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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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둥어: 林鄭月娥 Lam4-Zeng6 Jyut6ngo4 (람젱윗오)
표준중국어: 林郑月娥 Lín-Zhèng Yuè'é (린정웨어)
한국 한자음: 임정월아 (림정월아)
영어: Carrie Lam (캐리 '''램''')
'람'은 남편의 성(姓)으로 본래 성은 쳉(Cheng, 鄭)이다. 1984년에 수학자인 람시우보(Lam Siu-por, 林兆波)와 결혼하여 남편의 성인 람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혼 전 성명은 젱윗오/캐리 쳉(鄭月娥/Carrie Cheng). 홍콩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아내가 남편의 성을 사용하는데,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는 문화가 없는 중화권 일부에도 아내들이 중국식 성명을 표기할 때 자신의 성 앞에 남편 성을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3] 이를 관부성(冠夫姓)이라 하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이 관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2. 생애
1957년 홍콩 섬의 빈민촌인 완차이구에서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람의 부모는 저장 성 저우산 출신.[4] 가난했지만[5] 1등을 놓친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적은 우수했다고 하며 동시에 자존심도 강해서 2등이라도 차지하면 엉엉 울기도 할 정도였다고, 대학 시절에는 사회 참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홍콩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이후로 홍콩정부에서 공직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이 되기 이전에는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저소득층 지원 및 좌파학생 퇴학철회 요구를 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기도 했지만[6]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정치성향이 확 변한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공무원으로 능력이나 평판은 괜찮던 인물이었던지라 오래지나지 않아 재빠르게 승진했고, 홍콩 반환 이후로 중국정부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대표적인 친중파 인사가 되었다. 2007년 발전국장 재임 당시 영국 통치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건축물 퀸스피어[7] 철거를 진두지휘했는데 하얀 셔츠를 입고 철거를 반대하는 수백 명의 시위들 앞에 나서서 퀸스피어의 역사적 가치를 지워버리며 '전사'라는 별명을 얻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발전국장에 취임하기 전 영국 국적을 포기했다.#
2012년 행정수반이 된 렁춘잉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2017년 행정장관 선거(간접 선거)에서 1194표 중 777표 [8] (66.81%)를 얻어 당선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친중파에 속한다.
영국 통치시절의 총독과 현재 홍콩 특별행정구의 행정장관을 포함한 홍콩 최초의 여성 수반이며, 대만 차이잉원 총통에 이은 중화권 두 번째 여성 수반이기도 하다.
3. 논란
(람이 당선된) 2017년 선거가 홍콩 시민이 직선제로의 전환을 원했으나 무산된 상태에서 치러졌다는 점, 람이 2014년 이후 강경 친중파 노선을 추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범 민주파들에게는 그야말로 '''만고역적'''으로 여겨지나,[9] 일반 홍콩 시민들은 그러려니 하는 입장이'''었'''다. 민의에 의해 선출된 사람은 아니지만 될 사람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중국 중앙정부는 매우 호의적으로 여기고 있다.
람은 강경 친중파 노선을 추구하지만, 홍콩 우산 시위 이전까지 민주파 정치인들과의 교류가 컸고, 2000년대 초반에는 민주파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많이 펼쳤다.
람의 취임식에는 홍콩 반환 20주년을 기념하여 시진핑이 중국/홍콩의 '''국가원수''' 자격으로 방문한다[10] . 그냥 단순 자리 차이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시진핑이 상석(위쪽 중앙 자리)에 앉는 구도에서도 갑을관계가 보인다는 관측이 있다.연합뉴스
인사도 16명 중 '''15명'''이 친중파이며, 유일하게 친중파가 아닌 인물은 노동·복지국장(장관격)에 지명된 민주당 창립 멤버 로치퀑(羅致光) 홍콩대 부교수이다.#
2014년 홍콩 우산 시위를 강경 진압해 79일 만에 해산시켰고, 이후 1000명에 달하는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는 데도 앞장섰다.#
2019년 들어서서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대해서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100만이 넘은데도 불구하고 범죄인 인도법을 강행하겠다고 하였다.[11] 또한 해당 시위를 '조직적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소위 '어머니론'이라고 불리는 발언을 했는데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며 마지막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 경 뒷목 잡을 소리를 하였다. 시민의 공복이어야 할 행정장관이 시위대를 버릇없는 아이 취급하는 듯한 발언을 해 홍콩시민들의 강한 비난을 받았다.# 사임 가능성까지 나온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지배-피지배 관계였던 식민지 시절 외국인 총독조차 이런 시건방진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게 개그. 이에 홍콩 시민들은 林鄭唔係我老母(람쳉[12] (캐리 람)은 우리 엄마 아님!!)라는 재치있는 구호로 맞서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본인의 연봉을 인상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홍콩 국가보안법 논란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발언하였다.#
코로나19 재확산 이유로 총선도 1년 연기되었다. 이 때문에 나머지 1년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으나 기존 입법회 의원들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위의 행보들때문에 케임브리지대가 준 명예 회원 검토에 나서자 스스로 포기했다.#
급기야 삼권분립 부정 발언을 하였다.#
코로나19 백신 중국제을 선택한 이유도 홍콩인의 건강이 아닌 중국의 이익을 선택했다는 설이 있다.#
4. 왜 홍콩장관에서 사퇴를 안 했나(혹은 못 했나)
캐리 람 자체가 친중파이고 권력에 욕망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사실 사퇴를 못 하는 진짜 이유는 '''홍콩 시민들에 의해 캐리 람이 사퇴하면 그 소식이 본토에 전해질 것이고, 본토 중국인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서 천안문 사태 같은 반정부 시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게다가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친중파의 전례없는 몰락에도 중국 공산당이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민주 국가에서는 이 정도로 선거 패배를 당했다면 당연히 사죄 내지 사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간선제에 중국 본토의 강력한 간섭을 받는 홍콩 장관직의 특성상 친중파 캐리 람의 사퇴로 홍콩 민주화 시위가 더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고집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재임 기간
취임식에서 국가안전법(보안법) 제정을 주도할 방침임을 천명하고 나서서 홍콩 내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의 부동산 대책 일환으로 72조 원에 달하는 인공섬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이다.#
2019년 6월 중에 촉발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사태가 장기화되고 200만 명이 거리로 나서면서 사태가 통제가능한 수준을 넘어 레임덕에 들어섰다는 게 전반적인 관측이다. 본인과 중국 정부 측에서는 시민들과 서구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를 보이기 싫은 모양인지 퇴임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와 별개로 정국 장악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사퇴하려고 했으나 중국에게 거부당했다고 한다.# 혼란을 수습하고 그만두라고 하는거 보면 행정장관 교체가 가시화되는 것 같다.#[13] 나중에 24분간 녹취록에서 위와 비슷한 발언을 하게된다.# 그러나 즉각 사퇴설 부인 기자회견을 했다.#
본토와 홍콩 정부에서 숨은 친중파 표를 확인하고 시위대에 대한 반격을 기획했던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외려 친중파가 역사상 볼수없었던 대패를 당하며 한번 더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심지어 2003년 국가보안법 파동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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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0일 마카오 반환 20주년 기념식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그녀의 남편 람시우보[14] 가 참가하였다. 호얏셍 마카오 행정장관, 왕이 중국 외무장관과 같이 캐리 람 행정장관 부부도 나란히 섰다. 그런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마카오 반환 기념식에서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의 축사 시간 동안 '''람시우보는 눈을 내리깔고 박수도 치지 않았다!''' 캐리 람의 남편이 대놓고 시진핑의 통제에 항의한다는 뜻을 보인 것 같은 모습이었고 하필 이게 중국 중앙 텔레비전 생방송 도중이었던지라 중화권에서는 난리가 났다. 기사 람 시우포는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에도 부인에 대해서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다"라고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20년 3월 3일 빈과일보를 통해, 홍콩 정부 내부 보고서가 폭로되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건제파 내각 지지율에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홍콩은 지금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로 캐리 람 내각이 위기를 겪고 있다. 2020년 홍콩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이런 보고서가 등장하자 홍콩 야당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기사
4월 22일부로 개각을 단행하였다.#
2020년 6월 30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UN 인권이사회 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과정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며, 미국의 대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전혀 두렵지 않다, 중국과 협력하면 잘 될 것이라고 항변했다. 기사
2020년 8월 7일(미국시간) 미국 정부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크리스 탕, 스티븐 로 전현직 홍콩 경찰청장, 테레사 쳉 법무장관, 존 리 보안장관 등 친중파 홍콩 요인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효하였다. 제재 대상에 오른 인물들은 영구적으로 미국 입국 금지가 되고, 이들이 미국에 보유하거나 미국 은행에 맡긴 자산들에 대한 동결 조치가 들어간다. 기사 중국 관영 언론들은 미국의 제재 조치를 비난했다. 기사
위 제재로 신용카드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2020년 11월 28일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제재로 인하여 은행 계좌를 사용할 수 없어 현금을 집에 쌓아두었다고 하며, 급여도 현금으로 받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부당하게'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자신은 공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참고로 그녀의 연봉은 521만 홍콩 달러로, 2020년 11월 29일 환율 1 홍콩달러 당 142.57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742,789,700(7억 4,278만 9,700)원이나 된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정치 지도자 중 하나이다. #
6. 경질 예정?
2019년08월~09월, 캐리 람 장관은 기업가들과 함께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경제와 관련된 비공개 회의를 주최했다. 기업가 중에 누군가 회의 중에 캐리 람의 발언을 녹음하고 공개해서 논란이 일어났다. 내용은 즉슨 '사태는 장기화 될 것이고, 나는 용서받지 못 할 행동을 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크게 사과하고 사퇴하고 싶다.'였다.기사
2019년 10월 23일, '''중국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경질할 것이라는 뉴스가 파이낸셜 타임즈를 통해 나왔다.''' 시위대에 밀려서 경질한다는 모양을 피하기 위해, 캐리 람은 2020년 3월 경 경질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사 홍콩 행정장관 대행으로 추정되는 2명에 대해서도 분석 기사가 나왔다.
다만 2020년 12월 기준 아직 경질이나 자진사퇴는 없는 상황인데데가, 2020년 6월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전인대에 통과시킨 것을 시작으로 점차 홍콩 민주파를 탄압하고 있기 때문에 재임기간을 마칠 가능성도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7. 관련문서
[1] 홍콩식 이름이기 때문에 Carrie가 영어 Yuet-ngor가 광동어 이름이며 Cheng은 결혼 전 성씨이고 Lam이 결혼 후 남편의 성이다.[2] 2학년 무렵에 학과를 바꿨다.[3] 한국 페미니즘 진영에서 주장하는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적용한 경우와 겉모습은 비슷해도 취지와 결론은 정반대인 것이, 자녀가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게 아니라 아내가 남편 성을 함께 쓰는 것이다. 남편은 당연히 자기의 성만 쓰고, 자녀들도 당연히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4] 홍콩은 광동어를 쓰는 지역이며 행정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문화적, 지리적으로는 광둥 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저우산은 광둥 지방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이다. 다만 중국 공산혁명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대만과 함께 홍콩으로 피난왔고, 홍콩은 다민족, 다문화를 표방하는 지역이다. 홍콩 토착인인 광동인과 함께 상해인, 객가인 등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또한 홍콩에는 광동인이라 할지라도 홍콩 토박이가 아니라 주변 광둥 성 지역에서 태어나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5] 책상이 없어 침대에서 숙제를 해야 했다고 한다.[6] 이때 캐리 람과 친하게 지냈던 운동권 학생들 중 일부는 정치활동을 시작하면서 민주파에 합류했고, 반대로 캐리 람은 중국 정부와 관계를 친밀한 관계를 지니고 이를 통해 행정장관으로까지 되면서 서로 척을 지는 관계가 되었다(...).[7] 빅토리아 항에 있었으며 영국 왕/여왕과 홍콩 총독이 홍콩에 방문할 때 이용한 부두다. 홍콩 반환식을 마치고 찰스 왕세자와 크리스토퍼 패튼 총독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갈 때도 이 부두를 이용했다.[8] 재밌는게 7은 광동어 발음으로 cat1이라고 읽는데, 성조를 달리하면 영 좋지 않은 곳과 관련있는 욕이 된다. 결국 777의 광동어 발음 '찻찻찻'은 갓갓갓에 해당하는 욕이라고 보면 된다. [9] 람의 경쟁자였던 존 창(짱춘와)은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으려 했으나 실패한 이후 민주파와 홍콩 독립운동의 지지를 얻는 방향으로 선회했다.[10] 일국양제이므로 홍콩의 형식상 국가원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나, 실질적으로는 행정장관이다.[11] 현재도 시진핑 정권에 반대하는 책을 쓴 홍콩인들이 중국 요원들에게 납치당해 중국 본토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이 법이 개정되면 이제 홍콩에서 시진핑을 비판했다가 합법적으로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갈 수 있다는 것으로, 홍콩의 자치권이 사실상 종결된다는 의미이다.[12] 관부성과 본래 성을 붙여 부른다.[13] 비슷한 사례로 초대 행정장관 퉁치화도 국가안전법 제정을 시도하려다 홍콩 시민들에게 털려서 결국 도널드 창에게 행정장관을 물려줬다. 당시 사퇴설을 일축하면서 시위대와 대립했지만 결국 시민들에게 항복했다. 이때 본인은 건강상의 사유라는 변명을 했지만 홍콩 내에서는 국가안전법 제정에 실패하고 사태 수습을 제대로 못 한 게 중앙정부에 찍혀서 레임덕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후임 행정장관직은 도널드 창이 이어받았다. 캐리 람도 퉁치화와 비슷한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와 캐리 람은 사퇴설을 일축했지만 현실은 중앙정부에서 행정장관의 후임을 물색하고 시기를 적절히 노려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14] 그런데 이 사람은 영국 국적을 가진 영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