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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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형제 첫연합결성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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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of Destruction'''
둘의 테마곡이 믹스된 형태로 등장하는 모습. 언더테이커의 암전과 케인의 불을 동시에 볼 수 있다. [4]
두번째 동영상 등장씬의 경우 시작부분은 1분39초~3분15초 까지 보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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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의 PPV WWF 인 유어 하우스 18: 배드 블러드의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와의 역사상 최초의 헬 인 어 셀 경기에서 난입해 '''언더테이커에게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시전하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케인의 데뷔가 이루어졌다.
이때 처음으로 케인과 조우했던 언더테이커의 '경악한' 표정과 형제의 대립은 큰 주목을 받았다. 각본상 장의사를 가업으로 하고있는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난 형인 언더테이커와 동생 케인은 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양친부모를 잃었는데[7] 이 화재의 범인이 언더테이커라고 폭로한 폴 베어러와 케인, 동생 케인이 화학약품을 취급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언급해 케인이 주범이었다는 언더테이커의 퓨드는 그 때까지 언데드적인 기믹만을 연기해오던 언더테이커의 첫 인간적인 연기의 시작이었다.[8]
더구나 당시 언더테이커가 '하나뿐인 혈육과는 싸우지 않겠다'며 케인과의 대결을 극구 피하고 있던 상황이라 팬들의 관심이 증폭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대립은 레슬매니아 14[9] , WWF 인 유어 하우스 21: 언포기븐의 인페르노 매치[10] 를 겪어가며 심화되어 가기 시작했는데, 1998년 6월 1일 RAW에서 빈스 맥맨이 직접 케인과의 1대 1 경기를 주선하고 승리한 자에게 당시 WWF 챔피언인 스티브 오스틴과의 챔피언십 경기 조항을 추가하면서 파괴의 형제의 세 번째 경기가 펼쳐진다.
이 경기에서 맨카인드가 난입하면서 대립은 언더테이커의 패배로 끝났고, 언더테이커는 난입한 맨카인드와 대립을[11] , 케인은 스티브 오스틴과 WWF 챔피언십을 두고 대립을 맺으면서 파괴의 형제의 대립은 잠시 진척되었다.[12][13]
언더테이커는 스티브 오스틴과의 대립을 이어가, WWF 섬머슬램(1998) 메인이벤트에서 챔피언 스톤 콜드에게 접전 끝에 클린 핀폴패를 당했다. 그 해의 12월 마지막 PPV인 WWF 인 유어 하우스 26: 락 바텀에서 스톤 콜드와 버리드 얼라이브 매치[14] 를 치르는데 난입한 케인에게 툼스톤을 맞고 매장당하며 패배했다. 이후 가벼운 부상 치료 겸 한달 남짓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참고로 이 때도 둘은 뭉친 적이 있었다. 정식적인 태그팀보다는 둘이서 난입하는 형식으로 더 자주 등장했는데, 한 번은 '''그 날 내내 열린 경기를 전부 난입하는 경우'''도 있었다.[15]
여담으로 이벤트성으로 태그팀 피니쉬인 '''스파이크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시전한적이 2~3번정도 있다.[16]
1999년 9월 부상으로 인해 장기 결장하던 언더테이커는 WWF 레슬매니아 2000까지 결장하면서, WWF 저지먼트 데이(2000) 메인이벤트 경기인 더 락 VS 트리플 H의 WWF 타이틀을 건 아이언맨 매치에 난입하면서 그 유명한 '''American Bad Ass''' 기믹으로 컴백했다. 언더테이커에게는 큰 이미지 변화의 시기였고, 케인 역시 전신 타이즈에서 경기복을 바꿔 활동하며 둘 다 인간적인 캐릭터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던 시점.[17][18] 마이크웍이 늘어나고 이에 힘입어 언더테이커와의 화해 각본을 수행하며 잘 알려진 '파괴의 형제'라는 이름의 태그팀으로 활동하게 된다.
2001년 WWF 로얄럼블(2001)에서 먼저 싸우던 케인과 언더테이커는 함께 싸워 링을 제압했으나[19] 당시 악역으로 활동하던 리키쉬에게 언더테이커가 슈퍼킥을 맞고 제거, 케인은 11명을 탈락시키는 큰 활약을 펼치지만 끝내 스티브 오스틴의 체어샷과 스터너를 맞고 제거되었다. 이 일 이후 로얄럼블에서 복귀한 하쿠가 리키쉬와 연합하면서 잠시 파괴의 형제 VS 리키쉬, 하쿠의 대립이 유지되나 싶었으나, 리키쉬의 부상으로 계획은 무산되며 파괴의 형제는 그 대신 태그팀 챔피언십 전선에 참여하게 된다.
개개인으로도 위력적인 두 사람이 힘을 합쳐버리니 웬만한 태그팀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WWF 노 웨이 아웃(2001)에서는 파괴의 형제가 E&C와 더들리 보이즈를 상대로 태그팀 챔피언쉽에 도전했고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20] 2001년 4월 17일 스맥다운에서는 E&C를 꺾고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이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벨트는 12일 만에 내주게 되는데, '투 맨 파워 트립'[21] 과의 대립에 의해서였다. 턴힐한 스티브 오스틴의 파격적인 행보와 탑힐로 성장하던 트리플 H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벨트까지 걸었던 WWF 백 래쉬(2001)의 Winner takes it all 매치에서 패배한 것.[22] 인베이전 각본 때 WCW 태그팀 챔피언십[23] 을 차지한 파괴의 형제는 WWF 섬머슬램(2001)에서 DDP & 크리스 캐년을 꺾고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되찾아오며 WWF VS 얼라이언스 스토리 당시 등장할 때 각각 두 개의 타이틀을 들고 나오며 메인 이벤터로 활동하던 시절이 아님에도 엄청난 포스를 보여줬다.
이 시기 파괴의 형제의 시그니처 무브가 확립되어, 두 사람의 더블 초크슬램과[24] 승리 세리머니로 '''등을 돌리고 오른팔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고 이후에도 종종 보여주곤 한다. DDP가 언더테이커의 아내 사라를 스토킹하던 각본이 주어질 때에는 사라가 두 사람의 매니저로 잠시 등장하기도 했으며,[25] 언더테이커가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 이후 턴힐하면서 태그팀은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브랜드 제도가 생기면서 언더테이커는 릭 플레어와 더 락과의 대립 이후 WWE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십에 눈독을 들이며 여러 레슬러들과 대립을 시작했고, 케인은 랍 밴 댐과의 태그팀 활동 중 가면을 벗고 흉포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 등 한동안 파괴의 형제의 대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언더테이커는 악역으로 돌아간 WWE 챔피언 브록 레스너와 대립하여 10월 WWE 노 머시(2003)에서 WWE 타이틀을 두고 바이커 체인 매치를 치르지만 빈스 맥마흔의 방해로 인해 패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언더테이커는 11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3)에서 빈스와의 생매장 매치를 치렀지만 케인의 난입으로 생매장되며 잠시 공백기를 가졌고, 11월 20일 스맥다운에서 케인은 매장된 언더테이커의 영정사진을 가져다 놓고 조롱하며 파괴의 형제의 대립은 재개하게 된다.[26]
언더테이커는 WWE 로얄럼블(2004)부터 케인을 프로모로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로얄럼블 매치에 참가하여 링 안의 선수들을 쓸어내던 케인은 자신의 다음 선수가 나올 타이밍에 '''언더테이커의 종소리가 울리자''' 몹시 당황하며 절규하다가 뒤를 급습한 부커 T에 의해 탈락하고 말았다. [27] 로얄럼블이 끝난 다음에도 언더테이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케인에게 경고를 보냈는데, 케인은 이에 대항하는 세그먼트를 진행하지만 '''세그먼트를 하던 링이 기울어지거나''', 위클리 쇼에서 승리한 케인의 테마곡과 링 포스트의 불기둥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대립기간 동안 언더테이커는 폭주족 기믹에서 다시금 과거의 장의사 기믹의 부활을 암시, 결국 WWE 레슬매니아 XX에서 케인은 폴 베어러를 대동하고 돌아온 언더테이커와 붙어 허무하게 패배하며 언더테이커의 연승으로 대립은 종결되었다.
2012년 7월 23일 RAW 1000회 특집에서 더블 툼스톤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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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서바이버 시리즈(2015)에서 와이어트 패밀리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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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크라운 주얼(2018)에서 DX에게 패했다.
'''파괴의형제 첫연합결성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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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of Destruction'''
1. 프로필
둘의 테마곡이 믹스된 형태로 등장하는 모습. 언더테이커의 암전과 케인의 불을 동시에 볼 수 있다. [4]
두번째 동영상 등장씬의 경우 시작부분은 1분39초~3분15초 까지 보면된다.
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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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e, until our paths cross again, '''I shall NEVER rest in peace!"'''
WWE 각본상 형제라는 설정을 갖고 있는 언더테이커와 케인으로 이루어진 WWE의 태그팀이자, 그 둘을 부르는 명칭. 오랜 시간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며 커리어를 이어와서, 정식적으로 태그팀으로 모아서 분류하지는 않지만 다시 결합할 때 그 위상만큼은 대단히 높다. 팬들 사이에서는 WWE 역사상 최강의 태그팀이라는 의견도 종종 보일 정도이다.[5] 기믹과 기술이[6] 유사하고 형제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림이 된다는 평.'''"Because blood is thicker than water."'''
3. 커리어
3.1. 케인의 데뷔와 첫 대립
1997년 10월의 PPV WWF 인 유어 하우스 18: 배드 블러드의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와의 역사상 최초의 헬 인 어 셀 경기에서 난입해 '''언더테이커에게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시전하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케인의 데뷔가 이루어졌다.
이때 처음으로 케인과 조우했던 언더테이커의 '경악한' 표정과 형제의 대립은 큰 주목을 받았다. 각본상 장의사를 가업으로 하고있는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난 형인 언더테이커와 동생 케인은 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양친부모를 잃었는데[7] 이 화재의 범인이 언더테이커라고 폭로한 폴 베어러와 케인, 동생 케인이 화학약품을 취급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언급해 케인이 주범이었다는 언더테이커의 퓨드는 그 때까지 언데드적인 기믹만을 연기해오던 언더테이커의 첫 인간적인 연기의 시작이었다.[8]
더구나 당시 언더테이커가 '하나뿐인 혈육과는 싸우지 않겠다'며 케인과의 대결을 극구 피하고 있던 상황이라 팬들의 관심이 증폭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대립은 레슬매니아 14[9] , WWF 인 유어 하우스 21: 언포기븐의 인페르노 매치[10] 를 겪어가며 심화되어 가기 시작했는데, 1998년 6월 1일 RAW에서 빈스 맥맨이 직접 케인과의 1대 1 경기를 주선하고 승리한 자에게 당시 WWF 챔피언인 스티브 오스틴과의 챔피언십 경기 조항을 추가하면서 파괴의 형제의 세 번째 경기가 펼쳐진다.
이 경기에서 맨카인드가 난입하면서 대립은 언더테이커의 패배로 끝났고, 언더테이커는 난입한 맨카인드와 대립을[11] , 케인은 스티브 오스틴과 WWF 챔피언십을 두고 대립을 맺으면서 파괴의 형제의 대립은 잠시 진척되었다.[12][13]
언더테이커는 스티브 오스틴과의 대립을 이어가, WWF 섬머슬램(1998) 메인이벤트에서 챔피언 스톤 콜드에게 접전 끝에 클린 핀폴패를 당했다. 그 해의 12월 마지막 PPV인 WWF 인 유어 하우스 26: 락 바텀에서 스톤 콜드와 버리드 얼라이브 매치[14] 를 치르는데 난입한 케인에게 툼스톤을 맞고 매장당하며 패배했다. 이후 가벼운 부상 치료 겸 한달 남짓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참고로 이 때도 둘은 뭉친 적이 있었다. 정식적인 태그팀보다는 둘이서 난입하는 형식으로 더 자주 등장했는데, 한 번은 '''그 날 내내 열린 경기를 전부 난입하는 경우'''도 있었다.[15]
여담으로 이벤트성으로 태그팀 피니쉬인 '''스파이크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시전한적이 2~3번정도 있다.[16]
3.2. 폭주족 언더테이커와의 태그팀
1999년 9월 부상으로 인해 장기 결장하던 언더테이커는 WWF 레슬매니아 2000까지 결장하면서, WWF 저지먼트 데이(2000) 메인이벤트 경기인 더 락 VS 트리플 H의 WWF 타이틀을 건 아이언맨 매치에 난입하면서 그 유명한 '''American Bad Ass''' 기믹으로 컴백했다. 언더테이커에게는 큰 이미지 변화의 시기였고, 케인 역시 전신 타이즈에서 경기복을 바꿔 활동하며 둘 다 인간적인 캐릭터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던 시점.[17][18] 마이크웍이 늘어나고 이에 힘입어 언더테이커와의 화해 각본을 수행하며 잘 알려진 '파괴의 형제'라는 이름의 태그팀으로 활동하게 된다.
2001년 WWF 로얄럼블(2001)에서 먼저 싸우던 케인과 언더테이커는 함께 싸워 링을 제압했으나[19] 당시 악역으로 활동하던 리키쉬에게 언더테이커가 슈퍼킥을 맞고 제거, 케인은 11명을 탈락시키는 큰 활약을 펼치지만 끝내 스티브 오스틴의 체어샷과 스터너를 맞고 제거되었다. 이 일 이후 로얄럼블에서 복귀한 하쿠가 리키쉬와 연합하면서 잠시 파괴의 형제 VS 리키쉬, 하쿠의 대립이 유지되나 싶었으나, 리키쉬의 부상으로 계획은 무산되며 파괴의 형제는 그 대신 태그팀 챔피언십 전선에 참여하게 된다.
개개인으로도 위력적인 두 사람이 힘을 합쳐버리니 웬만한 태그팀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WWF 노 웨이 아웃(2001)에서는 파괴의 형제가 E&C와 더들리 보이즈를 상대로 태그팀 챔피언쉽에 도전했고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20] 2001년 4월 17일 스맥다운에서는 E&C를 꺾고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이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벨트는 12일 만에 내주게 되는데, '투 맨 파워 트립'[21] 과의 대립에 의해서였다. 턴힐한 스티브 오스틴의 파격적인 행보와 탑힐로 성장하던 트리플 H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벨트까지 걸었던 WWF 백 래쉬(2001)의 Winner takes it all 매치에서 패배한 것.[22] 인베이전 각본 때 WCW 태그팀 챔피언십[23] 을 차지한 파괴의 형제는 WWF 섬머슬램(2001)에서 DDP & 크리스 캐년을 꺾고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되찾아오며 WWF VS 얼라이언스 스토리 당시 등장할 때 각각 두 개의 타이틀을 들고 나오며 메인 이벤터로 활동하던 시절이 아님에도 엄청난 포스를 보여줬다.
이 시기 파괴의 형제의 시그니처 무브가 확립되어, 두 사람의 더블 초크슬램과[24] 승리 세리머니로 '''등을 돌리고 오른팔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고 이후에도 종종 보여주곤 한다. DDP가 언더테이커의 아내 사라를 스토킹하던 각본이 주어질 때에는 사라가 두 사람의 매니저로 잠시 등장하기도 했으며,[25] 언더테이커가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 이후 턴힐하면서 태그팀은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3.3. 돌아온 데드맨과의 대립
브랜드 제도가 생기면서 언더테이커는 릭 플레어와 더 락과의 대립 이후 WWE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십에 눈독을 들이며 여러 레슬러들과 대립을 시작했고, 케인은 랍 밴 댐과의 태그팀 활동 중 가면을 벗고 흉포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 등 한동안 파괴의 형제의 대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언더테이커는 악역으로 돌아간 WWE 챔피언 브록 레스너와 대립하여 10월 WWE 노 머시(2003)에서 WWE 타이틀을 두고 바이커 체인 매치를 치르지만 빈스 맥마흔의 방해로 인해 패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언더테이커는 11월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3)에서 빈스와의 생매장 매치를 치렀지만 케인의 난입으로 생매장되며 잠시 공백기를 가졌고, 11월 20일 스맥다운에서 케인은 매장된 언더테이커의 영정사진을 가져다 놓고 조롱하며 파괴의 형제의 대립은 재개하게 된다.[26]
언더테이커는 WWE 로얄럼블(2004)부터 케인을 프로모로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로얄럼블 매치에 참가하여 링 안의 선수들을 쓸어내던 케인은 자신의 다음 선수가 나올 타이밍에 '''언더테이커의 종소리가 울리자''' 몹시 당황하며 절규하다가 뒤를 급습한 부커 T에 의해 탈락하고 말았다. [27] 로얄럼블이 끝난 다음에도 언더테이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케인에게 경고를 보냈는데, 케인은 이에 대항하는 세그먼트를 진행하지만 '''세그먼트를 하던 링이 기울어지거나''', 위클리 쇼에서 승리한 케인의 테마곡과 링 포스트의 불기둥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대립기간 동안 언더테이커는 폭주족 기믹에서 다시금 과거의 장의사 기믹의 부활을 암시, 결국 WWE 레슬매니아 XX에서 케인은 폴 베어러를 대동하고 돌아온 언더테이커와 붙어 허무하게 패배하며 언더테이커의 연승으로 대립은 종결되었다.
2012년 7월 23일 RAW 1000회 특집에서 더블 툼스톤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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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서바이버 시리즈(2015)에서 와이어트 패밀리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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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크라운 주얼(2018)에서 DX에게 패했다.
[1] 각본상 죽음의 계곡(데스 밸리), 다만 폭주족 기믹 때는 정상적으로 텍사스 휴스턴이 출신지로 소개되었다.[2] 스페인 사람은 아니고, 스페인에 주둔중인 미국 공군 집안 출신이다. 유년시절은 미주리 주에서 성장했다.[3] 2011년 다시 가면을 착용하고 복귀하면서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새로이 사용한 피니셔. 클로우 홀드의 변형기로, 상대의 코와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아 질식시킨다는 단순한 원리이다.[4] 98년 파괴의형제 연합당시 파괴의형제 98년 등장씬중 유일하게 처음이자 마지막 '''언더테이커 등장씬+케인의 헬파이어를 보여준 유일한 경기다.''' 원조 등장씬인 파괴의형제 연합결성 첫 등장신에서는 '''케인의 헬파이어가 없었다.''' 그리고 위의 98년 영상은 파괴의형제 '''첫번째 경기매치'''다 이후 경기에서는 후등장씬에 언더테이커 조명 걷어내는씬까지는 보여주나 상대선수가 케인이 헬파이어를 시전하기전에 먼저 선공을 해버려서 케인이 헬파이어를 하는씬은 보여주지 못했다...[5] 훌륭한 태그팀은 많지만, 에볼루션이나 스티브 오스틴과 트리플 H 정도가 아니면 파괴의 형제의 위상과 대등하다고 보기 어렵다.[6] 초크슬램과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는 형제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피니쉬 무브이며 조금은 다르게 사용하지만 플라잉 클로스라인도 공통으로 쓴다. 언더테이커는 러닝 플라잉 클로스라인, 케인은 턴버클을 올라가 사용하는 플라잉 클로스라인.[7] 원인은 염을 할때 쓰는 화학약품의 취급 부주의였다고한다. 덧붙이자면 당시 케인이 쓰던 가면도 이 화상을 가리려던 설정이었다.[8] 따라서 무슨 피니쉬 무브던 씹어버리고 싯업을 하며 공격들에 타격을 입지 않던 초창기 언더테이커의 장의사 기믹은 점점 약화되어 갔고, 갓 데뷔하던 케인의 캐릭터가 이러한 경향을 더 보였다.[9] 언더테이커가 툼스톤을 세 번 써서 간신히 승리. 마지막에 케인이 살짝 늦게 킥아웃을 해서 핀폴패 당했는데 지쳐있는 언더테이커를 케인이 싯업한뒤 철제의자에 툼스톤을 시전한뒤 퇴장. 툼스톤을 싯업으로 반격하던 케인이 환호를 받았다. 이경기에서 총 5번의 툼스톤이 나왔다.[10] 4각 링에 불을 붙이고 불이 신체에 붙으면 끝나는 경기. 경기 중 베이더가 난입했고 전신 타이즈던 케인의 오른팔에 불이 붙으면서 언더테이커의 승리로 끝났다.[11] WWF 킹 오브 더 링(1998)에서 그 유명한 헬 인 어 셀 매치가 열렸다.[12] WWF 킹 오브 더 링(1998)에서 케인과 오스틴의 WWF 챔피언십 퍼스트 블러드 매치 중, '''헬 인 어 셀 매치를 끝내고 온 믹 폴리와 언더테이커가 한번 더 난입하면서''' 언더테이커가 휘두른 의자에 맞은 스티브 오스틴이 피를 흘렸고, 케인의 승리로 끝났다.[13] 난입에 관련해 항의한 오스틴은 다시 한번 더 겨루자고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케인은 단 하루 동안 챔피언을 지낸 뒤 빼앗기게 된다(...)[14] 언더테이커의 초창기 기믹에 의해 생긴 경기 방식으로, 이른바 생매장 매치. 상대를 준비된 무덤자리에 집어넣고 매장시키면 승리하며, 이를 위해서 세트장에 흙을 덮을 포크레인도 준비된다. 보통 선수의 휴식기를 가지게 하기 위한 방식으로 각본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15] 언더테이커가 오스틴과 리매치 대결을 요구하는데 빈스가 자꾸 거절해서 당당하게 테마곡도 없이 언더테이커와 케인이 걸어나와서 모든경기를 깽판치고 유유히 퇴장했다. 심지어 빈스가 세그먼트하는 도중에도 난입했다.경기날자는 1998년 9월 5일자 경기. 비슷하게이후 1998년 말 언더테이커 악역으로 턴힐했을때 배신당해 화나서 그런지 케인혼자 모든경기 난입해서 깽판쳤던적도 있다.[16] 물론 일반 태그팀매치에서가 아닌 세그먼트 이벤트 또는 난입 이벤트때만 '''잠깐''' 보여줬었다.[17] 언더테이커가 부상복귀후 케인과 태그팀 경기도 뛰었다 2000년 8월 케인이 악역으로 턴힐함과 동시에 대립을 했었다. 여담으로 턴힐한뒤 00년 써머슬램에서 케인의 의상이 빨간내복에서 민소매 복장으로 바뀌었다.[18] 나중에 가면 이마와 눈, 코까지만 가리는 일명 반가면으로 바꿔 쓰고 활동했는데, 이는 숨쉬기가 너무 불편해서 본인이 다른 가면을 쓰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초기의 과묵한 괴물 이미지보다는 더 많은 감정표현이 가능해졌다고. 다만 카리스마는 조금 줄어들었다.[19] 둘이 링을 제압한 뒤에 둘이 서로를 노려보다 다음 선수가 등장하였는데 그 선수는 바로 '''스카티 투 하티'''. 평소 유쾌한 기믹인 그답지 않게 매우 두려워하면서 등장했으며 나오자마자 두 사람에게 매우 많이 맞고 더블 초크슬램까지 맞고 제거당했다.[20] 경기 자체는 리키쉬와 하쿠의 난입으로 패배하였다.[21] 당시 WWF 챔피언 스티브 오스틴과 당시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트리플 H의 태그팀.[22] 이후, 5월 21일의 Raw에서 파워 트립은 투 크리스(크리스 벤와&크리스 제리코)를 상대로 패배하며 타이틀을 내주었고 경기를 펼치던 도중 트리플 H의 좌측 대퇴사두근이 찢어지며 근육이 뼈에서 떨어지는 중상을 입고, 8개월간 결장하게 된다.[23] WWF 언포기븐(2001)에서 크로닉에게 승리하면서 WCW 태그팀 챔피언십을 지켜냈다.[24] 두 명이 한 명을 잡고 초크슬램을 하는 것이 아닌 '''두 명이 한 명씩 잡고 동시에 초크슬램을 시전하는''' 장면.[25] 이 기믹은 원래 더 락에게 돌아갈 기믹이었다. 더 락을 턴힐시켜 언더테이커와 대립시킬 계획이었는데, WCW가 망하면서 황급히 만들어진 인베이전 각본 덕에 DDP가 이 역할을 맡게 된 것. WCW를 대표하는 메인이벤터이자 탑페이스 슈퍼스타였던 DDP는 이런 초라한 대우에 끝내 떠나고 만다.[26] 참고로 저 당시 케인의 소속은 RAW였다(...)[27] 그리고 혼비백산해 도망치던 와중 입장하던 진짜 다음 선수인 스파이크 더들리에게 화풀이(...)를 하고 사라져 버렸다.#