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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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양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섬나라. 지구 최동단 국가로, '''전세계에서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다'''.[3] '키리바시'라는 명칭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나라를 방문한 토머스 길버트(Thomas Gilbert) 의 성 '길버트(Gilbert)' 를 현지어로 발음한 것에서 유래했다.
수도는 타라와(Tarawa). 정확히는 베티우 섬을 위시로 한 타라와 환초 남부의 사우스타라와. 국토면적 약 730㎢에 인구는 10만 명 정도인 작은 나라다. 미크로네시아와 폴리네시아에 걸쳐서 길버트 제도, 피닉스 제도, 라인 제도 합 3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보통은 미크로네시아 국가로 보지만 때때로 폴리네시아 국가로 보기도 한다). 이 중 길버트 제도는 미크로네시아, 피닉스 제도와 라인 제도는 폴리네시아에 속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이 길버트 제도에 살기에 키리바시는 일반적으로 미크로네시아로 분류된다. 10만이 넘는 키리바시의 인구 중 라인 제도의 인구가 1만이 채 안 되고, 피닉스 제도의 인구는 세자리 수를 넘지 못한다.
적도에 영해가 걸쳐져 있고, 동쪽 끝이 날짜 변경선에 접한다. 예전에는 날짜 변경선이 국가를 통과하는 바람에 같은 나라 안에서도 날짜가 달랐다. 아무래도 불편하니 1995년 1월부로 날짜 변경선을 나라 동쪽으로 꺾어서 표준시를 바꿔버렸다. 쓰는 표준시는 UTC+12, +13과 +14로, 세계에서 가장 일찍 해가 뜨는 나라다.
2. 역사
미크로네시아계 원주민이 기원전부터 거주하여 피지, 사모아, 통가의 주민들과 교류(혹은 싸움)하며 살던 중에, 18~19세기 서양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최초로 이곳에 정착한 서양세력은 영국이었고, 그 후 쭉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다가, 식민지 시절을 거치게 된다. 태평양 전쟁 중엔 일부가 일본에게 점령되어 지금의 수도가 있는 타라와 섬이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4] 가 되기도 했다.[5]
전후에는 일부가 영국과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역사가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부분적인 자치가 시작되고, 최종적으로 1979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17년 2월 6일에 러시아의 한 백만장자가 키리바시의 3개의 섬을 임대해서 군주제 대안 러시아를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지금껏 실행된게 없는걸로 보아서는 그냥 사기 치는것이거나 재정문제로 실행을 못하는듯 하다.
3.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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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인해 국토가 물에 잠길 위험에 처해 있다. 오션섬(그나마 최고 고도가 80미터 남짓 되는)을 제외한 32개의 섬이 융기가 아닌 산호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라 고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 선교사가 성경을 번역할때 현지어에 산이란 단어가 없어 고생했다고 할 정도. 그래서 문제가 심각하다.
파도로 인한 국토의 침식으로 인해 과거에는 돌을 구해다 둑을 쌓는 방법 외에는[6] 대응 방안이 별로 없었으나, 근래에 들어 UN의 주목을 받아 지원을 받는데 성공하여 둑을 쌓는데 전문적인 지원을 받거나, 좀 더 장기적으로는 친환경적인 맹그로브를 식재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인구 과밀이 문제가 되어 왔다. 지금은 많은 주민들이 해외로 이민을 나간 상태.
2012년 키리바시 정부가 피지의 두번째로 큰 섬 바누아 레부에서 2200헥타르에 달하는 땅을 사들였는데, 한 때 이것을 두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이 모두 잠길 것에 대비해 국민들을 대피할 장소로 구매한 것이라는 오보가 있었으나 정부 측에서는 현재로서는 그러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4. 정치
4.1. 군사
군대 미보유국이다. 키리바시 경찰(Kiribati Police Service)이 치안을 담당하며 경찰 내에 준군사조직인 해안경비대가 있긴 한데 보유 함정이 '''보트 한 척'''이다. 보통 소국들도 섬나라는 어느 정도 해안경비대를 유지하는 걸 생각하면 뉴질랜드군과 호주군에 국방을 위임해버린 나라의 위엄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키리바시군 참조.
5. 경제
산호섬 특징상 농사를 지을 땅이 거의 없고 인광석 외에는 특별한 광물도 없는데 그래서 독립하기 전까지는 나우루처럼 인광석 채광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려 예산의 50%를 인광석 수출로 감당하고 있었지만 1979년 완전히 고갈되면서 경제 자립 수단이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경제적 가치가 사라지고 나서야 영국은 이 지역을 독립시켜 줬는데, 이미 자원을 다 뜯어먹은 후이니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결국 약간의 관광 산업과 수산업, 어업권 임대 및 대외 자본 투자로 연명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대부분의 재정을 외국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다.
원양어선 관련 수익으로 벌어먹는 나라인데 간혹 원양어선을 삥뜯기도 한다. 어선이 영해 침해한다고 억지를 부려 나포하며 벌금을 내라고 협박하면서 안 내면 배를 압수하겠다며 돈을 뜯는 것. 90년대 후반 선장이 한국인이었던 자스민 9호의 납치 사건도 바로 여기에서 벌어졌다. 해외에 나가있는 자국민들이 보내는 돈도 국가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
6. 사회
7. 문화
7.1. 언어
언어로는 키리바시어가 쓰이는데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 속하며, VOS(서술어-목적어-주어)라는 다소 생소한 어순을 사용한다. 자음과 모음 수가 극히 적어, 키리바시어에 자음은 m, mw, b, bw, n, t[7] , r, k, ng밖에 없기 때문에 외래어도 발음이 상당히 많이 바뀐다. 낱자도 꼴랑 13개밖에 없다.
표기와 발음이 특이하다. 키리바시어로는 Kiribati라고 쓰더라도 이 언어의 발음 변화 규칙에 따라 '키리바스'에 가깝게 발음한다. 영어로는 키리바스나 철자에 가까운 키리바디(영어에서 t가 약하게 발음될 땐 유성화가 돼서 d로 발음되기도 한다)로 발음하는 듯. 결국 키리바'''시'''라고 부르는 일이 없는 듯한데, 한국어 표기는 이상하게도 '키리바시'로 굳어졌다.
7.2. 스포츠
'''FIFA 미가입국'''으로 NF-보드 잠정 회원국이자 '''ConIFA 정회원국'''이다. 자세한 내용은 키리바시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여담으로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1979년에 피지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24로 대패당한 적이 있다.
8. 외교
8.1. 대한민국과의 관계
8.2. 중국과의 관계
8.3. 투발루와의 관계
19세기에 키리바시와 투발루는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20세기에 독립했다. 양국은 처음에 바다국경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서로 매우 협력적이고 교류가 많은 편이다.
9. 여담
흡연율이 50%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이다.
이 나라 동쪽 끝에는 키리스마스(Kiritimati)라는 큰 섬이 있는데, 이 섬 이름은 크리스마스를 키리바시식으로 읽은 것이다. 이 섬은 무수한 작은 호수들로 덮여 있는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정말로 많다. 그리고 이 섬에는 런던, 바나나, 파리, 폴란드라는 묘한 센스 이름의 마을 4개가 있는데 이 중 파리 마을은 해수면 상승에 의해 버려진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런던과 파리, 폴란드를 이긴 이 섬 최대의 마을(?)은 타브와케아란 마을. 이 섬에서는 냉전 시기에 핵실험이 벌어지기도 했다.
[1] 대략 대구광역시의 면적보다 조금 작은 정도이다.[2] 대통령 후보는 총선 직후 국회의원들이 서로에 대해 서너명 정도를 지명하며 이 중에서 국민들이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특이한 제도를 가진 나라이다.[3] 그런데 만일 이곳이 물에 잠길 경우 하루의 시작은 사모아 섬이 된다.[4] 태평양 전쟁 중 가장 격렬했던 전장 중 하나다.[5] 5척이 건조되어 2011년 현재 4척이 퇴역한 미 해군의 타라와급 강습 상륙함의 이름도 이 타라와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서 붙여진 것이다.[6] 이마저도 힘들다. 산호로 만들어진 섬이라 대륙에서는 질리게 보는 화강암과 같은 암석이 오히려 이 섬에서는 귀하다.[7] i 앞에선 s로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