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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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네시아는 많은 인구(세계 4위)와 넓은 영토(세계 15위) 그리고 다양한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이다. 지리적으로도 말라카 해협 근처, 인도양과 태평양, 남중국해와 고루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에 국제 해상무역의 주요 경유지로도 기능하고 있어 여러모로 경제적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나라라 하겠다.
2. 간략한 역사
1949년 독립 후의 수카르노 정부는 정치적, 문화적으로는 일정한 결실이 있었으나, 태부족한 인프라에 비해 정치적 프로젝트에 과도하게 국력을 소모했고, 경제 정책이 비일관성과 부패로 갈팡질팡하는 사이 경제 성장은 극도로 부진하였다. 통계에 따르면 1951–1967년간 인도네시아 경제의 평균 실질성장률은 3.2%였는데, 동일 기간 연간 인구가 2.0%씩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처참한 성적이었다. 수카르노 시대가 끝난 직후인 1967년 세계은행 집계 기준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는 53.5달러였다. 이는 동 시기 말레이시아($317.4), 태국($166.9), 필리핀($207.4), 한국($161.1)은 물론, 캄보디아($144.0)나 인도($95.3)보다도 현저하게 낮아 동남아시아 역내 최저 수준이었다. 수카르노 집권 말기 인플레이션율은 한때 650% 수준을 기록하기도 할 정도로 높았고, 국가 부채도 폭증하고 있었다.
수하르토 집권기에는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후퇴하였으나,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부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안정적인 고성장을 보였다. 소위 '버클리 마피아'(Berkeley Mafia)로 불리는 위조요 니티사스트로(Widjojo Nitisastro), 모하맛 사들리(Mohammad Sadli), 에밀 살림(Emil Salim), 알리 와르다나(Ali Wardhana)[5] 등의 경제학자가 기용되어, 선진적인 경제개발 정책을 적용하여 기아 퇴치 및 경제 성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1968–1997년 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은 7.1%였으며, 1996년 1인당 GDP는 $1,137.3[6] 을 기록하여 인도($396.0), 캄보디아($319.4) 등을 아득히 따돌리고 경제정책 실패를 거듭하던 필리핀($1,159.6)[7] 을 거의 따라잡게 되었다.[8]
수하르토 시대 경제사는 크게 전기(6–70년대), 중기(80년대), 후기(80년대 말–90년대)로 나눌 수 있다. 전기에는 주로 원유 수출 및 관련 산업으로 경제를 지탱하면서 포괄적인 인프라 투자가 시작되었고 70년대 말부터 공업화도 시작되었다. 중기에는 원유가격 하락과 기존의 규제들이 발목을 잡으며 경제성장이 다소 둔화되었다(1981–1988년 연평균 4.5%). 이에 따라 80년대 말 금융 및 투자 규제 완화 개혁 및 루피아화 평가절하가 시행되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외국인 투자가 유입되고 가격경쟁력이 상승하여 제조업 섹터가 급팽창하였으며, 이에 힘입어 인도네시아는 다시 고성장 궤도로 복귀하는 데 성공(세계은행 집계로 1989–1997년간 7% 이상)한다.
수하르토 시대에 토착화된 화인(peranakan Tionghoa) 및 자바계 기업가가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정치권, 행정부 또는 군부와의 유착을 통하여 인도네시아 경제를 주름잡는 재벌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유착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수하르토 시대 최상위 재벌 집단(살림Salim 그룹, 아스트라Astra 그룹, 리포Lippo 그룹 등)은 대개 '추콩'(Cukong, 主公)[9] 으로 불리는 국가 엘리트와 유착하여 축재한 화인 자본가 소유였다[10] .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사회 혼란이 발생할 정도로 궤멸적인 경제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충격으로 수하르토 정부가 퇴진하고 그의 신질서 시대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성장률로 보면 1997년 4.7%, 1998년 -13.1%, 1999년 0.8% 성장.[11] 1998년의 -13.1%라는 성장률은 동 시기 금융위기를 겪은 태국[12] , 말레이시아[13] , 싱가포르[14] , 홍콩[15] , 필리핀[16] , 한국[17] 가운데에서도 제일 심각한 급성 역성장이었다. 환율 측면에서 보면, 1997년 8월 당시 1달러당 2,600루피아 수준을 유지하던 루피아화는 1998년 1월 11,000루피아 수준까지 자유낙하하였으며,[18] 한때 15,000루피아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이후 루피아 환율은 한때 1달러당 7천 루피아 수준까지 올라간 적은 있었지만(2002), 결국 2020년 8월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아시아 외환위기 전 수준으로는 회복되지 않았다.IMF체제를 졸업한 시점도 2003년 8월로서 IMF 3개국(한국,태국,인도네시아) 중 가장 늦었으며,월평균 소득도 1998년에 3분의 1토막났다가 2010년에서야 1997년 수준을 회복한다.참고
세계은행 집계로, 2012년부터는 구 식민 종주국인 네덜란드를 명목 GDP로 추월하였다. 2017년 2월에 영국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내놓은 추정치에 따르면, 이대로 큰 위기 없이 성장을 지속할 경우 인도네시아는 2030년 무렵 PPP 기준 GDP 세계 5위/명목 GDP 세계 9위로 올라서며, 2050년에는 PPP, 명목 모두 세계 4위가 된다고 한다[19] . 2020년 현재 시점에서는 아직 근처 국가인 호주보다도 조금 작은 명목 GDP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온라인 상거래 시장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 측에서 규제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0년에 1,422조루피아 규모의 국가 인프라 프로젝트 89개를 추가로 추진한다.#
외국인들의 부동산 투자가 쉬워지도록 규제를 풀기로 정했다.#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유급휴가 폐지와 초과 근로 시간 연장 등 노동권을 악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노동계측에서 반발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부동산시장을 개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3.75%로 낮췄다.#
인도에 이어 인도네시아가 차세대 글로벌 IT산업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3. 경제위기?
일각에서 경제위기가 일어날 것이란 주장이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008년 대침체 시점에 자원 가격이 급등했을 때 엄청난 핫머니가 인도네시아로 들어왔다. 보통 개발도상국은 자본이 부족하고 선진국은 풍부하기 때문에 선진국이 돈을 빌려주는 것과는 반대의 일이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고 통화가치도 상승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2020년까지 인도네시아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될 것이다 같은 립 서비스를 받았고 국민들도 믿었다. 즉 심각한 과대평가에 기반해서 시장의 기대가 형성된 것이고 그로 인해 버블이 발생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은 떨어지고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으며 통화가치도 도로 하락하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저유가가 계속되자 공항, 항만 지분을 대거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원유시설 노후화와 석유매장량 고갈 등의 영향으로 원유생산이 감소할 조짐을 보이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석유 탐사 기업에 면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3.1. 반론
이 얘기가 나온 게 2014년쯤인데 아직 딱히 위기라 할 만한 일은 없었다. 단지 버블이 조금 꺼졌을 뿐, 통화가치 하락도 그리 큰 게 아니고 조금 떨어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몇 년밖에 안 됐고 위에 설명한 건 징조일 뿐이기 때문에 위기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현재 중진국 함정을 겪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나, 2010년대 들어 5%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 중이므로 조금 더 관망해 볼 필요가 있다.[20]
2019년이 끝나도록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보면[21] 사실상 옛말이 된 듯 하다. 애초에 인도네시아는 석유 수입량이 더 많기에 저유가의 타격은 별로 안 받았고, 동시에 일어난 원자재 가격 폭락 역시나 큰 영향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빈곤율이 높고[22]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얼마나 심하냐면 인도네시아 부호 상위 4명의 재산이 인도네시아 인구 40%의 재산과 맞먹을 정도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때문에 인구가 더 많아진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586551부정부패도 심각한데 국제투명성기구(TI)가 작성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인도네시아는 평가대상 177개국 중 114위를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부정부패가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받고 있다.#
4. 수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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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인도네시아의 수출 품목 구조. 흑색에 가까운 '''살구색'''은 축산업, '''노랑색'''은 팜유 등의 농업, '''연두색'''은 식품업, '''고동색'''은 석유등의 광물, '''자홍색'''은 의료/화학, '''분홍색'''은 고무/플라스틱, '''옅은 녹색'''은 가죽/털, '''녹색'''은 직물, '''풀색'''은 신발/모자, '''붉은색'''은 목재, '''황토색'''은 귀금속/비금속, '''갈색'''은 금속, '''청록색'''은 전자기기, '''하늘색'''은 운송수단, '''회색'''은 기타 미분류 [* http://en.wikipedia.org/wiki/Economy_of_Indonesia
5. 화폐
화폐 단위는 루피아로 통화기호는 Rp이며, ISO 4217코드는 IDR이다. 원화보다도 작은 단위라서 100,000 루피아가 2008년 1월 2일 기준 한국 돈으로 1만원 정도, 2011년 1월 2일 기준 12500원 정도였으며, 2016년 6월 6일 기준으로 8500원 정도이다. 0이 무려 다섯개여서 현지에서 교민들은 편의상 0을 하나 빼서 한국 돈으로 환산한다고 한다.
2008년 8월 말 약 1 USD=9200 Rp이던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2009년 2월 말 1 USD=12000 Rp를 고점으로 2011년 8월 말 약 1 USD=8500 Rp이었으며 2016년 6월 초에는 약 13500 Rp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보다 가치가 낮은 화폐는 이란 리알, 상투메 프린시페 도브라, 베트남 동,그리고 가치가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반 정도로 실제로 잘 안 쓰이는 소말리아 실링이 있다.
6. 공업
공업력에 있어서 그렇게까지 대국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공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나라가 주로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나라 전체영토도 상당히 넓은 편이라 육로 보다는 해상, 항공로가 발달하였고 그에 따라 해운, 항공산업에 대한 투자도 많은 편이다. 특히 수하르토 2대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하비비 (수하르토에 이어 3대 대통령 역임) 가 주도해 70-80년대부터 항공산업 발전에 힘써서 다른 산업에 비해 항공산업이 일찍 발전한 편이다. 한국 공군이 쓰고 있는 CN-235 수송기도 스페인과 인도네시아가 합작으로 개발한 물건이며, 특히 공군에 있는 기체는 두 곳에서 모두 구매했는데 참고로 공군의 높으신 분들 수송에 사용하는 CN-235의 경우에는 스페인제라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 잠수함을 사가는 대신 해경이 쓸 CN-235의 해양초계기 버전 8대를 판매하기도 했으며(현재 유야무야된 상태), 한국에서 KT-1 고등훈련기 12대를 인도네시아가 사가기도 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인도네시아의 잠수함을 추가 구매하려는 사업에 1100톤급 자체설계안을 들고 설득 중(참고로 인도네시아의 209급 잠수함 2척의 개량사업은 한국에서 수행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2010년에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 즉 KFX사업에도 개발비의 20% 정도를 투자하려 하는 것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만일 시작되면 50대 가량을 구매한다고 한다.
가성비 좋은 구두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잘란 스리와야가 인도네시아 기업. 그 외에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담배 회사 삼푸르나(Sampoerna), 구당 가람(Gudang Garam), 시멘트 제조사 스멘 인도네시아(Semen Indonesia) 등이 대기업으로 유명하다.
의외로 가쓰오부시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7. 인도네시아의 GDP와 GDP(PPP)
※ [[2018년]]부터는 추정치와 예측치다.
8. 관련 문서
[1] http://en.wikipedia.org/wiki/Indonesia [2]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 [3] https://en.wikipedia.org/wiki/Indonesia [4]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ublic_debt [5] 모두 UC 버클리 대학원 출신[6] 아시아 금융위기 전 고점[7]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거의 회복한 시점인 2003년부터는 인도네시아가 필리핀을 추월했고, 그 후 역전당하지 않고 있다.[8] 이상에서 1951–1967년, 1968–1997년 평균 경제성장률 및 인구 성장률은 다음에서 인용: Pierre van der Eng, "Growth and Inequality: The Case of Indonesia, 1960-1997" (Canberra: MPRA, 2009).[9] 원래는 '토착 정치인들에게 정치 자금을 대는 화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가 수하르토 시대에 의미가 확대되어 국가 엘리트와 유착하여 축재한 모든 화인을 지칭하게 되었다.[10] 신윤환. "현대적 형태의 원시축적 - 인도네시아의 재벌형성과정에 관한 일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27 no.2-2 (1994): 251-274.[11] 이후 2000–2003년간 평균 4%대 중반대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2004년부터는 다시 5%대 이상의 성장세로 회복된다.[12] 97년 -1.4%, 98년 -7.6%[13] 97년 7.3%, 98년 -7.4%[14] 97년 8.5%, 98년 -2.2%[15] 97년 5.1%, 98년 -5.9%[16] 97년 5.2%, 98년 -0.6%[17] 97년 5.9%, 98년 -5.5%[18] 이때문에 1998년에는 물가상승률도 75.3%를 기록했다.[19] 출처[20] 인도네시아의 성장 잠재력에 비하면 낮은 편이라고 하며, 제도적, 사회적 비효율이 성장의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이 많다.[21] 현재 명목 GDP가 다시 조금씩 상승하고 있으니 버블이 안정화 된것으로 보는게 맞다.[22] 2016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가 정부가 발표한 빈곤층 인구가 2777만이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 7천만인 것을 감안하면 국민의 10%가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정부가 발표한 수치라서 실제 빈곤층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3] <출처>국제통화기금: 인도네시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