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축구선수)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1] 출신 現 유소년 축구 지도자이자 인터넷 방송 BJ. 대중들에게는 KBS2에서 방영되었던 청춘 FC의 출연자로 잘 알려져 있다.
2. 축구인 경력
이강은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중학교 1학년 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9년 김학찬, 김대광 등과 함께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유럽 축구 유학 프로젝트 6기생으로 선발되어 독일 1.FC 뉘른베르크 유스팀에 입단하였으나 적응에 실패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왔다.[2]
재현고등학교 재학 시절 백운기 전국대회와 고교 주말 리그 서울 북부권에서 득점왕을 석권하며 2009년 U-17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김진수, 이종호, 손흥민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당시 손흥민보다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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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국가대표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J리그에 있는 미토 홀리호크에 입단했지만 도호쿠 대지진으로 팀 숙소가 무너지는 악재가 이어지면서 3개월 만에 일본 생활을 청산했다. 일본을 떠난 이후 K리그 드래프트가 열릴 때까지 몸을 만들고 실전 감각을 익힐 겸 한국 내셔널리그 목포시청 축구단에 잠깐 입단했지만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다시 일본으로 갔지만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불운을 겪었고, 재활 이후 훈련 도중에 같은 부위가 같은 상황에서 다시 끊어졌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재활을 마친 후 성남 FC 입단 테스트도 받았지만 입단이 끝내 무산되면서 결국 그대로 은퇴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안정환이 이강을 직접 찾아가 청춘 FC 테스트 참가 여부를 타진하기도 했다.[4] 이후 예비 엔트리에 있다가 앞서 선발된 선수들이 벨기에 전지훈련에서 국내로 복귀한 이후 청춘 FC에 합류했으며, 화성 FC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청춘 FC 종방 이후로는 축구 선수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용인에서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아프리카 개인방송도 시작했다.
3. 개인 방송
LK 아트사커를 운영하는 동시에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나름 축구쪽에서는 네임드 BJ이며 감스트, 철구 등과 친분이 있다. 아프리카 풋살 대회에도 참여를 해 우승을 한 적도 있으며, 아프리카 풋살팀 감독을 맡아 우승시키기도 했다.
논란이 있었던 거 처럼 시끄러운 적이 많았지만 비난을 당한 이후로는 자제하는 편. 또한 본인이 비운의 유망주로 선수를 은퇴해서 그런지 유망주들을 찾는 콘텐츠를 하기 시작했다.
4. 논란
논란이 되는 항목들을 보면 어째 성골 FC 코리아(...)라 해도 될 정도로만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
4.1.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맹목적 증오
방송에선 무슨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같은 비운의 천재로 포장되는데, 엄밀히 말해 이강은 청소년 시기 유망했으나 성인 무대에서 부상과 부진으로 성장하지 못한, 수많은 유망주 중 한 명일 뿐이다. 이산, 유태풍[5] , 정인성[6] , 이호진, 조원광, 김우홍, [7] 등 어려서 천재 소리 듣거나 유럽물 좀 먹었다 실패한 사례는 인재풀이 적은 한국에서도 정말 수도 없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에서 '볼 좀 찬다', 유망주 소리 좀 듣다가 프로 진출에 실패하는 선수들이 못해도 백단위로 쏟아지는 중이다[8] . 차라리 10시즌 넘게 K리그 몸담으며 짧지만 주전으로 뛴 시즌이 분명히 있는 윤원일이나 기량 부족으로 백업에 그쳤지만, K리그 데뷔에 성공해 부천, 상무, 울산 현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기회를 받았던 강진욱 등이 부상 이전에도 선택 받지 못한 이강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이강이 실패한 건 성인 무대에 걸맞는 기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잦은 부상이 발생했기 때문인데, 이건 축협 탓이 아니다. 이강 주장대로 뉘른베르크 시절이 기량 향상에 도움 안된 마이너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시절이 축구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되었으나 국내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대표팀까지 올라간 지동원의 예를 볼 때, 뉘른베르크 시절이 이강의 기량향상을 빼앗고 잦은 부상을 불러와 축구 인생을 망친 근본적 원인인지는 의문이다. 축구선수는 유소년 때, 유소년에서 프로로 진출할 때, 그리고 프로선수로서의 일생이 경쟁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계속 추려진다. 부상 이전에 이미 드래프트에서 지명 못 받을 기량이었던 이강은 그 치열한 경쟁의 초입에서 도태된 수많은 선수 중 한 명일 뿐이다. 축구협회가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책임질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이강은 자기 커리어가 꼬인 게 대한축구협회 때문이라는 억하심정이 굉장히 심하다. 겉치레로 자기 책임이 제일 크다고 말은 하지만, 개인 방송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부 축구협회 욕이고 당신도 축구 협회 덕 본 케이스 아니냐는 의견에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4.2. 유럽파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
스스로가 유럽 물을 좀 먹었고, K리그에선 데뷔도 못해서인지 유럽파, 특히 자신처럼 유스 때부터 유럽에서 뛴 선수들에게 지극히 우호적이다. 이러한 성향들이 인터넷 방송에선 굉장히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부분과 억울하게 비판받는 부분을 엄밀히 구분하지도 않으며, 유럽파에겐 맹목적으로 우호적이고, K리그나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폄하한다.
4.3. K리그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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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6일 서울 이랜드 FC와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경기를 본후 자신의 SNS에 K리그2[9] 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게시글을 올려서 논란이 일었고, 곧바로 게시물을 지우고 사죄글을 올렸다.'''"K리그 챌린지 자꾸 응원할려고 해도 그게 안 된다. 오늘 이랜드 vs 대전 경기를 보는데...하...이게 진짜 ㅎㅎㅎ 와...씨...할 말이 없다...대학생들이 더 수준이 높다. 더 단합이 잘된 것 같다 대학생들이...이건 아무리 협회에서 노력해도 선수들이 그만큼 못해주는 것 같다. 이게 팩트다"'''
전직 축구 선수이며 지금도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이강의 입장을 고려하면 경솔한 발언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비판을 한 것이 아니라 축구 모르는 키보드 워리어들도 할 수 있는 얄팍한 비난을 했다. 무엇보다 이강은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제자들 중에 K리그2 문을 두드리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부적절했다. 지도자 입장에 있는 사람이 프로리그 관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줘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해당 발언을 했던 시점의 K리그 챌린지에는 '''이강과 청춘 F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남하늘이 고양 자이크로 FC 소속으로 뛰고 있었다.''' 즉 이는 옛 동료가 속해 있는 리그를 비하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강 본인이 K리그에서도 2013년 성남 FC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것을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선수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한다는 것에서 자격지심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팬들도 굉장히 많다.[10]
4.4. 김학범호 비하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아시안게임 축구 김학범호에서 대해 포털의 FC 코리아의 여론에 편승해서 황의조는 물론이고 그 외에 뽑힌 선수들도 학연, 지연, 인맥 축구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중이다. 이강인, 백승호 등 일부 유럽파만 언급하며 인맥이라고 주장하는'선수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면서 폄하하고, 그 대안도 제시 못하는 '''축구인 출신답지 못한 수준'''의 영상이 많다.
감스트 같은 비전문 축구인이 그렇게 주장하면 잘 몰라서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강은 연령별 대표팀이지만 태극마크도 달아본 축구인이다. 파급력이 감스트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게 정말 진짜인 것처럼 믿고 '''선동당한''' 네티즌들이 많은 상황이다. 정작 그 논란의 중심이었던 황의조가 대표팀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며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음을 생각하면 이강의 발언은 그야말로 기가 차는 수준.
[1]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2] 이때 6명이 가서 3명이 함부르크, 3명이 뉘른베르크로 보내졌다. 함부르크에 보내진 김민혁(순천고), 손흥민(동북고), 김종필(장훈고) 3명은 손흥민과 김민혁 2명이 성공적으로 프로에 정착했고 김종필도 늦게나마 프로에서 주전에 등극한 반면, 뉘른베르크 쪽은 프로무대에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김학찬은 2014년 울산에 입단했으나 1경기도 못뛴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으로 옮겼고 김대광이 울산미포조선을 거쳐 K2리그 부천, 서울E를 거쳤으나 몇경기 못뛰고 창원시청으로 옮겼다. 레딩과 왓포드로 보내졌던 5기생(지동원, 남태희, 김원식, 민상기, 이용재, 백성동)이 각기 등락은 있으되 올림픽 메달리스트 3명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1명을 배출했고 최소한 프로무대 연착륙에는 다들 성공해서 이름 석자 제대로 알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강은 개인방송에서 5기생들은 축구협회와 구단, 선수들 사이 중계를 맡은 담당자가 일을 굉장히 잘해줬는데 자신들 케어 담당 코치는 일을 전혀 안 했다고 주장했다.[3] 손흥민도 청춘 FC에서 이강을 두고 자신 이상의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고 고평가했다. [4]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실 이 때 이강은 청춘 FC에 전혀 나갈 생각이 없었다고 했는데 안정환이 카메라를 끄고 상당히 험악하게 설득을 했다고 한다. 이강의 청춘 FC 출연은 어쩌면 본인의 의지보다는 안정환의 강권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5] 2002년 당시 축구 신동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축구교실을 운영 중이다. 연예계 노망주께서 출연했던 청춘 FC에서도 얼굴을 내밀며 근황을 알리기도.[6] 이승우에 앞서 바르샤 유스로 화제가 되었던 유망주다. 이 당시 메시랑 같은 방을 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인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은퇴하고 현재는 축구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다.[7]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혐의로 제명되었다.[8] 참고로 이영표는 허정무가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하기 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동포지션에서 유망주로 각광을 받은 선수는 2000년 K리그 신인선수상을 받았던 양현정이다. 이영표가 유럽에서 한창 날리고 있을 때, 양현정은 부상 여파로 베트남 리그의 호치민 시티 FC에서 뛰다가 실업팀 수원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9] 당시 이름은 K리그 챌린지.[10] 현실적으로 그 두 팀에서 뛰는 선수들은 이강이 말한 대학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은 감히 비비지도 못할 정도의 상위 클래스의 선수들이며, K리그 무대 진출에 실패했던 이강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말이 안되는 것이자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