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탕

 


'''제7대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장'''
'''鄧炳强'''
'''크리스 탕 | Chris Tang Ping-keung'''
PDSM
'''본명'''
'''鄧炳强 | Tang Ping-keung (등병강)'''
'''영문명'''
Chris Tang Ping-keung
'''국적'''
[image] 홍콩 특별행정구
'''출생'''
1965년 7월 4일(58세)
[image] 영국령 홍콩
'''학력'''
홍콩중문대학 (사회복지학, B.A.)
'''소속'''
[image]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
'''근무'''
1987년 ~ 현재
'''계급'''
처장 (Commissioner of Police)
1. 개요
2. 상세
4. 홍콩 경무처장 임명
5. 미국의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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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정치인. 2019년 11월 19일 새로 취임한 홍콩 경찰 경무처장[1]. 정치적으로는 무소속이나 친중파이다.
직전 경무처장이 스티븐 로인데 크리스 탕은 '''한 술 더 뜨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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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홍콩중문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6월 16일 홍콩 경찰에 입직했다. 크리스 탕이 경찰에 입직할 때는 1984년 중영공동선언의 발효로 인해 이미 홍콩 정부의 권력이 친중파로 넘어간 시점이었다.[2] 그래서 크리스 탕은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 시절부터 친중 성향을 마음껏 드러냈다. 크리스 탕은 경찰 입직당시 간부과정을 거쳐서 견습독찰 계급부터 시작했다. 경찰내에서 강성 친중성향과 동시에, 입직초반부에 PTU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7년뒤 진급하였을 당시엔, 삼합회 공격작전에도 투입되어서 활동하였다.
사실 크리스 탕은 '''홍콩에서 가장 반중 성향이 강한 중문대 출신'''이다. 홍콩의 대학교 중에서는 홍콩이공대학친중 성향이 가장 많고 홍콩중문대학은 반중 성향이 세다. 크리스 탕은 극단적 친중 성향이면서 반중 대학인 중문대를 나온 것이다. 덕분에 2019년 11월 크리스 탕이 홍콩 경찰청장에 지명되자 '''중문대는 홍콩 네티즌들한테서 욕을 먹고 있다.(...)'''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크리스 탕같은 놈이 나왔냐는 것이다. 실제로 과격 시위대인 용무파 다수가 이 중문대 학생들과 중등, 고등학생들이다.
교내 훈련장까지 만들 정도로 과격시위에 앞장선 중문대생 용무파들까지 이 인간 때문에 졸지에 '''사실 용무파들의 정체는 정부에게 돈을 받아 폭력 시위를 하는 알바들이다'''(...)고 매도되어 버렸고, 이는 폭력시위가 사그라들게 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3]
크리스 탕은 스티븐 로처럼 강경 친중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1997년 홍콩 반환이 이뤄지자 급속도로 승진하기 시작한다.
스티븐 로는 홍콩의 FBI라 할 수 있는 특수수사국인 CID(형사보안국)을 거쳤지만, 크리스 탕은 '''준군사조직'''이라 할 수 있는 경찰기동대(PTU), 그것도 한국경찰의 과거 백골단과 같은 사복 체포조인 랩터부대 지휘관 출신이며 대테러부대인 SDU(경찰특공대)도 거쳤다.[5] 특히 중국의 지원 하에 영국 경찰 특수부대, 미국 경찰의 각 SWAT 팀들 심지어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인 샤바크 소속 대테러부대까지 여러 해외경험을 쌓으며 전술훈련을 받아오기도 했다.
2003년 홍콩 시민들이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할 때부터 크리스 탕은 강경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고 최루탄, 고무탄, 실탄 발포를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반국가분열법 홍콩조항 개정사건 때 홍콩에서도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 때 크리스 탕은 시위 강경 진압의 선봉에 서서 시위대를 폭행하고 강압적으로 체포하는 등 악명을 쌓았다. 당시 중국의 실권자 장쩌민[6]은 크리스 탕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마음에 들어해서 크리스 탕을 랩터부대 차장으로 지명했다.
2014년 홍콩 우산 시위에서도 당연히 크리스 탕은 랩터부대의 선봉에 서서 홍콩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이 공적으로 시진핑 눈에도 든 크리스 탕은 2015년 스티븐 로가 홍콩 경찰청장에 취임하자 스티븐 로의 "추천" 형식으로 '''홍콩 경무처 작전부처장 겸 PTU대 사령관'''이 된다.[7]
한국 경찰청에 해당하는 홍콩 경무처는 영국 런던광역경찰청의 영향으로 행정부처장과 작전부처장이 나뉘며 이 중 실권은 대테러작전 등 굵직한 임무를 수행하는 작전부처장이 갖고 있는데 작전부처장에 취임한 그 자체가 이 인간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신뢰를 보여준 셈이다. 행정부처장은 한직 오브 한직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이러니하게 전공은 사회복지학과이다. 하는 짓을 보면 영 어울리지 않는데 어쨌든 형식적으로는 그래도 홍콩 탑클래스 대학 중 하나인 홍콩중문대학을 졸업한 건 맞다. 그만큼 머리가 좋으며 시위 막바지에 지능 플레이로 시위대를 핀치에 몰아 결국 시위 자체를 사그라들게 만들어 버렸다. 전임 스티븐 로 경무처장은 무리한 진압을 한 반면, 이 인물은 무섭게도 시위대의 허를 찌른 지능 플레이를 구사해 제대로 한 방 먹였으며, 시위대가 대항할 방법은 아예 없었다. 재미있는 건 스티븐 로는 홍콩 최고 대학인 '''홍콩대학 출신'''이라는 것이다. 홍콩중문대는 홍콩대학에 이은 홍콩 2위 대학이지만 홍콩대학과 레벨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의 격차보다 홍콩대와 중문대 사이의 격차가 '''훨씬''' 더 크다. 홍콩대 출신들은 중문대와 3위 대학인 과기대 출신들을 '''대졸로도 안 볼 정도'''로 엘리트 의식이 쩐다.
무슨 이유인지 디시인사이드에 이 사람을 비난하는 글이나 만화가 올라가면 신기할 정도로 잘 삭제된다. 신고 때문인지 관리자가 알아서 지우는 지는 알 길이 없다.(...)

3.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연히 크리스 탕은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에 강경하게 찬성했다. 크리스 탕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터지자 54세라는 나이를 비웃듯 시위 현장에 출동, 직접 기동복에 완전무장 상태로 나가 시위대를 때려잡는 '''노익장을 과시(?)'''[8]함은 물론이고 PTU 예하의 대테러부대 SDU도 진두지휘해 폭력시위가 벌어지는 홍콩이공대학 점거시위 때 근처 고층건물 옥상 등에 저격수를 배치, 살상용 무기를 든 시위대를 사살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과격 시위대가 토끼몰이로 몰려버린 홍콩이공대학은 고립시켜 시위대의 투항을 받아내어 어렵지 않게 진압했으며, 무리해서 공권력을 투입하기보단 말려죽이는 고사전술을 써서 비난을 최대한 피해가는 지능 플레이를 보였다.
결국 크리스 탕이 취임하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용무파 대부분은 겁 먹고 잠적해 버렸고 거짓말처럼 폭력시위가 사라졌다!!! 용무파 대부분에 대한 전원 검거 및 수배령도 내려져 신원이 파악된 자들은 전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스티븐 로 경찰청장은 50대 후반이 되어서 2010년 이후로 주로 내근직으로 근무했다. 반면, 크리스 탕은 내근직 따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시위대를 강경하게 때려잡기만 했다.
이런 강경한 모습때문에 크리스 탕은 '''"강철 주먹(Steel Fist)"'''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강철 주먹이란 표현 자체는 원래 2014년 홍콩 우산 시위때 나온 말이지만, 그 별명이 전 홍콩, 아니 '''전 세계'''에 그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2019년이다.

4. 홍콩 경무처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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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 직후 크리스 탕은 SCMP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시위대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중요한 발언들을 내놓았다.
2019년 11월, 스티븐 로 경찰청장이 정년(58세) 퇴임하기로 결정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은 스티븐 로의 연임도 권유했으나, 스티븐 로는 10월 연임하지 않고 크리스 탕을 후임으로 추천했다. 크리스 탕이 "강철 주먹"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스티븐 로시진핑한테 보고했는지, 시진핑은 바로 크리스 탕을 후임 경찰청장으로 지명했다. 스티븐 로는 11월 15일 퇴임하고, 크리스 탕은 11월 16일부터 "권한대행" 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11월 1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크리스 탕을 홍콩 경찰청장에 앉히는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어, 크리스 탕은 11월 19일 정식으로 홍콩 경무처장이 됐다.
재미있는 건 크리스 탕이 홍콩 경무처장으로 지명되자, 홍콩중문대학 출신인 걸 크리스 탕 본인도 알고는 있는지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는 것이다. 11월 11일부터 11월 14일까지 진행된 중문대 점거 투쟁은 크리스 탕 지명이 공식 발표된 11월 14일 밤에 '''홍콩 경찰이 먼저 물러나서'''[9] 홍콩중문대 측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고, 이에 중문대에 있는 시위대들이 11월 15일 논의 끝에 알아서 시위 상태를 해제하였다. 크리스 탕은 중문대 시위에 대해서는 자진해서 시위를 풀었다는 명분으로, 몇몇 주동자들만 체포하고 나머지는 신원확인만 하고 집에 보내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무래도 중문대가 크리스 탕의 모교이다 보니, 중문대 시위를 강경 진압했을 경우 '''총동문회 등에서 호적이 파일 것을 염려'''했다는 평이 LIHKG를 통해 나오고 있다.
반면, 크리스 탕은 홍콩이공대학 점거 시위(11월 17일 ~ 11월 20일)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11월 18일 크리스 탕이 현장에 출동해 직접 나와서 이공대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위대가 투석과 화염병에 심지어 까지 쏘고 형사가 화살에 다리를 맞는 등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다. 그러자 경찰은 방법을 바꾸어 이공대를 아예 봉쇄했다! 수도도 전기도 가스도 모두 끊어버리고, 이공대로 가는 모든 도로는 진입을 막았으며 근처 홍함역도 폐쇄해 시위대가 달아날 구멍 자체를 막아 버렸다. 그 와중에 수십여 명의 시위대는 육교 밑으로 줄을 내리고 그걸 타고 내려가 미리 대기타던 오토바이에 올라타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이후 무려 400명이 넘는 시위대를 체포했다. 100명 정도 남은 결사대는 당초 유서까지 써 가며 버텼으나 음식도 물도 없고, 심지어 구급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봉쇄되어[10] 대부분 투항했고 일부는 하수도 등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해 전원 검거되었으며 결국 이공대 점거시위도 진압되었다. 교내에 남아 있는 12명 역시 앞날에 기약이 없는 상태이며 몇달 간 홍콩 시위현장을 누비던 용무파는 패배감에 전의를 상실해 급속히 위축됐고, 11월 23일 이후 폭력시위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민주화 운동 자체는 몰라도 사실상 과격 폭력시위는 끝장났단 평.
11월 19일 홍콩 경찰청장 취임식 직전에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 인터뷰를 가졌다. 크리스 탕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기사
11월 20일 크리스 탕 경찰청장은 200여명의 시위대를 폭동법을 적용해서 모조리 기소했다. 기사
12월 7일 천안문 국기 계양식에 참석했다. 선거에 관계없이 중국 정부로서는 신용한다는 의사표현을 한셈이다.

4.1.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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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때 크리스 탕 경찰청장은 '''투표소 앞에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PTU 소속 전경들을 깔아놓는''' 일까지 했다.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했지만 당연히 '''친중파를 뽑지 않으면 변사체가 될 것이라고 대놓고 유권자들에게 협박하는 행동'''이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선거 투표소에는 절대 군대경찰병력을 배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선거 투표소에 경찰병력을 배치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부가 국민을 '''잠재적 테러분자'''로 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도나렌드라 모디같은 경우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지방선거 투표하러 가는 유권자를 '''탱크 앞에 고기방패로 쓰는 미친 짓'''까지 하는 바 있었다. 시진핑나렌드라 모디를 보고 크리스 탕을 통해 따라한 것인데, 그 결과는 '''엄청난 역풍'''으로 돌아왔다.
홍콩 유권자들은 경찰의 이런 행동에 신물을 느꼈고,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본토파에 몰표를 던져주며 친중파를 완벽하게 심판했다. 공민당 앨빈 양 대표는 선거 승리가 확정되자 '''홍콩이공대학에 잔류한 30여 명의 시위대를 구출하러 가겠다'''고 선포했다. 시위대는 11월 25일 빅토리아 공원(홍콩 섬)과 '''홍콩이공대학 앞에 있는 홍함역 광장(구룡반도)'''에서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11월 25일 크리스 탕은 선거 결과를 보고 멘탈붕괴 상태에 빠져서 '''선거 참패에 대한 기자들의 입장 표명 요구를 회피했다.''' 그래도 과격 시위그룹인 일명 용무파를 완전히 제압해 무력화, 와해시킨 공로가 있어서 홍콩 정부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경찰청장 자리에서 해임될 일은 없겠지만, 사실상 레임덕에 봉착했다는 것이 주 의견이다. 또한 이와 별개로 크리스 탕은 경찰 독립조사위원회의 조사 등 원하지 않는 껄끄러운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진짜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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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를 확인한 '''구룡반도 주민들은 홍콩이공대학 앞(홍함역)으로 뛰쳐나왔다'''. 무려 '''1만여 명'''이나 되는 야우침몽 구 주민들이 이공대학 앞 홍함역 광장을 점거하고 홍콩 경찰한테 홍콩이공대학 봉쇄를 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걸 전혀 들어줄 턱이 없었고, 그래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려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시민들이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충돌이 격화되자 공민당앨빈 양 대표, 공공단업연맹폴 치머만 대표, 민주당우치와이 대표를 위시로 한 민주파 정치인 협상단들이 크리스 탕을 소환했다. 선거 이전이었으면 '''절대로 안 오고 뻗댔을''' 크리스 탕은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아, 소환에 응해 바로 이공대 앞으로 와서 정치인들과 협상을 했다. 민주파 정치인들은 더 이상의 폭력시위나 무력진압 등 비극은 있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더구나 자신들이 다수파가 된 이상 이제는 폭력시위를 말릴 책임 역시 민주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협상 결과 '''민주파 국회의원들의 홍콩이공대 입장''' 및 소방차, 구급차 등 소방구조대의 이공대 출입이 허용되었다. 협상 타결 후 근처 이스트 침사추이 구급서와 침사추이 소방서에서 출동한 구급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들을 대동한 소방관들이 구조를 위해 학교로 들어간 후 1만여 명의 시위대는 이공대 주변에서 경찰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거나 주변 건물에 올라가 이공대 시위대를 응원하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렸다. 기사1 기사2 기사3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도 이전과 달리 자신들의 편인 민주파가 다수가 된 지라 굳이 폭력시위로 울분을 풀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화염병을 던지고 지하철역 등을 파괴하며 길을 막았을 시간대에 그렇게 하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피켓을 들거나 종이비행기 날리기 등 평화시위로 일관하며 진압경찰을 부끄럽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경찰 역시 진압명분이 없자 이를 보고만 있다.
정황상, 이공대학에 갇힌 나머지 학생들은 이미 용무파고 뭐고 할 것없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크게 약해지고 일부는 PTSD를 보이기까지 하는 등 상태가 심각하다. 따라서 마지막 학생들이 전원 소방관들과 민주파 국회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나온다면 이공대학 점거사태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달리 평화적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후 구급대원들과 함께 교수들이 안에 들어가보니까 학생들은 없고 18세의 일반 시위자 여성 1명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2019년 11월 28일 시점에서 이제 이공대 안에 잔류인원은 없다.

5. 미국의 제재


2020년 8월 7일(미국시간) 미국 정부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크리스 탕, 스티븐 로 전현직 홍콩 경찰청장, 테레사 쳉 법무장관, 존 리 보안장관 등 친중파 홍콩 요인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효하였다. 제재 대상에 오른 인물들은 영구적으로 미국 입국 금지가 되고, 이들이 미국에 보유하거나 미국 은행에 맡긴 자산들에 대한 동결 조치가 들어간다. 기사 중국 관영 언론들은 미국의 제재 조치를 비난했다. 기사

[1] 홍콩 경찰을 총괄하는 조직이 경무처이다. 한국의 청 단위가 중국에선 처/서 등으로 불린다.[2] 당시 홍콩 총독 데이비드 윌슨이 친중파이기도 했다.[3] 굳이 저런 음모론 말고도 용무파 사이에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대원이나 홍콩 경찰 사복경찰이 섞여 들어온 건 공연한 비밀이긴 하다. 시위대 사이에선 이렇게 섞여 들여온 중국 공산당 스파이들이나 경찰 스파이들이 폭력시위를 저지르는 모습을 캡쳐한 사진이 많이 돌아다닌다.[4] 이 때문에 홍콩 소방처 소속 소방관들과 구급대원들은 경찰들을 '''싫어한다'''. 시위가 터진 이후 정부 기관들 모두 신뢰도가 폭락하는 와중에 소방처만 신뢰도가 올라가고 있다. 그 때문인지 홍콩 소방관들은 '''경찰놈들이 싸지른 똥을 왜 애꿎은 우리가 치워야 하냐'''는 반응을 보이며 시위대를 동정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 와중에 경찰이 제복 입은 소방관도 체포해대는 바람에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인원이 부족해 현재까지 대원들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5] 이전에 랩터부대가 경찰특공대라 서술했는데 랩터부대(속룡소대)는 엄연히 경찰기동대인 PTU 소속이다. PTU는 폭동진압 경찰의 역할과 5분대기조 운용, 주요시설 경계 등 전형적 기동경찰이며 정규군이 중국의 인민해방군인 특별행정구 홍콩의 특성상 사실 상 홍콩 최대 무력조직이 PTU이다. 장갑차도 이 PTU가 갖고 있다. 랩터부대는 정식 명칭이 특별전술부대로 2014년 우산혁명 후 대규모 시위에 대비한 사복 '''체포조'''로 조직되었고, 여기 근무한 경찰관은 SDU나 최근 창설한 본청 직할 CTRU 등으로 즉각 인사이동이 가능하다. 애초 PTU에서 체력이 우수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무술 실력이 출중한 인원만 랩터부대에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은 흑색 전투복을 입어 국방색 전투복을 입는 일반 기동대원이나 우드랜드나 멀티캠을 입는 SDU/CTRU와 옷이 다르며, 딱 봐도 일반 폭동진압 경찰보다 쎄 보이고 실제로 쎄다. 랩터부대는 시위와 무관한 시민이고 외신기자고 의사, 간호사, 심지어 '''소방관'''[4]이고 간에 시위 현장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두들겨 팬다. 용무파라 불리는 과격 시위대가 진짜 겁내는 경찰은 흔히 마주치는 부실해보이는 PTU가 아닌 랩터소대이다.[6] 후진타오는 명목상으로는 주석이었지만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임기 내내 장쩌민저우융캉, 상하이방의 압력에 찌그러져 살았다. 2012년 중국 전인대에서 최상석은 주석인 후진타오가 아닌 '''아무런 직책도 없는''' 장쩌민이 앉아 있었다. 2019년 지금은 시진핑상하이방이건 공청단이건 싸그리 대숙청을 한 상태이므로 최상석에 '''당연히''' 시진핑이 앉는다.[7] PTU대 행동대장은 2005년 WTO 반대시위 때부터 모습을 드러내 온 영국인 백인 경찰간부인 당시 홍콩섬 사령관 데이비드 조던이었고 이 인간은 총사령관이다. 이 인간이 작전을 짜면 백인 부사령관이 이를 하달받아 이행하는 식. 부사령관 역시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친중 성향이 강한 인물로 시위 자체를 '''궁지에 몰린 자국(영국) 정보부가 사주한 일'''이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믿고 있고 시위대에 적대적이다. 사실 1985년 이후 홍콩 반환이 확정되자 백인이고 중국계이고 간에 경찰 내에선 친중파들이 득세했고 반중 성향 경찰들은 대거 은퇴를 택했거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아 사실상 축출되었다.[8] 홍콩 경찰기동대 PTU대와 PTU 소속인 SDU, 랩터부대는 사실상 정년이 있는데 '''46세'''이다. 이미 50대 들어서 기동경찰 현장직으로 근무하는 크리스 탕이 특이한 놈인 것이다.[9] 철수한다는 말을 캠퍼스에 대고 확성기로 엄청 시끄럽게 방송했다고 한다. 낚시일 거라 짐작한 시위대가 움직이지 않자 경찰 측은 동네 경찰관들은 빼고 경찰기동대는 진압장비를 모아서 버스에 싣고 그대로 철수해버린다. 낚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임과 동시에 진압 경찰관들의 피로도가 극심해서 철수를 결정한 듯.[10] 경찰이 이공대를 봉쇄하면서 의료진과 기자 등을 전원 체포해 의료진의 교내 진입을 막았고 소방서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구급차도 진입을 불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