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월버그
1. 개요
[1] 미국의 배우. 젊었을 때는 래퍼이자 모델이었다. 1971년 6월 5일 생.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출신이다. 배달기사였던 아버지는 스웨덴인과 아일랜드인의 혼혈인 미국인이며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2] 은행원과 간호조무사였던 어머니는 아일랜드인, 잉글랜드인,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혼혈이다. 아홉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도니 월버그다.[3] 형의 도움으로 연예계에 진출한다. 데뷔 이후, 마크 월버그가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절을 자전적으로 담은 미드가 바로 앙투라지이다.
푸근하게 생긴 인상과는 달리 액션 영화에도 자주 나오고 마초 이미지로 인기가 있다. 디파티드나 파이터, 트랜스포머 시리즈, 론 서바이버에서의 연기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이 배우의 문제는 안 어울리는 장르가 있다는 것. 2008년에 개봉했던 해프닝을 보면 왜 월버그가 까이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으로 골든 라즈베리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다만, 좋은 연기상들을 더 많이 수상했다.
2. 상세
2.1. 평생 따라다니는 10대 문제아 시절
인종차별이 난무하는 지역인 보스턴에서 태어난 마크 월버그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9남매를 어머니가 홀로 키웠는데 그때부터 비뚤어졌다고 한다. 10대 초반에 보스턴 갱단에 들어갔고 그시절 보스턴 경찰에 의하면 20-25회 가량의 사고를 쳤다고 한다. 13살때 코카인에 중독되었고, 15살 때는 Kill the nigger라고 외치며 수학여행을 가던 흑인 여학생에게 단체로 돌을 던졌다. 흑인 피해자는 인종차별 주의자는 평생 인종차별 주의자라며, 월버그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 16살에는 중년의 베트남계 미국인 남성에게 접근해 베트남 개새끼라 부르며 각목으로 폭행했다. 이후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러 오자 도망쳐 다른 베트남계 미국인의 집에 숨어있었는데, 경찰이 가자마자 숨겨주었던 집 주인을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피해자의 한쪽 눈이 시력을 잃었다고 알려졌으나 후에 눈은 베트남 전쟁때 이미 잃었다고 데일리 메일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범죄로 월버그는 살인미수로 재판을 받았고 폭행죄로 45일 동안 복역했다. 감옥에 들어설때 공포가 몰려오는게 실감이 났다고 60 minutes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신이 동경하던 형들이 감옥에 있는걸 보고 정신이 들었다고...
동양인 피해자는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마크 월버그는 그당시 젊었고 분별력이 없었지만 자신은 용서했다고 밝혔고 모든 사람에겐 한 번의 기회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직접 월버그를 만나고 싶다고까지 했다. 그는 감옥에서 죄값을 치렀고 월버그가 얼굴을 때렸던 건 오래전 일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이제 성장했고 가족도 있다며 책임감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버그가 용서 받는걸 보고싶고 그 사건 이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월버그 이름에 범죄가 따라다니면 안된다고 말했기도 했다. 2015년 인터뷰 링크
15살 때 흑인 여학생에게 돌을 던진 행동을 반성을 하지 않고 2012년에 또 그랬다고 국내에만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도 있다.
2.2. 연예계 활동
예술적인 능력이 있던 마크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멤버였던 형 도니 월버그의 도움으로 래퍼로 활동하다가 영화계에 진출했다.
마크 월버그 나이 25세 때의 모습.
마키 마크와 펑키 번치(Marky Mark & the Funky Bunch)의 'Music For The People'은 큰 성공을 거뒀다. 'Good Vibration'은 빌보드 핫 100 넘버원을 차지했고, 같은 앨범의 또 다른 싱글 'Wildside'는 Top 10에 진입. ('Wildside'는 루 리드의 'Walk on the wildside'를 샘플링 한 곡인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마크의 유명세에 한 몫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공연 도중에 바지를 벗는 퍼포먼스였다. 후에 캘빈 클라인 무대에서도 바지를 시원하게 벗어주시며 팬티를 노출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공연 퍼포먼스 영상 캘빈 클라인 무대 영상
이후 마키 마크와 펑키 번치로 두 번째 앨범을 냈고, 첫 싱글 You Gotta Believe가 작은 주목을 받았으나,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뜬금없이 몇년 뒤에 미국 서부의 레게 싱어인 프린스 이탤 조와 유로댄스 겸 하우스 음악으로 컴백했으나 이 역시 역사속으로...
하지만, 래퍼로서 성공을 한 마키 마크는 Good Vibration에서 보여준 멋진 몸을 무기로, 캘빈 클라인의 속옷 모델이 된다. 이후에 저스틴 비버가 클라인의 속옷 모델이 되면서 종종 비교되고 있다.
바스켓볼 다이어리, 제임스 폴리 감독의 페이탈 피어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지고
부기 나이트, 퍼펙트 스톰, 이탈리안 잡, 위 오운 더 나잇, 디파티드 등의 히트작에도 출연하였으며,
디파티드와 파이터로 각종 큰 시상식들에서 후보로 올랐다.
론 서바이버가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과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상을 받았고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전세계 흥행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15년도 12월 크리스마스에서 북미에서 개봉한 '대디스 홈'도 흥행에 성공해 2017년도에 북미에서 11월 2편까지 나왔다.
2017년에는 올 더 머니에서 스페이시 건으로 재촬영에 돌입하자 마크 월버그는 무보수 촬영으로 임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리들리 스콧과 미셸 윌리엄스는 거의 무보수급[4] 으로 일했다고 한다. 계약상에 착오가 있다 해명하며 미셸 윌리엄스의 이름으로 150만 달러를 성폭행 피해자들과 타임즈업에 기부하였다.
3. 출연작
- 바스켓볼 다이어리
- 퍼펙트 스톰
- 락스타
- 해프닝
- 19곰 테드
- 4 브라더스
- 맥스 페인
- 더 야드
- 더블 타겟
- 디파티드[5]
- 쓰리 킹즈
- 위 오운 더 나잇
- 러블리 본즈
- 론 서바이버[6]
- 부기 나이트[7]
- 이탈리안 잡
- 페이탈 피어
- 콘트라밴드
- 투건스
- 커럽터
- 브로큰 시티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8]
- 파이터[9]
- 빅 히트
- 혹성탈출
- 갬블러[10]
- 19곰 테드 2
- 딥워터 호라이즌
-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 페인 앤 게인
- 패트리어트 데이
- 대디스 홈 시리즈
- 올 더 머니
- 마일 22
- 인스턴트 패밀리
- 스펜서 컨피덴셜
- 스쿠비!
- 60억불의 사나이
- 인피니트
- 아서 더 킹
4. 기타
자신의 10대 시절 저질렀던 최악의 범죄들을 후회한다고 발언 했지만 꾸준히 비난받았다. 이미 동양인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하지만 흑인에게 저지른 인종차별 행위는 용서받지 못했으며, 피해자가 용서한다고 해서 대중들에게 받는 비난은 피할 수 없으므로 마크 월버그에게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가 될 것이다.
20대부터, 반성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며, 최근에 개봉한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서도 초반에 폐차장을 지키는 아메리카 원주민계 인물에게 치프(추장)라고 했다가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인종차별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는데 본인도 씁쓸히 인정하고 뉘우치는 배우개그도 보여줬다.
드라마 앙투라지 시리즈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주인공 빈센트 체이스가 험한 사고를 안 치고 다니는 걸 제외하면 마크 월버그 본인의 이야기를 베이스로 만들어낸 캐릭터다.
참고로 조니 드라마는 월버그 집안이 살던 동네에서 살던 실제 인물로 월버그 형제의 친한 친구 중 한명이다. Wahlburger 라는 월버그 가의 삼형제가 레스토랑 체인점을 오픈하는 쇼에서 실제 출연하여 본인의 역할에 본인이 캐스팅 되지 못했다며 서운해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보스턴 출신 답게 톰 브래디같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셀틱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인지도가 오르기 전 월버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멧 데이먼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형제들이랑 함께 햄버거 프랜차이즈 점인 월버거를 운영하고 있다.
마크 월버그 나이 35세 때의 모습.
현재 나이 치고, 상당히 '''동안'''에 속하는 배우이다.
2017년에 세계에서 가장 영화로 돈을 많이 번 배우다.
마크 월버그는 총 15개의 자선구호단체들에게 '''기부'''를 하고 있는 배우이다. #
[1] 도니 월버그[2] 한국전쟁 참전 후에 2008년 2월 14일에 사망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다.[3] 뉴키즈온더블록의 멤버 중 한명으로 매우 유명했다. 식스 센스의 초반부에 주인공의 집에 숨어들어 총을 쐈던 남자를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카우드 립턴 역과 쏘우 시리즈에서 나오는 부패 형사인 에릭 역이다.[4] 윌리엄스의 경우에는 배우 조합 규정상 완전 무보수 촬영이 불가능해서 상징적인 임금을 1,000 달러만 받고 촬영에 임했다.[5] 마틴 스콜세지 감독 연출.[6] 피터 버그 감독 연출.[7] 폴토마스앤더슨 감독 연출.[8] 2014년 한해 전세계(월드와이드) 흥행 1위 작품.[9]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연출. 월버그는 주연이자 제작으로 참여한다.[10] 1974년 동명의 영화 리메이크작. 도박에 의해 빚에 빠진, 그리고 그걸 타개하려는 대학교수에 관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