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독립운동

 


홍콩 독립운동
香港獨立運動
Hong Kong Independence Movement,
(Radical) Localism in Hong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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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독립운동 깃발[1]
1. 개요
2. 설명
3. 관련 기사들
4. 홍콩의 법적 지위
5. 독립 주장의 원인
5.2. 불완전한 민주주의
5.3. 일국양제 훼손 시도
5.4. 본토와 홍콩 양 측 주민간의 정서 차이
5.5. 학생운동권의 홍콩 내셔널리즘 대두
5.6. 서방 국가와의 연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기대
6. 대내외 반응
6.1. 중화인민공화국
6.2. 대만 정치권
6.3. 중국 민주화 세력
6.4. 홍콩
6.7. 서방 국가
7. 주의할 점
8. 만약 실제로 독립한다면 일어날 일
9. 기타


1. 개요


'''홍콩 독립운동'''은 홍콩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1965년 말레이시아의 자치령으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2][3] 같은 주권 국가로 건국하려는 분리주의 운동이다.
국가 형태는 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영국과 국왕을 공유하는 입헌군주국(영연방 왕국)이 될 수도 있다.[4]
주요 구호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제창된 '''광복홍콩 시대혁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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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 독립"이라는 구호가 시위에서 대놓고 나온다.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본토파의 지지율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기사

2. 설명


'홍콩 자치운동'(Hong Kong Autonomy Movement)과는 비슷한 점이 있지만 명백히 다르다. 홍콩 자치운동은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분으로 남는 것은 인정하되, 현재 홍콩 자치정부가 일정하게 받고 있는 중앙인민정부의 간섭을 거부하고, 중국 대륙과는 다른 체제(예: 다당제, 직접민주주의, 언론의 자유)를 인정받는 홍콩인에 의한 자치를 요구하는 운동이다. 애초에 특별행정구라는 제도가 일국양제에 의거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홍콩 자치운동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일국양제를 넘어 도시국가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덴마크-그린란드 관계를 중국-홍콩에 적용하자는 취지로 보면 된다. 반면 홍콩 독립운동은 홍콩이 중국의 일개 지역임을 거부하고, 중국과 동등한 주권을 인정받는 별개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홍콩 우산 시위가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 홍콩독립 주장이 꽤 나오고 있다. 이들은 홍콩인이 "중국인" 혹은 "중국계"임을 인정하지 않고, 원래 중국 남부에서 기원한 태국인베트남인과 동류의식을 갖는다. 분리주의 성향의 홍콩인들은 남월의 고조인 조타(찌에우 다)를 홍콩-광동-베트남인의 공동 시조로 여긴다. 광동 지역의 한족은 월족이 그 조상이다. 복건, 대만, 절강, 강소, 상해쪽 한족들도 이는 마찬가지. 사실 유전자차이가 크게나는건 남부 중국과 북부 중국이고, 남부끼리는 크게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남부 중국 사람들의 유전자는 동남아랑 비슷하다. 또한 태국은 운남이 기원이고 남월이나 월족과 아무 관련도 없고 어족도 다르나 동남아인건 마찬가지라 베트남과 유전자는 비슷하다.
홍콩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애초에 1949년에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이 홍콩 주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홍콩청나라영국아편전쟁의 결과로 1842년 영구 할양+평화적 합의에 의해 추가 조차된 지역이다.
그리고 합의의 당사자인 청나라는 1912년에 멸망했고, 청나라의 지위는 현재의 대만 정부, 즉 중화민국 정부가 승계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홍콩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환점인, 아편전쟁, 청나라 멸망,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점령 시기 등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따라서 홍콩 주민들이 스스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원이 될지, 청나라를 계승한 중화민국(대만)의 일원이 될지, 영국의 식민지로 남을지, 아니면 완전 독립 국가를 건설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알다시피 베이징에서 통용되는 표준중국어와 홍콩에서 제1언어로 통용되는 광동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정도로 완전히 다른 언어다. 즉, 베이징을 수도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중국의 정치지형 변화의 진원지를 꼽자면 대부분 광둥 성을 꼽는다. 본토의 독립운동들은 반국가분열법으로 때려잡을 수 있게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를 대기시키고 있고 타이완 섬도 이를 명분으로 쳐들어 가는 게 가능하지만 문제는 중국의 국제지위가 예전과 달리 매우 높아져 그럴 경우 천안문 사태 이상의 국격 손실 및 유엔 차원에서 발동될 경제, 군사적 제재로 인한 경제난 심화가 뻔하고 현재 공산당은 경제 불안으로 지위가 많이 손상된 데다 인민들도 의식이 깨어 버려서 이전처럼 언제까지나 윽박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원래 소수파였으나 중국의 미국과의 충돌 및 패권국으로 갈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여기에 남중국해 판결 패소와 경제 불안 등으로 어느 정도 공산당의 헤게모니가 약해지기 시작하자 기성 야당인 민주파의 지지를 갉아먹으며 주류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남중국해 판결로 중국 공산당은 상당한 국제지위 타격을 입었고, 그간 중국이 무서워 찍소리도 못했던 필리핀 등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도 항행자유 보장을 외치며 중국 불법조업 어선 단속 등 강경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2015년부터 시작된 경제 불안이 공산당 체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틈타 독립 주장을 펴는 것이다.
한편 중화민국 휘하에 들어가자는 의견은 '독립운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도로 영국으로 돌아가자''' 혹은 영연방 왕국이 되자는 소수의견도 존재한다. 이를 엄밀하게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중국이 독립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영국의 힘을 빌려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된 후 영국에서 독립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의견은 존재하는데[5] 이것은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로리아 훙은 약간 생각이 달랐다. 홍콩인에게 아무런 결정권도 없었던 식민지 시절은 “단지 영국에 잠시 빌렸던 시간일 뿐”이라고 했다. 훙은 “영국의 통치 시절을 그리워할 게 아니라 중국의 신식민지가 되어 가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반면 위의 학생의 말처럼 영국으로 복귀해도 자결권이 없는 식민지 홍콩의 운명은 같다면서 영국 복귀주장을 비판하는 독립파 지지 홍콩인들도 있다. 그럼 영연방 왕국이 좀 더 쉽다.

3. 관련 기사들


“홍콩 사람 역시 중국인이어야 하지만, 나는 그냥 홍콩인으로 남고 싶다 ... 지금보다는 그때가 더 좋았을 것 같다 ... 지금의 홍콩이 암울하기 때문.” 서울신문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중국이 위대하다고 느꼈다. 만약 그 때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었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 지금은 내가 중국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매우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100번을 물어봐도 같은 대답을 할 것"

헤럴드 로이터 통신

According to a University of Hong Kong survey released on Tuesday that polled 120 youths, only 3.1 percent of those aged between 18 to 29 identify themselves as "broadly Chinese". The figure stood at 31 percent when the regular half-yearly survey started 20 years ago. In interviews with 10 Hong Kong youths born in 1997 including Chau, all of them, including an immigrant from mainland China, told Reuters they primarily identify themselves as "Hong Kongers" and their loyalty lies with the city.

화요일에 12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홍콩대학의 설문에 의하면, 18세 이상 29세 이하의 청년들 중에서는 오직 3.1%만이 "광의적 의미의 중국인"으로 규정했다. 20년 전 31%가 중국인이라고 답한 것과는 차이가 많다. 1997년생 홍콩 청년 10명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대륙 출신들을 포함하여''' 전원이 자신들을 홍콩인으로만 규정하고 (국가가 아닌) 홍콩에 충성한다고 답했다.

로이터 통신

[홍콩반환 20주년] 민주주의 급속 후퇴… ‘900억 화려한 잔치’ 속 불만 고조. 축제와 시위… 2개의 시선 교차

중국 아래서 20년… "난 중국인"이라는 홍콩 청년 30%→3%


4. 홍콩의 법적 지위


현재 홍콩은 스스로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이며 2047년까지 영국령 당시 경제 및 정치 체제 유지가 보장된다. 다만 기본법 개정으로 기간 연장이 가능하며 이와 별개로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는 중영공동선언에 의거 영구히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특별행정구 자체는 어떤 식으로든 영구하다. 영국령 당시에도 영국의 직할령이라는 형식 자체는 식민지 기간 종료 이전까지 영구했다. 단지 세부적으로 왕실 직할령에서 왕령식민지, 그리고 다시 직할 속령등으로 지위가 변했었고, 이때 홍콩 정부의 대표자는 엄연히 영국 본토에서 온 총독이었다.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원칙에 따라서 홍콩 현지인이 행정장관을 하고 있는 현재가 어찌 보면 가장 자치적인 셈이다. 홍콩은 물론 공산당 하에 있는 중국대륙 법조계도 이렇게 해석하며, 중국대륙과 홍콩, 마카오의 현지인들도 다들 자동연장이라고 본다.

5. 독립 주장의 원인



5.1. 반분열국가법 개정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입법부 기능을 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홍콩 기본법을 개정하려면 '''3년 전까지 중국 전인대의 승인을 얻으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게 홍콩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반분열국가법 홍콩조항 개정 사건'''이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물론 2044년 쯤 형식적 절차를 거쳐 승인해 줄 것이지만 어쨌든 중국 정부의 위에서부터 결정이므로 실질적인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원칙의 손상은 불가피해 이것도 문제가 많다. 그래서 이를 불안해 하는 홍콩 주민들이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2047년 이후 중국 공산당이 본토에서 내려보낸 생소한 본토 공산당원이 홍콩 특별행정구의 리더가 되진 않아도 이미 렁춘잉처럼 공산당 방침을 충실히 따르는 인물이 홍콩 정치인 중에서도 충분히 많아서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실질적 요소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2. 불완전한 민주주의


아울러 중국은 공산당 독재에 불안요소가 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홍콩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홍콩의 의회인 입법회의 의원들을 직선으로 뽑고 있지만 입법회 선거 제도 자체에 민의가 왜곡될 수 있을 정도의 문제점...이 아니라 대놓고 부정선거다. 이른바 친중파 정당들에는 보정의석이라는 게 있어서, 홍콩의 민주파 정당들은 15만 표당 1석인 반면 친중파 정당은 9만 표당 1석씩 받는다. 보정의석을 통해 표의 등가성을 대놓고 깨버리는게 부정선거가 아니면 뭔가?
홍콩의 수반인 행정장관은 아직도 간선으로 뽑는데 역시 간선 과정에서 민의 왜곡의 문제점이 있다. (구체적 문제점은 홍콩/정치 문서 참고.) 이러한 문제점은 친중파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실제로 역대 행정장관은 모두 친중파 정치인이었으며 입법회도 항상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의 민주파는 행정장관 직선제와 입법회 선거 제도 개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2017년에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하기로 약속했지만 "후보로 등록하려면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눈가리고 아웅으로 맞서고 있다.

5.3. 일국양제 훼손 시도


중앙정부의 간섭과 민주주의 침해는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강해졌다. 아예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 일국양제를 존중하지 않기도 하고, 홍콩의 반공산당 인사에 대한 탄압이나 언론 자유 침해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중파가 대세를 이루는 홍콩 행정부는 제대로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5.4. 본토와 홍콩 양 측 주민간의 정서 차이


정치적인 이유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오랫동안 공산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라는 환경의 차이가 있기에 본토 중국인들과 홍콩인들의 인식 차이는 상당히 크며, 홍콩의 경제 발전이 본토에 비해 일렀기에 경제력도 차이가 크다. 홍콩 반환 이후 본토 중국인들이나 그 자본이 홍콩으로 많이 유입되었는데 몇몇 본토 중국인들의 원정출산[6], 본토 중국인 유입에 따른 일자리 불안이나 본토 중국인 자본 유입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이 발생해 홍콩인들의 본토 중국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

5.5. 학생운동권의 홍콩 내셔널리즘 대두


현재 홍콩 내 대학의 학생운동권에서 '홍콩의 완전독립'을 목표로 내건 세력이 존재한다. 이른바 '본토주의'라고 칭하는데, 현재 본토주의를 강령으로 내건 정당의 창당은 대부분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홍콩인 독자 정체성을 표출하는 일이 강해서 중국인임을 거부하고 홍콩 내셔널리즘을 주장한다. 실제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20년간 홍콩인의 중국인 정체성은 약화되었으며, 특히 젊은 층인 20대 사이에서는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3%대에 불과하다는 홍콩대 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홍콩인 학생들 중에 한국대만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홍콩의 학생운동가인 조슈아 웡[7]의 경우, 독립은 지지하지 않지만 박근혜 퇴진 운동에 큰 감명을 얻었다며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민주주의 국가가 홍콩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 이들 중 더 나아가 한국과 대만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홍콩이 민주주의를 쟁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권이 없고 90년대 이전에는 영국에, 이후에는 중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홍콩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는 홍콩이 독립된 주권을 가지고 새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하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중국(및 영국)과는 분리된 홍콩 민족의 독자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6. 서방 국가와의 연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기대


홍콩이 독립을 시도할 경우 티베트와 위구르와 달리 이론적으로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예상되는 지원국의 경우 과거 종주국 영국, 그리고 그 동맹국인 미국을 뽑을 수 있다. 그리고 국제 도시이자 아시아의 무역, 물류 허브답게 열강의 이권이 모두 모여 있어 중국이 자기네 국력만 믿고 때려잡지도 못 한다.
그에 비하면 티베트위구르는 사실상 혼자인 내륙의 낙후 지역들이다. 티베트 독립운동의 지원을 일본 우익세력이 자처하기도 하나, 소수 민간인의 지원일 뿐이라 큰 힘이 되지는 못한다.[8] 티베트 망명정부가 소재한 인도는 아직 중국에 대등하게 맞서기에는 부족하다. 그리고 위구르의 경우 튀르크인들의 대부를 자처하는 터키의 민간에서 지지가 높긴 하나 터키도 중국에 맞서기는 부족하고, 위구르 독립운동이 IS 등 이슬람 테러리즘 세력과도 엮여 서방의 시선도 좋지 않다. 체첸 반러 세력과의 연계 방법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고 중국과 동반자로 나가는 러시아가 버티고 있어 이도 어렵다.

6. 대내외 반응



6.1. 중화인민공화국


하나의 중국을 깨트리는 매국노로 보며 극도로 적대시한다. 민주파한테도 압박을 가하는 중앙인민정부인데 분리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중국 본토 내부의 미디어에서는 거의 대부분 매국노 취급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단 민주파도 중국 국민당계통 같은 범람연맹베이징의 입맛에 맞기 때문에 좋아하고 정 민주파가 집권한다면 차라리 얘네가 집권하도록 공작하기도 한다.
중국 공산당 측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열망을 '홍콩독립분자의 국가분열시도'로 여론조작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본토인들이 홍콩의 민주파 정치인 혹은 지지자들을 '''독립분자'''라는 식으로 오해하여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6.2. 대만 정치권


일단 범람연맹범록연맹 둘 다 홍콩 내부의 민주화에 대한 지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독립운동 지지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마잉주 전 총통도 홍콩 우산 시위를 지지했고, 2016년 대만 대선에 나온 주리룬 중국 국민당 전 대표 및 훙슈주 현 대표는 홍콩 민주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범록연맹의 경우, 차이잉원홍콩 우산 시위 현장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진보당이 홍콩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한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시대역량의 경우에는 확실히 연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6.2.1. 타이완 독립운동


'''홍콩 독립운동의 든든한 아군'''으로, 홍콩과 대만 양 측의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연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양측은 스스로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됐든 중화민국이 됐든)'에 속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진 대등한 '국가' 대 '국가'로서 연대하는 것이다.

6.3. 중국 민주화 세력


홍콩의 민주파 및 그 지지자들이 중국 민주화 세력과 연계하고 서로 지지하기도 하지만 민주파들도 홍콩 자체의 독립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물론 민주파와 독립운동 세력은 모두 중앙인민정부의 홍콩 정치 간섭 및 일국양제/민주주의 훼손 시도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독립운동 사안 외에는 협력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중국 민주화 세력들은 중국본토가 민주화되어 민주 홍콩과 함께 하나된 민주주의 중국을 이루는 것이 목표지 중국과 홍콩을 분리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홍콩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중국 민주화 세력들 역시 적대시한다. 최근 들어 학생운동권 진영에서 천안문 사태 추모제 등 중국 민주화 운동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혀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홍콩 내부의 정치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지만 속내는 "역겨운 '남의 나라'의 정치 문제에 관여하기 싫다"이다. 해외 및 홍콩, 대만에 망명중인 중국 민주화 지도자는 이에 홍콩 학생운동권을 "역사를 무시하는 것들", 홍콩 학생운동권은 중국 민주화 지도자들에게 "지나(支那)[9]에게 다 대주는 창녀와도 같은 존재들"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 역시 맥락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홍콩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독립파에게 중국은 단순히 "다른 나라"를 넘어서 "'''식민 압제자들의 국가'''"다. 홍콩을 계속 중국 지배 아래 두려고 하는 한 공산중국이든 민주중국이든 그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에서 IRA가 활동할 때 영국이 비민주국가라서 테러를 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유하자면 중국 민주화 운동에의 동참은 홍콩 독립파에게는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독립운동보다는 일본 제국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라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홍콩 내셔널리즘 부분과 동일하게 이 부분 역시 홍콩 독립파의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그들의 주장을 해석하면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결론 중 하나다.

6.4. 홍콩


홍콩민주파 정당들이 모조리 홍콩의 독립에 찬성한다고 보기 쉬운데 이들은 단지 일국양제와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원칙 아래 중앙인민정부의 홍콩 정치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할 것일 뿐이며, 대부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에 대한 주권 자체는 '존중'하는 편이다. 물론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민국파 세력도 있지만 이들은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보기 어렵다.[10] 홍콩의 정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래서 독립파는 주류가 아닌 민주파 중에서도 과격한 주장을 하는 극소수에 가깝다. 그래서 아예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정치인들을 민주파로 분류하지 않고 따로 독립파 혹은 본토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한 폭력 시위 등으로 대륙에서 홍콩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드는 일부 독립운동 세력이 문제 집단으로 찍혀버린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 확대가 독립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민주파의 견해로 범람연맹 계통과 자치운동 지지자 둘 다 여기 동의한다.

홍콩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화된 중국이 아닌, 홍콩을 도시국가(City-State)로 만들어, 영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중화의 문명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 천윈(Horace Chin)[11]

홍콩 우산 시위 이전에는 직접적인 독립주장보다는 천윈처럼 덴마크-그린란드 관계처럼 홍콩을 도시-국가 개념으로 개편하자고 주장하는 자치운동가들이 주를 이루었다.
홍콩 정계는 홍콩 독립주장에 회의적이다. 렁춘잉 행정장관은 분리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고, 민주파 정치인들 중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홍콩 기본법에 의거 '홍콩 독립운동'은 홍콩 내에서 불법이다.[12]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은 '중국이 만든' 홍콩 기본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 홍콩인의 경우 홍콩의 분리독립에 부정적인 반면 신세대 홍콩인들이 조금 더 적극적이다. 청년층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규정하는 비율이 3.1%에 불과한 반면 기성세대로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늘어난다.
홍콩의 분리주의 세력들은 아직까지 주류 정치세력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홍콩 정계는 친중 성향의 보수파가 꽉 쥐고 있고, 민주파는 아직 일국양제 준수, 민주주의 지향 및 항인치항 정도에서만 머물고 있고, 중앙인민정부의 간섭은 심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이들의 미래는 암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베이징, 홍콩 양측 정부가 홍콩 내의 반본토 정서를 수수방관하거나, 강경하게 탄압하려 할 경우, 타이완 독립운동 세력처럼 홍콩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 기사 물론 아직까지 일국양제 체제는 일단 제대로 돌아가는 편이며, 당장 독립파는 극소수이고 자치 운동가들이 대부분이다. 우산 시위를 이끌은 주요 운동가 중 하나인 조슈아 웡의 경우도 독립이라기 보단 자치권의 확대 및 민주주의 보장을 주장하는 쪽에 가깝고[13] 우산 혁명에 참가한 중국 국민당계 민주파는 당연히 홍콩은 "중국"의 일원이라고 인정한다.
어떤 이는 홍콩의 독립 주장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카탈루냐 독립운동, 타이완 독립운동, 분리주의 독립운동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6.5. 대한민국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들은 다른 서방세계 국가들이나 국민들에 비해 홍콩 독립운동에 대해 우호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원래 5.18 민주화운동6.10 민주 항쟁등 여러 격렬한 민주화 운동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어,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에 꽤나 동정적인 경향이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홍콩과 중국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기존부터 역사 문제로 얽혀 가지고 있던 반중 감정, G2로 떠오른 초강대국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를 떠올리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 많은 한국인들이 홍콩의 경제 발전을 동경하기도 했고, 과거 홍콩 영화에 대한 애호 등 홍콩에 우호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모종의 이유로 혐중반중감정이 극심해짐에 따라 반중을 위한 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으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지금은 외려 좌우를 막론하고 여러 한국인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더 지지하는 상황이다.
물론 독립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없진 않으며, 홍콩 민주파처럼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지만 독립운동은 반대하는 세력'또한 있다.
다만 외교적 충돌을 우려해 여당제1야당은 암묵적으로 침묵을 유지했지만 윤상현의원 같이 개별적으로 지지를 하기도 한다.

6.6. 베트남


국가주의적인 베트남인들은 홍콩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베트남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상당한 대립 관계에 있었기에 반중 감정이 심하며, 홍콩 및 광둥 성이 같은 남월의 통치 영역이었기 때문에 원래 월족이던 홍콩인, 광동인,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푸젠성 같은 남중국의 월계 한족 주민들에게는 일부 베트남인은 묘한 동질감을 갖고 친척 민족 정도로 본다. 심지어 몇몇 극단적인 베트남 국수주의자들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도 베트남계 국가이며 따라서 월왕 구천 역시 베트남계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나라 이름이 '''월(Viet)'''[14]이라서(...) 베트남 국가주의자들은 베트남이 군대를 보내 홍콩을 해방시켜서 독립시키고 옛 고토인 광동, 광서, 해남, 홍콩, 마카오, 더 나아가 양자강 이남을 되물려(!) 중국을 분열 축소시켜야 한다는 대월민족주의까지 주장한다.[15][16] 2014년 남중국해 분쟁 및 우산 혁명으로 중국이 홍콩 및 베트남과 심하게 대립했을 때 이런 주장이 많았다. 문제는 베트남이 중국의 침공을 이겨낸 적은 꽤 있어도 공격적으로 중국의 정치에 개입할 만한 국력이 없다는 것이며, 한국이나 일본, 대만, 홍콩 등과는 달리 베트남은 스스로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가 아닌지라 중국 공산당에 개입할 명분도 없다는 것(...).[17]

6.7. 서방 국가


서방 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중국홍콩 내부 문제로 여기고 대체로 무관심하다. 홍콩 우산 시위 당시에도 미국은 "일국양제를 토대로 한 홍콩인의 홍콩인에 의한 통치와 직접선거를 지지한다"라는 논평을 냈으며 , 일국양제 문제에 합법적으로 개입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인 영국도 직접적인 간섭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분리주의자들의 영국 재편입 요구에 주홍콩 영국총영사는 "홍콩은 중국령"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중 성향을 가진 서방 국가 시민의 경우 홍콩을 식민지로 간주하여 홍콩 독립운동을 응원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 및 일본에서도 그러한 시각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한편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을 만드는 과정에서 홍콩 독립을 지원하려는 의사가 있어 보인다는 음모론이 있다. 세부적으로는, 우산혁명 이후 미국중국 견제가 더 심해졌고, 이에 따라 공산당의 입지를 약화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난이 미국 탓 이라는 음모론과 함께, 본토 중국인들 사이에 홍콩대만 독립파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음모론이 돌고 있다. 독립한 홍콩 정부가 중국에 우호적일 리 없어 중국에 맞설 만한 유일한 나라인 미국, 혹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대한민국과 협력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 외 일본의 극우 세력이 관심을 표하기도 하는데 순수하게 홍콩의 독립을 바라는 게 아니라 대만처럼 거수기 국가1이 필요할 뿐이라는 속셈은 다들 잘 알 것이다(...).

7. 주의할 점


공산당의 압제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스펙트럼도 일국양제에 따른 자치권을 보장하라는 수준에 그치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는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보아 홍콩이 중화민국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18] 따라서 홍콩 우산 시위 등을 지지한다며 발언을 하더라도 홍콩 독립론자라는 보장이 없는 보통의 홍콩인들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홍콩의 독립을 지지합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 발언을 해야 하거든 크게 모난 데 없이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같이 적절한 필터링을 거쳐 발언하는 것이 좋다.
비단 홍콩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대륙인과 홍콩인, 대만 통일론자 모두) 앞에서는 홍콩의 '독립'에 대해 되도록이면 말을 삼가는 것이 좋다. 분리 독립 주제는 어느 지역이나 민감한 문제고, 홍콩의 자치나 일국양제같은 주제는 중국도 약속했던 것이 있으니 어느정도 가능하겠으나, 하나의 중국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만큼 중국인들은 '독립' 문제에는 굉장히 민감해할 수 있다. 특히 범람연맹 지지자들이 민주파의 과반 이상이며 이들은 중국의 분열 자체를 끔찍히 싫어하니 말하면 안된다. 홍콩 범람연맹 지지자들은 강하게 자신을 중국인, 정확히는 홍콩 땅에 거주하는 홍콩특별행정구 시민인 중국 국민으로 본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이나 댜오위다오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반일 시위 등에도 오성홍기청천백일만지홍기를 둘 다 들고 나간다. 2001년 및 2005년의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파동 때도 오성홍기와 청천백일기를 든 홍콩범람연맹 지지자들이 반일 가두시위를 벌였던 바 있고 여기에 '''중국 관광객들도 합세(!!!)'''했다. 이럴만 한게 범람연맹계의 경우 과거 일본과 전쟁을 치룬 중국 국민당의 지지자들이며 개중에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중화민국군 참전 용사들도 존재한다. 욕 먹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기 딱 좋다. 정치 성향이 없는 일반적 홍콩사람도 자치권의 확대 같은 범람연맹 식의 절충안을 생각하지 급진적인 독립론에의 동조는 크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립을 지지한다고 본토인들에게 말하는 것은 '''아편전쟁과 영국의 식민지배, 더 나아가 서구 열강이 난도질한 중국 근현대사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인 앞에서 이 주제로 발언을 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19]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한다고 해도, '''홍콩은 중국 땅'''이라는 걸 꼭 알고 지지하는 게 좋다. 애초에 1997년 당시의 홍콩 반환 당시에도 중국 공산당의 지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해외 이민을 간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대체로는 중국으로 반환된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여론이 많았다.[20] 90년대에 제작된 홍콩 영화들마다 식민 본국인 영국백인들이 허구헌 날 악당으로 묘사된 것도 홍콩 내의 반영 여론과 관계가 깊다.
홍콩에서 반영 여론이 극심했느냐면, 다름아닌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중화권 국가인 홍콩에서 대놓고 영국계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가게에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내걸거나, 중국인들을 값싸게 부려먹으면서 갖은 차별과 무시를 일삼았다. 중국인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이런 인종차별 행위는 공분을 샀기 때문에, 홍콩중국으로 정식 반환되자 그동안에 당했던 것에 대한 분풀이로 홍콩 정부가 극소수의 영국계 사람들을 쩌리 신세로 만들었다. 이러니, 중국에서 섣불리 독립했다가 도로 영국에 종속될 위험 때문에, 독립 자체는 꺼리는 경향이 있다.

8. 만약 실제로 독립한다면 일어날 일


중국중국 공산당이 건재한 현재로서는[21]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만약 독립한다면 아래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 홍콩의 국가 체제를 공화국으로 할지 영국과 국가원수를 공유하는 군주국(영연방 왕국)으로 할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영국과의 강한 연대를 위해 영연방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22]
  • 국기와 국가(國歌)를 비롯해 고유의 국가(國家) 상징물들을 지정하게 될 것이다.
    • 국기는 완전히 새로 정할 수도 있지만, 영국과의 관계를 강조하고자 할 경우 영국령 홍콩기를 재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국기의 경우 이것을 비롯해 몇 가지 제안된 것들이 있다.
    • 만약 영연방 왕국이 될 경우 God Save the Queen을 그대로 국가로 하는 방안, 별도의 국가를 지정하고 God Save the Queen을 국가에 준하는 왕실찬가로 지정하는 방안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현재 많은 영연방 왕국들의 추세로 보아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거의 유력하다. 물론 공화국이 될 경우 God Save the Queen은 홍콩 내에서 특별한 지위가 없는 외국의 국가로 간주될 것이고, 홍콩은 별도의 국가를 지정하게 될 것이다.[23] 참고로 독립파들은 '홍콩성방가(香港城邦歌, The Hong Kong City-State Song)'[24]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미래 홍콩의 국가로 쓰려고 하고 있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인지도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오히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영광이 다시 오길(願榮光歸香港, Glory to Hong Kong)'[25]이 독립 지지 여부를 불문하고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얻으면서 새로 홍콩 국가라고 불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만약 현재 상태로 홍콩이 독립한다고 상정해 볼 경우 이 곡이 국가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 십중팔구 영연방에 가입하려 할 것이다.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은 영연방 왕국을 지향하든 싱가포르 등과 같은 영연방 내 공화국을 지향하든 영연방에는 당연히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다.
  • 홍콩이 독립하면 군대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만약 자체적인 군대를 가질경우 홍콩의 막강한 공업력으로 싱가포르처럼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도시 국가라는 한계와 더불어, 중국 본토에서 너무 가깝다는 것 때문에[26] 자체 군대의 보유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이나 영국 등의 친서방 국가들의 군대 주둔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 마침 현재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의 병영으로 쓰이는 건물인 프린스오브웨일스 빌딩이 있으니, 군사기지를 설치하기 위한 부지 문제는 걱정할 필요도 없다.[27]
  • 화폐는 큰 변화 없이 기존의 홍콩 달러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국영은행인 중국은행[28]발권은행 지위가 계속 유지될 진 미지수다. 중국은행이 발권은행에서 제외된다면, 1994년 이전처럼 HSBC스탠다드차타드은행 두곳에서만 지폐를 발행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홍콩 정부 직속의 중앙은행을 새로 설립해서 중국은행으로부터 발권은행의 지위를 넘겨받게 하거나[29], 영국과의 관계에 따라 영국의 국영은행인 영란은행이 그 지위를 넘겨받을 수도 있다.
  • 광동어 혹은 홍콩어 라고 새롭게 이름지어진 언어가 제1 국어가 될 것이고 영어는 여전히 공용어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표준 중국어는 홍콩인들이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제1 외국어나 선택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제2 외국어가 될 수 있다.
  • 독립하여 외교권을 얻는다면, 독자적으로 해외 각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것이다. 홍콩과 수교한 국가는 홍콩에 대사를 파견하고 홍콩 주재 영사관을 대사관으로 승격시킬 것이다. 다만, 대사급 수교를 하여도 주변국에 이미 파견한 대사가 홍콩 대사를 겸임하도록 할 수도 있다. 그 경우에는 분관으로 재편하거나 영사관으로 존치시킬 수도 있다. 일부 국가는 홍콩과 대사급 수교를 맺지 않고 영사급 수교를 맺어 영사관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홍콩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은 국가는 기존의 영사관을 폐쇄하고 대표부를 개설할 것이다. 일부 친중 국가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미 있던 영사관도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이미 홍콩 측에서 해외에 설치한 홍콩경제무역대표부는 주재국과 수교 후 정식으로 대사를 파견하고 대사관으로 승격시킬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대표부를 두지 않았던 국가에는 수교 후 대사를 파견하여 대사관을 설치하거나 주변국에서 겸임하도록 할 것이다.

9. 기타


ATV가 경영난 등 위기에 빠져 홍콩 정부의 지상파 TV 면허 말소 조치로 2016년 4월 1일을 끝으로 폐국할 때의 일이다. 방송 종료 시한인 4월 1일-2일 자정이 가까워올 때 ATV의 광둥어 채널인 本港台에서는 ATV의 미인대회 미스 아시아 수상자 중 몇몇이 모인 Miss Asia 25th 葡萄牙瑰麗巡迴(2013년 본방)의 재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명(羅霖 Candy Lo)이 이런 말을 꺼냈다.

都應該都獨立 (다른 일행: 對)

독립해야 한다 (동의한다)

特別是經濟獨立 (다른 일행: 對)

특히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동의한다)

해당 프로그램 전체 (투두 링크. 문제의 독립(?) 발언은 38:16.)
이 말이 나온 직후 마침 자정이 딱 되어 ATV의 방송이 끊겼다. 이 때문에 온갖 음모론개드립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물론 저 방송은 우리나라의 미수다처럼 미녀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성향의 방송이였으므로 정치적인 홍콩 독립운동과는 연관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저 독립 이야기도 생활 이야기를 하며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羅霖이 한 관련 발언 등을 가지고 음모론적 주장을 하기도 했다.
관련 위키문서(중국어)
여담으로, 홍콩 독립이 아니라 광동어 사용 지역을 한 덩어리로 해서 독립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하는 운동이 존재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국가의 이름은 '''대월민국'''(大粤民國, Republic of Cantonia)이다. 중화권에서는 리우중징(劉仲敬)[30]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중국이 하나의 나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과거 춘추전국시대 비슷하게 제하(諸夏)로 재분할돼서 각각 민주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데, 대월민국 구상은 이런 관점을 광동어권에 적용한 독립 운동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홍콩은 오랜 영국령 시기를 거치면서 독자적 정체성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대월민국 독립론자들은 대월민국에 홍콩을 포함시키지 않고 홍콩이 대월민국과 별도의 우호적인 독립국이 되는 것을 지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1] 이 깃발을 용사기(龍獅旗: 용과 사자의 깃발)라고 부른다. 영국령 홍콩 시절 깃발에서 유니언 잭과 문장 뒤에 있던 흰색 배경을 제거하고 방패에 우횡서로 香港이라는 글자를 덧붙인 형태이다.[2] 홍콩의 면적, 인구는 싱가포르보다 조금 많다.[3] 다만 싱가포르는 자발적 의지가 아닌, 원 소속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인종갈등 및 국가 안정을 빌미로 추방된 후 건국을 '강요받은' 나라이므로, 홍콩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조차 "싱가포르는 인프라가 열악하고 땅도 너무 좁아 독립을 원치 않았다"고 술회했을 정도다.[4] 싱가포르의 선례라든지, 요즘 영연방 국가들의 입헌군주제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으로 봐선 공화국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영국을 확실하게 홍콩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다. 어차피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상, 두 번 다시는 친중의 길을 택하지 않을테니 말이다.[5] 홍콩 독립운동 단체 중 하나인 귀영독립연맹의 주장이다.[6] 홍콩은 미국처럼 홍콩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무조건 거주권을 준다.[7]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으로 유명한 학생운동단체 '학민사조'의 멤버이자,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다. 현재 데모시스토의 대표다.[8] 사실 티베트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 진짜 문제는 위구르로, 독립운동이 거의 테러리즘에 가깝고 무엇보다 이슬람교를 숭배하기 때문에(...) 서방 세력의 지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극우들이 가끔 지원해줄 정도.[9] 중국에 대한 비칭으로 중국인에게는 상당한 모욕이다. 일본에서는 인종차별의 여지가 있다며 금지어로 지정됨.[10] 하나의 중국 문서 참조.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둘 다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며 당연히 홍콩 범람연맹은 홍콩을 "중국"의 일원이라고 한다. 당장 92공식 하에서는 중화민국도 결국 중국의 한 체제일 뿐이다. 대륙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밀려나긴 했지만 어쨌든 현 신중국의 전신은 엄연히 1911년 신해혁명으로 만든 중화민국이 맞다. 홍콩 내 국민당 및 친민당계는 단지 "중국"을 아직도 중화민국으로 볼 뿐이며, 중국 국민당이 더 낫다고 본 현 베이징 정부는 독립운동 세력보다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국민당을 맘에 들어한다.[11] 또는 호레이스 친. 1961년생. 본명은 친완칸(陳云根). 객가 출신이라 陳을 Chin으로 쓴다. 중국 공산당의 원로 정치인이었던 천윈(陳雲, 1905~1995)과는 동명이인.[12] 제1조 1항,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13] 다만 주민투표를 통해 '홍콩의 독립을 포함한'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14] 원래 나라 이름, 민족 이름으로 쓰는 越과 粤은 같은 글자이긴 하다.[15] 국내의 간도회복동북 3성 독립 지원 주장과 판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 국가 모두 제3의 세력의 지원 없이는 중국을 상대로 그럴 역량이 없다는 점에서도 동일하고. 다만 그만큼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는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이 일본과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혐일 성향을 가진 자들을 제외하면 일본에 쳐들어가자거나 일본을 분열시키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16] 물론 하이난성이나 광시 좡족 지치구, 광둥성 정도야 옛 남월에 속했으니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지만, 푸젠성과 저장성은 무리다. 전한대에는 한나라와 별개의 제후국으로 존속해 있었지만 민월과 동월이라는 명칭으로 남월과 다른 국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대 베트남과의 연관성은 그리 많지 않다. 고대에 오스트로아시아,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양쯔강 일대에서 살았다는 설이 있지만 거의 기원전 6000년전의 일로 까마득히 먼 옛날이다. 당시 월이라는 명칭 자체가 중국 양자강 이남에 살던 종족들을 싸잡아서 부르는 명칭이었기 때문이었다.[17] 다만 시진핑의 집권 이후로는 중국이 베트남과 달리 과거의 1인독재 체제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베트남이 중국 공산당에 개입할 명분이 아주 약간이나마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다.[18] 이들을 친중화민국(親中華民國) 또는 민국파(民國派)라고도 불린다. 친대파(親台派)와는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엄연히 다른데 친중화민국은 중화민국 위주의 통일을 바라는 것이고 친대파는 대만의 독립 또는 중화민국 대만 체제 그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다. 사례로 타이완 넘버원으로 유명한 Angrypug는 대만을 옹호하는 발언과 함께 중화민국의 국기, 국가를 동원해 중국인들을 농락했지만 대만 섬에 위치한 국가의 상징으로서 사용했지 중화민국 위주의 통일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가 없어 친대파에 해당한다. 주로 친중화민국은 국민당을 지지하며 친대파는 민진당을 지지한다.[19] 이는 위구르 독립운동 지지의견 표출에 있어서도 홍콩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동만주의 블라디보스토크를 빼앗긴 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분한 일인데 위구르 또한 좌종당이 겨우 수복하지 않았더라면 망조에 접어든 청나라의 판도에서 외몽골처럼 완전히 떨어져나갈뻔한 곳이며 실제로 중화민국 시기에 다시 떨어져나갈 뻔했으니, 홍콩이나 위구르 인민들이 공산당의 압제 하에 겪는 고통에 무관심한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이런 '독립운동'을 대뜸 외세의 침탈로 간주하고 격하게 반발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니다. 물론 혐중 성향의 사람들은 그런건 아랑곳않고 중국을 오호십육국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지만.[20] 다만, 이와는 별개로 중국 본토와 엮이게 된 것에는 불만을 품은 경우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본토인과 홍콩인의 삶의 질이나 시민의식은 넘사벽으로 차이나는 만큼, 반환 이후로 홍콩에 몰려드는 본토인들을 현지인들이 업신여기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여전히 본토에서 살고있는 중국인들의 경우, 홍콩인들이 물론 무작정 중국인들을 싫어한다기 보다는 "중국 공산당은 약속을 지켜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지만.[21] 중국 공산당이 당장 망한다고 해도,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홍콩이 독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22] 현재 영국 국왕영연방 왕국의 군주로서의 입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의 경제의 미래가 크게 불안해진 것도 있고, 여자에 미쳐서 조강지처를 버린 노답 왕세자(...)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의 영연방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서 왕실에 대한 지지가 크게 떨어져버린 탓도 크다. 비록 입헌군주제라서 왕의 권력이 0에 수렴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영연방 국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왕의 권위가 추락하고 회원국 각국에서 공화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상황이 외교적으로 도움이 될 리가 없는지라, 영국 정부가 이 문제에 골머리를 썩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국가가 하나 더 생긴다면, 영국 입장에서는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내에서 고립되어가던 양상을 뒤집을 수 있으니, 그만큼 반가울 일도 없을 것이다.[23] 다만 캐나다의 프랑스어판 처럼 명목상 용도로 광동어판, 표준중국어판이 나올 수도 있다.[24] 성방(城邦)은 한국 한자어의 시국(市國), 즉 도시국가에 해당되는 단어이다.[25] 오리지널인 광동어판 외에도 다른 홍콩 현지어인 영어판, 홍콩수어판도 있고, 한국어판 등 외국어로 된 버전도 나와 있다. 여러 언어판을 섞어서 만든 버전.[26] 싱가포르남중국해를 두고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기라도 하지, 홍콩은 아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27] 다만, 홍콩의 면적 문제가 있어서 이런 경우라면 공군의 주둔이 어려워진다. 이미 주둔하고 있는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마저도 홍콩 시내에는 꼴랑 무장헬기 12대만 주둔해있고 전투기수송기들은 홍콩 밖으로 쫓겨나서 본토에 있는 주변 위성도시에서 셋방살이하는 판국인데(...), 미래의 홍콩군이건 외국 공군이건 간에 홍콩이 독립한다면 짤없이 대만 등 남의 나라에다가 공군 기지를 차릴 수밖에 없다. 아니면 홍콩 국제공항을 간척하는 방식으로 확장해서 공군기지를 차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28] 국영은행이지만 중앙은행은 아니다. 중국의 중앙은행은 중국인민은행이다.[29] 중국은행홍콩 지점은 중국과 홍콩의 법률의 차이때문에, 본토에 있는 본점과는 별개의 법인으로 독립되어있다. 그래서 만일 홍콩이 독립하게 될 경우, 독립에 대한 승인 논의와 연계해서 중국은행의 홍콩 법인을 독립국 홍콩 정부에 인수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인수 후에 명칭만 중국과 관계없는 것으로 바꾸면, 독립 직후에 바로 정상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쓰면 별도의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것에 비해 돈이 덜 들기도 하다.[30] 중화인민공화국 출신의 의사(醫師) 겸 역사가인데 현재는 미국에 이민 가서 중국을 해체하고 여러 개의 국가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인물이다. 본인의 출신지인 쓰촨성의 경우 대촉민국(大蜀民國·Republic of Basuria: Basuria는 파촉(巴蜀)을 라틴어화한 표기)이라는 이름의 나라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본인을 대촉민국 임시대총통으로 자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