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열차

 

1. 개요
2. 본문
2.1. 상세내용
3. 시티열차 프로젝트 실시 지역
4. 결과
5. 철도 민영화 이후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


'''シティ電車'''
시티열차는 일본국철과 그 후신인 JR이 운영하고 있는 열차, 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지방 도시권에서의 균일간격·고빈도 운전을 하는 보통 열차 시스템을 뜻한다.
JR 분사 이후에는 제도 자체가 정착되어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참고 - 일본어 위키 시티열차 문서

2. 본문


1982년의 시각표 개정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국전[1]이라고 불리는 도쿄권오사카권을 제외하면 우등열차와 화물열차가 주력이었고, 완행열차는 시간당 1~2회의 빈도로 다녔다. 이것은 3대도시권이라고 불리는 나고야도 마찬가지로, 나고야권에서는 나고야 철도가 근교수송을 담당하며 국철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보였다. 이런 국철의 행태는 국철의 정체기[2]가 극에 달한 70년 중반 도쿄 근교의 통근수송이 한창 터져나가던 시기에 발생한 아게오 사건 등을 통해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날로 심각해져가는 교통정체의 해결을 위하여 다시 철도수송의 중요성이 강해지고 있었다. 때마침 1964년 도카이도 신칸센과 1972년 산요 신칸센의 개통을 시작으로 전국에 신칸센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장거리 특급수요는 신칸센으로 이동하였다. 대신 그만큼 선로용량이 확보되면서,[3] 국철은 당시 날로 혼잡해져가던 자동차 등 육상교통정체의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완행철도의 활성화 대책을 내놨고, 그것이 시티열차이다.
수도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통근 5방면 작전이다.

2.1. 상세내용


상세 개선책은 다음과 같다
  1. 시간당 최소 3회이상, 즉 배차간격 20분 이하의 패턴다이어의 구성
이는 시간을 패턴화 시켜서 굳이 시간표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탈 수 있게 만들고, 국전에 버금가는 고빈도의 운행을 하기위함 이었다.
  1. 차량의 개조 또는 신차의 투입
고가감속을 목표로한 신차의 투입이 가시화 되었다. 물론 당시 국철은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타계할 방법 중 하나로 민영화도 고려할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에, 113계, 115계, 417계, 713계와 같은 신기술이 가미된 전동차가 아닌 기존 특급, 급행형 전동차의 개조나 재생, 심지어는 419계 같은 마개조 전동차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1. 1개 편성을 3~4량 정도의 단량편성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2대도시권과 같이 8량 이상의 대규모열차가 필요없었다. 대신 일시적인 수요증가에 맞춰 첨두시엔 탄력적으로 장편성을 운용하게 하였다.
  1. 열차의 속도를 향상
최대한의 열차 순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열차의 속도를 향상시켰다.
  1. 다른 노선과의 연결성 증대
환승을 용이하게 하거나, 직결운행을 통한 연결성 증대를 꾀하였다.
  1. 역의 증설
역의 증설로 역세권의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1. 지역만의 이미지를 넣고 광고
  2. 기획승차권 발매
광고로 승객을 끌어모으는 것을 꾀하였다.
이러한 대책을 가지고 1982년 시각표 개정으로 히로시마 지구에 시범적으로 운영하였고, 반응이 좋자 1984년부터 전국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히로시마 지구는 훗날 히로시마 시티 네트워크로 명명된다.

3. 시티열차 프로젝트 실시 지역



3.1. 삿포로


애칭은 "쿠루쿠루열차 포푸라호"였다. '쿠루쿠루'는 '왔다왔다'라는 뜻.
하코다테 본선삿포로역-테이네역 간을 15-20분 간격, 삿포로역-에베츠역 간을 30분 간격, 치토세선 삿포로역-미나미치토세역 간을 30분 간격으로 증편하였다.
차량은 711계를 사용 중에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삿포로역-테이네역 간 10분 간격, 삿쇼선도 30분 간격으로 증편되었다.

3.2. 센다이


1985년 3월 다이어그램 개정시부터 도입.

도호쿠 본선 센다이역-이와누마역 간을 20분 간격, 센다이역-마츠시마역 간을 30분 간격으로 운행하였다.
운행 차량은 451계·453계·455계·457계, 417계, 583계, 715계 1000번대를 투입하였다. 크림색 바탕에 녹색의 라인을 두른 열차의 도색에서 유래한 "그린 라이너"라는 애칭이 존재한다.
1986년 11월부터는 이와누마역~센다이역 구간을 15분 간격으로, 동시에 조반선과 센세키선의 배차간격도 30분~60분대로 크게 좁혀졌다.

3.3. 니가타


1985년 3월의 시간표 개정부터 도입.
신에츠 본선 니가타역-니츠역, 에치고선 니가타역-우치노역 간을 30분 간격, 하쿠신선 니가타역-토요사카역 간을 40분 간격으로 운행하였다.
애칭은 "헬로 전차".
차량은 기본적으로 115계를 운행하였으나, 신에츠 본선과 하쿠신선에서는 기동차도 사용하였다.
1986년 11월 다이어 개정으로 에치고선이 20분 간격, 하쿠신선이 30분 간격으로 증편된다.

3.4. 나가노


1985년 3월 시간표 개정으로, 신에츠 본선 나가노역-우에다역 간 노선을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면서 "에코 열차"라고 명명하였다.
차량은 통상적으로 115계 1000번대 3량 편성.
토구라역 또는 우에다역에서 우에노역으로 가는 특급 아사마와 시간표를 연계시키기도 해 도쿄~나가노 지역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시도도 있었다.

3.5. 시즈오카 지구


1984년 2월 시간표 개정으로, 도카이도 본선 오키츠역-시즈오카역-시마다역 간을 15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스루가 셔틀" 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밖에, 하마마츠역-토요하시역 간에서는 30분 정도의 배차를 보였다.
통상적으로 차량은 111계·113계의 4량 편성이었다.
1986년 11월 시간표 개정시부터는 오키츠역-시마다역 구간을 10분 간격으로, 미시마역-오키츠역, 시마다역-하마마츠역 구간이 20분 간격으로 증편되었다.
도카이도 본선/JR 도카이 문서 참조.

3.6. 나고야


캐치프라이즈는 "마타세나이 고쿠덴(国電)"으로 번역하면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않는 전철'이다.

3.7. 호쿠리쿠 지구


1985년 3월 시간표 개정으로 호쿠리쿠 본선 카나자와역-코마츠역 구간과 도야마역-타카오카역 구간 보통열차를 각각 30분 간격으로 증편하고 "타운트레인 호쿠리쿠" 라고 명명하였다.
여담이지만 '''국철 희대의 괴작'''인 419계 전동차가 이 때부터 운행되었다.

3.8. 오카야마


애칭은 "사이쿠루 열차"였다. 사이쿠루는 '때가 왔다'라는 뜻.
1984년 2월 시간표 개정으로 산요 본선 오카야마역-이토자키역 간을 20분 간격으로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5년 3월 시간표 개정시부터는 오카야마역-세토역 구간도 30분 간격으로 증편하였다.
또한 1986년 11월 시간표 개정시부터는 이토자키 방면이 15분 간격으로, 아코선·하쿠비선의 배차간격도 30분 간격으로 좁혀진다.

3.9. 히로시마


'''시티열차의 발상지.'''

1982년 시간표 개정으로 산요 본선 히로시마역-오노우라역·이와쿠니역 구간을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히로시마 시티열차"이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1984년 2월 시간표 개정시부터는 산요 본선 히로시마역-사이죠역구간과 쿠레선 히로시마역-쿠레역 간을 30분 간격으로 증편하였다.
그리고 1986년 11월 시간표 개정시부터는 히로시마역-이와쿠니역 구간이 10분 간격(!)으로 증편됐다.
상세한 사항은 히로시마 시티 네트워크 참조.

3.10. 타카마츠


1985년 3월 시간표 개정으로 요산선 타카마츠역-타도츠역 구간에서 쾌속·보통열차를 증편하였고. 쾌속열차는 급행과 아울러 20분 간격의 배차간격이 설정되었다.
당시, 시코쿠의 철도 노선은 죄다 비전철 구간[4]이었던 관계로, 디젤동차가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 구간의 보통·쾌속과 급행열차의 자유석을 이용 가능한 기획승차권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3.11. 후쿠오카 지구


1984년 2월 시간표 개정시부터 가고시마 본선 코쿠라역-오리오역 구간과 후쿠마역-하카타역 구간을 15분 간격(쾌속은 60분 간격)으로, 닛포 본선 코쿠라역~신덴바루역 간을 30분 간격으로 증편하고 이를 "마이타운 열차"이라고 명명하였다.
가고시마 본선은 그 후 1986년 11월의 시간표 개정으로 코쿠라역-하카타역 구간이 15분 간격, 하카타역 - 쿠루메역 간의 배차간격을 30분으로 설정하고, 닛포 본선은 20분 간격의 배차를 유지하였다.
이 외, 1986년 11월의 시간표 개정시에는 당시 비전화 구간이었던 사사구리선·치쿠호 본선(현 후쿠호쿠유타카선) 하카타역-신이즈카역 구간의 배차간격을 30분으로 설정하게 된다.

3.12. 그 외의 지역


상기한 도시들 이외에도 1986년 11월의 시간표 개정시부터는, 모리오카-아키타, 야마가타, 후쿠시마, 우츠노미야, 와카야마, 시모노세키, 코치, 도쿠시마, 쿠마모토, 오이타, 카고시마 근교의 철도 노선에서도 30-60분 정도의 배차가 설정되었다.

4. 결과


시티열차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어 각지의 통근수요를 흡수했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국철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고, 결국 민영화의 수순을 밟게 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 덕에 일본철도는 JR그룹 또한 마치 일본의 여타 대형 사철과 같이 극단적인 여객철도 중심의 빡빡한 선로용량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향이 잡히게 되었다.
비슷한 프로젝트로 한국의 전국 광역철도 계획과 대만 철도 첩운화가 있다.
대도시권에서 먼저 성공을 거두자 90년대 이후로는 인구 40만 미만의 중소도시도 패턴시간표가 활성화되었다.[5]

5. 철도 민영화 이후


이후 JR 6개사들은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완행/보통열차의 증편이나 쾌속열차 등 우등 등급의 설정, 새로운 역의 건설, 비전철화 노선의 전철/복선화, 교통카드 호환화를 실시하였다.
특히 일본 5대 도시권으로 꼽히는 나고야권·삿포로권·후쿠오카권에서는 국철 시대에 비해서 열차 운행 횟수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운행 열차는, 나고야권에서 시간당 8 - 9회, 삿포로권에서 시간당 8회, 후쿠오카권에서 시간당 7회 정도로 시간표가 설정되어 있다.
센다이 지구에서도 센다이 공항 액세스선이 개업하면서 운행 횟수가 시간당 6회로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6. 여담


  • 시티열차는 말 그대로 도시권에서 운영하는 국전급의 통근/근교형 전동차를 만드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시티열차를 실시한 도시권은 실질적으로 그 지역의 중심도시들이었다.
  • 히로시마의 경우 시간당 4회로 시작해서 민영화 이후 전성기때에는 시간당 6회까지 운행했으나, 인구감소가 심화되기 시작하면서 2018년 현재는 시간당 4회로 다시 감소하였다.
  • 그 외 지역은 1990년대 되어서 겨우 도입이 되었다.
  • 대한민국에서도 충청권, 대구권 광역전철과 같이 비슷한 형태의 시스템이 도입될 예정이다.

7. 관련 문서




[1] 민영화 이후에는 전차특정구간으로 명칭이 변경됐다.[2] 일본에서는 전란기(全盛期)라고 부른다. 국철의 운영이 적자로 빠진 1968년부터 민영화까지의 기간.[3] 한국의 지방 광역전철 도입도 KTX 전용선 개통으로 기존선 용량이 확보되어 가능한 것이다.[4] 참고로 JR 시코쿠의 주력전동차인 121계 전동차는 민영화 직전인 1987년 3월부터 운행되었다.[5] 예를 들어 도호쿠 아키타 지역은 1990년대 초반까지 장거리열차 위주였는데 1993년부터는 쾌속열차와 출퇴근시 시간당 2회 이상의 통근시간표가 활성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