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내몽골 관계
[clearfix]
1. 개요
중국과 내몽골 자치구의 관계. 현재 내몽골 자치구는 중국의 영토이지만, 역사적으로 내몽골 자치구는 몽골 본토와 하나였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한나라 때는 흉노의 땅이었으며, 흉노의 후예로 추정되는 돌궐 역시 내몽골과 외몽골, 남시베리아, 북중국, 신강에 걸친 영역을 확보했다. 당나라 때 당태종의 북방 원정으로 중국에 귀속되어 기미주가 되었었으나 돌궐의 부활로 빼앗겨서 돌궐이 다시 차지했고, 다시 돌궐을 멸망시킨 위구르 제국이 차지했다.
원래 북만주에 살던 원시 몽골족인 몽올실위족이 초원으로 진출 한 후, 그들 중 한 씨족인 보르지긴 씨족에서 칭기즈 칸이라는 걸출한 전략가가 나와 몽골 부족을 통일하면서 몽골족이 생겼다. 이 몽골족은 나중에 북중국에서 금나라와 서하를 멸망시키고 몽골 제국을 세웠다.
북송 때는 서하, 요나라, 금나라가 있었다. 특히 요나라는 내몽골 남부 전체를 지배했으나 서하와 금나라는 일부를 지배하는 데 그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나라는 동남부의 츠펑 시 일대부터 서남부의 오르도스 동쪽까지 가졌고, 그 이후 오르도스 일대는 서하가, 내몽골의 동부 흥안성 일대(만주로도 간주)는 금나라가 가졌고 내몽골고원은 칭기즈 칸의 등장 이전까진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는 내분 상태다.
그러다 칭기즈 칸의 등장으로 각 부족이 통일되어 "몽골"이라는 문화적,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이 드디어 생겼다. '''칭기즈 칸 등장 이전의 몽골은 그저 수많은 부족 중 하나의 이름에 불과했으나 칭기즈 칸은 최초로 모든 유목민에게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것은 몽골대제국, 그리고 현대의 몽골로 이어진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 사후 후손들에 의해 나뉘어 지게 되고 그 중 하나인 원나라는 몽골과 중국을 가로 지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이후 원나라 시대를 거쳐 명나라 대에는 원나라는 100년 조금 못 가서 한족에게 밀려 몽골 고원으로 물러나 북원이라 칭했다. 한동안 내몽골 일대에는 북원과 몽골 칸국들이 일어나 명과 대치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시금 몽골 부족을 통일한 다얀 칸과 어느 정도 부흥기를 성립시킨 알탄 칸이 있다.
이후 내몽골지역은 차하르 부족이 계속 다스리다가, 1635년 만주족이 세운 후금에 릭단 칸의 아들 에제이가 항복해 이후 만주와 함께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일로 청나라의 황제는 원의 옥새를 얻어 몽골 제국 대칸의 권위를 이양 받았고 내몽골은 완전히 청의 일부가 된다. 이후 청은 만주족과 몽골족 연합제국의 형태로 가며 건륭제 때는 외몽골까지 평정한다. 청나라는 18세기에 건륭제 시기에 외몽골과 신강, 티베트에 걸쳐있던 준가르 제국을 없애버리고 이 지역들까지 정복해 버린다.
신해혁명 후 외몽골에서는 복드 칸이 독립을 선언했으나 내몽골은 독립에 호응하지 않고 중화민국에 잔류했다. 이에 외몽골 측이 내몽골을 복속하기 위해 침공을 감행했으나 위안스카이의 개입으로 패퇴했다. 북양정부는 내몽골의 왕공 제도를 인정하고 특수 행정구역을 두어 통치했다. 이후 들어선 국민정부는 내몽골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여 1928년 러허성(熱河省)과 차하얼성(察哈爾省), 쑤이위안성(綏遠省) 등의 행정구역을 두어 내몽골을 분리해 관리하였다. 내몽골은 장제스의 중앙정부를 지지하면서 자치권 확대를 도모했으나, 일본의 세력이 만몽에서 확장되면서 장제스보다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일본 측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 1936년 데므치그돈로브를 옹립한 관동군이 수동사변을 일으켜 내몽골 병탄을 시도했으나 푸쭤이의 반격에 격퇴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군에게 내몽골은 병합당하고 몽강국이 세워진다.
1945년 8월, 공산주의 몽골군과 소련군의 합동작전인 8월의 폭풍 작전으로 인해 소련군 플리예프 기병-기계화 집단이 내몽골 사막을 건너 쳐들어와 이미 미국에 의해 망해가던 일본제국이 세운 괴뢰국 몽강국은 멸망하였다. 당시 군비의 대부분을 해군력에만 쏟으며 미국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던 일본은 손쉽게 무너진다. 소련은 아예 내몽골을 몽골에 병합시키고 조만간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시키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철회하였다. 1945년 9월에는 내몽골 인민 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가 세워졌지만 몇 달 못가 중국 공산당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마오쩌둥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외몽골은 소련에 의해 독립되었고, 내몽골은 1947년 5월 1일 중국 공산당의 행정개혁으로 내몽골자치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유명한 인물은 몽골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 칸과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있다.
하지만 쿠빌라이 칸의 경우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면서 몽골의 전통을 벗어나 원조를 자처하면서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였고, 국자감 설립 및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유교적 국가체제를 설립했다. 여기에다 전왕조의 역사서인 송사와 금사, 요사를 집필하면서 중화왕조를 자처하였다.
2.2. 현대
20세기에 외몽골이 소련의 지원으로 몽골 인민 공화국이 된 반면, 내몽골 자치구는 계속 중국에 남게 되었다. 내몽골 자치구가 중국의 영토가 된 뒤부터는 몽골 본토와는 달라졌지만, 201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다.
2010년대부터 중국 공산당이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몽골족들은 중국 공산당에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9월부터 내몽골 자치구에서 중국어 교육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몽골족들은 반발했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민족 교육을 문제삼아 역사 교과서까지 퇴출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3. 문화
내몽골 자치구는 몽골 본토와 달리 몽골어를 표기할 때 몽골 문자를 사용한다. 다만, 중국 정부가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들을 탄압하면서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들은 반발하고 있고 몽골 본토에서도 중국 정부에 반감을 가진 경우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