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제

 

'''백인제
白麟濟'''
'''출생'''
1898년 1월 28일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 남양동
(現 평안북도 정주시 남양리)
'''사망'''
불명[1]
'''본관'''
수원 백씨[2]
'''부모'''
아버지 백희행
'''형제자매'''
형 백용제, 백봉제
동생 백붕제
'''학력'''
오산학교 (졸업)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도쿄제국대학 (의학 / 박사)
1. 개요
2. 행적
3. 가계도
4. 기타
5.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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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외과의사 , 백병원 설립자다.

2. 행적


1898년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 남양동[3]#에서 부호 백희행(白禧行)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친동생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백붕제가 있으며, 백낙청이 조카다. 고조부 백경해(白慶楷)는 한성부 좌윤(현 서울특별시 부시장), 증조부 백종걸(白宗杰)은 병조참의와 우승지를 지냈다.
오산학교 재학 4년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오산학교 졸업 후에는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예비과정에 입학하였다. 경성의전에서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으나,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죄로 10개월 옥살이를 하고 퇴학당하고 만다. 출옥 후 총독부와 경성의전의 유화 조치에 힘입어 복학하여 결국 전학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3.1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졸업과 동시에 자동 부여되는 의사 면허증을 받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2년을 부수(副手)[4]로 근무하고 나면 의사 면허를 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조선총독부부속병원에서 외과 마취 부수를 하며 마취 기술을 익혔다. 마취과 전문의가 따로 없던 시절이라 마취는 외과 의사한테 중요한 작업이었고, 여기서 익힌 마취 솜씨는 나중에 그가 외과 의사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24년부터 1928년까지 조선총독부 의원에 의사로 근무하였다.
1928년 도쿄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5] 학위 논문 제목은 '실험적 구루병의 연구(전편) : 실험적 흰쥐 구루병의 생성 및 그 일반적 재검색'이었다. 같은 해 경성의전 외과학 교실의 주임 교수가 되었다. 교수 재직 중이던 1930년과 1936년, 두 차례, 약 2년에 걸쳐 독일 베를린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경성의전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 시절의 일본인 스승 우에무라 슌지(植村俊二)가 경영하던 외과 의원을 인수하여 위탁 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1941년에 경성의전을 사직하고 '백인제 외과의원'을 정식 개업하였다.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며 1946년까지 5년간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1946년 12월 17일에 한국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창설했고 1946년 10월 경성의전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국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통합될 때 제2부속병원장 겸 제3외과 교실의 주임 교수를 맡는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민주당 윤치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아쉽게도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하였고, 납북되어 이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3. 가계도


  • 백희행 (1869 ~ 1954) / 妻 청주 한씨
    • 1남 백용제 (1887 ~ 1909)
    • 2남 백봉제 (1896 ~ 1946) / 妻 광주 이씨
    • 3남 백인제 백병원 설립자 (1898 ~ ?) / 妻 최경진 인제학원 명예이사 (1908 ~ 2011)
      • 1녀 백난영 (1917 ~ 2015) / 夫 이서향 극작가 (1914 ~ 1969)
      • 2녀 백향주 (1930 ~ ) / 夫 전명제 (1924 ~ )
        • 1녀 전경화
        • 1남 전수익
      • 1남 백낙조 초대 인제학원 이사장 (1934 ~ 2000) / 妻 하네로레 이틱 (1942 ~ )
        • 1남 백선우 변호사
        • 2남 백선재
      • 2남 백낙훤 인제학원 이사 (1945 ~ ) / 妻 정연희[6] 서양화가 (1945 ~ )
        • 1남 백영익
        • 1녀 백지원
      • 3녀 백남주 (1939 ~ ) / 夫 신융선[7] (1935 ~ )
        • 1녀 신기영 텍사스 대학교 MD 앤더슨 암센터 교수
        • 2녀 신기선
      • 4녀 백향남 / 夫 이규호 전 한진해운 전무 (1940 ~ )
        • 1녀 이혜정
        • 1남 이종상
      • 5녀 백금주 / 夫 오세혁
        • 1남 오영석
        • 2남 오윤석
    • 4남 백붕제 (1911 ~ ?)
前妻 안숙온 (? ~ 1927)
  • 1남 백낙환[8] 제2대 인제학원 이사장 (1926 ~ 2018) / 妻 박숙란 (1930 ~ )
    • 1녀 백수경 이즈엠 대표이사 (1956 ~ )
    • 1남 백계형 (1957 ~ )
    • 2녀 백진경 인제대학교 멀티미디어학부 교수 (1959 ~ ) / 夫 전병철 인제대학교 나노공학부 교수 (1956 ~ )
    • 2남 백도형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1962 ~ )
後妻 최귀란 (1911 ~ ?)
  • 1녀 백순영 (1936 ~ )
  • 1남 백낙청 문학평론가 (1938 ~ ) / 妻 한지현 전 광운대학교 인문지역대학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1943 ~ 2017)
    • 1남 백웅재 미식사전 대표이사
    • 2남 백연재 호주국립대학 연구원
    • 1녀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육학과 교수 / 夫 성지동[9]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2남 백낙돈 (1939 ~ )
  • 3남 백낙서 전 통일원 기획관리실장 (1945 ~ ) / 妻 김윤희[10] (1949 ~ )
  • 3녀 백미영 단국대학교 음악학과 기악과 명예교수 (1946 ~ )
동생으로 친일 관료인 백붕제가 있다. 백붕제의 아들이 문학평론가 백낙청이다. 즉 백낙청이 백인제의 조카이다. 백낙청에게 백인제는 백부가 된다. 친아들은 백낙조(1934~2000) 학교법인 인제학원 설립자이며, 종손주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백영경 교수이다. 시인 백석도 일가 친척으로 숙부 뻘이다.[11] 백낙환 이사장 인터뷰(백인제 박사의 조카), 병원신문, 내가 만난 원로-백인제(白仁濟 박사), 미래한국

4. 기타


유명한 제자로 장기려 박사가 있다.
백병원의 표어가 '''인술제세(仁術濟世), 인덕제세(仁德濟世)'''다. 인제대학교의 '인제(仁濟)'는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하지만 본인 이름의 한자를 바꿔 만든 역 두문자어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의 백인제 가옥[12]은 서울민속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2년 혜화동에서 백인제 가옥으로 서울시장 공관을 옮긴다는 기사가 났으나 문화재 논란, 친일반민족행위자 건축[13] 논란으로 철회하고 은평뉴타운으로 이전했다.
2015년에 가회동 백인제 가옥이 100년 전 서울 최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역사 박물관으로 오픈됐다.# #
백인제 박사는 엄청난 땅부자였다고 한다. - 그리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에서 범인에 대한 심리 상태를 검사한 의사로 인쇄물에 대한 검사를 한 공병우 박사와 더불어, 이러한 내용이 많이 안 알려져 있다. 장기려 평전에서는 이러한 사건 개입 때문에 납북 대상자로 선정된 이유라는 서술이 있다.
[image]
구글에 백인제를 검색하면 인물 정보에 의사양반 사진이 나온다. 또한 납북 관련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아 나이가 '''122세'''로 나왔으나 지금은 원래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5. 대중매체에서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등장 인물인 의사양반의 모티브가 이 백인제 박사일 가능성이 높다. 병원 이름도 백병원이고, 다른 병원에서 안 돼서 이리로 왔다는 언급으로 보아 의사로서의 실력이 상당한 것도 충실한 고증이다. 게다가 생김새도 매우 흡사한데 마치 야인시대 등장 인물들 중 일부가 실제 인물과 해당 인물 담당 배우가 서로 흡사하게 생겼거나 그러하다는 해당 실제 인물의 지인들 증언이 있었던거랑 비슷하다. 덕분에 의사양반의 의대시절이라는 심영물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신문에 따르면 실제 심영이 입원한 곳은 백병원이 아니라 김성진 외과였는데, 당시 김성진도 뛰어난 외과의사였다.
[1]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하였고, 납북되어 이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2] 인주공파(仁州公派) 26세손 ◯제(濟) 항렬[3] 수원 백씨 집성촌이다.[4] 조수(助手)보다 아래 직급.[5] 도쿄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건 조선인으로서는 그가 3번째다.[6] 정인욱 강원산업그룹 창업주의 3녀.[7] 신봉조 전 이화학당 이사장의 아들.[8] 사실상 백인제의 양자나 다름없다. 생후 6개월에 친모가 사망했는데 이 때 백붕제의 나이가 불과 17세였다. 할아버지 손을 거쳐 백부 백인제의 슬하에서 성장했다.[9]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명예교수 성대경(1932~2016)의 아들.[10] 김치열 전 내무부장관의 딸.[11]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으로 인주공파 25세손 행(行) 항렬이다.[12] 영화 암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부호 강인국의 저택으로 촬영되기도 했다.[13] 처음 이 집을 짓고 거주한 사람이 '''이완용'''의 조카이자 본인도 친일 부역자인 한상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