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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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동부에 있는 일련의 제도로 이루어진 섬나라로, 정식 국호는 '''피지 공화국'''. 영어나 힌디어로는 'Fiji(फ़िजी)'지만, 현지 피지어로는 '비치(Viti [ˈβitʃi])'로 피지란 이름은 제임스 쿡이 통가에 지낼 때 통가인들이 비티를 '피지(Fiji)'라 부른 것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수도는 수바(Suva)이다. 1874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1970년에 독립하였다. 영연방의 일원이었으나 2009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일시 자격정지.[1] 쿠데타로 정치체제가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동쪽으로는 통가 왕국, 왈리스 퓌튀나와 가깝고, 절대적인 크기를 봤을 때는 작은 나라이지만 오세아니아에서는 호주,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솔로몬 제도에 이어 5번째로 큰 나라이다. 국토면적은 18,376㎢로 제주특별자치도의 9배정도, 경상북도보다 약간 작은 크기이다. 인구는 약 88만 명(2011)으로 부천시와 비슷하다.
2. 자연
2.1. 지리
가장 큰 섬은 비티 레부(Viti Levu) 섬으로 면적은 10,388km²이다. 경기도보다 살짝 작은 크기이며 피지 인구의 70%가 거주하고 인도계들도 몰려 있으며, 1,324m 높이의 피지 최고봉 토마니비 산이 있다. 그리고 20cm 길이의 크고 아름다운 피지 장수하늘소가 서식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큰 바누아 레부 섬은 비티레부 보단 작지만 제주도 3배 넓이의 큰 섬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키리바시가 이 섬에 땅을 사려 한다고 한다는 오보가 있었으며, 현재 정부에서는 구입하려는 계획이 없다고 한다.
피지 북쪽엔 로투마(Rotuma)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여타 피지하고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물론 의무교육으로 인하여 로투만(Rotuman)들도 의사소통하는 덴 아무 문제가 없다.
3. 역사
3,500년 전 인류가 피지로 이주해 오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은 마탕갈리라고 부르는 부족들을 형성했다. 이후 비교적 발전하였던 옆 나라 통가가 피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1643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 피지를 발견했고, 1822년 백인들이 레부카(Levuka)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백인 거주자들은 주로 선교사나 백단향 무역상들이었다.
통일 피지 왕국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은 라투 세루 에페니사 다콤바우(Ratu Seru Epenisa Cakobau) 인데, 그는 피지 동부 해안에 위치한 바우 섬(island of Bau)의 추장이었다. 주위의 섬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둔 그는 1853년 자신을 투이 비티(Tui Viti; 왕으로 번역하거나 대추장으로 직역하기도 한다.)로 선포하고 1854년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1871년에 피지 전역을 통일한다. 하지만 그 이후 닥쳐온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1855년 존 브라운 윌리엄스라는 사람의 집이 방화로 인해 탔으니 돈 내놓으라 하지, 통가는 바우 섬 일부분을 침략했지, 미국도 침공하려고 하지... 이리하여 그는 1874년 아예 피지를 영국에 그대로 넘겼다.[2] 그렇게 피지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 당국은 피지인이 게으르답시고 피지로 인도인들을 데려와 노동자로 고용했으며 토지제도가 성립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을 축적한 인도인들은 피지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의회가 생겨 피지의 추장들과 백인 남성, 그리고 1929년 부유한 인도계에게 선거권이 주어졌으나 일반 피지인들과 여성은 한참 후인 1963년에 가서야 선거권을 얻었다.
1970년 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피지 자치령이 출범했다. 독립한 피지는 경제권을 잡은 인도인 vs 정치권을 잡은 피지인의 세력다툼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은 피지인들의 동맹당이었다. 그러나 1977년 동맹당이 다수의석 확보에 실패해 인도계의 국민연합당이 정권을 잡게 되자 피지계인 조지 카콤바우 총독은 재선거를 실시해 피지계 동맹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1987년 인도계의 피지노동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피지계인 시티베니 람부카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국을 선언하고 1992년까지 군정을 실시했다.
군정이 끝나고 치러진 선거에서 람부카가 승리했으나 람부카는 1999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피지노동당의 인도계 출신 마헨드라 초드리가 피지의 총리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민간인인 조지 스페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이를 진압했지만, 진압된 후에 다시 피지인이 집권했다.
피지엔 영국에 의해 생긴 제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당시 피지 토지의 84%는 피지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이 중 대부분은 정글이거나 교통여건이 안 좋은 오지였고 해안지역(해안가 식당이나 리조트 호텔을 짓기 딱 좋은 곳)의 좋은 토지는 대부분이 인도계가 가지고 있었다. 새로 집권한 가라세는 이런 상황에 있던 피지인 우대 정책을 폈으나 군부의 바이니마라마는 가라세의 정책에 반대했고 2006년 12월 1일 기한으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막상 당일 바이니마라마가 피지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군대 vs 경찰간 럭비 경기를 관전하느라(...)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이니마라마가 응원한 군대 팀은 럭비 경기에서 패배했고, 며칠 뒤 군대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군정이 시작되었다.
이에 사법부가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일으킨 쿠데타에 대하여 위법 판결을 내리자 피지 대통령은 헌법을 무력화하고 모든 대법관들을 해임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언론들을 강경하게 탄압했다. 2012년 1월 7일 계엄령이 해제되었으며 2014년 9월 17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고 이 선거에서 현 여당인 피지제일당이 59.2%의 득표율로 과반의석(32석/50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4. 정치
피지 정부는 2010년 10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사실이 적힌 독립 문서를 잃어버렸다는 항간의 소문을 인정했다. # 물론 해당 문서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독립한지 40년이 지난 피지의 독립이 취소되는 건 아니지만 황당한 사건.
4.1. 군사
피지군은 특이하게도 제식 소총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K2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현지 학교에 재학중인 한인 학생들 중엔 수도에 위치한 군 기지에 학년 단위로 견학을 가서 소총을 들어보다가 총에 새겨진 한국어를 보기도 한다. 이는 당시 쿠데타 우두머리와 현지 한국인 교민 사업가(전두환의 친척)가 친구였던 것이 이유로, 당시 명분 없는 쿠데타로 말미암아 국제사회가 무기 판매를 거부당한 피지 정부가 이 교민 사업가를 통해 전두환 정권에 접촉하여 같은 쿠데타 동지로서의 도움을 받았다. 이 사업가를 통해 국군 예비역 장교들이 피지 정부에 채용되어 교관 등으로 복무한 바 있다. 이 사업가는 너무 독단적으로 교민사회에 군림하였고 이후 폭행혐의로 우리나라에서 기소중지가 되지만 이미 피지 시민권을 획득한 상태라서 귀국 안하고 버티는 중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람부카 대령을 도운 댓가로 당시 서든크로스 호텔과 탐부아샌드리조트를 헐값에 인수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의외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 나라 출신 PMC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영미권의 특수부대 출신으로만 뽑으려고 하면 돈도 많이 들고 많은 수를 모으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네팔이나 필리핀 등지에서 온 직원들도 많다. 피지군은 이 근방에서 의외로 규모가 큰 군대이다.
5. 경제
6. 사회
6.1. 교통
돈줄(?)을 잡고 있는 인도 피지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피지 토착민들은 자가차가 없기 때문에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피지 수도 수바 버스 터미널이 가장 붐비는 핫플레이스며, 2017년 10월을 기점으로 모든 버스결제수단이 카드만 허용된다.(학생은 노란카드, 성인은 빨간카드) 그 이전에는 동전만 허용했지만 지금은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기에 한국 관광객들에겐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여행자인 경우 1회용 카드를 제공하고 요금은 70센트~1달러 50센트(한국 돈 400원 ~ 1000원 수준으로 싼 편, 물론 이 가격은 수바 시내버스에 한해서이다. 수바에서 국제공항 난디로 가는 요금은 16불, 10000원 정도다).
의외지만 작은 섬나라(오세아니아 기준 말고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임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있다. 섬나라 중에도 일본, 자메이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뉴질랜드 등 철도가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의 소규모[3] 도서국가에는 철도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섬나라라는 특성 상 수운이 발달한 경우가 많아 대량 운송에서 철도가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피지의 경우는 자메이카를 제외하고 위의 나라들에 비해 땅이 좁은 케이스라 다소 특이하다. 물론 피지의 철도는 여객 목적이 아닌 피지에서 많이 생산되는 사탕수수를 나르기 위한 전용철도이다, 주로 수도가 위치하고 있고 면적이 큰 비티 레부 섬과 바누아 레부 섬 등의 해안가를 따라 노선이 위치하고 있다. 작은 미니 기관차에 미니 화물칸으로 이어져 운행되며 궤도 역시 협궤다. 본격적인 여객용 열차는 없으며 일부노선에서 여객운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열차가 일주일 당 몇 편 다니는 수준이라 큰 의미는 없다. 그 이외에도 싱가토카 근교 해안가를 중심으로 관광용 열차가 깔려있지만 본격적인 여객용이 아니고 애초에 관광이나 체험학습용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가격대가 상당히 비싼 편.
6.2. 학제
초등학년과정(Primary School)이 한국의 6년과 달리 8년이며, 중고등학교과정(Secondary School)이 한국의 6년과 달리 5년이다. 이는 영국의 사립학교학제와 동일한 것이다. 영국령 시절의 영향.
Secondary School을 졸업 한 뒤에는 대학교 입학 전 기초예비과정(Foundation)을 수강하는데 필수이며, 이 코스는 고등학교에서 할 수 있는 Form7 과정과 같으며, 대학교에서 수강할 수도 있다.
수업의 모든 과정은 영어로 이루어 진다.(물론 피지어 시간이나 힌디어 시간에는 각각 언어를 씀.)
6.3. 민족
인도계 주민이 많은데, 이들은 식민지 시절 영국이 인도에서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써먹으려고 이주시킨 이들의 후손이다. 이는 피지 토착민들이 매우 게을러서 도저히 일을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열대 지방의 토착민들은 기후 문제 등으로 서양 사람들이나 동양 노동자들처럼 장시간 노동할 수 없었는데 그게 게으른 것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이들은 굳이 노예와 같은 처지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메리트도 없었다. 돈이야 벌 수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조건이 극악인데다가 고생한 것에 비해 월급은 쥐꼬리만했으니 이대로 사는게 훨씬 더 나았고 일단 기본적인 경작지를 가진 이상 일하지 않으려는게 당연하다. 또한 이들은 풍부한 식량 생산으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공동 생산사회 안에서 산다. 현대에 와서도 이 공동생산 개념이 남아있어 개인이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도 마을 공동체 구성원에게 그 돈을 상당 부분 빼앗긴다. 만약 자기가 번 돈이라고 자기 혼자 쓰면 마을에서 추방 또는 처벌 받게 된다고. 그러다 보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게 된다.[4]
비만율이 높다는 것도 피지인들이 게으르다는 편견을 가지게 한다. 이렇게 살이 찐 요인은 호주, 뉴질랜드에서 수입되는 저렴한 저질 고기의 여파가 크다.[5] 머튼 플랩이라고 불리는 양고기 뱃살이 대표적인데 다른 고기[6] 나 같은 양고기의 다른 부위에 비해 가격이 절반 수준의 고기인데 진짜 고기반 지방 반이다.[7] 피지는 과거 고기가 귀해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닌 한 키우던 돼지를 잡지 않았고 일상에서 생선을 먹는 것이 고작이였다. 피지는 불과 100년 전까지 식인(!)문화가 있었을 정도로 육류를 구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 피지에 지방이 많고 냄새가 다소 나더라도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가격의 값싼 고기가 대량으로 수입된 것이다.[8] 피지에서 양고기 뱃살 수입을 금지했지만 양고기 뱃살과 같이 다른 양고기 부위들을 수입해오면서 바로 해당 제재는 무력해졌다. 심지어 양 한마리를 수입해 오면서 양 내부에 양 뱃살을 임의로 꽉꽉 채워오는 경우도 흔하다.
아무튼 오늘날에도 피지인들은 매우 느긋한데, 모든 일 처리가 거북이처럼 느긋느긋하다. 특히 경찰은 신고가 들어와도 늦게 오는 것으로 유명해서, 도둑이 들었을 때 현지 한인들은 일단 근처 믿을 만한 이웃이나 한인 지인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런 피지에 어느 정도 서구적 관점을 가진 인도인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피지인들보다 학력이 높았고 힘들게 번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상공업과 관광업을 일으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경제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에도 인도계들이 피지의 경제를 엄청 움켜쥐고 있어서 불만이 크다. 인도계에 대한 반발로 토착민으로 구성된 군부의 쿠데타가 수차례 있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토착민과 인도계 주민의 대립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남아있다.
덕택에 피지에서 인도 요리가 대중화되어서 탈리(인도식 백반)나 커리, 할루와(인도 과자) 같은 음식을 값싸게 즐길 수 있으며 영화관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함께 인도 영화도 많이 상영된다.
1990년대 후반에 인도계들의 경제 장악에 불만을 품은 피지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경제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려 물러섰던 적도 있다. 그리고 당시 한국 대사관은 문 걸어 잠그고 지들만 튀는(!) 비범함을 보여, 교포들에게 두고두고 욕먹었다. 결국 호주군 군함으로 피신할 수 있었고 해당 관계자 몇 명이 모가지당하긴 했지만 교포들은 "그래봐야 말단 몇 명 자르겠지"라고 비웃었다.
원주민들인 피지인들은 멜라네시아인과 폴리네시아인들이 혼혈된 민족이다. 지리적으로도 폴리네시아와도 가깝다보니 폴리네시아계 이주민들이 많이 오기도 했었다. 피지인과 비슷하지만 다른 혈통인 로투마섬에 사는 로투마족 역시 멜라네시아계와 폴리네시아계의 혼혈이다.
7. 문화
7.1. 스포츠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주로 스포츠 뉴스에서 피지의 국민 영웅(정확히는 인도계들의 영웅이며 토착민들에게는 '그게 누군데?' 수준)이자 2004년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골프 스타인 비제이 싱(Vijay Singh)을 통해 이 나라의 이름을 들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대양주권 영연방 국가들처럼 럭비가 초강세인 국가. 특히 7인제 럭비에 있어서는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다(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럭비는 15인제 럭비를 의미하고 여기서는 10위권을 형성 중이다).
그만큼 럭비가 인기가 많은데, 럭비 월드컵에서도 1987, 2007년 대회 8강에 진출한 바 있을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복병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충 축구에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강호의 이미지를 그대로 생각하면 된다. 전략 전술보다는 피지컬이 강조되는 7인제 럭비에선 럭비 최강 뉴질랜드마저 압도하는 상황인데[9] , 2016년 7인제 럭비 세계대회인 HSBC가 개최하는 7인제 럭비를 하는 도시 중에 하나인 홍콩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했는데, 여기서 피지는 한국을 58:0으로 털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럭비에선 소위 1st Tier(뉴질랜드. 호주, 남아공, 아르헨티나,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로 분류되는 국가들 못지않게 엄청 잘했었다. 피지 럭비의 가장 우상받고있는 세레비가 현역으로 활약을 했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세레비가 은퇴하고 나서 피지컬은 좋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략의 부재로 1st Tier 팀들에 비하자면 완연하게 한 수 아래로 취급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피지컬이 강조되는 7인제 럭비에선 최강의 전력으로 분류되었으나, 여기서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뉴질랜드, 호주, 잉글랜드등에 곧잘 털렸었다. 이에 2012-13 시즌이 끝난 이후, 피지는 전 잉글랜드 7인제 럭비 코치인 벤 라이언을 코치로 영입했다. 벤 라이언은 기자회견때 피지가 피지컬은 좋지만 전략이없어서 항상 아쉬웠다는 말을 했었고, 벤라이언이 코치로 영입된 이후 잉글랜드를 꺽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피지는 7인제럭비에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결승전에서도 뉴질랜드를 몇 차례 꺽기도 하며 뒤지기도 했다. 뉴질랜드하고 피지가 결승전에 붙는 게 몇 번 일어나기도 했으며, 항상 중계진들은 이를 빅매치라고 불렀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7인제 럭비 결승전에서 43-7로 영국을 뭉개고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받았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HSBC가 주최하는 럭비 7인제에 출천한 피지 대표팀들의 선수들을 봐왔기때문에 대부분의 대표팀, 그리고 코치들은 피지가 최소 4강은 올라갈꺼라고 확신을 했다. 8강전에서 뉴질랜드 vs 피지가 결정되었을 때, 중계진들은 이건 럭비 역사상 빅매치가 된다고 했고, 피지가 이겼다! 결승에서 영국을 꺽은 후 올림픽 메달을 받자마자 피지 남자 7인제 럭비 코치인 벤 라이언은 코치직을 올림픽 이후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전에 했던 기자회견에서 언급은 했지만, 우승을 했는데 다시 한 번 언급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짐작이 간다. 일부 피지언들은 아쉬워하고 있지만, 사실상 벤 라이언 코치가 후임을 한 이후 뉴질랜드를 꺾은 횟수가 많아져서 오히려 고마워하고있는 편.
한달 뒤, 뉴질랜드 7인제 럭비팀 코치인 골든 티엣젠은 코치로써 은퇴를 선언했다. 이유인 즉슨 올림픽 럭비에서 안좋은 성적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데... 8강전에서 졌다고 하지만 상대는 피지였다. 뉴질랜드 국민들도 피지가 이길지 뉴질랜드가 이길지 모르는 상태였다. 단지 조편성이 잘못되어 8강전에서 졌다는 이유로 22년 동안 코치를 하던 7인제 럭비팀을 버리는건 불성실한 태도라고 여러차레 까이는 중이다. 이후 벤 라이언이 뉴질랜드 코치가 된다는 기사가 보도가 나가면서 피지국민들의 분노를 삼고, 몇몇의 피지 국민들은 골든 티엣젠이 피지 7인제 코치로 돌아왔으면 하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축구는 세계적으론 약체이지만 오세아니아에선 꽤 하는 편이다.[11] OFC 네이션스컵 4강에도 여럿 진출했고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미국령 사모아를 13-0으로 이겼으며 호주에 0-2로 지는 선전을 벌였다. 당시 호주가 오세아니아 예선에서 6전승 66득점 0실점을 한 것을 봐도 피지는 호주에 최소실점을 당했다.그것도 호주 안방에서 6경기 모두 열렸으며 미국령 사모아를 31-0이라는 A매치 공식 최다득점 기록으로 이긴 호주 측이 피지는 축구못하니 이로 물어뜯으니 조심해야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 피지에서 우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분노했던 터였기에 엄청 선전한 거다.
하지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에 0-8로 대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피지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그래도 멕시코에는 비록 1:5로 패했지만, 선제 골을 넣으며 나름 선전했다.[12]
농구나 배구도 일부 경기를 벌이기도 한다. 농구같은 경우는 강호급인 호주 농구인들이 와서 관광하러 왔다가 머무르면서 농구 코치로 일하기도 한다. 당연히 약체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빼면 오세아니아에서 농구로선 수준급 인프라와 실력을 가진 편.
2000년에 협회가 설립된 피지야구는 아직 초창기 수준이지만 일본인들의 적극적인 보급과 지원으로 각 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저변과 기량이 늘어나고 있다.
7.2. 전통 문화
전통 행사로 '카바'라는 의식이 있다. 고추과 식물의 나무 뿌리를 갈아서 물에 타 거른 전통 음료인 '양고나'를 '타노아'라는 큰 통에 담고 둘러 앉아서 나눠 마시는 의식. 외부인을 환영하며 친구로 삼겠다는 맞이 행사이며 매우 엄숙하게 시행한다. 이 음료는 술과는 달리 진정 효과가 있어서 마시면 마실 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고. 피지 현지인들은 우리가 소주마시듯이 매 주에 한번씩은 꼭 카바타임을 한다. 서구 문명이 전파되기 이전에 피지인들은 일이 끝나면 카바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냈다고 한다. 카바에 알코올 성분은 없으며 그래서 카바의석에 미성년자들도 멀쩡히 참석한다. 다만 카바 자체가 그렇게 맛있는 음료는 아니며 현지인이 아니라면 흙탕물이나 풀내나는 맹물, 건전지를 갈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날 것이다. 양고나를 마시기 전에 박수를 한 번 치고 원샷후 다시 박수를 세 번 치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또다른 전통의식으로 불건너기 의식이 있는데 이름과 다르게 진짜로 불위로 걷는 건 아니지만 진짜로 불로 달군 뜨거운 돌 위를 맨발로 걷는다. 피지의 오랜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버티레부섬 앞바다에 떠있는 벵가섬의 사와우족의 전사 투이가 바다에서 큰 뱀장어를 잡았다가 놓아주면서 그에게 신비한 능력을 받아 불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투이의 직계 자손들은 사제로, 그 능력을 전수받아 불 위를 걷는다고 한다. 불 건너기 의식은 우선 땅에 구멍을 파고 돌을 채운 다음 그 위에 땔감을 쌓아 불을 지른 후 2-3시간 동안 장작을 태워 돌이 뻘겋게 달아오르면 사제의 신호로 건너가는식으로 의식이 진행된다. 물론 일반인은 그대로 따라했다가 그대로 병원행이지만 이 돌을 걷는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13] 단련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일반인들은 따라하지 말자.
8. 국기 변경 계획과 취소
2013 신년 담화에서, 피지 정부는 새로운 피지인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차원에서 새로운 국기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담화가 있기 몇 주 전에는 동전과 지폐에서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2015년 2월 3일, 바니마라마 총리는 피지의 국기가 바뀐다고 다시 한 번 확인을 했으며, 공모전이 열린다고 발표했다. 2015년 10월 11일, 피지의 광복 45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국기를 게양한다고 했다. 공모전을 통해 2015년 6월 9일에 23개의 최종 국기후보안이 선정돼 공개되었다. 6월 30일까지 최종국기후보 중 5개의 국기를 다시 추린다고 했지만 몇차레 연기 끝에 2016년 9월 7일에 23개의 최종 국기후보안 중에서 5개만 추린후 국민들의 투표가 이루어진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는 1개로 추려진 다음에 뉴질랜드와 같은 방식으로 국기 변경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질 거라고 전망되었다. 23개의 국기 후보들 중 최종안이 확정되면 현재 유니언 잭이 들어가있는 국기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국기가 피지의 국기가 될 예정이었다. # 이곳에서 23개의 최종국기후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근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자국 럭비팀이 우승하자 갑자기 계획했던 국기변경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9. 외교
10. 관광
대한항공에서 직항편을 운영하고 있었다(A330-200). 항공편명은 KE137. 매주 일화목 인천 출발, 월수금 난디 출발. 비행시간은 난디행 10시간10분. 인천행 10시간 35분으로 잡혀있다. 난디 국제공항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도시들은 꽤 다양하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괌, 인천, 오클랜드,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홍콩, 하와이, 도쿄 등. 다만, 중국 본토, 유럽으로의 직항편은 아직 없다.[14] 그러나 2019년 10월부터 대한항공의 피지 직항편이 단항되었다.
제대로 조사해 보지 않고 피지로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서부터 피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국제공항이 있는[15] 난디[16] 는 섬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고[17] 수도인 수바는 섬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데[18] 이 거리가 약 180km 가량 되므로[19] 혹여 택시라도 탔다가는 미칠듯한 요금(약 150 피지달러: 2010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약 10만 원. 물론 대한민국이라면 싼 편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진입 거리를 생각하고 탔다면 큰 낭패)에 떡실신되니 주의하자.
시간이 넉넉하다면 Sunbeam이라는 관광버스를 타는 것을 추천. 난디 국제공항에서 수바까지 피지 달러로 2012년 7월 현재 16불.(단 중간 중간에 서서 4시간이 걸린다는 게 흠) 시간표는 Sunbeam 그리고 난디 국제공항에서 환승해서 바로 비행기로 나우소리 국제공항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 수바까지 가장 빠르게 갈수 있는방법이지만 가격이 꽤 세다. 거기에다가 공항 사용료+버스(혹은 택시비)를 추가 지출해야 하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방송된 적이 있다. 낙원의 부활 피지
11. 창작물에서
- 대항해시대 2에서는 왜인지 여기에서 비행류를 발견할 수 있다.
- 캐스트 어웨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모누리키 섬(Monuriki Island)은 2017년 한국의 SBS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이 실비아를 찾아서 가고 싶어하는 국가이다.
- 철권 1에서 스테이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철권 2에서의 로저(철권) 스테이지는 사실상 철권 1 피지 스테이지의 재활용이며, 브금도 다시 쓰였다. 그리고 철권 태그 토너먼트 2에서 로저 스테이지를 기반으로 이터널 파라다이스라는 스테이지로써 두번째 리메이크가 되고 역시 브금도 2차 리메이크되었는데 원곡충실형으로 리파인되었다.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엔딩에서 로단의 새 보금자리로 언급된다.
[혼합된체제] 5.72점[1] 2010년까지 선거를 하라고 했지만 씹어서...[2] 참 안습인 게, 1862년 영국에게 양도를 제의 했지만, 영국은 다콤바우가 피지 전체에서 피지의 왕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고 거절을 했다.[3] 일본과 쿠바 등 면적이 좀 되는 섬나라는 웬만해선 철도가 깔려있다. 그리고 이 중 일본은 아예 철도가 주 이동수단이다.[4] 현대는 이것이 일종의 공동 대지주 개념이 된 듯.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은혜로 교회 취재차 갔을 때 추장이 대표로 나왔으며, 은혜로 교회측 기업인 그레이스 로드 측으로부터 학교 건립과 한국 농업기술 전수, 해당 부족민 선고용을 약속 받았으나 이행하지 않아 부족민들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즉 추장이 부족민 대표로 토지와 노동력 등 마을의 자산으로 투자와 협력을 섭외하고, 그 혜택을 부족민들이 공유하는 방식인 듯.[5] 1985년 당뇨병 발생률이 4%로 현재 대한민국의 당뇨병 발생률 13.7%의 3분의 1 수준이였다. 현재 호주산 저질 고기의 수입이 이루어진지 30년이 지났는데 그에 맞게 피지인들의 성인병 발병률도 올라 갔다.[6]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의 경우 비싸다.[7] 양털을 얻기 위해 도축하지 않고 오래 키운 머튼의 경우 기름 투성이에 고기에 냄새도 심해 호주 사람들은 먹질 않았다. 판로가 없는 이 저질 고기가 호주처럼 제대로 된 고기를 수입할 여력이 안되는 남태평양 개발도상국인 피지와 같은 섬나라에 수출이 이루어진 것이다.[8] 이러한 기름기 있는 고기는 맛있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흔한데 한국과 일본만 하더라도 기름기 가득한 쇠고기를 고급으로 취급하며 크게 선호하며 잘 먹는다.(한국 한우와 와규만 하더라도 최고급 부위는 지방에 고기가 마블링 되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엄청난 기름기를 자랑한다.)[9] 피지인은 뉴질랜드 마오리족과 함께 백인 못지 않게 몸집이 크다는 평이 있다.[10] 별칭: Bati[11] 오세아니아 지역은 전체적으로 축구를 엄청 못한다. 그나마 호주와 뉴질랜드가 강호이긴 한데 호주는 본적을 아시아로 옮겨버렸고 뉴질랜드 혼자 남아 양민학살을 하는 중. 하지만 그 뉴질랜드도 세계적인 강호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피지 축구 실력이 뉴질랜드 바로 다음쯤 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늘과 땅차이... 그래도 오세아니아에서는 상위권에 속할 정도이니 축구를 피지만도 못하는 나라가 오세아니아에는 널려 있다.[12] 솔직히 피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게 독일이야 뭐 만년 우승후보이고 멕시코도 수준급인데다가 대한민국도 아시아 최강팀 중에 하나여서 도저히 비빌수가 없다. 게다가 원래 본선에는 뉴질랜드가 올라가야 할 것이 선수 하나 잘못 써서 실격 처리되면서 피지가 뜬금없이 본선에 간 것이기에 승점자판기가 되는것은 당연지사. 만약 뉴질랜드가 실격처리 되지 않았다면 피지는 결승전에서 뉴질랜드에게 대량실점 당하면서 참패했을 것이다.[13] 사실은 관광객을 위한 퍼포먼스라고 보면 되긴 하지만.[14] 유럽은 항속거리 때문에 취항이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에미레이트 항공이나 카타르항공도 오클랜드까지 15시간 동안 힘겹게 가는판에 그보다 더 먼 피지까지 오긴 어렵다.[15] 수도인 수바 근교에 있는 나우소리 국제공항에서도 국제선(주로 호주, 뉴질랜드, 그 외 인근 남태평양 섬나라들)을 취급하긴 하지만 노선이 제한적이다.(대충 김포국제공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16] Nadi-피지어를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라 영어식이라면 나디 내지는 내디가 되어야 하지만 난디로 읽는다. 피지어 b, d, g, q, c는 /mb/, /nd/, /ŋ/, /ŋg/, /ð/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피지어 인사인 ni sa bula는 니삼불라라고 읽는다.[17] 국제공항이 있는 동네라 백화점도 있을 정도로(물론 한국의 백화점을 생각하면 안된다. 한국의 백화점에 비견될만한 백화점은 수바에나 몇개 있는 수준이고(사실 백화점이라기 보다는 종합쇼핑물 정도의 개념이지만) 난디의 백화점은 한국으로 친다면 그냥 하이마트나 크기가 조금 큰 면세점 정도의 규모이다. ) 꽤 번화한 동네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인구규모는 라오토카에게도 밀리는 수준이라 3위에 그친다.[18] 시드니나 오클랜드 같은 곳에 비하면 그저 중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시내에 고층 건물도 있고(다만 고층건물이라고 해봐야 대충 한국 아파트 정도의 높이이기는 하다.) 국제기구도 위치해있으며 근처에 나우소리라는 위성도시도 두고 있을 정도로 남태평양 지역에서는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다.[19] 규모가 커서 스산한 공동묘지와 거대한 산업시설이 눈에 보이면 수바에 도착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