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샤론
[clearfix]
1. 소개
이스라엘의 전직 군인이자 정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악화시킨 주범. 허나 이스라엘 내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와 함께 이스라엘 강경 우파의 얼굴마담이었으며, 베이루트의 학살자, 반미주의의 전도사라는 별명이 있다.
2. 생애
2.1. 국방장관 재직 이전
1928년 이주한 러시아 출신 농민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출생지는 팔레스타인 지구 텔아비브 근교의 유대인 협동 농장이었다고 한다.
14세에 자경단 조직인 지하 유대인 방어군에 입대한다. 1948년에는 그가 속한 지하 방어군이 이스라엘 육군으로 편입되면서 제1차 중동전쟁에 청년장교로 참전, 후방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하였다. 이후 1953년 헤브라이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1957년~1958년 영국 육군사관학교인 샌드허스트에서 유학하였고 돌아와서는 1969년까지 이스라엘 육군보병학교 교장을 맡았다. 참고로 처음 맡았을 때가 30세였다(...)
[image]
(기갑부대 지휘관 시절의 모습, 왼쪽은 모세 다얀 장군)[1]
이후 제3차 중동전쟁,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하여 기갑부대 사령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제4차 중동전쟁 당시에는, 기갑여단을 이끌면서, 수에즈 운하 도하작전을 성공시켜 이스라엘의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2] 전쟁 직후 전역하여 리쿠드당[3] 창당에 도움을 줬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1977년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농업장관을 맡았다.
2.2. 각료 시절
1981년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아리엘 샤론은 1982년 레바논 침공을 지휘하였다. 거기서 베이루트 등지를 폭격하고, 사브라-샤틸라 학살을 묵인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4] 결국 국제적 비난을 받자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지고 1983년 국방장관에서 사퇴했다.
1984년 이스라엘 주택장관으로 임명된 샤론은 1992년까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서안 지구를 갉아먹었다.
기타 1996년에는 에너지장관을, 1998년에는 외무장관을 맡았다. 이후 1999년부터는 리쿠드 당의 당수를 맡으면서, 2차 인티파다를 조장하기도 하였다.
[image]
2000년 9월에는 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슬람교의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하여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5]
2.3. 총리 재직과 말년
2001년 3월 7일, 이스라엘의 총리로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PLO와의 평화협상을 재개하는 등의 약간의 평화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듯 했지만 9.11 테러 직후 평화 무드를 박살내고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다. 평화협상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팔레스타인에 폭격을 퍼붓는 등의 행보를 보였지만 이내 중지하고 온건파로 전향한다. 여기서 그가 반평생을 몸담았던 리쿠드 당을 탈퇴, 온건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2005년 평화협정에 일부 합의하면서 가자 지구에서 자국민 정착촌과 군 병력을 전부 철수시켰다. 그런데 덕분에 이스라엘군은 이후 가자 전쟁 당시 가자 지구를 마음놓고 폭격할 수 있게 되었다. [6]
그 이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분리장벽을 짓고 이스라엘에 유리한 국경선을 이끌겠다는, 서안지구를 가자지구 비스무리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웠지만 팔레스타인인과 레바논인들을 학살한 업보인지 2006년 1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총리로서는 4월 14일까지 재직하였으며 이후 8년간의 투병 끝에 2014년 1월 11일 86세로 사망하였다. 참고로 단 음식을 워낙 좋아하다보니[7] 말년에는 심각한 비만이라[8]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다. 사망했을때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애도하였다. 시신은 남부 네게브사막의 고향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부인 릴리의 묘지 옆에 안장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악마가 죽었다고 그의 죽음을 기뻐하고 환호하였다.
이슬람과 기독교인은 지옥에 갈 존재라고 대놓고 까는 말을 해서인지 팻 로버트슨목사도 "지옥에 갈 건 바로 이 자"이라고 분노어리게 비난했으며 샤론 총리가 죽자 로버트슨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드디어 지옥에 간 샤론"이라고 기뻐하며 이스라엘에서 울컥했다.
3. 평가
이스라엘의 공식적 후견인이 미국이라, 이스라엘을 싫어하면 될 게 미국에까지 번져서 반미주의로 승화했다. 샤론은 그것을 충실히 전파하는 데 노력했다. 물론 샤론 본인은 후원국인 미국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일단 팔레스타인에서는 평이 아주 좋지 않다. 또한 레바논에서도 1982년 당시 레바논 침공과 학살의 앙금이 있는지라 치를 떤다.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등 기타 아랍권 주변국들에서도 인식이 무지하게 안 좋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도 상당히 곱게 보지는 않는 편인데, 레바논 침공과 9.11 테러 당시의 행보, 기타 이스라엘의 막장화 등을 보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내에서는 영웅 그 자체. 우선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승기를 확정지은 전쟁영웅이기도 하고, 애국이 주 사상인 이스라엘 국민정서 특성상 우파가 많기 때문에 샤론의 행보는 이스라엘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 그것 때문에 인식이 좋아도 너무 좋다. 물론 하레디는 샤론 본인이 좋아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지않나, 가자 지구 철수 때 못 간다고 생떼를 쓰며 이주비 더 달라는 소리를 하니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라며 경멸했다.
하지만, 그래도 PLO 하나 잡자고 레바논을 침공하질 않나, 대학살을 묵인하고, 분란을 조장하는 등의 행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애초에 자기 가족은 죽으면 안 되는데 남에 가족은 죽어도 된다는 것이 오류이다. 일단 학살 자체가 용서받을 수 없는 전쟁범죄다. 레바논 침공 또한 얻은 게 아무것도 없고 전사자 150명의 인력 손실이랑 돈만 낭비한 일이었다. 샤론도 그것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되었었지만 미국의 감싸주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았었다. 이 때문에 레바논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선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이라 그가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되다, 죽었을 때 잘 죽었다며 매우 기뻐했을 정도.
총리에 재직할때 불법 선거자금 모금 의혹과 부동산 거래 비리 등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들었지만 잘 빠져 나갔다. 하지만 장남이자 같은 리쿠드 당의 의원인 오므리 샤론이 이스라엘 기업들을 상대로 부친의 선거자금을 1300만 달러나 불법 모금하고 공문서를 위조해 허위자료를 제출하여 돈세탁을 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면서 곤혹을 겪기도 했다. 장남 오므리는 구속되고 나서 의원에서 파면되었고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았다.
헌데 2017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현역 총리의 아들인 야이르 네타냐후가 총리 관저에서 키우는 개를 데리고 예루살렘 공원으로 산책가서 개똥을 놔두고 갔다가 한 시민에게 똥 치우라는 말에 박큐 내밀어서 엄청 욕먹자 진보활동을 하며 반정부적인 글을 쓰며 이스라엘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몰라드라는 언론인이 "무직에 공직도 없는 야이르는 그저 애비가 총리라고 총리 관저에서 호의호식하고 산다. 게다가 피땀어린 국민들 세금으로 놀구먹으며 24시간 중무장한 경찰 보호받으며 사는 잘난 황태자님이시다."이라고 야이르를 까버렸다.
헌데, 야이르 네탸냐후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옴리 샤론은?그놈도 나랑 똑같았고 그놈은 불법 모금으로 징역살이나 하던 놈인데? 라고 SNS으로 올려 물타기를 해버렸다. 옴리 샤론도 질세라 SNS으로 개똥 치우는 것도 못하는 주제에 왜 나를 끌고 넘어지냐?라고 맞서며 서로 엄청 욕을 해대는 일이 있었다.
기타, 국제사회에서 이외의 일로 비난받았던 때는 오슬로 협정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였던 일. 하지만 집권 중후반기 때 이행하긴 했다.
[1] 머리의 붕대는 이집트군의 대전차무기에 의해 타고 있던 탱크가 파괴되면서 입었던 부상이다.[2] 전쟁 초기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의 기습에 효과적으로 대체하는 데 실패하여 큰 피해를 입었고, 한때 핵무기 사용까지 심각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전황이 악화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샤론의 수에즈 운하 도하는 작전 측면의 반격을 넘어, 적 영토로의 병력 진입을 성공시킴으로써 초기의 패배를 일소할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했던 것.[3] 현재 이스라엘 집권여당.[4] 그리고 이것을 TV로 본 오사마 빈 라덴은 격분하여 이것을 갚아주겠다고 다짐하고, 19년 후 '''이것을 실제로 되갚아주었다.'''[5] 알 아크사 모스크는 과거 솔로몬 왕 시절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곳이며,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 무하마드가 승천한 곳으로 메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성지로 대접받는 장소. 그런데 샤론의 극우적 성향을 고려할 때, 당시 그의 방문은 알 아크사 모스크까지 이스라엘과 유태인들이 장악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소지가 높았던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일본의 우익 성향 정치인이 독도를 방문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동급의 정치적 도발인 셈. 하지만 그런 그도 이 기회에 알 아크사 모스크를 헐어버리고 원래 있던 솔로몬 신전을 지을 거냐는 질문에 미쳤소? 라고 즉각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자면 전 아랍동맹 국가들이랑 정말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할 테니까.[6] 물론 그 이전에도 수틀리면 폭격했다.[7] 특히 도넛을 좋아하고 즐겨먹었다.[8] 다만 청년 시절의 사진을 보면 건장한 체격이며 잘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