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외교

 




1. 개요
2.1. EU와의 관계
2.2. 스페인과의 관계
2.3. 영국과의 관계
2.4. 프랑스와의 관계
2.5. 이탈리아와의 관계
2.6. 네덜란드와의 관계
2.7. 그리스와의 관계
2.8. 러시아와의 관계
3.1. 중국과의 관계
3.2. 일본과의 관계
3.3. 대한민국과의 관계
3.4.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3.5. 인도와의 관계
3.6. 스리랑카와의 관계
3.7.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3.8. 말레이시아와의 관계
4.1. 적도 기니와의 관계
5.1. 캐나다와의 관계
5.2. 미국과의 관계
6. 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6.1. 앙골라와의 관계
6.2. 브라질과의 관계
6.3. 마카오와의 관계
6.4. 동티모르와의 관계
6.5. 모잠비크와의 관계
6.7. 카보베르데와의 관계
6.8. 기니비사우와의 관계
7. 지역별 관계
8. 관련 문서


1. 개요


포르투갈제2차 세계 대전 이후 NATO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나토 국가들과 군사적, 외교적인 협력을 한다. 더불어 영연방보다는 못하지만 포르투갈어 상호 교류를 하면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인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동티모르와 축구 대회를 가지기도 한다. 또한, 유럽연합에도 가입되어 있다.
포르투갈어 연합체인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에는 참관국도 있다. 주로 일본, 터키, 조지아 등 몇몇 국가가 참관국 지위를 가지고 있고 마카오 등 일부는 정회원국으로 등록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2. 유럽



2.1. EU와의 관계


포르투갈은 EU회원국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EU회원국이라서 EU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가 많은 편이다. 포르투갈어는 EU에서 공용어중의 하나이지만, EU쪽의 포르투갈어는 포르투갈 본토 쪽의 표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포르투갈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포르투갈인들이 같은 EU회원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2. 스페인과의 관계




2.3. 영국과의 관계




2.4.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의 경우 역사적으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악연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돈독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는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때에는 포르투갈을 도와주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고대때부터 로마 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언어, 문화, 종교 등 모든면에서 매우 가까운 편이다. 양국은 유럽 연합, 나토에도 가입되어 있다. 또한, 프랑스내에도 포르투갈계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5.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도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고대때부터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적이 있었고 언어, 문화, 종교, 혈통면에서 매우 가깝다. 양국은 유럽 연합, 나토에도 가입되어 있다.

2.6. 네덜란드와의 관계


네덜란드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리고 두나라는 유럽 연합, 나토에도 가입되어 있다. 또한, 포르투갈에 살던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로 이주를 했다.

2.7. 그리스와의 관계


그리스와는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과거에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로마 제국의 일부였던 적이 있었지만, 로마 제국이 분열될 때, 포르투갈은 서로마 제국의 영토, 그리스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양국은 EU에 가입되어 있다.

2.8.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냉전시절이던 1960, 70년대 식민지배국인 포르투갈과 식민지 독립전쟁을 벌이던 기니비사우앙골라, 모잠비크 등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독립운동을 소련이 지원하며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아직은 적지만 포르투갈도 러시아와 교류를 적극 실시하고 있다.#(러시아어) 그리고 2018년에 영국에서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EU의 일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외교관 추방정책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3. 아시아



3.1. 중국과의 관계



다른 전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 마카오아편전쟁의 전리품인 홍콩이나 청일전쟁의 전리품인 대만 섬과 달리 평화적으로 영구조차한 곳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매 해 베이징에 세금을 납세하는 조건으로 영구 임대했다. 그리고 중국이 1949년 공산화 이후 미국 등 서방과 외교적으로 고립되었을 당시 포르투갈이 미국과 중국의 중재자로 나서며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었다.
사실 여기에는 중국과 다른 나라들의 차이가 있는데, 다른 나라들, 특히 스페인이 복속시킨 아메리카의 대부분이 콘키스타도르들 몇몇이 무쌍을 찍고 군견 한 마리가 원주민 세 명과 맞먹는 전투력을 가질 만큼 뒤떨어져 있던거와는 달리 중국은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대국으로, 화약무기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대항해시대 당시 본토 인구 백만여 명에 불과한 포르투갈이 원거리에서 이들과 전쟁을 벌였다가 화기로 무장한 대군에게 포위당해 섬멸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앙골라, 스와힐리 해안 등을 무력 복속한 것과 달리 명나라 지방 관리의 매수를 통해 마카오를 얻어 간 것이다.
마카오는 대항해시대 이후로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다가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현재는 마카오 특별행정구. 마카오는 그래서 중국과 포르투갈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남유럽 문화를 느낄 수 있고 가톨릭도 대륙과 달리 보편화되어 있어 크고 작은 오래된 교회를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은 마카오를 중계지로 포르투갈과 교역을 하기도 한다.
중국은 브라질의 영향으로 브라질쪽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마카오의 영향으로 간혹 유럽식으로 배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포르투갈 정부에서 주관하는 포르투갈어 시험인 CAPLE(유럽식)가 실시되고 있다.

3.2. 일본과의 관계



일본에 대항해시대 이후 처음 도달한 서양인들이 포르투갈인이다. 그리고 일본은 포르투갈과는 대항해시대 때부터 외교관계를 맺었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에게 [1], 튀김, 조총, 기독교(천주교) 등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일본어에도 일부 포르투갈어 차용어가 존재한다. 그러다가 17세기 이후로 종교적인 문제 + 무역적인 문제로 교역이 끊겼고 19세기 이후 다시 국교를 정상화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2년 일본 제국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동티모르를 침공, 점령했고, 두 국가는 잠시동안 국교를 단절했으나 1953년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
포르투갈인이 일본에 정착한 케이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파울루 로샤의 사랑의 섬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정착한 벤세슬라우 드 모라이스라는 작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당연하게도 일본에서도 로케이션을 했다.
일본도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도 참관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만 대개 한국, 중국과 함께 브라질 쪽이 널리 알려져 있고 브라질 쪽 표현을 가르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그래도 한국과는 달리 포르투갈 정부에서 주관하는 포르투갈어 시험인 CAPLE(유럽식)가 실시되고 있고 간혹 유럽식으로 배울 수 있는 책도 발행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에서는 일본의 선전포고를 받았으나 중립을 지켰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을 축구강국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3.3. 대한민국과의 관계




3.4.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아랍 국가들과는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이 오만을 잠시 지배한 적이 있었다가 이후에 오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3.5. 인도와의 관계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인도고아, 다만디우 등을 식민지배한 적이 있고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고아, 다만디우에서도 포르투갈어(및 크레올어)가 쓰이기도 하고 천주교도 퍼져 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남아있던 고아, 다만디우를 되찾았다. 그리고 포르투갈에도 인도계 후손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2][3]

3.6. 스리랑카와의 관계


스리랑카도 예전에 잠시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천주교의 강요와 현지인들을 탄압하면서 결국 스리랑카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3.7.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은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영향력을 끼치면서 동티모르지역으로 축소되고 19세기에는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이 네덜란드가 차지하고 포르투갈은 동티모르지역만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도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포르투갈은 인도네시아에도 영향을 주었고 언어, 문화에서도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다.

3.8. 말레이시아와의 관계


대항해시대에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은 지금의 말레이시아지역에 진출해서 식민지배를 한 적이 있었다.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말레이시아에서 크리스탕어라는 포르투갈어 크리올이 쓰이고 있고, 말레이시아내에도 포르투갈인들의 후손들과 혼혈들이 거주하고 있다.

4. 아프리카



4.1. 적도 기니와의 관계



적도 기니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상투메 프린시페의 영향으로 잠시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기도 했다. 또 경제 원조를 받으려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어는 많이 안쓰이고 있어서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정회원국이라고 해도 포르투갈과는 사이가 안 좋다. 포르투갈이 적도 기니 원조를 완전히 무시하는 중이라, 현재 두 국가의 관계는 나쁘다.

4.2. 남아프리카 공화국와의 관계




5. 아메리카



5.1. 캐나다와의 관계


캐나다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캐나다에도 포르투갈계 캐나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5.2.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는 매우 우호적인 편이고 두나라는 나토에도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포르투갈계 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5.3.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과의 관계




6. 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브라질, 마카오 외에도 동티모르, 앙골라,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모잠비크는 과거에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동시에 포르투갈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포르투갈과 함께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냉전당시에 포르투갈령 식민지에서 독립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인도는 포르투갈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고아를 되찾았다. 그리고 나서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에서도 전쟁이 일어났고 이후에 포르투갈은 독립을 인정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는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다만,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측에서 독립을 인정할려고 했지만,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지역을 점령하면서 독립승인이 되지 못했다. 21세기초에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뒤에 양국은 공식 수교했다.
포르투갈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브라질, 마카오앙골라, 모잠비크 등 다른 포르투갈어권 국가들로 이주하는 포르투갈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마카오는 카지노로 대표되는 도박 산업과 유흥업, 관광업등 사업의 다각화 와중에 경제적인 대박을 맞았고[4] 앙골라, 모잠비크 등도 식민지 독립 후 옛 종주국으로 떠나갔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식민 종주국의 경제난으로 다시 포르투갈인들이 이민을 오게 되면서 졸지에 백인 비율이 다시 늘게 되었다. 게다가 산유국인 앙골라가 포르투갈을 돕는 등 완전히 관계가 역전되기도 했다. # 단, 기니비사우는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빈국이다보니 포르투갈인들이 오지 않는 편이다.
아프리카, 동티모르, 마카오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는 브라질과 달리 유럽식에 가까운 편이다.

6.1. 앙골라와의 관계




6.2. 브라질과의 관계




6.3. 마카오와의 관계




6.4. 동티모르와의 관계



동티모르는 예전에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지만, 인도네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티모르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또한,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동티모르측도 포르투갈과 매우 가깝다.

6.5. 모잠비크와의 관계




6.6. 상투메 프린시페와의 관계




6.7. 카보베르데와의 관계




6.8. 기니비사우와의 관계




7. 지역별 관계



8. 관련 문서


[1] 덕분에 한국까지 포르투갈어 '빵(pão)' 을 쓰게 되었다.[2] 포르투갈의 총리인 안토니우 코스타가 인도계 총리이다.[3] 또한 이 내용이 KBS 바다의 제국에서도 널리 소개되었던 것으로 드러난다.[4]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은 마카오가 포르투갈령이었을 당시 지배국이었던 포르투갈 정부에서 마카오에서 카지노 사업을 육성, 실시했었지만 금융업 등으로 산업 다각화를 시도한 것은 반환 이후의 일이다. 식민지 시절 카지노 재벌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 포르투갈 혼혈의 스탠리 호라는 중국인 재벌. 자세한건 마카오 특별행정구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