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논란
1. 상차림 논쟁
성균관 의례부장 '홍동백서 등 차례상 규칙 근거 없다'
보통 제사상 하면 떠올리는 상차림 대신 바나나, 피자, 치킨 등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고인이 생전에 아주 싫어했던 음식은 빼는 경우가 있다.대표적으로 율곡 이이의 제사상에는 소고기가 올라가지 않는데, 이는 '''율곡 이이가 평생 동안 소고기엔 입도 안대서다.''' 이에 대해서 "밤, 대추, 곶감, 약과 등과 같은 전통 상차림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이라면 올려도 상관 없다"는 2가지 의견이 충돌되고 있다.'''제사를 지내는 것은 주로 사랑하고 공경하면 그뿐인 것이다. 가난하면 집안 형편에 어울리게 하면 되고, 병이 났다면 몸의 형편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면 되는 것이다.'''
- 율곡 이이
재미있게도, 유명한 유학자를 조상으로 모신 유서깊은 가문들은 제각각 이유를 들어 독특한 방식으로 넣고 빼가며 자기들만의 상차림을 정해 전통으로 내려오지만, 그렇지 못한 집들이 형식을 고집하는 형국이다. 마치 근세 유럽에서 종교(그리스도교)를 가지고 농담하며 적당히 융통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지배계급이었지 하층민은 그런 불경을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양반인 현대에서 기본적으로 상차림은 집안 사정에 따라 제주가 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교회로 말을 바꾸어 보자. 헌금액의 다소가 중요한가, 정성된 마음으로 열심히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후자다.
본래 우리가 '전통' 상차림이라 부르는 형식도 1969년 3월 1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공포된 건전가정의례준칙과 80~90년대 언론 등에서 몇몇 가문의 제사상 차림을 종합하여 상차림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널리 퍼뜨린 표준 형식일 뿐, 한국의 전통 상차림이라 보긴 힘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가정의례준칙이 의도한 것은, 허례허식을 피하라고 국가에서 생활 수준을 고려하여 과도한 지출을 줄이고자 핑곗거리를 만들어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더 성대하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러지 말라고, 집안 어르신들에게 "나라에서 하지 말랬어요"하고 이유를 댈 수 있게 한 거라는 이야기.
'''본래 유교에선 처음부터 제사 때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엄격한 상차림을 처음부터 지정하지 않았다.'''[1] 가령 이이(조선)의 저서인 격몽요결에선 제례에 대해 설명하면서 '집안 형편이나 기사람 수에 맞게 적절히 올리면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글 각종 예법이 보다 엄격해진 조선 후기에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이를 언급한 기록은 없다. 송시열의 송자대전에서 개인적으로 '어동육서'의 뜻에 대해 지나가듯이 언급한 정도가 고작이다. 개별 가문에서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서 계승한 상차림 형식은 있고 관련 기록들도 있지만, 모든 집안에서 보편적으로 따라야 하는 규칙은 사실상 없다.
전문가 견해도 "주식인 밥, 탕, 나물 등은 반드시 올려야 하지만 그 밖엔 피자나 치킨이나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외래음식을 올려도 무방하다"는 의견이다.# 유림 전문가인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도 "과시욕, 허례허식 때문에 상차림이 과해졌다"고 말하며 "특히 명절 차례상은 오히려 간소하게 차리는 것이 더욱 예법에 맞다"라고 설명하였다. 사실 지금도 기제사보다 시절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고 비용도 적게 쓰는 집안이 많다. 별로 구별하지 않는 집도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알고는 계신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스트푸드나 서양식 과자 등으로 차린 제사상의 사진들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형편과 사정에 따라선 이 역시 제사 형식에 어긋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혹은 어떤 집들의 경우 그냥 아예 제삿상 차리는 사람들이 차리기 편하고 먹고싶은거 위주로(...)[2] 제삿상을 차리고 원래 제삿상에 기본으로 올라가는 음식은 한두 가지 정도[3] 만 올려두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구색맞추기용 상차림용 반찬들도 직접 마련하기보단 그냥 사서 올리는 경우까지 있다. 아예 차려주는 업체까지 요샌 나오는 마당이니 말 다했다.
특히 핵가족으로써 그냥 안 내려가고 따로 자기들끼리만 제사 지내는 집에선 이렇게 상차림 음식 선택의 자유도가 매우 높아진다. 또 가족 구성원들이 좀 깨어있는 집안이라면 그냥 모두 나서서 간소하게 음식을 각자 마련해와서 차리거나 아예 상차림 자체를 하지 말고 넘어가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제사 지내는 집들은 상술되었듯 유교 경전에 비춰보면 근거는 없지만 흔히 '정석'이라고 알려진 상차림을 고집하고 있고, 이를 차리기 위한 비용은 여전히 부담이 되는 규모이다. 물론 대가족이 대부분이라 수십 명의 제사상을 차려야하는 1980년대 이전에 비해 만들어야 하는 음식의 양이 조금 줄어들어 노동강도가 줄었다곤 하지만, 핵가족 기준으로 놓고 보면 여전히 음식의 양은 차고 넘친다. '''1980년대만 해도 명절만 되면 모든 여자들이 분주하게 모여서 정신 없이 음식을 장만하는 노동환경에서 지금은 꽤 줄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제사상은 무시할 만한 노동은 아니다.''' 다만 가짓수가 많아도 양을 줄이면 그만인데 안 그러는 집이 많다. 양을 줄이는 것은 후술할 제사음식이 남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같은 비용으로 더 좋은 재료를 써서 더 맛있게 먹을 방법이기도 하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리려는 욕심만 자제하면 말이다. 다만 제사상은 조상에게 올린다는 이유로 먹지 않고 버릴지언정, 쓸 데 없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가득 올리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 없는 비판이다.
게다가 대가족이 보편적이었던 시절에는 만들어 놓고 먹기라도 하지, 지금은 그 많은 음식을 먹을 사람도 없다. '''한국인 1달 임금의 최빈값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최고급 식자재를 포기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먹을 만큼만 음식을 만들고 제수용품에 고급품을 안 올릴 정도로 합리적인 소비 패턴이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면 제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클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명절이 되면 맛으로는 고급품이 아니더라도 상처 없고 크기만 크면 무조건 비싸다. 합리적인 상차림에 대한 인식은 젊은 세대에게나 퍼져 있지, 집안의 큰어른뻘 가운데 이렇게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때문에 제사가 사회 갈등이 되는 것이다. "조상에게 올리는 상차림인데 적당히 차려서 끼리끼리 한 끼만에 먹고 끝날 정도로 차리면 집안 어르신들 보시기에 정성이 담겨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게 이 문서에서 주장하던 핵심이다.
2010년대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제사나 차례 문화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가 극을 달리면서, 언론에서도 간소한 제사상'이라거나 퇴계 이황 종가의 제사상, 본 항목에도 소개된 제사상 차례상에서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하는 것의 실상을 소개하면서 꼭 이를 엄격히 지킬 필요는 없다는 기사를 이전보다 많이 내보내는 추세지만, 젊은 층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수준. 애초에 '''하기 싫은 거지 규모를 줄여서라도 하고 싶은 게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제사를 싫어하는 층의 마음을 잡으려면 제사를 작고 쉽게 지내는 방법이 아니라 안 지내도 되는 이유를 다뤄야 한다. 다만 이런 말은 유가에서는 나올 수 없다. 교회/절에서 "교회/절에 안 나와도 되니 예수/부처 믿으세요"라고는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2. 종교적 관점의 충돌
아래에도 나와 있지만 제사는 각 종교마다 다양한 방식의 제사법이 존재하며, 이 때문에 개인의 종교적 관점이 그 집안에서 내려져오던 전통과 충돌할 경우 제사를 거부하는 등의 충돌과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종교적 관점의 충돌로 인한 제사 거부가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조선 후기 청나라에서 여러 서양문물이 들어왔을 때 같이 들어온 천주교의 영향 때문에 생긴 제사 거부는, 천주교에서는 유일신인 하느님만 섬겨서 제사를 다른 신을 섬기는 것으로 여겨서 제사를 금지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천주교에서는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제사 자체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게 효를 한다는 관습 측면에서 제사와 같은 형태로 추모 기도를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제사의 종교적 측면이 매우 희박하고 관습에 가까운 것 또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는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민의 풍습과 융합돼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고만 유럽식 기준을 강요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톨릭과 정교회가 갈리진 큰 이유를 생각하면 그 동네도 홍역을 치른 바 있고.
개신교에서는 간단한 추모식으로 대체하거나 그냥 안 한다.
3. 정통 유교와 무신론과 제사의 관계
무신론적 관점이나 과학적 회의주의의 관점에서는 사후세계, 영혼, 귀신 등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회의적이기에 '무신론자들은 제사를 해선 안 된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제사라는 건 정말 영혼의 존재를 믿어서 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로써 그것을 기리는 행사기 때문에 꼭 영혼의 존재를 믿냐 안 믿냐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무신론과 제사의 관계에 대해서 조사해본 기사#를 보면 민간에서 행해지고 있던 제사를 유교에 도입하여 발전시킨 공자야 말로 오히려 영혼이나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무신론자였다고 한다. 공자가 제사를 도입한 이유는 영혼의 존재를 믿어서가 아닌 도덕국가 재건에 제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공자의 관점에서 제사를 정립해 보면 관습적으로, 피동적으로, 의무감으로, 체면 때문에 제사를 모셔서는 안 된다. 조상을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비는 신으로 섬겨서도 안 된다. 자손이 함께 모여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조상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집안 어른께 인사하고 혈연의 정을 나누는 마음으로, 같은 동기끼리 우애를 나누는 마음으로 제사에 참여해야 한다.
- 《제사의 참 의미는?》, 오마이뉴스.
무신론과 제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2000년대 이후로 국내에서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는 무신론이라는 것이 서구의 자유사상 및 계몽주의 계통의 신무신론이 아닌, 거의 무교 내지는 동아시아적인 비신론(nontheism), 세속주의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4] 가장 크게는 현대의 제사 풍습이 '''종교색이 크지 않은, 친족단합을 도모하는 세시풍습'''에 가깝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과연 제사가 정말로 종교적 동기와는 "무관하다" 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예컨대 일부 어르신들 중에는 제사를 왜 드리냐고 물으면 "왜긴, '''조상 덕 좀 봐야지!'''"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된 오마이뉴스 기사 내용과 비교하면 조금은 씁쓸한 현실. 또한 제사 절차 중에 잠시 집 밖으로 몸을 피해서 누군가의 "식사" 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나,[5] 제사를 마치고 제삿상의 음식을 먹는 것을 음복(飮福)이라고 부른다거나, 이러한 행동을 음덕(陰德)을 입는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제사라는 행위가 초자연적인 섭리의 개입을 일부 전제할 수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종교적 내지 기복적인 동기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보여 준다. 신주나 지방에 ''신'이 거하는 '위'치'라는 의미의 '신위(神位)'라고 쓰는 행위 역시 초자연적인 조상신의 존재에 대한 전제와 완전히 무관하다 하기 어렵다. 기독교에서 '기도빨'과 같이 기복신앙적 요소가 더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조상 덕 보기 위해 제사지낸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치되는 대사가 SNS상이나 온라인에서 종종 회자되곤 한다. "'''진짜 조상 덕 본 집들은 명절 때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쥐뿔도 못 본 집들이 음식상에 절하느라 싸우고 가정불화 일으킨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골자는 다 같다.[6]
4. 유전학과 족보의 관점
사실 우리나라는 족보 세탁이 심해서 유전자로 성씨를 분석하면 많은 사람이 남의 조상을 모시고 있는 편이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당시 양반의 숫자는 정말 극소수였고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과 족보 매매 등을 틈타 성씨를 가졌다.. 는 주장이 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족보와는 상관이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 제사와는 상관없는 주제다. 2010년 기준 60세 제주의 4대조면 대충 이승만과 김구 시대의 조상인데 그 조상이 누군지 모르고 남의 조상을 제사지내는 바보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5. 제주(祭主), 상차림 여성차별 문제
조선 전기나 중기까지만 아직 불교식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꼭 장남이나 아들만 지내라는 법은 없었다(하지만 여자가 지내는 경우는 거의 아들이 없는등 특수한 상황이 이니면 없었을 것으로 본다). 심지어 매년 장남이 제주를 맡는 것도 아니었다. 직계 비손이 없을 경우는 부인이나 딸들이 제주를 맡았는데, 돌아가면서 제주를 맡는 경우를 윤회봉사(輪回奉祀), 딸의 자손이 지내는 경우는 외손봉사(外孫奉祀), 죽은 장자의 부인이 지내는 경우는 총부봉사(冢婦奉祀)라고 칭했다. 심지어 외조카가 제주를 맡거나, 사위가 처가의 제사를 모시는 경우도 흔했다. 17세기 이후 종법 질서가 정형화 되며 정착되면서 적장자가 상속과 제주의 권한을 승계받는 형식이 보편화되면서 지금의 관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제사를 모시는 제주(祭主)는 무조건 그 집안의 장남이 맡게끔 강제되는데[7] , 이는 개항 이후 조선 말엽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집안의 장남에게 많은 권한과 책임을 물려주다 보니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굳어진 것이다. 재수 없게 보통의 한국인 가정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남성이라는 선천적인 요인만으로 인해 고생하는 것인데, 이는 곧 선천적인 요소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에 맞지 않는, '''반헌법적인 차별'''이라는 말이 된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한 대우를 타고나는 특수계층을 만드는 반헌법적인 요소로, 인권유린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제사옹호론 측 주장대로 제사가 정말 장점이 많은 문화라면 여성들 역시 제주를 맡을 수 있도록 하거나, 둘째 등도 제주를 맡을 수 있도록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부장제에 대해 거부감이 가장 강한 집단 중 하나인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는 거의 없다. 설령 자신이 제사를 모시고 싶은 진보적인 여성이 있더라도 집안의 윗세대 어른들과 친척들이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 남존여비에 찌들어 있는 소위 '옛날 사람'들이라면 소용이 없고, 아무리 원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버지 제사인데 남자라는 이유로 조카가 제사를 주관하고, 정작 친딸들은 본인들이 직접 제사를 지내길 원했음에도 '어디서 여자가!'라는 이유로 집안 어른들에게 된통 혼난 후 사촌동생 뒤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했다는 식. 실화다. '''성차별이 있음이 분명한데 지적받지 않는 대표적 영역의 하나.'''[8]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며느리들의 제삿상 차리기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강하게 한다. 남편 조상신 모시는 데 며느리만 일하면 억울하다는 것이다. 남편 집안의 행사인데, 왜 피 한 방울 안 섞인 며느리가 죽어라 일하고 그 집안 피를 이어받은 남편은 상차림에 있어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가? 물론 결혼으로 인해 그 집안 가족이 되었으니, 친지와의 행사에 있어 일을 분담해야 할 때 네 친지와의 자리니까 난 일을 하지 않겠다 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모두 같이 일을 한다면 모를까, 누구는 죽어라 음식 차리고 설거지하고 일하는데 동시에 누구는 다른 한편에서 먹고 놀고 떠들기만 하며 편히 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일하는 쪽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남자가 처가는커녕 본가 제사에서도 하는 일은 없고, 여자들이 죽어라 음식 만들고 설거지 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먹고 놀기만 하니까 남성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다.
6. 2017 제사폐지 청원 사건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제사를 법으로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온라인상에서 논란을 빚은 사건.청원 링크 관련기사 청원의 내용만을 보면 제사가 중국 고유의 관습이라거나, 제사의 폐지가 성평등과 여권향상에 기여한다는 내용 등을 들어 논란이 일어났다.
유교적 명분론에서도 여권향상, 성평등을 놓고 보면 거꾸로 여성도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이 여권향상이라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사는 반대하지만 청원의 내용 자체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제사무용론자들도 많다. 다만, 제사에 대한 현 세대의 인식이 좋지 못하며 지금의 제사 문화를 청산해야 할 인습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점에는 의의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하나 자신들은 조선시대 왕이 아니라며 이러한 청원들을 곤란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국가가 제사를 법으로 의무화한 적은 없지만 반대로 법으로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제사를 방해하는 걸 처벌하는 법이 이미 있는데 제사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다면 이는 모순이다.
참고로 유신시대에는 제사를 포함한 관혼상제에 대한 강제적 제약을 둔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관혼상제와 같은 가정의례에 정부가 개입해서 법적으로 강제규정을 두었던 현대 한국 정부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이다. '''이 시기에는 결혼한다고 청첩장 돌리고, 장례식이라고 부고장 돌리고, 방문한 사람들에게 답례품이나 술이나 음식 접대하면 불법이었다[9] .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가까운 친척만 초대할 수 있었고, 식장도 예식장이 아니라 집이나 공회당을 사용하게 되어있었다'''. 국가기록원의 1973년 가정의례준칙 이런 법률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정부가 왜 제사 같은 것 하나 못 없애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저런 법률이 만들어지고 강제조항까지 들어갔던 것은 10월 유신 이후의 정부 독재시대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법률들은 현대라면 죄다 위헌소송감이다'''.[10] 실제로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술과 음식 접대를 하지 못하게 했던 규정은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위헌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가정의례에관한법률 제4조 제1항 제7호 위헌확인(헌재 1998.10.15 98헌마168 결정). 결국 이런 조항들은 건전가정의례준칙이라고 해서 권고사항으로만 남았는데, 법률에서 강제규정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실질적으로는 사문화 되었다는 이야기이다.[11] 이 내용들을 보면 제사 외에도 성년식, 약혼, 결혼, 장례 등을 간소하게 간단히 하라는 권고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거 있는지도 모르고, 알고 있다고해도 지키지도 않는다'''.
즉, 제사폐지 청원은 제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벌금 때리라는 이야긴데, 애초에 위헌소지가 너무 강하고,[12] 벌칙조항을 포함한 법률은 청와대의 의지만으로는 제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결국 이 청원은 20만명 이상이 참여하지 않아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참고로 제사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최소한의 현실적 요구는 '''현대 제사상의 표준처럼 자리잡고 있는 가정의례준칙법에서 재정한 표준제사상차림조차 경제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 되니 제사상에는 뭘 올리든 상관없이 간소하게 차리면 된다는 정확한 사실을 널리 알려달라'''이다.
현행 건전 가정의례준칙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에 대한 규정은 딱 한줄이다.
이걸 좀 더 쉬운 말로 고치면, 그냥 평소에 먹던 반찬 올린다로 요약할 수 있다. 즉, 표준제사상이라는 것은 적어도 현행 법률체제에서는 정한 적도 없고, 지키라고 홍보한 적도 없다. 소위 말하는 표준 제사상은 언론이 보도하거나[13] , 성균관과 같은 유교 관련 단체들이 정한 것[14] 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이지만, 같은 법률 결혼 조항에도 있는 것처럼 웨딩드레스나 예복 입지 말고, '''혼인예식의 복장은 단정하고 간소하며 청결한 옷차림으로 한다'''라는 조항이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라는 것. 즉 호화결혼식 등에 대해서 항상 뉴스에서 떠드는 것처럼 정부에서도 제사에 대해서 왈가왈부를 할 수는 있다. 공익광고 이상의 방법도 효과도 없을 뿐.'''제수는 평상시의 간소한 반상음식으로 자연스럽게 차린다.'''
말이 계속 빙빙 도는데 현행 규정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지키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 바로 문제다. 공익광고 정도의 노력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면 과거 유신시절에는 강제로 재정한 법에 의해 과도한 제사상차림이 금지되었다. 이전에는 과도한 상차림=효심을 증명하는 척도였기 때문에 잔치상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집안을 거덜 낼 정도로 허례허식이 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정도가 과도하지 않은 상차림인가를 가르는 기준이 필요해졌고, 이 때문에 표준 제사상차림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앞서 설명되었듯 당시 법은 강제성을 띈 실효법이었고 따라서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에 표준제사상차림은 깊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 법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핵가족화, 산아제한정책, 국민적인식의 변화 등이 진행되면서 법대로 제사를 지내게 되면 이마저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는 규모가 되는데 지키지 않으면 처벌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점도 고려해 해당 법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권고사항 정도의 의미를 지닌 현행 가정의례준칙으로 개정되면서, '제수는 평상시의 반상으로 간소하게 차린다'는 방식으로 상차림 관련 규정이 변화하게 된다. 그런데 반론 측이 스스로 말하고있듯 이 현행 규정은 아는 사람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다. 때문에 과거의 유신시대에 정해뒀던 방식이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위에서 반론으로 든 것이 현행 상차림예시가 성균관에서 정한 표준상차림이라는건데 그것도 유신시대의 표준상차림과 대동소이하다. 유신시대에 표준상차림을 정할 때 유교학자들이 제시하는 틀, 양반가의 실제 제사상차림 등 제사상차림의 구색을 참고했기 때문이다.
다시 풀어서 쉽게 설명하면 과거 잔치상 수준의 제사를 지내다 파산하는 집까지 나오니 어려운 경제를 감안해 법으로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라는 규정이 생겼다. 이 규정은 잔치상을 대체하는만큼 구색은 다 갖춰놓은 대가족 사회에 맞는 밥상을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대가족사회가 해체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해당 법은 폐지되고 권고사항으로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떼우세요'라는 규정을 신설한다. 그런데 위에서 반론측마저도 설명하듯 이에 대한 어떠한 홍보가 전무하니 실제 국민들의 생활사에서는 과거에 지내던대로 박정희 시대에 만든 제사상이 꾸준히 유지 될 수 밖에 없단 것.
제사상차림에 대해 정부에서 캠페인을 벌이면 인식변화를 꾀하는 것이 가능은 하다.[15] 다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상인들과 농민들, 그리고 어민들의 생계에 명절대목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기 때문이다. 이 외의 이유로 정부는 원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두 사안의 무게를 놓고 저울질해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어떤 것이 더 도움이 되는가를 논의하는 것이 옳은 논의의 방향이라는 말이다.
제사를 규제하는 법의 강제성이 위헌이냐 아니냐 하는 논의 역시 이미 강제적 법집행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이라는 판례가 있으므로 더 논의 할 필요가 없다. 제사폐지청원 사례가 본문에 실린 이유는 이렇듯 정부에 제사를 없애달라고 하는 사람마저 나올만큼 젊은 층의 제사기피 풍조가 만연하며, 현실에서 더이상 유교적 이상국가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예시로 기술 된 것이지 해당 청원이 주장하듯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여성의 가사노동이라거나 제사는 중국의 문화임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이 아님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의 제사가 현실과 상충되는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반발이 심화되어 더더욱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16]
이상의 논의에서는 꾸준하게 국가에서 홍보해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정부 방침은 언제나 있었고 그것을 따라 공영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고, 명절이 되면 간소하게 지내라고 명문 양반가에서 조촐하고 손 덜 가게 지내는 것을 방송하기도 했다. 거의 매년. 그것은 무척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사상에 치킨과 케익과 피자가 올라오는 것이 농담이 될 정도로 실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것은 정부가 간소한 의례를 권장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런 홍보를 몰라서도 아니다. 한 때 법으로 강제하다가 더이상 법으로 강제하질 않으니까 '그냥 지내던대로 지내지 뭐' 라는 이유로 제사상이 그대로 유지 되고, 치킨, 피자가 제사상에 오르는 것을 농담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제주의 자유를 자유롭게 보장해서 마음대로 상을 차려도 핀잔 주는 사람이 없다는 주장에 따르면 케익, 피자가 제사상에 오르는 일을 농담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여서는 안 된다. 제사상차림이 별로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농담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은 사람이 바뀌면 해결될 문제다. 현대 한국의 다른 사회현상처럼. 닭찜과 파전이 좋다는 제주가 가시고 나면 치킨과 피자를 좋아하는 제주가 치킨과 피자를 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게 원래 문화가 바뀌어 온 방식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발전 도상에 한 세대가 한 가지 습관을 고수하며 살다 죽을 수 있었다. 그 선진국들 대부분이 연간 경제성장률 1%인 시대를 길게 가졌고, 외부요인에 의한 사회문화적 변화도 적었기 때문에, 변화는 천천히 찾아왔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성장도 빨랐고 외부요인의 비중도 컸다. 그 결과 한 세대가 살아가는 동안 셋에서 여섯가지 습관을 익히며 자신을 변화시켜야 했고,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고, 그 전을 전혀 모르는 신세대가 매 10년마다 태어나 자기들끼리도 생각과 습관이 달라 갈등하니 제주 세대와는 당연히 생각이 더 많이 다르다.
[1] 홍동백서와 조율이시라는 단어는 이승만 전 대통령 집권 당시부터 만들어진 단어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역사 중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2] 어짜피 만들고 뒤에서 먹어서 처리하는건 제삿상 차리는 사람들이기 때문.[3] 그것도 보통 마련하기 쉽고 손질도 덜 드는 과일류 같은거.[4] 서구 영미권에서 개인의 가치가 그토록 강조되고 개인의 이성과 합리적 판단을 통해 그 어떤 타율적 도그마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데에는 영미권 특유의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화는 정말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관계성(relatedness)이 평생의 대인관계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무신론을 받아들이더라도 가족 친지 및 조상과의 현실적/상징적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작 영미권 무신론자들은 (문화의 상대성을 차치하고 원론적으로 본다면) 설령 오랜 풍습이나 전통에 근거한다 할지라도 개인이 가문의 일원으로서 조상숭배 행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어느 쪽이 더 옳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5] 과학적 회의주의까지 갈 것도 없이, 이러한 절차는 다른 상징을 배제한 세속적인 관점에서 봐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6] 반대로 조상 덕을 이미 봤으니 감사하는 의미로 지내준다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 매체에서 가끔 나오는 잘사는 집안에서 뻑쩍지근하게 제사 준비하다가 볼멘 소리하는 구성원에게 "니가 지금 이정도 사는게 누구 덕분인데 그러냐"며 타박 하는 식. ex1)조상은 그렇다치더라도 살아있는 조부모 세대가 나를 이정도로 살게 해줬는데 그들 말을 따라 제사 한두번을 못해줄까 하는 심리. ex2)제사 자체는 남들과 다를바 없이 고된 일로 받아들이면서도 안하자니 대놓고 어깃장 놓을 정도로 힘든 일도 아니고, 조상신 그런거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자신들이 사는 형편으로 미루어 보아 "덕을 봤다 하기 충분" 하기 때문에 지내긴 지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준비 하는 경우. 미신은 안믿지만 집안 어르신이 사주 봐오면 예예 웃으며 넘긴다 생각하면 될 듯.[7] 다만 이것도 케바케. 장남이 외지에 거주하여 제사준비 등을 할 수 없는 경우 차남 또는 그 아래의 아들이 제사준비를 하고, 장남이 제수비용을 대는 경우 등 집안의 상황마다 다르다.[8] 다만 아들이 아예 없고 딸만 있는 집이라면 장녀나 외동딸에게 시키는 집도 있다. 남편이나 집안 큰어른들이 대신하기도 하지만 아예 큰어른들이 한 번 알려주고 맡겨버리는 집안도 있다.[9] 당시 돈으로 50만원의 벌금이 규정되어 있었고, 소위 말하는 사회 유력층이 걸리면 신문에 이름이 공시 되었다.[10] 심지어 김영란 법을 비판하는 이들이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꺼내들은 논거가 바로 가정의례준칙이었을 정도이다. 시사저널 김영란법, ‘제2의 가정의례준칙’ 될까 우려, 식품산업과 김영란법, 법만능주의를 경계한다 [11] 앞 각주에서 김영란 법을 가정의례준칙법으로 비유한 것과 반대로 2016년 당시 국가권익위원장이었던 성영훈은 김영란 법이 가정의례준칙법 처럼 사문화 되기를 바라는 입장도 있는 것 같지만 사회적으로 지지 받기 때문에 사문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을 정도이다.[12] 제사라서 뭐하면, 결혼으로 돌려봐도 된다. 예식이 너무 돈낭비에 호화스럽다고 결혼식을 하지 말고, 혼인신고만 하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다. 이 내용이 위에 언급되는 가정의례준칙의 발상이다.[13] 거의 매년 명절이 되면 차례상 상차림에 대한 신문 기사와 TV방송이 나온다.[14] 이 문서에 있는 표준 제사상은 성균관 내 연구소가 만든 이미지이다.[15] 물론 꼭 캠페인을 벌인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예시가 저출산문제. 하지만 저출산문제와는 달리 제사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으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캠페인 마저 없다는 점이다.[16] 이러한 갈등은 유신시대 이전에도 존재했을 정도로 오랜 갈등이다. 현실적 문제를 배재하더라도 종교적 자유의 침해를 근거로 제사에 대한 규제가 위헌판정을 받았듯 개인의 자유로 제사를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 인권의 측면에서 갈등을 빚는 요소다. 종교적 자유의 관점에서 보아도 개인이 한 국가의 관례나 도덕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문제가 되는 사안이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