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니
1. 개요
1999년 8월 3일[1] , 정규 1집 앨범 'Parallel Prophecys'를 발매하며 데뷔한 2인조 팀이며 힙합, 알앤비, 댄스 등 흑인음악을 베이스로 활동했던 팀이었다. 소속사는 업타운, 컨츄리꼬꼬, 샵, 이브 등 화려한 인기 라인업을 자랑했던 '월드뮤직'에서 배출 했었다. 팀명 '''타샤니'''(Tashannie)는 이미 인기 혼성그룹 업타운의 보컬로 활동했던 윤미래(Tasha)와 캐나다 교포 출신으로서 각종 국제 댄스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화려했던 안무가 애니(Annie, 본명 이수아)[2] 의 영어 이름을 조합해 만든 뜻이다.
2. 정규 1집 <Parallel Prophecys>
데뷔곡 '''《참을 수 없어》'''는 앨범에 두 가지 버전이 수록되었는데, 당시 유행했던 테크노를 기반으로 했던 Techono 버전으로 택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앨범의 프로듀싱은 업타운(Uptown)의 리더 정연준이 담당했다. 이 외에도 당시 인기 작곡가였던 박근태, 현재 최고의 히트메이커인 신인 시절의 방시혁 등이 수록곡에 참여해 수준급 퀄리티의 음반이었으며, 업타운 탈퇴 후 윤미래의 새로운 모습을 야심차게 보여주려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타이틀곡 '참을 수 없어'의 성적은 부진했다. 활동도 몇 달간 음악방송에 출연했기에 소속사의 푸쉬도 약하지 않았지만 타샤니의 '정통 테크노'는 그 당시 유행하던 인기가수들의 대중적이고 쉬운 멜로디로 들고 나온 '한국식 테크노'의 흐름과는 다소 엇나가 있었다.
가을로 접어들고선 R&B 발라드 '''《하루 하루》'''로 오버랩 했는데, 이 곡은 이미 1993년에 업타운의 정연준이 자신의 솔로 앨범에 '하루 하루 지나가면'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곡이었는데 묻혀있어 안타깝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프로듀싱한 타샤니에게 다시 리메이크 했던 것. 타이틀곡이었던 '참을 수 없어'보다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명곡임에도 음악방송 차트 성적은 미미한 반응이었다. 당시 평론가 리뷰에서도 재탕 곡이라며 혹평하기도 했다. 이후 정연준이 키우던 신인가수 문명진이 2001년에 다시 한 번 리메이크 하게 되었고, 슈퍼스타K나 프로듀스 101 등에서도 참가곡으로 사용 되었다.
'하루 하루'의 짧은 활동을 끝내고 1999년 겨울, 타샤니는 인기 작곡가 박근태가 작곡한 두번째 후속곡 '''《경고》'''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앞선 곡들과 달리 곡이 대중성 있고 쉽게 잘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큰 히트를 칠 수 없었는데, 후속곡이기도 하지만 1999년 하반기 가요계는 사실상 올스타들이 모인 '죽음의 조' 그 자체였다.
타샤니가 활동한 여름부터 겨울까지 H.O.T., 핑클, S.E.S., 젝스키스, 베이비복스 등의 1세대 톱 아이돌 뿐 아니라 조성모 등의 음반 판매량 밀리언 셀러, 괴물 신인 이정현의 와, 스카이의 영원, 같은 소속사의 컨츄리꼬꼬와 샵이 데뷔이래 첫 지상파 1위 히트 등을 기록하는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 가수들과 메가 히트송이 줄줄이 나와 치열했던 별들의 전쟁 시절이라 20위권에 드는것 조차 너무 어려웠었고, 공교롭게 이 시기와 정확히 맞물려 활동한 타샤니의 세 곡 모두 차트 성적상으로는 중박에 그쳐 비운의 명반이 되버렸다. 그러나...
3. 1집 활동 이후
그나마 타샤니의 음반 활동이 끝난 뒤인 2000년 5월에 출시된 리듬게임 펌프 잇 업 The O.B.G에 두번째 후속곡이었던 '경고'가 수록되었고, 이 게임 자체가 오락실에서 대 히트를 치며 당시 가요계에서 다소 묻혔던 설움을 오락실에서나마 풀며 뒤늦게 기사회생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 명곡임을 깨달은 대중들에게 늦게나마 각인이 되었고 노래방 등지에서 인기를 얻어 아직까지 묻히지 않고 '경고'는 타샤니의 대표곡이 되었다. 후배 혼성그룹 코요태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었으며, 또 다른 후배 다비치 역시 각종 방송이나 행사에서 이 곡을 많이 불렀었다. 또 다른 명곡 '하루 하루' 역시 윤미래의 솔로 음반 성공으로 늦게나마 재발굴되어 노래방 애창곡, 오디션 곡으로 많이 사랑받게 되었다.
이후 2002년, 타샤니의 공백 기간에 애니의 근황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에는 데뷔 전 걸그룹 핑클의 연습생 시절 맞지 않는 컨셉으로 힘들었으며 팀을 나와 타샤니에 합류했다는 비하인드와[3] 현재 타샤니의 2집 준비를 위해 미국 벤쿠버에 머물고 있으며, 솔로 1집 활동 이후 LA에서 휴식 중이던 윤미래와 조인 후 타샤니의 2집 앨범 녹음 작업 및 업타운과 합동 콘서트[4] 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었다. 공백기 동안 펌프 잇 업의 대중화로 인한 '경고'의 역주행과 윤미래(t)의 솔로 1집 '시간이 흐른 뒤'의 히트로 전화위복된 상황이라 타샤니 2집은 충분히 나올 수 있게 되었던 기회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끝내 무산되고 만다.
2002년 10월, 같은 소속사의 인기 혼성그룹 샵의 불화, 폭행 사건으로 인해 타샤니의 소속사 '월드뮤직'이 큰 빚에 떠안게 되면서 사건 한 달여만에 부도를 결정,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당시 월드뮤직에 소속된 가수들이 공중분해 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으며 타샤니의 정규 2집 또한 자연스레 무산되었다. 멤버들이 스스로 2집을 준비 했다는 자료와 기사들이 있으므로 1집 앨범의 부진함으로 인한 긴 공백[5] , 그리고 소속사의 부도가 맞물려 무산되었다고 보는게 맞다.
월드뮤직 소속 가수 음반의 모든 저작권은 2002년 당시 월드뮤직에 협업을 위해 투자해 채권단이었던 SM 엔터테인먼트에 매각됨에 따라 당시 월드뮤직 가수들의 앨범 레이블이 현재 음원 사이트에선 SM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에 타샤니 역시 정규 1집 앨범의 저작권을 SM 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다.[6] 소속사의 공중분해 이후 두 멤버는 각자 다른 곳에서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윤미래는 2001년 월드뮤직에서 t(티)라는 예명으로 솔로 1집 '시간이 흐른 뒤'[7] 로 대박을 친 뒤 성공적인 활동을 마쳤고 후속 앨범을 준비 중에 위의 갑작스런 소속사의 부도 결정으로 인해 발매가 어려울뻔 했으나, 월드뮤직의 모든 지분을 양도 받았던 채권단 SM엔터테인먼트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같은 소속 이브의 5집과 함께 2002년 12월, 그의 정규 2집 'To My Love'를 발매하게 됐고 2003년 2월 월드뮤직이 최종 부도처리 되었기에 이것이 월드뮤직 이름으로 나온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이후 타 기획사로 이적, 솔로 앨범 발매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가요계에서 실력파 가수로 자리 잡게 되었고, 지난 2007년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와 결혼했다. 자세한 내용은 윤미래 개인 문서 참조.
또 다른 멤버 애니(이수아)는 팀 활동 이후 2000년대 들어 한국어가 어눌한 캐릭터[8] 로 MBC '브레인 서바이버', KBS '행복한 대결 막상막하' 등 각종 예능에서 맹활약 했었고, 2003년 11월, S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X맨을 찾아라의 초창기 1기 고정 멤버로 활약 했었으며 이것이 그녀의 공식적인 마지막 연예계 활동이 되었다.
2003년 당시 아역 잡지모델이자 '제2의 보아'같은 소녀 가수를 준비 중이던 13살 소녀 김윤혜[9] 의 솔로 앨범 안무 총괄 트레이너로 활약 중이라는 보도가 마지막으로 밝혀졌던 언론의 근황이고, 현재까지 국내에서 그녀의 목격담이나 근황이 2003년 이후 전혀 알려지지 않아 다시 고향인 캐나다 밴쿠버로 돌아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1] 네이버 검색 결과나 지니뮤직에서 2000년 발매로 오기되어 있으나, 멜론이나 벅스뮤직 등에는 1999년 발매로 올바르게 표기 되어있다.[2] 댄스 대회에서 당시 히트 작곡가 최준영의 눈에 띄어 가수 데뷔 제안을 받았고, 이에 월드뮤직에 소개 되었다고 한다. 타샤니에서 맡은 파트를 소개할 때 '안무'로 얘기했지만 랩 파트도 맡았었다.[3] 타샤니 데뷔 전, 이미 걸그룹 핑클의 초창기 데뷔조 연습생으로 있었으나 그룹의 컨셉이 '힙합 여전사'에서 '순수한 요정'으로 변하는 바람에 팀에서 하차 후 월드뮤직으로 오게 된다. 반대로 월드뮤직에서 '업타운 걸스'(가제)로 데뷔 준비하던 연습생 이효리가 DSP미디어로 소속을 옮겨 핑클의 마지막 멤버로 발탁됐다.[4] KBS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보면 1999년 타샤니 활동 당시에도 이소라의 프로포즈등에 업타운과 출연해 합동 공연을 보여준 것을 보면 당시에는 윤미래와 업타운의 관계가 현재 불화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5] 월드뮤직엔 위에 서술되었듯 고수익을 내는 인기 가수들이 대거 소속되어 있었고 2000~2002년 내내 컨츄리꼬꼬와 샵이 앨범 낼때마다 자체 커리어 하이를 갱신 중이었어서 그들의 앨범 발매와 푸쉬가 집중되었으므로 후순위인 타샤니에게 투자해서 내기엔 부담이 있었을 것이고 같은 소속이었던 줄리엣, 소호대 역시 1~2장의 부진한 앨범 성적으로 바로 손 떼 사라졌었다.[6] 샵의 서지영은 팀 해체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더 이상의 금전적 손해를 막기 위해 팀(샵)의 존속 및 SM으로의 계약 이적을 제안 하자, 그녀가 팀이 아닌 자신의 솔로 이적이면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SM 이적 협상이 결렬 되었고, 월드뮤직은 결국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말았다. 같은 소속 가수였던 이브의 멤버들은 몇 년 후 그 분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며 라디오에서 돌려깠었다. 이브 역시 5집 앨범 '시간에 기대어'를 2002년 11월에 어렵게 냈으나 회사는 이미 부도를 결정한 상태였기에 이전처럼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힘들었었다. 자세한 것은 샵 문서 참조.[7] 원래 타샤니 1집 앨범은 그녀의 첫 솔로 앨범으로 준비하고 있었으나 애니의 합류로 앨범 발매 한달 전 갑작스럽게 듀엣 팀의 앨범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발라드로 솔로 앨범을 시작한 것이 천운이었던 셈.[8] 같은 캐릭터로 '해피투게더' 등의 예능에 나왔던 애즈원의 '민'도 있으며, 애니는 추후 애즈원의 앨범에 랩 피처링도 하게 된다. 이후에도 제이, 슈가의 아유미, 카라의 니콜, 소녀시대의 티파니, G.NA, 사유리, 제시 등이 캐릭터의 명맥을 이었다.[9] 가수 데뷔 예명은 '우리'였다. 당시 인기 아역 모델로서 유명했고 브라운아이즈의 나얼이 보컬 트레이너로, 타샤니의 애니가 춤 선생이라며 큰 투자를 받은 프로젝트임을 알리며 대대적인 언플을 했었으나...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솔로 가수 데뷔는 무산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2의 보아'들로 활동하던 소녀 가수들이 안티도 많아 음반 성적이 처참했었고, 김윤혜 역시 어린 나이에 또래들로부터 안티가 들끓었었다. 다만 '우리'라는 예명은 연기 활동 시작하고서도 이어 썼으며, 그 후 '우리'라는 예명을 버리고 본명인 김윤혜로 활동했다. 몇 년 뒤 같은 소속사였으며 한국판 '올슨 자매'라며 김윤혜와 같이 묶어 언플을 했던 민효린이 'Stars'로 먼저 1장의 음반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