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씨)

 


1. 廉
1.1. 실존 인물
1.2. 가상 인물
2. 閻


1. 廉


본관은 파주. 두 번 본관을 옮긴 경력이 있다. 고려 개국 당시 당나라의 교목세가의 후손이자 개국 공신인 염형명(廉邢明)[1]이 시조이며 고려 충렬왕 때 곡성부원군에 봉해진 염제신(廉悌臣)을 기세조로 한다. 이렇듯 염(廉)씨의 기원은 중국 땅을 거쳐 신라-고려 땅에서 시작되었으니 한반도의 혈통과 중국 대륙의 혈통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청학집에 인용된 문헌인 삼한습유기에 의하면 한국의 염씨(廉氏)는 본래 대방국(황해도 지역)에서 기원했다고 하고 있다. 대방 지역은 신라가 삼국 통일하기 이전에는 본래 고구려 영토였으므로 파주 염씨는 고구려계 성씨인 것이다.
파주 염씨는 고려 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도기 시기, 고려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않아 이후 조선 조정 내의 입지가 좁아져 조선사 전반부에는 고려 때와는 달리 왕실 문서에서 파주 염씨 인물을 찾기 힘들다.[2] 다시 조선 정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건 임진왜란 당시 평민 의병장으로 활동한 염걸과 염서등이 그 공훈을 조정에서 인정 받아 활로가 트였을 때부터이다. 그 뒤 인물로는 조선 후기 철종의 어머니인 용성부대부인 염씨[3]가 있다.
국내 인구는 2015년 기준 69,387명이다. 표기에 따라서 엄씨, 발음에 따라서 연씨와 헷갈릴 수도 있는 성이기도 하다

1.1. 실존 인물



1.2. 가상 인물



2. 閻


주나라 계통 성씨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조는 밝혀지지 않았다. 마을 염자를 쓰는 염씨 인물로는 문헌에 신라 신무왕 때 장수 염장(閻長, 장보고를 암살한 인물)과 고려 태조 원년에 의형대령(義刑臺令)을 지낸 동명이인 염장(閻長) 등이 기록되어 있다. 1925년 일제시절 총독부 관리하에 이루어진 호구조사에서는 약 5백여 호가 남아 있었으나 1930년1960년엔 전북 옥구군의 염공술(閻公述)이라는 사람 한 명만 응답했고 1975년, 1985년, 2000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응답자가 없었으나 2015년 조사에서는 24명이다.
이 성을 쓰는 유명인으로는 중국의 군벌 염석산(옌시산)이 있다.


[1] 고려 개국 공신 중 1인으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성과 본관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이다. 이때 봉해진 자리는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2] 이 때문인지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가 전무하다.[3] 본관은 용담(龍潭)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