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말레이시아인

 

1. 개요
2. 역사
3. 언어와 종교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Malaysian Chinese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말레이시아의 주요 민족이자 화교이다. 말레이시아에선 원주민인 말레이인, 남인도 타밀인 혈통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과 함께 세력이 강한 편이다. 이들은 무려 말레이시아 인구의 22%를 차지한다.[1]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쿠알라룸푸르, 이포, 페낭에 많이 거주한다. 그 중 쿠알라룸푸르와 이포에는 광동계 및 객가인, 조주계, 페낭에는 복건계가 많이 거주한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와 다른 나라지만 싱가포르 역시 복건계가 주류이다. 그리고 동말레이시아의 쿠칭사라왁 등에도 중국계가 꽤 있으며 다수는 아니더라도 이곳 저곳에 중국계가 흩어져 있다.

2. 역사


말레이이시아 내의 중국인 공동체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명나라때부터 말레이 반도와 주변 섬들로 주로 푸젠성 출신 중국인들이 이주했다. 이들은 툭하면 푸젠 연안에서 약탈을 벌이는 왜구를 피하여, 그리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흉년을 피하여 남하했다. 이후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 명나라를 이은 남명에 충성하던 남방 푸젠인들과 객가인들이 만주족청나라가 남하해가자 만주족몽골족을 피해 베트남, 태국, 미얀마, 필리핀 등지로 흩어졌고, 개중에 말레이 반도 일대로 이주한 사람도 있었다.
이후 19세기노예 무역이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말레이 반도영국의 지배를 받은 뒤에 주석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이 필요해진데다가 아편전쟁에서 청을 떡실신시킨 영국이 말레이 반도 내 주석광산 노동력을 중국인 저임금 미숙련공인 쿨리들을 이민으로 받아 채우기로 하자 현재의 말레이시아인 말레이 반도와 부속도서인 싱가포르, 페낭, 사바 일대로 중국인들이 많이 이주했다.
1940년대에 영국령 말레이 반도 식민지가 태평양 전쟁 연간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 이 곳을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계 커뮤니티를 탄압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화교 학살도 벌어졌으며 위안부로 끌려간 화교 여성들도 많았다. 현재야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고 일본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겉으로 반감이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중국계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교과서에선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소개하며 날을 세운다. 일본이 말레이 반도 화교들을 탄압한 이유는 중일전쟁으로 적성국가가 된 중화민국과 이들 화교들이 교역했기 때문으로 화교들을 잠재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학살하고 괴롭힌 것이었다. 그러다가 1945년 원자폭탄 2방에 일본이 나가 떨어지면서 영국군이 말레이 식민지를 탈환, 수복하면서 일본군은 전원 쫓겨났고 화교들 역시 탄압에서 벗어났다. 해방된 후 말레이 반도는 다시 영국령으로 반환되었다.
이후 1959년 말레이 연방이 영국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내에서 말레이계와 화교간의 갈등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결국 1965년 다시 말레이 연방에서 중국계가 많은 싱가포르가 등 떠밀려 독립했고 1969년에 말레이시아에서는 반화교 폭동까지 일어났다. 이는 말레이계가 중국계에게 경제력에서 뒤쳐지던 상황에서 야당이 총선에서 선전하자 화교들이 정치권까지 장악하는거 아니냐는 공포에서 나온것으로 이때문에 이 시절에 말레이시아 내의 중국계 커뮤니티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부미푸트라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한 이래로 중국계의 경제적 기득권을 인정하는 대신 말레이인이 경제권의 일부를 나눠가지는 식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고, 중국계는 경제, 말레이계는 정치, 인도계는 군대 및 경찰 등으로 각각 영역을 나누게 되어 현재는 좀 나아졌다.
물론 그와 별개로 말레이계와 중국계는 감정이 좋지 않으며 이는 인도계와 말레이계도 마찬가지다.

3. 언어와 종교


말레이시아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자신들끼리는 표준중국어를 공용하는데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섞였기 때문이다. 공용어로 쓰는 영어, 국어인 마인어, 중국계 간 통용어인 표준중국어에 더하여 자신들끼리 가정에서 모어로 쓰는 광동어, 민남어, 치우차우, 객가어 등 각종 중국어 방언까지 여러 언어를 쓴다.
가정에서는 여러 중국어 방언을 사용한다. 광동어, 민남어, 치우차우, 객가어, 하이난어 등 중국 남부의 방언을 자주 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푸젠성 출신들이 제일 많아 민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포와 페낭에서는 특히 민난어를 많이 쓴다. 쿠알라룸푸르에는 광동성 출신들도 많아 광동어도 자주 쓰이며 조호르 주에서는 객가인 혈통이 많아 객가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 외 광동성 동부 차오저우 출신들도 꽤 있다. 이들은 치우차우라고 불리며 타 중국인들과 구별되는 부분이 많다.[2]
말레이시아의 중국계는 성씨로 출신지를 대충 알 수 있는데 오(吳)씨를 Ng라고 표기하면 광동계, Koh라고 표기하면 푸젠계이고 진(陳)씨를 Chan으로 표기하면 광동계, Chin으로 표기하면 차오저우계, 그리고 Tan으로 표기하면 푸젠계이다. 임(林)씨의 경우 광동계는 Lam, 푸젠계는 Lim으로 표기한다. 더 알고 싶다면 영문 위키백과의 이 문서를 참고.
그 외에도 말레이시아 내 중국인들 간에 의사소통을 위해 표준중국어가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표준중국어를 모르는 경우에는 국가 공용어인 영어도 의사소통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그리고 마인어가 국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도 대부분 마인어를 할 줄 안다. 그 외에도 말레이어와 중국어가 혼합된 바바 말레이어라는 언어도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집 밖을 나오면 중국계끼리는 보통화, 타 인종이나 외국인과는 영어, 말레이계와는 마인어를 쓴다고 보면 편하다.
대부분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를 믿지만, 일부는 이슬람교를 믿는다.[3][4] 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 중에는 기독교를 믿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5] 기독교를 믿는 중국인들은 대게 개신교 신자들로 영국 영향으로 성공회 신자가 많다.

4. 기타


싱가포르는 화교가 다수를 차지하는데다가 같은 푸젠성이라는 지역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싱가포르와 교류가 많은 편이다. 애초 원래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같은 나라였다가 떨어져 나갔을 뿐이며 지금도 조호르 주는 마치 싱가포르의 위성도시인 양 되어 있는지라 교류가 많은 게 당연하다. 특히 조호르바루-싱가포르 북부 간 국경지대는 통근/통학하는 사람 수가 많으며 싱가포르 내 호텔이 숙박이 힘들면 차선책으로 조호르바루로 가서 숙박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역시 푸젠성에서 떨어져 나간 푸젠 문화권 대만과의 교류도 많이 있다. 이들 모두 민남어를 쓰는 호키엔(Hokkien)이라 불리는 푸젠성 문화권이라 공통점이 아주 많다.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걸그룹 아모이 아모이(Amoy Amoy)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멤버는 물론 대만인 멤버도 섞여 있고 아모이(Amoy)는 푸젠성의 최대도시 샤먼시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홍콩, 마카오광동성에 속했다 영국, 포르투갈에 지배를 받아 떨어져 나간 광동 문화권으로 푸젠 문화권과는 이질적이라 조금 거리감을 느끼는 편이다. 언어부터 말레이시아 중국계 사회에서 쓰는 민남어는 홍콩 및 마카오에서 쓰는 광동어와 완전히 다른 말이다. 그러나 홍콩에서도 푸젠 출신들이 꽤 많은데다 홍콩에서는 객가인 혈통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국제도시 홍콩의 메리트에 끌려 해외취업하러 말레이시아에서 홍콩으로 오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수도 많다.
중국 대륙 즉 중국본토와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경제적으로는 교류가 활발한데 특히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푸젠성과 교류가 많으며 샤먼시에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세운 기업들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상하이 금융가에서 일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도 많다. 이들은 표준중국어를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국에서 이런저런 이점이 많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자체가 워낙 대만과 친한 편이라 중화민국을 정통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는 아직 거리감을 많이 느끼며 특히 시진핑 집권 후 막무가내식 외교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반중 감정을 갖고 못 마땅해하는 사람도 많아 중국을 그닥 친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은 싱가포르의 중국계 싱가포르인과도 같다. 특히 대만과의 관계 덕분에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보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까지 비정통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말레이시아도 한류가 유행하지만 그 정도는 주변국인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일본 등에 비하면 덜하며 중국계 중에서 생각보다 혐한 성향의 인물들도 있다. 중국계는 오랜시간동안 부미푸트라 체제에서 2등 국민으로 취급받았으며 경제에 대한 기여도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단 피해의식이 아주 강하지만 문제는 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흑화되어 말레이인들이랑 다를게 없을 정도로 외국인에게 배타성을 보인다. 이는 중국 대륙 출신 중국 본토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극렬한 혐중으로 표출되어 대륙인을 혐오하고 싸잡아 욕하게 되며 아예 외국인인 한국인와 일본인에게는 더하다. 나미위 같은 혐한 인종차별주의자가 나오기도 하고 중국계가 대부분인 페낭에서는 림관엥이라는 제노포비아 성향의 우익 정치인이 인기인 것을 봐도 중국계의 피해의식과 배타성이 심한 걸 알 수 있다.

5. 관련 문서



[1] 사실 원래는 34%에 달했으나 말레이시아 내에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가 까다롭고, 임금수준도 싱가포르에 비하면 크게 낮기때문에 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이 많다보니 인구 비율이 줄었다.[2] 조주계는 보통 민남어와 같은 민 방언 계열로 간주된다.[3] 이슬람교로 개종한 중국계 인구는 4만여 명 이상으로 이 중 후이족 인구는 2천여 명 정도로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 무슬림들은 말레이인들과 같은 종파의 순니파 샤피이파 이슬람교를 믿음에도 혈통을 강조하는 부미푸트라 정책에 의해 차별을 받고 있다.[4] 말레이시아내에도 바바(남)/뇨냐(여)로 불리는 중국계+말레이계 혼혈인들인 프라나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이 페라나칸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비중이 있다. 이런 경우 통계가 말레이인으로 잡혀서 그렇지 이슬람으로 개종한 프라나칸 인구까지 치면 중국계 말레이시아 무슬림 인구도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5] 싱가포르도 기독교를 믿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