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침략의 서
''Lebor Gabála Érenn.'' '''LGÉ'''. 레보르 가발라 에렌.
11세기 아일랜드에서 익명의 저자가 편찬한 유사역사서. 기독교 신화에 따른 천지창조로부터 에린(아일랜드) 땅에 여섯 민족이 차례로 도래하는 과정,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질 당시까지의 에린의 지고왕의 왕사를 기록했다. 옆동네 웨일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 같은 것이며, 편찬의도에 있어서는 『일본서기』, 『고사기』와도 비슷하다.
아일랜드에서는 19세기까지 진짜 역사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으나, 현대역사학의 사료비판이 도입된 이후에는 그 역사성이 추락했다. 아일랜드 신화의 내용이 일부 내용의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기본 뼈대는 철저히 기독교적인 것이다.
1. 내용
총 10부로 나눌 수 있다.
1. 「창세기」, 신약 외경 「보물의 동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등을 전거로 기독교의 천지창조를 복습한다.
2. 노아의 아들들 중 야벳이 유럽인의 조상이다. 야벳의 아들 중 마곡이 스키타이인의 조상이다. 마곡의 손자인 스키타이 왕 페누스 파르사드의 아들 넬(Nel)이 이집트 파라오의 딸 스코타(Scota)[1] 와 결혼해 기델 글라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기델은 바벨탑이 무너지자 72언어 가운데 좋은 부분을 선별해 고이델어를 만든다. 고이델의 후손인 고이델인, 즉 게일인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떠났을 때와 같은 때에 이집트를 떠나 스키타이 땅에 정착한다. 얼마 뒤 스키타이도 떠나 이스라엘인이 40년을 황야를 방황한 것을 업그레이드해서 440년간 지구상을 돌아다닌다. 7년을 바다에서 보낸 뒤 그들은 오늘날의 아조프 해 일대인 마이오티스 늪지대에 정착하고, 크레타와 시칠리아를 도련선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기델의 후손 브로간은 오늘날의 갈리시아에 브리간티아(Brigantia)라는 도시를 세우고 높은 탑[2] 을 짓는다.
3. 시계를 천수백년 전으로 돌려 대홍수 직전 때, 노아의 아들 비흐의 딸 카사르는 노아를 따르지 않고 따로 우상을 세워 신탁을 받았는데, 세계의 서쪽 끝으로 가라는 예언을 들었다. 카사르를 따르는 무리는 대홍수 40일 전에 에린에 도래했다. 생존자는 카사르 등 여자 쉰 명과 남자 세 명이었다. 세 명의 남자는 핀탄 막 보크라, 카사르의 부친 비흐, 그리고 라드라였다. 핀탄은 카사르와, 비흐는 바르핀드와, 라드라는 알바와 결혼했고, 나머지 여자 마흔일곱 명은 세 남자의 첩으로 분배되었다. 비흐와 라드라는 대홍수 전에 죽어서 핀탄이 유일한 남자가 되었다. 핀탄은 이 상황이 감당이 안 되어 연어로 변신해 도망갔고, 대홍수가 닥치가 물고기로 변신한 핀탄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4. 카사르인의 전멸 이후 에린 섬은 300년간 무주지였는데, 마곡의 후손 파르홀론이 이끄는 사람들이 고티아, 아나톨리아, 그리스, 시칠리아, 이베리아를 거쳐 에린으로 왔다. 이들이 처음 상륙했을 때 에린에는 농사지을 수 있는 평야가 한 개, 식수로 삼을 호수와 강은 세 개와 아홉 줄기 뿐이었다. 그들은 평야를 네 개 더 개간하고 호수 일곱 개를 더 뚫었다. 에린 땅에 소치지, 쟁기질, 요리, 양조가 이 때 도입되었고, 에린 땅을 네 개의 권역[3] 로 나누기 시작했다. 파르홀론인들은 키홀 그리켄코스가 이끄는 포모르라는 존재들이 침공해오자 싸워 이겼다. 하지만 그 뒤 돌림병이 돌아 1주일만에 남자 5천 명과 여자 4천 명이 전멸하고 투언 막 카릴 한 명만 살아남았다.
5. 이후 에린은 다시 30년간 무주지였다가, 역시 마곡의 후손인 네메드가 이끄는 도래인들이 세 번째로 도래했다. 그들은 카스피해에서 출발해 1년 6개월만에 에린에 닿았다. 그들은 평야 열두 개를 개간하고 성 두 개를 짓고 호수 네 개를 뚫었으며 포모르와 네 번 싸워 이겼다. 그러나 지도자 네메드를 비롯한 다수가 역병으로 죽은 뒤 네메드인들은 코난드와 모르크라는 포모르들에게 복속되어 매년 서우인 때마다 자식들과 밀과 우유의 수확량의 3분의 2를 바쳐야 했다. 견디다 못한 네메드인들은 들고 일어나서 코난드를 죽였으나 뒤이어 모르크가 공격해오자 죄다 바다에 빠져 죽고 30명만 탈출했다. 네메드인 생존자들은 셋으로 나뉘어 하나는 브리타니아로 가서 브리튼인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는 그리스로 갔고, 하나는 북쪽으로 갔다.
6. 그리스로 간 네메드인들은 그리스인들의 노예가 되어 흙부대를 지고 옮기는 일을 했다. 230년을 노예로 살다가 탈출해 에린으로 돌아갔는데, "부대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피르 볼그라고 불렸다. 피르 볼그는 다섯 명의 군장들이 이끌었으며, 이들은 에린 땅을 5분해 각자 취해 왕(리)이 되었다. 그리고 이 왕들 위에 에린 땅 전체의 왕인 아르드리라는 왕위를 만들었다. 라긴의 리인 슬라이너 막 델라가 최초의 아르드리가 되었다.
7. 네메드인 들 중 북쪽으로 간 이들은 투어허 데 다넌이 되었다. 피르 볼그가 에린을 차지한지 37년째 되었을 때 투어허 데 다넌은 어두운 구름을 타고 에린에 내려왔으며, 제1차 티러이 벌판 전투에서 피르 볼그에게 승리했다. 판본에 따라 피르 볼그는 완전히 쫓겨나 아일랜드 본섬 주변의 작은 부속도서에 정착했다고도 하고, 코나크타를 피르 볼그의 몫으로 주었다고도 한다. 투어허 데 다넌의 왕 누아다 아르게틀람은 전투에서 팔을 잃어 아르드리가 될 수 없었다. 포모르 혼혈인 오하드 브레스가 첫 투어허 데 다넌 아르드리가 되었다. 그러나 브레스는 정치를 옳게 하지 못했고, 브레스 치세 7년차에 의사 디안 케크트가 누아다에게 은으로 만든 팔을 달아주자 브레스는 쫓겨나고 누아다가 아르드리가 되었다. 그 뒤 브레스가 끌고온 포모르와 투어허 데 다넌은 제2차 티러이 벌판 전투를 치른다. 이 전투에서 포모르의 맹주 발로르가 누아다를 죽이고, 발로르의 외손자 루 라와더가 발로르를 죽이고 후임 아르드리가 된다. 이후 투어허 데 다넌은 150년간 에린의 주인이 된다.
8. 2부의 끝 부분으로 돌아간다. 브로간의 아들 이흐는 탑 위에 올라갔다가 바다 건너 에린 섬을 보고 건너가 투어허 데 다넌의 세 왕을 만난다. 그런데 이흐는 정체 모를 누군가들에게 살해되고, 부하들만 이베리아로 돌아온다. 브로간의 손자들은 복수를 위해 군대를 일으켜 에린으로 쳐들어간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브로간의 다른 아들이며 이흐의 형제인 밀 에스파너의 아들들이었다. 밀의 아들들을 밀레시안이라고 했다. 전쟁 끝에 밀레시안이 승리하여 에린의 지상, 즉 이승세계를 다스리고, 투어허 데 다넌은 지하, 즉 별세계를 다스리기로 한다. 투어허 데 다넌은 바다 건너 서쪽이나 지하의 입구인 고분들 속으로 사라진다.
9. 성서의 열왕기처럼 밀레시안이 에린을 정복했을 때부터 5세기 초에 기독교가 전래될 때까지 게일인의 아르드리 왕사를 나열한다. 그 대부분은 전설의 존재들로 역사적 실재성은 불분명하며 검증도 불가능하다. 쿠 훌린과 핀 막 쿨의 시대의 아르드리들도 여기에 있다.
10. 기독교 전래 이후의 아르드리의 왕사. 그나마 역사라고 봐줄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에 실린 아르드리들은 동시대 문헌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기에 교차검증이 가능하다.
2. 정체와 해석
이 책의 편찬 의도는 다음 세 가지다.[4]
- 이전의 서로 다른 민족들의 기억을 망각해 버림으로써 인구의 통일을 꾀함
2 기독교 이전 토착종교의 신들을 일개 필멸자로 격하시킴으로써 그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함
3 중세 아일랜드에 난립한 수많은 왕조들이 모두 끼워맞춰질 수 있는 족보를 조작해내기 위함
저자들은 자기의 민족인 게일인에게 구약의 이스라엘인들 같은 장대한 역사를 부여하고자 했다. 즉 게일인이라는 민족을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기독교 세계의 정사(正史)에 끼워맞추기 위해[5]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밀레시안이라는 가짜 조상을 만들어내고, 진짜 조상인 켈트족이 믿었던 고대의 신들은 그 가짜 조상에게 정복당하는, 마법 좀 쓸 줄아는 일개 민족으로 격하시켰다.3 중세 아일랜드에 난립한 수많은 왕조들이 모두 끼워맞춰질 수 있는 족보를 조작해내기 위함
저자들은 성경 및 기독교 교리서 외에도 고전시대 지중해 세계 사람들이 쓴 여러 책들을 참고 자료로 사용한 것 같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부분도 티끌만큼이지만 존재한다. 예컨대 게일인(켈트족)이 스키타이 땅에서 기원했다는 부분이 그렇고,[6] 피르 볼그가 그리스의 노예가 된 부분이 그렇다.[7]
현대의 환단고기 같은 위서의 필수요소인 낱말의 피상적 유사성을 가지고 갖다붙이는 것도 이루어졌다. 다만 이것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야만왕국 시대의 기독교 역사서술의 정사였다는 점은 감안하여, 날조를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성자 이시도루스 히스팔렌시스가 썼으며 LGÉ의 참고문헌이기도 한 『고트인, 반달인, 수에비의 왕사』도 이름의 유사성만 가지고 고트와 게타이가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고 서술했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게일인이 건너왔다는 설정도 "이베리아"와 "히베르니아"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파울루스 오로시우스가 아일랜드의 위치를 "이베리아와 브리타니아 사이"라고 기록한 것을 참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8] 이 책에서는 여러 고유명사들의 어원을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원래 존재하던 이름을 설명하기 위해 어원을 끼워맞춘 것이다.[9]
마이오티스 늪은 『프랑크인의 역사의 서』에서, 그리스와 크레타와 시칠리아를 찍고 갔다는 건 『아이네이스』에서 베꼈다. 또 에린 땅에 여섯 차례의 도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세계의 여섯 시대"에 끼워맞춘 것이며, 밀레시안 도래 이후 에레원과 에베르가 남북으로 땅을 나눠먹은 이야기는 이 책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아일랜드가 전통적 수도인 타라를 중심으로 한 북부와 카러그 파드러그를 수도로 삼아 남부의 패권을 쥔 먼스터로 나뉘었기 때문에 그런 정세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중세에 쓰여진, 일종의 '''자발적 관찬신화'''이기 때문에, 비판적 독해 없이 이 책의 내용과 인물들이 고대 켈트족의 신화와 신들이었을 것이라고 믿으면 바보가 된다.
신화서가 아니라 (가짜)역사서의 목적으로 쓰여졌던 LGÉ에서 진짜 켈트 신화를 읽어내는 것은 기독교적 내용과 정치적 목적으로 쓰인 내용들을 발라내고 나서야 가능하다. 우선 카사르,[10] 파르홀론,[11] 밀레시안은 의문의 여지 없이 기각된다. 네메드[12] 와 피르 볼그[13] 는 좀 애매하다. 그러면 남는 것은 투어허 데 다넌과 포모르다. 투어허 데 다넌은 동시대의 웨일스 신화의 등장인물들의 이름 및 고대 로마인들이 기록한 켈트족의 드루이드교의 신들의 이름과 비교해 추적이 가능하다.[14] 추적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짜지 않은 두 지역의 신화에서 같은 역할의 존재들이 발견된다.[15] 그리고 진짜 신화인 것이 확실한 이 "집단" 속에서도 웨일스에서 발견되지 않는 몇몇은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16]
[1] 이 스코타는 스코틀랜드 건국신화에도 나온다. 스코타의 이름이 스코틀랜드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와 반대로 스코트인이라는 민족명을 설명하기 위해 스코타라는 인물을 창작한 것이다. 스코트인은 원래 게일인의 별명으로, 스코틀랜드 땅에 살던 게일인이 스코트인이라 불린 것이다.[2] 로마인들이 세운 헤라클레스의 탑이다.[3] 울라(얼스터), 라긴(렌스터), 무운(먼스터), 코나크타(코노트)[4] http://homepage.eircom.net/~seanjmurphy/irhismys/milesians.htm[5] 삼국유사에 기록된 버전의 단군신화에서 단군의 할아버지가 환인인 것과도 비슷하다. 환인은 힌두교의 인드라이며 불교의 제석천이다.[6] 기원전 1세기 사람 티마게네스는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한 켈트족 갈리아인은 원래 게르만족이 사는 중앙유럽에 살았다고 기록했고, 4세기 사람 암미나우스 마르켈리누스가 그를 재인용하며 갈리아인의 조상은 게르마니아보다도 동쪽에 살았으나 전쟁과 홍수를 피해 서쪽으로 이주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LGÉ가 스키타이를 게일인의 조상으로 설정한 것은 "스코트인"과 "스키타이"의 피상적 유사성 때문이기에 이건 소 뒷발에 쥐 잡은 격.[7] 고대 지중해의 노예는 동양의 노비와 달리 전쟁으로 포로로 잡힌 외국인들이었다. 소위 바르바로이라 불린 존재들.[8] 원양항해를 할 능력이 없는 중세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파울루스 등 고대인이 기록한 지리지들을 검증할 방법이 없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9] 그러니까 게일인이라는 이름이 기델 글라스라는 신화의 인물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게일이라는 이름을 설명하기 위해 기델이라는 인물을 창작하고 그에 관한 가짜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다른 예로 LGÉ에서는 아일랜드의 이름을 투어허 데 다넌의 에리우 > 에린 > 아일랜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대에 아일랜드에 살았던 켈트 부족 이베르니에게서 에린과 히베르니아가 파생된 것이다.[10] 초기 판본에서는 카사르와 핀탄이 반바와 막 쿠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막 쿠일은 밀레시안에게 죽은 마지막 투어허 데 다넌 아르드리 세 명 중 하나의 이름이며, 반바는 그 아내의 이름이다.[11] 이름부터 켈트스럽지 않다. 라틴어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가 어원이다.[12] 어원적으로 "축복된"이라는 뜻이며 켈트어로 "하늘"로 소구된다. 하지만 달리 마땅히 연결할 만한 것이 없다. 게다가 브리튼인의 역사에 네메드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가 밀레시안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어서 시간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13] 오늘날의 벨기에에 살던 켈트족인 벨가이인과 관련성이 추측되지만 일단 불확실하다.[14] 예컨대 투어허 데 다넌의 루와 웨일스의 러이는 드루이드교의 신 루구스가, 투어허 데 다넌의 고브누와 웨일스의 고반논은 신 고반누스가 인간으로 격하된 것이다.[15] 포모르의 발로르와 웨일스의 어스바다덴 벤카우르는 눈을 혼자 뜰 수 없는 거인이고 자신의 친인척인 영웅(외손자 루, 조카 고레우)에게 죽는 악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16] 예컨대 에린의 어원이라는 에리우. 에린의 어원이 이베르니 부족임이 밝혀진 이상, 이것이 실존하는 켈트의 여신 중 이름이 비슷한 신격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에린이라는 이름에 맞추어 중세에 지어낸 존재인지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