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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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의 표지
Die Verwandlung
1. 개요
2. 줄거리
3. 해설
4. 여담


1. 개요


체코[1]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독일어로 지어 1915년에 월간지에 게재한 중편소설. 인간이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신한다는 소재를 토대로 실존과 부조리를 묘사하고 있다. 작가 특유의 황당하면서도 냉담하다는 모순된 특성이 잘 살아 있는 대표작인 만큼 카프카를 읽으려면 가장 먼저 읽어 보아야 하는 작품이다. 워낙에 유명하여 펄 벅의 대지처럼 '카프카의 변신'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다.
무한에 가까운 해석의 다양성, 정확한 어휘 사용과 정교함의 끝을 보여 주는 문체, 카프카적 인식이 잘 드러나는 배경, 치밀한 구조적 완결성, 그리고 그 외 많은 요소들 덕분에 20세기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2]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20세기 초반 이후 문학 판도의 대격변을 야기한 작품이며, 변신에 영향을 받은 예술 작품들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소송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연달아 발표하며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교육방송에서 무료로 오디오북을 제공하고 있으니, 한 번 들어보자. (1) 전편목록

2. 줄거리


Als Gregor Samsa eines Morgens aus unruhigen Träumen erwachte, fand er sich in seinem Bett zu einem ungeheueren Ungeziefer verwandelt.

One morning, when Gregor awoke from an uncomfortable dream, he found himself lying in bed and turned into a huge insect.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엄청나게 큰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잠자고 일어났더니 자신이 큰 갑충으로 변해있음을 알게 된다. 변신의 원인은 완전히 불분명하다. 분명 벌레가 되었지만, 방에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는 정황상 가족들은 거대한 벌레를 일단은 '그레고르'로서 인식한다. 그러나 혐오스러운 거대 벌레를 집 밖으로 내보낼 수도, 일을 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 안에 갇혀서 먹이를 받아 먹으며 비참하고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집에서 아무 일자리 없이 지내는 상황에서, 본래 그레고르는 외판사원[3] 으로서 이 집의 살림을 책임지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일할 사람이 없게 되어 가정의 살림은 극도로 궁핍해진다. 그레고르 역시 이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혐오스럽게 생긴 벌레인 그는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처한 그레고르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지기만 한다.
결국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상처가 악화되어 쓸쓸히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시체는 가족도 아니고 가사 도우미 할머니가 쓰레기처럼 내다버렸다. (참고로 이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그레고르를 쇠똥구리로 불렀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출신 벌레가 아니라 그냥 벌레 취급을 해서 말을 다 알아듣는 그레고르를 자극해서 덤비게 하는데, 그의 공격적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는 의자를 잡아들고 벌레의 등쪽을 찍어버리려고 한다.[4]) 그리고 그레고르로 인한 고통에서 겨우 해방된 가족들은 밝은 미래를 그리며 이사를 간다.

3. 해설


사실 카프카의 작품 대다수가 그렇지만, 변신 또한 가능한 해석이 엄청나게 많은 책으로 유명하다. 거의 독자마다 자신만의 해석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따라서 특정 관점보다는 여러 관점을 택해 복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는 요즘은 아예 해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추세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이 작품에선 주인공인 그레고르를 끊임없이 불안과 고통에 떨게 만드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카프카가 주인공을 "변신"하도록 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첫째는 그를 공포에 몸서리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최초엔 순수하게 이변에 놀라워하고, 다음으로 자신의 흉측한 몰골에 혐오를 느끼며, 마지막엔 가족들의 홀대와 질시 속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요컨대 그는 타성적인 생활로부터 떨어져 실존적이 된다. 이런 그를 더욱 실존적이게 만드는 존재로 아버지가 등장함도 눈여겨볼 만하다. 카프카가 보기에 아버지는 언제나 자리에 없다. 심지어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원인[5]이다. 주인공이 필요로 할 때 아버지는 사라지고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가장 체념하고 있을 때에 나타나 숨통을 조인다.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의 몰락은 주변인의 변심으로 굳건히 확인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여동생이 그 역할을 한다. 그레고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여동생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으나, 여동생은 그의 몰락이 사실로 확인되자 냉정히 떠나간다. 혼자 남은 주인공은 그 모든 현실을 떠안고 떨며 죽어갈 수밖에 없다.
변신에서 보여 주듯 카프카의 실존이란 다른 실존주의 작가들과는 또 다른, 어찌 보면 우리가 아는 실존주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령 사르트르의 주인공이 실존하는 까닭은 주인공과 사회가 서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이란 철학적이고 모던하다. 카프카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을 향해 일방적으로 돌팔매가 날아온다. 주인공은 표적이 되어 일방적으로 맞아야 하고 거기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그래서 카프카는 직관적이고도 원초적이다. 주인공은 인간성을 상실한 벌레가 되어 자기를 밟아 죽이려는 천적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렇게 보면 소설 변신은 인간의 실존을 벌레의 생존에 빗대어 놓은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이다. 다른 작가들은 적어도 인간인 채로 끝을 보았는데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카프카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실존주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카프카는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사람이다. 카프카의 작품이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주의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카프카의 작품을 실존주의 소설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고, 현대인의 소외를 그린 것이라는 해석, 종교적인 해석[6],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 당시의 유대인 담론과 연관시키는 해석 등 다양한 관점에서 비평이 이루어진다. 실존주의라는 비평이론으로 카프카의 작품을 보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카프카의 작품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그레고르가 변한 '벌레'에 대한 번역에 대해서는 역자마다 많이 달라진다. 원판에서는 독일어로 'Ungeziefer'라고 적혀있는데, 이 단어는 해충을 뜻하는 'geziefer'라는 단어에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un-'[7] 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로, 해충의 의미가 나쁜 방향으로 강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독일어에서 느낄 수 있는 이 단어에 대한 뉘앙스를 한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어에 대해서는 '해충', '갑충', '독충', '벌레' 등 다양한 형태로 번역된다. 일단 소설 속의 묘사를 보면 크고 꺼림칙한 바퀴벌레로 추정되나, 늙은 하녀는 말똥벌레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카프카는 처음 <변신>을 출판할 때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레고르가 변신한 곤충 모습을 표지 그림에 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래서 이 소설 초판의 표지에는 어두운 방으로 통하는 문에서 얼굴을 가리며 멀어져가는 젊은 남자의 그림이 나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벌레로 변신'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레고르 자신의 강박증정신이상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이전의 그레고르와 전혀 닮지 않은 벌레가 되었는데 가족들은 신기하게 벌레=그레고르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상당히 전형적인 히키코모리가족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가 된다.[8] [9]

4. 여담


  • 한편 미국에서는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 어린이용 그림책도 출판되었는데, 원제는 Beetle Boy지만 국내에서는 원작 소설의 제목 그대로 번역했다. 그레고라는 초등학생 소년이 하루동안 딱정벌레[10]가 된다는 내용이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벌레를 일단은 '그레고르'로 인식하지만 끝내는 매도하고 외면했던 원작과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인다. 처음에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 모두 그레고리가 딱정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벌레가 되었다는 말을 농담으로 여기며 웃어넘기지만[11], 그림책의 막바지에서는 마침내 그레고리의 변신을 알아챈 가족이 그레고리를 위로하며 끌어안고 결국 다음 날에 그레고리는 원래대로 돌아온다. 모두의 외면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원작의 그레고르와는 달리 어린이용 그림책이다 보니 그레고리는 해피 엔딩을 맞이했지만, 어찌 본다면 이 작품은 원작의 그레고르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을 정확히 짚어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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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에서도 동화판이 나왔다. 그런데 표지 삽화가 소설의 어두운 내용과는 워낙 거리가 멀고 귀엽게 생겼다보니 '이크! 벌레가 되었어요' 라는 제목으로 합성한 짤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12][13]
  • 미국에서 피너츠 그림체로 패러디되기도 했는데, 여기선 찰리 브라운이 그레고르 브라운으로 나와 원작처럼 벌레가 되어 비참하게 죽는다. 그걸 본 스누피가 잠깐 놀라다가 미소지으며 이제 벌레가 없는 집은 좋은 거라며 좋아라 한다...
  • 가면라이더 시리즈에 나오는 가면라이더의 모티브였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내용이 '그레고르 잠자를 개조한 건 쇼커고 그 능력으로 변신해서 싸운다'는 왜곡성 유머가 종종 나오곤 한다.

  • 일부 출판사의 2015개정 고등학교 국어, 문학 교과서에 실려있다. 그 때문에 교실에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그레고르 잡자'라고 하는 드립이 흥했다고...
  • 웹툰 이런 영웅은 싫어에선 위 책의 주인공에서 모티브를 딴 그레고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레고르 잠자처럼 거대한 바퀴벌레 모습을 하고있지만, 음성 대화가 가능하고 이족보행이 되며, 뭣보다 성격이 좋아 변신의 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시나위의 동명곡인 7집 수록곡 '변신'은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하였다.
  • 포켓몬스터중 하나인 윤겔라의 도감 설명은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 포켓몬 세계관의 소설의 구절을 따왔다.[14]
  • 라디오헤드의 Let Down 이란 곡이 이 노래에 영감을 받았다.
  • 원래 심판[15]과 화부를 묶어서 '아들들'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집을 간행할 생각이였지만 출판사에서 거절해 취소되었다.

[1] 당시 체코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토(보헤미아 왕국)였다.[2]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변신을 율리시스 다음으로 뛰어난 20세기 산문소설로 꼽은 적 있다.[3] 기존 직업은 점원 보조원이였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함으로 인해 정해진 월급을 받던 점원 보조원에서 성과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외판사원으로 직업을 변경하였다.[4] 겁먹은 그레고르가 공격하려고 다가가던 걸 멈추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정도의 포스를 보여준다. 덩치 큰 할머니라는 설정이다. [5] 여기서의 파멸이 죽음의 원인을 나타낸다면 과연 그러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주인공 등짝 외골격을 뚫고 박히는데 이 다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6] 카프카의 오랜 친구이자 적극적으로 카프카의 유고를 정리해 출판한 막스 브로트가 이러한 해석을 했는데, 이 영향으로 초기에는 카프카의 작품을 종교적으로 비평하는 시각이 많았다.[7] 사실 이 접두사는 뒤의 단어를 부정(否定)할 때 더 많이 쓰인다.[8] 다만 이런 해석은 상당히 단편적인 것이다. 작중에는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여 겪는 신체적 이상(몸의 감각이나 움직임의 부자유 및 습성과 식성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절절히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단순한 정신착란에 의한 환각이라고 단정할 지라도 벽을 기어다니거나 하는 그레고르를 보고 쓰러지거나 과하게 겁을 먹는 어머니나 여동생의 반응 등 작품의 흐름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 다만 이 작품 자체가 그런 상황(개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주변인에 의해 고립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구도로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또 아니다.[9] 라고는 하지만, 히키코모리라는 것이 특별한 상황에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한 집안의 가장이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안에 틀어박히는 상황도 왕왕 발생한다.[10] 정확히는 Carabus problematicus 종.[11] 친구 마이클만이 그레고리의 변신을 알아채고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12] 제목 주위를 잘 보면 원래 표지와는 달리 점 무늬가 없고, 원본에서 잘라 이동한 저자와 역자 표기 뒤에는 점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3] 각종 커뮤니티에서 만물일베설을 까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14] 다만 이 설정은 설정집에만 존재하고 있어서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15] '소송'으로도 번역되는 Der Prozess가 아닌 Das Urteil이란 단편 소설이다. '판결' 또는 '선고'라고도 번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