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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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외야수.
前 야구선수인 정수근의 동생이며 둘다 등번호 8번을 달고 외야수로 뛰었다. 형제 모두 좌타자이지만 좌투좌타인 정수근과 달리 정수성은 우투좌타, 그리고 입단 초기에는 스위치 히터로도 활약했었다.[3] 타격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우수한 주루와 수비력으로 오랫동안 팀에 공헌한 선수다.
그리고 선수로서의 성적, 기록은 훨씬 좋았으나 자기 관리의 문제로 원만하지 못하게 야구계를 떠난 형과는 달리, 자신은 성실함을 바탕으로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더 오랫동안 야구인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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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되었는데,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매우 낮은 순위로 입단했다. 사실상 구단에서도 별 기대 없이 즉석복권 긁는 정도의 기분으로 지명했던 모양.[4] 입단 후로도 1군에 얼굴도 못 비추고 오랜 기간 무명 세월을 보냈다. 노력이야 열심히 했지만 이 시기의 현대는 탄탄한 선수층으로 왕좌를 지키고 있던 터라 자리가 없었다(...).[5] 그나마 밑에서 설명할 KBS의 인간극장 출연으로 정수근의 동생이라는 인지도만 있었다. 참고로 고교야구에서 뛰었을 때 형 정수근의 프로-대학 간 스카웃 경쟁 여파에 휘말려 야구를 못 할 뻔 했다고 한다. 학교 동문회의 압력으로 간신히 공을 다시 잡게됐다고. 이 이야기는 이전까지 형 정수근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6] 프로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고 계약한 문제때문에 '''동생 앞길을 막은 형 이미지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정수근과 정수성의 부모님이 프로팀 스카우터와 논의를 해서 정수근을 먼저 프로팀으로 보낸 거라고 한다.'''[7]
2005년경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전력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고[8] , 정수성은 전준호의 이탈로 기회를 얻어 주전 중견수로 리드오프를 맡으면서 2할 7푼의 타율에 100안타, 29도루를 기록하며 포텐셜을 터뜨리는 줄 알았다. 이 때 정수성의 활약을 본 현대 수뇌부는 2005년 말 상무에서 곧 제대하는 발빠른 좌투좌타 외야수 1명을 '''제대하자마자 방출해 버린다.''' 그리고 그 선수는 친구가 있는 두산으로 이적했는데, 그 선수가 바로 이종욱이다.[9] 그러나 2006년이 되자 정수성은 부진에 빠졌고,[10][11] 그나마 포수에서 외야로 전향한 후 기량이 늘어나고 있던 이택근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10년에는A형 간염에 걸려 이택근의 LG행으로 생긴 주전 중견수로서의 기회를 날려먹고 많은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2.2.1. 2012 시즌
2012년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테이블 세터의 부진이 계속되자 4월 중순부터 1군에 합류했다. 4월 24일 경기 때도 승부의 쐐기를 박는 2루타를 쳤지만, 이 때 역시 앞선 파울 타구에 맞아 다친 상황이었기에 절룩거리면서 2루로 달리는 눈물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5월 6일 기아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는 무려 1,044일만에 통산 6호 홈런을 때려냈다.
5월 10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중견수로 나와 11개월만에 선발로 나온 김영민을 도와주는 호수비를 선보이면서 맹활약했다. 그리고 플레이 자체가 허슬 그 자체라서 팬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았다. 머큐리 甲이라는 새로운 별명도 생겼다. [12] 그런데 하도 허슬 플레이를 해대서 경기 끝나고 퇴근할 때는 몸이 말이 아니라는 모양.
5월 17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1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서 5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면서 팀의 9:1 승리의 첨병이 되었다.
5월 19일, 홈구장인 목동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맞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4월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25게임 연속출루 기록'''. 넥센의 상승세와 거의 일치하는 기록이다. 이거 하나만 봐도 얼마나 땀흘려 선수생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그러나 5월말부터 체력이 방전되면서 하행세를 그리는 통에 성적이 많이 나빠졌다. 3할에 가까웠던 타율이 2할 3푼대가 되었다. 그래도 6월 24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 2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내내 안타를 치지 못했지만, 연장 10회말 1사 1,3루 찬스에서 극적인 끝내기 2루타를 치면서 팀의 6:5 대역전승의 주역이 되었다.
6월 28일 7회말에 상대방에 송구실책을 틈타서 정말 빠르게 3루까지 갔다. 팬들은 내야 3루타라면서 흥분할 정도. 거기다 이혜천에 와일드피치로 추가점까지 획득하였고 결국 이 점수는 넥센의 결승점이 되었다. 그러나 본인은 슬라이딩 과정에서 경미한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체력 저하로 인해 7월 30일에 2군으로 내려가고, 1군 복귀를 위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다가 그만 8월 7일 왼손목 실금 부상으로 인해서 전력 이탈.
헌데 부상을 무릅쓰고 9월 초에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손목뼈에 생긴 금이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라 타격은 힘들고, 대주자나 대수비로 주로 뛰었다.
2012년의 몸을 사리지 않는 활약으로 대부분의 넥센팬과 야구팬들이 '''정수성=허슬플레이'''라는 인식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물론 허슬 플레이도 좋지만, 넥센 팬들은 연세도 많으신데[13] 무리하지 말고 부상 없이 오래 뛰길 바라고 있었다.
2.2.2. 2013 시즌
2013년 염경엽감독에게 부여받은 역할은 외야 백업과 출루용 대타. 시즌 초반에 약간 출장하다 부진한 타격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고, 9월 확대엔트리 때 다시 복귀하였다.
팀의 첫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그의 롤과 비슷한 장기영, 유재신, 송지만이 엔트리에 들면서 제외되었다. 정수근은 사사구에서 이를 두고 정수성의 엔트리 제외는 실수를 한 것이라고 반 농담 섞어 지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반쯤 사실이 되었다.
2013년 11월 4일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2군 주루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3. 지도자 경력
3.1.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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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히어로즈에서 주루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1군 주루 코치인 최만호 코치가 혈압 오르는 콜을 자꾸 보여주는 바람에 팬들은 정수성 코치와 보직을 변경하길 바라는 중.
하지만 또 최만호가 3루코치를 맡게되었다. 대신 정수성 코치는 심재학이 타격코치로 보직변경되면서 비어버린 외야코치와 1루코치를 맡는다. 아직 초보 지도자라 부족한 면이 많지만, 1루에서 선수들을 잘 다독이는데다가 선수들 기본 주력도 파악 못하고 손만 돌리는 최만호 코치보다는 평이 좋다.
형님의 열렬한 실드는 덤(...)다시보기영상 5시간15분부터[14]
2015 시즌 종료 후 최만호 코치가 롯데 주루코치로 이적하면서 3루코치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기존의 1루는 강병식 코치가 담당. 2016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존재 자체가 언급이 없다. 사실 시즌중에 코치에 대해서 언급이 자주 나오면 그만큼 '''작전수행을 못한다'''는 의미이므로 전임자와 달리 코치로서 주루에서 큰 실수나 착오없이 성실하게 코칭에 힘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2016년 시즌에는 넥센의 팀 컬러가 뛰는 야구로 변하면서 정수성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전반적으로 큰 실수 없이 잘 해냈다는 평. 가끔 선수가 주루사를 당하면 염경엽 감독에게 까일 까봐 쫄아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러나 2016 시즌 후 감독이 바뀌면서 넥센을 떠나게 되었다. 함께 팀을 떠난 이강철, 박철영은 이해하지만, 정수성과 재계약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의아하다는 팬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염경엽 색채 지우기 일환으로 염경엽의 사람 내치기 또는 갈등이 있어서 아닌가라고 보는 의견도 많다. 팬덤이 뒤집혀진 것은 덤. 이는 후일이지만 SK 와이번스에서 두 사람이 감독-코치로 함께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루머였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3.2. SK 와이번스 시절
주루 지도능력은 부족한 점이 없기에 주루코치를 필요로 하는 다른 팀에서 러브콜이 올 듯싶었고, SK 와이번스에서 영입하였다. 기존의 주루코치였던 김인호가 워낙 평이 안좋아서 SK팬덤은 대환영 분위기이다.
그리고 2016 시즌 71개로 1위였던 팀 주루사가 정수성 코치가 부임한 2017 시즌에는 33개로 '''리그 최저'''로 대폭 줄어들면서 명 코치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점차 주루사가 늘어갔고 2019 시즌 주루사 비율 4.44%로 리그 2위를 달성하며 좋았던 평도 옛말이 되었다. 2020 시즌에도 달리지지 않은 주루사 비율을 보여주다가 결국 8월 3일 2군으로 말소되고 말았다.
2020년 SK와 재계약에 실패한 뒤 이강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wiz 코치가 되었다.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수로 뛰었던 이후 14년만의 수원야구장 복귀다.
3.3. kt wiz 시절
4. 연도별 성적
5. 기타
- 팀 내에서 상당히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렸을 적 형 정수근이 야구는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줘서 그 뒤로는 항상 웃으면서 야구를 한다고 한다. 팬들에게도 매너가 상당히 좋다.[15] 팬들은 정수근의 재능에 정수성의 성실함이 더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하는 일이 많다.
- 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형과는 사이가 좋은 편. 풍운아 이미지로 거칠 것만 같은 정수근도 동생에게는 따뜻한 형이다. 정수성이 한창 무명이고 정수근이 잘 나갈 때 동생의 생활비를 보태줬다.
- 훌륭한 수비력, 빠른 발, 상당한 야구센스, 누구나가 인정하는 성실한 노력파,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 동안에다 미녀 아내까지. 야구 선수로서 가질 수 있는 건 체력과 타력만 빼고 다 가지고 있다.
- 팀 동료이기도 했던 이숭용 해설위원이 뽑은 운 없는 넥센 선수 3인방(김영민, 오재일, 정수성)중에 하나다. 연습량은 최고인데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두산으로 가 펄펄 날고 있는 이종욱과 늘 대비가 되었으니. 김영민은 마무리투수로 몇년 쏠쏠한 활약을 했고, 오재일은 거액 FA 계약을 체결했으나 정수성은 선수로 성공하진 못했다.
- 아직 1군에서 제대로 된 모습도 못 보여줬던 2000년에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출현한 적이 있다. 타이틀은 아직은 스물 세살, 역전은 있다였다. 당시 인기스타였던 정수근과 비교당하는 심정과 그럼에도 그에게 도움을 받고 그를 응원하는 모습, 2군 생활 모습 등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무명이었던 그의 팬카페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참고로 현재 아내분도 여자친구로 인간극장에 등장한다.[16] 두 부부는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10년간 사귀다 2004시즌이 끝나고 결혼하여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형과는 또 정반대인 모습이다.[17]
6.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친형인 정수근과는 초-중-고교 2년 선후배 사이이다.[2] 원래 불교였지만 자신도 형을따라 개종한것으로보인다.[3]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감독과 김용달 코치는 스위치 히터 성애자로 유명했으나 후임 감독인 김시진 감독은 스위치 히터에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알려져있다. 김시진 감독 부임 이후로 좌타석에만 들어섰다.[4] 그 정수근의 동생이니 재능은 있을 것이라는 판단쯤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5] 정수성이 현역이던 시절에 현대 외야를 거친 선수들이 박재홍, 전준호, 심정수, 송지만, 심재학, 이택근...쟁쟁한 선수들에 간혹가다 클리프 브룸바, 래리 서튼같은 외국인 선수들도 코너외야로 뛰었으니 정수성 아니라 누구라도 주전을 장담할 수 없는 선수진이었다.[6] 중앙대와 고려대 진학을 고려했다고 한다.[7] 유튜브 마토브리그 특집에서 정수근이 직접 밝힌 일화.[8] 연고지 이전 문제에 모기업의 자금난 등으로 구단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팀의 주전 유격수와 4번 타자가 FA로 풀린 후 돈이 없어 모두 내보내야 했던 2005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몰락이 가파르게 진행되었다. 팀은 마지막 불꽃을 2006년에 붙였지만 한화 이글스에 패해 현대 유니콘스의 가을야구는 그렇게 완전히 끝났다.[9] 이종욱의 석연치 않은 방출이 정수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10] 이는 전통적인 양적 통계를 기준으로 본 것이다. 세이버매트릭스를 비롯한 질적 통계로는 2005년에 이건 2004년이 이상할 정도로 낮았던 것이다. 물론 2005년이 커리어 평균 대비 4푼 정도 높았던 것은 맞지만 플루크라고 할 정도로 너무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BABIP이 1할대였던 2004년이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것에 가깝다. 그리고 볼/삼 비율은 0.27로 시망에 가까웠다. 2007년 이승화와 비슷한 케이스인 셈이다.[11] 사실 세이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출루율과 OPS만 봐도 포텐을 터뜨렸다기엔 부족한 성적이다. 다만 시기는 2005년, 메이저에서조차 투승타타가 꽤 남아있던 시기이니 한국은 말할 것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2할 7푼이라는 나름 괜찮은 타율과 도루 수만으로 저런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12] 수성=Mercury니까 머큐리 갑.[13] 오랜 무명 세월을 보낸 데다가, 의외로 동안이라면 동안이라 신인급 정도 될 거라고 착각하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978년생으로 2012년 기준으로 35세. 프로 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게다가 1997년 고교졸업 이후 곧바로 프로에 입단한 케이스라서 프로 연차는 무려 16년차.[14] 권용관이 정수성 코치에게 불만을 표시를 했던 경기.[15] 구장 입구에서 사인해주다 지각이라며 구단 직원에게 끌려간 적도 있다.[16]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의 지시로 동아리 후배들과 땡땡이를 치고 있던 정수근을 찾으러 갔다가 형의 동아리 후배였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17] 형인 정수근은 두번이나 이혼했고 현재 같이 사는 부인은 3번째 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