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문화
1. 개요
포르투갈은 문화, 언어 등 모든면에서 스페인과 매우 비슷하지만 '''좀 더 차분하고 덜 격정적이란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갈리시아도 포르투갈과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다. 스테레오타입은 스테레오타입 뿐이고, 현지인들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사실 외부인의 관점으로 보면 큰 역사적 흐름이나, 문화적 경향이나 '좀 차분한 스페인'이란 이미지가 딱히 틀리다고도 보기 힘들다.
2. 상세
유럽의 자유 진영 국가들[1] 중에서 컬러텔레비전 본방송 개시가 가장 늦었던 나라이기도 하다.[2] '''(1980년 3월 7일)''' 한국보다 9개월 정도 빨랐다. 공영 방송사는 RTP.
밀어 닥치는 외세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인들은 고유 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전통적인 포크 댄스는 여전히 포르투갈인의 자존심으로서 전수되고 있으며, 각 지방에서는 축제의 전통도 잘 지켜지고 있다. 16세기, 소극과 종교극에서 뛰어났던 질 비셍트(Gil Vicente)가 포르투갈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 (Luis de Camões)가 오시 루시아다스(Os Lusiadas)라는 발견과 개척의 시대를 찬양한 서사시를 썼다. 19세기에는 알메이다 가헤트(Almeida Garrette)가 로맨틱 드라마를 많이 썼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도 이 시대에 드라마와 시작 활동을 하였는데, 포르투갈 현대 작가로는 드물게 외국까지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가장 잘 알려진 포르투갈 음악은 16세기의 선원들의 갈망을 노래한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린 파두(fado)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리스본에서 듣는 파두는 상업화되어 있고 비싼 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아멜리아 호드리그스(Amélia Rodrigues)는 최고의 파도 여가수로 포르투갈 레코드 가게 어디서나 음반을 살 수 있다. 16세기 동안 건축에서는 마누엘 1세(Manuel I)의 이름을 따서 붙힌 매뉴린 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이 시대를 풍미했던 개발과 개척 정신의 반영으로 장식에 있어서 트위스트와 소용돌이를 주제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장식용타일인 아줄레주(azulejo)[3] 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원래 무어족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포르투갈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리스본에는 아줄레주 박물관도 있다.
근처에 대학이 있다면 대학생들이 정장에 망토를 입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포르투갈에 잠시 거주했던 작가 JK 롤링이 여기서 해리 포터 마법학교의 교복의 영감을 얻었다. 또한 이들 대학생들 여럿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투나(Tuna) 라고 부르는 밴드로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음유시인의 전통을 잇고 있다.
술은 만 16세부터 마실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1 때부터 음주가 가능하다는 뜻.
포르투갈은 7월과 9월에는 공휴일이 아예 없고 2월, 3월, 6월은 카니발과 부활절, 성체축일의 날짜에 따라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 대체휴일 제도는 없다.
투우가 있다. 스페인과 비슷하지만,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에선 소를 죽이지 않는다.
스페인과 비슷하게 북부 거리에는 낙서가 매우 많다.
3. 언어
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 문해율이 30%대에 불과했을 정도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주요 외국어는 영어(32%), 프랑스어(24%), 스페인어(9%)가 꼽힌다. 그리고 소수 언어로 미란다어[4] 라는 언어가 쓰이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는 브라질쪽 표현과는 일부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거나 젊은 층은 대체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스페인어는 언어적 유사성 때문에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 편이다. 현대 와선 포르투갈이 소국으로 전락한지라 사람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포르투갈은 잘나가던 근세 제국주의 시절은 물론이고 그보다도 한창 이전 중세부터 영국과 엄청 깊고 오래된 경제적, 외교적 관계가 있었다.[5] 게다가 수백년간 리스본은 국제항구, 코임브라는 국제 대학도시로 번영했으며, 포르투갈 제국주의 자체도 직접 영토를 정복하는 스페인과 달리 중남미보다 인도양,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이 일방적으로 '정복'하는게 아니라 현지 여러 세력들 중 하나로서 협상과 무역이 중점이었던 상업적 성격이 더 컸다.
무엇보다 근현대사를 주름잡은 살라자르 정권이 프랑코 정권보단 확실하게 온건했던 편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스페인보다는[6] 문화적으로 외부에 더 개방적이고,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도 잘 통하는 편이다.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한번에 묶어 여행하던 관광객이 스페인에서 영어 못해서 쩔쩔매는 현지인들이랑 같이 쩔쩔매다가 포르투갈 와서 한시름 더는건 유럽 여행자들 사이엔 유서 깊은 전형적인 모습이고, 포르투갈 사람들도 덩치 큰 이웃나라 사람들 비웃을때 '영어 못하는 양반들'이라며 '애플'을 '아쁠', '예스터데이'를 '예스떼르다이'라 하며 영어에서 t, r과 모음변화 힘들어하는 스페인사람들이 참 힘들게(...) 영어 회화하려는걸 흉내내면서 깔 정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포르투갈, 브라질외에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있다보니 이들 국가들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가 결성되어 있고 몇개의 나라들도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포르투갈에도 과거에 루시타니아어라는 미분류 언어도 쓰였지만, 일찍이 소멸되었다. 그리고 포르투갈내에도 유대 포르투갈어라는 유대제어에 속한 언어도 사용되었다.
영국과 500년 넘게 우호관계를 맺은국가다 보니 남유럽 국가들중에서는 영어가 가장 잘통하는 국가로 꼽힌다.
4.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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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이웃 국가인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이 압도적으로, 2011년 기준 81%를 차지하며, 21개의 교구가 있다.[7] 개신교인은 1만 명 이하이고, 유대교인 수는 5천 이하다.
이 지역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일찍이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무렵부터였다. 7세기 사라센의 침입으로 한 때 이슬람교의 영향 아래 있기도 했으나 114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포르투갈 왕국을 세운 아폰수 엔히크스는 왕국을 교회에 봉헌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산초 1세 때에는 시토회의 영향으로 반 교황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나 13세기에 탁발수도회가 들어와 교황의 강한 지지세력을 형성하였다.
포르투갈은 15세기 이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하여 남아메리카의 일부, 인도, 아프리카 등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들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1536년 종교재판을 실시했고, 1540년 예수회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1580∼1640년의 시기는 포르투갈 교회사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위를 겸하면서 주포르투갈 교황 사절과 예수회를 추방하고 해외 선교도 금하였다. 그러나 교황이 포르투갈의 독립전쟁을 도움으로써 관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18세기에 들어 반교회 감정이 강해지면서, 세속주의 운동이 급격히 퍼져나갔으며, 1821년엔 모든 수도회를 폐쇄시키고 교회 재산을 몰수했으며, 1910년 이후에는 초등교육에 있어서의 종교교육을 금했었다. 그러나 1917년 정변으로 실권을 잡은 군사 정권과 살라자르는 적극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교황청과 관계가 개선되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도 1917년에 일어났는데, 타이밍이 매우 적절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 군사 정권은 가톨릭을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모두 금지하고 박해하였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사 정권이 무너지면서 포르투갈은 다시 세속적인 국가로 전환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과 가톨릭의 정경유착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새로운 제3공화국은 헌법과 법률에서 국교를 폐지하고 정교분리원칙을 확고히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정치 개입을 억제했다. 그런데도 1980년대엔 가톨릭교회가 포르투갈 선거에 개입하려던 사건들이 터져서 국민들 사이에 신뢰만 더 떨어트리는 결과만 낳았다. 그로 인해 포르투갈에서의 가톨릭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편이다.[8] 이웃나라인 스페인도 독재 정권하에 가톨릭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해졌으나 그게 현대에도 이어진 점을 생각해보면, 독재 정권을 어떻게 청산했냐의 결과에 따라 극단적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현대엔 스스로 가톨릭을 믿고있다는 사람들도 1/3만이 미사에 정기적으로 참례하고 있다고 하니, 통계와 실제 종교관간에 차이가 큼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은 카네이션 혁명 이후 이혼과 낙태를 합법화하였다. 또한 2001년부터 동성커플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하였고 2010년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개신교를 믿는 경우가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수도 리스본과 포르투, 신트라, 파루 등을 제외하면 교회를 찾기 힘들다. 대신 성당은 어딜가나 아름답게 있다.
통계에선 가톨릭 신자가 많지만 옆동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냉담자들도 상당한편이며 무종교, 무신론, 불가지론자들은 13%로 추정된다.
5. 영화
최고령 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를 비롯해 1960년대 포르투갈 뉴웨이브 시네마가 유명했다. 1990년대부터는 페드로 코스타라는 감독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고, 히타 아세베두 고메스, 미겔 고미쉬[9] , 테레사 빌라베르데 등의 현대 감독들이 주목받고 있다.
6. 문학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 중 한 명인 페르난두 페소아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포르투갈 출신이다.
7. 축구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포르투갈 역시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인구가 1,000만 수준이지만 축구 경기장 규모는 3~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10] 이러한 인프라를 갖춘 자국 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11] 로 리그의 대표적인 팀 벤피카와 FC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유럽의 명문팀들이며 2010~11 시즌에는 모처럼 유로파 리그에 4강에 3팀이나 진출했고 덕분에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팀끼리 맞붙게 되기도 했었다.[12] 2011~12 시즌에는 벤피카가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 맨유를 제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 8강까지, 스포르팅 CP가 유로파리그 4강까지 진출했으며 2012~13 시즌에는 FC 포르투가 챔피언스리그 16강, 벤피카가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하며 여전히 무시못할 위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탄탄한 자국 리그를 바탕으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유럽의 강호 중 하나로 통한다. 과거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득점왕이자 1965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전설적인 선수 에우제비우와 함께 전성기를 맞은 바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루이스 피구를 위시한 황금 세대의 등장으로 다시 세계적인 전력을 갖춘 팀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지금도 유벤투스 FC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팀을 이끌고 있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은 유로 2016에서 우승하며 사상 첫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따냈다. 페페와 데쿠의 사례와 같이 과거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뛰어난 실력의 이중국적의 선수를 귀화시키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이탈리아 못지 않게 명감독 배출을 잘 한다. 대표적으로 주제 무리뉴, 레오나르두 자르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페르난두 산투스, 파울루 소자, 카를로스 케이로스, 누누 산투, 마르코 실바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포르투갈 축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이 나라 출신의 또 다른 전설적인 축구 선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도 했었으며, 현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 또한 이 나라 사람이다. 석현준 선수가 2015년~2016년 시즌 초에 활약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현 한국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 홋스퍼 FC의 감독 주제 무리뉴와 손흥민 못지 않은 대표팀 에이스 황의조가 소속된 지롱댕 드 보르도의 감독 파울루 소자, 과거 그 무리뉴 사단 코치이자 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이끌고 있는 주제 모라이스, 과거 FC 서울을 1년간 맡아 K리그를 우승시킨 바 있는 넬루 빙가다 모두 포르투갈인이다.
축구 강국 이미지 때문에 다른 유럽의 축구 강국인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처럼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충격적이게도 역대 올림픽 성적은 엄청나게 저조하다. 첫 참가한 1912 스톡홀름 올림픽 이래 2016 리우 올림픽 때까지 하계 올림픽에 빠짐없이 참가했으나, 지금까지 금 4, 은 8, 동 12, 합계 24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성적은 대한민국은 물론, 이웃나라 스페인, 한 때 식민지였던 브라질보다도 더 저조한 성적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인구가 여기의 4배, 20배니 비교도 못한다.
[1] 공산권에서는 루마니아. '''1983년이다.'''[2] 정확히 말하면 시험방송을 포함한 컬러 방송 개시 자체는 1976년부터 개시되었으나, 당시의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완전 컬러 방송이 미뤄진 것.[3] 스페인에서는 발음만 스페인식으로 바꿔서 아술레호라고 한다.[4]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로망스어파의 언어로 형태를 보면 포르투갈어와 매우 유사하다.[5] 당장 포트와인의 기원을 생각해보자[6] 물론 카스티야 중심으로 스페인을 봤을때 얘기다. 반대로 카탈루냐는 포르투갈이랑 똑같이 예전부터 상업이 많이 발달했던 지방이라 카스티야보다 확실히 더 국제적인 분위기에 외국어도 잘 통하는 편이고, 사람들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7] 한국 가톨릭에는 16개의 교구가 있다.[8] 그래도 포르투갈이란 국가가 생겨날때부터 가톨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1000년 가까히 살아온 역사를 무시할 수 없기에 사회 문화, 관습적으로 국민적 사고, 가치관에는 가톨릭적인 사고가 큰 영향이 미쳐있다. 실제로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이러한 가치관을 어느정도는 자극시키고 선동시키는데 이용한다.[9] <타부>(2012), <천일야화>(2015)로 유명하다.[10] 단, 이것은 유로 2004를 단독개최하면서 (잉글랜드, 프랑스 등도 하지 않은) 10개 경기장을 신축 및 증축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으로, 실제로는 국내 빅3인 벤피카, 스포르팅, 포르투가 경기당 3만명이 넘는 대관중을 불러모으는 반면 다른 클럽은 경기장 대충 채우기도 어려워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나마 김동현이 있던 브라가나 정재권이 진출했던 비토리아 세투발 정도는 나은 편이다. 실제로 인구 수준이 비슷한 스코틀랜드나 그리스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으며, 보아비스타와 같이 유로 2004 당시 경기장 지출 때문에 잘나가던 클럽이 파탄난 사례도 있다.[11] 2013/14년 UEFA리그에서 규모가 몇배 차이나는 프랑스의 리그앙을 누르고 랭킹 5위를 차지할 정도.[12] 그동안 듣보잡이던 SC 브라가와 포르투의 결승전으로 FC 포르투가 우승했다. 그리고 감독 보아스는 첼시의 지휘봉을 잡기도했었으나 반 시즌만에 경질되고 시즌 종료 후 토트넘 핫스퍼의 지휘봉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