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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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馥
1937년 9월 26일 -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종교가톨릭으로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1937년 강원도 원주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과 서울특별시로 상경하여 성장하였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중퇴하였다.
이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하였다. 한국일보에서 정치부 차장, 외신부 차장까지 역임하였다.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기영과의 인연으로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대변인으로 선임되어 남북대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다가 10.26 사건 이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으로 소속을 옮겨 초대 남북대화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나, 이범석 국토통일원 장관과의 갈등으로 1982년 사직하였다. 이후 삼성그룹에 영입되어 삼성항공 부사장, 삼성의료기기 사장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덕룡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김재순 국회의장 비서실장,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특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1992년 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멋대로 왜곡해서 타결 직전이었던 회담을 파탄내고 남북관계를 극한의 대립상태로 몰고가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질렀다. 남북대화 훈령 조작 사건의 전모 당시 레임덕에 시달리던 노태우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사건은 비밀에 붙여졌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 이부영 의원의 폭로로 세간에 알려지고, 국회에서 엄청난 공방이 벌어진다.[1]
결국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해임되었다. 하지만 정보기관 간부가 대통령 훈령을 조작했다는 초유의 국기문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법처리도 받지 않았다. #
오히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서 김종필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하는 등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였고, 이후에도 극우 인사로 계속 활동중이다.

[1] 당시 남북회담에 참여하고 있던 임동원 통일부 차관이 이 사태에 경악해서 민주당쪽에 정보를 흘렸다는 썰이 있다. 하여튼 이 사건 얼마뒤에 공직에서 물러난 임동원은 3년뒤인 1995년 아태재단 사무총장으로 영입되면서 김대중의 최측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