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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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2012년 5월 12일 100분 토론에서 시민 패널이 주체사상과 북한의 정권 세습, 인권 침해를 주제로 질문하자 답변을 거부해서 시민 패널에게 심히 비난받았다. 당시 토론에 패널로서 참여했던 진중권은 '''공직자라면 자신의 사상을 명확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답변을 거부했다. 그것 때문에 국회의원으로서 기본 자질을 망각한 행위라고 비난받았다. 100분토론 돌직구녀 영상을 참조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핵 보유와 3대 세습을 명백히 비판하였다.
위의 주체사상에 대한 답변 거부에서 볼 수 있듯이 전형적인 NLPDR 계열 인사다. 과거 학생운동/노동운동에서는 범민족해방파 혹은 자/민/통으로 불렸고 민주노동당에서는 자주파, 통합진보당에서는 당권파로 불렸던 라인. 외부에서는 진보정당에 참여한 NLPDR계 중에서도 서울연합을 대표한다고 본다.
하지만, 서울연합이 2010년대부터 경기동부연합의 하위 동맹 파트너로 굴러가기 때문에 이제는 사실상 경기동부의 방계 라인으로 분류된다.
2. 생애
1965년, 충청북도 제천군(현 제천시)에서 태어났다. 북성초 - 대동중 - 용문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학교 재학 중에 학생운동에 앞장섰으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에 노동 현장으로 투신해 인쇄소, 건설 현장 등에서 노동하면서 노동운동을 하였다.
3. 정계 활동
민주노총 산하 민간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을 하다가 1997년 제15 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이 국민승리21 후보로서 출마하자 선거 유세를 맡으면서 현실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노동당에서 줄곧 자주파(NL) 계열에서 활동했고 2010년 서울특별시장 후보로서 출마했으나 민주당 후보 한명숙과의 단일화 후에 사퇴하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 진보신당과 통합해 통합진보당으로 거듭나자 여기에 동참했다.
이적단체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에서 자수한 인사들과 하영옥에 따르면 이상규는 수도권 남부지역사업부를 이끌었다고 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에서 통합진보당 몫으로 할당된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 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경찰의 증거은폐 의혹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개입 등을 맨처음으로 밝혀내며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그러나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 탓에 국회의원직을 상실당했다.
4. 의원직 상실 이후 활동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당했다.
그리하여 치러진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가 중도에 사퇴하였다.
서울 지역의 역대 국회의원들 중 2021년 기준 마지막으로 진보정당 당적을 보유하던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같은 선거에서 같은 당 소속으로 당선된 노회찬이 2013년에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후[1] 통합진보당 당적으로 2014년 12월 자당의 해산 시까지 계속 관악구 을 지역구의 국회의원직을 맡았다. 20대 총선 당시에는 서울특별시 내에서 진보당 소속으로 당선된 사람이 없었다.
국회의원직 상실 후에는 배관공으로서 일했다고 한다.# 다만 정치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시 한번 서울 관악구 을 지역에 민중연합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득표율 1.91%인 4위로 낙선했다.
이윽고 2년 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중당 소속으로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하여 같은 당의 후보 김진숙과 경선을 치렀으나, 경선 결과 득표율 44.0%로서 후보 김진숙의 득표율 56.0%에 밀려 끝내 당의 공천을 받지는 못하였다.
2018년 8월에 진행되는 민중당 당직 선거에서 상임대표 후보로 단독 출마했고 9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9년 재보궐선거 후보 등록 현장에서 만난 자유한국당 후보 강기윤의 어깨를 주무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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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알겠지만, 구도가 상당히 묘한지라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하는 것을 맹비난해 온 민중당이 한국당 후보와 친목질이나 하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미묘하게 강기윤이 상석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고. [2]
2019년 보궐선거에서 같은 당 소속 손석형 후보 대신 정의당의 여영국 후보 지지를 선언한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에게 '''"정신 차려라, 선배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노동계 진보당의 원로와도 같은 인물을 선배로서 취급해 주지도 않는다는 말에 관해 일각에서는 PD계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는 말도 나오기도 했다.[3] 하지만 권영길의 선거를 도우며 권영길의 국회의원 당선에 큰 공헌을 한 입장에선 그럴만도 하다.
2020년 4월 15일 치루어진 21대 총선에서 민중당 비례대표 4번을 배정받아 출마하였으나 민중당이 1% 남짓 득표했기 때문에 원내에 진출하지 못했다.
2020년 6월에 상임대표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5. 선거 이력
[1] 노회찬은 1년 후 재보궐선거에서 동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나 새누리당 후보 나경원에게 패했고 그 후 창원시 성산구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2] 실은 진보당계 인물하고 보수당계 인물하고 친하게 지내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 대표로 노회찬은 늘푸른한국당 창당대회 당시 참석한 적이 있으며 늘푸른당 전 대표 이재오는 노회찬 사망 당시 빈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새누리당 7선의원이자 현대중공업 회장인 정몽준과 통합진보당 소속 노동자 출신 의원인 김선동은 노선이 전혀 다르지만 친하게 지냈다.비록 일반인들의 눈에는 생경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적이 서로 다른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사석에서는 살갑게 지내는 예가 잦다. 친하지는 않더라도 사석에서까지 으르렁대지는 않는 편이다. 정치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3] 하지만 권영길은 몸만 정의당에 있을 뿐 주로 NL 계열 인사로 분류된다.[4] 전임자 문국현 의원직 상실[5] 야권단일후보, 2014.12.19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결정으로 의원직 상실[6] 전임자 이상규 '''본인''' 의원직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