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

 


1. 제원
2. 개발
3. 활동
4. 최후
5. 동형함 목록
6. 관련 문서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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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
선행함
블뤼허급 장갑순양함
후계함
몰트케급 순양전함
배수량
19,370톤(기준)
21,300톤(만재)
전장
171.7m
전폭
26.6m
흘수선
9.17m
출력원
슐츠-토르니크로프트(Schulz-Thornycroft) 보일러 18기
4축 파슨스 터빈 4기(30,891Kw)
속도
27.75 노트
항속거리
14노트로 4,400해리
승무원
923명
주포
28 cm SK L/45 2연장 4기 (총 8문)
부포
15cm SK L/45 단장 부포곽 10기 (총 10문)
8cm SK L/45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
어뢰
45cm 어뢰관 4기 (총4문)
장갑
측면장갑 80~250mm
포탑정면 230mm
장갑함교 250mm
갑판장갑 50mm

2.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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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n der Tann-Klasse Großer Kreuzer ''''
기존 독일이 건조한 장갑순양함중 가장 최신함이었던 블뤼허급 장갑순양함은 12기의 21cm 포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1906년, 영국의 피셔(Fisher) 경이 기존 함의 사고관을 바꾼 드레드노트 전함과 함께 건조되기 시작한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을 건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빈시블급은 최초의 순양전함으로 당시 어떤 순양함보다 강력한 무장(12인치 2연장포 4기),과 속력(25노트), 장갑(측면 152mm)[1] 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은 충분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블뤼허의 설계를 계승하지 않고 1907년 설계를 시작한 것이 폰 데어 탄급이다. 다만 자잘한면에서는 은근히 블뤼허에서 따온 점이 많다.
1906년,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은 순양함 F 프로젝트로 신형 순양함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신형 순양전함인 인빈시블급이 등장하자 기존의 방식으로는 분명히 열세에 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2] 그렇게 되자 빌헬름 2세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떤 순양함보다 강력한 저 인빈시블급을 상대하기 위한 순양전함[3]을 건조하길 원했고 기존 계획하고 다르게 강한 화력과 장갑과 속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설계단계에서 해군부의 아이크슈테트(Eickstedt)는 21cm포면 충분히 관통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4] 반대로 아우구스트 폰 헤링엔(August von Heeringen) 제독은 28cm(11인치)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곧 헤링겐 제독의 의견대로 독일이 드레드노트를 보고 만든 나사우급 전함의 주포인 28cm SK L/45 연장포를 장착하기로 했다. 카펠레(Capelle) 제독이 설계를 주도해서 1907년, 8문의 28cm 포[5], 24노트 수준의 속도를 목표로 건조를 시작했다. 함의 이름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바이에른 왕국의 장군인 루트비히 폰운트추데어탄라트잔하우젠 남작(Ludwig Freiherr von und zu der Tann-Rathsanhausen, 1815~1881)의 이름을 땄다.

3.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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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데어 탄은 독일 최초의 순양전함으로 나사우급 전함, 헬골란트급 전함과 함께 신형 드레드노트 함이었다. 1911년 초, 독일 대표로 아메리카 일대를 순방하기도 하고 영국 조지 5세가 함대 사열식을 할 때 참여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때 프란츠 폰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에 소속되었다.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때 조류탓에 합류가 늦어져서 겨우 후퇴하는 독일 순양함과 어뢰정을 호위하고 귀환했다. 이후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을 자극하기 위해 영국 서부 해안가를 포격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제1 정찰함대는 야모스(Yarmouth)일대에 포격하러 출격하는 중, 영국 기뢰함인 HMS 할시언(Halcyon)과 구축함 HMS 라이블리(Lively)를 발견했고 일대가 기뢰밭임을 파악, 무사히 해안가일대에 접근해서 포격하는데 성공해서 영국 당국을 분노하게 했다.(1차 야모스 포격) 포격 성공한 뒤에도 꾸준히 해안포격과 도주를 반복해서 영국 함대의 일부를 유도할려고 했다. 1915년 12월, 영국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가 독일 제1 정찰함대를 발견했지만 히퍼 제독의 적절한 판단으로 교전없이 빠르게 후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도거 뱅크 해전에서 비티 제독의 함대에게 딱 걸려서 블뤼허가 다굴당해 침몰하는 동안, 폰 데어 탄은 이때 잠시 제1 정찰함대에서 빠져서 발트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15년, 러시아 제국핀란드 대공국에 있는 요새인 우퇴(Utö)를 포격했고 러시아 장갑순양함인 아드미랄 마카로프와 순양함 바얀, 5척의 구축함들에게 추격당했지만 피해없이 귀환했다.
다시 폰 데어 탄이 제1 정찰함대로 복귀했고 병으로 잠시 히퍼제독이 후방으로 가고 프리드리히 뵈디커(Friedrich Bödicker)제독이 지휘권을 가지고 영국 서부를 포격하러 출격했다. 2차 야모스 포격을 하고 별 성과없이 귀환중 자이들리츠가 기뢰에 맞아 1,400톤의 물이 들어왔지만 숙련된(...) 승무원들의 솜씨로 문제없이 귀환했다.[6]
1916년, 히퍼 제독이 다시 지휘권을 가지고 영국 해안 포격을 하는데 가장 큰 골치거리였던 영국 순양전함 함대를 괴멸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대양함대 사령관인 셰어 제독은 제1 정찰함대가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의 유인을 명령했고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가 출격했다. 하지만 영국은 독일의 암호를 전부 해독할 수 있었고 낚인 척 하기 위해 비티 제독의 함대가 출격했다. 유틀란트 해전이 시작하자 독일 함대가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을 발견, 사격을 시작했다. 먼저 폰 데어 탄이 영국 순양전함 HMS 인디패티거블(Indefatigable)을 발견하고 52발의 명중타를 내서 인디패티거블을 폭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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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데어 탄의 포격에 침몰하는 HMS 인디패티거블
인디패티거블이 격침된 후 비티 제독의 기함 HMS 라이온이 뤼초에 의해 대파되고 HMS 퀸 메리가 자이들리츠데르플링거의 포격으로 폭침한 뒤 영국의 막강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추격해 왔다. HMS 바험[7][8], HMS 밸리언트[9], HMS 말라야가 포격을 시작했고 폰 데어 탄은 바험의 15인치 포탄을 맞고 600톤의 침수가 일어났다. 이후 폰 데어 탄은 도거 뱅크 해전에서의 블뤼허와 같은 상황이 될 뻔 했는데, 영국 순양전함 HMS 타이거가 폰 데어 탄에 대한 협차에 도달했고 폰 데어 탄의 안톤 포탑의 바벳에 명중타를 낸다. 이후 타이거가 체자르 포탑을 파괴하자 연기가 크게 발생했고 이 연기가 배를 가려줘서(...) 겨우 추가 피해에서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HMS 뉴질랜드가 인디패티거블이 격침된 이후 목표였던 몰트케를 놓친 상황에서 폰 데어 탄을 발견했고 곧 HMS 바험의 포격이 날라와 또 피격되었고 겨우겨우 반격 할려고 했지만 포탑들이 대부분 무력화 돼서(...) 24발정도 사격했다. 이후 힘들게 전장에서 이탈하는 중 영국의 최신형 전함인 리벤지급 전함하고 조우(...), HMS 리벤지[10]의 포격을 맞는다. 하필 함교에 명중했고 이탓에 폰 데어 탄이 시야 확보에 큰 지장이 생긴다. 겨우 아군 순양전함 몰트케[11]와 데르플링거와 조우하는데 성공해 15인치 포탄 세례를 받아서 갑판위가 성한데 없이 폰 데어 탄은 '''살아서''' 귀항한다.[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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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수선 하탄에 피격된 15인치 포탄의 힘

4.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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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퍼플로에서의 폰 데어 탄
독일 제국 해군 전함들은 유틀란트 해전 이후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고 결국 종전 이후 독일 주력함과 함께 스캐퍼 플로로 이동한다. 독일의 로이터 제독이 자침명령을 내렸고 곧 자침한다.

5. 동형함 목록


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은 1척만 건조되어 동형함은 없다.
  • 폰 데어 탄(Von der Tann): 1910년 9월 1일 취역, 1919년 6월 21일 자침

6. 관련 문서



[1] 하지만 독일은 장갑수준은 알지 못했다.[2] 티르피츠 제독은 순양함의 역할을 정찰에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3] 독일에서는 대형 순양함(Großer Kreuzer)이라고 불렀다.[4] 하지만 실제로는 포클랜드 해전에서 2척의 장갑순양함이 영국 순양전함에게 처참하게 발렸다.(장갑순양함은 21cm 포 12문, 순양전함은 최소 12인치포 8문이다(...).[5] 포탑 위치를 사선으로 배치해서 측면으로 일제사격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포탑 배치를 앙 에슐론(en echelon)이라고 한다.[6] 기뢰에 피격된 것은 전차대전차지뢰에 맞은 셈이다. 하지만 기뢰에 피격되면 물이 새기 시작하기 때문에 대전차지뢰와는 다르게 2차 피해를 걱정해야 한다. 실제 갈리폴리 전투 이전에 있었던 다르다넬스 해전에서 프랑스 전함 1척, 영국 전함 2척이 기뢰로 침몰하고 1척이 대파되어 귀환했다.[7] 이 배는 QE급 중에 가장 함생이 짧은 배로 1941년 11월 25일에 지중해에서 한스 디트리히 폰 티센하우젠이 지휘하는 U-331의 어뢰 3발을 맞고 기울어지던 중 탄약고가 유폭해 굉침된다.[8] 이 배는 퀸 엘리자베스, 워스파이트, 밸리언트, 말라야와는 달리 대개장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원래는 재대로 개장하려고 했지만, 나치 독일이 위협이 됨에 따라 이 때 전함을 다 뜯어내 개장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므로 대공화기 증강, 캐터펄트 설치 같은 개장만 받아 격침된 것이다. 속도도 23노트 밖에 안나왔다고(...).[9] QE급 중 비전투 손실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함으로 1930년대에 네입쉽 QE와 함께 부포를 철거하고 4.5인치 양용포 개수를 받았으나 1941년 이탈리아 수병의 기뢰로 인해 착저하고 졸지에 고정포대가 된다. 이후 1944년 동양함대에 배치되어 일본 해군과 일전을 치루기로 했지만 정박 중에 도크가 무너져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에 수리가 끝나고 3년만인 1948년에 해체된다.[10] 나중에 노후화가 심해져서 1943년에 예비함이 되고 포신은 워스파이트 포신이 되는 안습한 역사를 가진다.[11] 다만 몰트케도 포탑 5개중 2개만 작동하는 문제있는 상황이었다.[12] 장갑은 영국의 초기 순양전함 이상이었지만 15인치는 독일의 신형 순양전함 데르플링거급(12인치급 대응방어가 된다. 사실상 영국의 초기 슈퍼 드레드노트 수준의 장갑이다.)도 버틸 수가 없다![13] 자세히 보면 유틀란트 해전때 폰 데어 탄과 과달카날 해전때의 키리시마의 상황은 선빵을 날려 적함 한척이 무력화 한 뒤 다른 적함에 의해 측면을 털린 점에서는 꽤 비슷하다. 거기에다가 한쪽이 일반적으로 두들겨 팼다. 다만 키리사마는 그대로 16인치 포탄에 쳐맞고 순식간에 쳐발렸지만 폰 데어 탄은 근성으로 버티고 후퇴하다가 또 다른 적함에게 쳐맞고도 귀환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이점에서 데미지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