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2. 보이그룹 WINNER의 멤버 이승훈(WINNER)
4. 대한민국의 교육자 및 기업인 이승훈(1945)
7.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승훈(프로게이머)
8. (기록상) 조선 최초의 영세 가톨릭 신자
9. 1976년생의 배우
10. 대한민국의 래퍼 TRADE L
11.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이승훈


1.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2. 보이그룹 WINNER의 멤버 이승훈(WINNER)




3. 대한민국독립운동가 이승훈(1864)




4. 대한민국의 교육자 및 기업인 이승훈(1945)




5. 대한민국정치인 이승훈(정치인)




6. 대한민국가수 이승훈(가수)




7.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승훈(프로게이머)




8. (기록상) 조선 최초의 영세 가톨릭 신자


이름
이승훈(李承薰)[1]
생몰년도
1756~1801
직업
조선 후기의 남인시파 양반, 문신(文臣), 천주교 신자
출생지
인천부 조동면 장수동(지금의 인천 남동구 장수동)출생[2]
1784년 조선인 최초로[3][4] 영세를 받아와 천주교 전파에 나섰다. 세례명은 베드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서대문 형장에서 순교했다.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순교하여 4대가 순교했다. 이승훈의 부인은 정약용의 누이였다. 이승훈의 포교 이후에도 조선에서 천주교는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탄압받던 천주교 신부들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다. 1886년 한불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 정부는 천주교 선교사들의 포교를 정식 허가했다. 프랑스 정부는 천주교 포교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세례명베드로처럼 3번을 배교했다가 다시 믿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천주교도라는 걸 알고 "아들이 믿느니 내가 죽겠다"고 칼을 들자, 울며불며 "아버님이 종교보다 소중하니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여 성경십자가 등의 성물(聖物)을 불태웠으나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다시 천주교를 믿었다.
대조적으로 사촌이던 이벽 세례자 요한(1754~1786)도 천주교 신자이다. 그는 이승훈과 달리 천주교를 못 버린다고 하자 분노한 아버지가 자살하겠다고 하자 그도 부랴부랴 "천주교를 버리겠다"고 하였으나[5] 오래 안 가 33살 나이로 요절했다.[6]
그러나 제사를 거부하자, "제사는 아버지를 신으로 믿는 게 아니라 조상에 대하여 고마워하는 것뿐"이라고 또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욕도 먹곤 했다.
정작 신유박해 때는 물러서지 않고 천주교인으로서 죽었다. 정약용 가문과도 친인척 관계였으며 천주교인이다가 신유박해 때 죽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7]와 마지막을 같이 보냈다. 다만, 마지막 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로서 순교한 것인지 아니면 정쟁에 휘말려서 처형된 것인지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관계로 최근 추진중인 125위 시복시성 운동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9. 1976년생의 배우


1976년 4월 7일생.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솔로몬의 선택에 출연한 재연배우. 최근에는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천일야사에 출연중이다. 2015년 인터뷰 기사
[1] 평창 이씨라고 한다.[2]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인천부 조동면 장수동이었으며, 그의 무덤 역시 출생지인 장수동에 있다. 정확히는 장수배수지 뒤편 거머리산 기슭에 있다. '반주골'이라고 불리는 이 묘역에는 이승훈과 그의 아들 중 두 명(장남 이택규, 3남 이신규 마티아)의 묘가 있다. 이 중 3남 이신규 마티아는 병인박해 때 체포돼 순교했다.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이승훈 묘역 성역화 사업을 준비 중이다.[3]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이전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노예로 잡혀간 이들도 당시 일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고니시 유키나가 같은 다이묘에 의해, 일본에 와 있던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으며, 그 이름들도 일부 전해진다.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조선인 개종자로 오타 쥬리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일본에서 살면서 동화되었고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작은 조선에서 세례를 베푼 이승훈 베드로로 봐야 하므로, 흔히 최초의 한국인 신자로 여겨지는 것이다.[4] 또 세계에서 최초로 선교사가 선교를 하러 가지 않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직접 세례까지 받으러 온 인물이라고 한다.[5] 버리는 방법은 "나는 천주쟁이였으나 이젠 아니다"라는 글을 써서 붙이고 일절 기도 모임에 나가지 않는 방법이었다고 한다.[6] 다만 이벽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페스트로 죽었다는 설에서, 아버지 이부만이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정말 자살해버려 불효자로서 집안과 일가 모두에게 절연당해 죄책감 끝에 술에 매달려 폐인이 되어 자살했다는 주장(90년대 소설 목민심서에선 이게 나왔다), 집안에서 몰래 죽였다는 주장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7] 정약용의 셋째 형으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중 1명이다.



10. 대한민국의 래퍼 TRADE L




11.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