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

 



[image]
2000년 현장검증 당시 정두영의 모습
[image]
2019년 10월 26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한 정두영의 최근 모습 [1]
정두영 / 鄭斗英
'''출생'''
1968년 12월 31일 (55세)
'''출생지'''
부산광역시
'''신체'''
164cm, 64kg
'''가족'''
3남 1녀 중 넷째
'''학력'''
고졸(검정고시)
'''범죄유형'''
강도살인
'''처벌'''
사형(집행되지 않음)
1. 소개
2. 과거
3. 범행 과정과 체포
4. 체포 이후
5. 탈옥 시도
6. 둘러보기

[clearfix]
김복준 김윤희 배상훈의 사건의뢰 대한민국 살인사건 제1화 정두영
그알로 보는 연쇄살인마 정두영

1. 소개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제 안에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가 한 짓이에요.'''

-

체포 후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두영이 답한 말.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0개월 간 9명을 살해한 강도살인범연쇄살인범이다.[2]
유영철은 정두영을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했다. 그가 범행에 둔기를 사용한 걸 보고 유영철도 둔기를 사용했다.[3] 그리고 '''유례없는 잔혹성'''에서도 유영철의 선배격되는 살인마이다. 희생자들을 공격하는 방식이 너무 잔혹해 경찰이 초기에 원한살인을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것이 알고싶다 362회 (2001.5.12 방송)에서 정두영을 다룬 바 있다.
2019년 10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 1188회에서 최근 정두영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2. 과거


[image]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사진.
정두영은 부산직할시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정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한다. 하지만 정두영이 5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려는 듯, 7살 때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정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간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이부형제들과의 갈등이 커져서 정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고아원에 두었더라면 상처를 덜 입었을 것이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서,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하던 정두영은, 결국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만다. 무학인 정두영은 고아원에서 나온 뒤론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직업을 얻을만한 기술도 없고, 자길 보살펴줄 사람도 없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까? 아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범죄자 개인의 문제이며, 불우한 환경은 절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사실 나중에 보살펴줄 사람인, 그의 형 정부영이 나타나긴 했다. 하지만 그 직업은 금은방 간판을 내건 '''장물아비'''였다고. 그래서 자신이 돈이 될만한 걸 훔쳐오면 그 형이 팔아치우기로 했다고 한다. 즉 계속 범죄의 길을 걷게된 것.
이 때 그는 그 형에 의해 한 여성을 소개받게 되었고, 2000년 2월부터 동거에 들어갔었다. 그가 살인마의 흉악성을 어찌나 철저하게 숨겼는지, 동거녀 및 그녀의 부모는 정두영을 '''", 담배도 안하고 말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있어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정두영 본인도 얼마나 그 여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체포 이후 해당 여성이 공범이 아니었나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자 극구 부인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한다.
그가 이 정도로 그 여성과 가정을 차리는 것에 집착한 건, 어린 시절 2번이나 어머니에게서 버림받는 등 불우한 가정 환경을 겪어 가정을 꾸리는데 대한 강박적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걸 위해 절도로 얻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놔 검거 당시 통장에 1억 3천만원이 있었다. 최종 목표액은 10억을 버는 거였으며, 그러고 나면 결혼한 뒤 이 돈으로 PC방 같은 것도[4] 차리고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이루려 한 케이스.
하지만 설령 그런 돈을 모았다 해도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10대 때부터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죽였고, 강도질하는데 방해가 되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무참히 죽인 것만 봐도,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존중 따윈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3. 범행 과정과 체포


18살이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다. 그로부터 1달 뒤에는 자기를 검문하는 방범대원을 골목길로 유인해 가슴을 로 찔러 살해해 11년을 복역하고[5] 수감생활 동안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으며 1998년 6월에 출소를 했지만, 출소 직후 절도로 짧게 6개월 동안 다시 복역한 뒤, 1999년 3월 2번째 출소 후 본격적으로 강도 살인을 시작했다. 당시 이미 전과 8범이었다. 주 영역은 부산, 울산, 경남지역.[6]
출소한 뒤에도 불과 2개월 만에 가정집을 털다 잡혔다. 그러나 이번엔 불구속처리돼 풀려나자 1달도 채 안돼 '''부산고검장''' 관사 옆 저택에 침입, 부녀자를 살해했다.[7] 이 때부터 10개월간 정두영이 저지른 범죄행각은 ‘불우한 환경과 사회적 소외감이 범죄를 불러왔다’는 식의 해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혹성을 보여준다.
정두영은 불심검문에 대비해 빈손으로 다니다 낮 시간에 부유층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 그러다가 집에 사람이 있으면 그게 부녀자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죽여버렸다. 위에서도 설명하듯 집 안에 둔기로 쓸만한 게 있으면 그걸 흉기로 사용했고, 없으면 맨손이랑 발로 죽을 때까지 구타하는 등 살해 수법도 잔혹했다. “왜 그렇게 잔혹하게 죽였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두영은 “다급해서 그랬는데 어쩌면 '''내 안에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은 피해자를 둔기로 죽인 뒤 돈을 훔친 강도살인 같고, 어떤 사건은 돈 될 만한 걸 약간 훔쳐 강도살인으로 위장하고 피해자를 잔인하게 죽인 원한살인 같고 해서, 경찰도 처음에는 몇 건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돈이었기 때문에 금고를 열기 위해 시신 옆에서 무려 2시간 동안 아령으로 이웃집에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 두들기는 대담성도 보였다. 또한 사건현장에 크기가 다른 2개의 발자국을 남겨놓는 교활함도 보였다.
2000년 3월의 부산 서대신동 가정집[8]에 침입하여 2명의 여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하였으나, 나중에 집에 온 또 1명의 여성을 중상이 되도록 때리다가 "아기가 있다, 살려달라"고 호소하자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라는 말과 함께 이불을 덮어씌운 후 살려줬다.[9] 위에서도 설명하듯 그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인해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 없이 살 것이 불쌍해서 그랬다고 한다. 다행히 그녀는 부상이 심했지만 살 수 있었고, 이 생존자의 증언이 그의 체포, 정확히는 그의 죄를 확정짓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해 4월 초에 일으킨 사건('철강회사 회장 부부 살인사건')은 피해자가 DCM 철강 회장 정진태라는 재력가라는 점, 그리고 피해자의 시신을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한 '''잔혹성'''으로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다.[10] 이 당시 그는 집에 있던 정진태 회장과 가정부, 그리고 정회장의 친척 할머니를 잔인하게 구타했는데, 2명은 사망했지만 할머니는 가까스로 숨이 붙어있어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살아났다. 그녀 역시 정두영이 붙잡힌 뒤 범인임을 증언했다. 참고로 이 때 당시 경찰은 해당 지역에 사는 전과자를 조사하면서 그 중 한 명인 정두영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바이 등을 물었으나 그가 당당한 목소리로 "겨우 맘 잡고 사는데 이러지 마십쇼."라고 하자 더 할 말이 없어 끊었었다고 한다.
2000년 4월 12일 그는 충남 천안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 집에 들어온 그는 집을 뒤져봐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영 나오지 않자 집에 온 여성을 협박해 남편에게 돈을 뽑아 오도록 전화를 하게 했는데, 아내가 평소와는 다른 말투를 쓰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남편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 1명이 대신 돈을 들고 왔다. 그리고 그가 나오자 가스총을 쐈다. 당연히 집 주위도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가 쓰러지지 않고 담을 넘어 옆집으로 도망치는 예상밖의 상황에 추격전이 펼쳐졌고, 다행히 가까스로 체포했다고 한다.[11]
이 때까지는 해당 인질극의 범인으로 수사중이었으나 '''그 날 밤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1달 전의 부산 서대신동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범인의 신원을 알 수 없어서 몽타주로 공개수배되었지만 인상착의가 정두영과 매우 흡사했던 탓에 수사중이던 형사들이 눈치채기 시작했고, '''정두영 본인 또한 TV를 똑바로 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결국 자신이 해당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하였다.'''[12]
[image]
현장검증 당시의 정두영.

4. 체포 이후


2001년 1, 2심에서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되었다. 1997년 이후로 더 이상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사형수로 복역중이며, 부산구치소에서 복역하다 대전교도소로 이감되었다.[13] 그리고 장물 처리를 해준 공범인 전당포 주인 김종준과 금은방 주인 형 정부영도 검거되어 둘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이듬해 만기 출소하였다.[14]
SBS 그것이 알고싶다MBC 히스토리 후에서 방영되기도 하였다. 희한하게도 사건 당시와 검거, 판결시에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했다가 후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15]
표창원 의원이 경찰대학 교수 재직 당시 진행했던 케이블 TV 재연 프로그램 <범죄인간>[16]tvN의 재연 드라마 범죄의 재구성에서도 다루어졌다.[17]

5. 탈옥 시도


거의 잊힌 사람처럼 보였던 정두영이 십수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화제가 되었으니…
2016년 8월 6일 대전교도소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성공할 뻔했지만, 다시 붙잡혔다. 기사 8월달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보도는 9월에 이루어졌다. 판결문 결국 정두영은 도주미수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image]
대전교도소에는 담이 3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정두영은 이 3개의 담중 2개를 넘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 담을 넘으려는 순간 간발의 차이로 교도관들에게 잡혔다. 탈옥 수법이 놀라운데, 출역[18] 갈 때마다 납품용 전선을 만드는 출역을 했는데, 그때마다 파이프와 전선을 조금씩 훔쳐서 그걸 이어붙여서 만든 사다리를 타고 탈옥을 시도했다.

6. 둘러보기



[1] #[2] 김대두 혹은 정두영을 국내 최초 연쇄살인범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그 목적이 살인 자체가 아니라 절도/강도였고 살인은 단지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벌인 것이었다. 즉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강도살인을 저지른 강도살인범이고, 처음부터 순수하게 살인을 목표로 범죄를 저지르다 검거된 쾌락성 연쇄살인범은 유영철이다. 다만 어쨌든 범죄유형이 연쇄살인인 건 맞다. 사실 가장 유명해서 그렇지 유영철이 최초의 (쾌락성) 연쇄살인범인 건 아니다. 이관규, 지춘길, 이춘재같은 이들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3] 다만 정두영은 미리 둔기를 준비한 게 아니라 불심검문에 대비해 맨손으로 다니다가 침입한 집에 있에 있던 둔기로 쓸만한 물건을 아무거나 집어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맨손의 살인마'.[4] 혹은 성인오락실이었다고도 한다.[5] 즉 정두영은 살면서 총 10번의 살인을 벌인 것이다.[6] 부산경남 연쇄살인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7] 먼저 침입한 건 그 고검장의 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사를 간 다음날이어서 집 안에 물건을 거의 다 빼서 비워놓은 상태라 훔칠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옆집으로 간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 우연이 없었더라면 '''검사, 그것도 고검장의 집에 도둑/강도가 든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8] 현재 철거가 되고 임대건물이 들어선 상태다.[9] 당시 그 집에는 갓난아기가 있었고, 먼저 죽은 2명의 여성은 친척과 가정부, 살려준 여성은 그 아이의 어머니였다.[10] 특히 정 회장은 정말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형사들이 해당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치를 떨 정도.[11] 여담으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가 체포당하게 된 이 집은 '''과거에도 그가 붙잡혔던 그 집이었다.''' 그 당시엔 집에 있던 가정부가 그와 마주치자 놀라서 안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버텨서, 그냥 도망쳤었다고 한다.[12] 당시 수사를 맡았던 형사의 말에 의하면, TV에서 범행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정두영이 연신 고개를 푹 숙였다고. 그리고 그 뒤 위에 언급한 생존자들도 그가 범인이 맞다고 증언했다.[13] 보육원에서 도망쳐 나와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복역해왔던 그의 인생을 보면, 그가 사회에서 살았던 인생보다 교도소에서 살고있는 인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형수이므로 앞으로 나갈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며, 2020년 기준으로 그의 나이가 52세인데 만약 한국 평균나이까지 지금으로부터 30년을 더 산다고 봤을때, 사회에서 살았던 인생보다 앞으로 계속 교도소에서 살게 될 인생이 대략 4배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4] 이 2명은 "장물 처리는 하였지만, 단순히 도둑질만 하고 다닌 줄 알았지 강도살인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15] 물론 정두영은 비정한 살인마였지만 아기 엄마를 살려주는 등 최소한의 인간성이 있다고 볼 소지가 있었고, 본 목적은 엄연히 강도, 더 정확히는 절도였다. 그런 점에서, 살인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고 양심 자체가 없었던 유영철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프로파일러들은 아이 엄마를 살려준 것이 인간성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부모 없이 큰 성장 과정 혹은 그런 성장 과정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됐다는 생각. 더 자세한 분석은 최상단의 '사건의뢰' 영상 참고)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유영철도 어린이를 죽이지 않은 사례는 있었다. 결국 둘 다 냉혹한 살인마일 뿐이다. [16] Q채널(지금의 JTBC2)에서 방영했던 <살인자는 말한다>의 시즌 2격인 범죄 재연 프로그램. 전작인 <살인자는 말한다>도 표창원이 진행했다.[17] <범죄인간>에서는 본명 대신 박상두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18] 구치소에 수감된 죄수들이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 원래 사형수는 출역을 못했는데 법무부가 2000년대 후반 30명의 사형확정수들의 신청을 받아 교도소로 이감해 작업을 포함한 교정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해 대전교도소(12명), 대구교도소(11명), 광주교도소(7명)의 사형수들이 옷감을 만드는 복지작업이나 수건 생산과 형광등 안전기 제조 등의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