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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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있을 당시, 자신의 야구선수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일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 역전 끝내기를 치고나서.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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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자신의 말실수로 마지막이 좋지 못했지만,'''
'''왕조의 4번타자이자 팀의 2010년대 최고 선수였던 삼성 라이온즈 시절.'''[1]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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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소속 외야수 최형우의 삼성 라이온즈 시절 기록을 담은 문서. 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 6라운드, 전체 48번으로 삼성에 입단해서 중간에 방출과 경찰청 복무시절을 빼고 2017년 기아로 이적하기 전까지 13년간 삼성에서 뛰었다.
2. 삼성 라이온즈 1기
2.1. 2002~2005 시즌 : 수비 못하는 포수 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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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당시는 포수였는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동안 1군에서 대타와 대수비로 6경기에 출장해 7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1군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했다.
2군에서도 매년 2할 중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남부리그 타율 2위(0.322)에 오르기도 했지만, 수비가 나아지지 않아[2] 결국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싸이월드에 이런 글을 올렸다.
참으로 오글거리는 단순한 허세글이긴 하지만, 지금 최형우의 위상 및 박병호와 김상현의 사례를 생각해볼 때 정말 저 글대로 상황이 바뀌었다면 '''삼성 입장에선 정말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먼 훗날 진짜로 그렇게 되었다.이런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난 반드시 돌아온다..
날 배신했던 것에 대한 복수를 품고 반드시 돌아온다..
지금 있던 곳이 아닌 저 먼곳에서 이곳을 부수기 위해 칼을 갈 것이다.
'''반드시...반드시...반드시...언젠가는...복수한다...'''
3. 경찰청 복무
방출 후 상무 입대를 타진했으나 이마저도 탈락하면서 선수 생활에 큰 위기가 닥쳤지만, 때마침 경찰청의 창단 소식에 곧바로 지원하여 합격,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3] 타격 자질을 살리고 수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김용철 당시 경찰청 감독의 권유에 따라 외야수로 전향했다.
경찰청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면서 1년차에는 팀 내 타율 1위(0.344)에 홈런 공동 1위(11홈런) 등을 기록했다. 경찰청 2년차인 2007년에는 2군 북부리그에서 타율 1위(0.391), 최다 안타 1위(128안타), 최다 2루타 1위(41개), 홈런 1위(22홈런), 타점 1위(76타점), 득점 1위(72득점), 장타율 1위(0.731) 등 '''타격 부문 7관왕'''을 달성하며 그야말로 2군 북부리그를 평정했다.
경찰청 복무를 마칠 즈음, 경찰청 김용철 감독은 최형우가 제대 후 갈 팀이 없을까봐[4] 최형우의 연고 팀인 KIA에 언질을 넣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했던 서정환 감독이 사임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후 SK 와이번스 스카우터들이 최형우를 주목했으나 김성근 감독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아서 영입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5] . LG 트윈스에서도 데려가려는 듯 했으나 나가리.
이때 마침 경찰청 경기를 보러 간 김응용 사장이 '''"쟤 아직 우리 소속이지?"'''하고 같이 간 삼성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고 깜짝 놀란 프런트 직원이 부랴부랴 계약에 나섰다. 최형우는 예전에 같이 뛰던 친구들 생각에 삼성과 계약했다. 방출된 팀에 다시 입단한 드문 케이스. 이때 삼성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것에 대한 최형우의 답변은 '''"날 버린 팀을 후회하게 해 주려고."'''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본인을 영입하려다가 그만둔 팀들로 표적을 바꾼 듯 하다. 여튼 최형우를 다시 데려온 건 김응용 당시 사장의 공로다.[6]
4. 삼성 라이온즈 2기
4.1. 2008 시즌 : 복귀와 신인왕 수상
전체적으로 노쇠한 삼성 타선의 젊은 피 중 하나로 활약하면서 '''최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쓰이 히데키를 닮아서 나온 별명이다. 마쓰이처럼 우투좌타라는 점도 같다. 재밌는 건 점점 스탯도 마쓰이 히데키를 닮아간다! 2009년도 즈음 해서 나온 이야기가 점점 더 확실한 현실이 돼 가는 실정.
시즌 초반에는 대타로 시작했지만, 원래 우익수를 볼 예정이었던 외국인 타자 제이콥 크루즈가 아킬레스건 때문에 1루수로 출장하면서 우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팀 중심 타선에 자리잡아 홈런(19홈런)과 타점(71타점) 부문에서 팀 내 1위를 차지하면서, 중고 신인이지만 규정상[7] 신인왕 자격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어 2008년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게다가 다른 후보인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과 LG 트윈스의 정찬헌이 예상 외로 부진했기 때문에 2008년 신인왕 후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최고령 신인왕'''이 됐다. 이 기록은 2011년 배영섭이 경신한다. (현 최고령 신인왕 수장자는 신재영)
4.2. 2009 시즌
2009년에는 시즌 중 한때 백업 포수난으로[8] 다시 포수로 기용될 계획도 있었지만 트레이드로 채상병이 합류하면서 외야수로 고정되었다.
팀의 4번 타자로 자리잡아 타율·출루율·장타율 모두 성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부족한 수비능력과 삼성의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려있던 2009년 가을 동안 4번타자의 이름에 걸맞지않은 모습을 보여준 점(2009년 9월 타율 0.172 4홈런 12타점) 때문에 최잉여라는 별명이 굳어졌다.
4.3.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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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엇? 양신까지???
2010년 4월 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가면라이더 세레머니를 했다. 그것도 가면라이더 V3의 세레머니여서 한국 야구 선수 중 최초로 특촬물 덕후가 나왔나 싶었지만, 오치아이 코치 때문에 한거라고 한다.[9]
2010년 6월 1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김광현의 구위에 눌려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기 직전 9회 2사 이후에 신명철이 볼넷을 골라낸 후 3구째를 노려쳐 안타를 쳐냄으로써 굴욕적인 상황을 피할수 있었다. 디씨 야구 갤러리에선 SK갤을 제외한 7개 구단이 하나가 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으며 도마 최형우, 구국의 열사 최형우등 큰 호응 을 받고 있다.
9월 17일 KIA와의 경기에서 김상현의 타구를 쫓다가 벌러덩…. 두 팀이 4블론을 주고 받으며 병신매치를 벌였는 데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덕분에 패전투수가 된 김효남은 최형우를 썰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쳐다 보았고 그는 알을 품는 '''최디슨'''이란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이 날 경기 한 장 요약
그리고 그날 밤,베이스볼 투나잇 야의 변두리 야구의 주제는 ''' 야 웃음이 나오냐'''였다.
최형우는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2타수 6안타 1홈런 3볼넷 4타점 5득점, 타율 .273, 장타율 .545, 출루율 .36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최형우는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3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타점, 타율 .231, 장타율 .385, 출루율 .31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형우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5타수 9안타 1홈런 5볼넷 1희생플라이 5타점 5득점, 타율 .257, 장타율 .486, 출루율 .341을 기록했다.
4.4. 2011 시즌
최형우/2011년 항목 참조.
4.5. 2012 시즌
부진을 겪으며 무너지는듯 했으나 여름에 맹타를 휘두르며 결국 투고타저의 리그 속에서 .271의 타율과 14홈런, 77타점이라는 준수한 성적과 '''한국시리즈 2홈런 9타점'''이라는 흠좀무한 활약을 펼쳤다.
최형우/2012년 항목 참조.
4.6. 2013 시즌
최형우/2013년 항목 참조.
4.7.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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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2014년 문서 참고.
4.8. 2015 시즌
시즌 성적을 보면 3-30-100을 달성하고 또한 외야수 중 홈런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9월 이후와 한국시리즈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인 탓인지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실패했다.[10]
최형우/2015년 항목 참조.
4.9. 2016 시즌: 최형우와 여섯 난쟁이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해이다. 아쉽게도 3-30-100-100과 본인의 커리어 첫 트리플크라운은 하지 못했다.[11]
최형우/2016년 항목 참조.
5. 삼성에서의 기록
[1] 삼성이 우승 6회, 준우승 2회, 09년 한 시즌 제외 가을야구 진출을 해냈던 2006~2015년 10년 간 기록을 합산할때, 역시 왕조의 5번타자 겸 3루수였던 박석민을 제외하면 비교되는 선수가 없다. 경기 출장 수로 비교하자면 더하고, 심지어 이 누적기록은 본인의 양대 커리어하이 중 하나인 16시즌을 제외하고 계산한 것이다.[2] 특히 송구 부문이 문제였다. 포수로 어깨는 강한 편이었는데, 본인 말로는 연습 때는 잘하다가도 실전 경기에서는 야수 키를 넘기는 송구를 종종 했다고. 경찰청 입단 테스트 때 최형우의 송구를 본 정현발 코치는 학창 시절이나 프로에서 송구 때문에 된통 혼난 적이 있는지 그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3] 창단 동기로는 김태완과 최진행 등이 있다.[4] 타격7관왕이긴 했지만 문제는 수비였다. 이재원이 그랬듯 타격은 문제없는 선수도 수비가 안돼서 1군에 대타로만 쓰거나 2군에 있는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2군기록이 아무리 좋아도 1군에서도 100%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5] 김성근의 돌직구2에서 김성근 감독 본인이 언급한 내용으로, 당시의 결정을 김성근 감독은 아직도 후회한다고 밝혔다.[6] 선동열의 공로라고 날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믿지 말고 거르자.[7] KBO 규정상, 신인왕은 그 해에 데뷔한 선수뿐만 아니라, 처음 계약 후 5년 이내, 30이닝(투수)/60타석(타자) 이내 출장한 선수도 수상할 수 있다. 이 때, 국방부/행안부 퀘스트 플레잉 타임은 계산하지 않는다.[8]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은 손목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백업 포수였던 현재윤마저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다.[9] 삼성은 대개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하는데, 이때 쉬는 날에 최형우나 박석민 등은 빠칭코를 많이 한다고. 이때 이들이 한 빠칭코 기계가 가면라이더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었고, 이를 본 오치아이 코치가 재미삼아 최형우와 박석민에게 가면라이더 피규어를 선물했다. 그 이후에 저런 세레머니를 하게 되었다.[10] 심지어 이용규보다도 표를 적게 수상했다.[11] 타율, 타점은 1위로 충족하나 홈런에서 이 부문 1위인 최정, 테임즈와 9개 차이인 31개로 7위에 머물며 결국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참고로 득점 1위는 121점을 기록한 정근우.[12] 역대 단일시즌 타점 2위이자 삼성라이온즈 한시즌 최다타점 1위인 이승엽의 2003년 144타점과 타이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