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누스 토르발스

 

'''리누스 베네딕트 토르발스
Linus Benedict Torvalds
'''

'''국적'''
[image] 핀란드 (1969년 12월 28일-현재)
[image] 미국 (2010년 9월 -현재)
'''출생'''
1969년 12월 28일 (54세)
핀란드 헬싱키
'''학력'''
헬싱키 대학교 졸업
'''직업'''
프로그래머
1. 개요
2. 생애
3. 리눅스의 기원
4. 까야 제맛
5. 몇몇 관계
5.1. 빌 게이츠
5.2. 스티브 잡스
5.3. 리처드 스톨먼
6. 사용하는 컴퓨터
7. 그 외
8.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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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말은 쉽지. 코드를 보여줘.

Talk is cheap. Show me the code.

스웨덴핀란드프로그래머이자 리눅스의 창시자.
리눅스 이외에 분산 버전 관리 시스템Git 등을 만들었다.
사라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으며 어린 시절엔 앙숙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친하다고 한다.
리눅스를 만든 그는 핀란드 국적이지만 그의 부모와 그는 스웨덴어 화자이다.[1] 스웨덴어 발음은 [ˈliːnɵs ˈtuːrvalds\](리노스 투르발드스)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리누스 토르발스'로 표기한다. 영어로는 [ˈliːnəs ˈtɔːrvɔːldz\](리너스 토볼즈)로 발음한다.
'토르발스'라는 성은 북유럽 신화의 신 토르에게서 유래했는데 리누스의 할아버지이자 유명한 시인인 올레 토르발스가 만든 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 세계에 이 성을 가진 사람은 20여명 뿐이고 모두 친척 관계다. 그리고 '리누스'라는 이름은 유명한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에서 따 왔다.

2. 생애


통계학자인 외할아버지가 코모도어 VIC-20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으며 집안 분위기 자체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적극 밀어주는 스타일이라 성장기의 대부분을 컴퓨터와 지냈다. 그의 어머니 말을 빌리자면 키우기 너무 쉬웠다고 한다. 컴퓨터 한 대와 하루 두 번 파스타만 던져주면 됐다고. 오직 컴퓨터만 좋아했지만 대학 조교 시절 만난 여자가 지금의 아내이다. 첫눈에 반해서 컴퓨터를 거들떠도 안보고 구애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말을 빌리자면 "위대한 자연의 승리"라고...
여담으로 이 아내 되시는 분(라나 토르발스, 결혼 전 이름은 라나 토브)이 상당히 비범하다. 리누스 본인의 자서전에 관련 에피소드가 나와 있는데, 조교로서 대학 컴퓨터 강의 수업 들어가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보세요"라는 숙제[2]를 내줬다고 한다. 수강생 15명 중 14명은 수업 관련 간단한 내용이나 질문을 이메일로 써 보냈는데, 그녀는 첫 이메일로 수업 조교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여담으로 이 분, 핀란드 가라테 챔피언을 6번이나 했으며 유치원 교사였다.
군 생활은 포병 예비역 소위[3]로 한 모양인데, 군 생활은 세계 어디나 비슷한 듯. FDC로 근무했는지 포 방열하고 야전선 깔고 스키 타고 혹한기 훈련하면서 개고생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6년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가서 직업도 갖고 일을 하다, 2010년 9월에 미국 시민권도 취득해 현재도 미국에 거주 중이고 완전히 미국인이 됐다. 오리건 포틀랜드에 거주 중.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핀란드 국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출처. 어차피 미국은 복수국적 가능 국가니...
딸 셋과 핀란드 가라테 챔피언에 6번이나 오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예전엔 트랜스메타[4]라는 회사에 근무했지만 지금은 오픈소스 개발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픈소스 개발 연구소(OSDL, OpenSource Development Labotory)는 기업용 컴퓨팅 환경에서 리눅스 발전 속도를 가속시키자는 취지에서 만든 국제적 컨소시엄. 대한민국에서도 ETRI 등이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그 후 리눅스 재단과 합체하게 되나, 연구소는 남아있다.

3. 리눅스의 기원


헬싱키 대학교 2학년 시절 운영 체제 수업을 듣고 있던 중, 심심한 나머지(Just for Fun), Andy Tanenbaum 교수가 취미로 만든 교육용 운영 체제인 미닉스(MINIX) 컴퓨터에서 작업해서[5] 자신이 갖고 있던 80386 컴퓨터에서 돌아가도록 386 보호 모드에서 동작하는 리눅스를 개발하여 공개했다. 이와 관련해 Monolithic Kernel 구조와 Micro Kernel 구조에 대해서 타넨바움 교수와 토르발스간의 논쟁은 유명하다. "Linus의 MINIX"라는 뜻을 담아 "리눅스(Linux)"라고 이름을 지었다.[6] 또한 리눅스의 마스코트인 펭귄 턱스 씨는 쇠푸른펭귄에게 물린 기념으로 정했다고 한다.
리눅스 커널을 오픈소스화 하여 리누스가 얻은 이익은 막대하다. 레드햇 같은 리눅스 회사로 부터 주식을 받아 레드햇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부자가 된 케이스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운영 체제'를 만들었다는 명예도 함께 얻은것이다.

4. 까야 제맛


그의 종특은 맘에 안 드는 것은 뭐든지 까는 것으로, 거친 언사도 서슴지 않으며, 일반인들과도 뉴스그룹, 이메일 등지에서 키배를 자주 뜨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리눅스 개발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 리누스 본인인데, 오픈 소스 개발이라고 하면 누구나 편하게 자신의 코드로 커밋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공동 작업 시 리누스가 상대하는 사람의 기분보다는 작업의 결과물의 퀄리티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7] 다시 말하면 코드 퀄리티를 강한 언사를 통해서 유지할 수 있다면 그쪽을 선택한다는 것. IT 쪽 인사들이 어느 정도 이런 면들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리누스는 그 정도가 다소 극단적인 편이라고 보면 될 듯. 이 때문에 아래에 나온 것처럼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붙기도 했다.
여기에는 같이 일하는 커널 개발자들이 대체적으로 에고가 강한 것[8]도 한몫한다고. 다만 기여자 입장에서는 이런 강한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많이 상하는 건 사실이라 커뮤니티 내에서 논란이 몇 번 일은 적이 있다.

예전 리눅스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을 무렵, 농담 삼아 20명 정도 앞에서 "저희는 세계정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는 모두들 가볍게 웃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MS에게 대항하는 수단이 되었고, 심지어 이후 한 인터뷰에서 "아직도 세계정복의 꿈을 버린 건 아닙니다. 언젠가는 할 거예요 :)"라고 말했다. 링크. 하지만 여전히 농담이다. 위에서 말했듯 에게 관심이 없으며, 리눅스를 윈도우의 대체재니, 경쟁 수단이니 하며 MS와 비교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이게 농담 같다가도 농담 같지 않은 것이, 어떤 면에서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PC용 OS로서의 리눅스는 마이너일지 몰라도 리눅스 기반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는 열심히 점유율을 올리며 전성기 MS 부럽지 않은 위엄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르겠으면 틀:리눅스를 들어가보자. 이것 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타이젠이나 미고 같은 기타 OS도 다 리눅스 기반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 OS도 리눅스다. 심지어 윈도우 10에서는 아예 서브시스템으로 리눅스 레이어가 직접 탑재되었다. 북한에서도 중국과 비슷한 이유로 리눅스 운영 체계에 스킨만 바꿔서 쓴다.[9]
한때 GNOME을 깠다. 이유는 사용자들을 바보로 안다고. 그러나 KDE 4가 나오자 그것을 써보고는 GNOME으로 돌아섰다. KDE 4를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그러다가 GNOME 3이 나오자 미쳤다(Crazy)라고 하면서# Xfce로 바꿔버렸다가 다시 GNOME 3로 돌아갔다고 한다.
오픈수세의 UX를 까기도 했는데 무선 네트워크 추가나 타임 존 변화와 같은 사소한 변화에도 어드민 패스워드를 제공하는 요구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기사 원 소스를 보다시피 구글+에 까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2012년, 한 강연회에서 엔비디아를 향해 '''실제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영어#한국어 리눅스 커널 개발자에게 가장 협력 안 해주는 기업이라면서 반면에 AMD는 오픈 소스를 공개하면서 리눅스용 카탈리스트를 '지옥에서 연옥으로' 끌여 올렸다. 덤으로, 이 오픈 소스로 인해서 카탈을 안깔아도 기본 리눅스 드라이버는 하드웨어 가속을 지원한다.
여담이지만, 엔비디아에서 답변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에 따른 패러디들도 많이 나왔다. 리누스의 중지를 엔비디아 브랜드 마크로 가려버리거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까지 있다.#
인텔 CPU의 모델명을 읽기 어렵다고 마케팅 부서를 깠다. 인텔은 엔지니어들 빼면 직원들 대상으로 약물 테스트도 안 하는 것 같다나 뭐라나.
초기 XML깠다. 리누스 의견으로는 XML은 저장 방식으로 불편하다고 했다. 현재는 업계 표준으로 인해 리누스도 XML을 쓰고 있다.Git의 제작자답게 처음에는 Git에 사용되는 저장 파일을 쓰려고 했다고.
겨울에 커피메이커가 고장 났는데, 서비스센터가 눈 때문에 못 온다고 깠다.[10]

You people on the East coast think you have it bad, with snow-storms and whatever.

That's nothing. My coffee maker broke, and calling the service hotline says "we're not open today due to inclement weather".

You guys get a little snow, and suddenly civilization breaks down.

My coffee maker is broken and nobody is answering the phone.

And CNN just keeps talking about snow. What about my coffee? Priorities, people, priorities.

What am I going to do without my coffee maker? I'm going to sit here in a corner, crying, that's what.

사람들이 지금 동부에서 눈 폭풍이다 뭐다 해서 난리인데, 지금 그게 문제냐?

커피 메이커가 고장 났는데 상담 전화에서는 "날씨 문제로 오늘은 열지 않습니다"란다.

그깟 눈 왔다고 문명사회가 이 꼴이야.

커피 메이커가 고장이 났는데 전화를 안 받아?

CNN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눈 얘기만 하는데, 내 커피는 어쩌라고? 우선순위.. 인간들아.

커피 메이커가 고장 났으면 이제 뭘 해야 하는데? 어디 구석 가서 찡찡거리고 있어야지 뭐.

ARM 계열의 지나친 커스터마이징으로 개발자들을 머리 아프게 한다고 깠다.
C++을 표준 이하의 실력 없는 프로그래머나 쓰는 거라고 깠다. 리눅스 커널은 C언어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OS 레벨 프로그래머에게는 들어 맞는 소리다.
GNU GCCEmacs, 허드도 깠다.#
Java, 정확히 말하면 이를 관리하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정책을 깠다.[11] 그리고 자바는 결국 실패할 거라고 저주했다. 하지만 자바는 안드로이드나 서버 쪽에서 조금 성공했다. 대신 썬이 망해서 오라클에 흡수되었다.(...) 더불어 썬의 솔라리스#s-4도 깠는데 솔라리스가 오픈 소스화됨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지부진하고 있다.
2015년에는 파일명의 유니코드 정규화 문제로 애플 OS X의 파일 시스템인 HFS+를 깠다.[12] 사실 그 외에도 HFS+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므로 이후, 애플은 2년 뒤 macOS 하이 시에라에서 새로운 파일 시스템인 APFS를 도입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CPU 게이트 사태 때는 보안 패치로 보안 취약점 해당 사항이 없는 AMDARM까지 같이 성능 하락을 겪게 만든 인텔 기술자를 대놓고 깠다.
미닉스와 앤드루 타넨바움 교수를 깠다. 커널 논쟁에서 의견이 갈린 것으로 보이는데[13] 토르발스가 미닉스에 영향을 받아 리눅스를 만든 것을 생각하면, 도를 넘었다는 평가이다. 결국 토르발스는 공개적으로 타넨바움 교수에게 사과하였다.
오픈 소스정치적 올바름에 구애되지 말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던 오픈 소스에 기여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고, 2018년 9월 토르발스는 그동안의 언행을 반성하면서,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하며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후 복귀했다. 2020년 7월 결국 리눅스 재단은 몇몇 용어들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대체 단어를 제시하였고 토르발스는 이를 승인한다. #
2020년 7월에는 인텔에 AVX-512가 비참하게 망해야한다고 인텔을 까기도 했다. 이런 명령어 장난질할 시간과 할당되는 트랜지스터를 AMD처럼 코어 수 늘리는데 쓰라고 말할 정도였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AVX-512는 뛰어난 성능과 별개로 파편화로 개발자들에게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2021년 1월에 또 인텔을 깠다. AMD 스레드리퍼 3970X는 ‘2배의 가격에 2배의 코어’를 만족하고 비공식적으로 ECC 메모리를 지원하기 때문에 굉장히 만족한 반면 인텔 제온의 ‘2배의 코어의 5배의 가격’과 인텔의 ECC 메모리와 관련된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깠다.#

5. 몇몇 관계



5.1. 빌 게이츠


한 인터뷰에서 "나는 빌에게 사업적인 이야기를 해줄 게 없고, 빌도 나에게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줄 게 없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건 잘 생각해보면 빌 게이츠를 돌려서 까는 말이다.
오래전 인터뷰에서는 아예 돌려까지 않고 대놓고 얘기하기도 했다. #

사람들은 빌 게이츠가 위대한 프로그래머이고 세계 최고의 컴퓨터 관련 회사의 최고 경영자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빌 게이츠는 철저한 마케팅맨입니다. 옛날에는 프로그래밍을 조금 접해보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오래 계속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누스 토르발스와 빌 게이츠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란 얘기죠.

상대가 사업가였다면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빌 게이츠는 엄연히 개발자 출신이다. 빌이 자신에게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 줄 게 없다는 말은 개발자로서의 빌 게이츠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빌도 하버드 시절 알테어의 배선도만 보고 베이직 인터프리터를 개발해낸 프로그래밍 고수다. 개발자 출신인 만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덕분에 소프트웨어로 IBM과 애플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 프로그래밍 실력뿐만 아니라 이산수학계에서 알고리즘 논문을 내기도 해서#[14] 컴퓨터 S/W 분야에선 실무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따라올만한 사람이 거의 드문 편이다.
다만 리누스 말처럼 1990년대 중반 이후 빌 자신은 프로그래밍보다는 경영, 마케팅 등 사업 쪽에 주력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프로그래밍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휘하의 공돌이들을 효과적으로 갈굴 수 있었고[15] 현재의 윈도우와 같은 고퀄리티 소프트웨어를 뽑아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빌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던 것은 꽤 예전 얘기다. 현재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활동하는 리누스와는 달리 1990년대 초반 이후[16] 빌은 코딩에 손을 떼고 완전하게 경영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직접 프로그래밍이나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은 아니다.
커리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S/W 개발자의 길을 걷는 토르발스 입장에선 개발자에서 경영자로 돌아서 버린 빌 게이츠를 이런 면에서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5.2. 스티브 잡스


그의 자서전에는 토르발스가 미국에 정착하고 난 뒤 애플 본사에 초청되어 스티브 잡스와 만난 일화가 쓰여있다. 이때도 매킨토시의 커널이 지저분하다고 깠다(...) 그 뒤 애플이 OS 9이 말썽을 부려 새로운 운영 체제를 물색할 무렵 애플 본사에서 스티브 잡스와 리누스가 만난 적이 있었다. 스티브는 특유의 레퍼토리인 '우리와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라며 토르발스를 설득했으나 토르발스는 자신은 세상을 바꾸는 것 따위엔 요만큼도 관심이 없다며 무시해 버렸고 끈질긴 협상가라는 명성을 가진 잡스는 리눅스를 애플에 끌어들이는 것을 그 자리에서 깨끗이 포기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리눅스는 서버임베디드, 모바일 시장에서 놀라운 결과를 낸다. 그리고 OS X가 마이크로 커널을 쓴다고 또 깠다.
사실 빌 게이츠가 아닌 스티브 잡스야말로 프로그래밍은 전혀 모르는 순수한 사업가이다. 애플은 초기부터 개발은 전적으로 스티브 워즈니악이 담당했고, 스티브 잡스는 판매처 확보 등 회사 운영을 담당했다.

5.3. 리처드 스톨먼


자유 소프트웨어 창시자인 리처드 스톨먼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윈도우 같은 사유 소프트웨어도 인정하는 반면, 리처드 스톨먼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경향이라 사유 소프트웨어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스톨먼은 사적 소프트웨어를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오픈 소스라는 이름조차도 좋아하지 않는다. 오픈 소스라는 이름에는 자유정신이 담겨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모든 프로그램은 자유롭게 사용(복제, 연구, 수정, 배포 등의 제한이 없음을 의미. 결코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무료나 공짜를 의미하지 않는다) 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한다."라는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 진영이 아니다. 오픈 소스는 그와 다른 개념으로서 개발의 용의성을 위해 접근성을 올리자는 취지이지 "모든 프로그램은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는 상태로 모두에게 공급되어야 한다" 같은 자유 소프트웨어 개념과 차이(복제, 연구, 수정, 배포 등의 사용 방법 중 한 가지 이상을 제한할 수 있다)가 있으며 그 역시 모든 프로그램은 제값 받고 팔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오픈 소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상용 소프트웨어가 나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픈 소스가 훌륭한 개발 모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의 큰형님과 같은 존재인 리처드 스톨먼과는 자주 티격태격한다. 리차드 스톨먼은 심지어 리눅스 커널을 사용한 운영 체제를 리눅스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크게 표하며 GNU/Linux라 안 부르면 삐진다. 여하튼 리누스는 그와 다르고, 그의 생활 역시 돈에 자유로운 히피 같은 생활이 아닌 수영장과 실내 당구장이 있고 앞마당에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안가 집에서 나름대로 부유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물론 운영 체제의 나머지 두 비즈니스맨인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6. 사용하는 컴퓨터


리누스 토르발스와 같은 세계적인 프로그래머가 쓰는 컴퓨터라면 당연히 만인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는 IT 매체나 자신의 구글 플러스 포스팅에 자신이 사용할 노트북에 대한 지론이나 현재 사용 중인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간혹 꺼내 화제가 되곤 한다. 노트북 추천 요청 글을 올릴 때도 있다.[17]
그는 노트북을 데스크톱 대용이 아닌 여행 중에 잠깐씩 켜서 프로그래밍하는 용도로 쓴다고 하며, 따라서 그의 노트북에 대한 지론은 다음과 같다.

1. 비교적 작고 가벼워야 한다.

1. 디스플레이가 우수해야 한다.

1. (원활한 프로그래밍 작업을 위해) CPU 성능이 좋아야 한다.

출처: 2016.9.11 구글+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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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맥북 에어(11인치)는 나에게 정말 특별한 컴퓨터'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디자인이랑 가벼움만 좋아하는 듯하다. 결국 '''맥북을 사자마자 OS X은 가차 없이 삭제'''하고 페도라를 깔아 사용했다.
크롬북 픽셀이 나오자 이쪽으로 갈아탔다. 상기했다시피 리누스는 노트북의 화질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데 (에어의 패널은 저해상도일 뿐만 아니라 패널 자체 품질이 나쁘다. 특히 시야각은 애플의 모든 제품 중에서 가장 나쁘다.) 크롬북 픽셀은 1.5kg 정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화질이 아름다워서 쓰고 있다고 극찬했다(3:2 화면비도 크게 환영했다). 또한 이 노트북을 쓰고 나니 다른 일반 노트북들이 똥(crap)으로 보인다고까지 했다.[18] 2013년 3월 6일 구글+ 포스팅 하지만 끝내 그 무게가 부담스러워 나중에는 다른 노트북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크롬북 픽셀 특유의 각진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Sony VAIO Pro 11을 3년 정도 쓰다가 2016년 9월부터는 2016 Dell XPS 13 Developer Edition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이 가장 중시하는 기준인 '가벼운 무게'와 '뛰어난 디스플레이 화질'을 모두 충족시켜 굉장히 흐뭇하다는 반응이다.ZDnet 기사 Lenovo X1 Carbon나 삼성 노트북 9 스핀[19]도 후보군에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선택한 게 XPS 13이라고 한다.2016년 9월 11일 구글+ 포스팅 애플의 맥북 제품군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예전에는 애플 기기를 좋아했지만, 요즘 맥은 윈도우 컴퓨터들에 비해 뒤쳐졌다"라며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2020년 5월 데스크톱을 AMD RYZEN Threadripper 3970x로 바꿨다고 한다. 15년 만에 인텔에서 AMD로 바꿨다고. 늘어난 코어 수 덕분에 컴파일 속도가 두세배 빨라져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다만 그래픽카드는 단순 화면 출력용인지 저렴한 사파이어 RX580 니트로 8GB를 쓴다고한다.

7. 그 외


데이비드 다이아몬드라는 언론인과 같이 쓴 Just for Fun이란 자서전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리눅스 그냥 재미로'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발매되었다.
2012년 밀레니엄 테크놀로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2010년 처음엔 팀 버너스리 경이 받았으며 100만 유로, 한화로 15억 원을 받는다고 한다.
2012년 10월에 한국에 방문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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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에도 한국에 방문하였다. 트윗에 지인들(KLDP 회원들)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시식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스쿠버 다이빙이 취미라고 한다. 그리고 개발자답게 직접 Subsurface라는 스쿠버 다이빙 기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2017년 8월에 신장결석에 걸려 고통스럽다고 한다. #
아버지인 닐스 토르발스는 핀란드에서는 전국구급 인사이다. 1970년대에는 핀란드 커뮤니스트 파티의 멤버였다. 모스크바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바 있다. 1995년부터 2004년 까지 필란드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모스크바 및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일하였다. 2017년 핀란드 스웨덴계 인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2020년 현재 필란드 정치인으로서 유럽의회 의원을 지내고 있다.
초창기의 리눅스에는 사운드카드를 설정하고 정확히 설정되었는가 알아보기 위한 샘플로 "안녕하세요, 리누스 토르발스입니다. 저는 리눅스를 '리눅스'라고 발음해요!(Hello, this is Linus Torvalds, and I pronounce Linux as Linux!)"라는 음성 파일을 리누스의 육성을 직접 녹음해 제공하였다. 해당 음성
2016년 기준 페도라를 사용한다. 데비안은 불편하다고 깠다.
TED 강연에서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그에게 물어봤을 때, 자신은 비전을 생각하지 않고 5년 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은 엔지니어로서, 남들이 구름과 별을 바라보며 저걸 하고 싶다고 목표를 생각하는 건 상관없지만 자신은 땅을 바라보며 발이 빠질 눈앞의 구덩이를 메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전을 가졌던 테슬라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을 제창한 에디슨 중에 누가 진짜로 세상을 바꿨는지 생각해보라며 자신은 좀 더 에디슨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기도. #
456번째 서울시 명예시민이다. #

8. 관련 사이트



[1] 리누스 토르발스의 출생지, 거주지는 아니지만, 핀란드 내에는 스웨덴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올란드 제도자치령으로 지정할 정도로 스웨덴어 사용자들이 적잖이 있다.[2] 당시는 1993년으로 인터넷이 갓 보편화되던 때였다고 한다.[3] 핀란드군은 징병제로 복무 기간은 사병은 10개월, 장교는 1년[4] 한때 저전력 x86 호환 CPU로 유명했던 크루소 시리즈를 제작한 회사이다. 지금은 CPU 개발에서 손 뗐다.[5] MINIX 코드를 기반으로 개발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는 리누스와 타넨바움 둘 다 부정했으며 초기 리눅스 커널 코드는 온전히 리누스가 코딩한 것이다. 단지 리누스가 개발용으로 쓰던 컴퓨터에 설치된 OS가 MINIX였다는 것일 뿐이다.[6] 단 리누스 본인은 Linux 라는 이름을 처음 생각은 했지만 별로라고 생각해서 약간 장난으로 Freix 라고 지어놨는데, 리눅스를 올렸던 FTP 서버 관리자가 마음대로 Linux 라고 지어서 올려놨고 리누스도 동의해서 저렇게 된 것이다.[7] 나는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신경 쓰는 건 기술과 커널 그 자체이다.(I don't care about you. I care about the technology and the kernel—that's what's important to me.) 로 요약할 수 있다.[8] 응용 → 시스템 → 커널 순으로 프로그래밍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므로, 일반적으로 프로젝트 내에서 다른 개발자보다 돈도 더 받고,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 다른 건 실수가 있어도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커널은 실수가 곧 셧다운인지라... 애초에 커널을 전문적으로 만질 수 있는 인력은 구하기도 힘든 최고급 인력이다 보니, 프라이드가 높은 경우가 매우 많다. [9] 다만 윈도우 항목에 나오듯 오픈 소스 운영 체계를 사용하던 정부들이 유지 보수 문제 때문에 다시 윈도우 체계로 돌아서고 있다.[10] 토르발스가 태어난 나라인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1인당 커피 소비량이 많은 나라다. 평균적으로 미국인의 거의 3배를 마신다고. 빡칠 만도 하다. 그리고 눈이 오면 미터 단위로 오는 추운 나라에서 살았던 북유럽인 답게 미국에 내리는 눈은 눈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11] 자바 공개 초기에 그는 큰 기대를 했다.[12] HFS+는 파일명을 NFD 방식으로 정규화하는데, Mac에서 저장한 파일을 Windows로 옮겼을 때 한글 자모가 전부 풀어져서 보인다던가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건 한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 라틴 문자나 키릴 문자, 심지어 일본어 가나에 이르기까지, 뭔가 해체할 수 있는 문자라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13] 미닉스는 마이크로 커널을 쓴다[14] 이보다 더 효율이 좋은 알고리즘은 30년 후에나 나온다.[15] 다른 경영자 들과 달리 소스 코드를 쓱 보고 난 이후에 함수나 알고리즘의 결함을 찾아내 개발자들을 몰아세워서 프로그래머들이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16] 막 토르발스가 프로그래머로 활동할 시기다.[17] Dell XPS 13을 사기 전에 네티즌들로부터 다른 노트북 모델들을 추천받기도 했다.2016.8.13 구글+ 포스팅[18] 물론 엄밀히 말하면 크롬 OS도 리눅스 커널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평소에 페도라 등의 배포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19] 베젤만 아니었으면 이걸 골랐을 거라고 호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