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버틀러

 



'''2015년 NBA 올해의 기량발전상'''
고란 드라기치

'''지미 버틀러'''

C.J. 맥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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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히트 No.22'''
''' 지미 버틀러 3세 (Jimmy Butler III) '''
'''생년월일'''
1989년 9월 14일 (34세)
'''출신학교'''
마케트 대학교
'''신장'''
201cm (6' 7")
'''체중'''
104kg (230 lbs)
'''윙스팬'''
203cm (6' 8")
'''포지션'''
스몰 포워드, 슈팅 가드
'''후원사'''
리닝
'''드래프트'''
'''2011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30순위
시카고 불스 지명'''
'''소속팀'''
[image]''' 시카고 불스 (2011~2017)'''
[image]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017~2018)
[image]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018~2019)
[image] '''마이애미 히트 (2019~)'''
'''등번호'''
21번 (2011~2017)
23번 (2017~2019)
22번 (2019~)
'''계약'''
2019-20 ~ 2022-23 / $140,790,600
'''연봉'''
2019-20 / $32,742,000
'''수상내역'''
NBA 올스타 5회 (2015~2018, 2020)
올-NBA 서드 팀 3회 (2017~2018, 2020)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4회 (2014~2016, 2018)
NBA 올해의 기량발전상 (2015)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1. 개요
2. 불우했던 어린 시절
4. 플레이스타일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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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 마이애미 히트 소속의 스몰 포워드. 클러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리그 내 최고의 공수겸장 중 한 명으로 뽑히며, 뛰어난 리더십과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다. 19-20시즌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여 팀을 동부 5위로 이끌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 후 동부의 강호들을 차례대로 격파시켜 동부 지구를 점령하고 팀을 NBA 파이널에 진출시켰다.

2. 불우했던 어린 시절


과거사가 꽤나 불우한데, 아버지는 그가 아주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고, 13살일 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한다[1]. 졸지에 어린 나이에 홈리스가 되어버린 그는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거나 노숙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텍사스 주 톰볼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어느 날 농구부 연습이 끝나고 조던 레슬리라는 아이가 3점 슛 대결을 해보자고 하여 이에 응한 것을 계기로 그와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버틀러의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레슬리의 어머니인 미셸 램버트는 버틀러의 딱한 사정을 알고 그를 정식으로 입양하여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미셸 가족은 이미 아이가 많았고 주간 식비 지출이 400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라 부부가 투잡으로 맞벌이를 해야 할 만큼 빠듯한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가족은 지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지미 역시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 달라는 부모님의 당부를 충실히 이행했다고.[2]
생활이 안정되자 그의 기량도 급성장해 졸업반 때 농구부 주장을 맡아 평균 19.9득점 8.7리바운드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톰볼 고등학교는 AAU(전미 아마추어 농구 스포츠 총괄단체)의 회원이 아니었던 터라 유명 대학으로부터 스카웃을 받지 못하고 타일러 주니어 칼리지에 입학해 1년을 보내게 된다. 칼리지에서 맹활약하며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자 이번엔 많은 대학들에게서 스카웃 요청이 들어와 미셸 램버트가 추천한 마케트 대학교로 입학하게 된다. 농구선수로만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학업적으로도 훌륭한 대학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케트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를 신청하여 2011년 1라운드 30순위라는 비교적 낮은 순위로 시카고 불스의 지명을 받아 NBA 선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프로 진출 이후 대학시절 코치의 도움으로 자신을 버린 친모를 찾았으며 관계를 회복하고 모친에게 차량을 선물하는등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진짜 가족은 키워준 레슬리 가족이지만 친모가 자신을 버렸던 일도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해준 과정으로 여기기로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3. 선수 경력




4. 플레이스타일


NBA 입단 직후부터 수비만큼은 완성된 선수로 평가받았다. 에이스 스토퍼로 유명했는데 2013-14시즌에는 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르브론 제임스잘 막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확한 스틸 능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카와이 레너드와 더불어 현역 NBA 선수들 중 단 둘뿐인 '커리어 통산 파울보다 스틸이 더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2020 시즌까지 통산 경기당 턴오버 1.5, 스틸은 1.6이다.
특히 2015-16시즌 시카고 불스에서부터 2017-2018시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까지 상대적으로 열세인 전력의 팀으로도 항상 우승에 도전하던 르브론의 팀을 상대로 7연승을 기록, 이른바 르브론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또한 더마 드로잔이 있던 토론토 랩터스 상대 전적 11전 10승 1패, 앤서니 데이비스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상대 전적 12전 11승 1패 등 유난히 지미 버틀러 앞에서 작아지는 선수들이 있는 편.
체력도 매우 좋고 스텝을 이용한 로테이션도 뛰어나나 수비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윙스팬이 짧아[3] 슛 컨테스트 능력이 다른 A급 스윙맨 디펜더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대신 손이 굉장히 빨라서 포스트업이나 돌파하는 상대의 공을 툭 쳐내며 순식간에 달려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패스 루트를 읽는 눈도 탁월한 편인데 단순히 센스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매치업에 대해서 엄청나게 연구를 한다고 밝혔다. 신인 시절 자신이 수비 요원으로 NBA에 발탁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출전기회가 없을 때도 항상 비디오를 보며 패턴을 파악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한 개인 수비능력 뿐 아니라 미네소타로 이적한 뒤로는 아직 톰 티보도식의 수비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진두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 전술 이해도도 깊은 것을 알 수 있는 부분.
수비 외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내구성은 리그의 스타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낮은 편으로 잔부상을 달고 다니며 매 시즌 잔부상으로 결장을 하다보니 2016-17 시즌을 제외하면 70경기 이상 치른 시즌이 없다. 다만 이는 버틀러 본인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있은 것이, 부상 관리는 선수의 기본적인 덕목이 맞지만 데뷔 후 버틀러의 감독이었던 티보도와 호이버그가 출전 시간 관리와는 담을 쌓은 운영을 하는 바람에 혹사당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19시즌에서야 제대로 된 관리를 받으며 뛸 수 있게 되었다.
공격은 마이클 조던처럼 스윙맨으로서는 포스트업 플레이도 굉장히 능하며 페인트존에서 파울을 유도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아쉬운점이 있다면 3점슛 능력은 다소 아쉽다. 최근 리그의 트렌드 흐름에 따라 3점을 쏘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 버틀러는 3점을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성공률은 35%대로 약간은 아쉽지만 3점을 넣어야 할때 넣을수는 있는 선수. 그러나 최근 마이애미에서 3점 성공률이 20%대 까지 급락하면서 걱정을 샀지만 마이애미에는 3점에 강한 다른 선수들이 많아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또한 자신의 공격 스탯의 등락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승리에 기여하는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 단, 4쿼터 이후의 클러치 상황에서는 강한 집중력을 보이며 팬들이 기억할 만한 장면을 여럿 생산해내는 선수. 아무래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NBA를 대표하는 스윙맨이 된 이후로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여러모로 유니크한 선수.
공격 루트는 주로 미드레인지와 돌파인데 자유투를 얻는 능력이 엄청나다. 19-20 시즌에는 무려 평균 9개의 자유투를 경기에서 얻고있다. 공중에서 부딪혀도 파워로 버텨내고 밸런스를 유지하기 때문에 쉽게 앤드원을 얻어낸다.
전술했듯 클러치 상황에서 뛰어난 존재감을 보이는 선수다. 시카고 불스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시절부터 4쿼터 스탯이 좋기로 유명한 선수였고,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이적 후 이러한 모습이 더욱 부각되었다. 벤 시몬스, 토바이어스 해리스, 조엘 엠비드 등 볼 핸들링을 맡을 선수가 많은 필라델피아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전무한 경험으로 인해 아쉬운 경기력을 보이던 찰나 버틀러가 전면에 나서 팀을 이끌었고, 특히 토론토 랩터스와의 2라운드 시리즈에서 메인 볼 핸들러를 맡으며 카와이 레너드와 쇼다운을 벌이는 등 클러치 강자로서의 모습을 증명했다.
마이애미 히트 이적 후에는 실질적인 볼 핸들러로 나서고 있다. 마땅한 포인트가드가 없는 히트의 특성상 예견됐던 상황이기도 하다. 원래부터 볼 핸들링이 준수하고 시야가 괜찮은 선수다보니, 포인트가드 롤에도 부담없이 적응하고 있으며, 같은 팀의 고란 드라기치와 함께 포인트가드 롤을 담당하고 있다.[4]
이렇듯 전반적으로 3점을 제외하면 못하는게 없는 다재다능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공격에 기복이 있어 볼륨 스탯이 아쉬운 편인 것은 단점이다. 본인도 팀이 승리만 할 수 있다면 공격만 하든 수비만 하든 상관 안해서 스탯 쌓는 것엔 관심이 없기도 하고. 이 때문에 퍼스트급 선수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파이널에선 정규시즌보다 훨씬 좋은 스탯을 찍고 있으니..

5. 여담


  • 성격 자체는 겸손하고 점잖은 편이다. 사생활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팀 케미쪽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2018-19시즌 이후로는 팀 내 갈등 문제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으나 이전에 열심히 플레이하지 않는 동료들을 비난해서 2번이나 팀을 떠난 전력도 있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선수들과는 자주 부딪히지만 반대로 승부욕이 강한 선수들은 함께 뛰고 싶은 선수로 자주 버틀러를 거론한다.
  • 전형적인 올드스쿨 마인드를 지닌 선수로 유명하며,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같은 엄청난 워크에씩과 승부욕을 지닌 선수로 유명하다. 어느 장소, 어느 나라를 가던간에 매일 새벽 3시에 기상하여 2시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취침없이 오전까지 슈팅훈련과 테크닉 훈련을 하는 노력파이다.
  • 21세기에 활약한 슈퍼스타들이 빅3와 슈퍼팀을 결성하는 소위 비즈니스를 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농구만 묵묵히 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승권 팀과 거리가 먼 마이애미로 이적한 행보를 보인 것이 NBA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적 직전 필라델피아를 비롯하여 휴스턴, LA 레이커스, LA 클리퍼스 등 우승에 도전하는 여러 팀에서 카와이 레너드와 함께 최대의 관심을[5] 받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이애미 행을 선택했다.
  • 자신의 불우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자신은 이제 행복하며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미인 듯.
  • 와인 매니아 중 한 명으로 전용 와인 캐리어를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2010년산 사시카이아.
  • 컨트리 음악, 그 중에서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으로 경기 전/후에 종종 그녀의 노래를 최고 볼륨으로 틀어놓을 때가 있다. 이것 때문에 불스 락커룸에서 선수들이 약간의 짜증을 보이기도 했다고.
  • 저스틴 비버를 좋아한다. 뮤지션으로서도, 인간적으로서도 팬이라고 한다. Purpose가 완벽한 앨범이라고 말했다.
  • 승부욕과 엄격하게 자기관리하는 모습과 상반된 기행을 벌이는 모습도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하여 중단된 시즌이 올랜도 버블에서 재개되자 자신의 커피 머신을 들여와서 선수들을 상대로 Big Face Coffee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렸다. 메뉴판을 보면 카푸치노를 비롯해 그럴듯한 라인업을 갖추었는데 가격은 20달러로 꽤나 비싸다. 게다가 'Only Cash!'라는 문구도 당당히 들어있다. 카페 사장님 밈이 마음에 들었는지 '빅 페이스 커피 사장'이라고 적힌 옷을 제작해서 입고 경기장에 나오기도 했다.
  • 문신이 없다. 양모 미셸 램버트의 희망사항을 우직하게 잘 지키고 있는 것. 후에 딸을 낳는다면 딸의 이름 정도는 새길 의향이 있다고 한다. 문신도 하나의 패션으로 보는 NBA 선수들 중에선 오히려 문신이 없는 것이 특이한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가 이 지미 버틀러와 크리스 폴이다.
  • 헤어스타일 때문에 얼핏 알기 힘들지만 마이클 조던과 꽤 닮은 외모이다. 잘 모르겠으면 머리 윗부분을 가리고 비교해보자.[6]
  • 팀 조던의 일원으로, 슈퍼플라이를 주력으로 신다가 울트라플라이의 메인모델이 되었다. 2016 리우 올림픽의 미국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에어 조던 31을 제일 먼저 코트에 선보였다. 마케트 대학 당시 유니폼 후원이 나이키였고 스위시 대신 점프맨이 들어갔는데 훗날 대표적인 팀 조던의 일원으로 활약하니 정말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고있다.
  • 성장 배경 때문인지 굉장히 올드스쿨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팀에 대한 충성심, 승리에 대한 열정, 경기에 대한 헌신 등등. 실제로 자신은 이미 평생을 써도 못 쓸 돈을 벌었다고 하며[7] 팀이 승리할 수 있다면 페이컷이든 연장 계약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 다만 이런 성향을 자유분방한 영건들에게도 기대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불화설이 뜨기도 한다.
  • 1라운드 30순위라는 드래프트 순위 때문에 하위권에서 성장하여 성공한 선수로 자주 거론된다.[8] 특히 플옵에서 무려 보스턴과 밀워키를 꺾고 파이널에 오른 2019-20시즌 마이애미 히트에서 팀 동료 전원이 10위권 밖[9]과 언드래프트 출신의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 카이리 어빙과 사적으로 굉장히 친하다고 한다.[10] 여건이 된다면 둘 중 하나가 상대방이 있는 팀으로 이적해서라도 함께 뛰고 싶다고.
  • 마켓 대학의 선배인 드웨인 웨이드를 굉장히 존경하고 있다. 웨이드가 시카고로 이적한 후에 경기가 끝나거나 쉬는 날 집에만 있는 버틀러를 불러서 셀러브리티 파티에 같이 가기도 하고, NBA 선수로서의 생활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FA 자격을 획득하자마자 마이애미로 이적한 이유도 웨이드의 권유에 따라 망설임 없이 간 거라고 한다. 대학 선배인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시카고 불스에서 뛰던 당시 웨이드가 말해준 마이애미의 기후와 팀 분위기가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으로, 미네소타와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될 때도 꾸준히 마이애미로의 이적을 원해왔고 결국 2019년 FA 자격을 획득하면서 FA 시장 개장과 동시에 마이애미로 이적했다. 훗날 이 마이애미 히트로의 이적에 관한 뒷얘기가 나왔는데, 당시 마이애미에서는 버틀러의 영입을 놓고 장고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2019년 오프 시즌 당시 샐러리캡을 정리하여 자금 유동성을 확보한 다음 2021년에 맥스[11]급의 플레이어를 영입하여 대권을 도전하려던 것. 때문에 버틀러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구단에 대해 드웨인 웨이드가 '내 다음을 이을 우리 팀의 중심이 될 선수'라며 강력하게 권하였다고. 평소 구단의 선수진 운영에 대해 아무런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실없는 농담과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웨이드가 정장을 입고 진지하게 구단 사무소를 찾아와서 영입을 종용했기에 구단측에서도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신뢰에 대해 버틀러는 영입즉시 파이널 진출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적으로 갚았다.
  • 2017-18시즌에는 에어 조던 32 로우를 주력으로 신고 있으며 각종 경기에서 조던에서 나온 다양한 PE를 신고 있다. 정식발매된 제품은 조던 29 로우 PE이며 2018년 10월 조던 6 PE가 발매된다는 소식이 있다. 2018-19시즌에는 에어 조던 33이 아닌 조던 브랜드의 슈프림 엘리베이션을 신고 나온다. 사실상 버틀러의 준시그니처 모델인 것으로 보이는데 에어 조던 32 로우를 기본 모델로 미드컷에 스트랩 2개 그리고 KD 9,10처럼 외형으로 드러난 줌 에어가 장착되어있다. 그동안 조던 브랜드에서 디자인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농구화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 모델은 비교적 괜찮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평. 2019년 2월 아직 국내 발매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20 시즌 도중 에어조던과 계약을 해지했고 20-21 시즌부터는 리닝과 계약을 맺었다.
  • 배우 마크 월버그와 친구이다, 그가 트랜스포머 촬영을 위해 시카고에 왔었는데, 쉬는 시간에 지인들과 같이 농구할 장소를 찾으면서 인연이 맺어졌고 둘이 자주 놀러 다닌다고 한다.[12]
  • 등번호 21번은 미셸 램버트가 선택한 번호다.[13] 하지만 미네소타로 이적했을 때 하필이면 21번이 케빈 가넷의 백넘버라 영구결번 예정이었기에 23번을 달았다.[14]
  • 특유의 헤어스타일과 유니폼을 한 치수 크게 입는 스타일 등 개성이 뚜렷한 선수이다. 폴 조지가 길쭉하고 마른 스타일이라면 버틀러는 단단한 근육과 힙한 유니폼 착용으로 본인만의 개성을 보이고 있다.
  • 미네소타 시절 후배인 타이어스 존스가 친동생의 대학 데뷔전을 보기 위해 급하게 비행편을 찾았지만 마땅한 비행편이 없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버틀러가 수만 달러를 들여 전세기를 임대해서 보내줬다. 버틀러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타이어스 존스가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알려졌다. 필라델피아에서는 구단 직원들에게 PS4를 비롯하여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각종 가전제품을 걸고 경품 추첨행사를 열기도 하는 등 주변 사람에게 베푸는 씀씀이가 크다.
  • 미네소타 시절 무릎 반월판을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상황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희귀병에 걸린 소년을 만나주고 격려했다.링크

[1] 생모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네 얼굴을 보고 있는 게 짜증난다”였다고.[2] 2017년 2월 19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부분을 다룬 바 있다.[3] 그냥 짧은 정도가 아니라 키하고 거의 같은 수준인데 이는 타 NBA 선수와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일반인 수준이다. 이처럼 팔이 짧아 일명 '악어팔'로 불리며 롱팔로 유명한 카와이 레너드와 비교해 보면 손 하나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 포지션에서 손꼽히는 수비력을 보유했다는 것은 버틀러의 수비 이해도가 매우 뛰어남을 의미한다. 신장 대비 윙스팬의 비율이 NBA 평균 수준만 되었어도 카와이 레너드 못지 않은 수비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지 모른다.[4] 현재 드라기치는 주로 식스맨 에이스로 출격한다.[5] 당시 버틀러는 대어로 불리던 케빈 듀란트와 최고의 3&D 자원인 클레이 탐슨의 부상, 레너드와의 쇼다운 등 플레이오프에서의 선전을 통해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6] 다만 인상을 쓰지 않으면 부드러운 인상인 조던에 비해 입부분이 튀어나오고 인상이 약간 거칠다. 둘이 표정을 찡그리면 상당히 닮았다.[7] 물론 많이 벌었지만 더 많이 버는 선수도 즐비한 NBA에서 이런 표현을 한 것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씀씀이가 크지 않아서 그런 듯.[8]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발탁하고 지도해준 탐 티보도 감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자주 했다.[9] 타일러 히로의 1라운드 13위가 가장 높은 순위이다.[10] 항상 겸손하고 선수들을 존중하는 인터뷰를 하는 버틀러가 유일하게 까는 상대가 카이리 어빙이다. 어빙은 자신이 막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실제로 올림픽 대표팀에서 만났을 때 팀원들끼리 1:1 내기에서 어빙을 단단히 틀어막아버렸는데 이 때의 얘기인 듯하다.[11] 공공연히 야니스를 노린다고 선언했었다. 허나 아데바요에게 맥스를 안겨주기도 했고, 야니스가 밀워키와의 역대급 재계약을 맺으면서 흐지부지되었다.[12] 마크 월버그가 인종차별주의자인데 흑인인 버틀러와 친한 점 이상할 수도 있지만, 요즘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상당히 미묘해져서, 마크 월버그같은 백인 출신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막상 흑인에게는 친근하게 여기면서 동등한 대우를 해도, 아시아인이나 아랍인에게는 단번에 태도가 바뀌는 경우도 적잖이 보인다. 아마도 미국 역사의 초기부터 이어진 흑인들의 이주로 인해 같은 미국인이라는 인식이 생긴 데 반해, 아시아계나 중동계 이민자는 비교적 최근에 유입된 터라 그런 인식이 없어서일지도. 당장 월버그의 망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베트남계 미국인이었다.[13] 버틀러가 팀 입단 당시 미셸에게 전화를 걸어 "제 등번호는 꼭 어머니가 직접 골라주셔야 해요."라며 부탁했다고 한다.[14] 미네소타의 유일한 영구결번은 말릭 실리의 2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