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 리볼버
1. 개요
콜트 사에서 생산한 리볼버 계열 권총 목록. 콜트사는 현재 주로 AR-15계열 소총에 주력하며 권총은 거의 만들지 않지만, 1836년 설립한 목적이 리볼버를 생산하는 것이었고 원통형 탄창을 쓰는 현대적 리볼버를 최초로 생산했다. 그리고 다양한 양질의 리볼버를 생산하여 현대식 리볼버의 원조라 할 수 있으며, 한때는 리볼버의 역사가 곧 콜트의 역사며 콜트의 역사가 곧 리볼버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콜트의 정책 및 여러가지 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콜트는 리볼버는 커녕 권총을 비롯한 민수용 총기는 거의 만들고 있지 않으며, 오늘날엔 S&W과 스텀 루거를 미국산 리볼버의 명가로 쳐주는 실정이다. 콜트가 현재 생산하는 민수용 권총은 싱글액션 아미 단 하나뿐이며, 그나마도 장난감 수준의 퀄리티라는 평이다. S&W이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는것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굴욕.
2. 특징
콜트의 리볼버는 타사 제품에 비해 다소 보수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다. 애당초 창업주인 새뮤얼 콜트가 싱글 액션에 비해 더블 액션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더블 액션 리볼버를 제품화하길 거부하여 더블 액션으로의 전환이 상당히 늦었고[1] , 총 프레임의 강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같은 구경의 타사 리볼버보다 다소 큰 프레임을 사용하는 편이며[2] , 편리한 푸시포워드 실린더 릴리스 대신에 다소 불편한 풀백방식의 실린더 릴리스를 고수하였다.[3] 이처럼 보수적인 설계를 고수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콜트사는 처음부터 군납 총기 제작에 그야말로 올인한 회사라는 점과 관계가 없지 않다. 신뢰도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최신 설계와 기술을 도입해 인기몰이를 하는 쪽이 유리한 민수용 총기와는 달리, 군납 총기의 제1덕목은 신뢰도이다. 군대는 편의성이나 성능이 약간 미흡하더라도 신뢰도가 높은 총기를 선호한다. 때문에 콜트의 리볼버 제품들은 상술한 대로 다소 보수적인 설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콜트 리볼버들을 시대별로 살펴보기로 하자.
3. 1830년 ~ 1860년대
본격 '''총잡이 시대.''' 서부 개척과 남북전쟁으로 인해 총기의 수요가 급증하였으며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새로운 병기 개발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수요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접근법으로 총기를 활발히 개발하던 시기이다. 아직 대세는 화약과 탄자(총알)를 따로 장전하는 수발총[4] 과 뇌관총[5] 이었으며, 한발 발사하고 나면 재장전을 해야 하는 단발총이 대부분이던 시절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한번 장전해서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는 연발총을 원하였으며, 선원으로 일하던 새뮤얼 콜트는 선박의 밧줄을 감는 장치인 캡스턴 메커니즘을 보고 회전식 약실관(실린더) 구조에 착안하여, 직접 총기 제작 사업에 투신하게 된다.
3.1. 콜트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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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t Patterson
엄밀히 말하면 패터슨은 콜트 리볼버가 아니다. 패터슨을 제작한 회사는 새뮤얼 콜트가 세운 회사이긴 하지만 회사 이름이 "페이턴트 암스 컴퍼니(Patent Arms Company)," 즉 "특허 총기 회사"라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패터슨 리볼버가 실패하면서 페이턴트 암스 컴퍼니는 도산했고, 새뮤얼 콜트가 그 실패를 극복하고 세운 공장이 콜트 아머리(Colt Armory)로 우리가 익히 아는 콜트 제작사(Colt's Manufacturing Company)의 전신이다.
아무튼 패터슨은 새뮤얼 콜트의 처녀작이자 최초로 회전식 원통형 탄창을 쓰는 현대식 리볼버이다. 명칭인 패터슨은 당시 페이턴트 암스 컴퍼니의 공장이 있던 뉴저지주 패터슨의 이름을 딴 것이다.
1836년에 설계해서 같은 해 생산되었다. 싱글액션 5연발 권총으로, 초기 모델은 화약과 탄환을 넣기 위해 총기를 반쯤 분해해야 했지만 후기형은 개량이 가해져 분해하지 않아도 쉽게 화약과 탄을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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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후기형(1839년형). 전기형(1836년형)과 달리 장전레버와 뇌관 설치용 홈이 추가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방아쇠가 안 보이는데''', 그림 하단처럼 공이를 뒤로 코킹해야 방아쇠가 튀어나오는 구조다.(영상 참조) 어찌보면 안전장치.패터슨은 텍사스 공화국(미국이 아니다. 당시 텍사스는 독립국가였다) 군대에게 군납한 권총이었는데, 고장과 파손이 너무 자주 발생하여 평가가 낮았다. 때문에 페이턴트 암스 컴퍼니는 파산하고 만다.[6]
3.2. 콜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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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Walker Colt
1846년 설계, 1847년 생산된 6연발 싱글액션 리볼버. 워커 콜트라고도 부른다.
새뮤얼 콜트가 만든 총이긴 하지만 콜트 제작사라는 회사가 아직 없었으므로 "M1847" 같은 정식 명칭은 없다.
당시 기준으로는 .44 구경으로(요즘 기준으로 측정할 경우 .457구경)[7] 실린더와 챔버가 매우 커서, 탄자 한개당 무려 '''60그레인(3.9그램)'''의 화약을 장전하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워커는 흑색 화약을 쓰는 구식 권총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의 파산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새뮤얼 콜트에게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은 텍사스 레인저였던 새뮤얼 해밀턴 워커 대위로, 그는 패터슨의 열악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연발 권총"의 잠재력에 주목하여, 콜트에게 레인저용 부무장으로 1000정의 강력한 대구경 연발권총을 제작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8]
발주자의 요청에 따라 강력한 6연발 권총으로 만들어졌기에, 콜트 워커는 총연장 40센티미터, 무게 2킬로그램의 거대한 대구경 권총으로 태어났다. 게다가 레인저들은 기본으로 라이플 1정 + 권총 2정 + 군도(사벨)를 표준 무장으로 장비하였기 때문에, 2킬로그램짜리 권총을 2정이나 갖고 다닌 셈이다.[9]
패터슨의 실패를 교훈삼아 만들어진 워커였으나,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첫번째 문제는 그 엄청난 파워인데, 화약을 워낙 많이 사용하는 총이라 약실관(실린더)이 폭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특히 실전 상황에서 급히 장전하다가 화약을 흘릴 경우, 뇌관에서 발생한 불똥이 흘린 화약을 타고 번져 다른 실린더 내의 화약까지 전부 점화시켜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틀림없이 실린더가 폭발해버린다.
두번째 문제는 장전 레버가 반동으로 인해 자꾸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워커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장전 레버를 고정하는 핀이 총열에 달려 있는데, 총을 발사하다 보면 그 충격으로 장전 레버가 핀에서 빠져나와 버린다. 이러면 장전봉이 챔버 안으로 들어오므로 실린더의 회전이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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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 워커는 원래 달랑 1100정만 생산된데다, 이처럼 실린더가 폭발해버리는 등 파손이 많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초 레어 아이템이다. 2008년에 미-멕시코 전쟁 참전 베테랑의 가문에서 전수해온 한 자루가 92만 달러에 경매에 낙찰된 바 있다.
발주자였던 워커 대위는 안타깝게도 콜트 워커 피스톨이 나온 해(1847년)에 멕시코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하지만 콜트 워커는 새뮤얼 콜트가 재기할 기회를 주었다. 콜트는 텍사스 공화국으로부터 권총 1000정을 제작하라고 받은 제작비용을 가지고 권총 1100정을 제작하였으며, 남긴 100정을 민수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를 통해 챙긴 돈으로 콜트는 1847년 "콜트 특허 총기 제작사(Colt's Patent Fire-Arms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하고 다시 한번 군납 총기사업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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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콜트 드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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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kok45의 리뷰 영상
Colt Model 1848 Percussion Army Revolver "Dragoon"
모델명 M1848. 콜트 브랜드로 출시된 최초의 리볼버라 할 수 있다. 이름대로 1848년에 출시되었으며, 콜트 워커의 단점을 개량하고 경량화한 리볼버이다.
당연히 군납용으로 만들어졌고 주 고객층이 될 용기병에서 따온 드래군이라는 이름도 붙였지만,[11] 정작 만들고 보니 미-멕시코 전쟁이 끝나버려 전쟁 특수는 누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1850~1860년대의 인기 리볼버였으며, 남북전쟁 때까지도 쓰였다.
워커의 지나친 파워를 약간 디튠하여 화약의 양을 50그레인으로 줄이고, 장전봉 이탈을 막기 위해 잠금쇠를 다는 등 다양한 개량이 가해진 리볼버이다. 이렇게 신뢰성이 향상되었기에 콜트 드래군은 평이 좋아서, 미 육군이 기병용으로 2만정 가량을 납품받았고 민간인들도 많이 샀다. 특히 멕시코 전쟁을 겪은 미 남동쪽 주민들은 대부분이 이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1860년 콜트 아미 모델 1860이 나오기까지 미 전역을 지배한 권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전사의 총'이라 불리는 코스모 드라군의 모티브가 되었다.
3.4. 콜트 네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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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스런 상자에 포장되어 판매된 M1851.
hickok45의 리뷰 영상
콜트 M1851을 후세 사람들이 부른 명칭이 콜트 네이비다. 워커나 드래군과는 달리 민간용 리볼버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6연발 .36구경(요새 기준으로는 .375구경[12] ) 리볼버이다.
군용이 아니기에 위력도 대폭 낮춰져 있으며, 25그레인(1.62그램)의 화약을 사용하는데다 탄자는 80그레인으로 작다. 덕분에 총의 경량화와 소형화가 가능하여, 약 1.2킬로그램에 총연장 약 35센티미터의 아담한(당시 기준으로) 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네이비는 당시 새로운 발명품이었던 "휴대용 총집(홀스터)"에 수납하도록 만들어진 총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리볼버는 주로 기병의 부무장으로 말안장에 걸친 총집에 수납하여 휴대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권총이 점점 작아지며 이를 휴대할 수 있도록 사람이 허리춤에 벨트처럼 차는 홀스터가 등장하자 그에 맞춰서 만든 것이 콜트 네이비인 것이다.
여담으로, 군용이 아닌데도 별명이 네이비인 이유는 M1851의 실린더에 캄페체 해전 장면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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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이 그려져 있는 총이니까 네이비.
의외로 일본 역사에 남은 총이기도 한데, 이 총의 일본제 복제품이 1860년 3월 24일 사쿠라다 문 밖의 변에서 이이 나오스케를 암살하는 데 쓰였다. 이이 나오스케는 검술의 달인이었지만 첫 기습으로 이 총에 하복부를 관통당하는 치명타를 입어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살해당했다.서부개척 시대를 다룬 게임인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온라인 판인 레드 데드 온라인에서 네이비 리볼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3.5. 콜트 아미
콜트 M1860. 통칭 "아미(Army)"다.
드래군에 이어 생산된 .44구경 6연발 권총. 말 그대로 미 육군에 납품하기 위해 생산되어, 남북전쟁때 엄청나게 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약과 탄환을 따로 넣어야 했지만, 이 총기가 쓰일 무렵 일정량의 화약을 기름종이에 싼 형태의 페이퍼 카트리지가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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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위에 올려져 있는 하얀색 담배 꽁초같이 생긴 것들이 바로 "카트리지." 아래 둥근 깡통은 뇌관이 담긴 통이다.
남북전쟁때 쓰인거로 봐서는, 콜 오브 후아레즈 2 : 바운드 인 블러드의 'RANGER'가 이모델인듯 싶다.[image]
당시 총기 치곤 명중률이 대단히 좋은 편이고 가늠자가 우수해 사진처럼 개머리판을 달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견착 발사시 후폭풍과 불꽃이 눈에 튀는 부작용이 있었고 개머리판 액서서리는 망했다. 대신 수집가들에겐 인기가 좋아 1만 5천 달러 선에서 거래된다.
TV프로 전당포 사나이들에 매물로 나온 적이 있다.
4. 1870년 ~ 1890년대
19세기 프랑스에서 발명된 금속제 탄약(카트리지)에 대한 특허를 가진 미국 회사는 스미스 앤 웨슨이었다. 금속제 탄약은 금속제 탄피로 탄자(총알)와 장약, 프라이머(뇌관)를 포장한 물건으로 그 편리함과 신뢰성에서 장약+뇌관+탄자 분리식이나 종이 카트리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물건이었는데, 이 특허를 스미스 앤 웨슨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콜트는 한동안 손가락만 쪽쪽 빨았다.
그러나 1872년 드디어 이 특허가 만료되고, 콜트도 마침내 금속제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후장식 총기의 생산 판매를 시작하게 된다. 이 콜트 최초의 후장식 금속 카트리지 권총이 명총으로 이름난 M1873 스트랩 피스톨, 일명 "싱글 액션 아미" 피스톨이다.
이와 더불어 M1860(콜트 아미) 같은 구형 피스톨의 약실관을 개조하여 금속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후장식 권총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컨버전 킷도 발매되었다.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고 신뢰성이 높은 금속제 탄피, 그리고 재장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개선된 후장식 권총은 군대의 부무장(사이드암)으로 채용되어 빠르게 보급 전파되었고, 민간인들 역시 이 최신형 권총을 호신용으로 널리 구매하였다. 그 보급도는 이전 세대의 구식 리볼버를 아득히 상회하여, 이 시대를 '''리볼버의 황금기'''라 부르기도 한다.
1870년대는 콜트사가 드디어 더블 액션 리볼버를 제품화한 시대이기도 하다. 더블 액션이란 공이치기(해머)를 젖힐 필요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총이 발사되는 기술인데, 이것이 발명된 것은 1850년대였지만 창업자 새뮤얼 콜트는 더블 액션의 신뢰성을 의심하며 자사 총기에는 싱글 액션만을 고집하였기에 콜트사 제품 중에는 더블 액션 리볼버가 없었다. 그러나 새뮤얼 콜트 사후 콜트사도 더블 액션 리볼버의 제품화에 착수, 1877년에 드디어 M1877이라는 더블 액션 리볼버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또한 1889년에 등장한 M1889 피스톨은 최초의 스윙아웃 리볼버로, 재장전을 위해 프레임을 분해하거나 분리할 필요 없이 약실관(실린더)이 통째로 옆으로 튀어나오도록 할 수 있는 편리한 권총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니 복잡하지만 오늘날의 모든 리볼버는 스윙아웃 방식이므로 그냥 현대식 리볼버와 똑같아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해 현대식 리볼버의 기초가 모두 완성된 시기가 바로 이 시대인 것이다.
4.1. 콜트 싱글 액션 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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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제 탄피로 둘러싼 카트리지를 도입한 후장식 리볼버이자. 서부개척시대의 주역이었던 유명한 권총. 미군 제식무기이기도 했다.
현재 콜트사가 생산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민수용 리볼버이기도 하다.
4.2. 콜트 모델 1877 라이트닝, 1878 프론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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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t Model 1877 "Lightning", "Thunderer", "Rain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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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t Model 1878 "Frontier"
각각 1877, 1878년도에 생산.
Forgotten Weapons의 콜트 M1877 리뷰 영상
M1878 리뷰 영상
1877년 모델은 콜트사가 최초로 더블 액션을 시도한 권총이다. 당시 이미 타 회사에서 더블 액션 리볼버를 만들어 시판하고 있었으나 사무엘 콜트는 더블 액션의 신뢰성을 의심했고, 결과적으로 타 회사보다 늦게 더블 액션 리볼버를 생산한다.
허나 역시 그의 우려대로 초창기 더블 액션 장치는 고장이 잦았고, 고치기도 힘들어 건스미스들의 기피대상이었다. 심지어 '최악의 더블 액션 장치를 가진 총'이라는 타이틀을 받기도. 물론 고장난 더블 액션은 그냥 싱글 액션으로 사용 가능하긴 했지만.
외형은 SAA와 매우 비슷하다. 사실 SAA에서 내부적 변화만 거친 거라...
1878년 모델은 1877년형을 조금 개선하고 보다 대구경탄을 쓰도록 만든 버전.
4.3. 콜트 모델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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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대로 1889년에 생산된 콜트 리볼버.
더블 액션 리볼버로 다양한 구경 모델이 있으며 (.41 롱콜트, .38 롱콜트, .38 숏콜트), 미국 해군과 육군에 납품된 군납총이다. 생산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약 5000정)
최초의 스윙아웃 방식 리볼버로, 약실관(실린더)이 프레임 자체에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에 꽂혀있는 스윙암(크레인이라고도 함)에 꽂혀있어서 약실관을 통째로 꺼내고 넣을 수 있는 권총이다.
이전까지의 콜트 리볼버는 총의 오른쪽에 뚫려있는 작은 홈을 통해 탄을 장전하고 탄피를 제거하는 방식이었기에, 한 번에 한 발씩만 장전/제거가 가능했다. 하지만 스윙암의 도입으로 탄피를 단번에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장전은 아직도 한 번에 한 발. 스피드 로더라는 물건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좋은 총이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한 시작품 수준의 물건이어서, 사용하다 보면 약실관의 회전이 조금씩 어긋나다가 결국 약실과 총열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13] 이에 비해 스미스 앤 웨슨이 7년 뒤에 발매한 모델 1896은 스윙아웃 리볼버이면서도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을 뿐더러 탄피 제거봉이라는 신기능까지 도입되어 탄피 제거가 훨씬 용이하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때문에 M1889는 총 자체의 평가는 높지 않고, 단지 프레임의 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재장전의 용이성을 크게 향상시킨 스윙아웃 방식을 처음 도입한 총이라는 데 의의를 두는 정도이다.
여담으로, 위 사진을 보면 약실관을 꺼내기 위해 뒤로 당기는 레버인 풀백 래치가 이때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4.4. 콜트 모델 M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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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아미(New Army)'라고도 불리며, 기병대와 해군 등에 지급되었다.
.38 롱 콜트 탄을 사용하는데,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필리핀 전역에서 장교가 모로족 전사에게 이 총을 6발이나 쐈지만, 그 전사는 마약을 한 데다 경번갑을 착용하고 있어서 쓰러지지 않고 달려들어 장교를 벤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비슷하게 여러 발을 쐈는데도 적을 쓰러뜨리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했고, 이로 인해 .38 롱 콜트 탄에 대해 대인저지력 문제가 제기되어, 구식 리볼버인 싱글 액션 아미를 임시로 지급하다가 콜트 뉴 서비스로 교체되었다. 필리핀 전역의 경험으로 인해 권총으로 한 방에 적을 쓰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전훈이 퍼졌고, 그 결과 저지력에 중점을 맞춰 개발된 자동권총용 탄인 .45 ACP가 등장했으며, .38 롱 콜트의 탄피 길이를 늘린 .38 스페셜 탄이 등장했고, 이 탄을 매그넘화한 것이 바로 .357 매그넘 탄이다.
서부 개척시대를 다룬 게임 시리즈인 레드 데드 리뎀션, 레드 데드 리뎀션 2에 "더블액션 리볼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인게임 히든 아이템으로 "하이롤러 리볼버"라는 버전도 있는데, 이 버전은 도박에 관련하여 각인이 되어있다(주사위, 칩 등)
4.5. 콜트 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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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t New Service
1898년 생산된, 영국산 .455 웨블리 탄을 쓰는 6연발 더블액션 리볼버.
서비스란 말이 붙은 만큼 군용이며, 캐나다군, 영국군의 정식 부무장으로 채용된다.
미군에서는 1909년에 .38 S&W 탄을 사용하는 S&W 모델 3과 대인저지력 문제로 말이 많았던 .38 롱 콜트 탄을 사용하는 콜트 M1892를 대체하기 위해 콜트 SAA에 사용되었던 .45 롱 콜트 탄을 사용하는 M1909를 채택하여 도입되었다. 탄약의 높은 펀치력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정작 도입하고 나서 2년 만에 그 유명한 M1911이 등장해서 퇴출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M1911의 수량이 부족해져 리볼버를 요구하자, .45 ACP 버전으로 실린더와 외부구조를 변경해 개발한 M1917이 재채택되어 기사회생하나, 이번엔 최대의 라이벌 스미스 & 웨슨이랑 공동생산을 하게되었다.
5. 1900년 ~ 1950년대
'''리볼버의 황혼.''' 1890년대 말, 자동화기에 관한 연구가 가속화되었고, "총포왕" 존 브라우닝옹이 자동화기의 초석을 깔아 자동권총의 시대가 열린다.
콜트 사 역시 시대에 뒤쳐지지 않게 브라우닝과 함께 콜트 M1900, '''M1911''' 등 자동 권총을 선보였고, 총기 시장의 가장 큰 시장인 군대가 리볼버 대신 자동권총으로 죄다 갈아타면서 리볼버 시장이 크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이 시기 동안 등장한 콜트 리볼버 모델은 대단히 적다. 이 시기동안 그나마 리볼버를 만든 곳이 콜트.
허나 리볼버 생산량이 줄었다 해도 새로 생산된 모델이 적을 뿐이지 그만큼 쓰이지 않은 건 아니다.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군 물자가 촉박해졌고, 자동권총도 전부 지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방 부대나 비전투 부대의 경우 리볼버를 지급받기도 했다.
비록 군대의 제식 장비의 위치는 내놓았지만, 공관서나 경찰에서는 여전히 리볼버의 수요가 높았다. 경찰 특성상 총은 사살하기 보다 범인을 무력화 하거나 저지하는데 쓰였으며, 따라서 자동권총의 장점인 대용량 탄창과 빠른 재장전이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리볼버는 특성상 고장이 잘 나지 않으며, 고장이 나도 싱글 액션으로 발사 가능하며 소형화가 쉽다. 덕분에 군대에서 밀려난 리볼버 시장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5.1. M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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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사용한 .45 ACP를 사용하는 리볼버.
5.2. 콜트 오피셜 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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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t Official Police
1927년 생산된 6연발 .38 구경 리볼버. I 프레임. 이름 그대로 경찰용으로 생산되었지만, 2차 대전 중 군에서도 일부 쓰였다. 이때부터 콜트사는 리볼버의 출구 전략으로 본격적 경찰용 리볼버를 만들기 시작했다.
5.3. 콜트 디텍티브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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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kok45의 리뷰 영상
Colt Detective Special
역시 경찰용으로 설계된 6연발 리볼버. 1927년 생산되었다. D프레임.
대단히 컴팩트해 이름 그대로 형사들이 옷에 숨기기 쉬웠다. 사실 이 제품 말고도 주머니에 숨길 만한 크기의 리볼버는 존재했으나 작은 탄을 써 화력이 약하고 대부분 내구도가 약한 중절식이었다. 덕분에 옆으로 열리는 스윙아웃식에 .38 구경탄을 쓰는 이 권총이 타사의 동급 모델보다 훨씬 잘 팔렸다.
86년에 생산을 중단하였으나 93년부터 95년까지 2년 동안 재생산했다. 재생산 버전은 그립의 재질을 고무로 바꾸고 황금 로고가 박았으며, 이로써 콜트사의 철제 리볼버의 역사는 끝났다.
형사용으로 개발된 권총이지만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에게 지급되는 권총이기도 하다. 육군의 장성용 권총은 이것이 주력이며 S&W 모델 10 2인치 모델도 쓰인다. 해/공군 장성은 거의 M10 지급.
대한민국 국군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섬나라인 일본 자위대도 사용하였다. 한국군 육군 장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그 쪽에서는 경무대가 사용하였다.
1980년대 들어 리볼버 상의 한계점 및 때마침 들어 온 SIG P220(9mm 권총)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
5.4. 콜트 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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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kok45의 리뷰 영상
Colt Cobra
1950년 생산되었다.
위의 디텍티브 스페셜에서 강철 대신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해 중량을 줄인 버전이다.
콜트 에어크류맨, 콜트 커리어, 콜트 에이전트, 콜트 바이퍼, 콜트 코만도 스페셜 등의 베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용의자인 리 하비 오스왈드는 다른 수용소로 이송하던 도중 이 총에 맞아 후송 후 병원에서 죽었다. 범인은 잭 리온 루벤슈타인(후에 '잭 리온 루비'로 개명)라는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훗날 파크랜드 병원에서 암으로 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병원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의 사망 진단이 내려졌고, 오스왈드도 그 병원에서 죽었다.
1987년에 단종되었지만 인기작이어서 그런지 2017년 Shot Show에서 스테인레스로 만든 코브라를 발표했다.
5.5. 콜트 트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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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kok45의 mk III 리뷰 영상
Colt Trooper
1953년부터 생산한 .357구경을 사용하는 I 프레임 리볼버.
이름을 보면 군용 같지만 여전히 경찰/민수용이다.
기존의 .357탄과 .38탄을 쓰는 리볼버들이 무거워 경량화 하라는 경찰의 요구에 콜트와 S&W 두 회사가 라이벌 구도가 되어 신제품을 개발하게 되며, S&W는 모델 28 리볼버를 내놓지만 콜트가 내놓은 트루퍼에 밀리게 된다. 훗날 히트 상품인 파이슨은 트루퍼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6. 1950년대 ~ 현재
'''리볼버의 고품격화 시대'''. 미국 내에서 일반인의 총기 소지가 허가되고 강력 범죄가 늘면서 경찰은 더 이상 리볼버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경찰도 베레타 등 자동권총으로 갈아타게 된다. 결국 최후의 리볼버 고객은 민간인 뿐. 리볼버 시장이 크게 줄어들자 콜트는 신제품을 구식 리볼버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내세운다.
민간인이 사는 것이라면 굳이 싸게 대량생산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으며, 비싼 금속이나 신소재를 사용하여 강도를 높이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콜트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고품격 브랜드(?) 리볼버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부 메커니즘 면에서 발전이 거의 없었고, 70년대 이후로 콜트사 권총의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리볼버 사용자들이 S&W쪽으로 넘어가는 사태가 발생. 결국 수요 감소로 도산과 회생을 반복하던 콜트는 1999년 '''모든 더블액션 리볼버의 제작 중지를 선언하여'''[14] 콜트 리볼버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만다.
6.1. 콜트 파이슨
1955년에 처음 나온 .357구경 권총이다.
6.2. 콜트 다이아몬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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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kok45의 리뷰 영상
Colt Diamondback[15]
1966년부터 생산한 소형 프레임을 사용하는 파이슨의 염가판으로, .38 스페셜, .22WMR탄과 .22LR탄을 쓴다. 22구경 모델은 파이슨의 명중률에 더 작은 탄을 써 반동이 더 적으므로, 권총을 처음 쓰는 초보들이 연습용으로 쓰기 매우 좋다고 한다. 파이슨과 마찬가지로 니켈 도금과 로열 블루 버전이 있다.
6.3. 콜트 킹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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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kok45의 리뷰 영상
Colt King Cobra
1986년 생산. .357 구경 6연발. V프레임의 트루퍼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위의 두 총기보다 내구성이 강화된 리볼버로 고탄소강과 스테인리스를 재료로 사용하였다. 파이슨에 비해 명중률은 조금 떨어지지만 수명이 훨씬 길다고 한다.
6.4. 콜트 아나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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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매그넘 버전 리뷰 영상
Colt Anaconda
1990년 생산. 다이아몬드백이 파이슨의 소구경화 버전이었다면 아나콘다는 '''대구경화버전'''이다. .50AE, .44 매그넘과 .45 콜트탄을 쓰도록 설계되었다.
파이슨과 외형은 매우 흡사하지만 프레임은 새로 개발한 'AA프레임'을 사용했다. 파이슨과 트루퍼에 쓰인 I프레임은 나쁘지 않았지만 .44 매그넘탄의 충격을 견디기 위해 더 강하고 무거운 프레임이 요구된 것이다.
.44매그넘 리볼버는 이미 스텀 루거와 S&W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이라 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초창기 버전은 조잡한 품질로 명중률이 극악해 서둘러 개선에 나서야 했다. 당시 콜트사 사정을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 결국 1999년 콜트의 리볼버 제조 전면 중단으로 생산 기간을 10년도 못 채우고 단종(…).
'파이슨의 베럴을 장착한 킹코브라 대구경 버전'이란 말이 있고 실제로 딱 그렇다고 한다. 파이슨에서 시작한 특유의 구멍 숭숭 뚫린 총신에 킹 코브라의 내구도를 가져왔으니.
1993년에는 컴펜세이터 구멍을 뚫은, 반동을 줄인 버전이 '코디악'이라는 이름으로 2000정 출시되었다. 이때 킹 코브라도 '그리즐리'라는 이름으로 컴펜세이터 버전이 1000정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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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 + 나무 위장 버전.
7. 둘러보기
[1] M1877 라이트닝이 최초의 콜트 더블 액션 리볼버이다. 이름대로 1877년 출시된 제품. 반면 로버트 애덤스가 세계 최초의 더블액션 리볼버를 만들어낸 것이 1862년였으니 (구상 자체는 1856년에 했다. #) 제품화에 15년 정도 걸린 셈이다.[2] 총을 옆에서 보면 잘 모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스미스 앤 웨슨 등의 리볼버와는 두께가 다르다.[3] 콜트는 자사 최초의 스윙 아웃 방식의 리볼버인 M1889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풀백방식의 실린더 릴리즈(실린더를 옆으로 뺄 때 잠금을 풀기 위해 밀거나 잡아당기는 버튼)를 사용하고 있다. 레버를 뒤로 잡아당겨야 실린더의 잠금이 풀려서 실린더가 빠져나오는 방식인데, 이 때문에 총을 정면으로 겨눈 상태 그대로 오른손만 사용해 실린더를 꺼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 때문에 대개는 총의 왼쪽면이 사용자를 향하게 하고 오른손 엄지로 래치를 당기거나, 아예 양손을 이용한다. (하프 라이프 2를 플레이해보았다면 장전모션이 어떠했나를 떠올려 보면 된다.) 반면 스미스 & 웨슨 리볼버는 푸쉬포워드 방식의 실린더 릴리스 레버를 사용하는데, 이는 오른손으로 총을 잡은 상태에서 엄지 끝부분으로 레버를 미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른손만으로 실린더 개방이 가능하다. 오늘날 스포츠가 아니라 업무를 위해 리볼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스피드 로더라는 물건을 사용해 리볼버를 빠르게 재장전하는데, 스미스 & 웨슨 리볼버는 왼손에 스피드 로더를 들고 오른손에 권총을 들면 신속한 재장전이 가능한 반면 콜트 리볼버는 일단 양손으로 실린더를 개방한 후에 왼손으로 스피드 로더를 꺼내야 하므로 재장전 속도가 느리다.[4] 부싯돌로 불똥을 튀겨 화약에 불을 당겨 발사하는 총이다.[5] 뇌관이라는 작은 폭약을 터뜨려서 화약에 불을 당겨 발사하는 총이다.[6] 물론 패터슨의 실패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패터슨이 네이비나 드래군과 같은 대성공을 거뒀다면 페이턴트 암스는 파산하지 않았을 것이다.[7]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오늘날 .44구경이라 부르는 탄약의 탄자 크기는 실제로는 .429인치이다. 워커 콜트의 경우 탄자 크기가 실제로 .44인치이다. 총의 구경을 정하는 기준이 복잡한 사정으로 19세기 말에 변경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44 구경 총에 쓰이는 탄자는 옛날 .44 탄자보다 조금 작다.[8] 덕분에 텍사스 레인저는 미국 최초로 리볼버를 사용한 조직이 되었다.[9] 더럽게 무거운걸로 악명높은 데저트 이글권총이 1.9kg이다. 물론 레인저들은 권총을 말안장에 수납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었으므로, 총의 무게 때문에 휴대가 곤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10]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워커 콜트의 경매가는 대개 십만~이십만 달러 언저리다. 위에서 언급한 2008년 물건은 정말 최상급으로, 신품과 다름없는 상태로 보존된 물건이었기에 80만 달러(+커미션)에 낙찰된 것이다.[11] 당시 미국엔 기마 보병편제인 용기병 2개 연대와 기마소총병 1개 연대가 전부였고 기병이란 호칭이 붙은 연대는 1855년에야 나왔다. 이러하다 보니 물적/인적 보급 혼란을 막기 위해 1854년부터 편제 통합 수순을 밟기 시작했고, 남북전쟁기인 1865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기마병 편제가 기병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덤으로 1855년에 나온 1 기병연대는 졸지에 연공서열 때문에 졸지에 4 기병연대로 밀려나게된다.[12] .357이 아니다.[13] 이는 사실 콜트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미 해군이 콜트에게 리볼버 약실관의 회전을 반시계방향으로 해 달라고 했는데, 이는 이전 콜트 리볼버들의 약실관 회전 방향과 반대였다. 때문에 콜트는 M1889의 약실관 중심의 래칫과 이것을 밀어올리는 푸시암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콜트가 제대로 만들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14] 현재 민수용 권총으로는 SAA만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군용이나 경찰용으로도 리볼버는 생산 판매하지 않으며, 자동권총은 M1911의 최신모델인 M1070CQBP-M45A1 하나만을 경찰용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권총 사업은 접은 분위기고 주로 AR-15 계열 소총에 주력하는 듯.[15] 등에 마름모 무늬가 있는 방울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