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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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현재 울산시민축구단 소속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성남 일화 / 성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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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에서 데뷔했으며,[2] 엄청난 체력과 투지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성남의 오른쪽 주전 풀백으로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1년 중국 난창으로 이적한 주전 풀백 고재성의 뒤를 이어 바로 선발로 출전했다. 신태용 감독이 발굴한 신인 중 한 명이며, 고재성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2011 시즌에는 32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기도 했다. 32경기 3어시스트 기록.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풀백 정도였으나 2012년에는 더욱 날아올랐다. 시즌 개막 전부터 성남 전지훈련의 서킷 트레이닝에서 팀 전체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 엄청난 체력을 과시했다. 현대 축구에서 풀백 포지션 자체가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하는데, 그런 풀백 가운데서도 많이 뛰는 선수 축에 든다. 이는 시즌 전경기 풀타임 출장이라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3] 그리고 2013년 10월 6일 제주전 홈경기(2-1 승)로 100회 출장기록[4] 을 세우더니, 10월 30일 자신의 102번째 경기 강원전 홈 경기(1-2 패)에서 동점골 겸 프로 데뷔 골을 성공시키고는 저지 상의의 성남 엠블럼에 입을 맞추며 자축했다.
박진포는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개막전에서부터 엄청난 공격 가담과 정확한 크로스, 거침없는 돌파,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상대팀 풀백인 최철순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오른쪽 측면을 장악했다. 특히 오른쪽 윙어를 맡고 있는 에벨톤과의 호흡은 최고여서, 오른쪽에서 박진포와 에벨톤이 함께 들어오는 경우 골문까지 못 들어가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
2012 시즌 초반 다른 선수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반쯤 태업하듯이 뛸 때 에벨톤과 단 둘이서 미친듯이 뛰면서 경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인 터라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게다가 선수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꽤나 높은지 사샤의 이적 이후 부주장을 뽑는 투표에서 당선되기도 했다고. 가끔 수비에서 자잘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2년차 징크스를 겪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미세한 수준. 그리고 축구선수로는 그리 대단한 피지컬이 아니어서, 측면에서부터 몸빵과 스피드로 비비고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약점을 보이곤 한다.
2013년에 주장을 맡았다가 현영민에게 넘겼고 이듬해에는 다시 완장을 찼으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전상욱, 김태환이 대신했다. 김학범 감독 부임하며 다시 팀의 탑이 되었다. 한편, 울산 문수 경기장 연습 중 자신의 공에 맞은 팬에게 그 자리에서 사죄한 다음 8라운드 홈 상주전 뒤에 유니폼을 건네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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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즌이 끝나고 상주로 입대한다. 실력 있는 풀백인 만큼 주전 경쟁이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이용도 같이 입대한다. 그리고 2015 시즌 32경기 3골 3도움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보이면서 상주의 우승 및 클래식 재승격에 한 몫 거들었다.
2016 시즌에도 이용과 함께 부동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출장했으며 2016년 9월 14일 전역했다.
그런데 그가 없는 동안 친정 성남 FC에서는 자기 자리인 오른쪽 풀백에 곽해성과 이태희라는 급성장한 후배들이 등장하면서 전역 후에는 예전만큼의 입지를 장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2016년 9월 14일 전역해서 성남 FC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2.1.2. 제주 유나이티드
2016년 12월 24일, 제주 유나이티드 FC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
2019년 3월 1일 K리그 1 개막전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풀백으로 선발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60분 무고사의 슈팅이 박진포의 손에 맞으며 경고와 PK를 내주었고, 이 PK가 동점골이 되며 제주는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2019년 4월 21일 K리그 1 8라운드 강원 FC전에서 풀백으로 선발 출전하여 경기 내내 위협적인 측면 돌파와 크로스를 보여 주며 맹활약했고, 결국 후반전 측면 크로스로 마그노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러나 수비적으로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팀은 2:4로 패배했다.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모두들 현역 은퇴라고 생각했고,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듯 했는데...
2.1.3. 울산시민축구단
1년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가 2021년 시즌 시작 전 K3리그로 승격한 고향팀 울산시민축구단으로 이적하였다. 재밌게도, 이 시즌부터 울산시민축구단은 학성고등학교 축구부를 산하 U-18 유스로 두게 되는데, 이는 박진포의 모교이기도 하다.
2.2. 국가대표
2014년 1월 5일 부상당한 황석호 선수의 대타로 드디어 국대에 발탁되었다. 2014년 1월 30일 멕시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A 매치에 데뷔하였다. 울산의 이용이 주전으로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차두리, 황석호, 김창수 등과 함께 서브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그리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차두리와 황석호가 모두 부상으로 이탈하자 대타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K리거의 늪, 미국 원정이… 그 다음엔 같은 팀의 다른 수비수들[5] 이 불려가 활약했고 곽해성은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도 했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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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말 1004명의 일원으로 산타 복장을 하고 자원 봉사에 나섰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부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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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성남 일화 천마와 일본 클럽의 경기를 지켜보는 일본인들은 박진포의 이름을 들으면 배꼽을 잡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게, 박진포의 진포를 일본 방송인이 발음하면 "친포(チンポ)"로 들리는데 일본어 チンポ의 뜻은...
- 등번호로 6번을 선호한다. 성남 때부터 6번으로 나오다가 상주를 거쳐 제주에서도 6번을 달게 되었다. 2016년 막판에 성남에서 81번을 단 게 유일한 예외.
- 여담으로 오른발 잡이임에도 불구하고 피파 온라인4에는 왼발잡이로 나와있다.
[1] 좌우 전부 소화 가능하다.[2] 데뷔 당시에는 성남 일화 천마였다. 시민구단인 성남 FC로 전환한 시기는 2014년.[3] 물론 항상 막 뛰어다녔던 건 아니고 당연히 힘에 부쳐서 좀 덜 뛰던 때도 있었다. 기계도 아니고.[4] 2년 7개월 1일만에 달성, 최단기간 기준 11번째이자 2011년 데뷔 선수 가운데 최초였다.[5] 임채민 : A매치, 곽해성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