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영화)/해석

 




1. 소개
2. 누가 회장을 암살했는가
2.1. 장수기(+경찰) 진범설
2.2. 정청 진범설
2.3. 이중구 진범설
3. 그외 해석
4. 표현주의
5. 신세계 프로젝트


1. 소개


한국영화 신세계에 관련된 각종 해석과 탐구에 대한 문서.


2. 누가 회장을 암살했는가


좋은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의 장치는 관객들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추론과 토론을 거듭해도 결론이 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신세계가 좋은 평을 받는것도 이러한 부분이 큰데, 극중 가장 큰 사건인 '회장 암살'의 범인을 관객들이 아무리 추론해도 '당최 누구여'하는 대화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겁 돌고 돌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극중에서 석동출 회장을 죽인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1. 골드문 공식 서열 2위이지만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원로 이사 장수기
  2. 중국계 마피아인 삼합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화교 출신의 정청
  3. 재범파의 정통을 잇는 이중구


2.1. 장수기(+경찰) 진범설


장수기 이사는 원래 지역구 조직의 보스였으나, 골드문의 전신인 재범파와 흡수 통합된 후 재범파의 보스이자 골드문의 전 회장인 석동출에게 가지치기를 당해 조직원들이 궤멸당하고 본인은 팔다리 다 잘린 노인네 취급 받을 정도로 몰락했다. 개인적으로 석동출에 대한 원한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인물이며, 또한 이후 다른 원로 이사들과의 대화 장면에서 '석회장 시절에는 숨도 못쉬고 살았는디 이제 좀 살 것 같네잉'이라는 다른 이사의 대사를 볼 때, 그리고 이중구가 잡혀가던 날 아침에 송아지 스테이크 를 뜯을 때 그의 측근이 '요즘 장이사가 다른 이사들과 차 마신다고 자주 만난다'라 했던 첩보 내용을 볼 때, 장이사가 다른 이사들과 짜고 석회장을 제거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장이사가 회장 자리를 승계받을 경우 검경찰 측에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큰데, 허수아비로 아무런 실권도 없고 장악력도 없는 인물이 지도자가 되면 당연히 골드문 조직 자체가 분열될 가능성이 커지며, 실제로 중구 파벌과 정청 파벌의 갈등은 폭발 직전이었고 결국 작품 내에서 폭발해 전쟁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장이사가 회장이 되면 이러한 통제 불능 상태의 극단적 갈등이 만성화 되어 조직이 점차 와해되어 공중분해되는 건 시간문제이고, 검경은 손쉽게 이들을 일망타진할 환경이 조성되게 된다. 만일 장이사가 실제 대권에 개입했다면 이자성의 경우처럼 검경찰과 장이사 계열에서 어떤 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회장이 사망한 후 두 세력이 대결해 둘다 붕괴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을 뿐더러, 애초에 신세계 작전이 시작된 경찰 고위간부 비밀회의의 내용에서도 검경찰이 회장암살이라는 큰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더욱이 이자성이 실권을 잡아 가는 상황을 보면 애초에 신세계 작전의 목적이 골드문의 회장과 결탁하여 큰 혼란없이 골드문에게 돈 받은 부패인사들을 잡고 뒤에서 조종하겠다는 것이기에 오히려 조직의 붕괴를 가장 꺼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껏해야 장이사가 경찰과 한패를 먹고 있었다는 것이 이후에 밝혀진 전부다. 게다가 같은 언더커버로 판명된 이자성조차 제거하려 했던, 팀킬도 꺼리지 않는 위험한 인물을 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가능성 희박한 도박을 검경찰이 할 리가 없다.

2.2. 정청 진범설


정청은 삼합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화교 출신의 간부이다. 삼합회의 뒷배경을 이용해 재범파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주어 대기업 골드문으로 키워낸 공신으로 조직 내에서 신진세력으로 들어와 급성장한 경우이다. 따라서 만일 정청이 회장을 암살했다면 이는 삼합회가 정청을 이용해 골드문을 먹어치워 한국의 지하경제를 중국 범죄조직의 식민지화하려는 포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자성이 경찰조직에 끊임없이 지령을 받는 것처럼 정청도 수상한 모습을 보이는데, 회장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끊임없이 정청은 중국을 왔다갔다 한다. 게다가 회장이 사고 당했던 당일에도 정청은 중국에 있었다.
그리고 회장이 죽자마자 정청 패밀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회장을 모셨던 측근 부하들을 하나하나 고문해서 제거하고 있었다. 강과장 또한 공항에서 정청에게 '까놓고 니가 회장 수족들 다 제끼고 조직 통째로 들어먹으려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하자 정청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뭐 알아서 생각하시고' 라 대답하는 대화 부분도 이를 의심케 한다.
다만 정 반대의 모습도 보여주는데, 회장이 죽던 날 병실 앞에서 망연자실하며 깊게 슬퍼하던 모습을 보였으며, 이중구가 회장을 처리했는지를 캐묻는 반박으로 "너 아니었냐?"라고 하던 장면이나, 어차피 그럴 놈이 한두 놈이 아니란 투로 답답하다는 듯 읆조리는가 하면, 차 안에서 이자성과 회장의 죽음이 다소 뜬금없다는 식으로 나눈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 즉 정청이 회장을 실세에서 끌어내릴 계획은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죽일 의도나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2.3. 이중구 진범설


이중구는 회장의 사망 당시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던 감정적인 모습, 선배 이사 삼인방을 두고 '왜 고향후배이자 식구인 나를 버리고 중국인인 정청패에 붙었냐'라고 배신감을 표출하는 장면, 대책없이 여기저기 적을 만들고 말썽부리는 장면, 담당 분야가 사채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전형적인 조폭의 면모,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무식하고 투박하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정통건달 스타일'이기에, 극중 가장 회장 암살범의 이미지와 관계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 그가 처해있는 입지상 오히려 회장 암살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포지션이다.
그는 재범파 정통계승자로 차기 회장 승계자였지만, 중국계 정청의 활약으로 점점 대권에서 멀어져 서열 4위로 주저앉았기에, 그가 이대로 가면 회장의 총애를 받는 정청에게 모든 걸 뺏기고 몰락해버릴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사실 정청의 경우 어디까지나 외래인물이라 재범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골드문의 성골세력을 압도하기에 힘이 부족한 상황이고[1], 차라리 정청 자신에게 호의적인 회장을 최대한 오래 살려놔 더욱 골드문 내에 중국계 마피아들의 조직력을 튼튼하게 쌓는 쪽이 유리할 것이고, 장이사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리스크가 크다. 그렇기에 회장을 암살했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많은 것을 얻는 이는 위의 두 인물보다는 이중구다.
하지만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정청의 입지가 제일 크다는 점에서 굳이 회장을 죽인다면 더 불리해지는 건 자신의 입장이다. 1인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본인이 입지를 타개할 방법이라면 결국 전쟁뿐인데, 아무리 시종일관 정청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중구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고 무엇보다 명분이 전혀 없기에 다른 이사진의 지지조자 받지 못한다. 게다가 일개 폭력조직인 재범파가 기업형 범죄조직인 골드문으로 팽창한 것도 중국계 정청파의 공덕으로 보이기에, 쌈질만 잘하지 경영 능력은 형편없는 재범파의 반란은 초기 단계에서 벌써 명백한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실제로 당장 경찰이 정청과 정보를 주고받았다는 증거를 보자마자 그 증거의 사실여부 확인은 제쳐두고 모든 인원을 동원해 정청을 기습공격하다 정청패는 둘째치고 재범파가 궤멸당해버린 결말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돌고 돌아서 대체 누가 회장을 살해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세 인물 중 두 인물은 각각 골드문 조직에서 냉대받고 있거나, 혹은 외래세력이라 의심할 여지가 크거나 하는 상황이며, 나머지 한 인물은 안정적 기반을 지닌 정통세력임에도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수세에 몰려 있어 얼마든지 반역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대체 누가 회장을 죽인 거야?' 라는 의문이 토의를 거듭해도 해소되기 어려운 건 이처럼 시나리오가 철저히 누수의 여지를 봉쇄하도록 짜임새 있게 쓰였기 때문이다.

3. 그외 해석


  • 극 중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정말 시도때도 없이 줄곧 피워 대는데 이 행위가 욕망에 대한 인물의 집착 내지는 혼돈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 근거로 아직 경찰인 이자성은 빈 담배를 입에 물기만 할 뿐이지만 영화 말미에 회장이 되자 비로소 담배에 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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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인 6년 전 여수에서 정청과 둘이서 습격을 나선 이자성은 가는 도중 담배를 피우고 있다. 또 죽음이 임박해서도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이중구는 마지막까지 담배를 찾고, 반대로 신세계 작전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있을 때 사직까지 생각할 만큼 욕망을 내려놓은 또는 혼돈에서 벗어난 강과장은 담배를 끊는다. 물론 신우의 유언도 있었지만 자성의 흡연 여부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제법 그럴 듯하다. 그리고 6년 전 영상에서 정청과 이자성이 습격에 성공하고 담배를 물지만, 라이터에 가스가 없어서 결국 담배를 피우지는 못한 것과 연계해서 생각해 보면 신세계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이자성이 담배를 못 피우기 시작했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2] 영화 신세계 속 담배에 관한 해석 여담으로 영화 속 흡연 장면들을 본 흡연자들은 하나같이 "담배 엄청 맛있게 피우네." 라는 말을 한다.(...)[3]
  • 정청에 의해 신우와 석무가 제거된 뒤 강과장이 자성에게 "난 말이다, 넌 줄 알았다. 네가 돌아선 줄 알았다고. 오래 전에 딱 한 번, 그런 케이스가 있었지."라고 말을 하는데, 영화 팬들은 강과장이 말한 '돌아선 케이스'를 석동출이나 이중구로 추정하고 있다. 속편이 나오면 드러나겠지만 재미를 위해 정황만 놓고 추정해 보자면, 중국 해커에 의해 유출된 인사기록카드에서 강과장은 95년 부산지방경찰청에서 해운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96년 직위해제된 것으로 나온다. 이 직위해제가 '돌아선 케이스', 즉 배신자에 의해 작전이 실패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관리를 벗어난 배신자를 경찰이 가만 놔둘 리가 없고 그냥 배신자였다고 그쪽의 누군가에게 귀띔만 해도 알아서 제거될 것이니 조직 보스와 핵심 간부로 승승장구한 석동출과 이중구를 배신자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배신자 언급은 그냥 과거에 그런 실패가 있었다 정도의 떡밥인지도 모른다.
  • 신세계에 관한 소품과 플롯에 연관된 해석에 대해서는 여기로. 참고로, 자성이 입는 양복의 색이 밝은 색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어두운 색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자성이 점차 경찰에서 멀어져 조직으로 물들어 감을 뜻한다.
  • 강과장과 고국장의 죽음도 여러 차례 복선으로 알려준다.
    • 석동출의 장례식장에서 이중구와 강과장이 신경전을 벌이며 "강팀장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 함부로 하는 건 여전하시네. 근데 조심 좀 하지. 그 잘난 혀가 댁의 목줄을 끊어 놓을 수가 있거든."이라고 이중구가 도발하자 강과장이 받아치면서 "야 우리 내기 할래? 내 목줄이 먼저 끊기나 니 모가지가 먼저 따이나. 니들 저 영감님하고 병풍 뒤에서 같이 향 냄새 맡고 싶어?"
    • 고국장이 치안감에게 신세계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만에 하나 잘못되면) 뭐…다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 고국장이 강과장의 신세계 프로젝트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아무튼 (이자성) 컨트롤 잘 해. 일 이만큼 벌여 놓고 까딱 어그러지기라도 하면은 너나 나나 (목 잘리는 제스처)…"
    • 신세계 프로젝트가 완성 직전의 단계에 다다라 강과장과 소주를 마시는 고국장이 "일수불퇴(장기나 바둑에서 한번 둔 수는 물릴 수가 없다는 뜻). 이제 다 일 빼도 박도 못 해. 끝까지 가거나, 아니면 다 같이 뒈지거나. 그 전에 아무도 유턴을 못한다고…(중략)…이자성이 그놈 말인데, 고분고분할까? 대가리가 굵어져도 졸라 굵어질 건데."
  • 이자성의 이름을 보고 또 골드문을 명나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골드문이란 사명 자체가 파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자성 말고도 정청계 자체가 한족 조직인 데다 상하이 출장, 한국어는 전혀 안 하고 중국어만 구사하는 중국 출신 변호사[4], 중국 해커 집단, 조선족 킬러, 중화요리월병 등 중국색이 무척이나 강조된 작품이니 만큼 이런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자성의 운명은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이런 캐릭터의 말로는 모두 다 비참하다.

4. 표현주의


영상 문법이나 배우들의 연기 방식이 평이한 데다가 특별히 기괴하거나 화려한 미장센을 추구한 작품도 아니어서 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사실 스타일을 위해 리얼리티를 어마어마하게 희생한 작품이다. 대표적으로 극중 주요 인물을 표상하는 공간들이 정청의 사무실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비현실적이다.
  • 이자성이 흑과 백, 즉 선과 악 사이에서 헤매고 있음을 상징하는, 극 중 출장소라 불리는 기원은 지나치게 넓고 호화스럽다. 일하는 사람이라곤 위장 경찰인 이신우 한 명뿐이니 한 번에 한 명밖에 받지 못할 텐데 도대체 수업료를 얼마나 비싸게 받아야 운영이 가능할까 싶다. 그런데 신우는 어디까지나 바둑 좀 두는 일반인이지 이름난 프로 기사가 아니므로, 실내 장식이 좀 예쁘다고 굳이 턱없이 비싼 돈 내고 그런 데 찾아가서 배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상부에서 돈을 대줄 테니 적자를 보더라도 임대료 못 낼 일이야 없겠지만, 손님도 거의 없이 6년 이상 운영되는 업소라면 당연히 주위에서 의심스럽게 보지 않을까? 극 중 조폭들은 웬만한 문제는 살인으로 해결하는 흉포하기 짝이 없는 무리인데, 그런 자들을 감시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종사하면서 위장을 그 따위로 한다는 건 그냥 나 죽여달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자성은 그 기원에 늘 혼자 들어갔으니 조직에서는 둘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의심이란 게 내연 관계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밖의 커넥션이 있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5]

  • 이중구의 사무실은 냉난방, 소음,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사무 용도로 활용이 불가능한, 공사 중인 고층건물에 마련되어 있다. 그런 대형 공사장에서 일을 하거나 주변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다른 문제야 어떻게 해결한다 쳐도 소음 문제는 절대 해결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이중구가 주요 간부들을 소집한 장면은 소음 때문에 현장음을 쓸 수 없어 대사를 전부 후시녹음했다. 심지어 이중구는 거기서 티샷까지 쳐댄다. 이는 경찰 간부가 건물 옥상에서 골프를 하는 무간도의 한 장면에 대한 오마주인데, 원본이 되는 장면에서 샷을 날리는 방향은 공 맞을 사람이 없는 바다여서 그나마 황당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짓을 해서 문제가 생겨도 골드문 서열 4위인 이중구의 권력으로 무마했을 거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장면은 그와 같은 현실적인 부분까지 계산했다기보다는 그냥 '간지'를 우선해서 만들어 넣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 강과장의 아지트인 폐쇄된 실내 낚시터 역시 이상한 공간이다. 그 곳에는 사무와 관련된 어떠한 비품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은밀히 정보원들을 만나는 것 외에 다른 용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고정적인 비밀 접선 장소가 필요했다면 창고나 사무실 같은 걸 빌려서 쓰면 그만이다. 썩은 물 냄새 맡아가며 그런 데 죽치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강과장은 그 썩은 물에 쓸데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다. 그런 곳에 굳이 들어올 사람도 없겠지만, 만약 누가 와서 물고기도 없는 물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본다면 당연히 이를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사실 그런 장소에 드나드는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행동은 극 중 인물로서는 아무 실익이 없는 짓이다. 이는 단지 작전에 대한 강과장의 집념(낚시대를 드리우고 오랜 시간을 기다림)과 궁극의 실패(썩은 물에서는 고기를 낚을 수 없음)를 극 중 세계 밖의 관객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설정인 것이다.
  • 사실 현실 고증 측면에서 제일 큰 무리수는 신세계 프로젝트의 진행자였던 공무원들을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있다. 아무리 극중 보여지는 조폭의 행태가, 아무리 야마구치구미 같은 일본 야쿠자나 홍콩 누아르 영화 속 갱스터의 모습을 모방한,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이라고 해도, 경찰을 그것도 고위간부를 살해하면 검경이 이를 유야무야 넘길 리가 없다. 고 국장의 공식 계급은 경무관으로 경찰 조직 내에서 총인원이 100명도 안 되는 고위간부다. 그런 고위직이 사고사로 위장한 것도 아니고 백주대낮에 연변 거지들에게 권총에 의해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말 그대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것이며, 검경은 여론에 떠밀려서라도 눈이 뒤집혀 수사에 나설 것이다. 거기에 사람이 딱 한 명만 죽은 것도 아니다. 영화 뒷설정으로 연변 거지들이 사실은 북한군 출신의 살인청부업자이며, 경찰청 서버가 해킹당한 상태에서 하나의 특수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경관들이 동시에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실제라면 군과 대테러부대를 투입해서 진압할 사안이다. 실제로 검경 관련자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아무리 영화라도 적당히 해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신상 정보를 완전히 소거한 이자성의 범행임이 들키지는 않겠지만, 동시기에 온갖 사건이 터진 골드문 조직이 주범으로 지목되어 엔딩 이후 큰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
  • 그 밖에도,
    • 정청이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는 축구 경기장 관중석에서 강과장을 만나 뇌물을 건네는 것
    • 사방이 탁 트인 대낮의 도로 공사장에서 벌어지는 이사 암살
    • 장례식 때 대웅전 불단 앞에 영정 사진을 놓은 것[6]
    • 후반부의 패싸움 장면에서 이중구계의 지도부가 대다수 부하들을 따로 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것[7]
등은 전형적인 '폼 잡기 위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동진은 이런 점들을 '인공성'이라 표현하며 영화의 최대 단점으로 지적(5분35초)했다. 하지만 그러한 인공성을 꼭 단점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는 고문, 살인, 집단폭력이 난무하는 부담스런 영화를 비교적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고 현대 대한민국은 조폭이 이렇게 난동을 부릴 정도의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8] 결국 설정이 어느 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며 때문에 연출을 현실적으로 맞추기보다 역발상으로 더 작위적인 연출을 통해 영화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5. 신세계 프로젝트


  • 영화를 보고 나면 '신세계'는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포스터를 차지하고 있는 세 인물이 상상한 신세계는 각각 달랐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추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신세계 프로젝트는 강과장의 실패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강과장의 의도대로라면 초창기에 여수를 통합한 정청과 자성이 서울로 올라와 북대문파를 만든 후에 석동출의 재범파와 충돌해 둘 다 자멸했어야 하는데, 정청이 물리적 충돌 없이 그냥 담판을 짓고 석동출 밑으로 들어가 버린 것. 그리고 그 연합이 훗날 골드문이라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으니 정청을 만만하게 봤던 강과장 입장에서는 정말 큰 실수를 한 셈이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추진한 것이 바지사장인 장수기와 이자성을 이용해 골드문을 손아귀에 넣는 신세계 프로젝트인 셈인데, 강 과장은 정청의 이면(냉철하게 상대방의 약점을 쥘 줄 아는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여 너무 어설프게 본인을 그대로 노출시켜 버렸다. 다행히 정청이 자성을 눈감아주고, 다혈질인 이중구가 강과장의 꾐에 넘어가 피바람을 일으킨 덕분에 둘 다 자멸해서 신세계 프로젝트가 성공하나 했지만, 바지사장이라 여긴 장수기조차 말 안 듣고 이자성을 제거하려 했고, 결정적으로 이자성도 자신이 원하는 것마냥 '겉은 조폭, 속은 충직한 경찰'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다수의 언더커버를 장기간 범죄조직에 침투시켜 조직 내부의 권력 관계와 각 계파 리더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조직 내분을 일으켜서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경찰이 접수한다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성공 직전까지 갔으니 강과장이 모략에 뛰어난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발밑을 살피지 못했다. 조폭들과 '인간적인 정'을 쌓을대로 쌓은 이자성에게 민간인으로 돌아올 출구를 막아 놓고 강압으로 일관하면 진짜 조폭이 되어서 배신을 할 수 있다는,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알 만한 심리 파악을 못했거나 무시한 것이다. 그 결과는 강과장 자신 및 고국장, 장수기의 죽음과 신세계 프로젝트의 실패였다.
  • 고국장의 말에 의하면 장수기의 제일파는 꾸준히 관리를 받아왔다고 하니 신세계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전부터 골드문 일부 계열에 경찰력이 미치고 있던 셈이다. 장수기가 골드문 회장에 공식적으로 선출되기 전,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허수아비 이사들에게 계열사 분리를 약속했는데 이는 골드문의 세력 축소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므로 경찰의 입김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수기는 이중구와 정청이 그룹 후계구도에서 탈락되자 천안 쪽에서 새 부하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을 이용해 이자성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향후 경찰과 허수아비 이사들을 배신하고 제 2의 석동출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되면 당연히 경찰에서 장수기가 경찰과 손을 잡았다고 고자질을 할터이고, 골드문은 그자리에서 내분이 터졌을 것이다.
  • 영화는 강과장과 고국장이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장면을 통해 신세계 프로젝트의 실패를 암시한다. 이 장면에서 고국장은 난은 사람의 손길에 예민한 식물이라고 경고를 하지만, 강과장이 계속 만지다가 결국 이파리를 부러뜨리고 이를 휙 던져서 숨긴다. 이후 강과장이 이자성을 계속 통제하려다가(매만지다가) 결국 조폭세계로 밀어넣는 것(부러뜨린 것)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1] 극중 초반에도 재범파 식구들의 지분을 전부 합치면 정청의 지분보다 많다고 이중구가 언급한다.[2] 다만 참고로 원래는 둘이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근데 라이터가 불이 안 붙는 바람에 NG가 날 상황에서 배우들이 적절하게 애드립을 쳤고, 황정민이 휙 나가버리자 이정재가 사실상 NG장면이라 생각해 어이가 없어서 웃은 그 장면이, 마치 극중 이자성이 마음편히 웃는 것처럼 보여 마음에 들어서 그냥 그대로 넣은 거라고.[3] 담배 맛있게 피우기로 소문난 골드문 회의장 이중구의 물레방아 씬에서 흡연자들이 강한 흡연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저 장면을 위해서 박성웅은 줄담배를 피웠다고. [4] 다만 중간에 정청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한국어를 알아듣기는 다 알아듣는 듯하다, 듣기만 되고, 회화가 잘 안되는 정도인 듯, 이 정도면 조선족이나 한국 출생의 화교라기보단 한국에서 어느정도 거주한 중국인 변호사쯤 되는 듯 [5] 단 나중에 연변거지들이 출장소에 쳐들어온 것이 주변 조사를 통해 그와 같이 수상한 점을 눈치챈 결과라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 정청이 이자성에게 보여준 경찰 DB 자료에 신우의 사진이 있었으므로, 출장소에 관한 정보는 해킹을 통해 손에 넣은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6] 정식 사찰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고인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사람은 어디까지나 교조인 석가모니와 같은 자리에서 절을 받을 수 없다.[7] 이중구의 오른팔격인 인물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습격했으니 엘리베이터 앞에 정청계가 몰려있을 게 뻔하므로 오히려 이들이 위험해진다.[8] 대한민국에서 조폭의 위상은 거의 바닥이기 때문에 골드문 같은 거대 조폭조직을 만드는 순간 조직 해체의 지름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