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포르투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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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포르투갈'''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대항해시대
2.4. 19세기
2.5. 20세기
2.6.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


영국포르투갈에 관한 문서이다. 양국은 매우 우호적인 편이고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양국간의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동맹관계이다. 그리고 영국은 스페인과의 관계와 달리 포르투갈과는 매우 우호적이다.
국제학계나 외교사학계에서 양국 관계를 두고 흔히 하는 논평이 '''유럽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동맹관계'''이다.
상업과 무역에 기반해 이베리아 반도의 근세 제국들에게서 패권을 뺏어온 영국은 포르투갈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고, 포르투갈이 큰 역사적 궤적이나 문명적 기반은 스페인과 공유를 해도, 스페인보다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온건하고, 개방적이라는 포르투갈 사회 분위기 형성에는 영국의 영향이 컸다. 당장 양국 다 관광대국으로서 첨예한 문제인 영어구사율만 봐도 스페인은 여전히 대도심 청년층을 벗어나면 영어울렁증이 심한 반면 포르투갈은 훨씬 더 평균적으로 영어 수준이 높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에는 오늘날의 영국 잉글랜드, 웨일스에 해당하는 지역이 포르투갈과 함께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로마 제국의 일부였을 당시에는 포르투갈과 영국 모두 라틴화가 되었는데, 포르투갈의 경우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 서로마 제국의 일부였을 당시에도 라틴어가 쓰이면서 오늘날의 포르투갈어가 되었다. 영국은 로마 제국의 멸망 뒤엔 앵글로색슨족들이 왕국을 건국해 언어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2.2. 중세


포르투갈 지역은 스페인과 함께 서고트 왕국이 세워졌지만, 서고트 왕국 역시 피지배 민족과 동화되어 라틴화되고 라틴어,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영국은 노르망디 공국에 의해 정복당한 후, 다시 프랑스를 통해 라틴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고트 왕국이 아랍 세력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는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기독교 세력들은 레콩키스타를 하며 서서히 영토를 확장하였다. 당시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레콩키스타를 지원했고, 포르투갈 지역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지원을 받고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정착했다. 1147년 리스본을 함락할 때 영국 기사들의 도움을 받자 포르투갈 왕은 그 공로를 인정하여 헤이스팅스의 길버트를 리스본 주교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었다 한다. 1373년 포르투갈과 영국 양국은 상호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1492년부로 이베리아 반도 전역은 아랍-무슬림 지배에서 탈환되었다.

2.3. 대항해시대


대항해시대 당시 포르투갈 왕국은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양국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견제하는데 매우 우호적인 편이었으나 종종 인도양 무역 이권을 놓고 영국이 포르투갈을 견제할 때도 있었다. 포르투갈 왕국은 한 때 스페인과 함께 이베리아 연합이 되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왕정복고전쟁을 치르자 영국은 포르투갈을 지원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1] 다만 포르투갈이 인도양 무역의 패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싸우는 사이, 영국이 포르투갈 식민 기지가 있던 호르무즈 해협의 무슬림 토후들을 지원하여 포르투갈 식민지를 함락시킨 적도 있었다. 이는 양국 관계 최초로 동맹이 어긋난 사례였다.[2] 포르투갈은 영국과 많은 교류와 무역을 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영국의 유별난 홍차사랑은 17세기 동남아시아 무역로를 통해 포르투갈에 전파된 홍차가 왕실결혼을 통해 영국에 수입된 경우이다.[3][4] 인도의 항구 도시 봄베이는 포르투갈 공주의 지참금 명목으로 영국에 할양되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유명한 포트 와인이 양국간 깊은 상호 문화교류사를 대표하는 물건이다.
영국은 포르투갈 식민지들을 직접 건드리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경우에 따라서 오만의 아랍 해상 세력을 지원하여 포르투갈 해상 교역로를 약화시키고 위축시킬 때도 있었다.

2.4. 19세기


19세기에는 포르투갈이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았다.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실시했지만, 포르투갈은 무시하고 영국과 무역을 계속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아 포르투갈 왕가는 영국의 도움을 받아 브라질로 잠시 피했다. 이 피신 과정에서 영국 해군이 왕가의 피난을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육군이 대거 파병되어 반도 전쟁을 통해 나중에 포르투갈 영토를 되찾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19세기에 식민지와 관련해서 갈등이 있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넓힐려고 했지만, 영국은 포르투갈을 견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대놓고 노골적인 방해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포르투갈은 독일,네덜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카보베르데, 앙골라, 모잠비크 식민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워낙 국력 차가 심하다 보니 모잠비크와 앙골라를 육로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영국이 '꺼져라 우리 그 연결지점에 로디지아 세워야함' 엄포를 두니 어쩔 수 없이 포르투갈이 깨갱하는걸로 끝났다.

2.5. 20세기


2차 대전 당시 포르투갈은 영국에 아소르스 제도 내 공항을 대여해주었다. 20세기 후반 영국과 포르투갈은 나토,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양국은 90년대 후반에 홍콩과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했다.
민간 차원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많은 영국인들이 은퇴 이민으로 포르투갈에 정착했다. 오늘날에도 영국의 물가(특히 런던월세...)를 피해 포르투갈에 정착해 영국 내 직장에서 온라인으로 근무하는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 조앤 롤링은 집필 당시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영어 강사를 하며 본 포르투 대학과 도서관, 교복을 배경으로 삼았다 한다.

2.6. 21세기


21세기에도 양국은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영국에도 포르투갈계 영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영국과 교류가 많아서 영국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양국은 나토회원국들이다. 포르투갈어영어는 유럽연합에서 공용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냉전시절에 영국과 포르투갈이 홍콩마카오를 지배했을 당시에 홍콩과 마카오간에 교류도 많았고 마카오인들도 홍콩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국과 포르투갈은 지금까지도 동맹을 맺고 있다.
2010년대중반에 영국이 유럽연합탈퇴하기로 결정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3. 관련 문서


[1] 당시 포르투갈은 올리버 크롬웰과 동맹을 맺었다.[2] 동군연합 시스템 상에서 끌려온거란 근본적 여건이 있으니 딱히 크게 앙금은 남지 않았다.[3]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에 차를 전해주었다.[4] 정작 포르투갈에서는 홍차보단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데, 인도양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차례로 잃어버린 상황에서 남은 건 브라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가 차의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정치, 지리적인 이유로 들여오는 게 더 수월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