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중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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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중국'''
1. 개요
2. 역사적 관계
3. 대사관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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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중국의 관계. 몽골과 중국은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역사적으로 중국과 몽골 두 나라는 농경민과 유목민족의 싸움이다 보니 둘의 관계가 예전부터 안 좋았다. 중국에서 오랑캐라고 멸시하듯 몽골도 중국인을 "호자"(хужаа)라고 부르며 멸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몽골의 반중의식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한족에 대해 크게 경계심을 가지게 된 근현대에 이르러서이다.
중국은 내몽골몽골인이 외몽골의 몽골인보다 더 많다는 사실에 힘입어 내몽골자치구에다가 칭기즈 칸중국인이라면서 무덤이나 여러 가지를 세워두어 몽골국 몽골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물론 사서에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무덤을 내몽골에 조성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중국이 내몽골에 저런 일을 하는 것은 몽골을 중화민족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칭기즈 칸은 오논 강 유역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가 있던 보르지긴 씨족조차 본래는 이 지역에서 살았던 부족이다. 또한 원조 성립 이전의 몽골 제국의 수도는 카라코룸인데, 이 카라코룸은 현재 외몽골의 한가운데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르콘 강 유역에 있고, 알다시피 오르콘 강 유역은 셀렝게 강의 지류이며 몽골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이다. 상식적으로 몽골제국 성립 당시에는 서하, 금나라와의 접경지였던 내몽골인데 칭기즈 칸이 전투를 벌였던 곳 같은 장소라면 몰라도 무덤을 내몽골에 갖다 놓는 건 말이 안된다.
물론 몽골 제국 당시 만주에서 부랴트에 이르는 광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닌 이들이 몽골 키야트 부족이며 이들은 만주와 부랴트를 다 "몽골"로 인식했다. 중국의 주장대로면 러시아의 부랴트도 중화세계의 일부여야 하는데 너무 무리수이다.
게다가 생애 대부분을 몽골 스텝지대와 중앙아시아의 원정길에서 보낸 칭기즈 칸이 '중화천하'라든지 '하나의 중국'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현대 중국 내셔널리즘의 필요에 따른 억지 주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중국식 칭제건원을 한 일도 없고, 중국의 제도와 문명을 따르긴 커녕 파괴할 생각이나 했으며 유목민의 삶만 고집하던 사람이 무슨 중화영웅이 된단 말인가. 이건 그야말로 러시아 사람이 "러시아의 동진은 몽골제국을 계승해 유라시아 통합을 도모한 것이었고 칭기즈 칸은 유라시아 연합의 초석을 놓았다"고 주장할 경우와 비슷한 수준의 어거지이다.
그리고 차하르 부족의 지배집단이 칭기즈 칸의 후손인건 맞지만, 칭기즈 칸이 생전에 활동하던 지역은 지금의 내몽골이 아니라 오논 강 유역과 카라코룸이 있는 '''외몽골'''이 맞으며 내몽골에 그의 무덤을 조성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이건 내몽골인이 칭기즈 칸의 후손이고 외몽골은 내몽골인보다는 거리가 있는 부족이라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며 중국이 그냥 기념을 위해 혹은 내몽골에 진짜 유적지가 있어서 저러는 건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계 국가인 고구려발해의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속지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중국이 이런 문제에서 오히려 내몽골의 자하르부가 칭기즈 칸의 후손이니 이곳에 칭기즈 칸의 무덤을 조성한다는 건 전형적인 이중잣대 해석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영토 내몽골이라는 속지주의적인 관점을 완전히 버려도 내몽골인의 혈통 드립치며 칭기즈 칸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도 실질적으론 개드립에 가깝다. 현대적인 의미의 몽골족과 엄연히 구분되는 오이라트인이 외몽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근대 이전의 이야기이며, 실질적으로 현대 몽골 공화국에서 오이라트인은 절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현 외몽골인들의 대부분은 북원 멸망 이후 칭기즈 칸의 후손인 다얀 칸의 시대에 다시 재통합된 동몽골이 나중에 다얀의 후손 보얀 칸의 시대인 16세기 말에 다시 둘로 분열되며, 이게 얼마 안 있어 이들을 차례로 복속시킨 청에 의해 고정되면서 현대의 내/외몽골이 완성된 것이다.# 한 마디로 외몽골인이나 내몽골인이나 소위 '혈통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게 그거다. 그러므로 중국의 주장은 내몽골을 토대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중 중국에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몽골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 역사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중국 극우들이 주장하는 소리는 중국 내부에서도 당연히 말이 많으며, 의식 있는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원나라는 몰라도 칭기스 칸이 어떻게 중국의 역사냐고 말하면서 이런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몽골-중국 간 갈등의 기원을 찾자면, 멀리는 원대, 일단 청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몽골은 중원, 티베트, 위구르 지역과 함께 청에 속해 있었다. 다만 청은 중원의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통치하는 국가였고 오히려 후금시절 '''만몽 연합정권의 성격을 가지고 중국을 다시 정복'''했으며, 청은 주변부 지역들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원과 남부에서는 명나라를 계승한 중국의 천자를 칭하고, 북방에서는 몽골 제국을 계승한 칸이 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왕조였다. 티베트는 스승의 민족으로 존중해 주었고, 위구르는 식민지 취급, 만주는 성지 취급하여 만주족 외의 민족은 출입금지, 몽골은 일찍 복속된 내몽골과 후에 정복된 외몽골을 따로 취급, 분리했고 칭기즈 칸의 성씨를 계승하는 내몽골의 보르지긴 황족과 만주의 황족은 정략 결혼을 했으며 청의 황제는 칸위를 겸했다. 더군다나 '''당시 청나라와 호흡을 같이한 몽골은 내몽골'''이지 현대 몽골국인 외몽골이 아니다. 반면 외몽골은 준가르부를 정복한 건륭제 때에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복속시켰고 그나마 반 독립지나 다름 없었다.
그 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두 나라 모두 제2세계 국가에 속하게 되었고, 그 후 1950년 현재의 국경선을 확정하고 중국 정부가 몽골인민공화국을 공식 인정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는 듯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나빠진 가운데 몽골이 소련의 편을 들면서 다시 다시 사이가 틀어졌다.

2.2. 20세기


한족의 독립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외몽골 역시 독립을 선언하지만, 중국은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청나라와 그 소속부 지역, 민족들의 관계에 대해 서구속령의 개념으로 이해, 도입하였다. 구 청나라의 모든 영토와 민족에 대한 지배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 위구르, 티베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 사회에서도 이를 승인하여 몽골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소련이 몽골의 독립을 도왔으며 중화민국과 전쟁을 치르던 중국공산당을 지원하는 대가로 외몽골의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다. '''소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독립국 몽골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 역시 과거에 워낙 몽골에게 당했던지라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여기서는 반대로 대한족주의자들의 몽골인 폭행도 일어난다. 일단은 청나라의 영토를 운운하지만, 민족감정을 들여다보면 대놓고 '중화민국은 최초로 만주고 몽골이고 뭐고 북방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한족이다' 라며 뭔가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중국이 몽골을 지배하는 것을 복수 정도로 여기는 듯. 이따금 몽골인과 중국인 키배를 보면 매우 살벌하다... 어쨌든 수틀릴 대로 수틀린 골이 깊은 관계다.

2.3. 21세기


현재까지도 은연 중에 중국이 가하는 압박이 많은 탓에, 몽골인은 중국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몽골의 중국 항구 이용 불허. 내륙국인 몽골은 자원을 수출하려면 천상 타국의 항구를 이용해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중국은 반중 감정을 가진 몽골을 좋아할리가 없어 몽골의 이러한 항구 이용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문제는 몽골에 그나마 우호적인 러시아는 이미 극동 항구가 포화 상태이다. 그래서 라선북한의 항구를 개발하려 기를 쓰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몽골은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워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식량의 양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만리장성이 생긴 이유 역시 만리장성 이북은 농업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토지와 기후를 가진 땅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넘어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제 문제 또한 존재한다.[1] 특히 몽골의 무역 상대국을 보면 몽골의 수입의 39.9%, '''수출의 8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일 정도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항구의 경우 홍콩에서 항구를 쓰도록 해 줘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울란바토르-홍콩 간 화물기 및 중국을 종단하는 국제 화물철로로 다시 운송한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하자 중국측은 반발하며 2016년 12월 1일부터 몽골에 대한 화물비 징수를 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게다가 몽골의 광산전기공급도 차단시키는 등 여러 가지로 보복에 나섰고 몽골은 이로 인한 타격을 입었다.# 결국 백기를 들었고,# 방중한 몽골 외무장관은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혀 중국도 제재를 해제하면서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한족계라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 다른 국가의 한족의 경우 중국과 달리 마찰도 없고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 그렇게 사이가 나쁘진 않다. 몽골인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건 직접 맞닿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족들이다.
오히려 몽골인들 일부는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싱가포르는 민족만 한족계이지 말레이시아의 영향으로 말레이어가 국어이고 영국의 영향으로 영국식 영어를 쓰며 중국대륙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해서 되려 이국적인 관광지로 울란바토르를 자주 찾는다.
정리하자면 적어도 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만한테 하듯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몽골에게는 합병 의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민족과 언어가 다른 것도 있고 몽골 위쪽에 만만치 않은 러시아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듯. 만약 예전에 합병됐다면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와 합쳐져 위구르, 티베트와 비슷한 위치가 됐을 듯하다.
몽골이 중국에 양 3만마리를 지원하기로 하고, 중국은 양국간 물류 유통, 인원 왕래를 위한 신속통로 구축을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양 3만 마리중 약 4천마리를 몽골에서 중국으로 보내자 중국에서는 몽골에 감사를 표했다.#
몽골의 전직 대통령이 중국 정부가 내몽골에서 중국어 교육 정책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자 중국 정부는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칭기즈칸 전시회에 중국 정부가 칭기즈칸, 제국, 몽골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전시회 책자와 지도에 대한 편집권한을 요구했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전시회가 3년이상으로 연기되었다.#
중국은 호주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몽골로부터 석탄을 수입할려고 있지만, 품질, 비용 등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내몽골만큼은 아니지만 신장(신강) 북부, 과거 준가르 칸국이 있었던 중가리아에도 몽골인 자치현들이 있으며, 과거에 몽골의 영토이기도 했었고 주로 오이라트계 몽골인들이 거주한다. 그러다보니 중가리아 지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갈등이 있는 편이기도 하며, 주로 몽골 극우들이 이 문제를 많이 언급한다.

3. 대사관


몽골은 베이징에, 중국은 울란바토르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4. 관련 문서


[1] 무엇보다 국력에서부터 몽골은 중국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