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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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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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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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 독립주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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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 주의 지도
Sarawak Bumi Kenyalang

'''Bersatu, Berusaha, Berbakti'''

'''(단결, 노력, 충성)'''

말레이시아의 12번째 주이자 '''가장 큰 주.'''
별칭은 "Bumi Kenyalang"으로 "코뿔새의 땅".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분리주의
5. 사회
5.1. 종교
6. 교통
7. 출신 인물


1. 개요


정식 명칭은 없지만 대게 별칭인 "Bumi Kenyalang"으로 통칭된다. 이름인 "Sarawak"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안티몬을 뜻하는 현지 말레이어 방언인 "serawak"에서 왔다는 설이 첫 번째. 또다른 설로는 1841년 영국제임스 브룩이 이곳을 차지한 뒤로 원래의 주인이었던 브루나이의 술탄이 "그대에게 바친다"는 뜻의 "Saya serah pada awak"에서 왔다는 게 두 번째.[1]
면적은 124,450㎢로 북한과 비슷한 크기. 일부 한국인들은 종종 제주도와 비교하긴 하지만 그러기에는 크기가 너무 큰게 안습. 다만 현지 방언은 제주 방언만큼이나 어려워서 아예 다른 언어로 봐도 무관할 정도이니 뭐 틀린 말이라 할 순 없다.

2. 역사


사실 사라왁은 1841년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들어오기 전까지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토였다. 바다에 인접한 쿠칭 일대만이 16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되어 "Cerava"로 알려졌다.[2]
그러던 1830년대 후반 영국제임스 브룩이 이 곳에 들어와 지리적 이점을 노렸고, 이곳에서 판치던 해적들을 물리친 공로로 1841년 브루나이 술탄이 그에게 이 곳을 양도하여, 사라왁 왕국이 건국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사라왁 왕국은 당시 아시아에서 유례없는 백인 왕조였는데 어떻게 보면 영국의 괴뢰국이라 봐도 무관했다. 이후 브룩은 점점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역을 먹어가더니 마침내 림방 지역을 먹음으로서 지금의 영역을 확립하였고 브루나이를 두동강 내버렸다.[3]
마침내 영국은 1880년대부터 지금의 동말레이시아 지역들과 브루나이를 완전한 영국령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사라왁도 예외는 아니라서 1888년 완전히 영국에 편입된다. 그 후 영국의 치하에서 영국의 문물과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홍콩처럼 국제적인 무역지대로 떠오르는 데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점령했으나 1945년 일제의 패배과 함께 독립했으나 이듬해 영국이 다시 점령한다.
1946년 사라왁 왕령식민지가 설치되어 영국의 식민지로 다시 전환되었으나 말라야 연합에는 편입되지 않았다. 1948년 새로 신설된 말라야 연방에도 편입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때문에 1963년 7월 22일 독립을 쟁취했으나 연방편입을 위한 임시적 독립이었으며 남은 2개월 동안은 사실상 영국의 괴뢰정권이었다. 8월 31일 말라야의 독립 기념일에 맞춰 말레이시아의 신설이 확정되어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일로 인해 9월 16일에 성사되었다. 드디어 영국은 완전히 철수하였고 어느 정도 해방을 달성했다.
일본나리타시 일대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비슷한 시기 공산주의 운동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1970년 취임한 총리 압둘 라흐만 야쿱은 공산주의자 척결을 시도했는데 문제는 이를 빌미로 이슬람화를 종용한 게 주민들하고 충돌이 빚어져 다소 안 좋은 이미지로 찍혔다.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배신하고 탄압하는 독재정치를 펼쳤고 본토의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진입과 일당독재를 구축하려 하였기 때문.
1981년 야쿱은 11년의 통치를 마치고 조카인 압둘 타입 마흐무드에게 총리직을 물려준다. 그리고 33년 장기독재의 시기가 열렸지만 상대적으로 삼촌에 비해 주민들의 자치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독립요구를 받아주거나 자치확대를 전반적으로 시행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1990년 공산주의자들과의 평화협정이 있었지만 소련의 붕괴로 좌익들은 꼼짝없이 벙어리가 된다. 타입은 이를 빌미로 정권을 연장하였는데 말레이시아의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유례없는 33년의 장기집권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2014년 총독으로 임명되어 직은 소멸되었고, 아데난 사템이 새 총리가 되면서 종식을 맞이했다고.

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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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로 변한 사라왁 원내정당들의 변화를 보여준 그림. 보면 알겠지만 정작 본토의 여당이 없는데 다소 주민들의 반감이 걸려 문제가 된 것 같다. 천하의 개쌍놈 압둘 라흐만 야쿱이 집권하던 시기 UMNO의 진입이 계획되었으나 결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언제 또 전투종족이 되어 난리필 지 모르기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본토의 정당들 중 진입한 정당들은 민주행동당(DAP)이나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과 같은 야당들.[4] 이들은 1978년부터 진입하기 시작했는데 다소 현지 주민들을 배려하는 쪽이긴 해서 그런지 반발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주민들을 대변하는 지역 정당들은 죄다 본토의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 소속이거나 아니면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5]인데 때문에 독립이란 희망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1970년대 전후로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지금은 많이 수그러든 상태. 게다가 인도네시아와의 분쟁 등으로 안보 문제가 다소 결여되어 있어 여당에 대한 지지가 갈수록 세지고 있는 상황.
물론 옛 술루왕국의 고토를 주장하는 1급 반국가세력이 있는 사바에 비하면 다소 안전하지만 일단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관계가 얼마나 안 좋은지를 보면 그래도 맘 편하지는 못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중국러시아와 같은 위치이기 때문에 좀 불안한 건 마찬가지.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안보 문제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고, 본토에 비해서는 그래도 훨씬 심한 편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여당을 지지하는 게 안전하다는 입장.

4. 분리주의


'''말레이시아에서 사바랑 더불어 분리주의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6]
'''사라왁, 사바 소위 동말레이시아는 애초부터 말레이시아 본토인 서말레이시아랑 일절 관련도 없는 걍 딴 동네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독립열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반군들이 결성되고 몇 차례 독립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죄다 실패했다.
1957년 말라야 연방은 먼저 독립을 쟁취했으나 자력강생이 불가능한 관계로 영토 확장을 시도한다. 처음에는 브루나이와 싱가포르가 관심을 가졌으나 이 중 브루나이는 중도 철회하였고 점진적인 자치화와 함께 1984년 별도의 국가로 독립한다. 당초 사라왁은 별 관심은 없었고 브루나이와 북보르네오(오늘날의 사바)와 함께 통일을 시도했으나 좌익세력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그러나 독립 열기가 고조되자 독립의 지도자였던 스테픈 칼롱 닝칸은 "일단 그쪽 동네에 몸 좀 맡겨두자"며 말라야로의 편입을 결정하고 주민투표 결과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입이 확정된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극단적 독립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도네시아가 심심찮게 노리다가 1964년 침공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전쟁을 일으키는 등 안보 문제에서 최접전 지역이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1965년 싱가포르가 말라야 연방에서 쫓겨난 뒤로 불거졌다. 사실 사라왁은 싱가포르의 권유로 가입했는데 정작 주동자가 탈퇴했으니(...) 본인들도 탈퇴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화교 위주의 인구 구성 때문에 이미 연방 경제를 화교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싱가포르까지 포용하면 싱가포르의 화교계에게 연방의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연방정부가 강제로 축출해 독립했지, 사라왁은 같은 말레이계에 풍부한 자원 때문인지 독립이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의 침공 등 안보 문제가 걸렸고 본인들도 자력강생이 쉽다고 판단하지 못했으니 연방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흑역사가 시작되는데, 1973년 동말레이시아에서도 연방정부 주도의 "말레이화"가 진행되었고 기독교를 믿는 다수 주민들은 말레이 본토의 이슬람으로의 개종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개종했으나 후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혼혈을 강요하고 주민들을 협박 탄압했다는 얘기 등이 나와, 강간 살인이 난무하는 등 일종의 국가폭력이 시행되었다.''' 게다가 주민 정서 자체가 본토(말라야)와는 맞지가 않아 심심찮게 충돌이 빚어졌는데 '''이미 자치는 소멸되었다.'''
그래도 보면 연방정부에서 그나마 특별대우를 가장 많이 해 주는 곳이 사라왁이고, 중국홍콩처럼 본토의 간섭이 가장 덜한 곳이 바로 사라왁이다. 물론 완전한 시행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치를 가장 많이 보장받으니 굳이 독립을 외쳤다가 코로 사라왁 콜로 국수를 흡입할 짓을 할 필요가 없다. 헌법도 본토의 연방헌법과 다소 분리되어 있고, 심지어 본토와는 엄연히 입출경 심사를 하고 본토인이라도 이 지역에서 깽판을 치면 영구적으로 추방시킬 수 있다. 일례로 야당 정치인 테오니칭이 사라왁으로의 입경이 금지된 바가 있다. 그리고 본토인도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받으며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입국 시 90일 무비자가 찍힌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영주권이 있으며 5년 이상 거주하면 주어지는데 사라왁 주민들은 말레이시아 국적과 함께 영주권이 있다. 만약에 본토인이 사라왁에서 영원히 살고 싶거든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
이웃한 사바 주와는 독립/자치 문제로 다소 친한 편이지만 사라왁이 유독 고집이 센 편이라 그런지, 이민 문제는 사바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라왁인에게는 특별히 영주권을 자동적으로 주는 사바 주와는 천지차이. 그렇지만 사라왁에서도 사바인은 본토인과는 다르게 보긴 하고, 본토인에 비하면 좀 더 잘 해주는 편.
사라왁은 샤리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주이다. 무슬림이라고 별도의 종교법을 적용하지는 않고, 배교자 처벌도 없다. 이러한 점들을 모아볼 때는 그래도 연방정부가 특별히 대해주는 지역이긴 하니 굳이 독립을 외칠 필요도 없는 듯. 이웃한 사바는 이미 자치가 많이 소멸되어 UMNO가 통치하고 샤리아가 무슬림들을 관리하는 사회가 되었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사라왁이 유독 특별하긴 하다.

5. 사회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본토나 사바와는 다르게 한국인들이 그렇게 찾는 지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유학으로 오게된다면 권장할만한 곳이다. 영어공용어로 사용하는 유일한 주이기 때문. 사라왁인들은 말레이어보다 영어 사용을 더 선호하며, 1973년 이전까지는 영어가 공용어였다. 그 후 말레이화의 일원으로 공용어 지위를 박탈당했으나, 2015년 다시 공용어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라왁에 거주하는 말레이인은 약 20%정도로 사바에 비해서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 별 존재감이 없다. 참고로 이쪽 말레이인은 본토와는 다르게 브루나이칼리만탄 계열인데 '쿠칭'에서 '시부' 일대는 칼리만탄계, '빈툴루'에서 '라와스'까지는 브루나이계가 주를 이룬다. 그 중 브루나이 사이에 끼어있는 '림방'은 또 하나의 브루나이라 봐도 무관하다.
주민의 약 28%는 중국인으로, 원주민인 이반족(31%)에 비해 수적으로는 적지만 이들이 사라왁에 끼친 문화적 영향은 엄청나다. 대표적인 예가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사라왁 콜로 국수. 그리고 소수 불교도와 중국계 종교들 신도들의 수를 합할 경우 약 20% 정도인데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현대에 와서 고유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는 것은 원주민이다. 가장 큰 집단은 이반족으로 전체 인구의 31%를 차지고 있으며, 그외에도 소수민족으로 떨어진 믈라나우족과 비다유족, 오랑울루족 등이 존재한다. 원래 이들은 각각 고유어를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자원이 많기 때문에 독립분자들은 "만약에 우리가 독립국가였으면 세계적인 장소가 되었을 것"이라고 운운하나, 설상 독립국가였더라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일단 사라왁 영토의 대부분은 밀림에다가 은근히 산지가 많다. 물론 쿠알라룸푸르와 그 위성도시들 역시 정글투성이의 허허벌판에 지어졌었지만 그래도 강이 끼어있어 지리적으로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내륙에 있으면서 바로 옆에 인도네시아가 접해 있어 경쟁력에 있어서 불리한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면 본토에서 가장 부유한 주인 슬랑오르나 그 외 본토의 타 지역들보다도 더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본토인들의 반감을 불러올 수도 있고, 본토인들을 가장 예뻐하는 연방정부가 이 곳의 급격한 성장을 바랄 리가 없다. 최근에는 사라왁 출신들도 많이 본토 내각에 진출하는 등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이렇게 발전할 경우 홍콩이나 카탈루냐처럼 독립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화 요구나 독립 요구와 같은 반정부 운동은 사회가 발전할 때 더 심하게 나타나는 법이라,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사라왁이 슬랑오르나 조호르 등 본토의 주요지역을 제치고 뜨는 것을 다소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환경보호"를 핑계로 개발을 막고 있긴 하지만... [7] 이미 본토는 정글투성이의 허허벌판들을 다 밀어내고 만든 것이라 원래 서식하고 있던 동식물들이 어마어마하게 멸종되거나 쫓겨났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모순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사라왁 주 최대 도시인 쿠칭에는 호주의 스윈번(Swinburne) 대학교 분교가 있으며, 국립대학인 University of Malaysia, Sarawak 가 있어서 가성비 좋은 유학을 원한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브루나이와 인접한 미리에는 호주의 대학교인 커틴 대학교의 분교가 있고, 시부에는 비록 주정부 차원이지만 사립 대학교인 사라왁기술대학교(UCTS)가 생기면서 대표적인 유학의 장소로 뜨고 있다. [8]
여담으로 북한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고. 조선로동당과 사라왁 주 정부가 일종의 협약을 맺어서, 사라왁의 탄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줬다.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으니 다름아닌 사상전파를 하지는 마라(...) 물론 이것도 오해전 얘기고 전세계적으로 북한에 대한 재제가 한창인 현재에 와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다.

5.1. 종교


또한 주민들의 42.6%가 기독교인으로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다수를 점하는 주이다. 사실 기독교를 상대적으로 더 믿는 중국인들의 비중은 풀라우피낭 주에 더 많지만 이 쪽은 중국인이 60%인 것 치고는 무슬림이 다수라고 한다. 그렇지만 무슬림도 32.2%로 무시할 수는 없다. 유일하게 샤리아를 적용받지는 않지만 무슬림들의 신앙심은 나름 철저하다.
헌데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주이고, 기독교 박해를 오랫동안 당해왔고 샤리아가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주이며, 정부의 악질적 강제개종정책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의 반이슬람감정들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다 보니, 샤를리 엡도처럼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일 등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라왁의 지역언론 '사라왁 트리뷴'이 한 번 무함마드를 풍자했다가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한번은 어느 기독교인 학생이 공립학교에 돼지고기 볶음밥을 들고 갔다가 교감에게 회초리를 맞았고, 사건에 대한 논의가 말레이 국회까지 번졌다.# 비무슬림에게는 돼지고기 금지가 적용되지 않고, 학생 어머니가 항의하자 교감이 사과했다고 한다.

6. 교통


말레이시아에서 공항이 가장 많은 주이다. 사실상 공항 천국인데 주도인 쿠칭에 최대 공항인 쿠칭 국제공항이 있고 인근의 시부빈툴루, 미리, 림방 등 지방공항들도 많다. 그것도 군용 비행장이 아닌 국제공항이나 민간공항이라는 점.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공항이 그만큼 많이 필요할 수밖에.[9]
물론 그 어떠한 공항도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등을 거쳐서 가야 한다. 하지만 국내선이 싼 법이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나 코타키나발루를 거쳐서 가는 것을 추천. 물론 이 것도 쿠칭을 말하는 것이고, 지방을 가려면 쿠칭에서 또 갈아타야 하니 참으로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참자. 몇 번 갈아타는 게 싫으면 쿠칭에서 나와서 차를 타고 갈 수는 있는데 그러나 림방은 가는 게 좀 그렇다. 왜냐하면 브루나이가 걸쳐져 있어, 아예 산길로 죽기 살기로 갈 게 아니면 차를 타고 가는 건 권하지 않는다. 만약에 브루나이를 거치게 된다면 되려 브루나이 당국에서 안 좋아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경로를 적자면 쿠칭이나 사마라한 일대를 갈 거라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나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을 거쳐 쿠칭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면 된다. 림방의 경우는 쿠칭 국제공항에서 림방 국제공항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7. 출신 인물


  • 가수 다양 누르파이자흐
  • 가수 하피즈 수입
  • 가수 막 루하유
  • 독재자 압둘 라흐만 야쿱
  • 독재자 압둘 타입 마흐무드
  • 정치인 아데난 사템
  • 독립운동가 스테픈 칼롱 닝칸
  • 영화감독 제임스 완 - 사라왁 주 쿠칭에서 태어났지만 호주로 이민을 가서 호주 국적이 있다.

[1] 하지만 첫 번째 설이 유력하고, 두 번째 설은 거의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awak이란 단어는 서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동말레이시아에서는 전혀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루나이에서는 애초부터 "awda"나 "kau"를 사용했고 사라왁인들은 "kitak"을 사용한다. 현대에는 서부 방언을 사용하는 매체의 영향으로 "awak"의 사용 비중이 다소 높아지고 있으나 반감 때문에 잘 받아들여지는 편은 아니라는 점. 게다가 당시에는 "awak"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한 적이 없어, 결코 두 번째 설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2] 어쩌면 이 "Cerava"가 "Sarawak"의 어원일 지도 모른다.[3] 림방이 사라왁으로 넘어간 후 브루나이가 두동강이 나면서 틈부롱 지역이 월경지가 되는 문제가 생겼다. 나중에 독립한 후 두 지역을 오가는 데 말레이시아를 거쳐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가 생겼으나 조만간 본토와 연결되는 다리가 생긴다고. 그러나 독립 후 림방 지역의 영유권 분쟁이 빚어졌으나 브루나이가 졌다.[4] 사실 PAS는 한때 여당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여당에서 쫓겨나 야당으로 전락.[5] 원래는 BN에 가입하려 했는데 거절당했다.[6] 이를 사라왁 사바 독립운동, 일명 동말레이시아 분리주의라고 불른다.[7] 사실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수도는 믈라카시조호르바루이다. 쿠알라룸푸르는 그냥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이었는데 과 같은 자원이 발견된 뒤 중국인 광부들이 대규모로 몰려들어와 탄광촌으로 뜨기 시작하면서 발전된 것. 그러다가 지리적 이점 등이 뜨면서 단순한 탄광촌에서 대도시이자 최대 도시로 떴다.[8] 사라왁의 최대 대학교이자 주립 대학교인 사라왁 말레이시아 대학교가 있는데 정작 쿠칭에 없고 대신 인근의 위성도시인 사마라한에 있다. 물론 여기에도 스다야국제대학교(UCSI)의 분교가 있지만 지방의 두 대학들만큼이나 뜰 수 있을 지는 미지수.[9] 본토에서 공항이 가장 많은 주는 슬랑오르크다이다. 그것도 각각 겨우 2개. 슬랑오르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수방 국제공항 2개, 크다에는 술탄 압둘 할림 공항랑카위 국제공항 2개. 하지만 사실상 슬랑오르는 1개, 아니면 없다 봐도 무관해서, 사실상은 크다 주라고 봐야 한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나 수방 국제공항이나 둘 다 사실은 쿠알라룸푸르에 중점을 둔 관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쿠알라룸푸르 내에도 하나 있는데 지금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