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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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 현대 소속 축구선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2. 클럽 경력
2.1. 포항 스틸러스
서울오류초등학교, 영서중학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거쳐 홍익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출전은 하지 못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지명하였다. 당초 백업 자원으로 여겨졌으나 가끔 출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김기동, 황지수 등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22경기에 출전하여 3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신인상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이승렬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사실 팀 기여도로 따지면 교체로만 21경기를 뛴 이승렬보다 좋았지만, 당시 신형민은 센터백이었던 탓에 공격수였던 이승렬에게 밀리고 말았다.
2009년에도 포항의 주축으로 활약하였고,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 신형민이 가장 돋보였던 경기는 조별리그 6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원정 경기였다. 당시 포항은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포항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당시 가와사키 소속의 공격수 정대세였다.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정대세의 마크맨으로 신형민을 세웠고, J리그에서 가장 힘이 좋고 저돌적인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정대세는 신형민의 터프한 대인 마크 앞에서는 순한 양에 불과했다. 이 경기에서 포항은 2-0 승리를 거뒀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알 이티하드와의 결승전에서도 풀타임을 뛰면서 팀의 ACL 우승을 이끌었다.
2.2. 알 자지라 클럽
2012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기도 했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 UAE의 알 자지라 클럽으로 이적하였다. 당초 아시아 쿼터로 이용래를 낙점하고 영입 직전까지 갔던 알 자지라가 메디컬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용래 대신 신형민을 급하게 영입한 것이다. 사실 시즌 전에 파리아스가 감독으로 있던 중국 광저우 푸리로 이적할 뻔 했으나 무산되었다.
포항에서의 통산 기록은 119경기 12골 6도움.
알 자지라에서는 그럭저럭 경기 잘 나오고 있는 듯. 하지만, 본인이 직접 2014년 말에 군대를 가야 해서 여름에 국내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
2014년 6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다.
전북은 정혁의 잦은 부상과 김남일의 부진, 최보경의 기량 미숙으로 인해 중원을 장악해 줄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했는데 이를 신형민이 제대로 메꿔 주었다.
전북의 중원문제를 해결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김남일은 리그 전반기 부진하다못해 없는 사람보다 못한 활약을 보였는데, AFC챔피언스리그 광저우 헝다전에서 말그대로 탈탈탈탈탈 털리며 멘탈이 나가버리며 은퇴 고민의 기로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후반기 시작 신형민이 김남일의 옆에 서며 더블볼란치 형성후, 김남일은 안정감을 되찾으며 리그종료시점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다.
이 시기에 나온 김보민 아나운서와의 눈물의 포옹짤이 이 때 나온 짤. 김남일조차 되살린 당시 시즌을 기억하는 전북팬들의 사실상의 수훈갑은 신형민. 덕분에 전북은 2014 시즌 이승기, 이재성, 신형민의 중원 조합에 힘입어 K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2015년 안산 경찰청에 입대하였고, 2015 시즌 38경기 4골을 기록하며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016년 전역 후 전북으로 복귀했고, 3년 재계약을 맺었다.
2017년 권순태의 이적 후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8 시즌 초반에는 폼이 좋았는데 월드컵 휴식기 이후 갑자기 폼이 하락했다. 최강희 감독도 결국 대체 자원으로 포항에서 손준호를 영입하면서 신형민의 자리에 넣어 봤지만 손준호 역시 단점이 노출되고 말았다.
결국 신형민이 못 나오는 경우에는 홍정호가 종종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와 신형민의 공백을 잘 메워 주면서 팀은 2시즌 연속 스플릿 라운드 이전 조기 우승을 확정했다.
2018 시즌 종료 후, 14년 간 전북을 이끌었던 최강희 감독이 중국 슈퍼 리그 톈진 취안젠으로 이적했다.
2019 시즌, 이동국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 줬으나 팀 내 입지는 여전하다. 주제 모라이스 감독 체제에서 2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풀타임을 뛰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모라이스의 노예 1호가 되었다. 팬들은 신형민의 혹사를 걱정하지만, 특유의 포백 보호 및 경기 조율 능력, 커팅 능력과 수비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2019 시즌 전북의 3연속 리그 우승에 한 축을 담당하였으며, 안산에서 전역하고 돌아왔던 2016 시즌을 제외하면 전북 소속으로 뛰었던 모든 시즌에서 K리그 클래식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전북에서의 통산 기록은 125경기 1골 2도움.
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으며, 중국 갑급 리그 소속 베이징 런허에 합류해 메디컬 테스트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메디컬 테스트도 늦어지고 오피셜도 늦어지면서 팀합류에 시간이 많이 걸릴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런허에서 오피셜이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국내 팀으로 이적한다는 루머도 있다.
5월 19일 국내팀을 알아본다는 기사가 나왔다.
6월 1일 전북이 베이징 런허로의 이적이 무산되어 FA 신분인 신형민을 이번 시즌 말까지 계약하여 재영입 한다는 단독기사가 나왔다.
전북현대는 올해말까지 신형민을 재영입하기로 공식발표했다.
7월 11일 성남 FC 하고 원정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하지만 6개월만에 첫선발이라 경기감각 때문인지 성남에게 내리 2실점 관여를 했다. 결국 전반 종료 후 이승기하고 교체되었고 팀은 2 : 2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북의 신형민 재영입은 대 실패로 끝났다. 4141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들어가 전북의 수비 부담을 덜어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오랫동안 실전 경기를 뛰지 못 한 것이 독이 되었다. 결국 시즌 종료 때까지 폼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대부분의 경기를 벤치에서 시작하였으며, 경기에 투입된 것도 후반 막판 점수 지키기를 위한 짧은 시간동안 투입되는 등 구단과 팬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 채 시즌을 마쳤다.
시즌이 끝나고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로의 컴백 루머가 있었지만, 현재 손준호의 산둥 루넝이적이 거의 확실시되며 재계약을 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전북팬들은 젊은 미드필더 장윤호를 내보내고 신형민과 정혁을 잔류한다는 구단방침에 조금 이해가 안간다는 평이다.
전북하고 재계약할줄 알았지만 2021년 1월 5일 현대가 라이벌울산 현대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계약기간은 단기계약이며 김천 상무에서 전역예정인 박용우자리와 원두재 백업으로 나올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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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울산 현대
2021년 1월 8일 울산 현대는 신형민 영입을 공식발표 했다.
2020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에서 불투이스와의 과격한 신경전이 떠올랐는지 울산현대 공식 유튜브에 신형민 불투이스 관련 영상이 올라와 울산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2021시즌 원두재와 함께 울산의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2010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성인 대표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었고, 핀란드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 26인 명단에 들었으나 김정우, 김남일 등에 밀려 구자철, 이근호와 함께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4. 우승
- 포항 스틸러스 (2008~2012)
- FA컵 : 2008
- 피스컵 코리아(리그컵) : 2008
- AFC 챔피언스 리그 : 2009
5. 플레이 스타일
장점은 많은 활동량에 기반한 중원 장악과 대인 마크 능력, 후방에서의 롱패스, 그리고 가끔씩 터지는 중거리 슛.
그러면서도 단순한 홀딩형이 아닌 2선으로 오버래핑하며 공격진과 컷백 플레이, 볼 배급을 수행하는 역할에 능하다.
또한 상대 역습 시 재빠르게 위치를 선정하고 역습 커팅 및 포백 보호에 능숙하며, 공수 양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톱니바퀴 같은 역할이다.
6. 여담
2011년 12월, 미모의 무용가와 결혼식을 올렸다.
2014년 여름 K리그에 복귀할 때 포항에서는 제안이 없었고, 전북과 울산 중 울산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으나 포항을 배려해 전북으로 이적하며 의리를 지켰다.
포지션의 특성도 있겠지만 유독 경고를 많이 받는 스타일인데, 신기하게도 통산 퇴장 횟수가 1회다.[3]
짱구는 못말려 짱구 아버지 신형만하고 이름이 한글자 차이하고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