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다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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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약력
3. 기타
4. 주요 참여 작품
4.1. 게임
4.2. 애니메이션
5. 외부링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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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田朗
일본일러스트레이터 겸 캐릭터 컨셉 디자이너. 전직 게임 디자이너, 그래피커(캐릭터맨) 1964년 7월 21일 홋카이도 출생. 필명은 '''AKIMAN'''(あきまん, 아키만)인데, 드래곤 퀘스트를 하면서 이름을 적다가 본명인 아키라가 별로 재미없어서 끝에 울트라맨처럼 MAN을 붙인 것이 계기라고 한다.

2. 약력


출생지는 홋카이도 쿠시로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림으로 진로를 결정하여 그림이 강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곳이어서 방황. 졸업 후 상경하여 도쿄 디자이너 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그림의 길을 걷게 되는데 학교 생활이 잘 맞지 않았는지 부모님 몰래 중퇴를 결정, 이후 신문배달로 끼니를 연명하는 나날을 보냈다. 이후 컴퓨터를 구입하여 취미로 컴퓨터 그림을 그리다가 애니메이터로 취직, 일명 동화맨으로서 원화 및 동화 작업을 했는데 쥐꼬리만한 봉급에 견디다 못해 몇 달만에 퇴사하게 된다.
이후 1985년, 게임회사인 캡콤에 아르바이트로 입사하게 되는데, 당시 면접관이었던 오카모토 요시키는 야스다 아키라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대단한 재능이다", "틀림없는 천재다"라고 생각했다 한다.[1] 오카모토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지만 아키만을 보고 내가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겠다며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캡콤 입사 이후 자신의 재능을 주저없이 발휘하였다. 그러나 아키만은 그림을 그리는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플래너라는 사람들이 목에 힘을 주고 다녔기에 자기도 상사(아마 오카모토나 후나미즈)가 화장실에 갔을때 따라가서 '저 플래너[2] 시켜주십쇼' 라고 하여 직책을 따냈다고 한다. 포가튼 월드에 등장하는 상점 아가씨 실피가 야스다 아키라의 첫 도트작이고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는 류/켄/사가트/가일/혼다/장기에프/블랑카/'''춘리'''를 혼자서 모두 만들어 내기도 했다.[3] 파이널 파이트 같은 각종 게임의 크레딧에는 엄연히 게임 플래너로서 니시타니 아키라와 같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후 미국에서 더블 드래곤 같은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이 히트하는 것을 보고 왜 그런지에 대해 분석한 다음, 니시타니 아키라와 함께 파이널 파이트를 고안하는 등 플래너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캡콤에 있던 선배 기획자가 마계촌과 전장의 이리가 1만장 히트를 두고 '앞으로 이런 시대는 더이상 오지 않을 것' 이라고 했지만 그가 제작에 참여하여 마작 학원 1만2천장, 파이널 파이트 3만장, 스트리트 파이터 5만5천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마작 학원의 히트가 커서 인센티브도 많이 받았지만 이때 캡콤이 조금 어려운 시기여서 이 히트가 없었으면 스파2는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니시타니 아키라는 캡콤 최초로 전문 기획자로 입사한 재능있는 기획자였고, 이 때 야스다 아키라는 니시타니 아키라와 함께 일을 하고서 '난 절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일러스트/그래픽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여한 게임의 연이은 히트로 직급이 굉장히 빠르게 올랐는데,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대히트 이후에는 위치가 너무 높아져서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다른 팀에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하는데 돌려졌다. 특히 몸값이 너무 비싸져서 캡콤 내부의 일도 비용 때문에 야스다 아키라에게 맡겨지는 일이 별로 없었을 정도가 되었는데,[4] 이 때 게임 제작에서 멀어진 것은 이후 큰 타격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는 어딘가 결여된 괴짜같은 부분도 있는데 오카모토에게 1600만엔 정도 하는 3D그림을 그릴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했고 오카모토는 그럼 처리를 해줄테니 일주일 정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하니 자기 돈으로 산다고 했고 오카모토는 나중에 돌려줄테니 영수증이라도 받아오라고 말리느라 혼났다고 한다. 보너스가 500만엔 나왔을 때는 뒷주머니에 넣고 그림 공부에 쓰기 위해 레이저 디스크 가게에 가서 '전부 주세요' 라고 하여 몽땅 사왔다는 일화도 있다.
일반 대중들은 아키만을 캡콤 히트작의 일러스트레이터나 캐릭터 디자이너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저기 기록되어 있듯 게임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 같은 역할을 하면서 겸사겸사 그림에 관련된 일을 한 것일 뿐이며 특히 스스로 말하길 캡콤 재직 시절 자신이 일러스트레이션에 할애한 시간은 모든 시간의 5% 미만이라고 할 정도. 유명한 스트리트 파이터2의 간판 그림도 신정에 친가에 돌아갔을 때 집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고 이후에도 그림을 그리면 자신의 시급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다며 오카모토에게 혼이 났다.
실제로 캡콤의 그래픽 스타일을 정립시킨 중요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캡콤의 경우 주요 원화가가 '디자인실'이라는 독립된 별실에 소속되어 간판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한때의 키누나 현재의 신키로 같은 작가가 그런 식으로 일을 하고 있고, 이 체제를 만든 핵심 인물이 아키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디자인실을 만들어 타이틀 로고 같은 경우나 3D 그래픽 초창기 시절 3D 렌더링한 일러스트 작업은 특정 디자이너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고, 일러스트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신입 디자이너들의 교육도 담당하면서 캡콤의 그래픽 스타일을 익히게 했다. 특히 게임에 어울리는 케릭터 디자인을 위해 실루엣만으로도 캐릭터를 알아볼수 있는 명확한 특징을 눈에 띄는 것을 강조했었다.[5]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외에도 도트 작업도 하면서 게임 안에 표현되는 2D 그래픽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캡콤 초기의 도트 스타일을 보여주는 스트리트 파이터2와 그후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의 비교가 그 좋은 예이다. 기존 캐릭터 도트가 그라데이션으로 명암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셀 애니메이션처럼 외곽선 외에 단색으로 표현하는 것을 작업 효율이 훨씬 좋다고 제안하였다. 다만 묘사에 쓰는 색이 줄어들어 정보량이 적기에 확실한 캐릭터 데생과 거기에 맞게 늘어난 프레임의 부드럽고도 정밀한 애니메이션 패턴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첫시도인 다크 스토커즈는 훌륭하게 성공했고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와 엑스맨으로 시작된 마블 캐릭터를 이용한 대전 게임까지 계속 방향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니시무라 키누라는 또다른 걸출한 재능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가 입사하고,[6] 게임의 트렌드가 3D로 전환되면서 야스다 아키라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3D에서는 스타 글라디에이터라는 어중간한 게임을 만든 것이 고작이었다.[7]
캡콤 내에서 많은 트러블을 겪던 때에 오카모토의 배려로 출향하는 형식으로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과 함께 ∀건담을 만들게 되었는데, 당시는 토미노 감독도 많은 상처를 받았던 시기라 서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이었다고 한다. 이후 토미노와의 인연을 이어가 오버맨 킹게이너,건담 G의 레콘기스타의 제작에도 참여해 메카닉 디자인을 맡게 된다. 요시다 켄이치와 함께 토미노 감독 말년 작품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그 토미노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토미노도 그의 작업속도는 단점으로 지적하는데 한 번 디자인을 부탁했더니 1년 뒤에 가져왔다고. 그래도 항상 납득이 가는 디자인을 가져오므로 맡기게 된다고 한다.
2001년에는 마지막으로 게임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 캡콤과 엔젤 스튜디오의 공동 프로젝트인 "레드 데드 리볼버"라는 게임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여하게 된다. 이 때에도 현지인 개발자들에게 유명세를 치렀다는 듯. 여담이지만 이 당시 엔젤 스튜디오의 한국인 개발자였던 박상순(현 엔씨소프트 CAD) 씨와 절친하게 지냈다고.
하지만 2003년 경 프로젝트가 일시 중단되며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는데,[8] 캡콤에 돌아왔을 때는 상사였던 오카모토가 먼저 퇴사해 버렸기에 오카모토와 직접 계약 형식으로 얽혀있던 야스다 아키라도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져 캡콤을 떠나게 된다.
캡콤에서 나온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흔히 프리랜서가 되면 배신자 취급을 받기 마련이나, 캡콤 시절에는 몸값이 비싸 일이 없었기 때문에 퇴사 이후에 오히려 캡콤 관련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건담 이후에는 게임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관련 일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나이트메어 프레임 등의 메카닉 디자인에도 참여하였다. 슈퍼로봇대전 Z에 등장하는 기체인 XAN 역시 그가 디자인한 물건.
친구인 요시다 켄이치, 니시무라 키누와 같이 작업하다보니 그림체가 많이 비슷해졌다.
이 인물이 토미노 요시유키와 개인적으로도 친하기 때문에 전직 캡콤 소속 일러스트레이터들은 턴에이 건담 이후의 토미노 작품에 스탭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애니메이터가 아니지만 전직으로 잠깐 일한 적은 있어 기본적인 기술은 있기 때문에 아주 가끔 직접 그려넣기도 한다고 한다. 건담 G의 레콘기스타 마지막 화에 나온 토미노 감독은 야스다 아키라가 마감 직접 몰래 그려넣은 것이라고 한다.

3. 기타


  • 게임 제작과 간판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유저들의 생각과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다릅니다. 스파2의 캐릭터 일러스트는 저와 팀의 캐릭터맨이 했습니다. 키누 씨는 그 뒤 스파2 대쉬에서 일러스트로 참여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팀의 캐릭터맨 모두가 한 것입니다."

"캐릭터맨이 2년간 회사에서 먹고자며 제작한 사랑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일러스트 책 같은 것 덕분에 '그 게임은 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으면 안 돼'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고객님들은. 그러나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는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캡콤의 격투게임 그래픽은 도트를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자수와 애니메이션 기술 양쪽을 갖춰, 1도트 1도트 키를 넣어 색을 입힌 거죠. 캐릭터의 아이디어를 늘리는 것은 그들의 힘으로 작업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손님들은 며칠만에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만 찾습니다."

http://togetter.com/li/453034 목록을 펼쳐보면 그가 참여한 작업과 다른 작업자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http://togetter.com/li/454035
  •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도 "야스히코의 그림이 좋아서 애니메이터가 되려했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게임 업계에 들어갔다"라고 할 정도.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건담의 팬으로, 학창 시절 "건담은 왜 재미있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일도 있다고 한다. 디자인실 지도를 보면 건프라가 쌓여있는 그의 자리를 찾기가 가장 쉽다. 상기의 토미노와의 관계와 조화되어 건담 vs 시리즈의 탄생에 큰 공헌을 하기도. 이것이 인연이 되어 토미노 요시유키∀건담의 캐릭터 디자인[9]건담 G의 레콘기스타의 메카니컬 디자인을 담당하게 되었다.
  • 니시무라 키누, BENGUS, 요시카와 타츠야 등 후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야스다 아키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니시무라 키누와는 스승과 제자 관계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 다만 니시무라 키누의 팬들이 아키만의 블로그나 트위터 코멘트로 니시무라 키누에 대한 것을 묻는다던지, 아키만의 그림에 '난 키누선생님 그림이 더 좋은데'라던가 하는 식으로 무개념적인 발언을 하는 등 만사에 키누와 얽히는지라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 하다. 이에 대해 아키만은 본인과 달리 니시무라 키누 본인이 팬들과의 교류를 잘 하지 않아서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진 터라 팬심이 신앙에 가깝게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코멘트하고는, 무개념적으로 키누를 떠받드는 키누의 팬을 '키누시탄(キヌシタン)'[10] 이라고 정의하고 트위터에서 블록하기도 했다. 물론 키누 본인을 디스하는 것은 아니다.
  • 인물이나 성격은 꽤나 까탈스러운 듯. 꽤나 직설적이고 거친 입담의 소유자인데다, 약간 삐딱선을 타는 성격. 카오스 라운지 사건에서도 카오스 라운지를 옹호하는 입장에 섰었다. 일본의 코스프레이어인 우시지마 이이니쿠와도 개인적으로 매우 돈독한 사이인데, 우시지마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워낙 나쁜지라 덩달아 까이기도 한다.
  • 업계에서 전설적인 위치에 서 있는 프로이지만, 위의 우시지마 이이니쿠를 모델로 한 19금 동인지로 코믹 마켓에 참가하는 등 공적인 이미지를 딱히 신경쓰고 있지는 않다. 이전 운영하던 블로그의 절반이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으로 차 있었으며, 트위터에서도 성인물 여부를 가리지 않고 리트윗한다.
  • 2016년부터 오버워치를 플레이하고 있는데[11], 본인이 그린 D.Va 그림에 "디바쨩 핥고싶다"(...)라는 멘트를 달아놨다. 2017년에는 블리자드 본사에 초청받아 블리자드 직원들 앞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선보이기도 했다. toco toco와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 따르면 프리랜서 활동 이후로 느껴지던 게임업계에 대한 염증을 (스트리트 파이터의 디자인적 후계라고 느껴진) 오버워치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고[12], 이후 게임업계에 복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서양화, 실사화풍으로 테두리를 그리지 않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아졌지만 그는 실사화풍으로 그리더라도 여전히 테두리를 고집한다고 한다. 마음이 아이같아서 자극을 원한다나 뭐라나.
  • 어느날 야스다 아키라 본인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내용인 즉슨 엔터브레인 직원이라 자칭한 자가 캐릭터 6명, 한 명당 8천엔에 디자인 일을 맡아주지 않겠냐는 것. 단순 일러스트도 아니고 캐릭터 디자인이라면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일인데 달랑 8천에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아키만 같은 거물에 저런 당돌한 메일을 보낸 것은 대체 무슨 용기인가 하는 반응. 이에 아키만 본인 曰, "1명당 10만엔은 받아야 하는데 6명 전부라면 한 명당 8만으로 깎아주겠다" 라고(...).

4. 주요 참여 작품



4.1. 게임



4.2. 애니메이션



5. 외부링크


[1] 이 때 야스다 아키라는 파자마를 입고 면접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에도 회사에 파자마 차림으로 출근했다 등의 전설도 가지고 있다.[2] planner. 기획, 원안, 아이디어 관리 등을 맡는 자리라고 보면 되는데 게임 메인 기획자라고 보면 된다. 현재에는 국내, 해외 게임 회사 모두 게임 디자이너(game designer)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플래너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3] 저 캐릭터의 모든 도트를 다 찍었다는건 아니고 캐릭터를 고안하고 기본 틀을 잡는 정도[4] 그림 같은걸 그리고 있으면 너처럼 중요한 사람이 이런 작은 일이나 하고 있냐는 식으로 오카모토가 불같이 화를 냈었다고 한다.[5] 이 방향성은 후에 길티기어의 캐릭터 디자인에도 보인다. 길티기어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이시와타리 다이스케가 캡콤의 대전 격투 게임의 팬이기도 했고 야스다 아키라의 캐릭터 디자인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서 비슷한 말을 인터뷰에서도 했었다.[6] '야스다 아키라보다 낫다'고 사내에 도는 말을 본인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단, 두 사람의 사이는 사제지간에 가깝다.[7] 이 무렵 니시타니 아키라는 향후 불투명한 미래를 점치고 캡콤으로부터 먼저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대히트를 보상받아 퇴사하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였다.[8] 레드 데드 리볼버를 만들던 엔젤 스튜디오는 락스타 게임즈에 인수되었고 2004년에 게임을 발매했다.[9] 처음에는 메카니컬 디자인을 담당할 예정이었다.[10] 과거 일본에서 기독교가 핍박받던 시절, 막부 몰래 숨어서 종교 생활을 하는 가톨릭 신자를 숨은 크리스천 = 카쿠레키리시탄이라고 불렀는데 이 '키리시탄'을 패러디한 것이다.[11] 오버워치 발매 이후 한동안 트위터 닉네임이 솔저: 76을 패러디한 이름이었다. 전적 검색 사이트에 따르면 경쟁전 티어는 PS4판 골드.[12] 오버워치의 보조 아트 디렉터 겸 캐릭터 디자이너인 아놀드 창은 과거 캡콤 파이팅 잼에 참여했고, 자신이 공동 창업한 UDON에서 캡콤 관련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했던 전적이 있다. 또한, 오버워치가 공개된 초기에는 캐릭터로부터 캡콤의 디자인 영향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13] 게임에 등장한 여캐들은 원작자인 모토미야 히로시가 그린게 아니라 야스다 아키라가 그린 것이다. 컷인이 나올 때의 모습을 보면 그림체가 다르다. 모토미야 히로시는 여캐를 그리는 것을 어려워 해서 아내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