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

 


靑魚 / her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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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
Herring
이명 :
''Clupea Linnaeus'', 1758
분류

'''동물계'''

척삭동물문(Chordata)

조기어강(Actinopterygii)

청어목(Clupeiformes)

청어과 (Clupeidae)

청어속(Clupea)
  • 청어속(Clupea)
    • 태평양청어(Clupea pallasii)
    • 대서양청어(Clupea harengus)
1. 개요
2. 청어와 인간
3. 음식
4. 여담


1. 개요


청어목 청어과 청어속의 바닷물고기.
성체는 길이가 20~38 cm, 외견이 정어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지만, 몸 측면에 방사형 융기선이 없고, 꼬리에 정어리 특유의 비늘이 없으며, 옆구리에 검은 점이 없는 점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몸빛깔은 담흑색에 푸른색을 띠지만 배 쪽은 은백색이다. 대표적인 한해성 어류로, 3월 하순부터 수온이 4∼5°C 가까이 올라가면 성숙한 성어는 깊은 바다에서 연안의 해조류가 무성하고 암초가 있는 얕은 연안이나 내만으로 떼를 지어 몰려오고, 그 곳에서 12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산란한다. 성숙하는데는 4년 정도 걸리고 수명은 20년 정도이다. 먹이는 플랑크톤성 갑각류이다.
무리지어 생활하고 개체 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생태적으로는 상위 포식자들의 먹이로 중요하다.

영상 썸네일은 혹등고래이다.
보다시피 육해공으로 아주 동네북 취급이다.크기 주의
청어를 식재료로 부를 때는 '비웃', 청어의 알을 '비웃알'이라고도 불렀다. 그 외에도 겨울에 잡힌 아직 덜 자란 청어를 '굴뚝청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사람들은 청어의 새끼를 '솔치'라고 부르는데, 솔치는 경상도 사투리로는 송사리의 새끼를 가리키기 때문에 혼란이 있다.

2. 청어와 인간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엄청난 포획량 덕분에 근대 이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서는 인류의 주된 식량원 중 하나였다. 전세계에 명물이 되어 남아있는 청어로 만든 보존식품들이 그 흔적이다. 한국의 과메기[1], 일본의 미카키니싱,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 유럽의 훈제 청어와 청어 초절임 등. 그래서 유럽에서는 대구와 함께 청어를 '''바다의 밀'''이라고까지 불렀다.
일단 잡힐 때는 엄청난 숫자가 잡혀서 예전부터 청어잡이를 할 때는 낚시보다는 그물을 사용했다. 저 멀리 북태평양에서는 원양어선이 '''청소기로 빨아들여 잡는다'''. 워낙 대량으로 어획되는 탓에 기존의 시장 규모에서는 단시간에 소비가 불가능해서 냉동 유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3년 12월 기준 남해안에서 잡힌 청어(산란기라 곤이이리가 있는)의 경매가는 20kg 한상자에 9,000원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참고로 고등어는 1Kg당 10,000원 가량이다. 청어는 꽤 저렴한 생선이라 주로 양식장 물고기들의 사료로 주로 이용된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바다 연안 전역에서 매우 많이 잡혀 비유어(肥儒魚/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2]로 불릴 정도로 값싸고 친숙하며 맛있는 생선이었으며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물고기였다. 조선시대에선 가장 인기있는 등푸른 생선이었는데 수많은 등푸른 생선을 제치고 청어라는 이름을 이 물고기가 얻은 것이 바로 그 증거. 즉 당대인들에게 등푸른 생선의 표준은 어디까지나 청어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청어죽은 보신재로 산후나 병후의 회복기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값도 싼 생선이라 어떤 선비는 '1냥에 청어 3뭇밖에 안 되는데 너무 비싸진 거 아니냐?'라고 하기도 했다. 참고로 1뭇은 10마리.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는 한술 더 떠서 "청어는 옛날에는 극히 흔하였는데 고려말에는 감산되어 쌀 한 되에 청어 40마리밖에 주지 않았다." 하고 한탄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은 병사들을 동원해 청어잡이로 수십만 마리를 잡아 군사와 피난민들의 식량으로 썼다고 한다. 한산도둔전을 일구기는 했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곡식만 가지고는 그 많은 입을 먹여 살리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3] 잡은 청어들은 주로 그냥 먹기보다는 말려서 과메기로 먹었다. 청어의 내장에는 지방이 많아서 금방 상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말린청어를 농민들과 물물교환하여 군량미를 마련하기도...

바이킹들의 식사를 소개하는 영상. 청어포가 나온다.
유럽에서도 흔하고 친숙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는데 중세 유럽에서 금육일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주로 소비되던 것이 훈제 청어일 정도. 게다가 비타민 D 함량이 많은 식재료들 중 하나라서 우중충한 날씨가 일상적인 유럽에서는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획량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큰 어종이기도 하다. 19세기 말까지는 어획량이 엄청나, 부산항에 배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청어가 몰려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60년대부터 차차 줄어들어 7~80년대에는 1/100수준이 되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원래 제철이어야 하는 연초 때의 어획량이 아예 0이었다는 기록도 있었으나, 90년대들어 차차 늘고 있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수십 년간 청어가 거의 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자산어보에도 이런 청어의 주기적인 이동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청어가 씨가 마르면서 청어로 만드는 과매기는 거의 사라지고 꽁치 과매기밖에 남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청어 회유로가 40년이 지날 때마다 바뀐다는 설이 있으므로, 다시 연근해가 청어 떼로 넘칠 날이 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2010년대 이후로 국내에서 청어 어획량이 다시 늘어나고 청어 풍년인 해도 점점 늘어나는 중. 대한민국에서 잡히는 청어는 주로 양식장의 사료로 이용된다. 청어를 직접 식용으로 판매하는 것보다, 청어로 넙치 같은 양식어종을 길러서 판매하는 것이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1920년 스코틀랜드의 스카보로 항구와 1925년 잉글랜드 그레이트야머스 항구에서 청어를 손질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 잡힌 청어의 내장을 작은 칼로 제거하고 나무 드럼통에 포화 소금물과 함께 집어넣어 절이는 모습이 담겼다. 청어의 어획고가 매우 많기에, 작업 중인 인부들은 생선이 한두 마리쯤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세계사를 통틀어보아도 청어어획량은 늘 들쑥날쑥해서 청어가 잡히는 지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곤 했다. 한자동맹의 성장과 몰락에 청어 서식지의 변경이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가설도 있으며[4], 대항해시대 시절 네덜란드도 청어어획고의 변화로 국가경제가 휘청거린 케이스이다. 스페인의 몰락 이후 네덜란드가 유럽의 패권을 거머줬을 때 그 밑바탕이 된 것이 사실 엄청난 청어 어획고로 벌어들인 돈이었다고. 대구와 함께 단백질 공급원으로써 청어는 매우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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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발명한 칼과 청어를 들고 있는 빌럼 뵈컬손
이러한 중요한 청어 산업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빌럼 뵈컬손(Willem Beukelszoon), 영어로는 윌리엄 버클스(William Buckels)라는 네덜란드 어부인데, 그는 갓 잡은 청어의 이리[5]를 제외한 내장과 가시를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작은 칼을 만들고, 소금 대신 함수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통절임 방법을 고안했다. 옛날부터 소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당히 중요하고 비싼 필수품이었고, 특히 연중 일조량이 적은 기후탓에 바다에서 소금을 만들기 어려웠던 북유럽과 서유럽은 더더욱 소금이 귀했다. 이 때문에 기껏 청어를 잡아도 오래 보존하려면 소금에 절여야 했는데, 소금이 부족해서 충분한 양을 수출하기 어려웠다. 이때 네덜란드 인들은 소금 대신 바닷물을 끓여서 수분을 날려 굉장히 짠 상태의 소금물(함수)을 소금 대신 쓸 수 있음을 알아냈다. 완전히 증발시켜 고체를 만들거나 암염광산에서 캐내어 정제해야 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함수는 그저 바닷물을 끓이기만 하면 얻을 수 있으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이 방법으로 청어를 절여 기존보다 수십 배나 많이 생산했고, 그 덕분에 네덜란드는 청어산업에서 경쟁국가들을 밀어내고 대성공하였다. 심지어 당대 암스테르담을 가리켜 '청어 뼈 위에 세운 도시'라고 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3. 음식


청어로 만든 음식들
가공해서 훈제 청어수르스트뢰밍으로 만들 수 있다. 둘 다 냄새가 강렬하다. 구워서 먹을 때 폭풍같은 가시의 향연이 압박적인데, 척추 부근의 큰 뼈를 들어 내면서 한번만 발라주면 다 씹어먹을 수 있는 가느다란 가시라 먹기도 쉽고 담백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일품이다. 잔뼈들이 뼈라기보단 털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
청어알도 별미. 보통 염장어란 하면 숭어알이나 민어알을 연상하지만 사실 청어알도 염장하면 아주 맛있다. 특히 알 껍질이 아주 단단하면서도 오독거리는 식감을 내는데 그 풍미가 매우 특이해서 이게 동물의 조직이 맞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탄력으로 오독을 넘어 아삭거린다. 흔히 생각하는 명태알 의 식감이나 톡톡 터지는 날치알과도 전혀 다른 재미있고 중독적인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과거에 청어가 흔할 때에는 청어알젓이 명란젓 못지 않게 흔했지만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다. 일본에선 소금에 절여 말린 청어알을 가즈노코(数の子)라 부르며, 스시 재료로 사용하거나 자손의 번영을 비는 의미에서 새해에 먹는다. '노란 다이아몬드' 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귀하고 맛있는 식재료 취급을 받는다. 또한 청어알에 오징어 먹물을 입혀 까맣게 만들어 가공해 파는 것을 '아브루가'라고 하는데, 캐비어와 비슷한 외형 때문에 캐비어의 대용품으로도 쓰인다. 물론 가격도 훨씬 싸다. 오세트라 캐비어가 15g에 7만 - 9만 원을 왔다갔다 하는데, 아브루가는 50 g에 2만 원 초반이다. 영덕에서 청어알을 아주 고급으로 쳐서 따로 팔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튀겨 먹기도 한다.
비늘이 얇지만 넓고 질긴 편이라 먹으면 소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청어를 어획후 알만 빼서 버리는 지역에선 이걸 주워 먹은 바다표범들이 비늘 때문에 위장병에 걸려서 빼빼 말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요리를 할 경우, 얇은 비늘이라 방심하지 말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 국내에서는 소금구이로 먹거나 고등어처럼 를 넣고 조려 먹기도 한다. 로도 먹는데, 썰어두면 살이 불그스름하고 맛이 다른 생선에 비해 담백한 것이, 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맛을 보면 잊을 수가 없을 별미이다. 싱싱한 청어를 회로 먹으면 달달한 맛이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이다. 이렇게 맛있는 횟감이었나 싶을 정도. 당연히 요리사는 고역이다. 뼈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제거해야 된다. 칼집을 넣어 뼈채로 먹기 편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청어의 잔가시 때문에, 청어회는 거의 물회나 막회의 형태로 소비된다. 청어의 주산지인 동해안 지역에서는 청어가 막회의 중요한 재료로 통한다. 실제로 포항 일대의 물회/막회집 중에는 청어회의 가미 유무에 따라 메뉴 가격이 달라지는 곳들 또한 많다. 청어가 들어간 메뉴는 돈이 약간 더 붙는 식이다.

과메기도 원래는 꽁치뿐만 아니라 청어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만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로 만든 과메기만 남게 되어 과메기 하면 꽁치를 연상하고 청어는 따로이 청어 과메기라고 부르는 현실.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상인들은 청어 과메기가 진짜라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다. 이게 와전되어서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만 만들었는데 청어 어획량이 줄어들자 대체품인 꽁치로 만들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꽁치 과메기처럼 지속적으로 일정량을 공급할 수가 없어서 거의 잊혀졌다가 다시 제조하고 있다. 쌈장에 찍어 싸먹거나 초장에 비벼먹는다. 기름져서 질리기 쉽지만 수르스트뢰밍처럼 독한 냄새는 안 난다. 단 생선을 잘 못먹는 사람에게는 비린내가 심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다.
굉장히 싼 만큼 군대에서 청어튀김이 자주 나온다. 예비역들이라면 모습은 꽁치나 정어리 비슷한데 훨씬 통통하고 가시가 많아(특히 배 부분) 먹기 성가셨던 생선튀김이 기억날 터인데, 그 생선이 바로 청어일 확률이 매우 높다. 참고로 청어나 정어리가 군대 짬밥으로 나올시기면 2000년도 이전의 군대 식단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명태나 고등어, 삼치등의 생선이 더 자주 나오는 편이고 청어는 나오지 않는 경우도 꽤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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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덜란드에서는 하링(Haring)[6]이라고 부르며,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잡히는 청어를 머리와 꼬리를 떼고 내장을 빼낸 뒤 소금에 절여서 보관한다. 소금에 절인 청어는 잘게 다진 양파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꼬리를 집어 올린 다음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젖혀 통채로 먹는 특이한 방식이 보편적이다. 현대에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도 핫도그빵에 끼거나 썰어서 이쑤시개로 찍어서 먹는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통조림으로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대개 토마토 소스에 조린 것을 담아서 판다.
  • 일본에는 미가키 니싱, 또는 니싱미가키라고 하는 말린 청어가 있는데, 과메기와 달리 내장을 모두 손질하여 훈연 처리하여 북어처럼 바싹 말린다. 바싹 말린 것이기 때문에 물에 불려서 국물을 내서 같이 먹는다. 교토 지방에서 유명한데 교토 지방이 바다에서 멀기 때문에 해산물을 먹기 힘들어 자반고등어돔베기처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유행했다고 한다. 온모밀국수에 말린 청어를 통으로 얹은 니싱소바가 대표적이다.
  • 북유럽에서는 슈르스트뢰밍 외에 일반적으로 가시를 바른 뒤 식초에 절여서 피클처럼 만들어 먹는다. 이건 실(Sill, Sild)이라고 하는데 맛은 피클 비스무리하면서도 살짝 달달하고, 고소하면서도 생선 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좋다. 북미에서도 쉽게 구해 먹을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고등어 초밥이 먹고싶은데 고등어 초절임을 구하기 마땅치 않을 때 대용으로 사용해 만들어 먹어도 좋다. 사실 위의 하링도 보통은 피클 형태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 편. 위키백과의 초절임 청어 항목
  • 미국 토착원주민 중에는 청어의 산란기 습성을 이용해 솔송나무가지를 물에 넣어서 청어알을 채집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청어가 아닌 청어 알을 먹기 위해 그물을 설치한다고도 한다.
  • 청어 새끼를 찜말림(니보시) 해서 국물재료로 이용하는데, 맛이 개운한 멸치나 디포리와 달리 기름기 있는 진득한 맛이다.

4. 여담


  • 알래스카 근처의 한 청어 산란지는 산란철에 원양어선들이 어획그물(주로 설치형)을 치면, 위험을 느낀 청어들이 알과 정소를 뿌려대는데 청어의 정액 때문에 물 색깔이 희뿌옇게 변할 정도이다. 수정된 알들은 그물에 달라붙으면서 어장이 망가지기도 하는데, 문제는 수정된 알은 끈기가 엄청 강해[7]서 그물에서 제거하기 매우 힘들다고.
  • EBS 프로그램 극한직업에 따르면 이 청어도 회가 맛있긴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전어회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고 덜 알려져서 판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에게는 전어에 비하면 찬밥 대접을 받는다.
  • 논쟁에서 논점에 맞지 않는 쓰잘데기 없는 말로 논점일탈을 일으키는 것을 훈제 청어 기법이라고 한다.
  • 탈무드에도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차를 타고 가던 한 사람이 랍비를 만났다. 그는 랍비에게 그들의 지혜가 어디서 나오는 지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말린 청어를 머리까지(혹은 통째로) 먹으면 된다고 하며, 자신에게 청어 한 마리당 10달러에 사 보지 않겠느냐고 한다.[8] 그 사람은 랍비에게 청어를 사 머리까지 꾸역꾸역 먹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해보니 다음 역에서 잠시 내려 10달러로 청어 다섯 마리를 살 수 있었고, 당신이 사기를 쳤다'고 하자, 랍비는 '그것 봐라, 벌써 지혜로워지지 않았느냐.'고 응수했다. 일부 판본에서는 랍비 대신 장사꾼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 일본 교토 지역에서는 청어를 소바에 얹어 먹는 '니신소바'라는 음식이 존재한다. 청어를 달작지근하게 조려서 따뜻한 소바 국물에 그대로 넣는다고. 잔가시가 많은 청어라서 먹기 힘든 데다, 조린 생선을 소바에 고명으로 얹어 먹는 것에서 괴식의 느낌도 있지만, 입맛에 맞으면 의외로 맛있다.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만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에서도 '니신소바' 관련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나다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면서 아버지가 중얼거린 '청어국수'라는 말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데, 이 의문을 호토리가 해결해주고 청어를 대신해 고등어로 '니신소바'를 만들어준다.
  • 'ㅅ'자가 여러개 겹쳐있는 듯한 형태를 헤링본(herringbone)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청어 가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로 직물이나 벽돌, 타일의 쌓는 방식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
  • 마다가스카의 펭귄에서 먼 옛날 침몰한 배에 장기 숙성된 청어를 발견한 펭귄들이 리코 빼고 다 먹고 맛탱이가 훼까닥 가버린 에피소드가 있다.
[1] 본래 과메기는 청어와 꽁치 둘다 만드는 것이었다. 과메기 참조.[2] 청어의 우리 말인 비웃을 음차한 것(또는 비유어가 비웃이 된 것)이다. 절인 청어는 자반비웃아라 한다.[3] 또한 전쟁 중엔 에너지소모가 많아서 동물성단백질 섭취가 필수였을테고 그나마 구하기 쉬운 생선으로 해결했을 것이다.[4] 출처 "이야기로 읽은 부의 세계사".[5] 청어의 이리는 진미로 인정받는 고급부위다.[6] 영어의 herring이나 표준독일어의 Hering이나 네덜란드어의 Haring이나 동일한 어원의 게르만어계 어휘다.[7] 산란지인 해초에 잘 붙게하기 위함이다.[8] 머리만 남은 것에 입맛 다시는 것을 본 랍비가 머리 하나당 온전한 청어 한마리 값으로 팔았다는 내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