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연구
敍事硏究
Narrative inquiry
1. 소개
질적 연구방법의 하나로, 연구의 수단으로서 이야기(story)를 활용하는 연구이다. 장사형(2013)[1] 은 서사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학의 수단이라고 하였다.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인간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인간이 '이야기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인간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고,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며,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형성함을 전제로 삼는다.
서사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는 참가자의 '''복잡성 높은 경험과 삶의 양식'''을 참가자가 '''해석, 편집, 재배열하는 논리를 파악'''하고, 그것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통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병극(2012)은[2] 서사연구가 존재론적으로는 "경험의 본질이 무엇인가?", 방법론적으로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식론적으로는 "그렇게 알게 된 지식의 본질이 무엇인가?" 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하였으며, 홍영숙(2019)은[3] 서사연구는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최종적이고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하는 '문제' 가 아닌, 단지 의아함에 대한 의미화만이 가능할 뿐이므로, 서사연구의 '연구문제' 는 실상 '연구퍼즐' 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하였다.
서사연구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여러 영역들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문예비평 분야를 비롯하여 사학, 사회학, 여성학, 문화인류학, 법학, 행정학, 교육학, 간호학, 심리학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학 분야의 공헌이 매우 크다.
표제어는 부득이 나무위키 내의 다른 문서들과의 표기의 통일성을 위하여 '서사연구' 로 하였으나, 'narrative inquiry' 를 정확하게 옮긴 번역어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inquiry는 탐구로 번역되고, narrative를 서사(敍事)로 번역할 경우 '사건의 순서' 라는 의미가 되는데, 하술하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내러티브 탐구에서 가장 회피하는 관점이다. 그렇다고 '담화' 로 번역하자니 이번에는 discourse라는 단어가 제 짝을 잃는다. 결국, 내러티브를 정확히 어떻게 한자어로 번역할지는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지칭하는 '서사연구' 라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학술검색 시에는 그대로 음역하여 "내러티브 탐구" 로 찾는 것이 수월하다.
2. 배경과 역사
일찍이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Sartre)는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꾼" 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였다. 하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탐구의 대상으로 서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롤랑 바르트(R.Barthes) 등의 '''프랑스 구조주의자들'''부터이다. 이들의 문예비평 및 언어학적 노력을 통해 서사연구의 방법론으로서의 자원이 만들어졌으며, 서사연구가 하나의 가치 있는 접근법이 될 수 있겠다는 인식이 나타난 것이다. 이후 1969년에 츠베탄 토도로프(T.Todorov)가 《데카메론》 을 분석하던 도중에 처음으로 '''서사학'''(narratology)을 제창했다.
이들의 철학은 사회과학계에는 교육철학을 거쳐 '''교육심리학'''을 통해 전래되었다. 50~60년대 무렵에 종래의 행동주의 교육철학만 갖고 씨름하던 교육학자들은, "자극이 있으면 반응이 뒤따른다"(S→R)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채 학교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중학교 교실의 혼돈의 카오스를 목도하고는 그만 넋이 나갔다(…). 행동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자극을 가하면 그에 대응하는 정형적인 반응이 뒤따름으로써 학습(learning)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행동주의는 아무리 봐도 '''학습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보였다. 오히려, 한 학생이 지식을 습득하고 익히는 과정은, 차라리 그 학생에게 직접 물어보고 그 학생의 주관적인 경험과 관점을 전해들음으로써 이해하는 편이 더 쉬웠다. 이 때문에 80년대 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구성주의, 반(反)실증주의는 교육학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학습을 연구할 때 소위 '신의 눈'(God's eye)이 아니라 목소리의 다양성(multiplicity of voices)의 관점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학의 태산북두라 할 수 있는 인물인 제롬 브루너(J.S.Bruner)는 이전까지의 사고방식을 '컴퓨터주의' 혹은 '''"패러다임적 사고"''' 라고 지칭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사고방식을 '문화주의' 혹은 '''"서사적 사고"''' 라고 지칭하여 차별화했다.[4] 이 구분법은 교육심리학에서 기존의 통념을 비판하면서 맥락과 행위의도, 관계,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80년대 이후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전환은 교육학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학제들의 질적 방법론 연구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이때의 생각의 전환을 일명 '''서사전환'''(narrative turn)이라고 부른다.
서사연구는 80년대 중엽에서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방법론 논문들이 다수 출판되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했고, 마침내 2000년에 기념비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의 '''진 클랜디닌'''(D.J.Clandinin)과 토론토 대학교의 '''마이클 코넬리'''(F.M.Connelly)는 유아교육 교사들의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과 전문적 지식(professional knowledge)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를 존 듀이(J.Dewey)의 교육학 이론과 결합해 보니 "개인의 경험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사를 '체계적으로 분석' 할 길이 열린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단행본으로 출판하여 알리게 되었고,[5] 이는 곧바로 전세계의 서사연구 분야 연구자들이 탐독하는 유명한 교과서가 되었다.
이후로 서사연구는 잘 확립된 방법론적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분야의 확장과 응용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질적 연구의 거대한 흐름 중 하나라는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3. 설명
3.1. 서사란?
우선, 서사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다음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위의 이야기는 김 씨의 삶 속의 주요한 변화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서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서사를 형성하기 위한 인과적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 씨는 어째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그렇게 대성통곡해야 했는가? 결국, 위의 이야기에서 제공되는 '''사건 정보들의 나열'''만 가지고는 이 이야기에 몰입하거나 어떤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고,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도 없다.
이번에는 서사의 형태를 갖춘 이야기를 읽어보자.
이제 우리는 비로소 김 씨의 대성통곡의 의미가 '불효자는 웁니다' 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서사를 구성하는 '''인과적 정보'''들은 인접한 문장들을 서로 엮으면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이루어낸다. 물론, 문장의 제시 순서가 고스란히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문장을 '''어떻게 서사적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그 이야기의 원인과 결과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예컨대 박혜영(2014)은[6] "학교장이 학생들을 징계했다." 는 문장과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했다." 의 문장을 제시하고 있다. 서사를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징계 때문에 등교거부 사태가 벌어졌다는 말도 성립하며, 등교거부 때문에 징계가 내려졌다는 말도 성립한다. 다른 예로 한승희(1997)는[7] "주식시장이 붕괴했다." 는 문장과 "내각이 총사퇴했다." 의 문장을 제시한다. 이 역시, 주식시장이 붕괴한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했다는 서사를 만들 수도 있으며, 내각이 총사퇴하는 바람에 주식시장이 무너졌다는 서사를 만들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서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할 준비가 된 셈이다. 서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들에서 제시하고 있는데,[8] 이정표(2012)는[9] 여러 이야기들을 서로 구조적으로 묶은 것이 바로 서사라고 하였다. 한편 위에서 소개한 Clandinin과 Connelly의 교과서인 《Narrative Inquiry》 에서는 (단일한 사건이 아닌) '''여러 사건들을''' (시공간적 기준에 따르는 연대기적 단순나열이 아닌) '''의미부여를 하고 조직화하여 완결된 이야기로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단일한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일화와 서사는 서로 달라진다. 한승희(2000)는[10] 우리가 어떻게 자아를 인식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서사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의 형태를 따르며,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며 의미를 (재)부여'''한다고 말했다.
서사는 단순한 경험이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며, 장기간 혹은 광범위하게 걸쳐지는 여러 사건들의 연속성에 의해 구성된다. 서사는 삶 그 자체와는 다르기는 하지만,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삶과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서사가 '''실제 객관적인 경험이나 사건 그 자체와는 다른, '한 차례 해석을 거친' 변형된 결과물'''이라는 점은 서사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서사는 현실의 객관적 재구성이 아니며, 그것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인식되는가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서사를 형성하는 개인은 그 사건에 대한 '사초' 를 쓰는 것이 아니며,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경험의 여러 부분들을 '선별적으로 추출' 하는 것이다. 즉, 서사에 있어서 사실성(factuality)은 큰 의미가 없으며, 단지 핍진성(verisimilitude)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현실과는 다소 다를지라도 충분히 의미 있고 믿을 만한 내용이라면 '''서사적 진실'''(narrative truth)이라고 부른다.
서사는 학자들의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연구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를 '''서사분석'''(narrative analysis)이라고 한다. 서사를 연구대상으로 보는 방법이자, 서사에 대한 연구(inquiry into narrative)인 것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서사를 형성한 참가자 개인의 서사 하나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서사연구'''(narrative inquiry)가 되며, 질적 연구방법의 하나가 된다. 이때에는 참가자 개인의 서사 위에 연구자가 갖고 있는 자신의 서사가 덧씌워진다. 이미 한 번 현실로부터 변형된 서사가, 연구자의 연구 활동을 통해서 한 차례 더 변형되는 것이다. 이상의 분류에 대해 도널드 폴킹혼(D.E.Polkinghorne)은[11] 앞의 둘을 각각 서사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narratives)과 서사분석(narrative analysis)으로 이름붙였으므로, '서사분석' 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자칫 혼동이 발생하기 쉽다.
이쯤에서 서사에 얽힌 한 가지 논쟁을 들자면, '''인간이 서사를 형성하는 경향은 선천적인 것일까, 후천적인 것일까?''' 조인숙과 강현석(2016)은[12] 선천론자보다는 후천론자에 가깝다. 선천론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호모 나랜스' 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본질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그 근거로서 유아들도 서사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서사는 이마누엘 칸트가 말한 '선험적인 것' 으로서 존재하며, 인간 문명이 있기 전에 이미 서사가 있었다는 점을 제시한다. 반면 롤랑 바르트와 같은 후천론자들은 서사는 문화 속 구성원들의 특정한 관점과 경험, 상황의 맥락을 따라 뒤늦게 형성될 뿐이라고 본다. 예컨대, 자수성가한 실업가의 서사가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가 가치 있게 여기는 노력의 중요성을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회가 먼저 있었고 서사가 있는 것이므로, 사회 밖에서 서사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서사와 유사한 용어로 '''줄거리'''(plot)가 있을 것이다. 어떤 문헌들에서는 장면(scene)과 줄거리를 연구의 단위로 삼는데, Webster & Mertova(2007)는[13] 그 대신에 장소(place)와 사건(event)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줄거리란, 상황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며, '''서사의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들 간의 연결'''로서, 논리적이거나 연속적일 필요는 없다. 흥미롭게도 줄거리에는 일명 '''할리우드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14] 이는 어떤 줄거리가 쭉 제시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뜬금없게도 "그래서 모든 것이 잘 풀리고 모두가 행복해졌답니다" 식으로 내용이 왜곡되는 경향을 말한다.
방금 위에서 소개했던 대안적 용어인 '사건' 에 관련하여, Webster & Mertova(2007)는 서사연구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연구의 단위로서 '''주요 사건'''(critical event)을 제시한다. 이것은 독특하고 묘사될 수 있고 확인 가능한 특성으로 인하여 참가자가 선택한 사건으로, 참가자의 세계관이나 이해의 변화를 촉발한다. 주요 사건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도 있고, 외부적(사회구조적), 내부적(통시적), 개인적(심리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주요 사건들 중에는 '''유사 사건'''(like event)도 있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유독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거나 비슷하게 나타나는 사건들로, 발생 시 서로 유사한 맥락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건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 분야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일럿들을 효과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개발한 훈련성과 분석에서 기원한다고.
3.2.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이제 서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충 정리가 되었으므로, 서사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다. 먼저, 캐서린 리스만(C.K.Riessman)은[15] 서사를 분석하기 위하여 세 가지 분석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첫째, '''주제적 분석'''(thematic analysis)이다. 이것은 서사에서 "무엇을 말했는가? 내용이 무엇인가? 여러 서사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의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다. 둘째, '''체계적 분석'''(systematic analysis)이다. 이것은 서사에서 "어떻게 서사가 형성되는가? 인물은 누구인가? 줄거리와 사건은 무엇인가?" 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상호작용적 분석'''(interactive analysis)이다. 이것은 서사에서 "이 서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누구의 관점인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이 시간을 가로질러 어떻게 연결되는가?" 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그러다가 위에서도 소개했던 클랜디닌과 코넬리가 "경험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에 대해 답을 내놓으면서, 서사연구 분야에서 서사분석을 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이들은 소위 '''3차원 서사연구 공간'''(three-dimensional narrative inquiry spaces)이라고 불리는 분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단, 여기서의 '차원' 이라는 것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차원도 아니고 양적 연구에서 말하는 차원성(dimensionality)도 아니며, 단지 서사를 분석할 때 고려해야 할 세 가지라는 의미에서 나온 은유(metaphor)다. 아무튼, 이 중요하다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 사회성(sociality) : 모든 경험은 개인 간에, 개인과 집단 간에 맥락에 맞게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
- 시간성(temporality) : 모든 경험은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 장소성(place) : 모든 경험은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된다.
분석기준이 그렇다면, 연구를 실제로 실행하는 연구자들은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는가? 김필성(2015)은[18] 전체 연구과정이 '''살아내기'''(living) → '''말하기'''(telling) → '''다시 말하기'''(retelling) → '''다시 살아내기'''(reliving)의 구조라고 하였다. 여기서 염지숙(2002)은[19] 중간의 '말하기' 와 '다시 말하기' 를 각각 '''현장 텍스트'''(filed text) 쓰기와 '''연구 텍스트'''(research text) 쓰기로 부를 수도 있다고 하였다.
- 연구 시작 지점인 "살아내기" 단계에서, 연구자는 자기 본인부터가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한 경험을 서사로써 갖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주제에 대해 "왜 하필 이걸 연구하려고 하는가?" 를 '말하기 → 다시 말하기' 과정을 통해서 서사로 풀어내면서 "서사의 싹" 을 찾아내야 한다. 즉, 자기 스스로를 대상으로 먼저 서사연구를 해야 한다.
- 다음으로 "말하기" 단계에서, 참가자는 말하기 단계에서 연구자와 참가자 모두에게 그 중요성이 공유되는 대화를 면접법의 형태로 풀어놓게 되며, 연구자는 3차원 연구공간에 의거해서 가용한 정보들을 형성하게 된다.
- 다음으로 "다시 말하기" 단계에서, 연구자는 3차원 연구공간을 길잡이로 삼아서 연구주제와의 관련성에 맞게 내용들을 추려내야 한다. 그리고 추려진 내용들은 제3자들이 보기에도 사회적인 의미와 통찰을 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염지숙(2002)은 학계에 소통하기 위한 고민을 하는 단계라고 말하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에 관련된 정당화, "무슨 문제를 다루는지" 에 대한 현상, "어떻게 분석할 것인지" 에 대한 방법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 마지막으로 "다시 살아내기" 단계에서 연구자와 참가자의 삶은 새롭게 변화하고, 인간에 대한 심층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이때의 목표는 결과의 일반화나 이론화, 규칙 발견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복잡성과 다측면성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깨달음' 을 학계에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염지숙(2002)은 세 가지의 '''서사연구 시의 유의점'''을 제시한다. '''첫째,''' 연구자와 참가자 사이의 위계가 존재하여 권력균형이 깨지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한다. 질적 연구 전통에서 연구자와 참가자 간의 권력의 불균형은 널리 이슈가 되었던 연구윤리 상의 문제이며, 따라서 서사연구 때에도 연구자가 참가자의 진술을 억지로 몰아가는 등의 갑의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된다. '''둘째,''' 참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 안전한 환경(safe environment)이 마련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구술사연구에서도 강조되는 것이지만,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서사는 자신이 '성공' 하고 '행복' 했던 이야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실패' 하고 '불행' 했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참가자와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신뢰를 구축하여 참가자가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셋째,''' 서사의 해석에 있어서 참가자의 지식을 화자로서의 우월성을 인정하여 가중치를 두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서사의 해석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서사의 '덧씌우기' 라고 볼 수 있으며, 서사를 받아들이는 양상은 연구자 본인이 갖고 있는 삶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서사연구가 서사분석과 달라지게 되는 특징이며, 이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4. 국내의 현황
국내의 경우 교육학계 각 분과들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점차 그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유아교육학계에는 클랜디닌 및 코넬리와 함께 연구했었던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염지숙 교수가 권위자이다. 현대 교육학계에서 서사연구는 더 이상 마이너한 학문적 시도로 간주되지 않으며, 서사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교육학 저널인 《내러티브와 교육연구》 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여기서 많은 방법론적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사연구는 비단 교육학계 외에도 문헌정보학이나 행정학처럼 언뜻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 다른 분야들로까지 확장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정종원과 이종원(2011)은[21] 민원 담당 공무원들의 삶의 서사를 연구하는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도, 자신들처럼 뒤늦게 서사연구를 도입한 학문분야에서는 그만큼 서구권과의 학술교류가 필수적이라고 하였다. 서구 행정학계에서 진행되는 서사연구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시행착오를 피해가고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혹시 위에서 '3차원 서사연구 공간' 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이게 뭐 어쩌자는 건가 싶은 답답한(…) 기분을 느꼈다면, 당장 논문을 쓰는 연구자들조차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박병기 등(2015)[22] 이 2010~2014년 사이에 수행된 99편의 서사연구 학술지/학위논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향분석에 따르면, 국내 서사연구 논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3차원 서사연구 공간에 대한 설명과 적용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국내 문헌들은 그 주제에 있어 다양성이 높다는 점은 자축할 만하지만, 위에서 말했던 '연구 시작 단계에서 연구자 본인의 서사를 살피는 과정' 이 누락되기 십상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강현석 등(2016)은[23] 아예 더 나아가 '''서사과학'''(narrative science)의 가능성을 역설한다. 이는 쉽게 말하면 서사라는 기치 아래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통섭을 이루자는 것인데, 기존 인문학계와 사회과학계가 연구대상으로서의 인간을 사물화하고 계측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의 주체성과 의미형성의 가능성을 소홀히 했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과학으로 연구방법을 확장한다면 서사의 기치 아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힘을 합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 이후 강현석과 이지은(2017)은[24] 서사과학은 학제간 연구의 다양한 학문 간 구조에도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장점이 있으며, 심지어 양적 연구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건대, 이런 종류의 주장은 뭔가 "펀딩좀 굽신굽신"(…)에 가까운 냄새를 풍긴다. 왜냐하면 인문학계와 사회과학계에 연구비를 펀딩하는 장학재단이나 연구용역을 주는 정부기관 입장에서 보통 선호하는 것이 학제간 연구라든지 융복합 학문이라든지 인문학적 통섭이라든지 하는 화려한 키워드들인데, 상기 논문들을 근거로 삼는다면 차후 인문학 박사학위자들이 어딘가에 연구비 지원 신청을 할 때 서사연구를 팔 수 있게 되기 때문(…). 행정/정책학계 등에서 정부 3.0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키워드에 매달리고, 경영/공학계에서 4차 산업혁명 같은 키워드에 목숨을 거는 것과도 뭔가 비슷해 보인다.
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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