다.[22]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하진 않아도 대만이 내부적으로 중화민국 국호를 사용하는 한 '하나의 중국'을 부정한 건 아닌 것으로 간주해 묵인한다('중화민국'도 어쨌거나 '중국'이니까.). 그러나 대만인들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독을 선언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23] 두 콩고를 구분할 때 수도 이름을 따서 콩고 공화국을 콩고-브라자빌(Congo-Brazzaville), 콩고민주공화국을 콩고-킨샤사(Congo-Kinshasa)라고 하기도 한다.[24] '中華(중화)'를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에 따라 적은 Chung¹-hua²를 우정식 병음 등에 보이는 관행적 표기(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보조 부호를 생략하고 ua를 wa로 고침)로 살짝 수정한 철자로, 중화우정중화전신 등에서 영문 표기에 이미 사용하고 있다. 대만인들에게 기존에 익숙한 표기를 이용해 China를 삭제하되 중화민국의 영문 약호인 ROC를 유지하자는 아이디어라고 보면 된다.[25] 물론 왕딩위의 제안대로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또는 대만(Taiwan)의 대체 표기를 중화민국을 음역한 Chung Hwa Min Kuo로 고치려고 할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용인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중화민국을 가리키는 어떠한 표기도 수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26] 사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였기에 국민당 독재 시절 중공은 대만의 재야세력(후에 민진당의 뿌리가 되는)을 지지했다. 반국민당 세력을 지지하는 부분이 컸지만 대만일치시기부터 존재하던 대만공산당의 잔존 세력이 2.28운동에 적극 가담하였고, 대만의 토착 공산당 세력이 중국으로 넘어와 타이완 민주자치동맹으로 중공의 우당이 되었기에 한 때는 2.28을 중공이 기념하기도 했다.[27] 엄격하게 말하면 중화민국 외교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이 확실시 되자 총회 표결직전에 자진탈퇴를 선언했다.[28] 웃기게도 일본 우익세력들도 이 주장을 사실로 여기고 있으며 대만을 방문하는 도중 항일운동 사적지를 보고 멘붕에 빠지거나 중국 국민당의 역사왜곡이라고 욕하거나 돌아서기도 한다.[29] 일부는 대륙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있기에 중화민국 정부 감시대상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절인 10월 1일에 오성홍기를 들고 나와서 집회 및 시위를 하기도 하는데 만일 그 때가 추석연휴와 겹친다면 대만 여행을 하다가 이런 쇼킹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되기도 한다.[30] 극단적인 친중화민국이라면 대만을 기반으로 반공대륙을 이룩하자는 개드립을 치기도 하지만 현재는 암만 봐도 실현 가능성이 영 없는지라.[31] 청나라 치하 타이완 섬참고[32] 그러나 차이는 있다. 현재 타이완섬은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땅이 아니지만, 즉 과거지사지만 중화민국 땅은 바로 현재의 일이다.[33] 당시 중국어에서나 일본어에서나 '대만'의 '대'는 臺가 정식이었지만 약식으로 台로 쓰는 것은 당대에도 일반적인 관행이었기에 이런 문양을 만들었다.[34] 범록 쪽에서 만든 짤에 범람 측이 밑부분을 덧붙여 재창조한 짤방이다. 의도했는지는 불명이지만, 이미지의 지도 자체가 대만 섬 이외의 중화민국령 섬들까지 포함한 탓에 지도를 확대한 것만으로도 '대만은 명목상 통치구역이 아닌 실질적 통치구역으로 봐도 전체 중화민국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듯한 효과가 난다.[35] 외국인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기 쉽상인데 대만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현실적인 이유로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 않는다. 현실적인 이유란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이다.[36] 다만 현재는 그런 경우가 소수다. 이미 노년층에게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보는 시각이 잘 정착되어 있다.[37] 물론 차이잉원이 독립운동 세력과 거리가 상당히 있다는 차이도 있다.[38] 단체 내부에 대만공화국의 (가칭)깃발과 일장기(히노마루),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다.[39] 천수이볜 전 총통은 조금 미묘한데,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했을 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침략전쟁을 거론하며 비판했으나, 2005년 이후부터 중국의 반분열국가법 등으로 양안관계가 경색되고, 일본이 2004년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참가(옵저버 자격)를 지지하며 이듬해에는 대만인 관광객 대상 비자 면제 등 친대만 정책을 취한 탓인지 "중일관계의 악화는 중국이 대만을 고립시키는 것처럼 일본에 대해서도 고립화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 "고이즈미 총리는 이념을 견지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고 있다."며 2006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은근히 옹호하기도 했다.[40]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은 나치 독일과 연대한 적도 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찬드라 보세일본 제국과의 연대를 통해 독립을 시도한 바 있다.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아니하고를 떠나서, 다른 국가의 세력과 손을 잡는 것 그 자체는 여러번 있어왔다. 그러나 당장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대부가 친나치, 반유대 발언을 했던 사실이 두고두고 까이고 있고, "나치를 위해 싸운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면 욕을 먹는 것같이 제국주의의 만행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41] '대만 공화국'으로서 승인한건지, 중화민국으로서 승인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타이완 섬을 실효지배하는 민주주의 정부'를 공식적으로 국가로 승인했다는 점에서 대만이 어떤 식으로든 독립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42] 1963년에 가로 적,백,흑 삼색기에 흰색 중앙에 별 3개가 든 국기를 썼으나 이후 아랍 문자가 들어가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별이 빠지고 지금의 아랍 문자만 남은 국기가 되었다.[43] 프랑코 정권 시기 독수리가 그려진 국기를 사용했으나 1970년대 말 왕정 복고되고 나서 수년뒤인 1981년에 기존 국기에 들어있는 독수리를 빼고 새 국장이 들어있는 형태의 디자인으로 바꾸었다.[44]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쪽도 기존 국기를 개정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45]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공산정권 시대 국장이 그려진 국기들을 사용했으나 1980년대 이후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국기에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문장을 삭제, 수정하였다.[46] 의외라면 의외일 수 있겠지만 대만 독립 지지자들의 목표 중 하나가 중국과의 일반 수교관계 회복이다. 일단 대만의 독립국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일부 반중주의자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수교를 거부할 수도 있다.[47] 타이완 섬과 멀리 떨어진 진먼, 마쭈 열도도 별 다른 이유가 없으면 그대로 신 공화국에게 승계될 것이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땅인데 굳이 내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48] 중화민국의 권리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향유하고 있다. 국가승계의 논리.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의석이 내전 이후의 리비아 신정부에게 인계되었다. 다만 대만과는 이야기가 전혀 다른데, 리비아 신정부의 의석 인계는 국가 내의 정권교체일 뿐이다. 기존 정부가 정당성을 잃은 상황에서 내전을 통해 승리를 거두면 합법정부로 인정된다. '중국'의 의석이 대만에서 중국대륙 소유로 교체된 것도 비슷한 절차를 따랐지만 대만과 중국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임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가입을 위해 총회 차원에서 허점을 이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49] 2047년까지 홍콩의 자치권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걸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홍콩 기본법은 효력을 정해놓은 적이 없고, 중영공동선언에서는 홍콩의 영국령 당시 시스템을 50년 간 불변으로만 적어놓았다. 이 50년이 2047년까지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 서방 언론이 50년의 기산점을 영국의 주장대로 1997년으로 보았을 뿐이며 중국은 최초 반환요구 시점인 1967년, 혹은 중영공동선언이 성립된 1985년으로 보고 있어서 2047이라는 숫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홍콩 특별행정구는 성급 행정단위로 이미 성립한지 오래이고, 중국 스스로 일국양제보다 좋은 건 없고 영구히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 오히려 중국 기준에서 식민지 때 시스템을 보장한 50년은 지났을 수 있다. 물론 중영공동선언 상 영국이 합법적으로 홍콩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당시에도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빼고 다른 나라는 별관심 없었지만 영국은 개입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영국과 관련된 권리는 경제적 이권 뿐이며 주권은 하나의 중국 원칙 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50] 심지어 이 나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면서 더 극단적으로 대만 여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대만인의 자국 입국을 법적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세르비아의 경우 이러한 문제랑 다른 문제로 인해 서방 국가들과 관계가 영 좋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친러만 고수하기도 곤란하기 때문에 친중 성향을 띠는 면이 크고, 설상가상으로 앞문장에서 언급된 문제에서 대만이 세르비아의 반대편 당사자를 편드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친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51] 아예 대만 여권도 인정하지 않고 대만 국적자의 입국,방문을 원천 금지해버린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와 달리 대만 여권을 인정하고 대만인의 입국,방문을 허용해주고 있지만 대만 일반여권만 인정하고 있고 대만 외교관,관용 여권은 불허하며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대만인의 자국 입국,방문은 금지,차단하고 있다.[52] 중화민국의 일부인 타이완 섬과 부속 도서를 관할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명목상으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한국에 서울 고등법원은 있어도 한국 고등법원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진먼 현과 롄장 현은 푸젠 고등법원 진먼 분원의 관할구역이며 타이완 고등법원이나 그 분원의 관할구역이 아니다.[53] 그러나 중국 여권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수도 적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꽃필것이다. 그래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는데 중국본토의 부자들이 취하는 방식이다.[54] 다만 싱가포르의 한족들은 말레이시아 시절이나 독립한 현재와는 달리 영국령 시절에는 '중국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55] 하지만 사드 배치 논란에서 볼 듯,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중국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낮다. 더욱이 한국 입장에서도 중국의 어그로를 받은데다가 북한 문제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