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중학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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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륜동에 위치한 사립 남자 중학교. 재단법인 동성학원 산하이며 같은 재단 보성고등학교와 교정을 공유. 1906년 개교하였으며 보성전문학교 (현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충숙공 이용익 선생에 의해 설립되었다. '''보성(普成)'''전문학교의 이름을 따서 '''보성'''중학교.
2. 역사
2.1. 학교 연혁
1905년, 탁지부 대신이었던 이용익이 고종황제로부터 '보성(普成)'이라는 교명과 황실 문장인 이화문을 교표로 하사 받아 사립보성소학교와 보성전문학교 (현 고려대)를 먼저 개교하였고, 1906년 9월 사립보성중학교를 개교하였다.[4]
1908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당시 황실군악대를 앞세워 수송동 교사 (현 조계사)에서 경희궁까지 졸업생, 교사들이 행진을 했다고 한다. 을사조약 이후 이용익 선생이 러시아로 망명하였고 그에 따라 보성학교는 손자인 이종호에게로 경영권 넘어갔으나 그는 곧 항일인사로 지목되어 1909년 구금 당했다. 그 후 경영난에 빠진 보성학교를 천도교주인 손병희가 인수하였다.
3.1운동 당시 학교 내부의 인쇄실인 보성사(普成社)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배포하였고 많은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여 3.1운동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에 속해있던 교주 손병희과 교장 최린이 잡혀가 학교가 다시 경영난에 빠졌다. 그 이후에도 거듭된 경영난에 빠지다가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학교를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성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학교법인이 자주 바뀐데서 알 수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계속된 경영난에 시달리던 보성은 보성학원-천도교 총본부-조선불교 중앙교무원-고계학원을 거쳐 현재 재단인 동성학원이 5번째 재단이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흔히 보성학교가 선교사의 도움 없이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민립사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엄연히 틀린 말이다. 다만 같은 재단이었다가 분리된 보성전문학교는 최초의 민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보성중고등학교는 해당되지 않는다.
3. 교훈 및 상징
3.1. 교목#s-2
소나무이며, 실제로 학교 정문으로 들어오는 길에 아름다운 소나무를 볼 수 있다. 교정에서도 많이 보이는 편.
3.2. 교화
목련이며, 봄에는 목련꽃이 펴 교정이 매우 아름답다 .
4. 학교 특징
89년 방이동(현 오륜동) 교정으로 이전할 당시만 해도 면적이나 시설 면에서 꽤 좋은 학교에 속했다.[5][6] 학교 부지가 상당히 넓고 학교 건물과 교정의 여러군데가 대학 캠퍼스를 연상시킨다. 세월이 많이 지나 시설이 많이 낙후되었지만 2016년 7월부터 낡은 시설을 고치는 등 많은 돈을 들여 지금은 12월 현재는 많이 깨끗하다.
정문에서 중학교로 올라오는 길목에 중학교로서는 드물게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데 종종 동문회와 결혼식이 열리며 외부인의 강연이 열릴 때 학생들이 쓰기도 한다. 100주년 기념관보다 강당을 더 많이 써서 학생들은 사실상 거의 안 쓴다 . 현 기념관 부지는 건설 전 농구장 겸 작은 운동장이 있었다. 중학생들의 체육시간 집합 장소겸 점심시간의 아지트였으나... 기념관을 건설들어가니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좁은 운동장을 고교생에게 갈굼 당하면서 쓰고 있다 2020년 현재도 고등학생들이 축구장을 제패하고있다. 운동장 위에 종각도 있다. 개교 80주년에 혜화동 교정에 지었는데 1989년 오륜동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이전되었다. 종에는 3.1운동 정신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으며 개교기념식이나 3.1절기념식에 이 종을 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일주문이 있는데 개교 때부터 함께해온 교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원래는 교사에 딸린 작은 건물로 수송동에서 지어졌고 이후 혜화동으로 옮겨져 양호실로 쓰다가 오륜동으로 이전할 때 벽을 헐어내고 일주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잘 모르고 지나친다. 이 문 앞에는 전통관이라고 일종의 학교 박물관이 있는데 특별한 날 빼고는 개방을 하지 않아서 학생들은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
중학교 쪽에는 설립자인 충숙공 이용익 선생의 흉상이, 고등학교 쪽에는 현 재단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 선생의 전신상이 있다.[7] 교정에 시비가 4개 있는데 모두 이 학교 출신 시인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8]
최근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 주변에서 동북중학교와 더불어 체벌을 많이 하는 학교로 유명하기도 하다. 현재 고등학교 재학생인 보성중 졸업자들도 체벌을 많이 경험한 편이니 현재까지도 체벌은 꽤 남아있을지 모른다. 동북중학교는 최근에 들어 체벌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으나 보성중학교는 현재까지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다. 특히 지도부 선생님이나 몇몇 선생님들에게 걸리면 많이 맞는다. 특이하게도 같은 재단인 보성고등학교는 주변 학교들에 비해서도 체벌이 없는 편. 아마도 중학생의 특성상 그러한 듯하다.
5. 출신 인물
- 김경원 (야구선수)
- 김용옥 (학자)
- 김현식 (가수)
- 박상면 (배우)
- 성신제 (기업인)
- 송승환 (배우)
- 염상섭 (문학인)
- 이승환 (가수)
- 이원희 (유도선수)
- 진(방탄소년단) (가수)
- 표창원 (정치인)
- 허동수 (기업인)
- 저라뎃 (방송인)
6. 위치, 교통
오륜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부지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다. 대로변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주변이 전부 공원 또는 아파트단지라 이렇다할 상권이 없는게 흠이지만 정면에 올림픽공원[12] 과 후방에 서울 외곽 그린벨트 지역을 마주하고 있는 주변 경관은 상당히 쾌적하다. 대부분 올림픽선수촌아파트 거주 학생들이 배정을 받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만 수도권 전철 5호선, 서울 지하철 9호선 올림픽공원역이 정문에, 서울 지하철 9호선 둔촌오륜역이 후문에 개통되었다.
근처에 위치한 중학교로는, 영파여자중학교와 오륜중학교, 성내중학교, 그리고 동북중학교가 있다. 이중 영파여자중학교에서는 매년 열리는 보성중학교 축제 행사날, 댄스팀을 보내 보성중 건아들의 눈을 호강시켜주기도 한다. 또한 오륜중학교는 말이 남녀 공학이지, 남녀비율이 2:8인 학교로, 보성중학교와는 달리 인조잔디가 깔려있어, 보성중학교 학생들이 축구하러 자주 방문하는 보성중 학생들의 핫플레이스이다. 동북중학교와는 같은 남자중학교지만, 둔촌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둔촌동에 있는 피시방에서 자주 마주친다. 그리고 성내동을 돌아다니다 보면 동북중 학생들과 성내중 학생들을 자주 마주친다.
[1] 목련이 교정에 많이 심어져 있어 봄에는 교정이 하얀 목련잎으로 물들어 보기가 좋다[2] 고종황제가 직접 하사[3] 이 재단은 1928년 훗날 동국대학교가 되는 불교전수학교를 개교하였고 보성중학교는 1935년까지 동국대학교와 같은 재단이었던 것이다.[4] 그래서 고려대 교표에는 1905이란 숫자가 쓰여져있고 보성중학교와 고등학교는 1906년을 개교년도로 하고 있다[5] 동문인 전 현대자동차 회장 정세영씨의 지원으로 현대건설이 준공을 맡았다[6] 당시에는 현대적 건축양식이라고 잡지에도 실렸다고 한다.[7] 선생 동상의 다리가 너무 짧아보인다고 부인이 싫어했다고 한다.[8] 이상의 '오감도',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김광균의 '와사등',윤곤강의 '잉경'[9] 풍납동, 둔촌동, 하남시, 3316의 경우 마천동 방면[10] 보성중고등학교 정류장 미경유[11] 잠실, 방이동, 마천동, 동북중고등학교 경유 버스의 경우 둔촌동역 방면[12] 정확히 말하면 올림픽공원 부지 내 한국체육대학교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